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421 - Chapter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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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1화

주익선이 두 손을 모아 정중히 예를 올렸다.“제가 여쭤본 것입니다. 길을 오며 여러 도관을 들렀지만, 용 대인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용 대인께서는 그저 미소만 지으실 뿐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아마 어느 도관에도 머물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정말 그러하느냐?”주익선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다만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용 대인께서 하신 말씀이... 그저 안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을 위해…”“두 분을 위하여가 아니라 '그녀를 위하여'라고 하셨습니다.”이때 이진이 홀연히 걸어 들어왔다. 방 안에 있던 누구도 그녀가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모든 시선이 이진에게 집중되었다. 주익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차마 원문 그대로는 전하지 못했는데, 이진이 이렇게 대뜸 말해버리다니.심초운과 이천 역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이진은 다른 이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오직 어머니만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니, 외삼촌께서 하신 말씀은 정확히 '그녀의 안부를 물어달라'였습니다.”그 '그녀'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소우연은 이진을 흘겨보며 나직하게 말했다.“어서 앉아서 밥이나 먹어라.”용강한은 어찌 주익선에게까지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정녕 이제 도 닦는 마음을 내려놓으신 것인가?이육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우연의 손을 꼭 잡았다. 아직도 '소우연의 안부'를 묻는다니. 용강한의 수양이 정말 퇴보한 것일까?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용강한 특유의 너그러움일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그의 인품을 생각하면, 설령 아직 소우연을 마음에 품고 있다 해도 결코 도를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을 터였다.용강한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이육진은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연 역시 결코 분수를 벗어나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문득 가슴을 누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자신의 아내를 향해 누군가가 애틋함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편치 않은 것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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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2화

벚꽃나무 아래.벚꽃나무 아래로 봄바람이 불어와 꽃잎들을 하늘 가득 흩날렸다. 이진은 먼저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예상대로 곧 주익선이 모습을 드러냈다.이진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을 잘 못 잤어?”주익선은 곧바로 부정하려 했으나, 청동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모를 리 없었다. 눈 밑이 시커멓게 그늘져 있으니, 전쟁이 치열한 요즘 누구 하나 편히 잠들 수 있는 이가 없었다.심초운과 이천 모두가 그에게 하룻밤이라도 쉬고 나서 경성으로 돌아가 직무를 보고하라 권했기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응.”“내일이면 너희도 돌아가야 하는구나.”이진의 목소리는 한층 가라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흩날린 꽃잎만 밟으며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괜히 허전했다.“응.”주익선 역시 그녀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듯하여 그는 손을 내밀었다. “진아.”이진도 좌우를 살핀 뒤에야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았지만,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서로의 마음은 같았다. 단 하나,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그 모습을 복도 모퉁이에서 두 남자가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옅은 색 옷차림의 두 사람, 심초운과 이천이었다.심초운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리고 이천을 바라보더니, 두 사람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심초운이 머무는 객방으로 들어갔다.쪼르륵.잔에 부어지는 차 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각자 찻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던 심초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일 주익선이 떠나면, 진이는 아마 한동안 많이 힘들 것입니다.”“솔직히 말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구나.”이천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심초운을 바라보고 옅게 웃었다.“서로 낯선 남녀가 어찌 그리 애틋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도대체 어떤 감정이지?”“여밀 듯 엉겨 있다'는 말 그대로지. 쉽게 떼어낼 수 없는 마음, 난처하고도 아픈 그리움.”심초운은 미소를 지으며 이천을 보았다.“혹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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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3화

심초운이 말했다. “형님께서 연희에게 마음이 없으시다면, 연희의 일에 관여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형님과는 상관없는 일이겠지요.”이천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초연하게 말했다. “그저 너에게 일깨워주고 싶을 뿐이다. 저 경장명에게는 사주에 서장자가 있더구나.”그가 심초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국공부와의 약속과는 어긋나는 듯하구나.”“뭐라고요?”심초운은 깜짝 놀라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경장명은 연희에게 진심인 것 같던데요. 게다가 설령 경장명에게 그런 담대함이 있다 해도, 경씨 가문에서 서장자가 먼저 태어나길 원하겠습니까?”이천은 그제야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누가 알겠느냐.”“형님, 확실한 겁니까?”심초운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길고 가는 손가락이 찻잔을 가볍게 돌렸다. 이천이 담담하게 말했다. “모른다.”“그럼 결국 허튼소리 아닙니까.”“허튼소리라고 생각하면, 허튼소리로 여겨라.”심초운은 처음으로 이천이 몹시 성가시다고 느꼈다. 그의 눈빛에는 분명 불쾌함이 어려 있었다.이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라.”심초운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며칠동안 저는 형님도 저를 가족으로 여기신 줄 알았습니다. 허허…”“당연히 내 가족이지”“형님께서 진정 저를 가족으로 여기신다면, 어찌 늘 말은 반만 하시고 나머지는 숨기십니까.”“게다가 연희는 제 친누이입니다. 형님께서 분명 경장명이 좋은 짝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셨다면, 또 그것이 형님과도 얽힌 일이라면, 어찌 한가히 앉아 세월만 보내실 수 있습니까?”그의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다. “연희가 비록 형님 눈에는 별 볼 일 없다 해도, 그 아이는 또 폐하도 각별하게 자란 아이입니다. 저희 정을 봐서라도, 어찌 모른 체 하실 수 있습니까?”심초운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분노를 드러냈다. “형님께서는 불문을 닦고 또 도문를 닦으셨다고 하지만, 어디가 불심입니까! 분명 무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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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4화

