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Bab 881 - Bab 890

912 Bab

제881화

“말 참 많네.”유건은 시큰둥하게 말했다.“밥 먹는데, 말까지 해야 해?”“어...”리슬은 툭, 기분이 상한 듯 입술을 내밀었다.‘진짜, 사람 민망하게...’“자.”유건이 오향훈제어 한 점을 집어 조용히 리슬의 그릇에 올려놓았다.“얼른 먹어.”리슬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알겠어요!”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식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건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짧게 말했다.“네, 그렇게 하시죠. 아, 그럼 날짜 다시 조율하죠. 괜찮습니다.”대화 톤과 말투를 보면 일 관련된 전화인 건 분명했다.시연은 잘 몰랐지만, 리슬은 단박에 감을 잡았다.“혹시... 아까 말한 미팅 취소된 거예요?”“응.”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상대 회사 대표가 갑자기 일이 생겼대.”“와! 잘됐네요!”리슬은 두 손을 모으더니 환하게 웃었다.“그럼 오늘 저녁은 온전히 내 거예요! 약속했잖아요. 도망가면 안 돼요!”유건은 별말 없이 잠시 맞은편 두 사람 쪽을 슬쩍 보았다.“그래서, 뭐 할 건데?”“벌써 생각해 뒀죠!”리슬은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같이 영화 봐요! 우리, 안 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 영화 한 번도 안 봤잖아요.”‘예전엔 그냥 친구였고, 지금은... 뭔가, 애매하게... 연애 직전?’‘그럼 영화 정도는, 해 봐야지. 다들 하는 거잖아...’시연은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유건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눈썹을 들었다.“재미없어.”“아... 좀 같이 가자고요!”리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다가 옆에 있는 시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시연 씨, 같이 가요! 우리 딱 두 커플이잖아요? 영화관 딱 좋아요, 네 명이 가면!”시연은 순간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아니요, 저흰 괜찮아요. 두 분이 다녀오세요.”‘나까지 끼면, 진짜 어색하잖아. 뭘 자꾸 ‘커플’이라고 몰아가는 건데...’리슬은 이번엔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경에게 돌렸다.“한이경 씨, 두 분 오늘 저녁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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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확신이 들지 않아 시연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내 오른쪽? 도리슬이 아니고, 고유건?’‘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여자들끼리 나란히 앉지 않나?’‘왜 하필 내 옆에 앉은 거지...?’시연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연달아 떠올랐다.‘뭐야, 그냥 자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 아니면... 일부러?’“왜?”유건이 시연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시연은 깜짝 놀라듯 눈을 깜빡이며 얼른 시선을 돌렸다.“아, 아니요... 아무것도요.”‘진짜 뭐야, 내가 예민한 건가... 그냥 가까운 자리에 앉은 것뿐일지도 몰라.’머릿속을 정리할 틈도 없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요즘 흥행 중인 사극 블록버스터.생각보다 몰입감이 좋아서, 시연도 어느새 집중해 보기 시작했다.극이 한창 고조되는 장면.시연은 한 손으로 콜라 컵을 들고, 영화관 좌석 팔걸이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손을 떼려는 순간.‘잡혔다?’시연은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자기 손을 누군가 단단히 잡고 있었다.유건이었다.‘이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놀라서 유건을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스크린만 응시하고 있었다.극장 조명의 희미한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다.‘장난해? 도리슬이 바로 옆에 있는데?’시연은 얼른 손을 빼려고 했지만, 유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남자의 손가락이 시연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뭐야, 왜... 손가락까지... 엇갈려 잡는 건데...?’열이 오른 건 얼굴뿐이 아니었다.시연의 온몸이 굳었다.‘고유건,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네 여자 친구 옆에 앉아 있잖아. 이런 짓이 부끄럽지도 않아?’유건의 손을 뿌리칠 수 없자, 시연은 참다못해 벌떡 일어났다.“왜 서 있어요? 하나도 안 보여요!”“공공장소에서 기본 예의 좀 지킵시다!”관객들의 짜증 섞인 항의가 터져 나왔다.순간 시선이 몰리며 시연의 등 뒤가 뜨거워졌다.