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1191 - Chapter 1200

1432 Chapters

제1191화

강현우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말고 그 소리를 멈췄다.“무슨 뜻이야, 또 질리면 버리겠다는 거야?”윤하경은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기침을 삼켰다.“저도 약에 취해서 그랬던 거잖아요.”강현우는 코웃음을 흘리며 성큼 다가와 윤하경의 턱을 움켜쥐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분하던 얼굴은 단숨에 얼어붙은 듯 냉혹하게 굳어졌고 그의 시선에는 폭풍 전야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윤하경, 다시 내 앞에서 이혼 같은 소리 꺼내면 두고 봐.”“저...”윤하경이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옆에 두었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을 울렸다.그녀는 가볍게 기침을 삼키며 강현우를 올려다봤다.“잠시만요.”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대꾸 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윤하경은 조심스레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확인하자 발밑이 꺼지는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발신자는 하석호였다.새벽 한밤중, 그가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걸어올 리가 없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고 불길한 예감이 가시지 않은 채 그녀는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하경아, 어디야?”다급한 목소리 속에 불길한 예감은 더 짙어졌다.“지금 강성에 있어, 왜?”“빨리 모성으로 돌아와. 외할아버지, 위독하셔.”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윤하경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숨이 막혀왔다.“뭐라고? 거짓말이지? 나 떠날 때만 해도 외할아버지 정정하셨는데...”“지금 가족들이 전부 모성으로 가고 있어. 나도 밤새 달려가는 중이야.”뚝, 차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통화는 끊겼고 윤하경은 핸드폰을 든 채 멍하니 굳어 서 있었다.강현우는 그녀의 얼굴에서 피가 가신 듯한 표정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외할아버지... 상태가 그렇게 안 좋으신 거야?”윤하경은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저, 지금 바로 모성으로 가야 해요.”그러나 두 걸음도 못 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고 강현우가 곧장 그녀를 붙들어 부축했다. 굳센 팔이 허리를 감싸자 그녀는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내가 데려다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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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2화

윤하경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하씨 집안 식구들이 모두 와 있었고 하씨 그룹의 변호인단까지 모여 있으니 백 평 남짓한 병실이 숨 막히게 좁아 보일 정도였다.윤하경이 들어서자 하석호가 하병철의 귀에 몸을 기울여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할아버지, 하경이가 왔습니다.”침대 위의 하병철은 온몸에 관을 꽂은 채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하석호의 말에 힘겹게 눈동자를 움직여 문 쪽을 바라보았다.숨을 내쉬는 것조차 벅차 보였는데도 하병철은 윤하경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그 자애로운 얼굴을 보는 순간, 윤하경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현우의 눈빛이 잠시 깊게 가라앉았다.“외할아버지!”윤하경은 침대 곁으로 달려가 몸을 웅크리듯 엎드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저 분명히 약속드렸잖아요. 일만 끝나면 바로 돌아와서 곁에 있겠다고... 그런데 또 저를 속이셨어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서 있던 하희연이 비웃듯 소리 내어 웃었다.“가식 떨기는.”그러자 옆에 있던 신정연이 하희연을 밀치며 날카롭게 말했다.“입 다물어.”하희연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하병철은 윤하경을 바라보며 힘겹게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울지 마라. 누구든 언젠가는 가야 하는 길이란다.”윤하경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비록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하병철의 곁에서 분명하게 느꼈던 따뜻한 사랑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이제 막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는데 그 유일한 버팀목이 곧 떠나버린다니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울지 마라. 널 찾은 것만으로도 내 평생 마지막 소원은 다 이뤘다.”하병철은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이제 저세상에서 네 어머니를 만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네 소식을 전할 수 있겠다.”방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의 목소리만이 맴돌았다.윤하경은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절대 원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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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3화