“아니면… 형님께서 혹시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우신 건 아닙니까?”심초운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천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그가 만일 정말 마음이 흔들린다 해도…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그렇다면 형님, 저와 폐하를 위해서라도 경장명의 일은 반드시 분명히 밝혀주셔야 합니다.”“알겠다.”“그리고… 정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신다면, 연희가 오해할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그야 당연한 일이지.”심초운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천이 경장명에게 서장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내가 겉보기와 달리 믿을 수 없는 자라면,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형님,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이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심초운이 방을 나가려는 순간 길을 비켜주었다. 심초운이 나가서 벚꽃나무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이천은 그의 뒷모습이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잠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곧 심초운의 방문을 닫고 자기 객방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그때 검오가 눈에 들어왔다.“도문군은 무사한가?”“예, 무사하십니다.”검오가 두 손을 모아 답했다.“도문군께서 전하를 뵙고 싶어 하십니다.”“나 대신 전해다오. 과거 때 만나겠다고.”“하지만 도문군께서는… 비록 진주의 소동은 가라앉았다 해도, 이곳이 다른 고을들보다 여인을 더욱 극렬히 배척하는 곳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하와 함께 경성으로 가서 가을 과거를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그래도 무방하다.”검오가 다시 물었다.“그럼 소인을 보내 곧 살림을 정리하고, 내일 부대와 함께 경성으로 향하라 전해도 되겠습니까?”“그리 하도록 하거라.”검오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말했다.“도문군께서 감히 한 가지 더 청을 올리셨습니다.”“무엇이지?”“만약 전하께서 동행을 허락하신다면, 부모님과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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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5화

심초운이 안으로 들어서자, 이진은 이미 발소리를 들었는지 반갑게 눈을 반짝이며 불렀다.“오라버니!”심초운이 곧장 다가와 그녀 맞은편에 앉더니 물었다.“수놓은 향낭은 어디 있느냐? 폐하께 드리려고 수놓은 것이냐?”이진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그럼 태후마마께 드리려는 것이냐? 색깔이 마마께 참 잘 어울릴 것 같은데.”“…….”이진은 또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아니에요. 오라버니, 자꾸 묻지 마세요. 그냥 재미삼아 수놓은 거에요.”“그래? 그럼 나중에 주익선 그 녀석 손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익선이는…”이진이 흠칫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야.”바늘에 손끝이 찔리자 붉은 피가 맺혀 올랐다.옆에서 시중을 들던 염이가 깜짝 놀라 손수건을 얼른 내밀었다.“아씨, 괜찮으세요?”괜찮을 리가 있나. 제법 아팠다.염이가 한참 동안 피를 닦아내고 나서야 이진은 겨우 손을 거두며 심초운을 노려보았다.“오라버니, 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일부러 절 놀리려는 건가요?”심초운이 어딘가 알고 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놀리려는 게 아니다.”“흥! 조심하세요. 안그러면 언니한테 서신으로 다 일러줄 거에요.”“서신이야 뭘… 폐하에게 직접 이르는 것만 하겠느냐?”“직접…”이진은 바늘과 실을 휙 던져버렸다.“염이, 네가 대신 해! 난 영 소질이 없어.”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내일이면 주익선, 심초운, 그리고 이천까지 모두 경성으로 돌아간다니, 마음 한구석이 콕콕 시렸다.그때 심초운이 불쑥 말했다.“너도 우리와 함께 경성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네?”“그럴 수는 없어요.”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 아버지 어머닐 모시고 여행길에 동행해야 해요.”“그 여행이 정말 즐거우냐?”“당연히 즐겁죠.”“다 주익선이 곁에 있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그 자가 없어도 즐겁겠느냐?”“……”심초운이 덧붙였다.“선황 폐하와 태후마마께서는 젊은 날의 약속을 지키고 계신 것이다. 너도, 주익선도 없어도 두 분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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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6화

