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091 - Chapter 1100

1101 Chapters

제1091화

“근데 아빠, 어젯밤에... 진짜 아팠던 거 맞아?”...성유리는 자기가 어떻게 잠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분명히 마음은 아주 무거운 상태였는데.어쩌면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온몸이 풀려 잠에 들었을지도 모른다.푹 잔 탓에 몸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여전히 뻐근하고 뭉친 느낌이 선명했다.그러다 갑작스럽게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자 성유리는 바로 눈을 떴고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눈앞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지만 성유리는 상황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귀에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환호성이 들려와 즉시 고개를 돌려봤지만 박한빈과 하늘이는 이미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두 사람이 아마 먼저 들어간 것으로 추정한 성유리는 그들을 찾을 생각을 접고 그대로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그리고 또다시 꾸벅꾸벅 졸려오기 시작할 때쯤, 누군가 옆자리에 앉았다. 주변은 다들 관광객들이라 누가 옆에 앉았든 이상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성유리가 자리를 조금 옮기려 하며 거리를 두려던 순간, 그 사람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임태경 씨?”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이름을 내뱉었다.남자는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놀란 듯 몸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어... 유리 누나?”이내 그도 곧 성유리를 알아보며 말했고 그녀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태경 씨도 놀러 왔어요?”“네. 뭐 그냥...”임태경은 어딘가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고 성유리의 인사에도 불편해하는 눈치였다.“그게... 저 먼저 가볼게요. 볼 일이 있어서.”그는 빠르게 말을 덧붙이더니 성유리의 대답을 기다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그 뒷모습에는 왠지 모르게 당황하고 쫓기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성유리는 굳은 얼굴로 임태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성유리.”고개를 돌리자 박한빈이 하늘이를 데리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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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2화

성유리는 말하면서 줄곧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왜 고개를 들지 못하는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박한빈의 차가운 눈빛이 보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그가 더 화낼까 봐 두려운 걸까?성유리는 잘 몰랐지만 지금 어쨌든 박한빈을 보고 싶지 않았다.“넌 지금 뭐에 화난 거야?”박한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다.이내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화난 사람은... 한빈 씨잖아요?”“맞아. 그럼 넌 내가 왜 화났는지 알아?”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을 받아 그대로 이어갔다.너무도 단호하고 빠른 반응에 성유리는 자신이 무슨 함정에라도 빠진 건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 박한빈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제가 한빈 씨를 의심해서 화난 거잖아요? 근데 제가 말했잖아요. 그냥... 짐작일 뿐이라고.”성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이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힘이 세지는 않았지만 그 동작은 너무도 단호하고 빨랐다.예전처럼 마치 성유리를 뼛속 깊이 끌어안으려는 듯한 격한 감정은 아니었고 지금의 그는 오히려 부드럽기까지 했다.그게 오히려 성유리에게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져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잘 들어.”얼마 후, 박한빈은 낮은 목소리로 성유리의 귓가에 속삭였다.“나는 절대 너를 배신하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날 의심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어.”“박한빈은 절대 성유리를 배신하지 않아.”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마치 맹세처럼 무게감이 있었다.터지는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한 그의 말은 어쩐지 더 로맨틱하고 찬란하게 들렸다.온종일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걸까, 성유리의 눈가가 갑자기 붉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조용히 박한빈의 어깨에 기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사실 그때... 많이 무서웠어요.”“뭐가 무서웠는데?”“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거라면... 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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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3화

