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се главы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Глава 1581 - Глава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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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1화

“혹시 제 존재가 주승엽 씨에게 큰 부담이세요?”강현우는 쓴웃음을 띠며 주승엽을 바라봤다.“강 대표님은 역시 늘 자신감에 넘치시네요.”주승엽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강현우가 눈썹을 치켜올리고 막 받아치려는 순간, 옆에서 윤하경의 약간은 두통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말다툼할 시간에 일이나 좀 나눠서 할래요?”“그럼 제가 불 피울게요.”주승엽이 먼저 웃으며 나섰다.윤하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강현우를 보자, 강현우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그럼 나는 버섯을 씻을게.”민진혁은 놀란 얼굴로 강현우를 쳐다봤다. 마치 희귀한 장면을 본 사람처럼 눈이 동그래졌다.민진혁은 강현우의 곁을 따른 지가 거의 십 년인데, 강현우가 직접 손을 걷어붙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하물며 채소를 씻는 일이라니...’민진혁은 헛기침하며 다가갔다.“대표님, 그럼 제가 대신...”강현우는 민진혁의 그 말에 일을 넘기려다 고개를 드는 순간, 주승엽의 의미심장한 눈빛과 마주쳤다.강현우는 가볍게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을 거두었다.“아니야. 내가 직접 하겠어.”두 사람이 은근히 기싸움을 벌이는 모양새에 민진혁은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사장이 일하는데 손 놓을 수는 없으니 곁으로 붙었다.“그럼 같이하겠습니다.”강현우는 이번에 막지 않고 민진혁과 함께 옆으로 가 버섯을 씻기 시작했다.숲 풍경이 좋아서 윤하민은 카메라를 꺼내 여기저기 찰칵거렸다.그중에서도 강현우와 윤하경을 찍은 컷이 제일 많았다.주승엽은 불을 지피고 강현우는 채소를 씻고 있었으니 요리는 자연스레 윤하경의 몫이 됐다.다만 손이 많이 가는 건 아니었다. 지난번에 주승엽이 가져왔던 훠궈 재료를 챙겨 왔기 때문이다.윤하경은 그저 접시만 꺼내 놓고 씻어 온 채소를 썰어 담아 식탁 위에 올리면 됐다.주승엽이 윤하경이 가져온 옛식 화로에 숯을 피웠고 모두가 둘러앉아 훠궈 국물이 끓기를 기다렸다.한 탁자에 둘러앉았지만 분위기는 어딘가 어색했다.강현우와 주승엽은 마주 보고 앉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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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2화

두 사람은 말끝마다 기싸움을 벌였다.강현우가 비웃듯 흘겨보자 주승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받아쳤다.“강 대표님, 농담은 그만하시죠. 제 약혼녀와 딸을 챙기는 데에, 대표님이 감사해할 필요 없습니다.”민진혁은 좌우 눈치만 보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훠궈에서 고기 한 점을 조용히 건져 올렸다.윤하경은 민망해하며 주승엽을 힐끗 보더니 고기완자 하나를 집어 주승엽의 그릇에 놓았다.“맛 좀 봐요.”주승엽이 한입 베어 물고는 환하게 웃었다.“하경 씨가 집어 준 게 더 맛있네요.”원래부터 단정한 얼굴에 일부러 더 살갑게 구는 말투까지 보태니, 윤하경은 자신도 모르게 볼이 붉어져 가볍게 기침했다.“맛있으면 더 먹어요.”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현우의 손에 힘이 들어가 젓가락 끝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식탁 위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주승엽은 옆눈으로 강현우의 굳은 얼굴을 훑으며 입꼬리를 더 올렸다.평생 이렇게까지 속이 막힌 적이 없었던 듯, 강현우가 이를 악문 채 벌떡 일어섰다.“좀 걷다 올게.”그 말과 함께 윤하경을 흘깃 보았지만, 윤하경은 못 본 척 윤하민에게만 먹을 것을 챙겼다.강현우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윤하민이 살짝 쓸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그 나쁜 아저씨가... 화났어요?”윤하경은 대답 대신 귤 한 조각을 윤하민 입에 쏙 넣어 주었다.“많이 먹어.”지금 윤하경은 강현우의 감정이 어떤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 둘 사이는 이미 끝났다.윤하민만 아니었다면 윤하경은 강현우와 한 식탁에 다시는 마주 앉지 않았을 것이다.식사 후, 윤하민은 사탕 하나를 들고 강가에 앉아 있는 강현우에게 갔다.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돌아올 때쯤 강현우의 얼굴빛은 눈에 띄게 누그러져 있었다.윤하경은 못 본 척했다. 주승엽의 곁에 앉아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풍경이 좋아서인지 주승엽은 화판을 꺼내 한껏 몰입해 스케치를 이어 갔다.강현우는 윤하민을 안은 채 두 사람의 뒤에 서서 바라봤다. 눈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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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3화

