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의 모든 챕터: 챕터 1201 - 챕터 1210

1432 챕터

제1201화

윤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술을 살짝 떼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강현우를 바라봤다.“화 좀 풀렸어?”강현우가 낮게 물었다.윤하경은 시선을 내려 자신이 세게 물어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그의 팔을 보고 잠깐 멍해졌다. 그걸 다시 한번 물어야 할까 망설이던 찰나, 강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랑 신인아 사이에 대해서는 네게 분명히 말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그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낮게 이어갔다.“그날... 내가 널 의심했던 건 아니야. 다만 인아는 내게... 분명 특별한 존재였어.”윤하경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가만히, 그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특별한 존재’라는 말이 나오자 그녀의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파고들었지만 고작 붉은 자국만 남았다.“인아 오빠가 나 대신 죽었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동생을 꼭 지켜달라는 부탁이었지.”늘 이성적이고 냉철하던 강현우였지만 신인아 이름을 꺼낼 때만큼은 어조가 달라졌다.윤하경은 끝내 끼어들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강현우의 지나온 과거가 조금씩 드러났다.그는 어려서부터 강씨 집안의 어르신 손에서 자라났다고 들었다. 얼마 전 강씨 저택에서 홍미수 집사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강현우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그가 어린 시절 겉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버텨온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어릴 적, 강현우의 아버지 강소훈이 강현우를 데리러 가던 길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된 어머니 한선아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도련님이라는 이름만 달았을 뿐, 실상은 하인들조차 함부로 할 수 있는 신세였다.남들은 강씨 집안의 어린 주인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누구에게나 짓밟히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랐지만 이내 깨달았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그날 이후, 누가 그를 괴롭히면 열 배, 백 배로 되갚았다. 죽을 각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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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2화

윤하경은 강현우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한참 후,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래서 현우 씨는 신인아에게 그렇게 특별한 존재였던 거예요?”강현우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깊은숨을 내쉬었다.“신인아의 죽음... 결국 내가 신혁주에게 잘못한 거야.”윤하경은 손끝을 꽉 쥐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 이야기를 일찍 알았다면 신인아와 마음을 열고 얘기하며 진심으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세상에 ‘만약’은 없다.자신은 신인아를 해친 적이 없지만 신인아는 결국 자신 때문에 죽었다.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답답한 감정이 밀려왔다.신인아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강현우의 보호 속에서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그의 도움으로 사업에서 성공할 수도 있었을 텐데...심지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신인아는 그만 강현우를 사랑하게 되었다.사랑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하던 말이 이제야 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현우 씨, 신인아는...”“이미 다 알아봤어. 신인아는 자기가 약을 잘못 먹은 거야. 용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거지.”강현우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신인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숨기려 했다.신인아는 어릴 적부터 순응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침대에 올라갔던 적도 있었다.그의 거절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선을 넘은 그녀.“그것도 내 잘못이지.” 강현우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인아를 외국에서 계속 두지 않고 다리를 치료한다고 데려왔어야 했어. 그렇게 외국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윤하경은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강현우의 슬픈 목소리에 놀랐다.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누구야?”“대표님, 사모님이 전화하셨습니다. 꼭 받으시라고 하셨어요.”‘사모님’이라는 말에 강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다.윤하경은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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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3화

윤하경은 발걸음을 멈추고 직감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방금 강현우는 한선아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자신도 받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하인이 그 자리에 서서 윤하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윤하경이 전화를 받지 않으려 하자 하인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사모님께서 전화 안 받으시면 직접 찾아오겠다고 하셨어요.”윤하경은 결국 전화를 받기로 결심했다. 윤하경은 전화기 옆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귀에 대자 한선아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이고 우리 이쁜 경이.”그 순간 윤하경은 소름이 끼쳤다. 자신과 한선아는 이렇게 친하게 부를 관계가 아니었다.게다가 강현우가 기억을 잃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약간의 불편한 감정까지 있었는데 지금 한선아가 이렇게 친근하게 말하니 윤하경은 당황스러웠다.윤하경은 입술을 깨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 이름은 윤하경입니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하실 말씀 있으면 하세요. 그런 가식은 필요 없어요.”그 말에 한선아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오랜 세월 대가족에서 살아온 그녀는 그런 반응에 당황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쌓아온 연기력 덕분에 금세 태도를 바꾸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우리가 예전에는 조금 불편했지. 하지만 엄마로서 너에게 하나만 부탁할게. 현우가 이제 괜찮아졌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야. 그리고 이번 주말이 내 생일이라서 집에서 작은 가족 모임을 할 거야. 너와 강현우도 그때 일찍 돌아와서 함께 오면 좋겠어.”윤하경은 순간 당황하며 말했다.“그런데...”한선아는 윤하경이 말을 끊기 전에 계속해서 말했다.“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내가 하인들에게 너랑 강현우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하게 할 테니까, 주말에 봐.”말을 마친 후, 한선아는 더 이상 윤하경의 거절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윤하경은 전화를 들고 서서 전화를 끊은 후 들려오는 뚜뚜뚜 소리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어쩐지 한선아가 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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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4화