박한빈이 하늘이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럼 이제 돌아가서 케이크 먹을까?”“응!”하늘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때쯤 불꽃놀이는 거의 끝나 있었고 놀이공원 전체엔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날씨도 아주 좋아서 맑은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다.박한빈은 놀이공원 내의 테마 호텔에 방을 잡아두었고 성유리는 하늘이와 함께 케이크를 먹으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호텔 방 침대 위였다.하늘이는 성유리 옆에서 조용히 잠에 들어 있었고 그녀의 한쪽 팔을 살짝 껴안고 있었다.그리고 반대쪽엔 마찬가지로 성유리를 품에 안고 있는 박한빈이 있었다.2미터가 넘는 큰 침대였지만 두 사람 모두 성유리 쪽으로 바짝 붙어 자고 있어서 성유리는 마치 자신이 샌드위치 속 재료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물론, 하늘이에게는 전혀 뭐라 할 수 없었다.그래서 박한빈을 손으로 툭툭 치자 그는 금방 잠에서 깨어났는데 눈에 약간의 멍한 기운을 띤 채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조금만 옆으로 가 줄래요?”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응.”박한빈은 바로 대답하곤 몸을 반대쪽으로 옮기는 척하면서 성유리를 슬쩍 끌어당겼다.원래는 항의하려던 성유리였지만 이쪽이 오히려 더 공간이 넓은 편이라 굳이 뭐라 하지는 않았다.그렇게 한번 잠에서 깨고 나니 그녀는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며 방을 살펴봤다.이 방은 하늘이를 위해 예약한 곳으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주 느낌이 가득한 인테리어였다.대부분은 괜찮았지만 박한빈이 분홍 레이스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성유리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그녀의 웃음소리에 박한빈은 바로 눈을 뜨더니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왜 웃어?”성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주무세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어디 가?”그러자 박한빈이 또 물었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성유리의 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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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4화

“난 이쪽으로 갈게.”“응, 좋아. 그럼 난 여기로 갈게.”“아빠, 이거 안 가질 거야?”“응. 너 가져.”하늘이는 신이 나서 깔깔 웃으며 말을 옮겨 박한빈의 졸을 차지해 버렸다.하지만 순간, 박한빈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장군.”하늘이는 조용해졌고 찡그린 얼굴로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계속할 거야?”박한빈이 묻자 하늘이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할래! 근데 아빠, 이번엔 두 개만 먼저 빼줘. 그렇게 해줄 거지?”“그래.”박한빈은 흔쾌히 허락했다.아빠와 딸은 한창 장기를 두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성유리가 깨어난 걸 눈치채지 못했다.그녀가 조용히 한마디를 던지기 전까지는.“일은 안 해도 돼요?”성유리의 목소리를 들은 하늘이는 곧장 달려와 그녀를 꼭 껴안았다.“엄마, 일어났어?”성유리는 요즘 하늘이가 점점 더 애교도 많아지고 더 잘 안긴다는 걸 느꼈다.그런데 그런 변화가 오히려 참 기분 좋았다.‘사랑받고 있으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기대는 거겠지.’“응. 일어났어.”성유리는 하늘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며 물었다.“오래 기다렸어?”“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아빠랑 장기 두고 있었어!”하늘이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엄마 장기 둘 줄 알아? 나 좀 도와줘. 아빠 이기게 해줘!”“엄마는 장기 잘 못 두는데...”“그럼 아빠가 도와줘!”하늘이는 재빨리 전략을 바꿨다.“나랑 아빠가 한 편을 하고 엄마 혼자 하면 되겠다!”아이의 말에 성유리는 박한빈을 바라보았고 그는 그 뜻을 금세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잠깐 일에 관한 통화 좀 하고 올게. 너희 둘이 먼저 둬.”하늘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슬리퍼를 벗고 소파 위에 올라가 앉았다.성유리는 하늘이 맞은편에 앉아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박한빈은 그런 두 사람을 한참 바라보다가 슬며시 웃었다.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발코니로 걸어 나갔다.“어떻게 됐습니까?”“박 대표님, 상황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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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5화

