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Chapter 471 - Chapter 480

522 Chapters

제471화 그가 차라리 임재윤이었이면

진시우가 해가 뜨기 전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 안엔 한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진시우는 그 여자의 이름이 금서연이란 걸 알고 있었다.머리를 든 금서연이 진시우를 발견하자 구세주라도 본 듯 외쳤다.“진 선생님!”“상황은 이미 전해 들었어요. 임재윤은요?”“임 선생님은 이미 경찰서에 가셨어요.”“미친 거 아닌가요? 침대에 누워 회복하기도 부족한 판에 뭘 하는 건가요?”진시우는 얼굴을 찌푸리며 임재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편으로는 차로 향했다.하지만 전화는 끝내 통하지 않았다.진시우가 경찰서 앞에 도착하자 경찰서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혼자 서 있는 임재윤이 보였다.임재윤은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외투는 경찰이 덮어준 걸로 보였다.모든 경찰은 임재윤에게 극도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그중 한 명은 심지어 따뜻한 물을 가져오기도 했다.“선생님, 따뜻한 물 드세요...”진시우는 급히 달려가 임재윤의 팔을 잡았다.“재윤아,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내가 뭐랬어? 이미 사람 보내서 조사하고 있다고 했잖아. 수술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오래 서 있으면 되겠어? 당장 돌아가자.”하지만 임재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병색이 짙은 임재윤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워낙 눈부신 외모는 이제 지쳐 보였으며 까맣고 깊은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한참 지난 후, 임재윤은 조용히 진시우의 손을 뿌리쳤다.“내가 반드시 여진을 구해야 해.”임재윤은 쉰 목소리로 한마디를 남겼다.이번엔 휴대폰 자판을 두드려 소리를 낸 게 아니라 직접 입을 열어 말했다.하지만 현장에 있던 누구도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때 경찰 한 명이 서류를 펼치며 말했다.“선생님, 안심하세요. 우리는 이미 CCTV 추적에 들어갔고 수색 인원도 대량으로 투입됐습니다. 조만간 민여진 씨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진시우는 말 없이 임재윤을 바라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임재윤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껍데기만 남은 듯했다.“내가 여진을 해친 거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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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시력을 되찾은 민여진

임재윤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며 급히 앞으로 나섰다.너무 성급한 탓에 수술 부위인 복부가 찢어질 듯 아파 임재윤은 몇 차례 기침하며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어디인가요?”경찰이 모니터 화면 오른쪽 하단을 가리켰다.“이쪽으로 끌려가는 여성이 혹시 민여진 씨인가요?”화면에 잡힌 건 여성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옷차림은 정확히 일치했다.임재윤은 손가락을 꽉 움켜쥐며 즉시 대답했다.“맞아요.”“그럼 방향은 제대로 잡은 거네요. 이제 주요 교차로 CCTV만 추적하면 이 검은 차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전부 알 수 있어요. 민여진 씨가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말이죠.”경찰은 바로 전화를 돌리고 다른 화면들을 계속 불러왔다.그리고 마침내 한 지점이 특정되었다.그 지점은 바로 이주로 근처에 있는 산속의 폐가였다.경사도 가파르고 외진 그곳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엔 딱 적합한 장소였다.경찰은 일말의 지체도 없이 구출 작전에 착수했다.임재윤은 그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경찰차가 앞서고 임재윤은 진시우의 차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그 짧은 시간 동안 임재윤은 독엔행 항공 티켓을 손에서 쥐어짜다시피 하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민여진이 무사하길 되뇌었다.본래 30분 걸릴 거리를 경찰과 임재윤은 10분 만에 도착했다.경찰은 이미 산으로 들어갔고 임재윤도 뛰어들려 했지만 진시우가 급히 그를 제지했다.“그만해, 이제야 겨우 몸 상태가 진정하기 시작했는데 또 무리하면 이번엔 정말 끝이야. 경찰들이 알아서 구조할 거니까 넌 여기 있어. 우리가 개입하면 오히려 일이 꼬일 수도 있어.”임재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앉았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산 위로 날아가 있었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임재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십여 분이 더 지나자 멀리서 경찰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임재윤은 제지하는 진시우을 뿌리치고 억지로 차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경찰 쪽으로 걸어갔다.선두에 있던 경찰이 임재윤을 보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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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남친이랑 다퉜어?

