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441 - Chapter 1450

1622 Chapters

제1441화

성유리는 조금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런데도 굳이 당신한테 협상하려고 온 건, 설윤지 씨가 생각하기에 한빈 씨가 자기 목적을 이뤄줄 수 있다고 본 거 아닐까요?”박한빈은 그저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 속에서 성유리는 점점 자신이 맞췄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럼 설윤지 씨가 원하는 건 뭔데요? 설마 선진 그룹을 무너뜨리려는 거예요?”“거의 맞다고 볼 수 있지.”박한빈이 핸들을 두드리며 낮게 말을 이어갔다.“다만 설윤지 씨는 국내 시장을 차지하려는 게 아니야. 단지 임수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지.”성유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래서... 그게 한빈 씨가 망설이는 이유예요?”그러자 박한빈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응.”“설윤지 씨가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아예 막다른 각오를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당신이 설윤지 씨와 손잡기 싫은 것도 결국 그것 때문이죠?”“그래, 맞아.”“하지만...”“만약 정말 선진 그룹을 집어삼킬 수 있다면 내게도 분명 얻을 게 많아질 거야.”박한빈은 여전히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해청시에 꽤 괜찮은 대학이 있거든. 하늘이가 크면 거기서 공부할 수 있을 거야.”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성유리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네? 뭐라고요?”“만약 하늘이가 나중에도 경영에 관심이 있다면 선진 그룹을 맡겨서 연습 삼아 운영해 보게 할 수도 있지.”“그건... 너무 먼 훗날 얘기잖아요.”“멀지 않아.”박한빈이 단호하게 성유리의 말을 잘라버렸다.“계산해 보면 고작 8년 남짓이야. 지금 지화 그룹이 차지한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 더 확장하면 괜한 눈총만 받을 거야. 앞으로 10년은 굳이 성과를 내지 않으려고 해. 그러니까 선진 그룹은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어.”“그러니까 결국 설윤지 씨와 손잡으려는 거죠?”“그건 설윤지 씨가 어떤 조건을 내놓느냐에 달렸지.”박한빈이 핸들을 꺾자 성유리의 시선에 커다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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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2화

백지환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자를 붙잡지 않았다.그 순간 여자의 마음은 더더욱 불편해졌다.오늘은 겨우 집안 어른들을 따돌리고 남편과 단둘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자리였다.그런데도 결국 돌아온 건 잔소리와 훈계뿐이라니.그녀도 분명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왔고 집안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그런데 이제 와서 백지환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라고 등을 떠미는 꼴이 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결혼도 했고 자기 뱃속에는 백지환의 아이도 있다.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불만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렇게 마음을 달래려던 찰나,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고 여자는 발걸음을 그대로 멈춰버렸다.실버 포레스트 앞에서 봤을 땐 잘못 본 거라며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너무나 또렷하고 선명하게 바로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설윤지 씨?”여자는 무심히 그 이름을 불러버렸다.그러자 옆으로 몸을 돌린 채 전화를 하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렸고 천천히 그녀를 훑었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노미혜 씨. 어떻게 여기서 만나요?”차분한 미소에 노미혜의 얼굴은 단숨에 굳어졌다.“언제 돌아온 거예요?”설윤지는 아직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라 상대에게 몇 마디 더 영어로 전하고서야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제가 언제부터 제 행적을 당신한테 알려줘야 했던 거죠?”늘 그렇듯, 부드럽지만 차가운 말투에 노미혜는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곧바로 날을 세웠다.“이미 우리 오빠랑 이혼했잖아요. 그런데 왜 다시 제 앞에 나타난 거예요? 그때 세상에 웃음거리가 된 걸로도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세요?”노미혜는 숨을 몰아쉬며 언성을 높였다.“설윤지 씨, 외국 나가서 영어 몇 마디 배워왔다고 잘난 척하지 마세요. 당신은 뭘 해도 그 천박한 출신은 절대 바뀌지 않을 테니까!”노미혜는 고개를 치켜들며 비웃었지만 설윤지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봤다.노미혜가 또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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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3화