문세호가 하병철을 향해 “어르신”이라 부르자, 윤하경은 순간 멍해졌다.문씨 집안과 하씨 집안은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불화하면서도 저런 호칭을 쓸 수 있는 건가?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윤하경은 오직 외할아버지의 얼굴만 바라보며 단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하병철은 문세호를 보며 옅게 웃었다.“뭐냐, 내가 죽기전 나를 책망하러 온 게냐?”그 말에 문세호의 얼굴이 잠시 굳더니 곧 쓴웃음을 지었다.“아닙니다. 저와 여진은 결국 인연이 닿지 못한 사이였을 뿐입니다.”그의 시선이 곧장 윤하경에게로 향했다.“이 아이가... 여진의 딸이겠지요?”윤하경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얼어붙었다.“엄마를... 아세요?”더구나 이름을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다니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던 걸까?순간, 수많은 의문이 윤하경의 머릿속을 스쳐갔다.문세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압니다. 아주 잘 알지요.”그는 다시 하병철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오늘 이 자리에 온 건 어르신을 뵙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날 저와 여진이가 경솔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은 거두어 주십시오.”하병철은 아무 말 없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와서 무슨 말을 더 한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문세호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저는 오늘, 진심으로 사죄드리러 온 겁니다. 사실 귀국한 순간부터 찾아뵙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식을 듣고... 더 미루면 영영 기회가 없을까 두려웠습니다.”그의 눈빛에 깊은 후회가 서렸다.“그때 제가 경솔하지 않았다면 여진이 집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허허...”하병철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용서라는 말은 내 입에서 차마 나오질 않는구나. 너와 여진이 함께 떠난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넌 혼자 외국으로 가버렸지 않느냐. 문세호, 네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나 아니라, 여진이다.”그는 이제 남은 힘마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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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4화

윤하경은 순간 멈춰 섰다.‘그래, 아직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켜야 하는데 쓰러질 수는 없어.’그때까지 조용히 서 있던 문세호가 다가와 윤하경 앞에 섰다.“하경아.”윤하경은 잠시 그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금 전 하병철과 문세호가 나눈 대화를 들은 터라, 대략 하여진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슨 사이였는지 묻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문세호는 창백한 윤하경의 얼굴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장례 끝나면 꼭 한번 시간 내서 나랑 얘기 좀 해줬으면 해. 괜찮지?”윤하경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더는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그는 마지막으로 강현우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자리를 떴다.하병철의 장례는 이미 하석호 일가친척들이 주도하고 있었기에, 윤하경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하석호는 잠시 자리를 내며 윤하경에게 다가와 말했다.“너랑 강현우는 먼저 들어가서 쉬어. 이쪽은 내가 챙길게. 다 끝나면 연락할게.”윤하경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강현우가 윤하경을 데리고 하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기력이 다 빠져 축 늘어진 윤하경을 보며, 강현우는 매섭게 눈썹을 좁혔다.“주방에 미리 밥 준비시켜 놓았어. 조금이라도 먹어야 해.”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윤하경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그냥 자고 싶어.”강현우는 잠시 말을 고르다 입술을 다물었다. 지금 상태로는 더 밀어붙여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좋아. 푹 쉬어. 난 잠깐 나갔다 올 일이 있어.”윤하경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고 강현우는 더 말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그러나 잔다는 말과 달리, 윤하경은 눈을 감고도 잠들 수 없었다. 강현우가 나간 뒤, 넓디넓은 방 안은 고요했고 그녀는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다가, 밖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한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밤이 되어 강현우가 돌아왔을 때도, 윤하경은 여전히 낮에 누웠던 그대로였다.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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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5화

강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석호를 보내고 방으로 돌아왔다.침대 위에 누운 윤하경은 약기운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긴 속눈썹이 간간이 떨리며 마치 울 것 같은 기색을 보였다.강현우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욕실로 향했고 잠시 후 세안을 마치고 집안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다시 나왔다. 그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 올라 누우며 팔을 뻗어 윤하경을 온전히 품에 끌어안았다.품속의 윤하경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조금 움직이다가 편한 자세를 찾더니 이내 얌전히 강현우의 가슴에 기대 다시 잠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땐, 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윤하경의 눈가에 닿았다.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곳이 어딘지 깨닫고는 순식간에 강현우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윤하경이 움직이자 곧 강현우도 눈을 떴다. 윤하경은 그제야 그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당황한 듯 물었다.“저 분명 밥 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잠들었죠? 외할아버지는...”강현우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말했다.“하석호가 어젯밤에 와서 말했어. 빈소는 이미 다 마련됐다고. 네가 일어나면 바로 가면 된대.”윤하경은 얼굴을 굳히며 낮게 중얼거렸다.“왜 진작 말 안 했어요.”윤하경은 곧장 침대에서 내려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옷방에서 검은색 정장 한 벌을 꺼내 입었다.화려한 장신구는 일절 걸치지 않고 작은 얼굴에는 화장기조차 없었다. 그 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차분하고 단정해 보였다.“저 먼저 가볼게요. 현우 씨는 바쁘실 테니...”하지만 강현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걸음을 옮겼다.“네 외할아버지면 내 외할아버지이기도 하지. 같이 가자.”윤하경이 말리려 했으나, 그는 이미 욕실로 들어갔다. 십여 분도 채 안 돼, 검은 셔츠에 정장 바지를 차려입고 나왔다.단정하면서도 묘하게 압도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윤하경은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빈소에 도착했을 때, 하씨 집안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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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6화

