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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Author: 수박빙수
윤하경은 눈빛을 살짝 떨었다가, 이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모님께서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는 알겠지만 괜한 걱정입니다.”

한선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윤하경 씨, 그렇게 자신을 속이지 말아요. 나도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 아니에요. 속에 무슨 생각 품고 있는지, 안 봐도 훤히 알겠네요.”

그녀는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으며 한층 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세상살이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자기 객관화죠. 가문으로 치자면 당신은 박소희만도 못하고 특별함으로 따지자면 신인아보다 한참 부족해요. 현우가 지금 당신한테 관심을 보이는 건, 그냥 잠깐의 신기함 때문일 뿐이죠.”

한선아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은 뒤,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대앉았다.

“하지만 이런 신기함도 오래 가지 않아요. 그 감정이 식고 나면 당신은 결국 초라하게 버려질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만약 내가 하경 씨라면 스스로 낯깎이기 전에 깨끗하게 물러났을 거예요. 괜히 끌려가면서 창피한 꼴 당하지 말고 말이지.”

한선아의 마지막 말은 뻔히 위협이었다. 험담이나 소문만으로 무너질 한빛 그룹은 아니지만 한선아 정도 되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발을 걸면 얼마든지 회사를 흔들 수 있었다.

윤하경은 고개를 살짝 숙여 입술을 다물었다가, 곧 단호히 고개를 들었다.

“사모님 말씀, 잘 이해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잘 알겠어요.”

차에서 내리기 전, 윤하경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봤다.

꽃과 초목이 무성한 정원 한가운데 강현우와 신인아가 나란히 앉아 다정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 윤하경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말없이 뒤돌아섰고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 그 자리를 떠났다.

한편, 정원 쪽에서 커피잔을 들던 강현우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고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무심코 시선을 돌려 맞은편을 바라봤지만 이미 윤하경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옆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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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35화

    방금 말을 끝내자마자, 윤하경은 강현우의 눈빛에서 금세 위험한 기운이 번쩍이는 걸 느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호칭 하나 말 안 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었지만 강현우는 그녀를 가만히 노려봤다.지금 부르지 않으면 절대 잠 못 자게 하겠다는 뜻이 뻔히 드러나는 눈빛이었다.윤하경은 입술을 살짝 핥고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 마디 뱉었다.“여... 여보...”목소리는 거의 속삭임 수준으로 작았고 말하고 나자마자 자신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냥 평범한 호칭일 뿐인데 그걸 본인이 직접 말하려니 어쩐지 온몸에 부끄러움이 돋았다.하지만 강현우는 그걸로 만족할 리 없었다. 그녀의 턱을 살짝 잡아 고개를 돌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잘 안 들렸어. 다시 말해.”윤하경은 한숨을 삼키며 입술을 꾹 눌렀다.도무지 다시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할 기세가 아니었다.이불 속으로 다시 숨어들려 하자, 강현우는 큰 손으로 이불을 거칠게 걷어냈고 그의 긴 팔과 다리 덕분에 도망갈 틈도 없었다.어차피 도망 못 간다 싶었던 윤하경은 마침내 결심한 듯 숨을 들이쉬고는 체념하듯 빠르게 외쳤다.“여보, 여보, 여보! 됐죠?”그녀가 연달아 세 번이나 말하자마자, 강현우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불 꺼진 방 안에서도, 그는 정확하게 그녀의 입술을 찾아냈다. 입을 막자마자 윤하경은 숨이 막혀왔고 반사적으로 손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강현우는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가볍게 제압해 버렸다.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그녀는 저항도 못 한 채 강현우의 키스에 휘말렸다.사실 임신한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함부로 굴지 않았지만 원래 욕구가 강했던 터라, 윤하경은 항상 조마조마했다. 초기에는 자제해야 한다는 걸 여러 차례 검색하며 확인해 두기도 했다.그래서 그가 입을 맞추는 순간부터, 그녀는 무서움에 심장이 쿵쾅거렸고 마침내 짧게 숨을 틈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34화