“뭐라고요?”옆에 있던 노미혜는 당황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여자가... 당신이 말한 사모님이에요?”“그래, 맞아! 어서 사모님께 사과드려!”백지환이 다급하게 등을 떠밀었지만 노미혜는 여전히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하지만 남편이 사과하라 닦달하자 그녀는 그저 성유리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결국 백지환이 대신 고개를 숙였다.“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제 아내가...”“괜찮아요.”성유리가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별일 아니니까 이렇게까지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오늘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백지환이 여전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우연이군요. 박 대표님도 함께 계시겠죠? 제가 가서 인사라도...”“괜찮습니다.”성유리가 그의 말을 바로 잘라버렸다.“저희 이제 곧 가려던 참이에요.”“아, 그렇군요. 아쉽네요.”백지환은 더 이상 붙잡지 않고 미소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그럼 다음에 꼭 박 대표님과 두 분 모시고 식사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네.”성유리는 건성으로 대답을 흘리듯 내뱉었다.그리고 설윤지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그 자리를 지나쳤고 성유리와 함께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방금 저 남자는 누구예요?”“신세계 그룹의 대표예요.”성유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어쩌다 보니 이웃이 돼버렸죠.”“그렇군요.”설윤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성유리는 망설이다 먼저 물었다.“혹시 백지환 씨 아내와는 아는 사이예요?”설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잘 알죠. 제 전남편의 여동생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제 시누이라고 해도 되죠.”예상 밖의 말에 성유리는 순간 발걸음을 뚝 멈췄다.“그런 우연이 다 있네요?”“네. 우연이라면 우연이죠.”설윤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기복이 없었다.사실 그녀는 이런 마주침을 충분히 예상했기에 별로 당황스럽지 않았다.‘그래, 이런 각오 하고 오기 잘했네.’그래서일까, 지금 설윤지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그러나 성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다시 물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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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4화

설윤지는 그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수술실에서 막 나온 그녀가 마주한 것은 남편의 위로가 아니라 시댁 식구들의 비난이었다.그들은 왜 설윤지가 다쳤는지는 묻지도 않았다.몸이 약한 걸 알면서도 어쩜 그리 부주의하냐는 책망만을 쏟아낼 뿐.설윤지는 간절한 눈빛으로 남편인 노수호를 바라봤었다.그에게서라도 위로라도 얻고 싶었지만 노수호는 오히려 바람피운 여자를 감싸고 서 있었다.그리고 던진 한마디.“얘는 네가 생각하는 나쁜 여자가 아니야.”가벼운 말 한마디가 설윤지를 순식간에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그제야 알았다.노수호가 사람을 지켜줄 줄 몰라서 그러지 않았던 게 아니라 지켜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사실을.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설윤지에게 없다고 여겼던 것 같았다.그날, 두 사람은 격렬하게 다퉜다.막 아이를 잃은 설윤지의 앞에서 노수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몸을 툭툭 치며 막말을 퍼부었다.“넌 원래 유흥업소에서 술 따르던 여자였잖아. 내 집에 몇 년 들어와 있었다고 네 주제를 잊은 거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무시하는 거야?”그 한마디는 설윤지의 마음에 칼처럼 파고들었다.오랜 세월, 그녀는 그 출신 때문에 수없이 많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하지만 그때마다 노수호는 침묵했다.사실 처음에 설윤지는 남편이 그저 무심한 성격이라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낀 거라고 생각했다.그렇지만 그게 아니었다.노수호는 반박하지 않은 게 아니라 속으로는 그 말들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가슴은 짓눌리듯 아팠고 지금 이 순간조차 그때 느꼈던 고통은 되살아났다.“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예요?”“옆에서 숨을 헐떡이고 비틀거리는 설윤지를 본 성유리가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를 붙들었다.그러자 설윤지는 고개를 젓더니 한참 뒤에야 몸을 곧게 세우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냥 지난 일이 떠올라서요. 조금... 아프네요.”“미안해요. 제가 괜히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린 것 같아요.”“아니에요.”설윤지는 옅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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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5화