윤하경은 깜짝 놀라며 손수건을 든 채로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누구세요?”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윤하경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당신?”문세호는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을 살짝 흔들었다.“울지 마, 여자애가 울면 예쁘지 않다니까.”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저 따라온 거예요?”문세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윤하경은 경계심을 보였다.그 외에는 그가 여기 있을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자기 혼자 막 도착했는데 문세호는 이미 여기 있었다. 문세호는 윤하경이 손을 내밀지 않자 가볍게 웃으며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묘비를 바라보았다.묘비 위에 있는 하여진의 사진은 밝게 웃고 있었지만 문세호는 그 사진을 바라보며 눈빛에 잠시 슬픔을 담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하경은 그의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윤하경은 하병철과 문세호의 대화를 듣고 문세호와 하여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하여진이 어렸을 때 사랑에 빠져서 문세호의 말을 믿고 도망가려고 했던 일, 결국 배신당한 사건.문세호는 윤하경의 말을 듣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깊은 눈빛으로 하여진의 묘비를 바라보며 잠시 의미심장한 감정을 드러냈다.“여진이가 나에 대해 얘기한 적 있어?”윤하경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없어요.”그러고는 차갑게 문세호를 쳐다보며 말했다.“뭐 하려고 온 거예요? 옛날얘기 하고 싶어요? 엄마는 아마 이미 당신을 잊었을 거예요.”사실 처음 문세호를 만났을 때 윤하경은 그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느꼈다. 그는 품위 있고 겸손해 보였고 그때 잠깐의 불편함을 제외하면 윤하경은 그를 좋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문세호가 여기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윤하경은 그저 비웃음이 나왔다.마치 윤하경이 이렇게 말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문세호는 윤하경을 한번 쳐다보며 여전히 아무 표정 없이 대답했다.“너랑 엄마 정말 많이 닮았네.”윤하경은 더 이상 대화할 기분이 아니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문세호, 당신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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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5화

“만약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앞으로 엄마를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윤하경은 말을 마친 뒤 다시는 문세호를 돌아보지 않고 완전히 등을 돌려 떠났다. 문세호는 그 자리에 서서 윤하경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윤하경의 모습이 거의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문세호의 시선이 잠시 멈추었고 그의 눈빛은 복잡하면서도 깊은 빛을 띠었다.윤하경은 산을 내려가 길가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앉자마자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확인한 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통화를 눌렀다.“여보세요.”윤하경은 담담하게 인사한 뒤 물었다.“무슨 일이야?”전화를 건 사람은 유호천이었다.유호천의 목소리는 낮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하경아, 지연이가...”소지연의 이름을 듣자 윤하경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유호천, 내가 뭐라고 했어. 소지연과 더는 얽히지 말라고 했잖아.”“아니!”유호천이 다급하게 말을 끊었다.“지연이가 사고를 당했어. 그런데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아. 이번 일은 네가 아니면 도와줄 수 없어.”점점 낮아지는 목소리에는 뚜렷한 후회의 기운이 묻어 있었다.윤하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급히 물었다.“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야?”“지금 주씨 가문 저택에 있어. 네가 가서 지연이를 구해 줘.”불안한 기운이 가득 실린 유호천의 목소리에 윤하경은 곧바로 시동을 걸어 차를 몰았다.평소에는 신중하게 운전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차는 거리를 가르며 빠르게 내달렸다.사실 경성을 떠날 때부터 윤하경은 이미 소지연과 관련된 일에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도 같은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기에 소지연이 복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하지만 그때의 자신 곁에는 강현우가 있었다. 반면 지금의 소지연은 아무런 힘도 도와줄 사람도 없이 혼자였다.유호천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끝내 말해주지 않았기에 윤하경의 머릿속은 주씨 저택으로 달려가는 내내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급히 도착한 윤하경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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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6화

