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331 - Chapter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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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1화

말을 주고받는 사이, 그림자 속에 있던 자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희미한 빛이 얼굴을 스치자, 때가 잔뜩 묻고 살이 많이 빠졌건만 최지습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세번째 도령.”마침내 찾았다. 최지습의 가슴속에 기쁨이 솟구쳤다.그가 일부러 목강수의 서재 창에 흔적을 남기고, 반나절을 들여 목몽설을 가산 숲으로 불러낸 것은 모두 금역에서 자신과 물증을 함께 붙잡게 하려는 계책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몇 달을 더 헤매어도 호랑이군의 형제들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금역의 석대를 허물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쯧쯧.” 쉰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두번째 도령이었다. “우리의 영명무쌍하고 계책이 모자람 없는 평양원군도 이번에는 참으로 곤궁하시구려.” 그는 일부러 장단을 늘이며 빈정거렸다. “보라지, 목씨 가문의 손님 대접이란 참으로 특별하오. 아예 우리 백도령을 데려다 검은 물에 목욕까지 시켜 주지 않던가.”구석에 웅크린 몇몇 그림자도 답답한 웃음을 흘렸다.최지습의 입끝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보아하니 너희도 여기서 목욕을 제법 한가롭게 즐겼구나.”“어디가 한가롭단 말이오!” 여덟번째 도령이 목을 울리며 성을 냈다. 손목의 쇠사슬을 흔들자 칙칙한 쇳소리가 났다. “이놈의 축축한 기운에 뼈가 다 무너져 내리겠다니까.”“그러게 말이오.” 다섯번째 도령이 곧바로 받았다. “우리가 여기서 쥐를 몇 마리나 셌는지 아시오? 눈 빠지게 기다렸는데, 오시긴 오셔도 그리 더디 오시고, 게다가 꼴은 우리보다 더한 죄수 같으시니 원.”최지습은 그들의 농을 굳이 받지 않았다. 번개처럼 눈길을 굴려 모두를 훑었다. “모두 약을 먹였나. 사지에 힘이 없지.”“그렇지요!” 일곱번째 도령이 곧장 하소연했다. “그 늙은 개가 영악하기 짝이 없소. 우리를 잡을 때도 그 짓을 했지. 칠흑 같은 밤에 몽혼향을 풀어놓더니, 눈을 뜨니 이 귀신 같은 곳에 내던져졌소. 내력이 티끌만큼도 오르지 않아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니까. 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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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2화

“비켜라!” 소한의 눈빛이 서늘히 가라앉으며 호통이 터졌다.우문호가 김단을 곁에 붙들어 둔 생각만 스쳐도 흉중의 살기가 들끓어 당장이라도 뼈를 갈아 재로 만들고 싶었다.그러나 시종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머리를 숙여 공손히 아뢰었다. “약탕욕에 든 약재는 지극히 귀하여, 김 낭자께서 친히 가려 곱게 갈아 넣으셨사옵니다. 소공자, 부디 그 정성을 저버리지 마옵소서.”그 말이 맑은 샘물처럼 그의 천둥 같은 노기를 조금 식혔다. 소한이 약탕욕으로 시선을 돌리니, 자욱한 김이 피어올라 마치 김단의 기운을 머금은 듯 요동치는 마음을 살포시 어루만졌다. 그녀의 뜻이라면 어찌 함부로 저버리랴.하지만 곧 우문호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오늘 둘째 황자 전하께서 돌연 심기가 급박해져 급히 위태로우셨사와, 방금 전 김 낭자를 부쳐 구원케 하였사옵니다. 소공자께서는 지나치게 염려 마옵소서.” 시종이 다시 온화히 권하였다.소한의 낯빛은 물처럼 어두워지고 미간에는 번민이 물결쳤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끝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몸을 돌려 약탕욕으로 향했다.두 시진의 고행은 여전히 지옥 형벌과도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난번 침욕 뒤로 근골에 분명 기운이 조금 돌아온 터라, 이번에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 시종의 부축을 받아 탕에서 나왔을 때 얼굴빛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입술엔 물어뜯은 자국이 또렷했다.