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151 - Chapter 1160

1622 Chapters

제1151화

성유리는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박한빈이 그녀를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자 성유리는 그를 슬며시 끌어당겼다.“잠깐만 옆에 누워 있어 줘요.”박한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응. 알겠어.”성유리는 그런 그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졌다.타이밍은 분명 안 맞았지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박한빈도 그녀의 웃음을 눈치챘는지 먼저 물었다.“왜 웃어?”그 말에 성유리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이렇게 먼저 질문까지 하는 걸 보면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싶었다.물론 실제로 박수를 치진 않았고 대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기분이 좋아서요. 웃으면 안 돼요?”박한빈은 또 다시 침묵했다.그러자 성유리는 그를 살짝 끌어안으며 말했다.“자, 그만 자요. 저 너무 피곤해요.”“응.”성유리는 눈을 감은 채로도 박한빈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이내 눈을 슬며시 뜨자 역시나 박한빈은 여전히 눈을 뜬 채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자라고 했죠?”성유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말을 마친 그녀는 박한빈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그의 두 눈을 덮었다.박한빈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그리고 그의 속눈썹이 그녀 손바닥을 스치며 간질간질한 감촉을 남겼다.하지만 성유리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고 평온해지는 걸 느끼고 나서야 조심스레 손을 거두었다.그런 다음, 박한빈의 허리를 살포시 감싸안고 눈을 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땐, 창밖으로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침대에는 성유리 혼자였다.성유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갈아입을 옷 한 벌조차 없었다.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는 옷장에서 박한빈의 셔츠 하나를 꺼내 걸치고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밖에는 아무도 없었다.성유리는 잠시 멍해졌다.처음엔 박한빈이 회의라도 간 줄 알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윤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모님, 아직 사무실에 계셨어요?”윤 비서의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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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2화

윤 비서는 성유리에게 옷을 건네주고 차로 그녀를 실버 포레스트까지 데려다주었다.돌아가는 차 안, 성유리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그녀의 표정은 한결 차분해졌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윤 비서는 조심스럽게 박한빈을 변호하듯 말했다.“박 대표님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겁니다.”“저도 알아요.”성유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걱정 마세요. 저 화 안 났어요.”그렇지만 윤 비서가 보기엔 그녀의 그 미소는 아무리 봐도 화가 나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은 윤 비서는 성유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엑셀을 밟아 그 자리를 떠났다.성유리가 집에 들어섰을 때, 하늘이와 박한빈은 저녁 식사 중이었다.그리고 성유리를 본 하늘이는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엄마! 다녀왔어요?”성유리는 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정말로 외출만 잠깐 다녀온 사람처럼.“그래. 다녀왔어.”그녀는 그제야 박한빈을 바라보았고 그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무언가를 애써 떠올리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성유리는 별다른 말 없이 식탁 의자를 끌어당기고는 앉았다.“밥 먹자.”그녀는 박한빈을 나무라지도 않았고 오늘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다.그래서 둘 사이엔 거의 말이 오가지 않았다.이 광경은 며칠 전과 다를 게 없었다.하지만 식사를 마친 뒤, 성유리는 박한빈의 심리치료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내 그녀의 계획을 들은 의사는 잠시 망설였다.“이런 방법은 너무 위험합니다. 만약 박 대표님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태가 더 악화할 수도 있어요.”“지금 상태가 충분히 심각하다는 건 인정하시죠?”성유리는 되물었다.그 말에 치료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럼 그렇게 하죠.”성유리는 단호히 말했다.“도움을 요청해 둘게요. 상황이 벌어지면 당신들은 그저 옆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준비만 해 주세요.”“사모님,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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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3화

결국 윤 비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성유리가요?”“네.”윤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이... 대표님을 인근 도시로 모시고 가라고 하셨어요.”그러자 박한빈의 미간이 다시 깊게 찌푸려졌다.“그래서요? 성유리가 뭘 하려는 겁니까?”“저도 구체적인 건 잘 몰라요. 다만 그날, 대표님께 일어났던 일을 다시 겪게 해달라고 하셨어요.”“그게 무슨 말이죠?”윤 비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대표님 기억 안 나세요? 그날, 인근 도시 출장을 가신 날... 하늘 양이 납치됐잖아요.”그 말에 박한빈의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하지만 곧 차분함을 되찾은 그는 다시 물었다.“그래서요? 성유리가 그걸 왜 다시 하겠다는 거죠?”“아마도... 그날의 일을 다시 반복해서 떠올리게 하려는 것 같아요. 그때대 대표님께서 많이 자책하셨잖아요. 출장을 가신 사이에 일이 벌어졌고 대표님이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으니까요.”“사모님과 하늘이 양은 다치지 않았지만 사모님 말씀으로는 그날 이후부터 대표님의 정신 상태가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자극을 다시 줘서 정신적인 충격을 되살려보려는 것 같아요.”그 이후 말들은 어디까지나 윤 비서의 추측이었다. 성유리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그렇지만 지금, 윤 비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진심 어린 자세로 박한빈에게 털어놓았다.박한빈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알겠습니다. 이만 나가봐요.”“그럼... 출발하실 건가요?”윤 비서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러나 박한빈은 그저 그녀를 한 번 힐끔 바라볼 뿐이었다.그 시선 하나만으로 윤 비서는 그의 뜻을 알아챘다.“죄송합니다.”그래서 재빨리 사과하고 윤 비서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남겨진 박한빈은 조용히 책상 앞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사진을 가만히 내려다봤다.표정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 시간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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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4화