하지만 윤하경은 그 진실을 강현우에게 말할 마음이 없었다.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지금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요. 다만 하민의 양육권을 두고 싸우지만 말아 주세요. 원하시면 언제든 하민이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할게요.”윤하경은 이제 더는 자신과 윤하민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괜히 강현우를 자극해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협의해 두는 편이 서로에게 낫다고 생각했다.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다고 여겼지만 말을 끝냈을 때 강현우의 얼굴빛은 누그러지기는커녕 더 어두워졌다.강현우의 시선을 받자 윤하경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강현우의 기세가 섬뜩해서인지 늦가을 숲의 냉기가 스며들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강현우가 낮게 비웃으며 다가왔다. 윤하경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고 발치의 나뭇가지를 미처 보지 못했다.순간 윤하경의 발이 걸리며 몸이 뒤로 확 꺾였다.그러자 강현우가 잽싸게 손을 뻗어 윤하경을 붙잡았다. 얇은 허리를 가로막은 손이 윤하경을 가까스로 세웠다.그 장면은 차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고, 차 안의 주승엽은 그 장면을 그대로 보았다.주승엽은 윤하민의 장난감을 맞춰 주며 달래고 있었지만 시선은 내내 윤하경과 강현우 쪽을 의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까운 스킨십을 보는 순간, 주승엽은 문손잡이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아저씨.”윤하민이 손에 든 장난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이거 열어 줄 수 있어요?”한편, 강현우의 품에 안긴 윤하경의 코끝에는 강현우의 몸에서 나는 익숙한 향이 스며들었다.익숙한 향이 스치자 윤하경의 마음속 어딘가가 순간 울렸다. 본능적으로 강현우를 밀쳐내려 했지만 힘의 차이는 너무 컸다.미처 밀어내지 못한 윤하경은 이를 꽉 물고 강현우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 눈빛은 털을 곤두세운 새끼 고양이 같아 위협이라기보다 오히려 강현우의 장난기를 더 돋웠다.강현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게 말했다.“내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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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4화

“방금 말한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예요. 아니면...”윤하경이 잠깐 말을 멈추더니 이어서 말했다.“아니면 알다시피 나는 하민이를 데리고 아주 멀리 떠나서 현우 씨가 다시는 찾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세상은 넓다.윤하경은 강현우에게 권력도 돈도 엄청나다는 걸 알지만 아무리 강현우라도 결국에는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번거롭고 어쩌면 자주 거처를 옮겨야 할지라도 하민이를 잃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말을 끝낸 윤하경은 더는 강현우를 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강현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고, 얼굴빛은 잔뜩 굳어 있었다.윤하경과 주승엽의 차가 떠난 뒤에서야 민진혁이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이제 저희는...”강현우는 그를 한 번 돌아보았을 뿐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던 윤하경의 마음은 이유 없이 쓰렸다.윤하민은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장난감을 내려놓고 윤하경의 무릎 위로 살금살금 올라와 기분을 달래 주려 했다.“엄마, 나쁜 아저씨가 엄마를 괴롭혀서 속상한 거예요?”윤하경이 정신을 가다듬고 웃었다.“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윤하민이 고개를 갸웃했다.“엄마가 안 행복해 보이는데요.”“아니야.”윤하경이 코끝을 톡 건드리며 물었다.“오늘은 재미있었어?”“네. 즐거웠어요.”운전하던 주승엽은 백미러로 두 사람의 모습을 비쳤다. 눈빛이 잠깐 흔들리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아까 그 사람이랑 얘기는 어떻게 됐어요? 조건을 받아들인대요?”윤하경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몰라요. 좀 더 생각해 보겠죠.”“그래요.”주승엽이 간단히 답했다.“만약 소송까지 가야 하면... 우리 둘째 숙부가 꽤 실력 있는 변호사예요.”“고마워요.”윤하경이 낮게 말했다.“필요하면 꼭 부탁할게요.”차는 윤하경과 윤하민이 사는 별장 앞에 멈춰 섰다. 막 내리려는데 문 앞에 낯선 차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윤하경은 잠깐 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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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5화