옷을 겨우 갖춰 입자 그는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성큼 밖으로 내달렸다. 회랑을 지나 뜰을 건너는 내내 그를 막는 이는 없었다. 마침내 우문호의 처소 문밖에 다다랐다.우달이 팔을 가로내며 무표정하게 막아섰다. “전하께서 지금 정양 중이시니, 소공자….”말을 채 맺기 전, 소한의 살을 에는 냉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소한이 중상에서 아직 완쾌하지 못해 기운이 들뜬 줄 알면서도, 그 눈빛이 스쳐 오자 가슴이 저도 몰래 움츠러들었다. 마치 새끼 이리가 늑대왕을 맞닥뜨린 듯, 본능적으로 엎드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그 자각이 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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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3화

김단은 입술만 달싹였을 뿐,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바로 그때 가까운 곳에서 시종 하나가 뜰로 들어와 우달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목씨 가문 육낭자가 알현을 청하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몽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종자!”그녀는 통지도 없이 내원으로 함부로 들어온 것이었다.우달이 놀라 급히 맞아 나가며 말했다.“목 낭자, 이러심은 예법에 합당치 않사옵니다!”목몽설은 코끝으로 가볍게 웃으며 턱을 들었다.“내 종자는 그대들 둘째 황자 전하의 귀빈이시다. 무엇이 어찌 예에 어긋난단 말이오?”그 말과 함께 우달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김단에게로 성큼 다가왔다.상대가 목씨 가문의 아씨인 만큼, 우달도 선뜻 손을 쓰지 못했다.목몽설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김단 앞에 멈춰 섰다.“종자!”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번졌고, 곁에 서 있는 소한을 힐끗 보며 눈빛에 잠시 놀람이 스쳤다가 곧 감추었다.문득 들이닥친 목몽설을 바라보는 김단의 가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일었다.목몽설이 이토록 예를 마다할 리가 없다. 틀림없이 큰일이 난 것이다.그녀는 목몽설의 손을 이끌어 한쪽으로 물리고서 그제야 물었다.“무슨 일입니까?”목몽설은 웃음을 머금은 채 우달과 소한을 한 번 스쳐 보더니 몸을 돌려 둘을 등지고, 낮게 속삭였다.“대군자께서 실종되셨다.”짤막한 한마디에 김단의 혈색이 순식간에 걷혔다.그녀는 미간을 누르며 다시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저도 알지 못하옵니다.” 목몽설이 거의 들리지 않게 낮춰 말했다.“어제 그분께서 목씨 가문의 금역을 물으러 오셨고, 그리고는 오늘 자취를 감추셨사옵니다!”목씨 가문의 금역…?목몽설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스며 있었다. “걱정돼옵니다. 그는 금역에 숨어들었다가 가주에게 들킨 것이 아닐까….”목 가주의 심성이 얼마나 모질한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최지습에게 정말 변고가 닥쳤다면…. 속으로, 자신이 그에게 지나치게 많은 말을 전한 것을 사무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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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4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곁에서 지켜보던 소한도 한 걸음 나섰다. “나도 가겠다.”이를 들은 우문호가 몸을 돌려 그를 보며 입가에 싸늘한 기색을 얹었다. “소 장군은 중상을 입었으니, 바깥나들이가 마땅치 않을 듯하오.”소한이 콧소리를 내뱉었다. “둘째 황자 전하 또한 방금 심계가 치밀었다 들었소. 전하는 가시면서 나는 어찌 못 가겠소?”살기가 번져 들며 기운이 팽팽해졌다. 이렇게 하여 김단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결국 넷이 함께 나서는 일로 굳어졌다.밤이 내린 주작대로는 인파가 물결쳤다. 