“사모님, 남편 분 혹시 사람 때릴 때 아파요? 혹시 진짜 때리면... 저 반격해도 되죠?”분장을 끝낸 남자가 소품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성유리는 분장사에게 황윤제의 사진을 보여줬고 그녀가 섭외한 배우는 체형부터 유용과 매우 흡사했다.여기에 분장사가 얼굴에 흉터까지 더해놓으니 겉모습만 보면 황윤제와 거의 똑같아 보였다.그 모습에 하늘이는 배우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무서워?”하늘이는 그제야 성유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안 무서워. 이건 그냥 게임이잖아.”“응. 우리 하늘이 정말 용감하네!”성유리는 하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그 사이, 황윤제 역을 맡은 배우 외에도 강지연 역을 맡은 여자 배우 역시 분장을 마쳤다.“남편 분은 언제쯤 오시죠?”여배우가 묻자 성유리는 시계를 흘끗 보고 대답했다.“곧 도착할 거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래층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창가에서 바깥을 보고 있던 남자가 외쳤다.“왔다. 왔어!”그 말에 분장사와 나머지 스태프들은 재빨리 다른 방으로 몸을 숨겼고 여배우는 하늘이를 잡고 남자는 소품 칼을 성유리의 목에 겨눴다.남자는 원래 성유리에게 칼의 세기가 괜찮은지 묻고 싶었지만 그 순간 박한빈이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옆의 여배우를 바라봤다.여배우는 전문 영화학교 출신답게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대사를 이어갔다.“어머, 박 대표님. 이제야 오셨네요?”박한빈은 아무 대답 없이 그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왔다.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지만 남자 배우는 재빠르게 소품 칼을 성유리 목에 더 가까이 댔다.“거기서 멈춰요! 더 다가오면 가만 안 둡니다!”“그래요! 당신 아내랑 딸이 지금 저희 손에 있어요. 말 안 들으면 큰일 날 줄 알아요.”여배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은 어느새 그들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놀란 그녀는 순간 얼어붙었다.성유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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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5화

