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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Author: 수박빙수
그 말을 끝으로 윤하경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잠깐만 하경아!”

윤수철이 다급하게 붙잡았다.

“나를 안 만나도 좋지만... 네 엄마에 관한 얘기, 정말 듣고 싶지 않아?”

윤하경은 전화를 끊으려던 손을 멈추더니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아버지, 꼭 이렇게까지 비열하게 나와야 해요? 매번 엄마를 핑계 삼아서 저를 흔들려는 건 똑같네요.”

“윤수철.”

그녀는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이제 그를 ‘아빠’라고 부를 감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윤하경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곤 또박또박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당신은 엄마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도 없어요. 그리고 또다시 엄마 얘기 꺼내면...”

“너, 결혼한다면서? 강현우랑?”

그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수철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자 윤하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누가 말했는데요?”

강현우가 자신과 결혼하겠다고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어디에도 소문이 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윤수철이 알았을까? 혹시 현우 씨가 일부러 얘기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강현우는 그녀와 윤수철 사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윤수철에게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리 없었다.

그런 윤하경의 침묵 속에서 윤수철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하경아, 어쨌든 나는 네 아버지야. 네가 나를 인정하든 안 하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당연히 아버지랑 상의하는 게 순서 아니겠어? 그리고 네 엄마가 예전에 남기고 간 것도 이제는 네 손에 넘겨줘야 하지 않겠니?”

앞부분까지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윤하경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가 남긴 것...’

그건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또... 절 속이려는 거죠?”

윤하경의 목소리는 낮고 냉담했다.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얘기를 미끼 삼아서 나를 끌어내려 했잖아요. 이번에도 또 그거 하나로 내가 돌아올 줄 알았다면 정말 착각이에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넌... 날 그렇게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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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3화

    누군가 강현우를 막아보려 했지만 그가 손에 쥔 총을 보고는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못한 채 눈치만 살피며 우왕좌왕할 뿐이었다.윤하경이 강현우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이 집사가 그녀를 꽉 붙잡았다.그걸 본 강현우의 시선이 이 집사에게 매섭게 꽂혔고 그 눈빛은 말 그대로 얼음처럼 차가웠다.“놔.”강현우의 짧고 단호한 한마디였다.“그만하면 됐어!”강호석은 억지로 버텼고 손가락으로 강현우가 들고 있는 총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강현우, 네가 지금 이게 어른한테 할 짓이냐? 집안 규칙 다 잊었어? 집 안에서 무기 들이대는 거 금지인 거 몰라? 넌 한 여자 때문에 가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냐!”평소 윤하경 앞에서 보이던 너그러운 웃음은 온데간데없었고 분노로 굳은 그의 얼굴엔 오랜 세월 쌓인 권위가 묻어났다.하지만 강현우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그래요?”그는 들고 있던 총을 가볍게 흔들며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그럼 할아버지는 내 여자를 왜 데려가셨는지부터 말해보시죠.”내 여자라는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강현우는 느긋하게 옆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는 강호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덧붙였다.“진짜 그냥 얘기 좀 하려고 부르신 거예요? 설마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으시겠죠?”강호석은 이를 악물고 있었고 이 집사가 급히 중재에 나섰다.“대표님... 회장님도 다 대표님을 위해서 하신...”“탕!”갑작스레 울려 퍼진 총성에 모두가 얼어붙었다.총구는 이 집사가 서 있던 자리 바로 옆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윤하경도 놀랐지만 이내 눈빛이 차분해졌다. 강현우의 사격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위험이 가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반면 이 집사는 뒷걸음질 치며 식은땀을 흘렸다.강호석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강현우, 네 눈에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강현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내렸다.“그럴 리 있겠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인데요.”강현우는 입으로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2화

    강호석은 여유롭게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회장님, 데려왔습니다.”이 집사의 목소리가 고요했던 분위기를 깨뜨렸다.순간, 강호석은 날카롭게 윤하경을 째려봤고 그 눈빛은 세월을 버틴 지혜와 위압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강현우와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윤하경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눈빛만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시선에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심장이 순간 움찔했어도 얼굴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말없이 흐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윤하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회장님 안녕하세요. 갑작스레 부르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건가요?”그녀의 차분한 인사에 강호석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내가 무섭지 않나 보지?”윤하경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회장님, 겉모습만 보면 참 인자해 보이세요. 제가 무서울 이유가 없죠.”강호석은 예의 바른 윤하경의 말에 살짝 기세를 누그러뜨렸다.“배짱은 있네.”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네가 우리 현우를 붙잡고 결혼하겠다고 고집 피운다는 애지?”윤하경은 잠시 멈칫했지만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강호석은 그녀의 반응을 흘끗 보더니 다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왜 대답 안 해? 내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게 예의 아닌가?”잠시 생각에 잠긴 윤하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니에요’라고 하면 괜히 잘난 체하는 것 같고 ‘맞아요’라고 하면 더 웃기잖아요.”그 대답에 강호석이 흥미를 느낀 듯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윤하경 앞까지 걸어와 섰다.비록 허리는 굽었어도, 그가 내뿜는 분위기는 여전히 날카롭고 위압적이었다. 강호석은 웃을 땐 인자한 얼굴이었지만 웃지 않는 지금은 오히려 섬뜩했다.“그 말인즉슨, 우리 현우가 널 놔주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하는 거다... 그 말이지?”그는 비웃듯 낮게 웃더니 곧이어 목소리를 낮췄다.“네가 좀 잔머리 쓰는 거야 알겠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발을 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말끝이 채 떨어지기도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1화