어깨가 스칠 만큼 붐볐고, 갖가지 화등이 서로 자태를 겨루어 어둔 하늘을 대낮처럼 밝혔다.어룬과 관현의 소리가 그치지 않아 성시가 한껏 무르익었다.김단과 목몽설은 좌우에서 우문호와 소한에게 끼여, 겨우 발을 옮겼다. 이따금 우문호나 소한이 색다른 화등을 가리키며 한두 마디 우스갯소리를 던졌으나, 김단은 마지못해 응대할 뿐 마음은 화등에 있지 않았다. 목몽설은 더욱 그랬다. 그녀는 우문호를 지독히 싫어했으니, 지금처럼 나란히 걷는 것 자체가 괴로워 얼른 구실을 만들어 빠져나가고 싶었다.그때 앞쪽 거리에서 문득 잡희가 벌어졌다. 징과 북이 울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느릿이 걷던 인파가 일제히 앞으로 몰려들어, 잠시 사이에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김단은 그 틈을 타 재빨리 길가의 서화 좌판으로 몸을 붙였다. 서화를 고르는 시늉을 하며 곁의 먹을 손끝에 묻혀 좌판 나무 기둥에, 예전 열번째 도령이 가르쳐 준 호랑이군의 암문을 슬쩍 그어 두었다.최지습이 금역에 갔든 가지 않았든, 무슨 대비를 세웠든 아니든, 김단은 적어도 그가 무사한지부터 알아야 했다.“단이!”귓가에 소한의 고함이 꽂혔다. 한동안 김단을 찾지 못해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김단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재빨리 마지막 획을 그어 남기고는, 소한의 음성이 들려온 쪽으로 돌아섰다. “여기요!”김단의 목소리를 듣자 소한은 그 자리에서 방향을 잡았으나, 중상으로 기운 빠진 몸으로 인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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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5화

“푹직!”둔탁한 날이 살을 꿰뚫는 소리가 터졌다. 격통에 소한이 낮게 신음하며 몸이 크게 떨렸고, 이마끝에는 굵은 냉한이 순식간에 맺혔다. 얼굴빛은 백지처럼 질렸다.김단이 급히 돌아보니 쇠뇌살 한 발이 소한의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소한!”그녀가 놀라 외치며 급히 그에게로 달려갔다.영칠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어 김단과 소한을 호위하며 길가로 물렸다.김단이 소한을 부축하다가 두 손이 선혈로 물든 것을 보고 숨을 삼켰다. 그녀의 놀란 기색을 보자, 소한은 피에 젖은 입가를 애써 들어 올려 달래듯 미소를 지었다. 통증에 쉰 목소리였으나 묵직한 안심이 깃들어 있었다.“두려워 말오, 단이… 내가 있소.”익숙한 한마디가 김단의 심연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녀의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다. 곧 품에서 약병을 꺼내 환약 한 알을 꾹 집어 그의 입에 넣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지 않으며 차분히 말했다.“그대를 다치게 두지 않겠소, 소한. 조선에는 아직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소.”소한은 입꼬리를 힘겹게 움직였다. 숨은 옅고 목소리는 허약했으나, 끝내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우리… 그 안에… 최지습도 포함되오?”그 말에 김단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소한의 미소에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쓴빛이 번졌다.“오늘… 그 사람 이름을 들으셨을 때… 무척 다급해지셨소…”그는 여전히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다만 그녀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녀가 어떤 이를 걱정할 때 어떻게 눈빛이 흔들리는지. 그래서 그 셋 글자를 마음속 깊이 새길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억은 없건만 또렷이 안다. 그 사람이 그의 단이를 빼앗아 갔다는 것을…한편, 우문호는 몸을 번개같이 틀며 끊임없이 피했다.우달이 곧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와 우문호를 뒤로 호위했다.그런데 우문호의 시선이 목몽설의 자태에 꽂혔다. 그녀가 아랑곳하지 않고 가까운 골목으로 내달리고 있었으니, 자격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오늘 등불 축제를 가자고 먼저 말한 이가 목몽설이었음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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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6화

