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Bab 1031 - Bab 1040

1048 Bab

제1031화

그는 스스로를 달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설령 맹영지를 구해낸다 한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소 씨 집안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맹 가의 미쳐버린 딸을? 민 씨 가문의 미쳐버린 손자 며느리를?차라리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김단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반드시 맹영지를 고쳐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흘러 김단은 돌아왔지만 맹영지는..세상 사람들은 모두 악독한 호랑이도 제 새끼는 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맹 판서가 그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맹 영지를 죽음으로 내몬건 다름 아닌 맹 판서 그자였으니. 그 사실이 소하의 가슴을 옥죄어왔다. 소하가 잠시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생각에 잠긴 걸 본 최지습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맹영지가 죽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그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날 맹 판서에게 그녀를 넘긴 걸 수십 번도 더 후회했지만 그 순간에는 이런 결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소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그럼, 대군자가께서는 제 독이 퍼지기 시작했단 걸 김단에게 말씀하신 적 있습니까?”그의 손은 한 달 전부터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단이 자신의 손목을 건드리려 할 때마다 그는 본능적으로 피했고 그녀가 선물한 금강보리 팔찌도 일부러 풀어 두었다. 최지습은 그의 손을 잡은 순간부터 이미 몸에 서서히 독이 퍼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터였다. 최지습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약왕곡의 주인이 해독제를 연구 중이다. 약이 완성되는 대로 내가 몸소 받아올 생각이야. 그리고 김단은 이 한빙산의 해독법을 알지 못해. 단이에게 알려줘봤자 걱정만 늘뿐 아무 소용 없다.”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대군자가. 김단은 제 두 다리를 치료해 준 은인이지요.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전 돌궐 공주와 혼인하겠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최지습은 즉시 얼굴을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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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2화

전하 역시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 상의하더니 가장 골치 아픈 선택지를 골라 고스란히 자기 앞으로 밀어 넣을 줄이야. 무릎 꿇은 채 어전 앞에 앉아 있는 소하를 내려다보던 전하는 손에 들고 있던 죽간을 거의 내리칠 뻔했다.“이성왕? 네가 왕위를 원한다고? 얼마나 큰 공을 세워야 이성왕을 봉할 수 있는지 네가 알긴 하느냐?”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이성왕은 바로 최지습이었다. 그때 최지습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돌궐 수장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그만큼의 피와 공을 쏟아부어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이성왕 자리이거늘. 그리고 만약 소 씨 가문에 이성왕 자리를 하나 봉한다면 그건 소한이어야 했다. 하지만 소하는 고요한 눈으로 전하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전하, 만약 제 다리만 멀쩡했다면 그만한 공은 저도 마땅히 전하를 위해서 세웠을 겁니다.”그 말에 전하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전하 역시 소하의 다리와 함께 꺾여버린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나았다고 하지만 황금 같은 다섯 해를 그냥 흘려보낸 건 사실이었고 되돌릴 수 없는 공백이었다. 게다가 소하의 말은 빈소리가 아니었다. 소한이 보여준 무예와 전공의 대부분은 소하가 직접 가르친 것들이었다. 그가 이룬 것들 속에는 분명 소하의 그림자가 있었던 것이다. 전하는 그 진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소하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아픈 과거를 끄집어 내면서 청을 올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뼛속까지 얌전하던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몫을 요구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반가웠다. 하지만 그가 요구하는 자리는 단순한 직책이 아닌 이성왕의 칭호였다. 그건 곧 조정의 파란이자 스스로의 부담이기도 했다. 잠시 침묵하던 전하는 입을 열었다.“좋다. 너를 이성왕으로 봉해주겠다. 다만, 명심하거라. 칭호만 내려줄 뿐 너에게 금군 외의 실권은 일절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 이상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도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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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3화

이제 한양에는 또 한 명의 대군자가가 생겼다. 고지운의 오라버니가 보내온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한양의 대군자가와 혼인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만약 그녀가 소하와 혼인하게 된다면 적어도 그들 손에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김단은 그 사람을 좋게 평가했으니 자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때리거나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고지운이 환히 웃으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단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궁궐에서 막 돌아온 최지습을 만나기 위해 곧장 그의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큰 도령님, 소하 오라버니 일… 들으셨습니까?”서두르듯 묻는 목소리에는 미처 감춰두지 못한 불안감이 실려 있었다. 정말 또 한 번 자신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최지습도 굳이 숨기지 않고 소하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우리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맞지만 단지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라고 했소.”김단은 무거운 심정을 안고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저는... 소하 오라버니에게 너무 많은 걸 빚졌어요.”과거에 그녀가 구원받은 것도, 혼인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소하 덕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자신을 위해 고지운과 혼인을 하려는 것도 모두 그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 같았다. 그때는 서로의 안위를 위한 합의였지만 이번에는 그의 일생을 건 선택이었다. 김단은 말없이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최지습은 조용히 다가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김단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고지운이 아니더라도 소하는 언젠가는 혼인을 해야 하오.”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알아요. 하지만 저는 소하 오라버니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하길 바랐어요. 이렇게 나 때문에 또 희생하는 건 싫어요.”최지습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낭자 하나 때문이 아니라 우리 둘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오. 소하가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미 자신의 마음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않소? 허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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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4화

