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651 - Chapter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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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1화

“아씨!”숙희가 놀라 약사발을 내려놓고 달려와 부축했다.영칠이 더 빨랐다. 한 걸음에 다가서서 앞으로 고꾸라지던 김단의 몸을 붙들어 세웠다.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피기가 쏙 빠진 얼굴, 핏기 없는 입술.완전히 시들어 버린 꽃 같았다.영칠이 맥을 짚고 낮게 말했다.“약왕곡의 주인은 심신이 지쳐 탈진했을 뿐이오. 당장 쉬어야 하오.”그는 김단을 가로로 안아 들었다.“여긴 그대가 맡아 살피시오. 깨어나는 기미가 보이면 미지근한 물을 먹이시오. 나는 약왕곡의 주인을 방으로 모시겠소.”숙희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바닥 여기저기서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그녀는 그들을 돌아보았다가, 영칠 품에 안겨 나가는 김단을 다시 보았다.걱정과 서늘한 쓰라림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김단은 만 길 깊은 찬 물밑에 가라앉은 듯했다.숨을 죄는 압박과 살을 베는 냉기뿐이었다.피로 물든 최지습의 형상,칠흑처럼 가라앉은 소한의 눈동자,독살스런 심월의 웃음….잘게 부서진 장면들이 뒤엉켜 몰아쳤다.그녀는 소리치려 했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끝 모를 어둠이 삼키려는 찰나, 아주 희미한 빛과 온기가 서서히 스며들었다.그녀는 힘겹게 눈을 떴다.흐릿하던 시야가 맞춰졌다.익숙한 객실의 천장, 창밖에서 스며드는 이른 아침의 빛이 눈에 들어왔다.목은 바싹 말라 쓰라렸고, 온몸은 바위에 깔린 듯 뭉개진 통증만 남아 있었다.“아씨! 깨어나셨습니까!”곁을 지키고 있던 숙희가 벌떡 일어나 침가로 몸을 기울였다.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오래 울어 온 얼굴이었다.“정말 기절할 뻔했습니다. 하루 밤낮을 내내 주무셨어요.”김단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거의 갈라졌다.“물….”숙희가 서둘러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그녀의 등을 받쳐 일으켜, 조금씩 조심스레 입에 댔다.미지근한 물이 메마른 목을 적셨다.기력이 아주 조금, 돌아왔다.김단의 의식이 또렷해지자, 그녀가 숙희의 손을 움켜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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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2화

김단은 진작부터 심월이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약왕곡은 삼백여 년을 버텨 온 곳이었다. 그 안에 쌓인 것은 세상에 드문 약재와 의서였다.게다가 정보와 암살을 맡는 조직까지 따로 두고 있었다.약왕곡의 세력은 강했다. 강호는 물론 조선과 당국의 황실까지 경계할 정도였다.약왕곡을 배후에 두면, 김단은 훗날 무엇이든 뜻대로 할 수 있었다.그러니 심월이 믿을 리 없었다. 김단이 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 약왕곡을 통째로 버릴 거라고.하지만 심월이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약왕곡이었다.그럴수록 그녀가 쥔 패도 그것뿐이었다. 그걸로 위협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그녀가 정말로 약왕곡의 모든 것을 개의치 않는다고, 심월이 믿게 만드는 것.생각이 그 지점에 닿자, 얼음처럼 서늘한 기운이 가슴 깊은 밑바닥에서 밀려올라왔다.그녀는 천천히 얇은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에서 번지는 냉기가 주위를 싸고돌았다. 곁에 있던 숙희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아씨… 어디로 가시려는 거예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으셨어요.”숙희가 조심스레 말렸지만, 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창가로 걸어가 창살을 밀어 올렸다.바깥은 볕이 좋았다. 