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의 모든 챕터: 챕터 851 - 챕터 860

916 챕터

제851화

돌아가는 길에 시연은 진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어떻게 됐어?]메시지를 보낸 뒤로 한참이나 답이 없었다.‘못 봤나?’시간을 보니, 지금쯤 진아가 바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시연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지금쯤... 어떻게 되고 있을까?’...오늘은 진아가 진성빈에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결심한 날이었다.지금, 진아는 한 식당의 룸 안에 앉아 긴장한 듯 깊은숨을 들이쉬고 있었다.핸드폰이 한 번 울렸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시연의 조언을 받아들인 진아는 결국 성빈을 따로 만나기로 했다.‘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늘 끝내야 해.’“손님, 안으로 모실게요.”‘왔어!’진아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곧게 펴고, 문이 열리자마자 숨을 삼켰다.성빈이 웃는 얼굴로 들어섰다.“진아야.”“성빈아.”진아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앉아 있어.”성빈은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뭘 일어나고 그래? 내가 네 환영까지 받아야 하나?”“응...”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손에 든 물잔을 괜히 빙빙 돌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직원이 다가와 물었다.“두 분, 주문 도와드릴까요?”“좋아요.”성빈이 메뉴판을 받으며 진아를 힐끗 쳐다봤다.“오늘은 네가 사는 거야?”“응!”진아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편하게 시켜. 전혀 신경 쓰지 말고.”“그럼 나 진짜 신경 안 쓴다?”성빈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진아, 이런 날이 흔치 않잖아. 오늘은 내가 제대로 먹어줘야지!”그러고는 정말 메뉴를 길게 읊기 시작했다.진아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좀... 많은 거 아니야?”‘둘이 저걸 다 먹을 수 있긴 한 건가?’“왜, 아까워?”성빈이 웃으며 진아를 바라봤다.“아니거든?”진아는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계속 시켜.”“어이구, 알겠습니다!”성빈이 주문을 끝내고,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진아는 점점 더 긴장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앉아 있는 얼굴엔 불안이 가득했다.“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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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거야.”‘좋아한다는 건 누가 알려줘서 깨닫는 게 아니잖아.’‘생각해 봐야 알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건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지.’“진아야.”성빈은 눈썹을 찌푸렸다. 살면서 이렇게 곤란한 순간은 처음이었다.“괜찮아.”진아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이미 예상은 했었어. 그래도... 내 마음은 꼭 한번 말하고 싶었어. 죽더라도, 확실하게 죽고 싶었거든. 후회는 남기지 않아야 하니까. 안 그래?”그때, 룸의 문이 열리고 직원이 들어왔다. 음식이 가득 실린 카트를 밀고 들어오며 말했다.“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네, 감사합니다.”진아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연스럽게 성빈에게 말했다.“얼른 먹자. 여기 음식 되게 비싸. 오늘은 내가 내는 날이니까 남기면 안 돼, 싹 다 먹어야 해!”“응...”그 식사는 성빈에게 고문과도 같았다.진아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론 태연한 척 웃고 떠들었지만...‘속은 이미 박살 났어...’‘말 한마디, 웃음 하나에 얼마나 힘을 쥐어짜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겠지...’진아는 지도교수 이야기, 동기들 이야기로 식사 내내 대화를 이어갔다.그렇게 어색하고도 묵직한 한 끼가 흘러갔다.진아는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진짜 배부르다. 너는?”“나도...”“그럼 나가자.”진아는 가방을 챙겨 들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시간이 꽤 됐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얼른 들어가자.”“진아야.”문 쪽으로 가던 진아의 손목이 성빈의 손에 붙잡혔다.“응?”놀란 눈으로 돌아보자, 성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그 얼굴을 보고 진아는 피식 웃었다.“왜? 걱정돼? 괜찮다니까. 나 그렇게 연약한 애 아니야. 알잖아. 한 번 마음 접으면, 깨끗하게 접는 성격이란 거. 우리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면 되지.”“진아야.”