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611 - Chapter 620

635 Chapters

제611화

윤하경은 조용히 강현우를 바라보았고 어쩐 일인지, 그의 대답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정말로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 아이도 이제는 정말 지켜낼 수 있는 걸까?’망설이던 윤하경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물었다.강현우는 가늘게 입술을 다문 채,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긴 다리를 뻗으며 그녀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결혼할래?”윤하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강현우의 말에 숨을 멈췄다.‘이게... 설마, 프러포즈야?’모든 여자들이 한 번쯤 꿈꾸는 청혼의 순간. 바닷가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저녁노을 속에서...하지만 지금 그 순간은 병실이었다. 강현우라면 이 방식도 어쩌면 너무 그답다 싶었다.윤하경이 한참을 망설이다 말이 없자 강현우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익숙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뭐야, 이렇게 고민해? 혹시 다른 놈이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윤하경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봤지만 이제는 그의 이런 돌발 화법에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현우 씨, 농담 참 잘하시네요.”강현우는 그제야 손을 거두며 조용히 말했다.“딴 건 생각하지 마. 너는 그냥 가만히 신부 될 준비만 해.”그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말투도, 표정도 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윤하경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진심이에요? 정말, 나랑 결혼할 생각이에요?”강현우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고 마치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는 표정이었다.윤하경은 다시 한번 입술을 꾹 다물고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그럼... 사모님은요? 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까지...”그녀는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여자가 아니었다. 강현우 같은 사람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그 집안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다.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과 결혼한다면 분명 가족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강씨 가문에서 마음에 두고 있는 며느릿감은 박소희라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강현우는 피식 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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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윤하경은 잠시 멈칫했다가, 결국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곧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윤하경, 너 대체 어디 있는 거야?”목소리의 주인은 윤수철이었다. 예전 같으면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쌍욕부터 퍼부었을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그래도 목소리가 한층 차분했다.“무슨 일인데요?”윤수철은 다짜고짜 따졌다.“어디 간 거야? 왜 연락이 안 돼? 회사에도 안 나오고 대체 뭐 하는 거야?”하지만 윤하경은 그 말에 단호하게 받아쳤다.“제가 출근하든 말든. 아버지한테 말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요. 제 업무는 제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쓸데없는 간섭은 삼가시죠.”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심지어 망설일 틈도 없이 곧바로 윤수철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 추가했다.지금의 윤하경에게 윤수철의 목소리는 그저 혐오감밖에 남지 않았다.만약 한빛 그룹이 신수아의 심혈이 깃든 곳이 아니었다면 진작 이들과 모든 인연을 끊고 싶었다.한편 한빛 그룹 회장실.전화를 끊긴 윤수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앞에는 중년 남자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고 그는 조소를 머금으며 날카롭게 말했다.“보아하니 윤 대표님 딸은 당신 말도 통하지 않는 모양이군요?”중년 남자는 강씨 가문에서 보내온 이 집사였다. 윤수철은 억지로 웃으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우리 하경이가 좀 제멋대로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이 집사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입을 적시더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요즘 윤하경 씨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는 말씀입니다. 저희 회장님께서도 좋게 보지 않으셔서요. 그쪽에서 알아서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군요.”그 말끝에 번지는 웃음에는 명백한 위협이 담겨 있었고 윤수철은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하경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설마 단지 하경이가 강현우와 가까워졌기 때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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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10분 후.윤수철은 이 집사를 회사 정문까지 배웅했고 문 앞에 멈춰 선 채, 그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후 윤수철은 입꼬리를 아주 희미하게 올리더니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회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다음 날.윤하경은 병원에서 강현우가 마련해준 별장으로 옮겨졌고 여전히 외출은 금지됐지만 방 안에만 갇혀 있는 건 아니었다.컴퓨터와 휴대폰도 사용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한빛 그룹 업무는 차질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딱히 심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감시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딘가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그날 밤, 윤하경은 조심스럽게 강현우의 품에 안겼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 위에 머리를 대고 손끝으로는 무심히 원을 그렸다.