Semua Bab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Bab 1011 - Bab 1020

1183 Bab

제1011화

“진짜인가?”이 말, 유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지난번엔 오수자랑 고상훈도 그랬다.그런데 이번엔 마수경이랑 도경미까지 똑같은 말을 한다. 두 사람은 일부러 유건의 기분 맞춰주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하지만 유건은 저도 모르게 조이를 유심히 바라보게 됐다.‘어쩌면, 조이... 진짜 나를 좀 닮았나?’“닮았어요!”조이는 ‘아저씨’의 시선을 느끼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유건의 품 안에서 방방 뛰었다.“닮았어요! 진짜 닮았어요!”“그래?”진짜든 아니든, 조이가 저렇게 좋아하니 유건도 따라 웃음이 났다.“응, 닮은 거 같기도 하고...”“조이!”결국, 시연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말투가 약간 단호했다.외모 얘기는 도무지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한마디만 더 들으면, 진짜 심장이 못 버틸 것 같아...’시연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밥 먹을 땐 얌전히 먹기로 했지? 엄마가 뭐라고 가르쳤어?”엄마가 딱딱한 표정을 짓자, 조이는 바로 얌전해져 유건 품에 쏙 안겼다.“네... 조이 안 뛰어요. 엄마 화내면 안 돼요.”보통 이쯤 되면, 엄마가 다정하게 조이를 달래줘야 정상인데, 오늘은 아니었다.시연은 고개만 끄덕이고, 조이를 재촉했다.“얼른 먹어야 해. 오늘은 꼭 어린이집 가야 하니까.”“네...”순간, 식탁 분위기가 싸해졌다.유건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시연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유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연을 달랬다.“너무 화내지 마. 아직 아기잖아. 조이 착한데? 엄마 한마디에 바로 얌전해졌잖아.”솔직히 유건 눈엔 조이가 아예 말썽을 부린 것도 아니었다.“네.”시연은 고개만 끄덕였을 뿐,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아직도 안 풀린 건가...?’유건은 결국 품에 안긴 조이를 달랬다.“조이 착하지.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고, 맛있게 먹자.”“네! 알겠어요.”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시연의 마음속엔 이미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부정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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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화

그때, 시연은 돈이 없었다. 조이를 맡길 사람은커녕, 어린이집에 보낼 비용조차 빠듯했다.그래서 시연은 아르바이트할 때도, 조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결국 선택한 일은, 24시간 마트의 야간 알바로 일했다.조이를 데리고 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처음엔, 그럭저럭 괜찮았다.시연은 낮에는 쉬고, 밤에 일하고, 틈틈이 대학원 입시도 준비했다.고단했지만, 견딜 수 있었다.시연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여덟 살부터, 시연은 어른이었다.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고, 공부도 해야 했고, 갓 돌 지난 남동생 우주도 돌봐야 했다.힘든 거? 그게 대수인가?만약 그런 날들이 쭉 이어졌다면, 시연은 그럭저럭 무난하고 조용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시연 씨가 그놈들 중 두 명의 머리를 깨버렸어. 현장에서 바로 경찰에 끌려갔지.”그 말을 하는 지하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처럼 낮아져 있었다.차마 말하기조차 힘든 이야기였다.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지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조용하고 여린 외국인 여자가, 덩치 큰 외국 남자 몇 명을 상대해야 했던 상황.시연은 거의 목숨 걸고 싸운 거였다.두 사람의 머리를 깨부쉈다니, 그건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처절한 생존이었다.‘이 장면을 유건이가 떠올린다면...’지하도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데, 유건은 오죽할까?지하는 한참 동안 유건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야... 괜찮아?]물어놓고 지하 자신도 자책했다.‘이 상황에 괜찮을 리가 없지. 내가 병X이지...’[하아.]지하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이미 지나간 일이야. 바꿀 순 없어. 앞으로, 시연 씨한테... 정말 잘해줘라.]“응...”유건은 전화를 끊었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1초, 2초...그 순간, 유건은 갑자기 팔을 번쩍 들어 핸드폰을 바닥에 내리쳤다.쾅!순간, 핸드폰이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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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3화