윤하경의 시선은 하병철 영정 사진에 고정된 채 멍하니 머물러 있었다.사람이 슬픔에 잠기면 원치 않아도 별의별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윤하경은 왜 이렇게 사랑해주는 이들을 늘 먼저 떠나보내야만 하는 걸까, 그런 허무한 생각이 불쑥 가슴을 파고들었다.정작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이들은 언제나 오래 곁에 머물러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치맛자락을 가만히 비벼 쥐며 허공을 응시했지만 눈빛은 점점 공허해져 갔다.정오 무렵, 사람들이 차례로 식사를 하러 나갔을 때 하석호는 윤하경과 강현우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윤하경은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기분이 이렇게 우울할 때는 허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그때 마침 지나가던 하희연이 이 말을 듣고는 윤하경을 흘겨보며 비웃듯 내뱉었다.“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 이렇게 쇼하듯 굴면 누가 믿어줄까?”윤하경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희연을 노려보았다. 평소에는 빛을 잃은 눈빛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노가 번뜩였다. 하희연은 여전히 비웃음을 지었으나, 곁에 있던 주소연이 하희연의 팔을 잡아 억지로 끌어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석호는 말없이 잠시 생각하다가 강현우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강현우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윤하경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나랑 하석호 씨는 밖에 좀 다녀올게.”평소처럼 차갑기만 한 목소리가 아니었고 어딘지 부드럽게 배려가 묻어나왔다. 윤하경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영정 사진 앞에 꽃 한송이를 천천히 내려놓았다.밖으로 나온 하석호는 강현우와 나란히 걸으며 담담히 말을 꺼냈다.“오늘 밤이 지나면 하경 씨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십시오. 이 일에 하경 씨를 더 이상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언제나 온화하던 얼굴에 순간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강현우는 옆을 흘끗 보더니 비웃음을 띤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요? 결국 어르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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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7화

윤하경은 목소리를 낮췄다.“외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얘기를...”강현우는 코웃음을 흘리며 차갑게 잘랐다.“하씨 집안 사정,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지금 하석호가 선 자리는 결국 둘 중 하나뿐이야. 그가 죽든 남들이 죽든. 하석호가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 퇴로를 열어줄 순 있겠지. 근데 다른 사람들이 하석호를 살려둘 것 같아?”윤하경은 말없이 침묵했다.강현우의 말은 뼈아프지만 사실이었다.하석호는 집안에서 늘 특별한 존재였다. 부모를 일찍 잃고 홀로 남아, 외할아버지 하병철 손에서 자라난 사람. 뿌리도 없는 그가 지금은 집안을 이끄는 자리까지 올랐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가시 같은 존재였을 터였다.이제 외할아버지가 눈을 감자, 버팀목은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의 야심이 꿈틀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윤하경은 그런 사정을 떠올리며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마음속으로는 하병철의 장례도 끝나기 전에 집안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멈춰주진 않는다.결국 고개를 든 윤하경의 눈빛에는 결연함이 스쳤다. 그녀는 손을 들어 강현우의 거칠고 따뜻한 손등을 꼭 잡았다.작고 부드러운 손끝이 닿자 강현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강현우, 석호 좀 도와줘요.”강현우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알잖아. 나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해.”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윤하경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불길한 예감이 스르르 가슴 속으로 번져왔다.역시나, 강현우는 잠시 뒤 조건을 내걸었다.“대신, 하나 약속해.”윤하경은 그 손을 꼭 움켜쥐었다가, 이내 힘을 빼고 조용히 거두었다. 방금 전까지 간절한 눈빛은 희미하게 빛을 잃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한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좋아요. 말씀하세요.”마치 사지로 들어서는 듯한 결심이 담긴 표정에 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도대체 이 여자는 지금 무슨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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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8화

한 시간 남짓 지나 윤하경은 결국 경성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비행기 안에서 윤하경은 창밖을 바라보며 모성 쪽을 향해 눈길을 고정한 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강현우는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고 딱딱 울리는 키보드 소리가 기내의 적막을 채웠다.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윤하경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강현우는 노트북을 덮고 긴 팔을 뻗어 윤하경을 자기 품으로 끌어안았다.“하씨 집안 일 안정되면 그때 너랑 같이 다시 내려가서 외할아버지한테 제대로 인사드리자.”하지만 그 말은 윤하경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며 낮게 말했다.“외할아버지 마지막 길은 지켜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그 목소리에는 깊은 상실감이 묻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 이제 자신을 사랑해 줄 어른은 더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강현우는 그녀의 눈빛 속 허무함을 읽고는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윤하경의 머리칼을 집어 장난스럽게 꼬아 보며 말했다.“외할아버지도 다 이해하실 거야.”이후 기내는 다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모성에서 경성까지의 긴 여정을 마치고 저택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깊은 밤이었다.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윤하경은 강현우의 다리에 고개를 기대고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차가 멈춰 섰을 때도 강현우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곤히 자는 몸을 들어 안아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품 안의 윤하경은 불편한 듯 고개를 그의 가슴께로 비비적이었다.그 모습이 꼭 새끼 고양이 같았다. 강현우는 잠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그리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그는 조용히 발길을 돌려 서재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가 진동했고 발신자는 민진혁이었다.강현우는 민진혁을 모성에 남겨 두었다. 아무리 잔인해도 윤하경에게 한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석호를 돕겠다고 한 이상, 민진혁은 그 일을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대표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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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9화