주씨 가문의 태도를 보니 지금 소지연의 처지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윤하경은 제발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고 어떻게 하면 소지연을 만날 수 있을지 애써 방법을 찾으려 했다.오는 길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그럴수록 불안은 점점 깊어졌다.결국 윤하경은 다시 강현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휴대폰을 꺼내 지금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자 강현우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알았어.”그러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윤하경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저택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가슴을 옥죄었다.한편, 저택 2층 창가에서는 두 시선이 윤하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참 성가시군요. 강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분, 할 일이 그렇게 없으신가요.”이옥연은 낮게 콧소리를 섞으며 혀를 찼다.주명화는 창밖을 노려보다가 이내 얼굴을 굳혔다.“그만 좀 해.”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소지연은 어떻게 됐어? 모레 결혼식에 차질은 없는 거 맞지?”이옥연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설령 억지로라도 데려가야지요. 어차피 임씨 가문에 넘기면 그다음은 우리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말을 멈춘 이옥연의 시선이 다시 윤하경에게 향했다.“다만 윤하경이 소지연을 저토록 챙기는 걸 보면... 일이 혹시라도 꼬이지 않을까 싶어요.”주명화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그때 그의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순간, 주명화의 표정이 단번에 달라졌다.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아 공손하게 말했다.“아, 유 대표님!”그러나 곧 목소리가 굳어졌다.“뭐라고요? 계약을 취소한다고요? 우리 곧 계약서에 도장 찍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수화기 너머에서 유 대표는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계약은 무슨 계약입니까. 주 대표님, 스스로 누굴 건드렸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그 말과 함께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주명화는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불과 어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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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7화

주명화는 잠시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니 절대 그녀를 소지연과 마주치게 해선 안 돼.”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곧 고개를 돌려 이옥연을 보며 말했다.“네가 가서 소지연이 깨어났는지 확인해 봐. 혹시 깨어나서 소란이라도 피우면 곤란하니까.”이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정히 대답했다.“알겠어요.”...저택 대문 앞.윤하경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뜻밖에도 아까 자신을 내쫓던 하인이 다시 나와서는 태도가 싹 바뀐 얼굴로 정중하게 청을 올렸다.윤하경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이게 무슨 짓거리죠?”하인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아까는 저희 주인께서 누가 오셨는지 몰라서 그렇게 된 겁니다. 지금 사정을 아시고는 바로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그래요?”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 눈빛을 던졌다.주명화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분명 강현우가 뭔가 손을 쓴 탓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소지연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었다.윤하경은 더 이상 말을 길게 하지 않고 곧장 발을 옮겨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넓은 거실에 들어서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주명화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사모님, 아까는 제가 위층에 있어서 미처 몰랐습니다. 밑에 사람은 이미 단단히 혼내두었으니 넓은 아량으로 봐주시지요.”그렇게 말한 주명화는 다시 하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어서 사모님께 차를 대접해라.”하인이 움직이려는 순간, 윤하경이 차갑게 끊었다.“주 회장님, 괜한 인사치레는 필요 없어요. 오늘 제가 온 건 단 하나, 소지연을 만나러 온 겁니다. 어디 있습니까. 지금 당장 나오게 해주세요.”주명화의 웃음이 굳어지고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하필 오늘은 때가 좋지 않군요, 사모님.”윤하경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그 말투는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신호였다.“무슨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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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8화

윤하경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맛이 괜찮네요.”이옥연은 말없이 굳어 있었고 주명화도 입술만 씰룩일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윤하경이 정말로 버티고 앉을 생각이라는 걸 알아차린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쫓아낼 방법을 찾으려 애썼지만 도무지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때였다.저택 바깥에서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단번에 열댓 대가 몰려들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숨이 막힐 만큼 위압적인 기세를 뿜어냈다.주명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려는 순간, 차 문이 일제히 열리고 검은 양복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일렬로 내려섰다.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발걸음을 맞추며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앞장선 이는 다름 아닌 우지원이었다. 그는 특유의 건들거림을 지닌 웃음을 지으며 윤하경에게 다가왔다.“형수님, 형님께서 급히 볼 일이 생기셔서 오늘은 제가 대신 곁을 지켜드리라고 하셨습니다.”윤하경은 뜻밖에 우지원이 직접 찾아온 것에 순간 놀랐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주씨 부부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곁에 있는 건 분명 다행이었다.“와줘서 고마워요.”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우지원은 손을 휘저으며 웃어넘겼다.“형수님, 무슨 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그러고는 이내 눈길을 주명화에게로 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웃음기가 완전히 가시고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깃들었다.주명화는 그제야 온몸이 굳어졌다. 이름도 몰랐지만 그의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 그러면... 지연이가 돌아오면...”주명화가 더듬으며 무언가 변명하려 했으나, 윤하경의 매서운 시선이 곧장 날아와 말을 끊었다.우지원이 옆에 있으니 윤하경도 한층 담대했다.“주명화 씨, 분명히 말씀드리죠. 오늘 제가 지연이를 직접 보지 못하면 절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윤하경은 목소리를 낮게 가라앉혔지만 그 안의 단호함은 오히려 더 무겁게 울려 퍼졌다.“만약 끝내 만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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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9화

