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581 - Chapter 590

611 Chapters

제581화

윤하경은 얼른 손을 저으며 웃었다.“아니에요, 잘 잘 수 있어요.”윤하경은 쭈뼛거리며 몸을 돌려 강현우에게 등을 보였지만 돌아선 순간,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 그리고 따뜻한 손바닥이 은근슬쩍 아랫배에 얹어졌다.처음엔 깜짝 놀라 그의 손을 치우려 했지만 윤하경은 결국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다.그날 밤, 그녀는 좀처럼 깊게 잠들지 못했다.겨우 동이 트려는 새벽녘에야 잠깐 잠이 들었고 아침 햇살이 창밖을 가득 채웠을 때, 윤하경은 흠칫 놀라 깨어났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고 남겨진 자리에는 차가운 기운만 맴돌았다.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텐데 오늘따라 왠지 모를 허전함이 마음을 짓눌렀다.잠시 멍하니 있다가, 윤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며칠 동안 회사에도, 윤수철을 만나러도 가지 않았던 터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씻고 나오니 식탁에는 이미 준비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고 대충 식사를 마친 윤하경은 가방을 챙겨 회사로 향했다.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회사 상황은 계속 보고받고 있었다. 백정연과 우슬기가 매일 프로젝트 상황을 공유했고 중요한 일들은 온라인으로 직접 처리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택시를 타고 가던 중, 휴대폰으로 백정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회장님이 오늘 회사에 오셨습니다.]윤하경은 메시지를 읽고 눈을 가늘게 떴다.윤수철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처음으로 회사를 찾은 것이다. 그동안은 집에 틀어박혀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던 윤수철이, 오늘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고 무언가 결심한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생각에 잠긴 사이, 기사님이 도착을 알렸고 윤하경은 비용을 지급하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한빛 그룹 사옥을 바라보았다.“윤 대표님.”회사에 도착하자 우슬기가 부리나케 달려왔다.“회장님이 오셔서 모든 임원을 소집해서 긴급회의를 여셨어요. 하지만 저희는 부르지 않았어요.”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어느 회의실이야?”“큰
Read more

제582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윤하경은 뒤에 있던 우슬기를 향해 살짝 손짓해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커다란 회의실 안에는 윤하경과 윤수철, 단둘만 남았다.윤하경은 윤수철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눈을 좁혔다. 그러나 윤수철은 그런 딸의 싸늘한 기색을 못 본 척하고 오히려 평소와 달리 한없이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왔다.“하경아, 내가 없는 동안 네가 회사를 참 잘 지켜줬더라. 내가 경찰서에 있던 동안에도 회사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매출까지 올랐다며. 아빠는 정말 네가 대견스러워.”윤수철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윤하경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그런 가식 떨지 마세요. 이미 증거까지 다 나온 상황인데도 이렇게 멀쩡히 앉아 있는 걸 보니 내가 당신을 너무 얕봤나 보네요.”말하면서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퍼져 나왔다.윤수철은 눈썹을 가볍게 올리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고 이마를 문질렀다.조용히 생각에 잠긴 그는 한참 만에야 고개를 들고 윤하경을 바라봤다.“하경아, 아빠가 그동안 널 많이 소홀히 대한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둘 사이는 결국 피를 나눈 가족이야. 꼭 이렇게 서로 물고 뜯어야겠니?”지금 이 순간의 윤수철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차분했다.예전 같았으면 벌써 언성을 높였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윤하경은 비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냉정하게 말했다.“서로 물고 뜯는 사이라니 웃기네요. 엄마를 죽게 만든 건 잊었어요? 나를 낳아준 사람을.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용서하라고요?”윤하경의 차가운 말투에 윤수철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이내 풀고 천천히 말했다.“그건 네가 오해하고 있는 거야. 그 일은 전부 임수연이 꾸민 거야. 나를 끌어내리려고 거짓말을 퍼뜨린 거야. 하경아, 네가 그런 여자 말을 믿고 아버지인 나를 의심하는 거냐?”그의 목소리는 진심 어린 듯 울려 퍼졌다. 하지만 윤하경은 그런 말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조용히, 아주 냉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Read more

