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Bab 981 - Bab 990

1052 Bab

제981화

원래라면 이 막사 안에서 새어 나오는 아주 미세한 숨소리조차도 최지습은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최지습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자 둘째 도령의 웃음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는 조심스레 앞으로 다가오며 낮게 말했다.“걱정 마세요. 형님께서 동원한 병력은 이미 모두 복귀시켰습니다. 임학과 다섯 째도 떠나지 않고 모두 밖에 있어요.”그 말에 최지습의 눈빛이 번뜩였다.“그럼… 모두가 알고 있었단 말이냐?”이 모든 소동이 자신만을 속이기 위한 연극이었다니. 둘째 도령은 그가 뿜어내는 살기에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그럼, 저는 밖에 나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오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나가기도 전에 최지습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모두 연병장 열 바퀴씩 뛰어라.”“네!”밖에서는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왔다. 웃음기가 섞인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들이 떠나자 막사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웠다. 김단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손바닥을 주물럭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과거 정암과 함께할 때도 설렘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아끼고 숨김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기에 얼굴이 붉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김단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 먼저 마음을 내비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암과 맺어질 때도 그가 먼저 자신의 모든 걸 내던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김단은 최지습이 먼저 입을 열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러나 최지습도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가장 말을 많이 할 때는 전술과 전략을 논할 때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그런 문제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그리고 오늘 이 전략에 있어 자신이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의 시선이 자연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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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2화

김단은 순간적으로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최지습의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내가 낭자보다 나이도 많고 무뚝뚝한 사람이라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소. 행동도 투박해서 낭자한테 미움 살 짓만 했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낭자가 나와 함께해 준다면…”그의 눈빛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최지습은 마침내 김단을 바라보며 맹세하듯 말했다.“이 최지습이 맹세하건대, 이 생이 다할 때까지 낭자 하나만을 사랑하겠소.”그 말에 김단은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최지습의 품에 안겼고 그는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안았다.그 시각 연병장에서 여덟 바퀴를 간신히 돌고 있던 호랑이 군들은 숨을 헐떡이며 겨우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다가오는 것을 먼저 발견한 것은 다섯 번째 도령이었다. “응?”그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멈추자 다른 이들도 줄줄이 그들을 발견했다. 김단은 부끄러운 듯 몸을 반쯤 최지습의 뒤에 숨기고 있었고 최지습은 평소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호랑이 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다 문득 김단과 맞잡은 손을 높이 쳐들었다.“와아!”“드디어!”연병장에는 순식간에 호랑이 군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모두가 그들의 사랑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역시 둘째 형님이십니다!”“큰 형님! 술이라도 한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축하드립니다!”최지습의 입꼬리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 있었다.“훈련 끝나고 한잔 하지.”“좋습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리가 풀린 듯 힘 없이 달리던 호랑이 군들은 갑자기 기운이 솟은 듯 미친 듯이 내달렸다. 남은 두 바퀴까지 모두 채운 그들은 곧장 두 사람 앞으로 달려왔다.“김단! 아까 큰 형님께서 뭐라고 하셨소?”“그래! 그 손은 어쩌다 잡은 것이오? 얼른 말해보시오.”김단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익을 듯 붉어지자 최지습은 그녀를 자기 뒤로 살짝 숨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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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3화

둘이 손을 꼭 맞잡고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호랑이 군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마다 웃으며 술 한 잔 달라며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단과 최지습은 웃음 섞인 시선을 뒤로하고 겨우 막사 앞에 도착했다. 김단은 막사 앞을 지키던 병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마 날이 밝기도 전에 온 병영에 소문이 퍼지겠어요.”최지습도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전하께도 이 소식을 전하려 하던 참이오.”“이렇게 급히요?” 김단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최지습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내 나이가 적은 건 아니지 않소.”그 말에 김단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아직 서른도 안 넘기셨잖아요. 그 정도면 젊은 거죠.”“그럼 서른을 넘기면? 그땐 싫어할 것이오?”그의 농담 속에는 은근한 진심이 배어 있었다. 그와 김단은 무려 여덟 살 차이가 났다. 최지습은 항상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었다. 그녀는 일부러 한참을 생각하는 척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다 최지습의 눈썹 사이에 그늘이 서서히 번지는 걸 보고서야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답했다.“큰 도령님께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단단해진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죠.”그 말에 최지습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더니 그는 피식 웃으며 낮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오?”묘하게 늘어진 그의 말끝에 숨은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김단은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그…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최지습은 그런 그녀를 보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알고 있소.”그의 목소리는 낮고도 부드러웠다. 달콤한 음색 속에 은근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쥔 크고 따뜻한 손. 그저 그의 손에 이끌려 남은 일생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르던 찰나 최지습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김단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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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4화

