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기울 무렵, 하늘가의 잔빛이 심월의 얼굴을 유난히 환하게 비췄다. 그러나 그 밝음은 꺼져 가는 촛불 같아, 어렴풋이 죽음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영칠이 식상을 들고 왔을 때에도, 심월은 여느 때처럼 작은 걸상에 앉아 있었다.심월은 그를 보자 입끝을 비틀었다. 눌러 담은 분노에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허… 누군가 했더니.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오.”몸을 움직일 수 없어도, 그의 성난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영칠은 대꾸하지 않았다. 식상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보양 죽 한 그릇을 꺼내숟가락으로 한 술 떠서 심월의 입가로 가져갔다.심월은 먹지 않았다. 눈빛만 더욱 사나워졌다.“내 스승이 너를 진창에서 건져 올렸다오. 이름을 주고, 살 길을 주고, 재주를 가르쳐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었소. 그런데 자네가 한 보답이 무엇이오. 그 미친 여자 편을 들어 장서각을 불태우고, 백 년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었소. 약왕곡에, 내 스승의 은혜에 자네가 면이 선다 생각하오.”끝말이 격해졌다. 혈도가 봉해지지만 않았더라면 벌써 탁자를 치고 일어섰을 것이다.영칠은 바위처럼 서 있었다. 독침 같은 말이 연거푸 날아들었으나, 가면 뒤의 얼굴도, 그보다 더 단단한 마음도 흔들리지 않았다.심월의 거친 숨이 가라앉자, 그는 숟가락과 그릇을 내려놓았다. 가면 너머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얼음 송곳처럼 박혔다.“그대도 아직 전 약왕곡의 주인의 은덕을 기억하오? 그래, 우리의 무공과 의술은 전 약왕곡의 주인께 배웠소. 하지만 심월, 그분이 언제 사람의 이성을 현혹하고 혼을 빼앗아 목숨을 해치라 가르친 적이 있었소? 같은 문중에게 독한 손을 뻗으라 하였소? 약왕곡을 깊은 나락과 불바다로 밀어 넣은 자는 내가 아니었소. 약왕곡의 주인도 아니었소. 너였소, 심월.”영칠의 시선이 화려한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마치 벽을 꿰뚫어 약왕곡의 참혹한 흔적을 바라보는 듯했다.“자네가 약왕곡의 주인에게 품은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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