무슨 상황인지 알 길이 없었다.민환과 기환은 대표실로 들어오자마자 얼이 빠졌다.“형님? 지한 형님...?”“다 왔냐?”유건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민환과 기환을 노려보고 손짓했다.“잘됐다. 덤벼. 같이 붙자!”민환과 기환은 서로를 흘끗 바라봤다.유건에게 감히 주먹을 휘두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뭐해? 멍하니 서 있지 말라고!”지한은 온몸이 쑤셔 이를 악물고 민환과 기환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같이 막아!”‘형님이 지금 화풀이하려고 그러는 거잖아?’민환과 기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아, 알겠습니다!”“조심하세요!”지한은 덧붙여 외쳤다.“형님 다치게는 하지 마!”“네!”“흐흐...”유건은 서늘하게 웃었다.“누가 누구를 다치게 할지는 모르는 거지.”잠시 후, 넷이 한 덩어리로 얽혔다.민환과 기환은 전문 격투를 배운 이들이고, 유건과 지한은 반쯤 아마추어라, 겉보기엔 박진감 넘치지만 실제로는 체력 소모가 컸다.결국 이건 유건의 분노를 발산시키기 위한 몸싸움이었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피할 수 없는 충돌은 생겼다.퍽!기환의 주먹 하나가 유건의 가슴을 스쳤다.유건의 몸이 순간 멈췄다.두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그대로 뒷걸음치며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형님!!”“형님!!!”민환과 기환은 식은땀이 흘렀다.특히 주먹을 날린 기환은 얼굴이 새하얘졌다.“형님, 괜찮으세요? 힘을 안 줬는데... 왜...”민환과 기환은 당황해 지한을 바라봤다.‘어쩌지?’지한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나도 모르겠다...’바닥에 드러누운 유건.그 눈이 멍하게 천장을 응시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흘렸다.“허... 허허...”서늘하고 깊은 웃음이었다.세 사람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대표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그런데 웃음소리와 함께, 유건의 눈에 서서히 물기가 차올랐다.그리고 그것이, 눈가를 타고 흘렀다.‘형님이... 울고 있어?’민환, 기환, 지한.세 사람은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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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4화

“집...?”하지만 유건의 포인트는 시연과는 조금 달랐다.“네 말은... 지금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그 집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건가...?’‘아니, 굳이 단어 하나하나를 그렇게 물고 늘어질 일인가?’시연은 대꾸하지 않았다.유건도 굳이 더 묻지 않았다.“널 데리러 온 거야. 수술 끝났지? 집에 가자.”“아직이에요.”시연은 옆에 있는 진료실을 가리켰다.“진단서가 남았어요.”“응.”유건은 말없이 시연을 안고 진료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혔다.“해. 난 여기서 기다릴게.”“네.”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류.시연은 느낄 수 있었다.오늘의 유건... 뭔가 이상하다.남자의 눈빛, 말투, 침묵. 모두 어딘가 무거웠다.‘왜 이렇게 슬퍼 보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진단서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서류가 마무리되자 유건은 다시 시연을 안아 들었고, 탈의실로 향했다.시연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동안에도 유건은 말이 없었다.그리고 다시, 시연을 품에 안고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차 안.그리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유건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조차 굳어 있었다.집에 도착하자, 유건은 시연을 조심히 안고 2층 침실로 올라가, 침대에 눕혔다.그 침묵이, 결국 시연의 인내심을 무너뜨렸다.시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고 대표님, 오늘 하루 종일 웃는 얼굴 한 번을 못 봤네요. 솔직히 말해봐요. 새 여자라도 생긴 거예요? 어떻게 나를 정리할까 고민 중이었죠?”유건은 멍하니 시연을 바라보다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계속해 봐.”‘진짜인가?’시연은 머쓱하게 웃던 표정을 굳히며, 농담을 이어갔다.“뭐,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한마디면 바로 짐 싸서 나갈게요. 고 대표님 앞에 다시는 안 나타날게요.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연의 입이 막혔다.유건이 몸을 숙여, 그 입술을 거칠게, 깊게 막았다.숨 돌릴 틈 없이, 기세 좋게 덮쳐오는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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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5화