그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윤하경은 조용히 손길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그 순간, 강현우가 재빠르게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고 윤하경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강현우는 마침내 눈을 떴고 어둠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이었다.“지금 장난칠 기분이야?”윤하경은 얇게 웃었다.“그게, 혹시... 말씀 좀 드려도 될까요?”“안 돼.”차갑고 단호한 한마디에, 윤하경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다시 제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우가 긴 팔로 그녀를 다시 안아 올렸고 윤하경은 순간, 그의 가슴 위에 포개져 눕게 되었다.얇은 실크 잠옷 하나만 걸친 채, 가슴과 가슴 사이엔 고작 한 겹의 천밖에 없었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윤하경은 얼굴까지 붉어졌다.“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임신 중인데 설마 지금 이런 분위기까지 만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지?’강현우는 그런 그녀의 손을 아래로 이끌었고 무엇인가 뜨겁고 단단한 것이 손에 닿았다.윤하경은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강현우는 단단히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네가 불붙였잖아. 끝도 네가 내.”“저, 저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게다가, 지금은 좀... 불편해요.”강현우의 침대 위 본능을 생각하면 지금 이 상황은 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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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지금 제 부탁 들어주신다는 거예요?”그러자 강현우는 낮고 느린 목소리로 답했다.“내가 언제 들어준다고 했어?”윤하경은 그의 웃는 듯한 눈빛을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아까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요!”“생각해 본다고 했지, 들어준다고는 안 했어.”강현우는 느긋하게 손을 씻고 옆에 있던 수건으로 손을 닦았고 고개를 숙여 윤하경을 내려다봤다.“말해봐.”윤하경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럼... 말씀드릴게요. 근데 화내지 않으셔야 해요.”강현우는 대답 대신 가볍게 한쪽 눈썹만 올렸고 윤하경은 망설이다가 결국 솔직히 털어놨다.“사실은... 내일부터 밖에 좀 나가도 될까요? 여기만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저 절대 함부로 돌아다니지도 않고 뱃속 아기도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게요.”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을 통해, 윤하경도 이제야 강현우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절대 아기에게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하지만 강현우는 차갑게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는 단칼에 잘라 거절했다.“안 돼.”윤하경은 올라가던 입꼬리를 힘없이 떨어뜨렸다.“왜요?”“그냥. 여기서 얌전히 있어.”강현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바로 침실로 향해버렸고 윤하경은 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작게 입을 삐죽이며 강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거짓말쟁이...”괜히 강현우한테 들켰다가는 또 혼날까 봐 윤하경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녀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강현우는 막 침대에 누운 참이었다.그런데 마침 침대 옆 협탁에 올려져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윤하경은 무심히 스쳐 지나가다가 화면을 슬쩍 봤는데 발신자가 우지원이었다.윤하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분이 상한 채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나 우지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금방 잠들 것 같던 강현우가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정장을 갈아입은 그는 잠시 윤하경 곁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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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강현우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여전히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통증에 이마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입이 풀리자마자 그는 이를 악물고 강현우를 노려봤다.“당신들 지금 하는 짓, 다 불법인 거 알죠?”강현우는 짜증 난 듯 짧게 혀를 찼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다시 총을 집어 들었다.이번엔 바로 그 남자의 다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으아악!”남자는 의자에 묶인 채로 비명을 질렀고 주변에 있던 우지원은 곧장 손짓해 입을 막게 했다. 강현우는 다리를 꼬고 몸을 뒤로 젖히며 말없이 그를 내려다봤다.“기회는 이제 한 번 남았어. 누가 널 보냈는지, 그리고 그놈이 노린 게 나인지, 아니면 윤하경인지.”강현우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분위기는 순간 차가워졌다. 남자는 이를 악물고 강현우를 노려봤지만 그 순간 총을 쏠 때조차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던 그 눈빛 앞에선 버티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우린 의뢰인의 정보 따위는 묻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 업계 생존 법칙이니까요. 죽이시든 고문하시든, 빨리 끝내시죠. 난 돈 받고 일한 것뿐입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제야 강현우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스치더니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며 묘하게 섬뜩한 미소가 맺혔다.“의외로 직업윤리는 철저하네?”그리고 손짓으로 우지원을 불렀다.“가족 있는지 좀 알아봐. 이렇게 충직한 사람이면 죽을 땐 같이 보내줘야지.”그 말은 차라리 속삭이는 것처럼 부드러웠지만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만큼 서늘했다.“안 돼요! 제발, 가족은 건드리지 마세요!”그제야 남자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아까까진 이를 악물고 버티던 사람이 지금은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제발... 대표님... 가족들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법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퍼붓던 사람이 이제는 땅에 머리를 조아릴 듯 비굴하게 매달렸다.