김단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이 혼인 소식을 듣고 기뻐한 사람은 고지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궁궐에서 이미 대례에 쓰일 예물과 혼수품을 줄줄이 하사했지만 고지운은 여전히 김단의 손을 붙잡고 졸라댔다.“한양 여인들은 시집갈 때 준비할 게 참 많다면서? 나 좀 데려가 주시오. 한양 여인들이 혼사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고 싶소.”고지운에게 이 혼사는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죽음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동시에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첫 시작이었다. 그 밝은 눈망울을 마주하고 있던 김단은 그녀를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숙희와 함께 고지운을 데리고 눈 덮인 거리로 나섰다. 정월 초닷새. 길가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날카로웠다. 숙희는 미리 준비해온 두터운 비단 망토를 김단의 어깨에 덮어주었고 또 다른 한 벌을 들고 고지운을 향해 달려갔다.“아이고, 공주님! 좀 천천히 가세요. 망토라도 입으셔야죠. 고뿔에 걸리면 어쩌려고요!”고지운은 깔깔 웃으며 망토를 사양했다.“우리 돌궐 바람은 이보다 훨씬 매섭소. 그러니 이 정도 추위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오. 어머! 그런데 이거 참 예쁘오.”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거리 한편의 장신구 가게로 성큼 들어섰다. 진열된 동주비녀 하나를 들어 올리며 해맑게 머리에 꽂아보려 했다. 그러나 비녀가 머리에 닿기도 전에 가게 안에서 종업원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고지운 손에서 그것을 확 낚아채 갔다.“다치지 마세요!”고지운은 놀라 손을 놓았고 비녀 끝에 달린 금속 장식이 그녀의 손바닥을 스치며 얕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자 하얀 손바닥에 금세 선홍빛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를 본 김단이 단숨에 앞으로 나섰다.“어떻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까?”그러자 종업원은 당당하게 고지운을 쏘아보며 말했다.“다친 게 내 잘못은 아니지 않소? 그리고 우리 가게 물건은 돌궐인들한테 팔지 않소. 그러니 얼른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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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5화

누군가 그녀를 알아본 건 그 즈음이었다.“김 아가씨 아니십니까? 예전에 한양 병사들 따라 전장에 나가셨잖아요. 그런데 어찌 그토록 돌궐인들을 좋아하시는 겁니까?”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잇따랐다.“그러게요. 듣자 하니 김 아가씨께서는 소 장군과 이혼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지금 소 장군께서 그 돌궐 공주와 혼인한답니다. 그럼 보통은 그 공주를 미워해야 하지 않나요?”그 말들이 허공에서 흩어지자 고지운의 발걸음이 멈췄다. 비록 낯선 땅에 머문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혼이라는 단어쯤은 그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소 장군과 김단이 이혼했다는 것은 곧 둘이 한때 부부였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김단과 소 장군 도 평범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김단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과 소하의 지난 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줄은 몰랐고 무엇보다 고지운의 낯빛이 눈에 띄게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어 서둘러 고지운의 손을 끌어 잡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골목길로 빠져나왔다.말없이 걷는 길 위에서 고지운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작고 예쁜 그녀의 얼굴 위로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차가 관저 앞에 멈춰 서자 그녀는 망설임도 없이 먼저 내렸다. 김단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저릿해졌다. 아까 사람들이 했던 말이 그녀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 걸지도 모른다. 김단은 곧장 그녀를 따라나섰다. 고지운은 김단이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문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곧장 문을 닫으려 했으나 김단이 서둘러 다리를 들이밀었다.“좀만 더 힘줬으면 제 다리가 부러질 뻔했습니다.”김단은 일부러 투정을 부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 말에 고지운은 손을 놓고 돌아서며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곧장 방 안 한쪽으로 가 푹 주저앉았다. 김단은 다리를 매만지며 방으로 들어섰고 조용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공주님께 말하지 않은 건 죄송합니다. 저와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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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6화