바위 아래로 떨어진다면 추락사하지 않더라도 물에 빠져 익사했을 것이다.민여진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민여진이 옆에 난 풀뿌리를 잡아당기니 꽤나 튼튼했다.민여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이를 악물며 양손으로 풀을 움켜쥐고 거의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손등에는 살이 찢긴 자국이 여러 군데 생겼고 몸 곳곳도 긁히고 찢어져서 상처투성이였다.손바닥은 불에 덴 듯이 따가웠지만 민여진은 한순간도 힘을 풀지 않았다.결국, 덜 가파른 오솔길에 다다랐을 때야 비로소 손을 놓을 수 있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민여진의 손바닥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지만 민여진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아직도 그 남자가 쫓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조금 앞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민여진의 몸 상태는 이미 한계에 다다라 뛸 기운조차 없었다.얼마나 걸었을까.민여진의 머릿속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그때 갑자기 민여진의 눈앞을 스치는 강한 빛과 함께 누군가의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누구야?”민여진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급하게 목소리를 냈다.“도와주세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산 아래의 집으로 옮겨졌을 때, 중년의 아주머니가 투덜거리며 말했다.“아이고 얘야, 그런 위험한 산에 왜 올라간 거야? 거기서 굴러떨어졌다고? 진짜 천운으로 살아났네. 너 몸을 좀 봐, 멀쩡한 데가 한 군데도 없구나. 얼굴은 또 왜 이렇게...”민여진은 씁쓸하게 웃었다.“얼굴은 원래부터 그랬어요.”“그래?”여자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물을 받아오며 말했다.“상처가 너무 많아서 뜨거운 물 쓰면 아플 거야. 일단 찬물로 대충 닦고 있어. 내가 약 가져올게.”“네...”민여진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몸을 물에 담갔다.차가운 물이었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이 민여진을 조금 위로해 줬다.민여진은 고개를 물속에 파묻었다.그리고 갑자기 임재윤과의 기억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와 질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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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네가 날 사랑한 대가

민여진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어딘가 슬픔이 배어 있었다.그 모습에 여자는 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민여진의 손에 붕대를 다 감아주고는 말했다.“그럼 당분간 우리 집에 있어. 어차피 우리 애들 둘 다 외지에 나가서 일하고 있고 집에 나 혼자라 심심하기도 하거든. 너 밥도 많이 안 먹잖아, 그냥 수저 하나 더 놓는 셈이지. 나중에 연락할 사람 떠오르면 그때 가서 얘기해.”“고마워요.”민여진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여자는 손을 휘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옆방을 깨끗하게 치워 따뜻한 이불까지 놓았다.“산 아래는 밤에 추워. 일단 이 이불을 덮어. 내일 해 뜨면 장롱에 있는 이불을 다 꺼내 햇볕에 말려서 하나 더 얹어줄게.”“알겠어요.”여자가 이런저런 당부를 하고 이내 방에서 나갔다.민여진은 그 자리에 누워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눈을 감기만 하면 임재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기 때문이다.임재윤이 어떻게 약속했고 어떻게 고백했고 얼마나 다정했는지 잊히질 않았다.민여진은 가까스레 잠이 들긴 했지만 결국 그날 밤 악몽에 시달렸다.꿈속에서 안개 너머에 있는 임재윤의 또렷한 이목구비와 서늘한 눈동자가 점점 뚜렷해졌다.임재윤은 예전처럼 3층에서 내려오며 무심하게 민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경멸과 탐색이 섞인 눈빛은 여전히 그대로였다.“민여진.”임재윤이 입을 열었다.“내가 뭐랬어, 넌 내 손바닥 안에서 못 벗어난다고 했잖아.”민여진은 목이 타들어가는 듯 아팠고 온 힘을 짜내어 간신히 말했다.“도대체 왜 그래? 왜 날 그냥 두지 못하는 거야?”남자는 천천히 다가왔고 싸늘한 눈빛으로 민여진을 내려다봤다.“그건 단순해. 난 널 너무 편하게 살게 둘 수 없거든. 난 네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볼 때 제일 즐겁거든. 이제 나랑 함께 독엔에 가면 그때 내 진짜 정체를 알려줄게. 네가 겁에 질린 얼굴을 할수록 난 더 신나니까. 민여진, 넌 평생 나한테서 못 벗어나. 그게 네가 날 사랑한 대가야.”민여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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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나보다 더 절망스러운 그녀