윤하경은 가볍게 웃으며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문 앞에 서 보니, 정갈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 원피스에 광택 좋은 진주 목걸이를 걸고, 귀걸이도 세트로 맞춰 고급스러운 기운이 풍겼다. 잘 손질한 손톱이 보이는 가녀린 손으로 잔을 들어 가끔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그 여자가 주승엽의 어머니라는 사실만 몰랐다면 윤하경은 아마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여겼을 것이다. 관리를 워낙 잘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기척을 들은 이지아가 컵을 내려놓고 일어나더니 주승엽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사는 윤하경이 아닌 아들에게 먼저 건넸다.“승엽아, 나를 보고도 인사도 안 해? 너무 반가워서 말이 안 나오는 거야?”윤하경이 고개를 돌려 주승엽을 바라보자 어쩐지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가까운 가족을 만난 얼굴치고는 영 어색했다. 주승엽이 대답을 미루자 주인인 윤하경이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여사님, 안녕하세요.”윤하경이 미소를 띠고 손을 내밀었다.“윤하경이라고 합니다.”그제야 이지아는 시선을 주승엽에게서 떼어 윤하경에게로 옮겼다. 너무 완벽해 보일 만큼 정교한 이목구비를 확인하는 순간, 이지아의 눈동자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빛이 스쳤다. 이지아는 손을 곧장 내밀지는 않고, 위아래로 윤하경을 찬찬히 훑어본 뒤 선명한 붉은 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며 물었다.“오... 그쪽이 우리 승엽이의 약혼녀인가요?”윤하경은 잠깐 멈춰 섰다. 이지아가 손을 맞잡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린 뒤 손을 거두었다.윤하경이 막 주승엽과의 관계를 설명하려던 바로 그때, 오히려 주승엽이 먼저 말했다.“맞아요. 윤하경 씨는 제 약혼자예요.”주승엽이 팔을 들어 윤하경의 어깨를 감았다. 윤하경은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며 몸을 빼려 했지만 주승엽은 놓아 주지 않았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 도움을 받은 게 있어 윤하경은 일단 체면을 세워 주었다.이지아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더니 얼굴빛이 굳었다.“이런 일을 왜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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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6화

윤하경은 상대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다.윤하경은 살짝 고개를 돌려 주승엽을 한 번 보고는 미소를 띠고 앞으로 나섰다.“여사님, 이혼해서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사람을 나누시나요?”예상과 달리 윤하경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태연해지자, 이지아의 미간이 가볍게 좁아졌다.그러자 이지아는 콧웃음을 치며 매니큐어를 칠한 손끝을 내려다봤다.“저는 아가씨가 어떤 부류인지 알아요. 그럴싸한 얼굴이랑 젊음 하나 믿고, 외모로 신분을 올려 보려는 그런 부류잖아요.”말을 잇던 이지아의 시선이 윤하경에게로 또렷이 옮겨 갔다.“윤하경 씨는 승엽이가 어떤 가문 사람인지 알고는 있나요? 아가씨는 티끌 하나 없어도 어림없죠. 하물며 이혼에 아이까지 있는 처지라면 더더욱 안 되겠죠.”노골적으로 깔보자 윤하경은 가슴이 순간 뜨거워졌지만, 그동안 주승엽이 베푼 도움을 떠올리며 일단 참았다. 윤하경은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말했다.“주승엽 씨, 어머님께서 오늘 오셔서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두 분 일은 두 분이 정리하세요. 오늘은 늦었네요. 이만 쉬겠습니다.”사람을 돌려보내는 말이 분명해지자 주승엽이 다가와 낮게 말했다.“미안합니다. 어머니가 오신 줄은 저도 몰랐어요. 먼저 모시고 나갈 테니 내일 다시 차분히 얘기해요.”윤하경은 짧게 웃으며 선을 그었다.“우리 사이에 굳이 더 이야기할 건 없어요.”원래도 윤하경은 성격이 얌전한 편은 아니었다. 이지아의 노골적인 조롱을 참고 넘긴 것만으로도 주승엽에게 충분히 체면을 세워 준 셈이었다. 그래서 주승엽의 모호한 말이 이어지자 윤하경은 곧바로 거리를 두었다.그날 주승엽에게 털어놓았을 때와 똑같았다. 윤하경은 주승엽이 자신을 아무리 좋아해도, 주씨 가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게다가 윤하경이 주승엽에게 느끼는 건 호감 정도일 뿐, 좋아한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 집안에서 쏟아지는 악의까지 감당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윤하경이 그렇게 말하자 주승엽의 얼굴에는 상처받은 기색이 스쳤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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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7화