시연의 웃는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굳어 있었던 유건의 표정도 서서히 풀렸다.그리고 입꼬리가 아주 조금, 부드럽게 올라갔다.시연이 눈을 뜨자, 마침 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고유건... 드디어 웃네?’웃는 얼굴이 찡그린 얼굴보다 훨씬 낫고, 훨씬 잘생겼다.“괜찮네요? 제법 똑똑한 아이디어였네요.”시연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유건을 바라보며 말했다.“조금만 오른쪽으로요.”“여기?”“조금 위로... 아니요, 밑으로? 아니에요, 거기도 아니고...”유건은 젓가락을 들고 위아래, 좌우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대체 어디야? 좀 제대로 말해줄 수 없어?”짜증이 난 건 아니었다.그저 시연이 불편할까 봐, 괜히 더 조심스러웠다.“여긴가?”“음... 아닌 거 같기도 하고...”유건이 고개를 들자, 시연이 입술을 꾹 눌러가며 웃음을 참는 얼굴이 보였다.‘이 여자, 지금...’그 순간, 시연이 푸하하 터졌다.“푸핫, 하하하!”“야!”눈치챈 유건이 젓가락을 휙 던지고는 시연을 번쩍 안았다.“지금 나 놀린 거야?”“하하, 맞아요! 완전히 속았죠?”“어디 한번 두고 봐. 가만 안 둬.”유건은 팔을 뻗어 시연의 옆구리를 간질이기 시작했다.“아하하하! 아악, 안 돼요! 하지 마요! 하하하...”시연은 간지럼을 정말 잘 탔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왜? 아까 나 놀릴 땐 아주 신났잖아.”“제발... 하하... 잘못했어요! 웃다가 죽겠어요... 진짜...!”“흥, 봐준다.”유건은 간지럼을 멈추고 손을 거뒀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시연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이서, 연인처럼 속삭였다.“이 장난꾸러기.”갑작스러운 정적.분위기가 확 바뀌었다.유건은 그대로 가까이 있었다.“고유건 씨.”시연은 입술을 살짝 핥으며, 낮게 말했다.“내 다리, 불편해요.”“오?”유건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출근할 땐 잘만 움직이더니, 내 앞에선 불편하네?”‘이 사람 진짜...’“출근은...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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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6화

“내일 나랑 조이 면접하러 가야 해서... 아침 일찍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기환 씨 좀 빌려 써도 될까요?”‘빌린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시연의 예의였다.기환이 항상 곁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걸, 시연이 모를 리 없었다.“응, 알겠어.”유건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나야.”[형님.]“내일 시연이랑 조이, 면접장에 데려다줘. 평소에 모는 차 말고, 차고에 있는 좋은 걸로.”[네, 알겠습니다.]시연은 과한 걸 싫어했다.그래서 병원 갈 때도 유건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가장 평범한 차’를 골라 탔다.물론, 유건 기준의 ‘평범한 차’는 일반 기준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혹시나 시연이 싫어할까 봐, 유건은 미리 설명을 덧붙였다.“면접 오는 집안들, 절대 평범하지 않을 거야. 괜히 고집부리지 마.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 알지?”시연은 입술을 꾹 눌렀다.“알았어요. 나 고집부린 거 아니에요.”다음 날 아침, 유건은 평소처럼 조이를 데리고 먼저 나갔다.시연은 조이와 함께 면접 준비를 꼼꼼히 마친 후,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어린이집에 도착했다.기환은 시연과 조이를 면접 대기실까지 바래다줬다. 이미 몇몇 부모들과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시연과 조이도 자리에 앉았다.조이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그러다 엄마의 옷소매를 조심스레 잡아당기며 속삭였다.“엄마... 다른 아기들은 다 아저씨랑 같이 왔어요.”시연은 순간 멍해졌다.‘아저씨...?’누가 봐도 그건 아저씨가 아니었다.분명히 아이들의 아빠였다.그 짧은 순간, 시연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묘한 쓸쓸함이 올라왔다.‘조이는... 아빠란 개념이 희미하니까.’태어났을 때부터, 조이 곁엔 엄마뿐이었다.아빠가 뭔지, 이 아이는 알지 못했다.그래서 요즘같이 사는 유건도 그냥 ‘아저씨’인 거고...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시연이 입을 떼려는 순간.“엄마!”조이가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점점 유건을 닮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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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7화