그 이후, 고지운의 얼굴에서는 새색시다운 밝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거리에 나가자고 조르지도 않았고, 조선에서의 혼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머릿속에는 오직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그녀는 오라비들에 의해 조선 땅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마치 바다를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물 위로 떠오를지 가라앉을지는 그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그녀가 이토록 슬퍼하는 것을 본 김단은 고심 끝에 숙희와 논의하기로 결정했다.“숙희야, 이틀 뒤면 고씨 공주님과 소 오라버니의 혼인 날이구나. 공주님 곁에 잠시 있어줄 수 있겠느냐?”김단은 소하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택의 하인들이 고지운에게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되었다.마치 그날 거리의 백성들이 고지운에게 악담을 퍼부었던 것처럼 말이다.어쩌면 숙희가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숙희가 거절할까 내심 걱정되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숙희는 다급히 말했다. “저도 마침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공주님과 함께 있으면, 이각도 감히 공주님을 괴롭히지는 못할 겁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을 골라 가르친 다음, 다시 아씨를 모시러 오겠습니다!”숙희도 차마 고지운이 시름에 잠긴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김단은 자신과 숙희의 생각이 일치할 줄은 예상치 못한 듯,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우리 숙희, 과연 네가 나를 가장 잘 아는구나!”숙희는 김단의 왼손을 잡으며 내심 걱정스러운듯한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제가 없는 동안 아씨께서는 함부로 손을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어깨 부상을 잘 관리하셔야 합니다!”“걱정 말거라! 스승님께서도 저택에 오셨으니, 괜찮을 것이다.”그 둘은 이 결정을 고지운에게 알렸다.고지운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김단과 숙희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감격하여 숙희를 감싸안았다.숙희는 고지운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위로했다. “공주님, 걱정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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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7화

그 순간, 김단의 입가에는 돌연 미소가 번졌다.정말 다행이었다!자신이 한때 그와 혼인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어찌 그의 다리가 치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어찌 그가 서 있는 상태로 혼례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김단의 얼굴에 어린 미소는 안도이자 축복이었다.소하는 그 미소가 품은 뜻을 알고 있었다.그는 김단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그리고는 시어머니의 손에서 붉은 비단 끈을 받아들고 신부를 이끌고 방 문을 나섰다. 그 이후로 그는 김단을 쳐다보지 않았다.고지운은 조선의 혼례 절차가 정말 번거롭다고 생각했다.자신의 돌궐족처럼 잔치를 한 차례 벌여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면 끝이지 않은가?여기는 신랑을 기다리고, 서로 절하고,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고, 그 후에는 홀로 신혼 방으로 보내져 숙희마저 함께 할 수 없었다.시어머니가 일러주길, 침상에 앉으면 다시 일어서지 말고, 머리의 장식도 신랑이 오기 전까지는 벗으면 안 된다고 했다.그녀는 왜 이런 규칙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홀로 있는 상황에서 감히 규칙을 어길 용기가 없었다.그래서 그저 얌전히 침상에 앉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오늘 준비를 위해 너무 일찍 일어났던 탓일까?고지운은 얼마 기다리지 않아 침상 머리맡에 기대 잠이 들었다.얼마나 잤을까, 순간 나무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고지운은 그제야 화들짝 깨어나, 잠결에 어렴풋이 누군가의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공주는 언제까지 칼을 쥐고 있을 생각인 것이오?”소하의 목소리에 그녀가 자세를 고쳐 세웠고, 곧이어 그녀의 눈에는 소하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검은 비단 용포는 촛불에 피처럼 붉게 물들어, 마치 전장에서 막 돌아온 자의 전포와 같았다.고지운은 손에 단칼을 꽉 쥐었고,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조선 사람들 모두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예종원군은 한때 장군이었으니 분명 그녀를 더욱 싫어할 터였다.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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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8화