그 말은 마치 벼락처럼 내리꽂혀 임학이 애써 가슴속 깊이 눌러두었던 기억들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그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자신은 최지습에게 주먹을 휘두를 자격조차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툭하고 떨어지더니 천천히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못할 정도로 숨이 막혔다. 수많은 말이 그의 목구멍에 걸려 올라오지 못한 채 휘돌고 있었다.김단은 임씨 가문의 보물이었고 어릴 적부터 온 가족이 품에 안고 조심스레 키워온 아이였다고 최지습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무리 최지습이라고 해도 김단의 손끝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반대하고 싶었고 그 둘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임학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세 해 전이라면 그는 당당하게 최지습을 거절했을 거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했던 모든 행동들이 자신을 찌르는 과녁이 되어 돌아왔고 그의 목을 죄고 가슴을 베었다. 한참을 침묵한 끝에 그는 겨우 몇 자를 내뱉었다.“김단을 다치게 하지 마세요.”그 말이 얼마나 우습게 들릴지 잘 알고 있었다. 김단에게 가장 잔인한 상처를 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 아니었던가? 최지습은 임학의 눈에 어른거리는 그 참담한 심정을 고스란히 읽어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미안함도 있었고 뼈를 깎는 후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너무 늦은 회한이었다.김단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이미 말라붙은 흔적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는 낙인이었다. 그 흔적을 덮어줄 수 있는 위로는 없었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용서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최지습은 임학의 이름을 김단 앞에서 꺼내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한, 절대. 다만 그녀를 지키겠다는 뜻만은 임학에게 분명히 전하고 싶었다.“밤이 늦었다. 내일 선봉영 집합이 있지 않느냐? 어서 돌아가서 쉬거라.”임학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돌아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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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5화

두 번째 도령은 술잔을 입에 대던 손을 멈추고 슬쩍 최지습의 팔꿈치를 툭 찔렀다.“오늘 일, 누구 덕을 본 건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어떤 사람은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후회는 안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최지습은 피식 웃으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술잔을 들어 올리며 둘째 도령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그 은혜, 마음 깊이 새기겠소.”“이보시게, 형님! 저도 있습니다.”다섯 번째 도령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호들갑스럽게 소리쳤다.“김단한테 침을 맞은 건 저란 말입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맞았다고요. 얼마나 아픈지 아십니까? 허벅지에 힘이 풀려 걷기도 힘들었다고요.”“그뿐인 줄 아십니까? 저는 물리기까지 했습니다.”일곱 번째 도령이 팔을 걷어 올리며 손등을 내보였다.“이 자국, 아직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으니 보일 것 아닙니까? 김단이 발버둥 치다 제 손을 확 깨물었다고요.”“어디?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데?”열 번째 도령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 사람아, 큰 형님께 술 한 잔 받으려고 별소리를 다 하는군.”“허튼소리 하지 마시오. 내가 형이지 자네가 형인가? 어서 일곱 번째 형님 하고 불러 보시오.”장난 섞인 말들이 터져 나오고 막사 안은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 최지습은 형제들의 그런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마침내 술잔을 들며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다른 형제들도 모두 따라 일어났고 방금 전의 농담과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공적으로 보자면 오늘 너희들은 장수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움직였다. 이것은 명백한 군율 위반이기에 연병장을 열 바퀴 달리는 것으로 책망했지. 하지만 사적으로 보자면...”그는 시선을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대장의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쓰고 수고해 준 너희들에게 형님으로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그리고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형제들도 잇따라 술잔을 비워내고 다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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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6화