여자는 민여진이 익숙하게 장작을 넣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어머,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저 요리 꽤 잘해요. 요리 솜씨가 좋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민여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아 곧 차가워졌다.민여진이 직접 음식을 해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그 사람을 위해 애써 비위를 맞추고 더 잘하고 싶어 꾸준히 새로운 요리를 배워왔다.그러다 눈이 멀고 나선 주방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그래?”여자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복덩이를 주운 거네. 몸이 좀 나아지면 자신 있는 요리를 한 번 해줘 봐. 기대할게.”“네, 물론이죠.”...“임재윤이 얼마나 저기 있었어요?”진시우가 병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봤다.창가 쪽에 선 임재윤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금서연이 진시우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돌아온 이후로 줄곧 저러고 있었어요. 밤새 한숨도 못 잤고요.”금서연은 이미 기진맥진이었지만 임재윤이 밖으로 나갈까 걱정돼 억지로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진시우는 그런 금서연의 모습에 안쓰러워하며 말했다.“수고했어요. 이제 들어가 쉬세요. 여긴 제가 대신 있을게요.”“네...”금서연은 한 번 더 임재윤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금서연이 자리를 뜨자 진시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너 설마 계속 이럴 생각이야? 민여진이 돌아온다 쳐도 네가 먼저 죽을 수도 있어.”임재윤은 아무 대답도 없이 병원 창밖만 응시했다.지금 이 순간, 민여진이 택시에서 내려 아무 일 없이 자기 앞에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그런 희망 하나만 마음에 품은 채, 임재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대답 좀 해봐!”진시우가 임재윤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이렇게 건강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민여진이 무사할 거란 보장은 없잖아? 너 지금 민여진을 대신해 고통받는 줄 알아? 그냥 네가 자신을 벌주는 거잖아. 마음의 위안 따위는 구하지 마. 결국 널 관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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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민여진은 돌아오지 않아

경찰이 현장 상황을 캐묻자 남자는 시큰둥한 태도로 대답하다가 민여진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돌변하며 분노를 터뜨렸다.“그년 때문에 내가 죽을 뻔한 걸 알아요? 그 마당에서 진짜 거의 죽을 뻔했다고요.”“말조심하시죠.”경찰이 책상을 두드리며 엄숙하게 말했다.“죽을 뻔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남자는 즉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이거 보여요? 이 심각한 상처는 바로 그 여자가 낸 겁니다. 벽돌을 들고 와서 그대로 내리쳤다고요. 난 그 충격으로 기절할 뻔했어요. 내가 좀 튼튼한 체질만 아니었으면 다음 날 해 뜨는 걸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그럼 민여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도망갔죠.”남자는 씩씩대다 이내 싸늘하게 웃었다.“근데 난 똑똑히 봤거든요? 그 여자가 절벽 끝까지 달려가더니 내가 손 뻗기도 전에 그대로 굴러떨어졌어요. 뭐 다 제 팔자죠. 장님 주제에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다가 그렇게 된 거죠. 애초에 얌전히...”남자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피식 웃었다.그 모습을 본 경찰이 눈살을 찌푸렸다.“얌전히 뭐요? 우리가 봤을 땐 민여진 씨를 묶었던 밧줄이 풀려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거죠? 민여진 씨가 스스로 푼 겁니까?”“아니요, 내가 풀었죠.”“왜요?”남자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그년이랑 한 번 하려고 그랬죠. 날 계속 유혹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밧줄을 풀고 그년 옷을...”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재윤이 경찰의 제지를 뚫고 안으로 들이닥쳐 주먹을 꽉 쥔 채 그대로 남자의 얼굴에 날렸다.남자는 고꾸라져 바닥에 처박혔고 뺨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봤죠? 이 자식이 날 때렸어요! 당장 이 자식을 잡아가야죠!”경찰들이 임재윤을 막아섰고 그제야 남자는 임재윤이 누군지 제대로 봤다.남자는 임재윤을 박진성으로 착각하고 임재윤이 분노한 원인도 당연히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너 박진성이지?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양다리나 걸친 놈이 바로 너지? 어쩐지 민여진이 네 이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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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약 발라줄게요