“너희 둘만 봐도 뻔히 알겠더구나. 나도 아는 일을 누가 못 알겠느냐?”“네? 뭐라고 하셨어요?”이진이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럼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주익선이 겨우 어젯밤에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어떻게 벌써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단 말인가. 혹시 주익선이 그녀의 방에 들어갈 때 누군가 본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이진이 슬쩍 심초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이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시녀인 염이조차 예전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억지로 화제를 돌렸다. “아까 하신 말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정말 제게 선택을 맡기셨다는 게 사실인가요?”심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왜 몰랐죠?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어제였다. 주익선이 돌아오기 전부터 네가 마음이 딴 데 있는 것 같다고 눈치채셨거든. 어린 아이가 부모만 따라다닌다고 해서 무슨 재미가 있겠냐 하시며, 차라리 우리가 함께 경성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그가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경성에는 폐하도 계시고, 형님도 계시고, 연희와 교은이도 있지 않느냐.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주익선도 그곳에 있고 말이다.”말투는 담담했지만, 이진은 그 말을 듣자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 어머니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주익선이 진문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가 언제까지고 벼슬 없이 떠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심초운이 가볍게 웃었다. “천천히 생각해보거라. 저녁 전에 나에게 알려주든지, 아니면 네가 직접 폐하와 마마께 말씀드리든지.”“제가... 직접 말씀드리라고요?”이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더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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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7화

주익선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진은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편히 잠든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꾹 참았다. 대신 주먹과 발에 힘을 주며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점심 무렵이 되어도 아무도 주익선을 부르지 않았다. 그가 보충 잠을 자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한두 마디씩 진주성의 소식을 주고받았다.여자들의 입학 소식에서부터 상업, 벼슬길에 오르는 일들, 그리고 내일이면 경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이진은 줄곧 조용히 있었다. 심초운조차 그녀가 경성으로 돌아갈 생각인지, 아니면 부모님 곁에 더 머물 생각인지 알지 못했다.“진아?”소우연이 닭고기 한 점을 집어 이진의 그릇에 놓아주며 다정하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이진은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밥을 먹었다. 잠시 후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육진은 심초운과 이천을 번갈아 보았다. “진이에게 말해보았느냐?”이천이 심초운을 바라보았다.심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했습니다. 하지만 진이도 결국은 폐하와 태후마마를 따라가고 싶어 합니다.”아직은 나이가 어린 것이다.소우연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계속 들거라. 나는 가서 진이를 좀 봐야겠구나.”“예.”함향은 소우연이 밖으로 나가자 바삐 따라붙었다.딸의 마음은 여려서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소우연도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몰랐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이토록 갈등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익선이 이진 마음속에서 결코 작은 자리가 아니라는 증거였다.자신과 소육진은 단순히 경성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온 것이지만, 이진의 마음은 그와 달랐다.함향이 방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아씨, 부인께서 오셨습니다.”잠시 후 염이가 문을 열었다. 이진이 서둘러 나와 인사했다. “어머니.”‘어마마마가 왜 오셨을까?’소우연은 손을 흔들어 염이와 함향을 물러나게 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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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8화

“다 제 의견을 지지해주시는 거예요?”“그래, 지지해주마.”소우연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영의 혼사를 떠올렸다.“너희 언니가 혼인한 건 황위를 이어받아야 했기 때문이란다. 곁에는 심초운이 있어 도와주고, 심국공부와 네 아버지의 옛 신하들이 곁에서 보필하니, 네 아버지도 비로소 안심하신 거야.”“게다가 너희 언니는 너와 다르단다. 강산과 사직, 그리고 자손이 특히 중요한 자리다 보니 혼인은 필수였지.”이진은 무척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꼭 어린 시절처럼, 어머니 품에 기대어 있던 그때처럼. 그녀가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다행히 언니와 초운 오빠는 하늘이 내린 한 쌍이에요.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함께였잖아요.”“그렇구나.”그 시절, 이영이 용강한에 대해 모호했던 감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그와 달리 이진은 늘 얌전하고 속을 썩이지 않아 그녀 마음을 놓이게 했다.“너는 원래 차분하고 묵묵히 버티는 성품이 아니지 않느냐. 우리와 함께 산천을 넘나들며 고생할 성정도 아니지. 괜히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단다.”이진이 눈썹을 찌푸렸다.“그렇지만 저도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을 거예요.”“우리야 길어야 두어 해, 서너 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정말 두 해 만에요?”“그래, 대체로 그 즈음이 되겠지. 다만 그때 무슨 변수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단다.”“어머니, 약속해주세요.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경성으로 돌아가시겠다고요. 언니도, 천 오라버니도 모두 어머니를 그리워할 거예요.”소우연이 소녀의 이마를 톡 하고 건드렸다.“알았다, 알았다.”모녀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그 순간 이진은 깨달았다. ‘아, 나는... 결국 경성에 먼저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해버린 거구나.’“어머니…”그녀는 애교스럽게 어머니의 팔을 끌어안으며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주익선이 너를 괴롭히거든 너희 언니를 찾아가거라. 반드시 네 편을 들어줄 테니.”소우연이 말했다.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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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9화