목몽설은 마침내 확신하였다. 저 자객들은 우문호를 노리고 몰려온 것이다.그런데도 우문호는 이 일이 목씨 가문과 연루되었다고 여기는 듯, 숨이 막히도록 쫓기면서도 끝내 목몽설의 손목을 잔뜩 움켜쥔 채 놓지 않았다.두 사람은 뒤엉킨 인파와 추격자들의 화살 틈을 헤치며 죽을 힘으로 달아나, 우연처럼 북적이던 성문을 빠져나와 성밖 칠흑 같은 수림 속으로 곧장 파고들었다.자객을 잠시 따돌렸음을 확인하고서야 우문호는 발을 멈추고 나무둥치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목몽설은 그의 손을 홱 뿌리치고, 아린 손목을 문지르며 성을 냈다.“우문호, 이게 무슨 짓이오? 그대가 붙들지만 않았어도 나는 벌써 안전한 곳으로 숨었을 것이오.”우문호가 몸을 돌았다. 드문 잎새 사이로 스민 달빛이 준수하되 싸늘한 얼굴을 비추었다.“목씨 가문이 꾸민 이 한판 구경, 목 낭자와 함께 보아야 더 흥미롭지 않겠소.”목몽설이 크게 성을 냈다.“허튼소리하지 마시오! 스스로 무슨 더러운 짓을 저질러 자객을 불러들여 놓고 우리 목씨 가문에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우리 집안이 그대처럼 인명을 초개같이 여긴다 생각하는 것이오.”“오, 목씨 가문이 아니라는 말이오.”우문호가 냉소를 흘리며 눈빛으로 눌렀다. “내가 그대 목숨을 건져 주었으니 얌전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내 사람들이 찾아오면 자초지종이 드러날 터이니.”그는 나무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기력을 가다듬었고,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목몽설은 분통이 터졌다.“내 목숨을 구했다니, 염치도 없구나.”명백히 그가 끌어들여 이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우문호는 끝내 그녀를 외면했다.사방을 둘러보니 숲은 캄캄하였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더 큰 화를 자초할까 두려워, 목몽설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털썩 앉았다.숨 죽은 숲속에 시간만 스며 흘렀고, 벌레 우는소리와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절이 겨울이라 뱀이 없다는 점뿐이었다.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 보이고 싶을 만큼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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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7화

우문호는 입을 열지 않았다.눈앞의 그림자가 하도 가냘퍼, 자칫 힘을 조금만 주어도 금세 꺾일 듯하였다.그런데도 감히 그를 업고 사람을 구하러 가겠다 하다니. 우스웠으나, 두 손은 어느새 목몽설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다.사내의 무게가 얹히자 목몽설은 이를 악물고 낮게 탁 내뱉으며 온몸의 기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큰 우문호를 끝내 등에 업어 올렸다.다만 너무도 무거웠다.그녀는 비틀비틀 걸음을 떼며 앞으로 나아갔다. 두 다리가 와들와들 떨렸다.속으로는 욕설이 치밀었다. 겉으로는 여윈 사람처럼 보이면서 어찌 이리 무거운가. 전생에 돼지였던가.물론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숲은 우거지고 칠흑같이 어두웠다. 초라한 달빛만이 발아래의 울퉁불퉁한 흙길을 겨우 비추었다.목몽설은 무거운 우문호를 업은 채 깊고 얕은 발자국을 번갈아 남기며 숲속을 헤쳤다.땀이 금세 이마와 등줄기를 흥건히 적셨고, 거친 숨소리는 적막한 숲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울렸다.우문호는 열에 들떠 의식이 오락가락했다.흐릿한 시야에, 땀과 흙으로 얼룩진 목몽설의 옆얼굴이 비쳤다. 몇 가닥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들러붙었고, 굳게 다문 입술과 눈빛에는 거의 고집에 가까운 강단이 어려 있었다.사실 그녀는 그를 버리고 혼자 갈 수도 있었다.설령 그가 죽는다 해도 모른다 둘러댈 구실은 얼마든지 있었다. 길이 엇갈려 놓쳤다고, 정황을 알지 못했다고.