    “저... 무서운 건 아니고요.”윤하경이 어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며칠이나 안 오셨잖아요. 오늘은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돼요?”“허.”강현우가 짧게 웃었다.그 웃음소리에서 감정은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건지, 윤하경의 말끝을 비웃는 건지 모를 일이었지만 윤하경은 굳이 따지지 않았다.이 영화는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건데 늘 혼자 보려다 무서워서 끝까지 못 본 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오늘만큼은 강현우가 곁에 있으니 괜히 든든했다.눈치 빠른 하녀가 과일 접시를 조용히 내왔다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윤하경은 과일 접시를 품에 안고 소파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하나 집어 자기 입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강현우 쪽으로도 무심하게 포도를 하나 건넸다.강현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녀의 손끝을 바라보다가, 그 포도를 입에 물었다.그런데 함께 물린 건 그녀의 손가락이었다.촉촉하고 따뜻한 감촉에 윤하경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강현우는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얄밉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드세요. 전 안 먹을게요.”윤하경은 짜증 섞인 눈빛을 보내며 과일 접시를 그의 손에 넘겼다.어떨 땐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고고한 완벽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근히 장난도 심하고 속도 깊은 사람이었다.강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긴 다리를 소파에 편히 뻗었고 표정으로 보아하니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윤하경은 삐죽 입을 내밀며 다시 고개를 돌려 TV를 향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드물게 포근했고 멀리서 보면 딱 연애 초반의 연인처럼 다정했다.저녁을 먹고 나서도 강현우는 윤하경을 안은 채 침대로 향했다.몸을 밀착시켜 누운 강현우의 체온이 얇은 옷을 사이에 두고 그대로 전해졌다. 윤하경은 그 온기에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걸 느끼며 몰래 몸을 앞으로 조금 움직였다.하지만 바로 뒤에서 강현우가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넓은 손이 그녀의 아랫배에 닿았고 뜨겁지만 다정한 손길이었다.윤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33화

    강현우의 말투는 마치 정말 별일 아닌 일로 잡담을 나누는 사람처럼 부드러웠다.윤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현우 씨는 워낙 유명하잖아요. 뭘 해도 사람들이 다 쳐다보죠. 그 소식이 퍼진 것도... 워낙 아는 사람이 많다 보니 누가 흘렸는지 딱 잘라 말하긴 어렵고요.”강현우는 가볍게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나는 이 일로 관련된 사람한테 분명히 말해뒀거든. 내 말 무시할 사람이 있을까?”그 말에 윤하경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으며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강현우, 뭔가 알고 있네.’그녀는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아마... 눈치 없이 나선 누군가겠죠.”강현우는 웃음을 흘리며 손을 들어 그녀의 귀를 가볍게 만졌다.거칠지만 힘을 주지 않은 손끝이, 귀 끝의 연한 살을 스치자 윤하경은 몸을 움찔했다.“눈치 없는 건 확실하지. 그러니까 꼭 찾아내야지. 찾으면... 입에 있는 이빨은 다 뽑고 아예 입을 꿰매버려야겠어.”그는 그런 끔찍한 말을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마치 날씨 얘기나 하듯 말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운데 말은 섬뜩했다.윤하경은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건 좀... 너무 잔인하잖아요?”강현우는 그저 가볍게 웃었다.“그래? 난 괜찮은데.”그는 마치 이제 흥미가 떨어진 듯 그녀를 놓아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씻고 올게. 너 혼자 좀 놀고 있어.”그가 방을 나서고 나서야, 윤하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손바닥을 펴보니 식은땀이 흥건했다.강현우가 다시 내려왔을 땐, 윤하경은 이미 꽃을 병에 정리해 두고 있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거실 한가운데 화려한 꽃들이 놓이자 공간은 제법 생기를 머금었다.그의 취향도 딱 그와 같았다. 절제되고 세련된 흑백 회색 톤, 고급스럽지만 정서 없이 차가운 인테리어. 하지만 윤하경이 가져온 꽃은 그 냉기를 조금은 덜어낸 듯했다.꽃을 정리하고 난 그녀는 다시 소파에 앉아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32화