약밭의 약초는 무성했고, 멀리 산봉우리 두 개가 하늘로 곧게 솟아 있었다. 마치 해를 가릴 듯한 기세였다.그 너머가 장서각이었다.그곳에는 수많은 의서의 고본과 비방의 기록이 감춰져 있었다.예전에 목씨 관저의 밀실에서 보던 의서는, 거기에 비하면 그저 평범한 책에 불과했다.그런데도 심월은 몹시 경계했다.그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장서각의 것들이라면, 심월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김단의 눈빛이 저절로 서늘해졌다.그녀는 몸을 돌렸다. 목소리는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했지만, 듣는 이를 얼어붙게 만드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영칠을 불러 와. 그리고 화유와 횃불을 준비해.”숙희가 눈을 크게 떴다. 거의 잘못 들은 줄 알았다.“아,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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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3화

코를 찌르는 화유가 마른 나무 문살과 계단, 책장 위로 쏟아졌다.왈칵이는 소리와 함께 냄새가 퍼졌다.심월이 눈을 부릅떴다. 핏줄이 서며 소리쳤다.“김단, 제정신이십니까? 당장 멈추십시오!”“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대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감히 그런 일을 하시다니, 감히!”목소리는 분노와 공포에 뒤틀려 있었다.김단이 천천히 돌아보았다.눈빛은 무서울 만큼 고요했다.“기회는 드렸습니다. 이틀. 소한의 곡독을 풀라고 했으나, 그대는 하지 못하셨습니다.”심월이 이를 악물었다.“소한 한 사람 때문에 약왕곡을 통째로 무너뜨리시겠다는 겁니까!”“그렇습니다.”김단의 대답은 차가웠다.“소한만이 아닙니다. 최지습 때문입니다. 그대가 소한을 조종해 최지습을 죽이려 하던 그때부터 그대와 말로 따질 일은 끝났습니다. 오늘은 장서각, 내일은 뒷산 약지입니다. 두고 보십시오.”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심월을 보지 않았다.손끝이 가볍게 흔들렸다.영칠이 불씨통을 꺼냈다.바람을 스치듯 한번 흔들자 주홍빛 불꽃이 탁 켜졌다.“안 됩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심월이 절규했다. 몸을 던지고 싶었으나 혈도가 막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는 눈 뜬 채로, 영칠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불씨통의 불을 화유에 젖은 장서각을 향해 던지는 순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화르르—!불길이 기름을 만나 순식간에 치솟았다.새빨간 불꽃의 혀가 사슬을 끊고 풀려난 맹수처럼 목조 구조물을 미친 듯 핥아댔다. 파직파직 소리가 터지며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갔다. 짙은 연기가 구름처럼 치솟아 하늘을 찌를 듯했고, 하늘 전체를 검게 물들일 기세였다.불빛이 출렁이며 김단의 얼굴을 반쯤 밝히고 반쯤 그늘지게 만들었다.그녀의 눈빛은 타오르는 불 속에서도 식지 않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정녕 미치셨습니까, 김단. 제발 정신을 차리십시오!”심월이 완전히 무너졌다.목이 터져라 욕설과 울부짖음이 뒤엉켰다.백 년을 잇는 보물이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는 걸 보자, 가슴까지 함께 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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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4화