“그래서 이번엔 노수호 씨에게 똑같이 맛보게 해주고 싶어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완전히 무너진 그 기분을.”말을 잇는 순간, 설윤지는 이를 꽉 악물더니 난간을 움켜쥔 손에 마저 힘을 실었다.그 모습을 힐끔 본 성유리는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잠시 후, 설윤지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물었다.“노미혜 씨, 남편 말이에요. 혹시 친구인가요?”성유리가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당연히 아니죠.”설윤지는 그제야 조금 숨을 고르며 웃었다.“다행이네요. 혹시라도 친구라면 박 대표님을 곤란하게 만들까 걱정했거든요.”“친구는 아니에요. 그냥 이웃일 뿐이죠.”성유리가 말을 덧붙였다.“그리고 지금도 박 대표님은 설윤지 씨와의 협력에 조금 망설이고 있어요. 이유는 사실...”“저도 알아요.”설윤지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제가 원한이 너무 극단적이라서 그렇겠죠. 지금 지화 그룹은 안정기에 들어섰고 괜히 시선을 끌 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박 대표님이 망설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그 차분한 말투에 성유리는 오히려 더 묻고 싶어졌다.“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만약 끝내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설윤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성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서 제 과거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은 거예요.”“네?”“박 대표님을 설득하려 애쓰는 것보다 성유리 씨에게 진심을 보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유리 씨가 저를 도와주겠다고만 한다면 박 대표님은 설령 지화 그룹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주저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에요.”설윤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성유리는 잠깐 멈칫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하지만 전 남편이 곤란해지는 걸 원치 않아요.”사실상 거절의 의미였기에 설윤지는 멈칫하다가 곧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괜찮아요. 애초에 성유리 씨에게 억지로 도와달라고 할 이유는 없잖아요.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원망할 생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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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6화

깊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박한빈은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성유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노을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재우느라 한동안 바빴다.그제야 겨우 침실로 돌아와 오늘 있었던 일을 박한빈에게 이야기할 틈이 났다.“그게 아세요? 노 대표님의 여동생이 바로 백지환 씨 새 아내래요.”“오? 그래?”박한빈은 처음 듣는 듯했지만 얼굴에 놀라움이라는 감정은 거의 비치지 않았다.“그렇다면 새 아내 집안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네. 그런데 백지환 씨는 대체 무슨 속셈이지? 예전에 남우미 씨한테 했던 짓을 또 반복하겠다는 건가?”“그럴 수도 있겠죠.”“하지만 노미혜 씨도 분명 우미의 끝을 봤잖아요. 게다가 오빠라는 사람... 정말 여동생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걸 두고만 보겠어요?”이번엔 박한빈이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고 성유리의 허리선을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성유리는 순간 움찔했지만 재빨리 그의 손을 탁 막았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 지금 진지한 얘기하는 중이잖아요!”“알아. 듣고 있어.”“그럼 대답해 봐요. 노 대표님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어쩌면 노 대표님이 원한 게 바로 그 불구덩이일지도 모르지.”박한빈의 짧은 한마디에 성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설마 일부러 그랬단 말이에요?”“어쩌면.”박한빈은 성유리가 입고 있는 치마 뒤쪽에 있는 지퍼를 내리며 낮게 웃었다.“피가 섞였다고 해서 사이가 좋을 거라 누가 장담해?”“하지만 제가 본 노미혜 씨는 우미를 분명 싫어하더라고요. 그런데 친오빠랑도 사이가 안 좋으면...”“흠.”“그럼 왜 굳이 그 결혼을 허락했을까요?”“누가 알겠어.”“노미혜 씨가 벌써 임신한 건 아닐까요? 그래서 노 대표님이 물러선 거라면?”“그것도 가능성이 있긴 하지.”박한빈의 대답은 점점 더 성의가 없어졌기에 성유리는 그의 팔을 꼬집듯 잡았다.“제대로 듣고 계세요?”그제야 그는 고개를 들어 성유리를 바라봤다.“듣고 있어.”“그럼...”성유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박한빈은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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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7화