성빈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진아의 말을 끊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우리... 사귀자.”“뭐...?”‘지금...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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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다행히도, 성빈이 재빠르게 진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덕분에 진아는 넘어지지도, 엉뚱하게 상대의 품에 안기지도 않았다.“죄, 죄송해요.”진아는 급히 자세를 바로잡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그리고 상대를 바라본 순간... 멈칫했다.“어... 어라?”성빈도 동시에 멍하니 웃음을 터뜨렸다.“부 대표님, 오랜만입니다.”“성빈 도련님이었구나.”지하는 성빈이 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을 슬쩍 보더니,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오래간만이네요.”사실, 이 말은 진아를 향한 것이었다.‘이 사람...’진아는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3년 동안, 지하와 마주친 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그마저도 병원 복도나, 누군가의 모임 자리에서 멀찌감치 스쳐 지나간 정도.항상 진아는 조용히, 그림자처럼 구석에 서 있던 편이었다.“그럼, 다음에 시간 될 때 뵐게요.”“좋아요.”짧은 인사로 마무리되고, 성빈은 조용히 진아의 허리에서 손을 떼더니 이번엔 손을 꼭 잡았다.그 손을 쥔 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자.”“응.”진아는 순순히 손을 내맡기며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손... 따뜻해...그리고 이 따뜻함이... 낯설지가 않아.’그렇게 둘이 몇 걸음 가지도 않아, 진아의 핸드폰이 울렸다.“시연이다...”진아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시연아.”[와우...]전화기 너머, 시연의 목소리에 웃음이 가득했다.진아의 목소리 톤만으로도 모든 걸 알아챈 듯한 반응이었다.[됐구나, 드디어! 미인 사수 완료?]“응!”진아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이 기분... 숨길 수가 없어. 눈가도, 입꼬리도 다 나를 배신하네.’성빈은 학창 시절부터 외모가 눈에 띄었고, 워낙 이목구비가 곱상해서 ‘진미인’이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였다.[축하해, 진심으로.]시연의 따뜻한 축하가 마음에 닿았다.[이제야 안심된다. 그럼 방해 안 할게.]“응, 고마워, 시연아.”“누구랑 그렇게 수다 떠는 중이야?”성빈이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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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시연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네, 뭐... 지금은 괜찮아요.”[진짜요?! 다행이에요!]리슬은 신이 난 듯 말했다.[같이 쇼핑 가요! 시연 씨 어디예요? 내가 데리러 갈게요!]‘쇼핑...?’시연은 반사적으로 거절하려 했다.“아, 그건 좀...”[어? 시연 씨 보여요! 잠깐만요, 금방 갈게요!]전화가 끊기자마자, 붉은색 페라리가 시연 앞 도로에 부드럽게 멈췄다.창문이 내려가고, 리슬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여기요!”‘잡혔다... 도망갈 틈도 없었네.’시연은 어쩔 수 없이 다가갔다.“리슬 씨.”리슬은 차에서 내려 시연의 팔에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가요, 같이 쇼핑해요.”혹시 시연이 또 거절할까 봐,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저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G시에 친구도 별로 없고... 이렇게 시연 씨랑 인연 닿은 것도 신기하잖아요. 조금만 같이 있어 줘요, 응?”‘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면 내가 너무 각박한 사람 같잖아.’“근데... 저 쇼핑에 관해선 잘 몰라요.”시연은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사실 그건 솔직한 심정이었다.‘화려하게 꾸미는 거엔 별 관심 없고, 그냥 편하고 실용적인 게 제일 좋아.’“괜찮아요, 그냥 같이 있어 주기만 하면 돼요. 고르는 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게다가 시연 씨는 여기서 나고 자랐으니까, 전통적인 미적 감각은 나보다 훨씬 낫잖아요?”‘말 되네...’결국 시연은 리슬과 함께 움직였다.두 사람은 GP그룹에서 운영하는 고급 명품 쇼핑몰로 향했다.리슬은 시연의 팔을 끌고 자연스럽게 하이엔드 맞춤 의상 매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멤버십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매장 직원들은 단골손님들의 얼굴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리슬 씨, 오늘은 어떤 스타일 찾으세요?”직원이 친근하게 물었다. 시연은 낯선 얼굴이었기에, 정중하게 인사만 건넸다.“곧 파티가 있어서요. 드레스 하나 맞추려고요. 아마 댄스타임도 있을 거라서... 첫눈에 확 시선 끄는 스타일로 부탁해요.”