이튿날, 김단은 누구보다 먼저 눈을 떴다. 전날 밤 내내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말끔히 세수를 마치고 머리를 단정히 빗은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참에 숙희가 아침상을 들고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직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건만 그녀는 벌써부터 눈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레 물었다.“어머, 아가씨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대요? 설마 누굴 보러 가시려는 건 아니겠죠?”김단의 두 볼이 순간 발그레해졌다.“요즘 병영에서 지내더니 우리 숙희가 농담하는 법도 다 배웠구나.”“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숙희는 급히 손을 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침상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였다.“그저… 아가씨께서 드디어 마음에 품고 있는 분과 잘 되었다는 소식에 기뻐서 그런 겁니다.”“그런데 말이에요…”그때 숙희의 말투가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공주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그 말에 김단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며칠 전 고지운이 했던 말들이 뇌리를 스치자 김단은 이내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아침을 대충 먹고 재빨리 천막을 나섰다. 이 시간이라면 최지습은 아마 연병장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터. 그녀는 잠시 옆 천막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고지운의 숙소로 향했다.천막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김단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이미 그녀와 최지습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에는 숨기지 못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김단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막 문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숨이 멎을 뻔했다. 고지운이 침상 끝에 앉아 손목 위에 칼을 대고 무언가를 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주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거의 뛰다시피 달려가 고지운 손에서 칼을 낚아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베이고 말았다. 칼날에 베인 상처는 깊었고 금세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고지운은 깜짝 놀라 외쳤다.“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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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7화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시오.”고지운은 김단의 말을 끊으며 외쳤다.“단이는 잘못한 게 없소. 낭자와 대군자가는 분명 서로 마음이 맞았고 오랜 시간 함께하며 정이 쌓인 거겠지. 반면 나는... 그저 여러 사정에 이끌려 갑작스레 끼어든 사람일 뿐이오. 그러니까 낭자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없소. 난 그저...”말을 잇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떨림마저 담겨 있었다.“난 그냥… 너무 무서웠소.”그녀가 이곳에 보내지기 전 그녀의 이복 오라비들이 경고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만약 조선의 대군자가에게 시집가지 못한다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김단과 대군자가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기에 그녀는 더 이상 최지습에게 시집을 갈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은 곧 그녀가 돌궐로 돌아가면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그들 손에 끌려가 맞고 천천히 망가져 죽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다. 그렇게 잔인하게 죽느니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하지만 그녀는 겁이 많았다. 죽는 것조차 용기가 없어 손에 쥔 칼끝 앞에서 망설이다 결국 김단의 손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오히려 미안해야 할 쪽은 그녀 자신이었다. 김단은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작고 떨리는 고지운의 어깨가 그녀의 품 안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무서워하지 마세요. 공주님은 지금 조선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공주님을 해칠 자는 아무도 없어요. 공주님을 위협했던 그 오라버니들조차 함부로 공주님에게 손을 대지 못할 겁니다. 제가 약속할게요.”김단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고지운은 그녀의 품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정말 나를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그럼요. 공주님은 화친을 위해 온 겁니다. 조선과 돌궐이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맺은 약속의 상징인걸요. 그러니 저희가 공주님을 돌려보낼 이유도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그러나 고지운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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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8화

고지운의 얼굴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방금 전 그녀가 제안한 방법이 완벽하다고 생각했기에 김단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왜 안 되는 것이오?”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평처를 둔다면 두 나라의 평화도 유지되고 김단과 대군자가의 사랑도 지킬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녀는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투명 인간처럼 조용히 지낼 자신이 있었다. 돌궐에서의 지난 세월 동안 그녀가 가장 먼저 배우고 익혀온 생존 방식은 바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걸쳐 감정을 죽이며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말했다.“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요.”고지운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런 것이오? 하지만 내 아버지와 오라비들은 모두 많은 부인들을 두었소. 조선에서도 능력 있는 남자일수록 부인이 많은 것 아니오? 대군자가께서 평생 한 사람만 부인으로 맞이할 거라 생각하시오?”“네.”김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지운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되물었다.“정말 그렇게 믿는 것이오?”김단은 시선을 내리깔며 가볍게 웃었다.“그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믿는 겁니다.”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라면 한 평생 자신만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 김단의 잔잔한 미소를 바라보는 고지운의 마음에는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따라 미소 지었다.“멋지오.”그녀는 조용히 감탄했다. 만약 이 세상 어딘가에 정말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김단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고지운을 바라보았다.“어쨌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공주님을 돌궐로 돌려보내지 않을 겁니다. 화친에 관한 일도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거예요. 공주님께서 누구와 혼인하든 제가 반드시 지켜볼게요. 절대 나쁜 사람에게 시집가게 두지 않을 겁니다.”고지운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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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9화