그런데 왜, 그는 그녀의 등에 업혀 있는가.말로 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감각이, 마치 잔잔한 물웅덩이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차갑고 혼탁하던 그의 심연에 가느다란 물결을 퍼뜨렸다.그러나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를 즈음, 목몽설은 문득 떠올렸다. 자신이 길눈이 어두운 자라는 사실을.무가에서 십수 년을 살면서도 이따금 길을 헤맸는데, 하물며 지세가 복잡한 이 어두운 숲에서야 오죽하랴.사방의 나무는 모양이 다들 비슷하고,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만 맴도는 듯하였다.초조와 절망이 넝쿨처럼 가슴을 죄었다.“내려… 내려 주거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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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8화

목몽설은 제자리에서 잠시 멍해 있다가, 우문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겨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곁에 말없이 주저앉았다.이곳은 죽은 듯 고요하고 냉기가 서려 있었다.우문호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고, 의식은 아스라히 끊겼다 이어지며, 한기와 고열에 잔 떨림이 일었다.목몽설은 잠깐 머뭇이다가 마침내 천천히 몸을 기울여, 자신의 체온으로 그의 식은 몸을 덥혔다.“우문호… 자지 마시오… 잠이 들면… 다시 못 깨어나오…”우문호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은 채 흐릿하게 응답했다.목몽설은 겁이 났다. 그가 자신의 곁에서 숨이 멎을까 두려웠다.생각 끝에 결국 말을 꺼냈다. “우문호, 이야기… 듣겠소?”우문호는 그녀가 잠들지 못하게 흥미를 돋우려 함을 알아차리고, 다시 흐릿하게 “음…” 라고 대답했다.이윽고 목몽설의 목소리가 서서히 흘렀다. “내가 언제부터 길눈이 어두운 자인 줄 알았는지 아시오?”말이 떨어졌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문호가 듣고 있음을 알았다. “세 살 적에, 제 집 안마당에서도 길을 잃은 적이 있소. 참말이오, 거짓이 아니오. 몸만 한 번 돌렸을 뿐인데, 그새 어디서 왔는지 순식간에 까마득해졌지.”우문호는 여전히 응답하지 않았다.목몽설은 기죽지 않고 말을 이었다.“그뒤로 어머님이 날 데리고 날마다 목가를 돌며 길을 익히게 하셨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목가는 너무 넓어. 열다섯이 되어서야 겨우 구석구석을 다 익혔거든. 그래도 가끔은 또 헤매더라.”이 말을 들은 우문호가 비로소 흐릿한 의식 속에서 반응했다.“그럼 어찌… 자네가… 길눈이 어두운 자란 걸… 잊었소?”그의 답이 들리자 목몽설은 순식간에 기운이 났다. 적어도 이렇게 말을 걸면 효험이 있었다.“그게 왜냐면, 나는 바깥길을 나설 때면 늘 마차를 탔거든. 자네 관저에 갈 적에도 앞잡이가 늘 길을 이끌었지. 목가 안에서도 올해는 그다지 길을 잃지 않았었고. 그러니 문득 떠올리지 못한들, 죄가 되겠소?”이 대답에 우문호는 끝내 미소를 비쳤다.그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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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9화

얼마가 흘렀는지, 목몽설의 목소리는 피로에 젖어 점점 낮아지고 우문호의 의지도 한계에 다다르려 했다. 그때 멀리서 어슴푸레한 함성이 연달아 일며 횃불의 일렁임과 함께 밀림의 어둠을 꿰뚫었다.“전하—!”“목 낭자—!”“둘째 황자 전하—!”목몽설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에 벼락처럼 환희가 터졌다.그녀가 우문호의 어깨를 흔들었다. “우문호! 들리오? 사람이 왔소! 우린 살았소!”곧장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 두 팔을 크게 저었다. “여기다! 우린 여기 있소!”그 목소리에는 울음이 엷게 배어 있었다.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자의 공포와, 간신히 목숨을 건진 기쁨이 함께 실려 있었다.우문호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불빛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가까워졌다. 