“네, 준비해드릴게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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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죄송해요.”결국 시연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건이 리슬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지 선생이랑은 상관없어.”이어 유건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리슬 씨는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이런 감각이 부족하겠지만, 국내에선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굳이 불쾌한 말 안 하는 게 예의야.”“예의요...?”리슬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갸웃했다.“솔직하게 말 안 하고 돌려 말하는 게 예의예요? 뭘 그렇게 숨기고 돌리기만 해요? 이상해요.”‘그래, 너한텐 그게 이상하겠지.’시연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없이 웃었다.‘고유건도 올 줄 알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 왔을 텐데.’‘이거 완전 덫이었잖아...’이후, 유건이 직접 고른 드레스를 리슬이 입어보았고,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이거 정말 예쁘네요. 나 이거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유건 씨.”“아니야.”유건은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동행하는 파트너한테 맞는 옷을 준비해 주는 건 기본적인 매너니까.”옷을 고른 뒤, 리슬은 다시 유건의 팔에 팔짱을 꼈다.“배고픈데... 우리 밥 먹으러 가요.”유건은 잠깐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때, 리슬이 시연을 돌아보며 물었다.“시연 씨는요? 저녁 약속 있어요? 없으면 우리랑 같이 가요.”“아, 아니요! 괜찮아요.”시연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내저었다.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말했다.“약속 있어서요. 두 분 먼저 가세요.”“그렇구나...”리슬은 아쉽다는 듯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죠. 우리가 태워다줄까요?”“아니요, 괜찮아요. 금방 갈 거리예요. 바로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요.”“그럼, 잘 가요! 우리 먼저 갈게요!”리슬은 유건의 팔을 꼭 끼고 말했다.“유건 씨, 가요.”“응.”유건은 잠깐 시연을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간다.”“네... 안녕히 가세요.”시연은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두 사람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입술을 꾹 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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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그 웃음... 그만해.”유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투도 평소보다 까칠했다.“웃는 게 오히려 우는 것보다 더 보기 싫어.”시연은 당황했다.‘나도 웃고 싶어서 웃는 거 아니거든...’‘그리고, 이게 지금 웃는 얼굴로 보여?’‘힘드니까 입꼬리라도 올리지 않으면 진짜 쓰러질 것 같아서 그러는 건데.’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연을 보며, 유건은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왜 그래? 얼굴이 너무 안 좋아. 어디 아파?”“아... 아니, 그러니까... 아프긴 한데, 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또 저으며 애매하게 답했다.‘말하면 이상할까 봐 피했는데...’‘지금 이 분위기, 말 안 하면 안 되게 생겼네.’“공부는 많이 했는데, 해외 나갔다 오더니 이 나라 말을 하는 법은 까먹었나 봐?”유건의 짜증 섞인 말에 시연은 머쓱해졌다.‘결국 말하라는 거네...’“그게...”그녀는 입에 담기 민망했지만, 말 안 하면 유건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게 뻔했다. “여자들 매달 겪는 그거요. 조금 아픈 거고, 괜찮아요.”“아...”순간 유건의 표정이 굳었다.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그렇지... 이런 주제, 우리 사이엔 당연히 어색하지.’“그럼, 나 먼저 갈게.”“네, 조심히 가세요.”유건은 발걸음을 돌려 두 발짝 정도 나가다가, 다시 멈춰 섰다.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시연은 흑설탕에 생강까지 썰어 넣으며 물을 데우고 있었다.그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고, 이마며 관자놀이엔 땀이 맺혀 있었다.‘저렇게까지 아픈 건가... 여자들은 매달 저런 걸 버티는 거야?’유건은 시연이 처음 임신했을 때부터 곁에 있었기에,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다.그런데도, 이유를 모르게 입이 먼저 나갔다.“내가 해줄 거 있어?”“네?”시연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유건이 아직 안 나간 걸 몰랐던 듯, 눈이 동그래졌다.“아니요, 괜찮아요. 여자들 다 똑같아요. 좀 버티면 나아요. 