    거실의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장면은 마치 유화처럼 고요하고 따뜻했다.꽃밭 한가운데서 윤하경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해가림 모자를 쓴 채, 조심스레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 가며 정성스럽게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작은 손에 한 아름 꽃을 안고 거실로 들어서다가, 문가에 서 있는 강현우를 발견한 그녀는 순간 걸음을 멈췄지만 곧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왔어요?”윤하경은 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고 테이블엔 다양한 모양의 꽃병이 이미 놓여 있었다.강현우는 가늘게 눈을 좁히며 다가가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며칠 못 봤다고 보고 싶지도 않았어?”그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살짝 피로가 묻어 있었다.윤하경은 그의 팔 안에서 살짝 놀라듯 굳었지만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랬죠. 그런데... 수아는요?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그 말에 강현우는 잠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녀가 순수한 관심으로 물었다는 걸 느낀 듯, 별다른 감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많이 나아졌어.”“다행이네요.”그녀는 진심 어린 말투로 그렇게 말하곤, 다시 돌아서서 꽃을 하나씩 골라 꽃병에 꽂기 시작했다. 색감을 맞춰 줄기도 적당히 자르고 가지를 다듬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그런 그녀를 한참 지켜보던 강현우는 갑자기 힘을 줘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그대로 테이블 위에 앉혔다.두 사람의 얼굴이 아주 가까워지자, 윤하경의 볼에는 금세 붉은 기가 퍼졌다.“여기서 이러면... 사람들도 있는데...”그녀가 살짝 밀어내며 말하자, 강현우는 코웃음을 치듯 웃었다.“누가 감히 쳐다보겠어.”그의 말대로,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니 언제부터였는지 주변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경호원도, 하녀도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여기서 이러는 건 좀...”하지만 강현우의 두 팔은 마치 쇠처럼 단단히 그녀를 테이블 위에 붙잡고 있었고 아무리 밀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기사 봤어?”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31화

    “아!”넓은 펜트하우스 안, 박소희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얘 좀 봐, 뭘 그렇게 소란스럽게 굴어?”방에서 막 나온 듯한 한 젊은 남자가 박소희의 난동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너도 어엿한 박 회장님 댁 딸이잖아. 그 우아하다는 품격은 어디 갔어?”박소희는 홱 고개를 돌려 오빠 박정훈을 바라봤다.“오빠, 강현우가 결혼한대. 근데... 나랑이 아니라, 딴 여자랑.”그 말에 박정훈도 표정이 굳어졌지만 박소희보다는 한결 침착했다.“강현우가 너한테 마음 없다는 건 진작 알았잖아. 안 되면 다른 사람 만나면 되지, 이럴 일로 호들갑 떨지 마.”“안 돼! 나 강현우 아니면 싫단 말이야! 오빠도 알잖아, 사모님도 나 말고는 며느리 삼을 사람 없다 그랬어. 그 여자? 완전 여우 같은 얼굴로 강현우 홀린 거야! 완전 사기라고!”박정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박씨 가문에 딸은 귀했고 그 중 박소희는 막내이자 집안의 귀염둥이였기에 남자 하나 때문에 이러는 동생이 한심하면서도, 또 마음이 쓰였다.그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담담히 물었다.“그 정도야? 그놈이 그렇게 좋냐?”“당연하지!”박소희는 황급히 옆으로 와서 그의 팔에 매달렸다.“오빠, 도와줘. 나 강현우랑 결혼하고 싶어. 그것만 이뤄지면 평생 오빠 말 잘 들을게.”그녀의 눈동자엔 간절함이 가득했다. 박정훈은 피식 웃으며 그녀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참나, 우리 소희 언제 이렇게 대놓고 철없는 말 하는 아가씨가 됐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매일 결혼 얘기만 하냐?”박소희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억지 미소를 지었다.“흠... 그렇지만 방법이 없잖아.”박정훈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강현우, 물론 그쪽도 제법 힘 있는 집안이긴 해. 근데 우리 박씨도 만만치 않지. 난 믿어, 제대로 움직이면 강현우가 뭐가 중요한지 판단할 거야.”“역시 오빠가 최고야!”박소희는 박정훈의 목에 팔을 감고 뺨에 뽀뽀를 하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근데 오빠, 사람 좀 빌려줄 수 있어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30화