“여진아, 나 산에 좀 다녀올게. 넌 뒷마당에서 채소를 좀 따와. 내가 돌아오면 바로 밥 먹자.”“알겠어요.”민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틀을 짚고 섰다.강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민여진은 편안히 눈을 감았다.이런 평범하고 느긋한 삶이 진행된 지 벌써 사흘째였다.민여진 손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몸에 나 있던 긁힌 자국은 거의 다 사라졌다.조금만 더 지나면 손에서 느껴지던 찌릿한 통증도 사라질 것이다.모든 게 다시 임재윤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민여진은 바구니를 든 채 조심스레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아직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걸음걸이는 더뎠고 길도 자주 흐릿하게 느껴졌기에 늘 한 발 한 발이 신중했다.뒷마당에 도착해 채소를 다 따고 바구니를 들려는 순간 커다란 손이 툭 뻗어왔다.“제가 들게요.”민여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이 뚜렷한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어제 민여진이 넘어졌을 때 도와줬던 이장의 아들 이천호였다.“고마워요. 근데 괜찮아요. 몇 걸음만 가면 도착하니까요.”민여진이 미안한 듯 손을 뻗어 바구니를 다시 집으려 하자 이천호는 몸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눈이 잘 안 보이는데 무리하지 마요. 이거 생각보다 무거워요. 여자 혼자 들기엔 좀 벅찰걸요.”민여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웃으며 고마움을 전했다.이천호는 민여진의 얼굴을 슬쩍 보다가 귀까지 붉어진 채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자기 난감한 모습을 들킬까 봐 서둘러 몇 걸음 앞서가며 말했다.“뒤에서 조심해서 따라와요.”집에 도착했을 때, 장 아주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이천호는 서둘러 돌아가는 대신 민여진에게 질문을 던졌다.“손은 좀 나아졌어요?”민여진의 손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그 말에 민여진은 그제야 살짝 통증을 자각하며 말했다.“많이 나아졌어요.”이천호는 어색하게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연고를 꺼냈다.“이건 제가 시장에서 산 연고예요. 염증을 줄이고 통증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손 좀 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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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마을에 낯선 사람이 왔다

“고마워요.”이천호는 뭔가 더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 집으로 냅다 달려갔다.이천호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소리쳤다.“엄마, 우리 자전거는 어딨어요?”“왜 그래?”이천호 엄마는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다.“벌써 해지는데 자전거는 왜 찾아?”“몰라도 돼요. 시장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자전거는 어디 있어요?”“방 안에 넣어놨어. 오늘 밤 비가 많이 온대서 녹슬까 봐 안에 넣어뒀지.”이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시장에 가기 전, 이천호 엄마가 말했다.“얼른 들어와. 가는 김에 마을 어귀에 있는 네 아빠도 불러. 밥 먹게 일찍 오시라 해.”“알았어요.”이천호는 자전거를 타고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저 멀리 아빠가 보였고 그 옆에는 값비싼 외제 차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이천호는 자전거에서 내려 아빠에게 다가갔고 그 순간, 차에서 내리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처음 본 순간, 이천호는 남자의 싸늘한 시선에 숨이 턱 막혔다.남자는 병원복 위에 외투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가 풍기는 고압적이고 귀티 나는 분위기는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았다.남자의 얼굴은 종이처럼 새하얬고 몸 상태가 아직 정상이 아닌 듯했다.그 남자가 차 안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사이, 이천호는 슬쩍 마을 이장인 아빠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아빠, 저 사람들 누구예요? 우리 마을에 웬 낯선 사람이에요?”“사람 찾는 중이래.”“사람이요? 누굴 찾는데요?”이장은 담뱃대를 물고 말했다.“스무 살 좀 넘은 여자를 찾고 있어. 여자 얼굴에 상처가 있고 많이 말랐대.”이천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다급하게 물었다.“왜요? 그 여자가 저 사람들과 무슨 관계인데요?”“그건 나도 몰라.”이장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다만 사람만 찾으면 1억 원을 준다더라.”“1억이요?”이천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동네에선 그 돈으로 어지간한 집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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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너, 좋아하는 사람 있지?