흐릿한 시야에, 감격으로 물기 어린 목몽설의 눈동자가 놀라우리만치 밝게 빛났다. 그는 입가를 아주 미미하게 끌어올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한 듯했으나, 몰려드는 흑암과 피로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둘째 황자 관저.쇠뇌살이 소한의 몸을 꿰뚫었다. 김단은 재빠르게 지혈하고 약을 발랐다. 한 시진이 지나서야 간신히 피를 멎게 했다.소한은 오늘 막 약탕욕을 마친 터라 본디도 기력이 허했는데, 이처럼 큰 상처까지 입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소한의 종이처럼 창백한 안색을 바라보며 김단의 찌푸린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김단의 등 뒤로 한 그림자가 내려섰다. “약왕곡의 주인.”그제야 김단이 정신을 가다듬고 영칠을 한번 바라보며 물었다. “그 아이는 무사합니까?”“탈 없이 이미 댁으로 돌려보냈사옵니다.” 영칠은 사실대로 아뢰었으나 시선은 소한의 얼굴에 꽂혔다. 곧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약왕곡의 주인께 벌을 청하옵니다.”김단은 영칠이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조금만 일찍 나섰더라면 소한이 다치지 않았으리라 여긴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다가가 손을 내밀어 영칠을 일으켜 세우고 물었다. “소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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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0화

어수선한 생각을 억지로 거두어 들인 김단은 다시 영칠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이 참화가 무엇에서 비롯된 일인지 아시겠습니까?”영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뢰려 하던 참이옵니다. 모 선생 쪽에서 들어온 전갈로는, 오늘의 자격은 당국 세자가 꾸민 자들이옵고, 표적은 우문호라 하였사옵니다.”그러하다면 소한은 그야말로 재앙에 휘말린 셈이었다.김단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또한 기이합니다. 밤에 화등을 보러 나가자는 일은 우리끼리 갑자기 정한 일인데, 당국 세자 쪽이 어찌 알았겠습니까?”가면 아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우문호 곁에 세자 쪽 사람이 섞여 있사옵니다.”이에 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을 겨눈 것이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오늘 호랑이군에게 암문을 남겨 두었습니다. 누가 찾아오는지 살펴보십시오.”“예.” 영칠이 짧게 응한 뒤 눈빛을 번뜩이며 재빨리 그늘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바로 그때 우달이 문을 다급히 열었다. “김 낭자! 속히 우리 전하를 보아 주시오!”김단의 미간이 다시금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장 우달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다시 우문호를 마주했을 때, 그는 침상에 반듯이 누워 눈을 굳게 감고 있었고, 얼굴에는 불그스름한 비정상의 열기가 번지고 있었다.곁에 서 있던 목몽설이 김단을 보자 다급히 말했다. “종자, 어서 와 보세요, 둘째 황자께서 오래도록 열이 내리지 않아요!”김단은 목몽설의 흐트러진 쪽지를 힐끗 보고는 우달을 향해 말했다. “수고로우시나, 사람을 시켜 목 낭자를 씻게 하시고, 다시 사람을 붙여 댁으로 모셔 주시옵소서. 전하 쪽은 제가 맡겠사옵니다.”아녀자가 우문호와 함께 밖에 나갔다가 이런 몰골로 돌아온 것을 남의 눈에 띄게 둘 수는 없었다. 잘못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목몽설에게 불필요한 구설이 따를 터였다.우달은 목몽설을 한번 훑어보고, 오늘 내내 전하를 보살핀 공을 떠올리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목 낭자, 이리 오시지요.”목몽설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끝내 근심 가득한 눈길로 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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