윤 비서도 그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그때 성유리는 윤 비서를 발견했고 그녀에게 눈짓을 보내며 박한빈이 왜 여기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윤 비서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눈을 피했다.“하늘이 먼저 데리고 돌아가세요.”박한빈이 조용히 명령을 내리자 윤 비서는 바로 대답하며 앞으로 나가 하늘이의 손을 잡았다.“저도 같이 가야겠죠?”성유리는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그리고 그 손에 이끌려 성유리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그 사이,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재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성유리는 그들의 무책임함에 속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박한빈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꾹 참고 말았다.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한빈과 마주 본 성유리가 조심스레 물었다.“지금은... 저 보여요?”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성유리는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한숨을 쉬었다.“또 안 보이나 봐요.”“아니면... 지금 제가 유령처럼 보이는 거예요?”“여기 봐요. 지난번 하늘이가 납치당했던 곳이 바로 여기였어요.”“당신 말이 맞아요. 하늘이는 정말 용감했어요. 그리고 저희도 꽤 잘 협력했죠.”“전 전혀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황윤제 그 인간... 제가 그 인간 손도 찔러버렸잖아요.”“솔직히 말하면 그때 저도 무서웠어요. 만약 당신이 금성에 있었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당신을 찾았을 거라고요. 이 모든 걸 당신에게 맡기고 싶었죠.”“하지만 그때 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그리고 사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제가 그렇게 약하지는 않아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제가 밀리지 않았다고 느꼈어요.”“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무서웠죠. 그래서 경찰서에서 당신을 봤을 때, 진짜 서럽고 속상했어요.”“그런데 당신은... 저를 무시했잖아요.”“그 후로도 전 당신이 저를 안아주길 바랐어요. 괜찮다고, 이제 끝났다고 말해주길 바랐다고요. 무섭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기를....”“근데 한빈 씨는 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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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6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는 손을 들어 성유리의 눈물을 살며시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보여. 지금은... 널 볼 수 있어.”“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성유리가 급히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박한빈이 그녀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알아.”“지금 너는 내 앞에 있어. 나도 그걸 안다고.”박한빈의 대답을 들은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다.그리고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박한빈은 생각보다 센 힘에 아픔을 느꼈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그럼 이제 정말 다 알겠다는 거죠? 저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진짜로.”“응. 알아.”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이건 꿈도 아니고 내 환상도 아니야. 성유리, 난 이제 전부 다 알아.”그 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처음에 박한빈은 그녀가 기뻐서 자신을 안아줄 줄 알았다.하지만 성유리는 갑자기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아세요? 지금은 아신다고요? 그럼 당신, 그동안 어땠는지 알아요?”“제가 말 걸어도 대답 한마디 없었잖아요!”“절 사무실에 두고 그냥 가버렸잖아요! 바지 챙기고 나서 바로 딴사람 되셨더라고요? 윤 비서가 옷 안 가져다줬으면 저 진짜 집에도 못 갔을 거예요!”성유리의 쏟아지는 원망에 박한빈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그저 가만히 맞기만 했다.그렇지만 바로 그 침묵이 성유리에게는 더 무서운 일이었다.“왜 또 말이 없어요? 또... 또 그 상태가 되는 거예요?”“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박한빈은 성유리가 뭘 걱정하는지 알기에 바로 대답했다.“그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 네 말이 다 맞으니까.”성유리는 눈을 부릅떴다.“그걸 알면 됐어요! 제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세요? 며칠 동안 말도 안 해준 건 기본이에요. 사람들은 다 저희가 크게 싸운 줄 안다고요!”“알겠어.”사실 박한빈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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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7화

“절대 안 잊을게.”박한빈이 순순히 대답하자 성유리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그래야죠!”박한빈은 웃으며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았다.“만약 다음에 또 잊어버리면? 그땐 어쩔 거야?”“어쩌긴 뭘 어째요.”성유리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냥 짐 싸서 나가버릴 거예요. 앞으로는 당신 꿈에서나 절 찾으세요.”그 말이 끝나자 박한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성유리는 원래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하지만 놀랍게도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그 눈빛에 장난처럼 말했던 성유리는 오히려 미안해졌다.결국, 그녀는 얼른 말을 바꿨다.“저 농담한 거예요. 진짜로.”“걱정 마세요. 당신이 또 절 잊어도 저는 절대 안 떠날 테니까.”“매일 한빈 씨 앞에 나타나서 말할 거예요. 저 여기 있다고. 지금 당신 앞에 있다고. 한빈 씨가 어디 가든 따라다닐 거예요. 알겠어요?”“박한빈 씨, 전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비록 오늘 벌인 이 ‘극장’은 결과적으로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박한빈은 성유리의 예상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그렇지만 결과는 성유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좋았다.최소한 이제 박한빈은 그녀를 더 이상 허상처럼 대하지 않았다.그러나 곧 성유리는 또 다른 ‘후폭풍’을 맞이하게 되었다.예를 들면 박한빈의 안전 욕구.그는 거의 매일 성유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너무 세게 안아서 그녀는 아파서 깨거나 숨이 막혀서 일어나기도 했다.혹은, 박한빈이 한밤중에 갑자기 깨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느라 성유리를 흔들어 깨우는 일도 다반사였다.박한빈은 마치 성유리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그녀를 한순간도 놓지 않으려 했다.참다 못한 성유리는 결국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하지만 의사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이건 오히려 회복의 신호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꿈과 현실을 잘 구분하고 있어요.”박한빈의 불안함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거라고도 했다.그런데 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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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8화