제583화

“제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요?”윤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냉소를 지으며 윤수철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앞으로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알아두세요. 난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그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윤하경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갈 생각도 없이 회의실을 떠났다.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푹 꺼진 의자에 몸을 묻으며 머리를 짚었고 마침 우슬기가 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윤 대표님, 커피 드세요.”윤하경은 손을 뻗다 말고 멈칫했고 잠시 고민하더니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대신 앞으로는 회사 안에서 회장님 쪽 움직임 잘 살펴봐.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알려줘.”우슬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알겠습니다.”윤하경은 조용히 가방을 들었다.“난 좀 어디 다녀올게.”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사무실을 빠져나왔다.아직 손목이 완전히 낫지 않아 직접 운전은 무리였기에 윤하경은 택시를 잡아타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앞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 문 앞에 멈춰 서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진료를 접수하고 피를 뽑은 뒤,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손바닥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윤하경 씨.”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결과 나왔나요?”조심스레 묻자 의사는 진료 결과를 찬찬히 읽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축하합니다. 임신 7주 차네요.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고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의사의 말을 듣자 윤하경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검사를 받았지만 두 병원 모두 같은 결과였다.의사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혹시 원치 않는 임신이라면 지금이 수술하기 가장 안전한 시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몸에 부담이 훨씬 커져요.”그 말에 윤하경은 정신을 차렸고 의사의 시선을 피하듯 진료실을 빠져나왔다.병원 복도에 홀로 선 그녀는 손에 든 두 장의 검사 결과를 멍하니 내려다
Read more

제584화

“의사 선생님, 수술 일정 잡아주세요.”윤하경은 단정하고 예쁜 얼굴 덕분에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사람이었다.담당 의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들어오자 고개를 저으며 안타깝게 말했다.“아이고, 이렇게 예쁜 분이 낳은 아기도 얼마나 예쁘겠어요. 정말... 확실한 거예요?”의사는 마지막까지 설득하려 했고 윤하경은 이를 악물며 대답하지 못했다.의사는 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채고는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조금 더 생각해 봐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신중하게 결정하고 오세요.”윤하경은 가만히 입술을 누르더니 천천히 손을 뻗어 아랫배를 감쌌다.긴 침묵 끝에,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저... 결정했어요.”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가방 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들여다본 순간, 그녀는 손에 쥔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강현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그는 여기에 없는데 단지 이름만 봤을 뿐인데 윤하경은 마치 들켜선 안 될 비밀을 들킨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윤하경은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마음을 다잡고 구석으로 몸을 돌려 조심스럽게 수신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낮고 익숙한, 그리고 어딘가 서늘한 강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야?”그 짧은 한마디에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긴장했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저... 잠깐 외출했어요. 무슨 일 있어요?”“오늘 일찍 끝날 것 같아서 이따가 회사 앞으로 데리러 갈게.”“괜찮아요!”윤하경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높였고 너무 급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오히려 수상해 보였다.전화기 너머로 강현우가 짜증 섞인 소리를 내는 게 느껴졌고 당황한 윤하경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그게, 오늘 저녁에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친구?”강현우가 냉소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친구? 빨리 주소 보내.”윤하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설마... 직접 올 생각인 건가?’망설이던 그녀는 부랴부랴 말을 돌렸다.
Read more

제585화

강현우는 윤하경의 대답을 듣고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며 대신 민진혁에게 고개를 끄덕여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차는 한참을 달려 한 레스토랑 앞에 멈추자 윤하경은 의아하게 물었다.“여긴... 왜요?”“밥 먹자.”강현우는 간단히 대답하고 먼저 차에서 내렸고 윤하경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따라 내렸다. 데이트하는 커플이나 올 법한 이런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둘이 함께 오다니. 둘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강현우의 생각을 일일이 짐작할 순 없는 일이다.윤하경은 별수 없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고 입구에 들어서자, 오늘이 새로 오픈하는 날인지 환영 분위기가 물씬 났다.그리고 문 앞에는 진해리가 서 있었다. 그녀는 윤하경과 강현우를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드디어 왔네! 자리 미리 예약해놨어. 어서 들어가.”그제야 윤하경은 눈치를 챘다. 오늘 강현우가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가 진해리의 새 레스토랑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는 걸.윤하경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미리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준비했을 텐데요... 죄송해요.”진해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무슨 선물까지. 현우가 이미 이것저것 충분히 준비했어요.”그러면서 윤하경과 강현우를 안쪽 자리로 안내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윤하경은 자리에 앉으면서 괜히 강현우를 힐끔 쳐다봤다.“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빈손으로 오다니 너무 무례한 것 같잖아요.”강현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내려다봤다.사실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대부분 친한 사람들이었다. 가게가 본격 오픈하는 건 아니었고 일종의 프라이빗한 시음회 같은 자리였다.윤하경이 투덜거리던 순간,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와서 강현우에게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윤하경은 괜히 존재감을 줄이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한참 동안 인사가 오가고 드디어 주변이 조용해질 때쯤 윤하경은 고개를 들었다가, 뜻밖의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소지연이 유호천의 팔짱을 끼고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형
Read more