    강현우는 신인아와 점심을 먹던 중 전화가 울리자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순간, 바로 전화를 받았다.“뭐라고?”그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단호했다. 신인아가 그의 그릇에 반찬을 덜어주려던 손이 멈췄고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보았다.“현우 오빠, 무슨 일 생긴 거예요?”그는 대답 대신 전화기 너머로 차갑게 명령했다.“당장 인원 풀어. 집을 뒤집어서라도 찾아. 반드시.”전화를 끊은 강현우는 바로 일어서려 했지만 신인아가 그를 붙잡았다.“오빠... 며칠째 나 혼자잖아요. 밥 한 끼도 끝까지 못 먹고 가는 거예요?”그녀의 눈동자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촉촉한 빛이 맺혀 있었고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안쓰러운 표정에 한순간 망설인 강현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톤을 낮췄다.“인아야. 이따가 다시 올게. 지금은 급한 일이 생겼어.”“하지만...”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강현우는 이미 등을 돌리고 떠났다.민진혁도 곧바로 그 뒤를 따라나섰고 두 사람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신인아는 이내 표정을 바꿨다.순식간에 식탁 위를 밀쳐 그릇들을 바닥으로 쓸어내렸고 요란한 파편 소리가 거실을 메웠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곧이어 어딘가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그녀를 안았다.“인아 씨, 괜찮으십니까?”호영의 목소리는 거칠고 낮았다. 신인아는 그를 힘껏 밀치며 이를 악물고 노려봤다.“무능한 놈! 윤하경 하나 처리도 못 하면서 무슨 쓸모가 있어?”조금 전, 강현우의 전화 속에서 ‘윤하경’이라는 이름이 분명 들렸다. 지난번 그렇게 큰 사고가 있었는데도 멀쩡하다니 분노가 다시 치밀었다.호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실력이 부족했습니다.”“그나마 자각은 있네.”신인아는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이내 다시 평정을 되찾은 듯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봤다.깨진 접시와 그릇 파편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거기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20화

    윤수철은 곧장 한숨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경아, 그저 강 회장님께서 너랑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싶어 하실 뿐이야. 다른 의도는 없어. 그리고 너도 알잖니...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는걸...”그러자 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듯 비웃었다.“그 가식적인 태도 좀 그만해요. 정말 보기 역겨우니까.”옆에 서 있던 이 집사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윤하경 씨, 저희 회장님께서 정말 오랫동안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셨어요. 아버님과 하실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고 지금은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말은 공손했지만 그는 곧바로 손짓으로 뒤에 있던 남자들에게 신호를 줬다. 그러자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앞으로 나서며 윤하경에게 손을 뻗었다.“손대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차가운 목소리에 두 남자의 손이 멈췄고 그들은 이 집사를 바라보며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이 집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윤하경 씨는 영리한 분이시네요. 불필요한 충돌은 없도록 하시죠.”그는 손을 뻗어 그녀에게 길을 내주며 말했다.“이쪽으로 가시죠.”나가기 전, 윤하경은 고개를 돌려 윤수철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은 날카로운 칼처럼 꽂혔고 그 순간 윤수철은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를 악물며 눈빛을 피했고 그 속엔 어두운 감정이 어른거렸다.윤하경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 집사는 천천히 윤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순간, 그는 윤수철의 눈빛 속에서 숨기지 못한 독기를 보았고 저도 모르게 냉소가 입가에 걸렸다.‘호랑이도 제 새끼는 물지 않는다고 했는데...’윤수철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윤 회장님, 저희 회장님께서 이번 일은 윤 회장님과는 무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빛 그룹엔 아무 문제 없을 거라 하셨으니 걱정하지 마시죠.”윤수철은 애매하게 헛기침을 했다. 딸을 팔아넘긴 꼴이니 아무리 해도 찝찝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기에 억지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19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윤하경은 작고 고운 얼굴이었지만 차가운 표정을 지을 땐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강현우 곁에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게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몰랐다.스스로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지만 차갑게 굳은 그녀의 눈매와 표정에서는 분명 강현우와 닮은 구석이 드러났다.윤수철이 내밀었던 손은 허공에서 어정쩡하게 멈췄고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윤하경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눈빛 속에 스치듯 스산한 빛이 지나갔지만 곧 다시 평소처럼 자애로운 아버지의 얼굴로 돌아갔다.집 안에 들어선 윤하경은 곧장 주방 쪽을 살폈다. “유 집사님은요?”그녀가 두 번이나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자 윤수철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며칠 가족 일로 잠깐 집에 갔어. 곧 돌아올 거야.”그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하경아, 우리 서재로 가서 이야기하자.”그는 윤하경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윤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서재 안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어두웠지만 그녀는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 손가락을 무의식중에 움켜쥐어졌다.그토록 기다리던, 엄마의 유품이 드디어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걸까.윤수철은 소파를 가리켰다.“앉아.”하지만 윤하경은 단호하게 말했다.“됐어요. 말씀만 하세요. 전 받아야 할 것만 받고 곧장 나갈 거니까요.”그녀의 말투는 단호하고 차가웠으며 더 이상 시간 낭비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윤수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경아, 우리 사이가 꼭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니?”윤하경은 그런 뻔한 말이 가장 질색이었다. “그러니까, 말씀하시라니까요. 단, 쓸데없는 소리는 빼고요. 저 시간 많지 않아요.”윤수철은 몸을 움직이며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쳐다봤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책상 쪽으로 다가가 나무 상자를 열고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냈다.“이걸 먼저 봐.”윤하경은 그걸 받아 들고 훑어봤지만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생전에 신수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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