해가 기울 무렵, 하늘가의 잔빛이 심월의 얼굴을 유난히 환하게 비췄다. 그러나 그 밝음은 꺼져 가는 촛불 같아, 어렴풋이 죽음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영칠이 식상을 들고 왔을 때에도, 심월은 여느 때처럼 작은 걸상에 앉아 있었다.심월은 그를 보자 입끝을 비틀었다. 눌러 담은 분노에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허… 누군가 했더니.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오.”몸을 움직일 수 없어도, 그의 성난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영칠은 대꾸하지 않았다. 식상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보양 죽 한 그릇을 꺼내숟가락으로 한 술 떠서 심월의 입가로 가져갔다.심월은 먹지 않았다. 눈빛만 더욱 사나워졌다.“내 스승이 너를 진창에서 건져 올렸다오. 이름을 주고, 살 길을 주고, 재주를 가르쳐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었소. 그런데 자네가 한 보답이 무엇이오. 그 미친 여자 편을 들어 장서각을 불태우고, 백 년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었소. 약왕곡에, 내 스승의 은혜에 자네가 면이 선다 생각하오.”끝말이 격해졌다. 혈도가 봉해지지만 않았더라면 벌써 탁자를 치고 일어섰을 것이다.영칠은 바위처럼 서 있었다. 독침 같은 말이 연거푸 날아들었으나, 가면 뒤의 얼굴도, 그보다 더 단단한 마음도 흔들리지 않았다.심월의 거친 숨이 가라앉자, 그는 숟가락과 그릇을 내려놓았다. 가면 너머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얼음 송곳처럼 박혔다.“그대도 아직 전 약왕곡의 주인의 은덕을 기억하오? 그래, 우리의 무공과 의술은 전 약왕곡의 주인께 배웠소. 하지만 심월, 그분이 언제 사람의 이성을 현혹하고 혼을 빼앗아 목숨을 해치라 가르친 적이 있었소? 같은 문중에게 독한 손을 뻗으라 하였소? 약왕곡을 깊은 나락과 불바다로 밀어 넣은 자는 내가 아니었소. 약왕곡의 주인도 아니었소. 너였소, 심월.”영칠의 시선이 화려한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마치 벽을 꿰뚫어 약왕곡의 참혹한 흔적을 바라보는 듯했다.“자네가 약왕곡의 주인에게 품은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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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5화

“약왕곡의 주인은 마음에 둔 이를 위한다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소. 자신의 목숨까지도. 하물며 손에 잡힌 외물들이랴. 심월, 정말로 약왕곡을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허물을 인정하고 손을 거두시오. 그게 자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오.”말을 마친 영칠은 더 붙이지 않았다.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묵직한 나무 문이 그의 등 뒤로 가만히 닫히며 안팎을 갈랐다.방에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거친 숨소리와 희미하게 떠도는 차가운 단향만이 남았다.심월은 굳은 눈으로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방금 마지막 말, 그중에서도 김단의 의술에 대해 거의 맹목에 가까운 절대 신뢰를 드러낸 그 빛이, 독침처럼 그의 오만한 심벽을 깊게 찔러 들어왔다.말도 안 된다. 약지가 없으면, 그런 상처는 도저히 돌아오지 않는다.영칠은 분명 속이고 있다. 마음을 무너뜨리려는 꾀다.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주입하듯 되뇌었다. 흔들리는 자만심을 간신히 붙들어 매듯이.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두려움이 조용히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알 수 없음과 통제 밖의 것에 대한 공포였다.그는 문득 떠올렸다. 자신이 맹독에 쓰러졌을 때, 막 의술을 익히기 시작한 김단이 그 독을 풀어 주었다는 사실을.그런 솜씨. 그 재능이, 그를 더욱 뒤흔들었다.시선을 들어 창밖을 보았다. 멀리 검은 연기는 이젠 짙지는 않았지만, 가느다란 줄기들이 여전히 하늘로 스며 오르고 있었다.그녀라면, 약지를 정말로 부숴 버릴지도 모른다.안 된다. 김단에게 그리 하게 둘 수는 없다.기다릴 수 없다. 다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끝내 독해진 생각 하나가, 분노의 꼭대기에서, 그리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세한 공포의 밑동에서, 광증처럼 뻗어나갔다.저들이 그토록 아끼는, 곡충에 조종당하는 그 말 한 점. 그 미친 여자가 파괴를 들이밀어 나를 협박하겠다면… 내가 보여 주리라. 진짜 절망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게 해 주겠다.김단에게 알게 하겠다. 누가 생사를 가르고, 누가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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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6화