박한빈이 이 모든 일을 뒤에서 꾸몄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종연은 곧장 방해준 쪽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이건 명백한 경고였다.마침 방해준이 도한시에서 벌어진 상황을 말해주자 종연의 분노는 폭발해 버렸다.“그 년은 대체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요? 모두가 다 자기를 좋아해줘야 되는 천사라도 된 줄 아냐고요! 거울 한번 보라 그래요. 다른 집 부인들보다 잘난 게 있긴 해요? 자기가 무슨 대단한 물건이라고 착각하나 본데 정말 어이가 없네요!”“이제 일도 이렇게 커졌으니 당신이 어떻게 수습하는지 한번 보자고요! 제가 이번 일에 끼어들게 되면... 방해준 씨, 당신이 그동안 해온 짓거리들 전부 까발릴 거예요! 그땐 아무도 무사하지 못할걸요?”전화를 끊자 방해준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강지연은 그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바로 이 순간에야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벌였는지 처음으로 실감했다.사실 자신은 성공할 줄 알았지만 향의 효과가 그렇게 강할 줄 몰랐다.박한빈이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잡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그저 그와 같은 침대에 누워만 있었더라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게 자기 손안에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만약 그렇게 된다면 박한빈도 분명 자기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착각했다.자신은 박한빈의 아내처럼 하루 종일 상아탑 속에 숨어 있지 않을 테니까.다른 재벌가 부인들처럼 그를 위해 사업에도 뛰어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기만 있으면 박한빈과 방해준의 관계도 더 끈끈해질 수 있다고 여겼다.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돈과 권력 아닌가?박한빈이 자기 몸 위에 올라오기만 했다면 그 두 가지는 모두 자기 손에 들어왔을 것이다.그리고 그 후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가졌을 테지만 박한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날, 강지연을 밀쳐내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발로 걷어찼을 때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이 모든 계획이 통제가 안 되는 미친 말처럼 날뛰기 시작했다는걸.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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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6화

강지연은 감히 반항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빨개진 뺨을 감싼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심지어 눈물조차 흘릴 용기가 없었다.방해준은 그런 그녀를 한 번 더 발로 걷어차고는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방해준은 바로 웃으며 말했다.“박 대표님, 사실 이건 다 오해입니다.”“이렇게 하시죠. 오늘 저녁 식사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이 친구도 직접 찾아가서 사과드리게 하겠습니다.”“필요 없습니다.”박한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저는 그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 말, 이해하시겠습니까?”박한빈은 여전히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그 말의 의미는 분명하고 단호했다.그러니 방해준도 곧바로 뜻을 알아차렸다.“알겠습니다. 염려 마세요.”“식사는 괜찮습니다. 오늘 밤 바로 아내와 함께 돌아갈 준비 중입니다. 금성에 돌아가면 그때 다시 뵙죠.”“좋습니다. 좋습니다!”방해준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지연을 바라보았다.여전히 뺨을 감싼 채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녀.하지만 강지연은 모른다.남자의 기분이 좋을 땐 이런 모습이 눈물에 젖은 꽃처럼 애처로워 보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기분이 나쁠 땐 그건 그저 혐오스럽고 가식적일 뿐이다.“아직도 뭐 하고 있어? 안 나가?”방해준의 말은 냉혹했다.너무도 달라진 그의 태도에 강지연은 멍하니 방해준을 바라보았다.“저... 전 어디로 가요?”그녀의 말에 방해준은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가고 싶은 데로 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방해준의 대답에 강지연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잠시 멈춘 후에야 그 말의 진짜 뜻을 이해한 듯했다.그리고는 곧장 몸을 일으켜 방해준을 껴안았다.“제발... 저 버리지 마세요. 이젠 정말 대표님밖에 없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있어요.”“제가 박한빈 씨한테 사과할게요. 무릎이라도 꿇을게요. 제가 뭘 하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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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7화