리슬과 이경도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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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돌아올 거면... 조용히 노은범 옆에 붙어 살지 그랬어?”유건의 목소리는 낮고, 감정 눌러 담긴 듯했다.‘그래, 그 정도는 받아들이려고 했어.’‘그게 너의 선택이라면, 그냥 그걸로 끝내려고...’“그런데 감히, 선을 봐?”씁쓸한 웃음이 유건의 입가를 스쳤다.차가운 기운이 담긴 눈빛으로 시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평생 노은범이 아닌 다른 남자는 못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유건의 손끝이 시연의 입술을 가볍게 스쳤다.‘차가워... 그런데 손끝은 왜 이렇게 익숙해...’“그... 그런 거 아니에요.”“아니긴 뭐가 아니야.”시연이 뭐라도 설명하려 하자, 유건은 단칼에 말을 잘랐다.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에는 냉소조차 허락하지 않는 분노가 스며 있었다.“내 두 눈으로 다 봤는데? 한이경이랑 웃고, 밥 먹고, 영화 보고... 그게 ‘아닌’ 거야?”‘어떻게 말해야 믿을까... 이 사람 앞에선, 어떤 말도 안 통할 것 같은데...’“남자가 필요해?”유건이 갑자기 시연의 허리를 움켜쥐고, 그녀를 번쩍 안아 벽에 눌러 붙였다.“노은범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거면, 왜 난 안 되는 건데?”‘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시연의 눈동자에 비친 유건의 얼굴은 어딘가 일그러져 있었다.광기와 분노, 소유욕이 뒤엉켜 있었다.“3년 전, 넌 날 버렸어. 그 결정을 했으면, 적어도 그 대가 정도는 감당할 줄 알아야지.”“노은범은... 그래, 그 사람은 목숨 걸고 널 지킨 사람이니까, 내가 졌다고 인정할 수 있어.”“하지만...”유건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나보다 늦게 나타난 남자들?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그딴 사람들이 널 손에 넣는 건, 절대 못 봐.”‘말도 안 돼... 이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3년 전에 너한테 속고, 버림받은 거. 원래는 그냥 넘기려고 했어. 하지만, 지시연...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왜 또 내가 잘못한 사람이 돼?’“다른 남자 찾지 마.”유건은 시연의 뒷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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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당신 주변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굳이 나 하나 없어도 되잖아요. 지금 있는 사람이 질리면, 손만 까딱 해도... 새로운 사람 줄 설 텐데요.”“지시연.”유건이 이를 악물며 시연의 말을 끊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이 여자 눈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던 거야?’‘그래, 3년 전, 시연이가 나를 떠난 것도 바로 그런 시선 때문이었잖아.’‘설명?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어?’‘그땐 그렇게도 마음을 다해 말했는데...’‘결국, 날 안 믿었잖아.’유건은 더 이상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대신, 가벼운 웃음기를 입가에 띄우고 말했다.“어쩌겠어. 날 버린 여자는, 세상에 너 하나뿐이니까. 그 수치심... 너만 갚을 수 있지.”그러고는 시연의 얼굴을 거칠게 잡아 입을 맞췄다.“으읏...!”시연은 고개를 젓고 피하려 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그 입맞춤엔 애정도, 따뜻함도 없었다. 그저 분노와 상처만이 날카롭게 묻어 있었다.‘이건... 사랑이 아니야. 이건... 복수야.’시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몸은 떨리고, 심장은 죄책감과 공포로 조여왔다.“싫어요... 그만해요...”뜨거운 눈물이 유건의 손등 위로 떨어진 순간, 유건은 멈췄다.‘이 정도로 거부한다고...?’품에 안긴 시연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유건의 눈빛이 서서히 식었다. 손을 풀고, 시연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놨다.그러고는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만지며 무표정하게 말했다.“겁내지 마. 억지로는 안 할 거야. 나, 그럴 정도로 비열하진 않아.”“하지만 그렇다고 널 포기한 건 아니야.”유건은 시선을 내리지 않고 말끝을 바꿨다.“시간 줄게. 생각 정리되면... 네 발로 나한테 와.”그러고는 말없이 문을 열고, 그 자리를 나섰다.텅 빈 공간에 남겨진 시연은 숨을 억지로 고르며 벽에 기대섰다.다리가 풀려 서 있기도 버거웠다.‘나더러, 직접 찾아오라고?’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하지만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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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또 그 말.‘또다시 내 여자가 되라고?’‘고유건의 여자?’‘G시에서 내 뒷배가 되어주겠다고?’시연은 참다못해 폭발했다.“여기에선 충분히 통한다고요? 고 대표님 여자들, 수없이 많잖아요. 