이옥연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경성에서 강현우가 하늘을 가릴 만큼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주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건, 개미가 태산을 막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결국 이옥연도 더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윤하경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기다리세요. 소지연 몸에 난 상처는 고의 상해로도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어요. 당신들이 고소하지 않아도 내가 직접 고소하면 되니까.”그녀는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남기고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병원에서 들은 소식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소지연은 손과 팔에 심각한 골절이 있었고 뇌진탕이 의심될 만큼 머리에 충격을 입었으며 몸에는 열 곳이 넘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윤하경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소지연을 바라보며 가슴이 저릿해졌다.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소지연이 어쩌다 이렇게 큰 고통을 겪게 되었을까.“그런데 왜 깨어나지 않는 거죠?”강현우가 한때 기억을 잃었던 일이 떠올라, 윤하경은 더욱 예민해졌다.“설마 머리를 맞아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죠?”의사는 고개를 저었다.“방금 검사 결과로는 뇌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만 누군가 수면제를 먹인 흔적이 있어요. 물론 스스로 먹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차라리 잠드는 게 어려우니까요.”윤하경은 그 말을 듣고서야 긴 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언제쯤 깨어날 수 있을까요?”“아마 내일 아침쯤이면 의식을 되찾을 겁니다.”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떠났다.윤하경은 창가에 서서 깊은 눈빛으로 소지연을 바라보다, 숄을 여미며 등줄기로 스며드는 한기를 느꼈다.말하지 않았지만 소지연이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다는 걸 윤하경은 알고 있었다.그러나 주명화는 그런 마음을 짓밟은 인간이었다.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구의 강현우가 들어왔다.윤하경은 놀란 듯 입술을 움직였다.“왜 여기까지 온 거예요?”강현우는 소지연을 흘깃 본 뒤 곧장 윤하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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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0화

“사람은 내가 이미 붙여놨어.”강현우는 윤하경의 허리를 툭 감싸 쥐며 강제로 걸음을 옮겼다.“여기서 언제까지 서 있을 건데? 밤중에 누가 오기라도 하면 네가 괜히 걸림돌 되는 거 알지?”윤하경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가 사람까지 따로 챙겨놨다는 말에 그제야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차에 올라탄 순간,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깊은 밤이었지만 하루 종일 쉴 틈조차 없었던 탓이었다. 창밖의 불빛들이 차창을 스치며 차 안으로 들어와, 강현우의 얼굴을 비추었다가 또 금세 어둡게 가려냈다.윤하경은 눈꺼풀이 무거워져, 결국 그에게 몸을 기댔다. 마치 뼈마디까지 힘이 빠진 작은 고양이처럼 축 늘어졌다.“너무 피곤하다...”무심코 흘러나온 말과 함께 윤하경은 아예 강현우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버렸다.그렇게 바라본 그의 얼굴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각도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참,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네...’윤하경은 괜히 속으로 중얼거렸다.차가 부드럽게 흔들리자 곧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강현우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저택에 도착했을 때, 윤하경은 이미 곤히 잠든 상태였다.강현우는 깨우지 않고 그대로 안아 들어 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눕힌 그녀의 얼굴은 오랜만에 편안해 보였다.강현우는 잠시 눈길을 머물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욕실로 향했다....다음 날 아침.윤하경이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이미 비어 있었다. 강현우가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조차 모를 만큼,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소지연이 떠올라 곧장 몸을 일으킨 윤하경은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런데 거실에는 이미 정장을 갖춰 입은 강현우가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앉아 있었다. 윤하경이 다급히 내려오자 그는 시선을 들더니 태연하게 웃었다.“그렇게 급할 필요 없어. 아직 안 깼을 테니까.”그러고는 손가락을 까딱하며 불렀다.“와서 밥부터 먹어. 다 먹고 같이 가자.”“회사 안 가요?”윤하경이 묻자 그는 태연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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