그의 입술이 닿자 성유리는 숨이 더 막혀왔고 질식하기 일보 직전에 결국 손을 뻗어 박한빈을 밀어냈다.그제야 박한빈은 그녀를 품에 안아 올렸고 양손이 허리 뒤에서 교차하며 성유리의 두 다리는 자연스레 그의 허리에 걸렸다.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박한빈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성유리는 마치 폭풍우에 휘말린 작은 배가 된 듯했고 어쩔 수 없이 눈앞의 사람만을 붙들고 매달린 채 흔들림을 견뎌야 했다.모든 게 끝났을 땐, 몸 전체가 물기 빠진 듯 축 늘어졌다.목은 바싹 타들어 가듯 건조했고 눈꺼풀도 무겁게 내려앉았다.박한빈은 곧 물을 가져와 한 손으로 성유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컵을 입술에 대주었다.성유리가 반쯤 마셨을 때, 아랫배가 불룩해지자 그는 흘끗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성유리는 얼굴이 더욱 붉어졌고 손가락으로 박한빈의 허리를 꾹 집었다.“괜찮아. 내가 금방 정리해 줄게.”박한빈의 낮은 목소리에 성유리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남은 물을 비운 그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적신 수건으로 그녀를 조심스레 닦아냈다.몇 번이고 반복해 온 일인 듯, 손길은 능숙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성유리는 처음엔 몸을 비틀며 거부해 보려 했지만 곧 무릎이 눌려버렸고 허리는 여전히 힘이 풀린 상태였다.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모든 걸 박한빈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모든 걸 마친 후에야 그는 옆에 누워 함께 자리를 정리했다.성유리는 이미 피곤으로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 맴도는 의문이 가라앉지 않았다.그래서 박한빈이 돌아와 눕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을 잡았다.“아직 대답 안 했잖아요.”박한빈은 그녀가 잠든 줄 알았던 터라 잠시 멍해졌다.이윽고 고개를 숙였을 때야 그는 성유리가 촉촉한 눈빛을 여전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왜 웃어요?”성유리는 그의 손을 꼭 쥔 채, 다그치듯 물었다.“어서 말해요.”“뭘 말하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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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8화

같은 시각, 도시의 반대편에서 설윤지는 남편과 전화를 하고 있었다.그들 사이에 오가는 건 다정한 말이 아니라 보고하듯 차갑게 이어지는 일 얘기뿐이었다.그녀의 회사는 이미 해청시에 자리를 잡았고 사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하지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만약 박한빈이 끝내 협력을 거절한다면 앞으로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게다가 오늘 밤, 예상치 못한 전화를 한 통 받으면서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안 되면 그냥 돌아와.”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말은 오히려 그녀의 흩어진 생각을 끊어냈다.“너무 조급해하지 마.”“저도 알아요.”설윤지는 힘겹게 대답했다.“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는 건...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어요.”“억지로 할 필요 없어. 더구나 조급해선 안 돼.”“네.”잠깐의 정적 후, 설윤지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그 사람, 직접 만난 적은 있어?”설윤지는 고개를 푹 떨구며 대답했다.“아직은 못 만났어요.”그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서둘러 말을 보탰다.“걱정하지 마세요. 설령 만나게 되더라도 절대 흔들리진 않을 거예요.”설윤지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아마도 오늘 밤 걸려 온 의외의 전화 때문이었을까.다행히 상대는 눈치채지 못한 듯, 옅은 미소만 지으며 대답했다.“난 너 믿어.”그 짧은 웃음 속에 다른 뉘앙스가 숨어 있는 건 그녀의 착각이었을까, 설윤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이제 그쪽도 시간이 꽤 늦었지? 일찍 자고 푹 쉬어.”“네.”“잘 자.”전화를 끊고 난 후에도 설윤지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그래서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무심결에 통화 기록을 열었고 그 안에 붉은 글씨로 표시된 이름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그제야 깨달았다.자신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단지 그 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심지어 어금니가 악물릴 정도였다.마치 무엇이라도 씹어 삼켜야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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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9화