그 여자들 알면 날 가만둘 것 같아요? 전부 달려와서 저를 찢어버릴걸요?”“푸흣.”유건은 웃음을 터뜨렸다.시연은 그 웃음이 더 기가 막혔다.“웃겨요?”“미안.”유건은 겨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건 말이야... 네가 진짜 내 여자가 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너무 앞서 나간 걱정 아냐?”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진짜... 3년 전에 비해서 더 뻔뻔해졌어. 더 불쾌하게.’유건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자연스럽게 시연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걱정하지 마. 네가 내 사람이 되면, 너를 제일 아껴줄게. 누구도 못 건드리게.”“하.”시연은 냉소를 터뜨리며 남자의 손을 내쳤다.“그래서 내가 뭐, 고맙다고 해야 해요?”유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거절이네? 좋아, 강요는 안 해. 난 억지로 할 생각 없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스스로 원해서 오는 거야.”그렇게 말한 유건은 더는 미련도 없이 등을 돌리고 나가버렸다....SKY 전원주택단지를 나온 시연은 곧장 진아를 찾아갔다.“그 인간은 말이지...”진아는 시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머릿속에 여자 말고는 다른 게 없는 거야? 오대민도 그렇고, 고유건도 그렇고 정말 진절머리 나...”‘진아 말이 틀린 게 아니야... 한 명은 뒤에서 노리고, 한 명은 대놓고 흔들고...’“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아의 물음에 시연은 고개를 떨군 채 작게 중얼거렸다.“모르겠어... 솔직히 지금은 진짜 사방이 막힌 느낌이야.”‘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 무슨 수가 있을까...’진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꺼냈다.“만약 그 신분 심사 통과 못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돼?”그건... 시연이 가장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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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시연의 가슴 한켠이 서늘하게 떨렸다.‘이번엔... 진짜 쉽지 않겠어.’경찰차가 청사 정문을 통과하자, 밖에서 지켜보던 박경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됐다. 출발해.”운전기사는 조용히 시동을 걸었고, 문이 닫히며 시연의 시야에서 검은 BMW가 빠르게 멀어졌다.‘끝까지... 보여주고 가는 거네.’시연은 속이 무겁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이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야. 진짜로 날... 끌어내리려는 거야.’조사실.시연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형광등 불빛 아래, 한기가 도는 철제 탁자.그리고 맞은편, 인상을 구긴 수사관.“지시연 씨.”말이 없어지자, 수사관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말 안 하면 끝나는 줄 알아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어요?”‘알고 있어요. 너무 잘 알고 있어요.’하지만 지금 시연이 아무리 입을 열어봤자 증거 없는 말은 바람일 뿐이었다.시간만 끌리고, 불리한 인상만 줄 게 뻔했다.‘말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문제는... 내가 ‘이 상황을 버틸 수 있느냐’하는 거지.’그리고 그 마음 깊은 곳에 들려오는 이름 하나.‘고유건. 지금... 내가 그 사람한테 손을 내밀어야 할까?’자존심이 발목을 잡았다.‘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여기까지 버텼는데... 결국 또... 그 사람한테 가야 해?’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에게 두 번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지시연 씨? 말하고 있잖아요, 안 들려요?”“여기, 경찰서예요. 멍때리는 곳이 아니라고요.”그때, 시연이 고개를 들었다.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음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경찰관님.”“네?”“면회를 요청하고 싶어요. 한 사람만...”“누구죠?”시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작게 뱉었다.“고, 유, 건. 그 사람 좀 불러주세요.”그 후, 정확히 42분이 흘렀다.‘어서 와줬으면 좋겠어. 지금만큼은, 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하지만... 제발, 오지 마. 지금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두 감정이 시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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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응?”유건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벌써 후회하는 건가?’