침상에 고요히 누워 있던 소한의 몸이 예고 없이 격렬하게 경련했다.뼈마디에서 이를 시리게 하는 잔잔한 마찰음이 났다. 마치 몸 안 어딘가의 실끈이 거칠게 당겨진 듯했다.곧바로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잿빛이 섞인 검은 눈동자. 생기라고는 한 올도 없었다. 싸구려 유리처럼 윤기가 모조리 닳아 없어져, 흔들리는 촛불만 무심히 비췄다. 차갑고, 죽은 듯 고요했다.“소… 소 장군?”침상 곁을 지키던 약동이 그 괴이한 광경에 혼이 빠져나간 듯 숨죽여 외쳤다.그 순간, 보이지 않는 실에 사정없이 끌려올려진 인형처럼, 소한의 몸이 번개처럼 세차게 일어섰다.동작은 굳었으나, 속도만큼은 기괴하게 빨랐다.그가 고개를 돌렸다.그 죽음 같은 잿빛 눈이, 소리를 낸 약동을 정확히 겨눴다.약동 둘은 기겁해 얼굴빛이 질렸다. 공포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문 쪽으로 비틀거리며 내달렸다.그러나, 문빗장에 손끝조차 닿지 못했다.소한이 번개처럼 몸을 던졌다. 매복한 표범이 튀어오르듯, 남은 건 흐릿한 잔상뿐이었다.내리친 장풍은 날카롭고 음흉했다. 평소 그가 쓰던 무공의 결이 아니었다.두 약동의 목덜미를 정확히 눌렀다.거친 신음 두 줄. 더 이상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두 사람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의식이 꺼졌다.소한은 쓰러진 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곧장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걸음은 뻣뻣했으나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빨랐다.그는 소리도 없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목표는 분명했다.수많은 약재가 잠든, 지금은 거대한 짐승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백초약루였다.백초약루 안에는 약재가 빼곡했다. 수백 가지 약향이 엉겨 붙어 공기가 무거웠다.소한의 목표는 분명했다.사람을 살리는 양약들은 모조리 외면했다. 곧장 독초 표식이 붙은 약궤로 걸어갔다.손놀림은 능숙했고, 집어 드는 양도 정확했다. 절심초, 뇌공등, 오두분 같은 색이 수상하고 비릿한 냄새가 도는 마른 독초들을 잇달아 꺼냈다.곧이어 백옥 절구와 옆에 놓인 불씨통을 찾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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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7화

암위들은 자칫 소한의 목숨을 다치것을 염려해 힘을 쓰지 못했다. 수가 묶이니, 광증이 오른 데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소한에게 연거푸 밀렸다. 위태로움이 눈앞에 겹쳐졌다.김단의 가슴은 타들었다. 퍼져 가는 독연을 보며 머릿속에 단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혹여… 내 피라면, 다시 한 번 그의 몸속 미친 곡독을 잠시라도 가라앉힐 수 있을까.그러나 그녀의 등장 자체가, 더 깊고 더 위험한 스위치를 단번에 당겨 버린 듯했다.암위와 뒤엉켜 싸우던 소한의 몸이 문득 굳었다. 공격 동작이 찰나만큼 멎었다.잿빛 눈동자가 짙어지는 독연과 허둥대는 그림자를 꿰뚫고, 한 점을 또렷이 붙들었다. 김단이었다.아득한 곳에서 내린 절대의 명을 받은 자처럼, 그는 다른 모든 싸움을 내팽개쳤다. 낮게 울부짖는 소리를 흘리며,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김단에게로 죽음을 무릅쓰고 내달렸다.“약왕곡의 주인님, 물러서십시오!”뒤쫓아오던 영칠이 벼락처럼 몸을 쏘았다. 길을 막아 세우려 했다.하지만 이때의 소한은 힘이 인간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치솟아 있었다. 영칠이 전력을 다해 막아섰으나, 오히려 소한의 손바닥에 가슴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날아갔다.몸이 기둥에 처박히며 겨우 발을 붙였지만, 속의 기혈이 요동쳤다.