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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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비록 강현우의 말투는 무심한 듯 흘려보냈지만 남자는 여전히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고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의뢰인에 대한 단서들을 떠올렸다.얼마나 지났을까. 강현우가 거의 인내심을 잃을 무렵,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생각났습니다. 그 남자... 처음 만났을 때, 눈썹 근처에 흉터가 있었습니다.”“그게 끝이야?”강현우가 말하기도 전에 우지원이 발끈하며 의자를 걷어찼다.“그딴 흉터 하나로 뭘 어쩌라고? 유용한 정보는 하나도 없잖아, 젠장.”그러고는 돌아서서 툭툭한 말투로 강현우에게 말했다.“형, 이 자식 입에서 나올 정보는 더 이상 없는 것 같네요. 그냥 정리하죠.”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짧게 한 마디만 뱉었다.“알아서 처리해.”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는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고 강현우는 무표정하게 눈썹을 한번 찡그렸다.잠시 후 곧 문이 열리고 우지원이 웃으며 따라 나왔다.“형, 아까는 그렇게 세게 나가더니... 막상 겁만 좀 줬더니 바로 오줌 지리더라니까요. 진짜 더러워 죽겠네.”강현우는 아무 반응 없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우지원이 곧장 옆으로 붙으며 말했다.“근데 형, 걔 말이 맞다면... 노선랑 시간은 의뢰인이 직접 지정했다는 거잖아요? 그럼 표적은 형이 아니라, 윤하경 씨였던 거예요.”강현우는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계속 말해.”“밖에서 형수님 해치고 싶어 할 만한 놈들... 그 집 안에 있는 인간들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형이 형수님 붙잡아둔 건, 진짜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아요. 지금 밖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해요.”우지원은 자신이 기막히게 잘 짚었다는 듯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그렇죠? 저 좀 똑똑한 거 맞죠?”그러자 강현우가 옆을 돌아보며 말없이 그를 흘깃 보았다.“그렇게 똑똑하면 하루 안에 잡아 와.”그 말에 우지원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하, 하루요...? 형, 근데 지금 단서가 끊겼는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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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그 말을 끝으로 윤하경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잠깐만 하경아!”윤수철이 다급하게 붙잡았다.“나를 안 만나도 좋지만... 네 엄마에 관한 얘기, 정말 듣고 싶지 않아?”윤하경은 전화를 끊으려던 손을 멈추더니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아버지, 꼭 이렇게까지 비열하게 나와야 해요? 매번 엄마를 핑계 삼아서 저를 흔들려는 건 똑같네요.”“윤수철.”그녀는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이제 그를 ‘아빠’라고 부를 감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윤하경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곤 또박또박 말했다.“마지막으로 말할게요. 당신은 엄마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도 없어요. 그리고 또다시 엄마 얘기 꺼내면...”“너, 결혼한다면서? 강현우랑?”그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수철이 불쑥 끼어들었다.그러자 윤하경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누가 말했는데요?”강현우가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어디에도 소문이 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윤수철이 알았을까? 혹시 현우 씨가 일부러 얘기한 건 아닐까?’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강현우는 그녀와 윤수철 사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윤수철에게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리 없었다.그런 윤하경의 침묵 속에서 윤수철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하경아, 어쨌든 나는 네 아버지야. 네가 나를 인정하든 안 하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당연히 아버지랑 상의하는 게 순서 아니겠어? 그리고 네 엄마가 예전에 남기고 간 것도 이제는 네 손에 넘겨줘야 하지 않겠니?”앞부분까지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윤하경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엄마가 남긴 것...’그건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또... 절 속이려는 거죠?”윤하경의 목소리는 낮고 냉담했다.“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얘기를 미끼 삼아서 나를 끌어내려 했잖아요. 이번에도 또 그거 하나로 내가 돌아올 줄 알았다면 정말 착각이에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넌... 날 그렇게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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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지금 있는 곳은 2층이었고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건 아니었다.예전에 암벽 등반도 꽤 해봤던 윤하경에게 이 정도 높이는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발코니 아래쪽 몇 군데 발 디딜 수 있는 지점을 살펴보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동선을 계산했다. 충분히 가능했고 위험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순찰 중인 경호원들을 따돌리지 않으면 아무리 탈출로가 있어도 소용없었다.그때, 묵직한 노크 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하경 씨, 식사 준비됐어요. 얼른 내려오셔서 좀 드세요. 대표님께서 이따 오셔서 또 안 드신 거 보면 화내실지도 몰라요.”집사의 목소리였다.윤하경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말했다.“네, 금방 내려갈게요.”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탈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강현우가 없는 틈을 타 두 시간 안에 다녀오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조심스레 따져보며 생각을 이어갔다.“하경 씨, 밥 좀 더 드릴까요?”집사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괜찮아요.”