“괜찮아요. 그냥 실수로 넘어졌을 뿐이에요.”남현호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그럼 오늘은...”“네. 집에 가야 해요.”아이의 목소리엔 주저함이 없었고 성유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그동안 남현호는 집에 가는 걸 극도로 꺼렸는데 최근 2주 동안은 연이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그리고 단지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아이의 상처도 그 집에서 생긴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성유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고 뜻밖의 제안이었는지, 남현호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아이의 태도는 너무나 평온했다.성유리는 다시 한번 남현호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별다른 단서가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차를 출발시켰다.이제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일이 그녀에게도 익숙해져 있었다.하지만 차를 세운 찰나, 성유리는 불현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노미혜가 불룩한 배를 안고 집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남현호를 보자마자 날카롭게 물었다.“너 왜 또 돌아왔어?”“여기는 제 집이에요. 제가 제 집에 돌아오는 게 뭐가 문제예요?”남현호는 담담하게 받아쳤다.“네 집이라고? 웃기지 마! 여긴 백씨 가문 별장이야.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넌 남씨 성을 달고 있는 주제에!”“그렇게 말하는 아줌마도 백씨는 아니잖아요.”남현호의 날카로운 말에 노미혜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버렸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제가 틀린 말 했나요? 아줌마도 백씨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여기 잘 살고 있고요.”“이 싸가지 없는 놈이 감히!”노미혜가 분노에 치를 떨며 손으로 아이를 밀쳤다.“너 같은 잡종이 나랑 같아? 난 지금 배 속에...”“제가 잡종이면 뱃속의 애도 잡종이죠.”남현호는 차분하게 반박했다.“어차피 아버지는 같은 사람인데. 아, 아니군요. 전 적어도 백지환이라는 사람의 자식이 확실하지만 뱃속에 있는 애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야!”예상치 못한 아이의 독설에 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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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0화

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미혜는 흥분한 얼굴로 백지환을 붙잡았다.“쟤가 일부러 그런 거예요! 절 자극하려고, 저희를 갈라놓으려고 그런다고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겨우 초등학생인 주제에 어떻게 그런 꿍꿍이를 품을 수 있죠? 너무 소름 끼치잖아요! 저건 애가 아니에요. 차라리 악마라고 해야 맞아요!”노미혜의 불만이 이어지는 동안, 백지환은 마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심했고 겉옷을 벗고 세면대 앞에서 잠옷을 챙길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뒤를 쫓으며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그러다 백지환이 끝내 대답하지 않자 이를 꽉 깨물며 외쳤다.“당신, 지금 제 말 듣고 있는 거예요?”그제야 그의 걸음이 잠시 멈췄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 백지환이 담담히 말했다.“들었어.”그러나 그 목소리는 대수롭지 않은, 거의 무심에 가까운 태도였다.노미혜의 표정은 더욱 굳어버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백지환 씨, 잊지 마요. 제 뱃속에 있는 게 바로 저희 아이예요! 지금 이 애만이 백씨 성을 가질 수 있다고요! 당신 지금, 남현호 편을 드는 거예요?”그 말에 백지환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누가 뭐라 해도 현호는 내 아들이야.”“그래서 뭐요? 그럼 제 뱃속에 있는 건 당신 아이가 아니란 거예요?”“그럴 리가 있나.”그는 곧 얕은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노미혜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그럼에도 그녀의 분노는 쉽게 삭이지 않았다.“그럼 돈 문제는요? 대책은 있는 거예요? 아니면 아예 없어요? 그냥 이대로 끝내시려고요? 그럼 제 아이는 어떻게 증명하죠? 기껏 시집와서 결국 아무것도 못 얻는다면 아이는 뭐가 되는데요!”그 순간, 백지환의 손이 뚝 멈췄다.노미혜의 얼굴은 여전히 화로 물들어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내뱉은 말 속 모순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그는 속으로 그녀를 비웃었다.‘바보 같군.’백지환은 자신이 노미혜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런 ‘멍청함’ 때문이었던 걸 떠올렸다.그래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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