생각지도 못한 일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윤하경은 아직 하얀 레이스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눈을 떴고, 그때 주승엽이 집으로 찾아왔다. 윤하경은 머리를 풀고 아침을 먹으러 복도로 나가려 침실 문을 열자, 문 앞에 주승엽이 서 있었다.“아!”윤하경은 놀라서 반걸음 물러섰다.“저예요.”윤하경이 깜짝 놀라자 주승엽이 급히 말했다.주승엽은 눈앞의 윤하경을 바라보다가 눈빛이 조금씩 깊어졌다. 이렇게까지 있는 그대로의 윤하경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아직 흰 레이스 잠옷 차림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 고전 양식의 복도에 서 있는 모습은 막 잠에서 깨어난 공주를 떠올리게 했다. 예술을 전공했던 주승엽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형언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스쳐 갔다. 주승엽은 고개를 한 번 털어 그 생각을 지우고 말했다.“사과 드리러 왔어요.”침실은 무엇보다 사적인 공간인데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게 못마땅해 윤하경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 윤하경은 말을 꺼내려다 생각을 고쳐 조용히 말했다.“먼저 아래층에서 기다려요. 옷 갈아입고 내려갈게요.”“네.”주승엽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내려갔다.윤하경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은 뒤, 슬리퍼를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거실 소파에는 주승엽이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어딘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윤하경은 잠시 멈칫했다. 주승엽은 늘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초봄의 햇살처럼 눈부시지만 뜨겁지는 않아 편안한 사람이었다. 그런 주승엽이 이렇게 가라앉은 표정을 짓는 건, 윤하경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주승엽의 분위기는 어딘가 달랐다. 윤하경을 바라보던 늘 온화하던 눈빛이 잠시 가라앉았다.“하경 씨, 어제 일은...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윤하경이 입술을 다물었다.“괜찮아요. 게다가 그동안 승엽 씨가 저한테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요. 이런 걸로 제가 화내면 제가 너무 속 좁은 사람이지요.”윤하경은 가볍게 웃으며 일어섰다.“아침 준비됐어요. 같이 드실래요?”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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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8화

“다음에 제가 돌아오면, 모두의 반대를 뚫고서라도 하경 씨와 함께할 거예요.”그 말을 남기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주승엽은 성큼 걸어 나갔다.“어... 잠깐만요. 저는 승엽 씨랑 함께하겠다고 한 적 없거든요...”윤하경이 뒤쫓아 나갔지만 주승엽은 못 들은 건지 듣고도 모른 척했는지, 발걸음만 더 빨라졌다.윤하경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별장 앞에 멈춰 있던 차에 주승엽이 올라타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강현우와의 사이는 한때 너무 뜨겁고 요란했지만 결말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윤하경은 더는 어떤 큰 가문과도 얽히고 싶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자기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가사도우미가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아가씨, 아침이 식었습니다. 다시 데워 드릴까요?”“아니, 됐어요.”윤하경은 온갖 일로 마음이 지쳐 밥맛조차 없었다. 돌아서려던 찰나, 조용히 고급스러운 세단 한 대가 윤하경 앞에 멈춰 섰다. 하필이면 조금 전 주승엽의 차가 서 있던 자리였다.윤하경이 미간을 찌푸릴 틈도 없이 키 큰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손에는 포장 봉투 두 개가 들려 있었다.“여긴 왜 오셨어요?”윤하경이 눈살을 모았다. 어제 강현우가 남긴 말들이 스치면서 눈빛이 더 깊어졌다.강현우가 입매를 살짝 올리며 성큼 다가오면서 손에 든 봉투를 가볍게 흔들었다.“괜찮은 중식당을 발견해서 아침 일찍 포장해 왔지. 너랑 하민이랑 같이 먹으려고.”“저는...”“나쁜 아저씨!”윤하경의 말을 자르듯 뒤에서 윤하민의 맑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나쁜 아저씨다! 또 왔네요.”곧바로 작은 몸이 윤하경의 등 뒤에서 튀어나오더니 강현우의 다리에 꽉 매달렸다.윤하민은 강현우의 손에 든 봉투를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였다.“맛있는 거 사 왔어요?”“게살 만두랑 새우 딤섬이야.”강현우가 몸을 굽혀 윤하민을 번쩍 안아 올렸다.“좋아해?”“좋아해요.” 윤하민이 손뼉을 치며 웃다가 이내 윤하경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는 걸 보고 살짝 겁이 난 듯 눈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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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9화