식사를 마친 윤하경은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가 다시 발코니로 향했다. 그리고 곧 경호원들이 집 한 바퀴를 도는 데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시간만 잘 노리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계획이 서자 그녀는 재빨리 방을 나와 아래층으로 향했고 그녀가 내려오자 집사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했다.“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만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윤하경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좀 피곤해서요. 낮잠 좀 잘게요. 점심은 건너뛸게요. 깨우지 마시고 일어나면 알아서 챙겨 먹을게요.”집사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식사 준비해 둘게요.”“고마워요.”짧게 웃은 윤하경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발코니에 앉았다. 그리고 경호원들의 그림자가 코너를 돌아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렸다.마침내, 그들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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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윤하경은 작고 고운 얼굴이었지만 차가운 표정을 지을 땐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강현우 곁에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게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몰랐다.스스로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지만 차갑게 굳은 그녀의 눈매와 표정에서는 분명 강현우와 닮은 구석이 드러났다.윤수철이 내밀었던 손은 허공에서 어정쩡하게 멈췄고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윤하경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눈빛 속에 스치듯 스산한 빛이 지나갔지만 곧 다시 평소처럼 자애로운 아버지의 얼굴로 돌아갔다.집 안에 들어선 윤하경은 곧장 주방 쪽을 살폈다. “유 집사님은요?”그녀가 두 번이나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자 윤수철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며칠 가족 일로 잠깐 집에 갔어. 곧 돌아올 거야.”그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하경아, 우리 서재로 가서 이야기하자.”그는 윤하경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윤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서재 안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어두웠지만 그녀는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 손가락을 무의식중에 움켜쥐어졌다.그토록 기다리던, 엄마의 유품이 드디어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걸까.윤수철은 소파를 가리켰다.“앉아.”하지만 윤하경은 단호하게 말했다.“됐어요. 말씀만 하세요. 전 받아야 할 것만 받고 곧장 나갈 거니까요.”그녀의 말투는 단호하고 차가웠으며 더 이상 시간 낭비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윤수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경아, 우리 사이가 꼭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니?”윤하경은 그런 뻔한 말이 가장 질색이었다. “그러니까, 말씀하시라니까요. 단, 쓸데없는 소리는 빼고요. 저 시간 많지 않아요.”윤수철은 몸을 움직이며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쳐다봤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책상 쪽으로 다가가 나무 상자를 열고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냈다.“이걸 먼저 봐.”윤하경은 그걸 받아 들고 훑어봤지만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생전에 신수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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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윤수철은 곧장 한숨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경아, 그저 강 회장님께서 너랑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싶어 하실 뿐이야. 다른 의도는 없어. 그리고 너도 알잖니...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는걸...”그러자 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듯 비웃었다.“그 가식적인 태도 좀 그만해요. 정말 보기 역겨우니까.”옆에 서 있던 이 집사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윤하경 씨, 저희 회장님께서 정말 오랫동안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셨어요. 아버님과 하실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고 지금은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말은 공손했지만 그는 곧바로 손짓으로 뒤에 있던 남자들에게 신호를 줬다. 그러자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앞으로 나서며 윤하경에게 손을 뻗었다.“손대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차가운 목소리에 두 남자의 손이 멈췄고 그들은 이 집사를 바라보며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이 집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윤하경 씨는 영리한 분이시네요. 불필요한 충돌은 없도록 하시죠.”그는 손을 뻗어 그녀에게 길을 내주며 말했다.“이쪽으로 가시죠.”나가기 전, 윤하경은 고개를 돌려 윤수철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은 날카로운 칼처럼 꽂혔고 그 순간 윤수철은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를 악물며 눈빛을 피했고 그 속엔 어두운 감정이 어른거렸다.윤하경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 집사는 천천히 윤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순간, 그는 윤수철의 눈빛 속에서 숨기지 못한 독기를 보았고 저도 모르게 냉소가 입가에 걸렸다.‘호랑이도 제 새끼는 물지 않는다고 했는데...’윤수철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윤 회장님, 저희 회장님께서 이번 일은 윤 회장님과는 무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빛 그룹엔 아무 문제 없을 거라 하셨으니 걱정하지 마시죠.”윤수철은 애매하게 헛기침을 했다. 딸을 팔아넘긴 꼴이니 아무리 해도 찝찝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기에 억지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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