이제 가세요.”‘가야지. 리슬 씨랑 저녁 약속도 있고, 파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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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하지만, 그런 거짓말은 아이에게조차 통하지 않았다.시연의 얼굴빛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엄마!!”조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흐아아아아아...!”작은 두 팔로 엄마를 끌어안았다.“엄마 아프지 마요! 아프지 마요!! 엄마 일어나요!!”하지만, 지금의 시연이 너무나 힘들었다.‘이 집에 어른은 나 하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근데... 진짜 이러다 무슨 일 나겠어.’“조... 조이야...”시연은 딸을 달래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 내뱉는 것도 힘겨웠다.몸을 웅크린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왜 이렇게 아프지...? 이번 달은 정말... 너무 심하다.’거의 의식을 잃을 듯한 순간, 거실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아저씨!!!”조이가 엉금엉금 일어나 현관 쪽으로 뛰어나갔다.“조이...!”시연은 조이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끝이 닿지 않았다.‘고유건일 리 없어. 그 사람은 지금 파티에 갔잖아.’그런데도 조이는 확신에 찬 듯 외쳤다.“아저씨!!”작은 발소리와 다급한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유건은 두 걸음 만에 조이 앞에 도착하더니, 허리를 굽혀 조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아저씨!!”조이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울먹이며 손가락으로 주방 쪽을 가리켰다.“엄마 아파요...! 엄마 쓰러졌어요!!”‘역시...’유건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파티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결국 핑계를 대고, 본능처럼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괜찮아, 울지 마. 아저씨가 왔잖아.”유건은 조이를 품에 안은 채 안으로 달려갔다.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연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이 정도였다고?’시연은 거의 의식을 잃은 듯, 얼굴이 하얗고 입술엔 핏기조차 없었다.“대표님...”유건이 다가가자, 시연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숨소리조차 가늘었다.“조이... 조이 좀 부탁드릴게요... 전...”시연은 팔을 뻗으려 했지만, 손끝이 허공만 맴돌았다.‘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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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그 정도로 심각한 건가...’유건의 얼굴이 눈에 띄게 하얘졌다.의사는 유건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남편분,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 주세요.”남녀가 함께 있고, 아이까지 데리고 왔다면 누가 봐도 가족이었다.“안 돼요!”유건이 막 서명하려는 순간, 시연이 숨을 헐떡이며 급히 가로막았다.“이분... 제 남편 아니에요. 제가 직접 사인할게요.”“네?”의사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아, 네. 환자분 의식 있으시니까 직접 하시면 됩니다.”간호사가 시연에게 펜을 건넸다.“여기 서명해 주세요.”“네.”시연은 손을 떨면서도 조심스럽게 사인했다.유건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이젠... 사인조차 할 자격이 없는 거구나.’시연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유건은 조이를 안고 복도에서 기다렸다.아무리 야무진 아이라도 겨우 세 살.잠시 후, 조이는 유건의 품에서 스르륵 잠들었다.“코르르...” 아이가 작은 입을 살짝 벌리고, 소리 내며 자는 모습에 유건은 피식 웃었다.재킷을 벗어 조이의 몸을 감싸며,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네 엄마는 그렇게 말라서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데, 넌 이렇게 오동통하냐? 진짜, 귀엽긴...”다행히 수술은 금방 끝났고, 시연은 회복실로 옮겨졌다.유건은 미리 병실을 알아보고, 조용한 1인실을 선택했다.시연은 눈을 뜨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굳이 1인실까지는 안 써도 돼요. 이런 병실 비싸잖아요.”‘지금 병원비 생각할 상황 아닌데... 그래도 시연이는 항상 현실적이야.’유건은 감정 없이 말했다.“업무 중에 아팠던 거잖아. 산재 처리하면 돼. 내가 처리할 거야.”“업무 중...?”시연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건 좀... 말도 안 되는 억지 아닌가요?”“왜 안 된다는 건데?”유건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지금 너, 내 주치의 맞잖아?”“그건 맞지만...”“진짜 말 많네.”