시연은 조이가 긴장할까 봐 조심스럽게 격려했다.“조이야, 파이팅 해야지.”“네!”하지만 조이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오히려 시연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말했다.“엄마도 파이팅!”그리고 유건을 돌아보며 외쳤다.“아저씨도! 아저씨랑 엄마랑 같이 파이팅!”‘이 녀석이 정말...’시연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밝게 손을 흔들며 아이들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딸을 바라보았다.“겁 하나 없네... 도대체 누구 닮아서 저렇게 당당한 거야.”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을 때, 부모 면접을 안내하는 교사가 다가왔다.“시연 씨, 이쪽입니다.”그 순간, 유건이 시연의 팔을 받쳤다.“이제 우리 차례야.”“알고 있어요.”시연은 유건의 손을 살짝 치워보려 했지만, 이미 기환이 그녀의 목발을 챙겨갔다.‘면접 자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순 없다고 생각한 거야.’그 말도 맞으니 괜히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결국 시연은 유건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안내를 따라 다른 대기실로 향했고, 그곳에서도 순서대로 호명되면 개별 면접실로 들어가야 했다.시연과 유건은 이름이 불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금세 피했다.‘내가 뭐라 할 수도 없고...’‘지금 말 꺼내봤자 뭐 하겠어?’말하고 싶어도 못 하고, 따지고 싶어도 타이밍이 아니었다.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버티다가 드디어 안내가 들렸다.“고유건, 지시연 보호자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미 고상훈이 길을 잘 닦아놓았고, 게다가 고유건이 직접 나타난 상황.면접이라기보다, 인사 겸 티타임 같은 분위기였다.“원장님, 이사님들. 저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유건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원장이 반갑게 화답했다.“고 대표님, 걱정 마십시오. 따님 아직 어리니, 저희가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감사드립니다.”“아닙니다, 고, 대표님. 저희가 영광이죠.”그런데 그 순간, 원장이 시연의 다리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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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8화

“나이도 물어보고, 선생님이 동화책도 읽어보라 했고, 숫자도 풀었어요!”조이는 손가락을 꼽으며 신나게 설명했다.“엄마 얘기도 하고, 아저씨 얘기도 했어요! 증조할아버지도 그랬는데, 선생님도 조이 영어 잘한다고 칭찬했어요!”조이는 P시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영어 환경에 익숙해 있었고, 그만큼 영어 실력도 아이치고는 수준급이었다.그 조그마한 입으로 쉴 새 없이 떠드는 조이를 보며, 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그래?”“조이 진짜 잘했네. 똑똑해.”“그렇죠?”...차에 타자마자 조이는 시연의 품으로 쏙 파고들었다.“엄마!”‘칭찬받을 준비 완료네.’시연은 웃으며 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우리 딸, 최고였어.”“헤헤헤!”조이는 입을 귀에 걸고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그럼, 오늘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요?”조이는 미숙아로 태어나 체질이 약했고, 시연은 조이에게 찬 음식을 거의 먹이지 않았다.아이스크림은 조이에게 ‘아주 특별한 상’ 같은 존재였다.시연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진짜요? 와아아아!!”“대신, 반 개만.”하지만 조이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요! 엄마가 조이 아플까 봐 그러는 거잖아요! 조이 안 아플 거예요! 착하게 먹을게요!”그 말에 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시울이 따끔했다.‘이 아이를... 절대 잃을 수 없어.’시연은 조이를 꼭 안았다.“우리 착한 아기.”...집으로 돌아오자, 유건은 곧장 안방 문을 닫았다.미간을 꾹 눌렀다.곧 폭풍이 몰아칠 걸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이 전쟁은... 피할 수 없어. 내가 시작했으니까.’“내가 잘못했어.”유건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잘못했어요?”시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그게 ‘잘못했어’ 한 마디로 끝날 일이에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예요?”“아무 생각 없었어.”유건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쥔 손을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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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화