하지만 강지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손을 뻗어 성유리의 팔을 붙잡았다.“저... 저 오늘 사과하러 온 거예요. 원래는 박 대표님을 뵈러 가려 했는데 회사 사람들이 절대 안 들여보내 줘서...”“정말 잘못했어요. 박 대표님께 사과드릴 테니 그분이... 아니, 그냥 저를 딱 한 번만 만나게 해주시면 안 돼요? 제발 한 번만... 살 길을 열어주세요.”강지연의 눈물은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얼마나 애처롭고 불쌍해 보이는지 모를 정도였다.그렇지만 성유리는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강지연은 말을 이어갔다.“하늘이 엄마는 너무 착한 사람인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이런 일로 절 미워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렇죠? 제발 불쌍하게 여겨주세요. 저 진짜... 다른 방법이 없어요.”말하던 강지연은 성유리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그녀는 성유리의 눈을 꼭 바라보며 마치 그녀를 마지막 희망인 양 매달리고 있었다.하지만 성유리가 꺼낸 대답은 단 하나였다.“전 아무것도 몰라요.”“당신...”강지연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그러나 곧 지금은 부탁해야 할 때라는 걸 떠올렸고 억지로 분노를 눌러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그리고 몰라도 되니까 그냥 박 대표님한테 제 얘기 한마디만 전해주세요. 그게 전부예요.”“저... 저한테도 딸 있는 거 아시죠? 아이한테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제발 도와주세요.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요.”강지연은 성유리가 분명 자신을 도와줄 거라 믿고 있었다.그녀 스스로도 항상 착하다고 말해왔으니까.그리고 이 시간, 이 장소를 택한 것도 다 계산된 일이었다.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말이다.비록 지금 자존심은 내던졌지만 그깟 존엄쯤이야 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세상은 늘 용감한 자가 이기는 법이다.성유리도 옛날엔 시골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여자애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우아한 ‘사모님’이 되어있지 않는가?그러니 오늘의 굴욕쯤이야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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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8화

그 여자는 어떻게든 말을 수습하려 애썼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는 눈치였다.그 설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그냥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그날은 금요일이었으니 성유리는 평소처럼 하늘이를 데리고 김서영 집으로 향했다.김서영은 하늘이랑 잠깐 놀아주고 아이가 간식을 먹는 틈을 타 성유리에게 물었다.“너 지난번 우리 집에 왔던 종연 씨 기억나지?”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분이 너한테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대. 어때?”지금은 김서영이 회사 일에서 손을 뗐지만 그렇다고 바깥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더군다나 그녀는 자선회 멤버이기도 했다.지난번 일은 워낙 시끄럽게 퍼졌고 하마터면 김서영까지 휘말릴 뻔했다.다행히 뒤늦게 관련된 연예인들이 자진해서 돈을 메웠고 기부 시점도 적당히 조정해 가며 사건을 어떻게든 마무리 지었었다.하지만 그 일로 인해 자선회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은 건 사실이었다.김서영은 원래 그런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종연이 먼저 직접 찾아와 성유리와 밥을 먹고 싶다고 말하자 그 순간 바로 눈치챘다.이번에 일을 대체 누가 꾸민 건지.요즘 이쪽 사람들도 김서영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사모님들 간의 교류나 중재가 필요한 일은 아예 성유리를 통해 해보려는 시도들이 많아졌다.그렇지만 성유리는 워낙 조용한 생활을 추구하고 모임이나 행사에도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기 때문에 종연이 그녀를 찾으려면 김서영을 통해야만 했다.“그 일은 이미 다 정리된 거 아니에요?”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그냥 직접 사과하고 싶었던 것 같아.”“사과는 됐어요.”성유리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리고 그건 전부 박한빈 씨가 한 일이에요. 저랑은 상관도 없어요.”“물론 너랑은 상관없지. 하지만 너는 한빈의 아내잖아. 이런 사교적인 자리는 어쩔 수 없는 거야.”김서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거 나도 알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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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9화