“하석호는 무사해.”강현우가 낮게 말했다.“그가 다치면 나도 곤란하니까.”윤하경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곧 그녀의 얼굴에 다시 걱정이 드리웠다.“그럼... 제 작은아버지 두 집안은 어떻게 됐나요?”강현우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반쯤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앉았다. 그는 얇은 가운 하나만 걸친 채였고 풀어진 옷깃 사이로 단단한 가슴선이 드러났다.“네 작은아버지들이 사람을 시켜 하석호를 없애려 했는데 도리어 하석호 쪽에서 먼저 손을 썼어. 나머지는 나도 자세히 모르지만...”강현우가 잠시 말을 고르다 덧붙였다.“하석호가 그러더군. 모든 게 정리되면 너더러 모성에 한 번 오라고. 지금은 괜히 얽히지 않는 게 좋다더라.”하석호가 끝까지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게 전해져, 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알겠어요.”윤하경은 휴대폰을 열었지만 직접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대신 메시지를 띄워 짧게 안부를 물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그러나 윤하경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집안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일 텐데 하석호가 병든 척 버티고 있다고 해도 틈을 내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고개를 들자 강현우가 묘하게 뜨거운 눈길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날카로운 기세는 없었지만 그 깊은 시선 속에 담긴 열기 탓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고 윤하경은 괜히 몸을 뒤로 물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보세요?”아무리 가까워도 이런 눈빛에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강현우가 미묘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을 꺼냈다.“네가 잊은 게 있지 않나?”윤하경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뭔데요?”“생각해 봐.”늘 그렇듯 강현우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고 그녀가 직접 추측하게 만들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윤하경은 답답해져 가볍게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모르겠는데요. 그냥 말씀해 주세요.”강현우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더니 비웃는 듯한 웃음이 흘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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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0화

거부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결국 윤하경은 힘을 빼고 순순히 받아들였다.사실 이런 일에 대해 그녀는 원래부터 거부감이 없었다. 이미 이혼 얘기는 끝났고 그렇다면 차라리 즐기는 게 낫지 않겠는가.넓고 호화로운 방 안은 금세 열기로 가득 찼다. 거친 숨결과 윤하경의 부드러운 신음이 뒤섞여 울려 퍼지며 고요하던 공간은 어느새 아찔한 선율로 가득 찼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강현우가 만족한 듯 몸을 일으켰을 때, 윤하경은 이미 힘이 다 빠져 물처럼 늘어져 있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버거웠다.분명 더 많은 힘을 쏟은 건 강현우였는데 정작 그는 잔뜩 흡족한 얼굴로 앉아 있으니 억울하기까지 했다.윤하경은 긴 눈매를 살짝 치켜올려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은 강현우를 바라봤다. 상반신은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매끄럽고 단단한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타오르는 담배 불빛이 그의 얼굴선을 따라 어른거리며 평소보다 묘하게 따뜻한 느낌을 자아냈다.잠시 숨을 고른 윤하경은 조금 몸을 돌려 그에게 다가갔다.“현우 씨.”“왜?”강현우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대꾸했고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연기가 가늘게 흩어졌다.“하고 싶은 말이 있어?”윤하경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어렵게 꺼냈다.“신인아 일 말이에요.”그 말에 강현우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윤하경은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강현우 같은 사람은 좀처럼 다른 이의 이름 하나에 흔들리지 않지만 신인아는 예외였다.윤하경은 알고 있었다. 신인아의 죽음은 자신과 강현우 사이에 남아 있는 깊은 가시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덮어두고 살아도 언젠가 그 가시는 살을 파고들어 곪고 썩어, 결국 둘 사이를 갈라놓을 틈이 될 것이다.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스스로 말을 꺼내는 편이 낫다.“우리 둘 다 알아요. 신인아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윤하경은 강현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차라리 나중에 그 일로 다시 상처 주느니... 지금이라도 잘 정리하고 끝내는 게 나아요.”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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