    강현우는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봤고 그 시선이 잠시 그녀가 붙잡고 있는 옷소매에 머물렀다가, 다시 눈을 맞췄다.“잠깐 나갔다가 올 거야. 너는 얌전히 집에 있어. 일 끝나는 대로 바로 들어올게.”평소와는 다른,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윤하경은 살짝 멈칫하더니 처음으로 떼를 써보고 싶었다.“그런데 오늘 밤에는 그냥 좀 같이 있고 싶어서요.”그 말을 들은 강현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말 들어. 인아는 다른 사람이랑은 달라. 그런 유치한 질투, 의미 없어.”윤하경은 그 말을 들으며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정말 질투라고 생각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이 상황이 우습기까지 했지만 억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윤하경은 웃으면서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놨다.“장난이에요. 빨리 다녀오세요.”강현우는 그녀가 순순히 말하자 고개를 숙여 윤하경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낮게 속삭였다.“일 끝나면 바로 올게.”“네.”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그리고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억지로 지었던 웃음이 서서히 지워졌다.“하아.”침대에 다시 누우며 윤하경은 아까 강현우가 보였던 싸늘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 찰나의 순간이, 마음속 어딘가를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나는 아직 1순위가 아닌가 봐...’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다가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짧은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오늘은 꼭 같이 있을 거라더니 결국 안 오네.’강현우는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고 심지어 다음 날이 되어도 소식은 없었다.윤하경은 여전히 감시받고 있다는 걸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겉보기엔 평온한 하루가 또 흘러갔다.다음 날 아침, 백정연에게서 전화가 왔다.“하경 씨, 윤수철 회장이 방금 회사에 공식 통보했어요. 부대표직 정식으로 해임됐대요.”그 말에 윤하경은 놀라지 않았다. 윤수철이 어제 보여준 모습만 봐도 이 정도는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알겠어요.” 짧게 대답한 뒤, 그녀는 잠시 망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9화

    윤하경은 정신을 번쩍 차리며 얼른 말했다.“아, 아니요. 그냥... 결혼식장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그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강현우는 슬쩍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몸을 돌려 윤하경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래? 그럼 말해봐. 어떤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갑작스러운 질문에 윤하경은 잠깐 말문이 막혔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현우 씨가 보시기에 좋은 걸로 하세요. 저야 뭐... 다 좋죠.”그 말을 하며 윤하경은 강현우 품에 살짝 기대며 마치 애교라도 부리듯 굴었고 슬쩍 넘어가 보려는 수였지만 티가 너무 났다.그러자 강현우는 그녀의 머리 위를 내려다보다가 목덜미를 집어들 듯 가볍게 잡아 일으켜 세웠다. 윤하경이 당황해서 눈을 들어 바라봤을 땐, 강현우의 입꼬리가 어느새 내려가 있었다. 순간, 자신이 뭔가 실수했나 싶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우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현우 씨...?”“네?”“결혼할 사이에 그렇게 부르는 건 그건 좀 아니지 않아?”윤하경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당황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뭐라고 부르면 되는데요?”강현우와의 관계가 애초에 편한 사이가 아니었던 탓에,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강 대표님’ 또는 ‘현우 씨’라고 불러왔고 화가 나면 가끔 이름을 부른 적은 있어도 그것도 기껏해야 반쯤 미쳐 있을 때였다.강현우는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전에 구지호한텐 어떻게 불렀는데?”윤하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식더니 억지로 짓던 미소도 싹 사라졌다.“또 왜 그 사람 얘길 해요.”하지만 강현우는 마치 놀리듯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그녀의 턱을 꾹 집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대답 안 해? 예전엔 구지호한테 뭐라고 불렀는데?”윤하경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사실 예전에 구지호와 잘 지낼 때는 간혹 애칭도 부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속이 뒤집힐 정도로 역겨웠다.그녀가 끝까지 대답을 피하자, 강현우는 턱을 쥔 손에 점점 더 힘을 줬다.“아파요...”윤하경이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8화