유건은 피곤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그냥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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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시연의 얼굴에는 거짓이란 게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유건은 그걸 한눈에 알아차렸다.시연은 진심이었다.그녀는 유건에게, 다른 여자의 곁으로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말에는 미련도, 질투도 없었다.오히려 미안함만 가득했다.‘정말 아무 감정도 없는 거구나.’3년... 감정을 잊기엔 충분한 시간.게다가 유건이 보기엔, 시연은 애초에 자기에게 깊이 빠졌던 적도 없었다.하지만 유건은 가지 않았고, 조이를 안고 그대로 옆 소파에 앉았다.시연은 당황했다.‘왜 안 가는 거지?’유건은 시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너 때문이 아니야. 지금 내가 가면... 조이가 가만있을 것 같아?”조이는 이미 유건의 품을 자기 집처럼 여겼다. 품만 바뀌어도 우는 걸 보면, 이제 완전히 ‘아저씨 중독’이었다.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그래서, 더더욱 말 못 해. 조이한테 아빠란 사실을 알리면...’‘이 사람의 새출발에... 분명 부담만 될 테니까.’“미안해요.”진심을 담아, 시연이 조용히 말했다.“그리고... 고마워요. 오늘 괜히... 번거롭게 했어요.”“응.”유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되, 감정은 덧붙이지 않았다.“네 일은 네가 판단해. 지금은 몸 회복하는 게 우선이고, 딸을 잘 키우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제일 큰 도움이야.”‘고용주가... 이렇게 애까지 봐주는 게, 말이 돼?’‘전국 최우수 고용주상 줘야겠다, 진짜.’“네...”시연은 더 미안해졌고, 더 조용해졌다....밤이 깊었다.시연은 먼저 잠들었고, 유건은 조이를 안은 채 조용히 그녀 옆에 누웠다.방 안의 은은한 조명이 아늑하게 퍼지는 가운데, 유건은 눈을 감기 전 시연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조용히, 시연의 이마로 흐르는 잔머리를 손끝으로 쓸어 넘겼다.“그렇게 도망치듯 나간 이유가, 결국... 너 자신을 망가뜨리기 위해서였냐? 몸도 못 챙기고, 나한텐 맡기지도 않고...”품 안에 있던 조이가 뒤척이며 유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바로 그때, 시연도 같은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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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소혜순 여사가 리슬의 팔을 붙잡았다. 딸의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딱 봐도 질투 폭발이네. 하긴, 애가 좋아하는 티를 저렇게 냈는데...’“겨우 연예인 하나 가지고, 그렇게 열을 내는 거야?”“엄마!”리슬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속삭이듯 외쳤다.“저 여자가 유건 씨한테 붙은 여자라니까요! 딱 봐도... 유건 씨가 관리해 주는 애잖아요!”소혜순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네 말대로면 그냥 ‘관리’ 대상일 뿐이네? 삼십 넘은 이혼남한테 여자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건강한 남자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넌 외국까지 나가서 공부한 애가 그런 것도 못 받아들여?”‘그러니까, 이런 문제로 무너지면 안 돼.’“그게 아니라...”리슬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질투 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그럼 더 세게 나가야지.”소혜순은 매서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배경, 학벌까지 다 갖춘 네가 겨우 이제야 뜨는 연예인 하나 못 이길 것 같아?” 그러곤 말투를 조금 부드럽게 바꿔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저런 애들은 절대 고씨 가문에 못 들어가. 고 대표, 예전에도 좀 특별히 챙기던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없이 끝났잖니.”“그렇긴 하죠.”리슬은 그제야 생각이 정리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유건 씨가 진짜 감정이 있었으면, 벌써 무슨 일이 생겼겠지.’“엄마, 나 유건 씨한테 가볼게요.”“그래, 다녀와.”...리슬은 곧장 유건 쪽으로 다가가, 정은희의 반대편 팔에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아까 내가 불렀는데, 왜 대답 안 했어요?”유건은 조금 당황한 듯 리슬을 쳐다봤다.그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정신이 없어서 못 들었어.”“괜찮아요! 나 안 섭섭해요.”리슬은 특유의 밝고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이제야 정은희를 알아본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어머,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이네요?”정은희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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