제586화

윤하경은 강현우의 매서운 시선에 움찔하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저기, 현우 씨도 한잔하실래요? 제가 따라드릴게요.”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병을 집으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웨이터가 재빠르게 다가와 강현우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그 틈을 타 자리로 돌아가려는 윤하경을 강현우는 굵은 손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움켜쥐며 끌어당기더니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뭐가 그렇게 급해?”강현우의 손길은 옷 너머로 느껴질 정도로 강했고 거칠게 스치는 손끝에 윤하경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저, 저 안 급했어요.”윤하경은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마침 웨이터가 음식을 내오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전환됐고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동안, 윤하경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마주 앉은 소지연과 눈이 마주쳤다.‘윤하경,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윤하경은 슬쩍 눈썹을 치켜올리고 일부러 태연한 척 물었다.“너랑 유호천은...?”유호천이 고개를 들어 윤하경을 봤다.“모르는 척하는 거야? 우리 다시 사귀기로 했어.”곁에 있던 소지연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 윤하경은 그녀를 흘끔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축하해.”그날 밤 우연히 마주쳤던 게 일부러 꾸민 일이었다는 걸, 윤하경은 이제야 조금 눈치챘지만 지금은 강현우와 유호천 둘 다 있는 자리라 더 묻진 않았고 나중에 따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음식이 다 나오고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네 사람 중 유호천이 제일 수다스러웠고 소지연에게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지고 밥을 먹을 때도 은근슬쩍 반찬을 챙겨줬다.윤하경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어쨌든 유호천이 소지연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는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자신의 접시에 누군가 부드럽게 잘라 놓은 스테이크 조각이 얹혔다.고개를 돌리니 강현우는 마치 조금 전 그녀의 접시에 고기를 올린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자신의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윤하경은 조심
Read more

제587화

강현우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서재로 들어가 바쁘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윤하경은 조용히 서재 앞에 멈춰 섰다.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했다. 아마도 임신 때문일까, 온몸이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느낌이었다.잠시 망설이다가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었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막 눈을 감으려는 순간,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고 확인해 보니 소지연의 문자였다.[오늘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강현우랑 싸운 거야?][아니야, 별일 없어. 근데 너야말로, 유호천이랑 어떻게 된 거야? 솔직히 말해.]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리는데 소지연은 한참 동안 답이 없었고 ‘입력 중’ 표시만 깜빡깜빡 오래도록 이어졌다.[하경아, 우리 엄마 헛되이 죽게 할 순 없어.]짧디짧은 한 줄, 그것만으로도 윤하경은 소지연이 어떤 결심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사실 소지연은 겉으로는 덤덤해 보여도 속은 깊고 단단한 아이였다. 윤하경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다.[조심해. 어떤 선택을 하든, 네가 다치지 않길 바랄게.]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쉬는데 바로 뒤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 안 자?”윤하경은 깜짝 놀라 핸드폰을 꺼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조명 아래 강현우의 표정은 어딘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윤하경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지금 자려던 참이었어요.”강현우는 말없이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 올려 앉혔고 그의 얼굴을 살핀 윤하경은 불안하게 침을 꿀꺽 삼켰다.“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윤하경을 내려다봤고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둘 사이를 메웠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그는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할 말 없어?”윤하경의 심장은 요동쳤고 손바닥에 식은땀이 차올랐다.“없어요...”그녀는 간신히 그렇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혹시 정말로 눈치챈 걸까?’윤하경은 필사적으로 침착한 척했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임신 사실을 털어놓아선 안 된다는 걸. 만약 지
Read more

제588화

고민에 쌓인 윤하경은 괜히 입가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머릿속은 여전히 엉켜 있었고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그렇게 혼란한 생각에 젖은 채로 결국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그때쯤, 샤워를 끝낸 강현우가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몸엔 하얀 수건 한 장만 걸쳐져 있었고 물방울이 맺힌 단단한 근육이 조명 아래 윤곽을 드러냈다.강현우는 조용히 침대 옆에 서서 잠든 윤하경을 한참 내려다보았다.은은한 조명 아래, 그녀의 얼굴은 유난히 작고 섬세해 보였고 마치 잘 빚은 도자기 인형 같았다.강현우는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조심스레 침대에 올라 그녀 곁에 누웠다.그날 밤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윤하경이 눈을 떴을 땐, 침대 옆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강현우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모양이었고 이제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가볍게 씻고 옷을 챙겨 입은 그녀는 느긋하게 회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상 사무실 책상에 앉자 모든 집중이 흐트러졌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뱃속에 있는 아이 생각뿐이었다.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마음을 정했었다.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수술을 예약하겠다고. 그런데 막상 아침이 되고 보니 그 결심은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었다.‘그래도, 한 생명인데...’무심코 손이 아랫배로 내려갔지만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끝으로도 아무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안에서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만약 강현우에게 사실을 말한다면 그가 이 아이를 받아줄까?’윤하경은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책상 위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며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익숙한 듯, 낯선 번호가 화면에 떴다. 주저하다가 통화를 받자, 귀에 익지만 싸늘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윤하경 씨?”그녀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고 손은 다시 한번
Read more