한참 기다려도 안 오길래 내가 직접 와봤지.”박한빈은 태연하게 말하며 성유리의 휴대폰을 힐끗 바라봤다.성유리가 막 대답하려던 찰나, 또 다른 전화가 걸려 왔다.그리고 박한빈의 시선은 정확히 그 화면 위에 멈췄고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발신자는 최경언이었다.성유리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요즘 어떻게 지냈어요?”수화기 너머로 최경언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간 괜찮으면 저랑 커피나 한잔하실래요?”마침 강지연에 대한 일로 물어볼 것도 있었던 성유리기에 그가 먼저 만나자고 하니 곧바로 수락했다.“좋아요. 언제 볼까요?”“내일 어때요? 참, 저 아직도 누나한테 차단당한 상태예요. 주소 보내려면 차단 풀어줘야 하거든요?”그 말에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다가 민망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지금 바로 풀게요.”박한빈은 여전히 옆에 서 있었다.성유리는 대화할 때도 그를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내용을 들은 박한빈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너 최경언 씨랑 만난다고?”“네. 내일 커피 한잔하기로 했어요.”성유리는 대답하며 최경언을 블랙리스트에서 해제했다.“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박한빈이 다시 물었다.“모르죠. 곧 주소 보내줄 거래요.”성유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보며 물었다.“근데 당신은 무슨 일로 절 찾은 거예요?”“별건 아니고 내일 모임이 하나 있는데 너랑 같이 가고 싶어서.”“내일이요?”“응. 내일.”“근데 유리야, 너 최경언 씨랑 몇 시에 보기로 했어?”“글쎄요. 아직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오후쯤 아닐까요? 모임은 몇 시에 있는 건데요?”“그것도 오후. 우리 모임은... 그냥 내 주변 사람들 몇 명이랑 교외 승마장에서 만나는 거야.”“그럼 굳이 제가 안 가도 되겠네요.”성유리는 아무렇지 않게 계속 말했다.“저는 말도 못 타잖아요.”“근데 다들 아내랑 같이 온단 말이야.”“그러니까 한빈 씨도 절 꼭 데려가고 싶어요?”성유리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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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9화

“고마워요.”성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케이크를 받아들었다.“전 괜찮아요. 잘 지냈어요.”“그럼 다행입니다.”최경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사실 지난번 일에 대해 미안하단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그러니까 사실은 추형석 씨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당신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거죠?”성유리는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그리고 강지연 씨가 하늘이를 납치하려던 계획까지도 아셨어요?”사건 이후, 경찰은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하늘이는 학원 건물에서 납치되었고 황윤제는 그 건물에서 일하는 전기 기사였다.그 건물엔 다른 학원들도 입주해 있었고 황윤제는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침 복도에서 하늘이와 마주쳤다.두 사람 모두 그 건물에서 자주 보이던 얼굴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게다가 황윤제는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부터 그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즉, 이 전체 계획은 최소 두 달 전부터 준비된 셈이다.성유리는 이 일을 예전부터 최경언에게 묻고 싶었다.그가 직접 연루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추형석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고 굳이 강지연을 도와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하지만 그날 그의 등장은 너무나도 ‘우연’이었고 나중에 하늘이 납치 사건을 들었을 때, 전혀 놀라지 않는 모습도 의심스러웠다.그래서 성유리는 판단했다.최경언은 적어도 사건의 배후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지금 그녀가 직설적으로 묻자 최경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성유리는 대답 대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 확신에 찬 눈빛에 최경언의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이내 최경언은 고개를 떨구더니 한참 후에야 조용히 물었다.“근데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오늘 저랑 이렇게 마주 앉아 있을 수 있어요? 혹시 저한테 다른 의도라도 있으면 어쩌려고요?”“전 경언 씨가 절 해치지 않을 거라 믿어요.”성유리는 단호히 대답했다.그 말에 최경언의 표정이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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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0화

최경언은 왜 강지연을 막지 않았을까, 그때 만약 자신이 그를 믿기로 했다면 대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갔을까?성유리는 그런 질문을 더 이상 최경언에게 묻지 않았다.왜냐하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최경언이 진심을 말해줄지 안 해줄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고 설령 말했다고 해도 성유리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그는 흔들렸을지도 모른다.아니면 그때 최경언 마음속 욕망이 모든 것을 이겨버렸을지도 모른다.그래서 결국 강지연이 하는 걸 묵인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어떤 이익을 얻으려 했을 수도 있다.하지만 이후 성유리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자 최경언은 자신이 원했던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건 성유리의 추측일 뿐이다.사실 진실이 그러한지는 그녀도 모르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았다.성유리가 연신 고마움을 표하자 최경언은 잠시 머뭇거렸다.그리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누나가 고맙다고 한 건... 저한테 선을 긋겠다는 뜻이겠죠?”성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태도만으로도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그러자 최경언의 웃음기가 완전 사라져 버렸다.“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오늘 누나를 부르지 않았을 텐데.”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제가 이 모든 걸 솔직하게 말했을 때, 누나가 최소한 절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처음부터 다 말해줬다면 정말 고마워했을 거예요.”성유리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최경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성유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그냥... 고마운 것뿐인가요?”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냥 고마운 거예요.”이내 최경언은 다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누나 삶에 더 이상 방해되지 않을 거니까.”최경언은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는 휙 돌아섰고 더 이상 성유리를 바라보지 않았다.하지만 가게 문 앞까지 다다르자 최경언은 결국 뒤돌아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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