시연은 조용히 중얼거렸다.“냄새나요...”“아...”유건은 금세 눈치를 챘고, 입가에 얄미운 웃음이 번졌다.“질투야?”‘질투? 말도 안 돼.’‘그냥... 냄새가 거슬릴 뿐이야. 정말이거든.’시연은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유건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안 입으면 되지.”그는 겉옷을 벗어 툭, 옆으로 던져버렸다.그리고는 시연의 허리를 휘감아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럼 내가 안아줄게. 밖은 좀 쌀쌀하잖아, 내 품이 더 따뜻해.”‘어디가 그렇게 춥다고...’시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그런데도 자꾸만 자신을 감싸오는 유건의 팔이 불편했다.“움직이지 마.”유건은 살짝 언짢은 듯 품을 더 단단히 조였다.“이렇게 안기는 것도 싫어? 설마 경찰서 문 나서기도 전에 벌써 후회하는 건 아니지?”“아니에요!”시연은 놀라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이 사람 기분 상하게 하면 안 돼.’‘지금은... 나한테 이 사람뿐이니까.’시연이 더 이상 거부하지 않자, 유건은 만족한 듯 부드럽게 말했다.“봐, 이렇게 있는 게 훨씬 낫잖아.”그렇게 두 사람은 경찰서 정문을 나섰다.찰칵!예상치 못한 플래시가 시연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읏...”시연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왜 그래?”유건이 재빠르게 손을 들어 시연의 눈을 가렸다.“눈, 번쩍였어? 괜찮아? 안 보이거나 그러진 않아?”유건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그도 그럴 것이 시연은 한때 시력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시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아요. 조금 눈부신 거뿐이에요.”하지만 곧 시연은 유건의 품을 밀어내며 다급히 말했다.“가까이 있지 마요. 기자들, 방금 우리 사진 찍었어요! 지금 당장 스태프한테 연락해서 막아야...”“뭐가 그렇게 급해?”유건은 도망치려는 시연을 오히려 더 세게 끌어안았다.시연은 순간 얼어붙었다.유건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찍게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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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설마... 밖에 사람들 있을 땐 ‘고 대표님’이라 부르고,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땐... 더 다정하게 부르라는 거야?’‘‘자기’... 그런 거?’그런 말, 결혼했을 때도 몇 번이나 해봤는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시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유건 씨.”유건은 그 말에 순간 눈을 깜빡였다.‘아직도 그 호칭이 이렇게 어색한데... 왠지,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네.’“들어와.”목소리가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유건은 시연이 들고 있던 쟁반을 받아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문 닫아.”“네...”시연이 문을 닫자, 유건은 쟁반을 테이블에 놓고 말없이 약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그러더니 입을 벌리며 말했다.“아...”‘뭘, 또?’시연은 반 박자 늦게 깨달았다.‘설마... 사탕 달라는 거야?’사탕을 조심스레 집어 남자의 입에 넣어주자, 유건은 익숙하다는 듯 받아먹고 곧바로 찡그렸다.“으, 너무 달아. 질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벌렁 누웠다.“빨리 침 놔줘.”“네.”시연은 침술 가방을 열고 익숙한 손길로 준비를 시작했다.침을 놓으려던 순간이었다.“오늘은 침을 오래 놓아줘야 해요.”“얼마나?”유건이 눈을 들어 물었다.“40분 정도요.”유건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오늘 밤 뭐가 있을지 알면서... 시간을 늘리겠다고?’“네?”시연은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가, 곧 유건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얼굴이 확 빨개졌다.‘아니... 그런 의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들릴 수도 있나...’“그런 거 절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요...”유건은 웃었고 손을 휘적이며 말했다.“알았어, 알았어.”그러고는 침대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시간 좀 걸리니까, 너도 씻고 와. 욕실에 수건이랑 옷 준비해 뒀어.”시연의 온몸이 굳었다.‘여기서 씻으라고?’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는 시연을 보며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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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유건의 시선은 너무도 뜨거웠다.그 시선에 시연은 점점 숨이 막혀왔다.‘이건 너무 부담스러워.’