거울을 통해 박한빈을 본 성유리는 즉시 그를 부르며 말했다.“와서 저 좀 도와줘요.”박한빈은 원래 그녀 뒤에서 멍하니 서 있던 중이었다.그리고 성유리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마치 정신이 든 듯 그녀에게 다가가 지퍼를 올려주며 물었다.“어디 가려고?”“찻집이요.”성유리가 대답했다.“일이 좀 있어서요.”“무슨 일인데?”성유리는 대답하려던 참이었지만 갑자기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쏘아보며 말했다.“왜 이렇게 자세히 묻는 거예요?”지퍼가 다 올라갔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성유리의 몸에 손을 얹고 물었다.“그럼 누구랑 가는 거야?”“친구랑요.”“어떤 친구? 내가 아는 사람이야?”“당신은 모르는 사람이에요.”성유리는 박한빈이 너무 많이 묻는 것 같아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지퍼가 다 올라간 걸 확인한 후, 그녀는 그의 손을 밀쳐냈다.그리고 머리를 높게 묶으려 했다.이 절차는 성유리에게 익숙한 것이었다.예전에 그림을 배울 때, 동료들이 연필로 묶은 머리를 유행처럼 했다.성유리가 예전에 머리카락을 잡아 올린 것은 잘 됐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하려니 잘 안됐다.박한빈은 그저 곁에서 성유리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처음엔 그녀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궁금해서였고 그 후에는 애를 쓰는 성유리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왜 아직 여기 서 있는 거예요?”성유리가 시간을 확인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왜? 내가 여기 서 있으면 안 돼?”“안 돼요. 한빈 씨가 여기 있으니까 제대로 못 하겠어요.”박한빈은 웃으며 말했다.“서툰 네 솜씨를 탓하는 게 아니라 나를 탓해?”“누구 솜씨가 서툴다고요?”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즉시 반박했다.그리고 자신이 머리를 묶은 게 마음에 들지 않자 아예 포기해 버렸다.이내 머리를 간단히 땋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박한빈은 분주한 성유리를 보며 점점 기분이 묘해졌다.“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아직도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는지 한 번도 그와 눈을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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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0화

“사모님.”성유리를 발견한 종연은 바로 일어섰고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에요.”“안녕하세요.”성유리도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죄송해요.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괜찮아요, 사실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종연은 웃으면서 성유리를 자리에 앉히고 계속 말했다.“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에요. 보세요. 아직 직원도 안 왔잖아요.”성유리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다행이에요.”이내 종연이 다시 물었다.“오늘 주말인데 아이랑 시간 보내지 않으셔도 돼요?”“하늘이는 할머니 집에 있어요.”“아, 맞다, 주말엔 서영 씨랑 함께 있죠.”종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그럼 이제 사모님과 박 대표님도 서둘러 둘째를 계획하는 게 좋겠네요.”성유리는 종연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약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급할 것 없어요. 이런 일은... 자연스러운 게 좋죠. 될 대로 되겠죠.”“자연스럽게요? 대표님도 이미 삼십 대 후반이시고 사모님도 또래 아니에요? 제 말은...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여자들은 다르잖아요. 일찍 낳는 게 몸에도 좋고요.”“그리고 제가 들은 바로는 딸은 대표님이 아니라 사모님 성을 따랐다죠?”“네.”“그럼 더 빨리 아들을 낳아야죠. 아들 낳아서 성씨가 박으로 바뀌면 그때부터 진짜 안정될 거예요. 앞으로 두 사람의 삶도 확실히 안정될 거고요.”성유리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종연이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어 침묵으로 일관했다.그러자 종연은 신이 난 듯 계속 말했다.“저 보세요. 기어코 아들 낳았잖아요. 그래도... 방해준 씨는 여전히 저에게 관심이 없죠. 제가 낳은 아들은 무능하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랑 또 아이를 낳고 싶어 하죠.”“지난번에 제가 경고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이가 벌써 태어났을지도 몰라요!”그제야 종연은 오늘의 본론을 생각해 낸 듯, 성유리에게 말했다.“그런데 도한시에서 있었던 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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