제589화

“타요.”한선아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윤하경은 그 미소 너머로 감춰진 의도를 읽지 못할 리 없었고 가슴 속에 묘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한 번 더 뒤를 돌아보니 뒤에는 체구가 크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보디가드 둘이 버티고 있었고 이 상황이 이래선 달리 방법도 없었다.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조심스레 차에 올랐고 다만 본능적으로 한선아와 한 자리 간격을 두고 앉았다.한선아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출발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운전기사가 조용히 시동을 걸었고 차는 매끄럽게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차창 밖 풍경이 조금씩 변해가는 동안, 윤하경은 점점 더 긴장감을 느꼈고 손끝이 저절로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그 모습을 본 한선아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윤하경 씨. 오늘은 당신한테 손대러 온 건 아니니까.”윤하경은 말없이 입술을 꾹 다물고 창밖만 바라봤다.얼마 후, 차는 고급 빌라 앞에 멈췄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 세련된 저택들이 늘어선 그곳. 한선아는 아무렇지 않게 차에서 내려 윤하경을 이끌었다.그녀는 어느 한 채의 테라스에 멈춰서더니 멀리 보이는 맞은편 저택을 가리켰다.“저기, 저 집에 누가 사는지 알아요?”윤하경은 피곤한 듯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돌리지 말고 하세요. 거기 사는 사람이 누군지 따위엔 관심 없어요.”그 말투는 날이 서 있었지만 한선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운 웃음을 지었고 우아하게 테라스의 라탄 소파에 앉으며 손짓했다.“앉아요. 곧 알게 될 테니까.”한숨처럼 숨을 내쉰 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옆에 자리를 잡았다.잠시 후, 누군가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향긋한 커피 향이 퍼졌지만 윤하경은 커피잔을 건드리지 않았다. 한선아가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걸 보면 오늘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그때, 맞은편 저택의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윤하경은
Read more

제590화

윤하경은 눈빛을 살짝 떨었다가, 이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사모님께서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는 알겠지만 괜한 걱정입니다.”한선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윤하경 씨, 그렇게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나도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 아니에요. 속에 무슨 생각 품고 있는지, 안 봐도 훤히 알겠네요.”그녀는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으며 한층 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세상살이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자기 객관화죠. 가문으로 치자면 당신은 박소희만도 못하고 특별함으로 따지자면 신인아보다 한참 부족해요. 현우가 지금 당신한테 관심을 보이는 건, 그냥 잠깐의 신기함 때문일 뿐이죠.”한선아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은 뒤,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대앉았다.“하지만 이런 신기함도 오래 가지 않아요. 그 감정이 식고 나면 당신은 결국 초라하게 버려질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만약 내가 하경 씨라면 스스로 낯깎이기 전에 깨끗하게 물러났을 거예요. 괜히 끌려가면서 창피한 꼴 당하지 말고 말이지.”한선아의 마지막 말은 뻔히 위협이었다. 험담이나 소문만으로 무너질 한빛 그룹은 아니지만 한선아 정도 되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발을 걸면 얼마든지 회사를 흔들 수 있었다.윤하경은 고개를 살짝 숙여 입술을 다물었다가, 곧 단호히 고개를 들었다.“사모님 말씀, 잘 이해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잘 알겠어요.”차에서 내리기 전, 윤하경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봤다.꽃과 초목이 무성한 정원 한가운데 강현우와 신인아가 나란히 앉아 다정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 윤하경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마음을 굳혔다.그녀는 말없이 뒤돌아섰고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 그 자리를 떠났다.한편, 정원 쪽에서 커피잔을 들던 강현우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고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그는 무심코 시선을 돌려 맞은편을 바라봤지만 이미 윤하경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옆에 있던
Read more
PREV
1
...
57585960616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