    윤하경은 잠시 얼어붙었다.작고 여린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지만 강현우는 그런 반응쯤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무심하게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입술이 닿은 곳은 간지럽고 따뜻했지만 전혀 편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윤하경의 심장은 점점 더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표정만 보면 강현우는 지금 화가 나 있는 것도 아니고 겉으론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지만 윤하경은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 있었고 어쩌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다.“오늘 웨딩드레스는 어땠어?”강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지만 팔은 여전히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윤하경은 순간을 모면하듯 가볍게 기침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예뻤어요.”“그런데 왜 입어보진 않았어? 마음에 안 들었어? 내일 좀 더 골라서 다시 보내게 할까?”말투는 다정했지만 그 다정함이 오히려 더 낯설고 소름 돋았다.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예 잊어버린 사람처럼,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윤하경은 강현우의 감정 기복엔 이제 익숙해질 만큼 익숙했고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이미 골랐으니까, 더 보내실 필요는 없어요.”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강현우를 바라봤다.천장에서 내려오는 노란 조명이 그의 날렵한 이목구비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고 그 모습만큼은 분명 여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완벽했다.그녀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식사는 하셨어요? 안 드셨으면 주방에 얘기해서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강현우는 별말 없이 그녀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리며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근데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강현우의 말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단정적이었다. 윤하경은 짧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젓고는 억지웃음을 지었다.“아니에요. 좋아요. 오히려 좀 얼떨떨해서요.”그녀의 또렷하고 예쁜 눈매엔 억지로 숨긴 피로함이 엿보였다. 강현우는 말없이 그녀를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7화

    “뭐, 뭐라고?”윤하경은 막 잠에서 깨어났고 어젯밤 제대로 못 잔 탓에 정신이 멍했다.소지연의 말을 한참 듣고서야 그 뜻을 알아챈 윤하경은 얼굴에 미세한 기대감이 떠올랐다.“그럼... 우리 잠깐이라도 밖에 나갈 수 있는 거야?”소지연이 혀를 찼다.“밖에 왜 나가? 강현우가 말 한마디만 하면 유명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들이 알아서 찾아오잖아. 오히려 나가서 고를 필요가 없는 거지.”결국 바깥바람은 못 쐰다는 얘기였고 윤하경의 얼굴에는 금세 실망이 드러났다.그 표정을 본 소지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너... 왜 그렇게 기운 없어 보여? 너답지 않게.”윤하경과 소지연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딱 한 번의 표정만 봐도 상대의 속을 읽어낼 수 있었다. 소지연은 당연히 윤하경이 기뻐할 줄 알았다. 강현우 같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건 대부분의 여자에게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느껴질 일이니까 말이다.그런데 지금 윤하경의 표정에는 그런 기쁨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윤하경은 잠시 눈을 들어 소지연을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지연아, 내가 정말 기뻐해야 할까?”그 말에 소지연의 표정도 진지하게 바뀌었다.“하경아,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바로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문 너머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윤하경 씨,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도착하셨습니다. 거실로 내려와 주시겠어요?”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윤하경은 마치 줄에 묶인 인형처럼 턱 하니 멈춰 서 있었다.소지연이 뭔가 말하려던 찰나 윤하경이 먼저 일어섰다.“가자. 내려가서 보자고.”말을 마치고 욕실로 들어가 버린 그녀의 뒷모습에 소지연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이 복잡한 일에 친구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얼마 후 윤하경은 다시 방에서 나왔고 이제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억지웃음이 걸려 있었다.“가자.”표정이 순식간에 바뀐 걸 본 소지연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래.”두 사람은 함께 거실로 내려갔고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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