그 찰나 사이에, 소한의 손이 이미 김단의 목을 움켜쥐었다.쇠사슬 같은 냉기. 차갑고 정확했다.“약왕곡의 주인님!”영칠이 낯빛을 잃었다. 뒤흔드는 기혈을 억누르며 허리의 장검을 번개처럼 뽑아 들었다. 칼끝에 찬 서늘함이 응결했다. 살기가 서렸다.그에게 김단의 안위는 모든 것에 앞섰다. 상대가 누구든, 이유가 무엇이든, 김단을 위협한다면 베어야 했다.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무릅쓰고 찌르려는 찰나, 목을 옥죄인 손아귀에 푸르게 질린 김단이 마지막 한 줄기 기운을 끌어모았다. 짓눌린 목구멍에서 겨우겨우 소리가 새었다.“안… 됩니다…”영칠의 검세가 허공에서 굳었다. 속이 타들었다.“약왕곡의 주인님! 소한은 이미 완전히 조종당했습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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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8화

소한의 텅 빈 눈동자 가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격렬히 몸부림치며 번뜩였다. 얼어붙은 호수 밑을 가르며 튀어 오른 한 마리 물고기처럼. 미약했으나 분명했다.김단은 자신의 목을 죄고 있던 그 무서운 손에 아주 미세한 힘의 이완이 생긴 것을 또렷이 느꼈다.거의 끊겨 가던 숨이 간신히 이어졌다. 한 줄기 공기가 들어오자, 그녀는 남은 기운을 모아 더 또렷한 소리를 냈다.“소한… 나, 나야…”누구지.누가 그를 부르는가.소한의 의식은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의 바다에서 미친 듯 발악했다. 사방에서 산처럼 무거운 압력이 내려앉았다. 수없이 차가운 촉수가 그의 의식을 휘감아 영원한 혼돈으로 끌어내리려 했다.그는 버텼다. 그러나 가둔 짐승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그때, 연약하지만 익숙한 그 부름이 왔다. 고집스러운 햇빛 한 줄기가 층층의 어둠을 꿰뚫어 그의 가로막힌 심연까지 곧게 스며들었다.그가 퍼뜩 몸을 떨었다. 눈앞의 안개가 조금 걷혔다.단이…?흐릿하던 시야가 서서히 또렷해졌다. 초점이 힘겹게 맞춰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았다.자신의 손으로, 김단의 목을 사정없이 조르고 있었다.김단의 얼굴은 푸르게 질려 있었다. 숨은 가늘었다. 눈에는 고통과 믿기지 않는 놀람이 가득했다.소한은 덜컥 놀랐다. 끝없는 공포와 살을 에는 후회가 한순간 심장을 얼음 송곳처럼 꿰찔렀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그는 불에 덴 듯 급히 손을 놓았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목소리는 쉰 채 일그러져 자신 같지 않았다. “단이… 방, 방금 그건 내가 아니었어… 내가 아니야.”무슨 말이든 해 보려 했다. 그러나 말은 엉켰다. 거대한 공포와 자책이 그를 삼켰다. 온몸이 싸늘해지고,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김단은 갑자기 손이 풀리자 지탱을 잃고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목을 감싼 채 격렬하게 기침을 쏟아냈다. 기침 한 번 한 번마다 거의 부서질 듯한 목뼈가 당겨져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소한에게 말하고 싶었다. 방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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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9화

“예.”암위들이 명을 받고 기절한 소한을 곧장 들어 아래로 옮겼다.그제야 김단이 숨을 돌렸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짙고 기이한 자흑의 독연이 밤바람을 타고 퍼지고 있었다. 죽음의 장막처럼 하풍 쪽으로 급속히 번졌고, 약왕곡의 절반 가까이가 치명적인 연무에 뒤덮여 갔다.그 하풍 끝에서 이미 허겁지겁 뛰는 소리, 거친 기침과 신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김단의 가슴이 와락 내려앉았다.그녀는 목을 태우는 듯한 통증과 빙글거리는 현기증을 억눌렀다. 독연이 몰려드는 하풍의 구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이 시각의 밤바람은 공범이었다. 걸쭉하고 달큰한 비린내를 머금은 자흑의 독무를 실어 나르며, 낮은 지대의 집들과 약초밭을 향해 파도처럼 덮쳤다.