주승엽의 얼굴에 뭐라 말하기 어려운 표정이 스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지아는 훌쩍거리며 의도한 건지 아닌지 부드러운 가슴이 주승엽의 팔에 자꾸 스쳤다.“이렇게 하는 게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아요?”“허허...”이지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주승엽을 바라봤다.“그래서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날 원망하는 거야? 나도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조금 전 윤하경 앞에서의 그 오만함은 사라지고 지금의 이지아는 거의 제어 불가한 집착에 가까웠다.주승엽이 비웃었다.“예전 일은 그만 들먹여요. 아니면...”주승엽의 차갑게 식은 시선이 이지아의 얼굴에 꽂혔다. 늘 온화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서늘하게 일그러졌다.“아니면 대가는... 어머니도 감당 못 할 겁니다.”이지아의 낯빛이 잠깐 굳었다가 곧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기대며 주승엽의 어깨에 머리를 올렸다.“승엽아, 할아버지는 곧 이제 못 버티실 거야. 네 할아버지만 돌아가시면 우리는 당당하게 함께할 수 있어. 좋지 않아?”이지아는 붉어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속삭였다.“예전에 나한테 집을 만들어 주겠다 했잖아. 이제 그 꿈이 곧 이루어지잖아. 그게 뭐가 나쁜데?”그 말을 들은 주승엽은 얼굴이 확 굳었다. 이지아를 거칠게 밀쳐내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 다시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돌아가서 할아버지께 전부 말씀드릴 거야. 그때가 되면 상속권은 끝일 겁니다. 공들여 쌓은 건 전부 물거품이 될 거고요.”주승엽의 협박에 이지아는 본능적으로 물러나며 멈칫거리더니 잠시 후 코웃음을 쳤다.“그럴 리 없을 거야.”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이지아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스치듯 닦고는 차갑게 웃었다.“승엽아, 네가 몇 년을 바깥에서 떠돌며 집에 안 들어온 이유는... 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서였잖아? 그러니 봐봐, 할아버지만 돌아가시면 우린 함께할 수 있어. 해외로 이사해서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가면 우린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예전에 우리가 말했던 그대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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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0화

경호원들은 이지아가 거의 미친 듯 날뛰어도 고개만 떨군 채 못 들은 척했다.실상 주씨 가문에서 이지아의 말은 대부분 힘이 없었다. 애초에 주씨 가문의 어르신에게 시집가던 일 자체가 떳떳하지 않았고 한동안 손가락질도 받았기 때문이다.강현우는 별장에서 아침까지 함께 먹고 나서야 일어섰다.그러자 윤하경이 말했다.“볼 일 없으면 이제 가요. 저랑 하민이는 이따 밖에 나가야 해요.”“어디 가는 건데?”강현우가 고개를 들자 윤하경이 짧게 대꾸했다.“굳이 어디 가는지까지 말할 필요는 없죠.”강현우는 그 말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일어섰다.“그래. 그럼 갈게.”강현우가 떠나자 윤하경이 윤하민을 보며 한숨처럼 말했다.“오늘 피아노 수업 늦겠어.”윤하민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나쁜 아저씨도 같이 가면 안 돼요?”윤하경은 잠깐 굳었다. 가슴 어딘가가 시큰하게 저렸다. 마치 소중한 것을 누가 힘도 들이지 않고 빼앗아 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윤하민은 물건이 아니고 윤하경도 윤하민이 강현우에게 호기심을 느끼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고 좋아하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었다.그런 모순적인 생각이 윤하경의 마음을 긁었다. 윤하경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쪼그려 앉아 윤하민의 눈을 바라봤다.“하민아, 나쁜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윤하민은 윤하경의 얼굴이 평소와 다름을 알아차린 듯 조심스레 물었다.“엄마, 제가 나쁜 아저씨를 좋아해도 돼요?”그 질문에 윤하경의 마음은 더 아려 왔다.윤하경은 하민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알겠어. 다음에 하민이가 나쁜 아저씨를 여기 머물게 하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해도 돼.”윤하민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 환하게 웃으며 윤하경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윤하민은 아직 어려서 감정을 숨기거나 표현하는 법을 모를 나이였지만 윤하경이 뭘 힘들어하는지만큼은 어렴풋이 이해하는 눈치였다.윤하민은 윤하경의 다리에 볼을 비비더니 한참 만에 말했다.“엄마, 하민이가 세상에서 제일제일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예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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