소하의 동작은 너무나 순식간이라 고지운이 미처 반응할 새가 없었다.이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단칼은 소하의 손으로 돌아갔다.자신을 지킬 유일한 무기를 빼앗기자 고지운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까 분명 동고동락할 것이라고...!”“공주는 무술을 다룰 줄 모르는 것이오?”소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고지운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 “저, 저도 할 줄 압니다! 저 엄청 강합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그녀의 허세를 소하가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그는 곧바로 단칼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고지운은 황급히 이를 받아들었다. 동작이 다소 서툴렀지만, 다행히 칼을 제대로 잡았다.하지만 소하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에,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 칼집에 박힌 붉고 푸른 보석들의 값어치는 매우 높소. 돌궐의 왕족을 상징하지. 실제로 돌궐 왕족 중 가장 총애받는 몇몇 왕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 않소?”고지운은 흠칫 놀라 품에 안은 단칼을 내려다본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큰오라버니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그가 평양원군을 암살하라고 시킨 것이오?”소하가 되물었다.고지운은 곧장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무술도 다룰 줄 모르는데, 어찌 대군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이, 이것은 그저 큰 오라버니께서 제게 호신용으로 주신 겁니다.”“큰 오라버니가 공주를 많이 아꼈나 보오.”소하의 말에 고지운은 침묵했다.그는 그다지 그녀를 아끼지 않았다.만약 그가 그녀를 아꼈다면, 그녀가 돌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괴롭힘당할 수 있었겠는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이 칼을 호신용으로 주었을 때, 그녀는 예상치 못한 호의에 감동했었다.그녀는 이것이 바로 혈육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고지운의 침묵을 본 소하는 그녀의 환상을 깨뜨렸다. “우리 조선의 얼마나 많은 장수와 백성들이 돌궐의 칼로 인해 죽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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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9화

소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 속에 가슴 아픈 상처가 느껴졌다.그는 이내 나지막이 달래듯 말했다. “돌궐족과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는다면, 이 집안에서는 그 누구도 공주를 해칠 수 없을 것이오.”소하의 말을 듣자, 고지운의 흔들리던 눈빛이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단이가 말했소.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고지운은 천천히 말하며 힘없이 침상에 주저앉았다.소하의 눈빛은 자연스레 차분해졌다.고지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한때 장군이었고, 돌궐 사람들과 전투를 벌였으며, 그들을 매우 싫어한다는 걸 말입니다. 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시겠죠... 저는 앞으로 방에 얌전히 있을 것입니다.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저, 저는 눈에 띄지 않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돌궐에 있을 때도 가장 잘했던 것이 바로 숨어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습니다...”그녀는 말을 하며 굵은 진주와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 다리를 침상에 올리고 무릎을 꼭 끌어안았다. “훗날 정인이 생기시면 혼인을 올리셔도 좋습니다. 저는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머물 곳만 있으면 됩니다...”그녀는 그저 잘 살고 싶을 뿐, 다른 어떠한 욕심도 없었다.축복받아야 할 신부가 혼례복을 입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핏덩이처럼 보였다.그녀의 하얀 피부와 대비되어 더욱 처량해 보였다.소하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독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공주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소. 이미 혼인했으니, 공주는 앞으로 나의 아내이자 이 저택의 안주인이오. 아무도 피할 필요 없고, 난 또 한번 혼인하지 않을 것이오.”소하의 말을 듣자 고지운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소하는 순간 흠칫 놀랐다.돌궐 사람들은 대체로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고지운도 예외는 아니었다.하지만 그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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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0화

여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그것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그는 원래 조용한 것을 좋아했다.악몽 같았던 5년 간, 이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렇기에 과거 김단과 혼인했을 때도 그녀를 맞이하러 가지 않았고, 예식도 올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한방에서 잠을 자지도 않았다.분명 이번이 두 번째 혼인이었지만, 오늘 겪은 모든 것이 그에게는 새롭기만 했다.비록 김단을 맞이한 것이 그녀를 곤경에서 구해 주기 위함이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녀에게 해주지 못했던 모든 것이 후회로 남았다.소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만 생각하자, 그만 생각하자.그가 평생 사랑했음에도 이어지지 못할 운명인 것이다.맹영지도 그러했고, 김단은 더욱 그러했다.맹영지의 죽음을 떠올리자, 소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사실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말 그녀가 자신에게 독을 썼다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도, 그는 그녀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그 5년이라는 세월동안 모든 것이 닳아 없어졌고, 어린 시절의 사랑마저 흩날리는 한 줌의 모래가 되어 작은 바람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훗날 몇 차례 맹영지를 보았을 때, 그는 그녀의 상태에 놀랐고 그녀의 불행한 처지를 동정했지만 마음만큼은 평온했다.오직 그녀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녀가 맹씨 가문으로 돌아간 것이 그를 위한 해독제를 찾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맹영지의 죽음은 그의 마음속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그는 그때 그녀를 구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자신의 무력함에 한없이 분노했다.그러니, 김단이 최지습과 함께 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만약 그와 함께였다면, 그는 김단이 또 다른 맹영지처럼 될까 봐 매우 두려웠을 것이다.자신이 또다시 그런 무력한 순간을 맞이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그것은 정말 그에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다시 그가 눈을 떴고, 어둠 속 그의 맑고 싸늘한 눈동자에는 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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