시연이 가리킨 건, 자신의 짧은 머리였다.그 순간, 유건의 심장이 무너져내렸다.두 사람이 다시 마주했던 첫날부터, 유건은 이미 시연의 단발을 보고 있었다.하지만 그 의미를, 그 상처를... 감히 묻지 못했다.3년 전,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를 쓸던 시연에게 유건은 물은 적이 있었다.짧게 잘라본 적 있냐고.그때 시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알려줬다.딱 한 번, 은범이랑 헤어졌을 때.사랑이 끝났을 때, 그녀는 머리카락을 잘랐다.그럼 이번엔, 누구를 위해, 무엇을 끊어내기 위해?유건은 내내 묻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혹시... 나 때문이면 어쩌지?’‘아니, 나 때문이 아니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아.’“시연아.”유건은 마른침을 삼키며 힘겹게 물었다.“나 때문이야?”시연은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짧게 웃었다.“맞아요.”유건의 눈이 흔들렸다.놀람보다 컸던 감정은, 공포였다.‘정말... 나 때문이었어.’“당신...”시연은 유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 시선엔 망설임도, 피함도 없었다.“당신은 나를 몇 번이고 실망시켰지만, 그래도 그 길에서 다시 만나고 나서,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당신이랑 잘살아 보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시연아...”유건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떨리는 손으로 시연의 어깨를 만졌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지금은 다 소용없을 것 같아.’“다 당신 때문이에요!”갑자기 시연이 유건의 옷깃을 움켜쥐었다.그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요동쳤다.“당신이 장소미를 못 놓잖아요. 항상 중요한 순간엔, 결국 장소미를 택하잖아요. 맞죠?! 왜요?!”“시연아!”유건은 반사적으로 시연을 껴안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몸을 꼭 감쌌다.“사랑해! 나는 널 사랑해!!”“아니에요! 아니라고요!”시연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은 입으로만 날 사랑한다고요!! 행동으론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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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0화

시연은 울음을 삼키며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겨우겨우 버텨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자고요? 너무해요... 너무 이기적이잖아요...”그 순간, 시연의 다리가 휘청였다.버티고 있던 중심이 무너지고, 그대로 앞으로 쏟아졌다.“시연!”유건이 재빠르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그러고는 조심히 침대에 눕혔다.창백해진 시연의 얼굴을 유건은 조심스레 어루만졌다.“이 얘기는 나중에 해. 어디가 아파? 다리야?”시연은 얼굴을 살짝 돌리며 유건의 손길을 피했다.“괜찮아요. 그냥 오래 서 있었더니 좀 무리가 온 것뿐이에요.”다행히 큰 이상은 아니었다.하지만 감정이 쏟아진 뒤의 허탈함은 시연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한참을 유건을 바라보다가, 시연은 조금씩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흥분해서 뭐가 달라지나... 이 사람, 지금 도망치려는 건 아니야.’“말해봐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시연은 천천히 물었다.유건은 자신을 거칠게 소유했던 남자다.그런데도 시연은 알 수 있었다. 유건이 그때조차도 끝까지 ‘책임’이나 ‘미래’ 같은 단어를 입에 담진 않았다.‘이 사람은 그냥, 그렇게 나와 엉켜 살겠다고 생각했던 거야.’‘무겁지 않게. 깊이 들어가지 않게.’하지만 이제 와서 유건이 ‘결혼’이라는 말을 꺼낸다는 건, 시연에겐 너무 큰 변화였다.그는 눈을 내리깐 채, 당장 대답하지 못했다.그 순간, 시연이 먼저 말했다.“그러고 보니까...”시연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해졌다.“약...”유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연이 약을 먹고 있다는 걸.그걸 알았을 때도, 시연은 따로 묻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유건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시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무슨 약 먹는지까지 알아요? 그럼, 도대체 뭘 얼마나 더 알고 있는 거예요?”‘이 사람, 돈도 시간도 있는 사람인데...’‘뭐든 알아내려고만 하면 못 할 게 없겠지.’“시연아.”유건은 시연의 손을 잡았다.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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