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몸을 일으켜 오늘 의방 기록부에서 고 영감의 처방전을 꺼내어 펼쳤다.금은화, 연교, 우방자, 담두시, 길경……줄줄이 이어지는 약재 이름들 사이로, 김단의 눈에 한 글자가 걸렸다.왕불류행.이 약재는 혈을 풀고 어혈을 삭이는 효능이 있어 주로 금창약이나 외상 치료제, 혹은 궁중 마마들의 월사 조절을 위하여 쓰이는 약재였다.풍진을 다스리는 데에도 효과는 있긴 하지만, 이 처방에 기재된 다른 약재들로도 충분한 상태였다.굳이 이 한 재를 더할 필요는 없었다.더욱이, 지금처럼 민감하고 중대한 시기에, 김단은 단번에 그 안의 숨은 뜻을 감지했다.왕불류행……고 영감이 혹시, 주상께서 위독하심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렇다면 고 영감은 지금 주상이 어디 계신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이내 다시 미간을 좁혔다.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고 영감에게 접근하느냐였다.생각을 이어가던 찰나, 그녀는 약방 하단의 낙관을 보고 문득 멈춰섰다.당명.당어의의 이름이었다.김단의 눈매가 본능적으로 날카로워졌다.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려 당 어의의 쪽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이미 흔들의자에 누워 단잠에 들었던 당 어의가 어느새 일어나 있었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녀를 향해 고정하고 있었다.김단은 온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드는 듯했다.그런데도 당 어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나으리,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혹 약방에 이상한 점이라도……?”김단은 입을 열지 않았다. 당 어의가 다가오자 조용히 손을 들어 약방의 몇 글자를 가리켰다.왕, 불, 류, 행.그러자 당 어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한 차례 훑어본 뒤 목소리를 낮추었다.“고 영감께서 그러시길, 나으리께서는 분명 그 뜻을 알아차릴 거라 하셨습니다.”당 어의는 고 영감의 사람이었다!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하지만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었다.궁 안은 깊고 넓은 물줄기와도 같아, 누구든 누구의 사람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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