환하게 웃고 있던 김단의 얼굴은 어느새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조용히 천막을 한 번 돌아본 뒤 낮게 중얼거렸다.“그 아이는 너무 바보 같아요.”이윽고 다시 최지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도령님, 혹시 알고 계셨나요? 공주님도 사실은 돌궐에서 그다지 총애 받는 존재가 아니에요. 저처럼, 그분의 몸에도 상처가 많습니다. 공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은 다시 돌궐로 버려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겁니다.”최지습은 김단의 손목을 가만히 끌어당기며 함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돌궐의 사정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소. 공주의 신분과 처지도 어느 정도는 파악해 두었지. 그래서 애초에 그 공주를 다시 돌궐로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소.”그녀를 돌려보내는 건 곧 죽음으로 몰아내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럼 도령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최지습은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았다.“전하께서는 자제분이 여럿 계시니 그중 한 사람을 책봉해 왕위로 세우는 것도 고려 중이오. 내 기억에 일곱째 왕자가 혼인할 나이가 다 된 걸로 알고 있소. 그의 외가 쪽은 세력이 약해 태자에게 위협이 될 수 없으니 괜찮은 후보라고 할 수 있지.”“일곱째 왕자요?”김단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작고 왜소한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녀는 눈썹을 깊게 찌푸리며 말했다.“그분은 너무 어려요.”최지습의 얼굴에도 미세한 그늘이 드리웠다.“두 해만 지나면 혼례를 올릴 나이긴 하지.”“안 돼요. 너무 어립니다.”김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직접 고지운의 혼사에 개입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어린아이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그렇다면…”최지습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다섯째 왕자는 어떤가? 나이도 적당하고 공주와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이미 정실부인을 맞이한 상태라 또 다른 이를 정실로 들이려면 절차상 고려할 점이 많겠지.”“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은 절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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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0화

열흘이 지나고서야 마침내 조정의 전근 명령이 도착했다. 최지습이 이끄는 대군은 전승의 기세를 안고 한양으로 돌아왔고 설을 이틀 앞둔 날, 그들의 긴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전날 내린 눈이 온 조선 땅을 하얗게 덮고 있어 세상은 마치 은빛 비단을 두른 듯 고요하고 찬란했다. 고지운은 처음 마주한 풍경에 참지 못하고 마차의 창을 걷어 올렸다.“와…”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메마른 사막만을 보며 살아온 돌궐에서는 이런 풍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소나무와 짙푸른 산들 그리고 눈의 무게에 눌려 허리를 숙인 청송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정말 아름답소.”고지운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김단은 말없이 그녀의 어깨 위로 외투를 단단히 여며주며 다정히 말했다.“찬바람 오래 쐬면 고뿔에 걸립니다.”고지운은 아쉬운 듯 조심스레 창을 내리고 김단을 향해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여기가 단이가 예전에 살던 곳이오?”그 말에는 부러움과 동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정말 좋소. 우리 돌궐보다 훨씬 아름답소.”예전이라는 단어가 김단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조용히 건드렸다. 다만 그녀는 가볍게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췄다.차창 밖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단아.”최지습이었다. 김단은 조심스럽게 마차의 창을 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한 마리의 말을 이끌고 마차 옆에 서 있었다.“나는 공주를 모시고 먼저 궁궐에 들어가야 하오. 낭자는 관저로 돌아가 보시오.”“네.”김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렸다. 최지습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했고 그녀가 두 발로 땅을 디딘 후에도 한참이나 손을 놓지 않았다.“걱정 마시오. 한양으로 돌아온 이상, 그들이 감히 손댈 수는 없을 것이오.”그 말에 김단은 잠시 멈칫했다. 최지습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동안 자신을 노렸던 맹가의 존재를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단은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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