하풍에 가까워질수록 공기 속 독기가 더 짙어졌다.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졌다. 코끝을 찌르는 달큰한 비린내는 거의 응결해 콧속을 파고들었고, 메스꺼움과 어지럼을 밀어 올렸다.범상한 이라면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곧장 인후가 타들고 숨이 막힐 터였다.다행히 김단의 몸은 백독불침이었다. 보통 사람을 즉사시킬 독연도 그녀에게는 그저 시야를 흐리는 탁한 기운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바로 그 무탈함 때문에, 그녀는 눈앞의 지옥 같은 참상을 더 선명히 볼 수밖에 없었다.한때 고요하던 약왕곡의 하풍 끝은 이미 인간 지옥이 되어 있었다.처마 아래, 길가 곳곳에 몸부림치며 뒹구는 사람 그림자가 널렸다.사람들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사정없이 그러쥐고 있었다. 눈알은 핏발이 서서 불거졌고, 얼굴빛은 섬뜩한 청자색으로 변해 있었다.입을 한껏 벌려도 새어 나오는 소리는 찢어진 풍구 같은 헐떡임뿐이었다. 숨 한 번 들이킬 때마다 온몸이 격렬히 경련했고, 입가에는 핏방울 섞인 거품이 번져 나왔다. 곧 숨이 꺼질 기세였다.짙은 독연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탐욕스러운 큰 뱀처럼 더 넓은 구역을 집어삼켰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생기가 순식간에 말라갔다.김단은 참혹이 가득한 자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몸에는 독기가 한 점도 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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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0화

김단은 소리를 듣자마자 약동을 향해 달려갔다.“모 선생은 어디에 있느냐.”약동은 한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가까운 곳을 가리켰다.“저기입니다.”그 말을 듣자 김단은 곧장 손짓한 방향으로 뛰었다.차가운 석계 위에 모 선생이 쓰러져 있었다. 얼굴빛은 창백함을 지나 죽음 같은 납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입술과 손톱 끝은 자흑으로 변해 있었다.숨결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가슴만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금세라도 멎을 듯 위태로웠다.입가에는 거품과 핏물이 엷게 말라붙어 있었다. 늘 온화하고 슬기롭던 눈은 굳게 감겼고, 눈두덩은 파였으며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마른 손 하나가 곁의 엎어진 약바구니에 힘없이 걸쳐 있었다. 손끝은 살짝 오므라들어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를 붙들려는 듯했다.“모 선생.”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장 몸을 숙였다. 코끝에 손을 대니 숨은 미세했고, 맥을 짚으니 무겁고 끊어질 듯했다. 한 올에 매달린 목숨이었다.망설임은 없었다. 김단은 자신의 손바닥을 모 선생의 입에 맞댔다. 아픔을 돌아볼 틈도 없이 상처를 눌러 선혈을 짜내어 그의 입으로 떨어뜨렸다.곧 은침을 꺼내 요혈 몇 곳을 연달아 찔렀다.그 순간 모 선생의 몸이 크게 뒤틀리며 경련했다. 목구멍에서 길고도 힘겨운 들숨이 터져 나왔다. 마치 물속에서 간신히 머리를 내민 자의 첫 숨 같았다.“컥… 콜록, 콜록.”이어지는 것은 가슴을 찢는 기침이었다. 시커먼 자흑의 응혈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연거푸 토해냈다.독혈을 뱉어내자 얼굴빛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죽음을 뜻하던 납회색이 서서히 걷혔다. 미약하나 분명한 숨이 다시 이어졌다.그는 힘겹게, 아주 느리게 눈을 떴다. 흐릿하던 눈동자가 조금씩 초점을 찾더니, 무릎을 꿇고 곁에 앉아 있는 김단의 창백한 얼굴에 닿았다. 눈에는 다급함과 걱정이 가득했다.“약왕곡의 주인님…”목소리는 찢어진 징처럼 쉬어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기운이 크게 새어 나갔다.“또… 또 살려 주셨군요…”“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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