“이거, 갈아입어도 될까요?”“왜? 마음에 안들어?”유건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시연은 고개를 숙였다.그를 부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부자연스러웠다.“그냥... 지금 이 시간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한밤중에, 이런 드레스를 입는다는 게... 어쩌면 나 혼자만 민망한 걸까.’유건은 짧게 웃으며, 갑자기 일어나 시연의 허리를 휘감아 그녀를 천천히 침대 위로 돌려 눕혔다.“꺅...”시연은 당황해 몸을 굳혔다. 아직 아무 말도 못 한 상태였는데, 유건의 손이 어깨 위에 닿고, 또 다른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힘을 주지 않아도 그 손길은 강하게 그녀를 붙잡은 듯했다.“유건 씨?”“응.”대답은 했지만, 남자의 시선은 시연의 눈을 보지 않았다.그 순간, 시연은 등에 닿는 따뜻한 입맞춤을 느꼈다.‘안 돼. 이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시연은 눈을 감았다. 그저 이 상황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며 손에 힘을 꽉 줘 시트를 움켜쥐었다.“이 드레스 샀을 때 말이야...”유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낮게 흘렀다.“널 상상했어. 이 옷 입고 있는 너를.”“그 순간부터 생각했지. 직접... 이 옷을 벗겨보고 싶다고.”‘그만...’그리고 드레스 위쪽에서 실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시연의 눈이 번쩍 커졌다.“유건 씨...!”유건은 멈추지 않았다. 입술로 시연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리고 마침내 그는 시연의 입술을 포개었다.시연은 몸을 살짝 떨었다.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숨이 어긋났다.점점 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유건도 그걸 느끼자, 움직을 멈췄다.“왜 그래?”유건은 시연의 턱을 감싸고 눈을 맞추려 했다.“내가... 너한테 키스하는 게 싫은 거야?”시연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그건 아니에요. 그냥...”‘그냥,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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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고마워요.”시연은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잠시 후, 유건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깊고 단단하게.‘답답해...’시연은 몸을 살짝 움직이며 빠져나오려 했다.그러자 유건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내려앉았다.“움직이지 마.”참고 참은 듯한 그의 한 마디.“지금 더 움직이면, 내가 내일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시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 말 한마디에, 몸이 딱 멈춰버렸다.유건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시연의 짧은 머리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자자, 눈 감고.”‘이 상황에 어떻게 자라는 거야... 이렇게 긴장된 채로 무슨 잠이 와...’하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던 탓일까... 시연은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아침.시연이 눈을 떴을 때, 옆이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유건이 나왔다.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시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일어났어?”유건은 침대 끝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네 짐 좀 챙겨. 이 방으로 다 옮기게.”“네?”시연은 순간 멍해졌다. 남아 있던 졸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여기서 지내야 해요?”“응.”유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더니 시연의 표정을 살피며 짧게 웃었다.“놀랐어? 넌 이제 내 여자야. 같이 자는 건 당연한 거 아냐?”‘이 사람, 또 제멋대로야.’시연은 입을 열었다.“굳이 여기 안 와도 돼요. 필요하면 제가 올라오면 되잖아요.”“허.”유건은 짧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내가 널 필요로 하는 시간이 언제인지, 너보단 내가 더 잘 알지 않겠어?” ‘무슨 말이야...?’시연은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유건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했다.“다르게 말해줘? 내가 널 원할 때, 네가 바로 내 옆에 있었으면 해. 안아주고 싶을 때, 키스하고 싶을 때, 바로 닿는 거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시연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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