“맞다, 식탁 위에 약 하나 있던데, 누가 준 거야?”민여진은 장작을 불에 더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이 선생님이 줬어요.”“이천호?”“네.”장 아주머니는 바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걔네 집에 저런 약이 없을 텐데? 설마 어제 너 처음 보고 오늘 시장에 가서 사 온 거 아니야?”민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왜요?”“우리 마을에 차 있는 사람이 없잖아? 다들 자전거 타고 시장 가는데, 그게 왔다 갔기만 해도 최소 네 시간은 걸려. 게다가 오늘 시장에 특별히 볼 것도 없었는데... 너라면 안 이상하겠어?”그 말에 민여진은 말문이 막혔다.장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천호가 너한테 꽂혔네.”민여진은 장 아주머니의 급발진에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설마요, 이 선생님은 그냥 착한 거예요.”“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까지 안 해. 내가 오늘 처음 안 사람의 약을 사러 시장에 가자면 다들 미쳤다고 할걸? 요즘 같은 초여름에 불가능한 일이야.”장 아주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마치 중매가 성사된 듯 흐뭇해했다.“근데 난 괜찮은 것 같아. 이천호는 진짜 착하고 배려심도 있는 애야. 너 시집가면 절대 고생은 안 할 거야.”민여진이 말없이 가만히 있자 장 아주머니가 뭔가 깨달은 듯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어머, 내가 또 쓸데없이 네 생각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막 정해버렸네. 너, 좋아하는 사람 있지?”“없어요.”“굳이 안 말해도 알아. 난 그때 너한테 남자친구랑 다퉜냐고 물어볼 때, 네 표정이 확 바뀌는 거 봤거든. 그 후로 틈만 나면 너 멍하니 있었잖아. 누군가 생각하고 있는 거 티 나더라.”장 아주머니는 국자를 들고 반찬을 덜어내며 말을 이어갔다.“그 남자랑 심하게 다툰 거야? 그래서 안 돌아가는 거야?”민여진의 눈빛이 복잡해졌다.“이젠 남자친구도 아니에요.”“헤어졌구나?”장 아주머니는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그럼 그렇지...”민여진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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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그녀랑 그는 무슨 사이지?

민여진은 옷을 이천호에게 내밀며 덤덤하게 말했다.“이 옷은 다른 사람이 준 건데 이제 입을 생각이 없어요. 눈에 안 보이면 마음도 편하잖아요. 딱 잘됐네요. 저 대신 좀 처리해 줘요. 좀 미안하면 팔아서 나온 돈 중에 70%는 이천호 씨가 가져요. 나머지 30%는 장 아주머니께 드리면 돼요.”이천호가 또 거절하려 하자 민여진이 다시 간곡히 부탁했다.“그냥 부탁 하나 들어줬다고 치면 안 될까요?”그러자 이천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옷을 곱게 접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럼 돈은 안 받고 그냥 팔기만 할게요. 여자 혼자면 돈 좀 챙겨두는 게 좋잖아요. 나중에 뭐 사기도 편하고요.”민여진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받은 돈을 나중에 몰래 돌려주면 그만이었다.하지만 민여진의 미소를 보자 이천호는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민여진의 얼굴에 거의 아문 상처가 있어도 그 미소 하나로 전부 가려질 정도였다.이천호는 이렇게 예쁘고 다정하게 웃는 여자를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저는... 제가...”이천호는 혀가 꼬이기 시작하자 허벅지를 꼬집어 정신을 차렸다.“약... 약을 바를게요.”“네.”민여진이 손을 내밀자 이내 약 바르기가 끝났지만 이천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아직 할 말이 있어요?”민여진의 질문에 이천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그게...”“네?”“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 저 갈게요.”이천호는 고개를 숙인 채 황급히 돌아섰다.사실 이천호는 어제 봤던 그 남자랑 민여진이 무슨 사이인지 묻고 싶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민여진이 여기 남기로 했다는 건 그 남자랑 얽히기 싫다는 뜻인 것 같았다.그러니 괜히 그 남자 얘기를 꺼내봤자 분위기만 망치는 격이었다.이천호는 코트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봤던 그 고급 차가 여전히 주차돼 있었다.이천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슬쩍 집 안을 들여다보자 어제 봤던 그 두 남자가 마당에 앉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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