“예.”염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주인과 하녀 둘은 안채로 발걸음을 옮겼다.멀리서부터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익선이는 코를 고는 사람이 아니구나. 다행이다…'염이는 찌푸린 얼굴로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공주님께서 이렇게 곧바로 도련님 방에 들어가시는 게 예의에 맞는 일일까…? 하지만 정작 공주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니, 선황도 태후 마마도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물건은 전부 저기 책상 위에 두거라.”이진이 작은 소리로 염이에게 지시했다.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씩 자리에 내려놓았다. 이진은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 주익선의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 이미 밤은 깊었고 방 안에는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아, 마치 눈이 먼 듯 손끝에만 의지해야 했다.그녀는 겨우겨우 주익선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발끝이 의자에 걸리면서 작은 소리가 났다.“누구냐…?”잠결에도 경계심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이진이 막 대답하려는 순간, 주익선이 먼저 말했다. “진이야?”“응, 나야.”“정말 너구나. 네가… 날 찾아왔구나.”소년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났다.염이는 두 사람이 이윽고 서로 끌어안을 기세가 되자, 황급히 몸을 돌려버렸다. ‘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마라… 그러셨어.' 그녀는 속으로만 되뇌었다.이진은 다급해졌다. “염이가 있어.”손을 잡아끄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혹시라도 품에 안아 올리기라도 할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주익선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사실 염이가 있든 없든, 더는 넘지 못할 선이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밤 이미 그는 가장 무례한 경계를 한 번 넘어섰던 터였다. 그때는 그만, 그리움이 너무 깊어 예법을 잊었던 것이다.소년은 허겁지겁 옷을 걸쳐 입고, 곧바로 촛불을 밝혔다. 순간 방 안에 불빛이 번지더니, 이내 두어 개 더 밝혀져 방 안이 훤히 드러났다.이진은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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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0화

동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며, 물고기 비늘처럼 희고 부드러운 빛이 퍼져 나갔다.태양빛이 구름을 뚫고 내려와 대지를 비추니, 마치 곧 여름이 다가옴을 알리는 듯했다.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진은 내내 소우연 곁에 붙어 앉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 저 정말 경성으로 가서 언니를 만나도 되는 것이지요?”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무척 아쉬웠지만, 자식은 자라면 결국 자기 길을 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부모란 아무리 사랑해도 아이의 일생을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해부터인가 그녀는 깨달았다. 인생은 짧고, 평생 곁을 지켜줄 존재는 부모도 자식도 아닌, 바로 베갯머리를 함께하는 반려자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언제나 그 한 사람만을 찾는 치정남녀가 있는 것이리라.이진이 다시 아버지를 향해 눈을 들었다.“아버지.”이육진이 딸을 보며 말했다.“이제는 네 언니가 너를 잘 보살펴줄 것이다.”말끝에 무심히 주익선을 흘끗 바라보았다.주익선은 선황과 태후가 이미 자신이 진녕공주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을 알기에, 요 며칠은 늘 마음이 붕 떠 있었다. 그 순간 선황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아 읍했다.“반드시 공주마마를 지켜내겠습니다. 만약 이 맹세를 어긴다면, 하늘과 땅이 함께 노할 것입니다.”맹세라 하기엔 참으로 독한 말이었다.이육진은 '흠' 하고 짧게 소리를 내더니, 이번에는 심초운을 거쳐 시선을 서서히 이천에게 옮겼다.“지금 이 아비와 네 어미가 가장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는 다름 아닌 너다.”이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박또박 말했다.“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날 아침 자리는 비교적 화목하게 이어졌다.그러나 잠시 뒤, 호위병들이 커다란 짐꾸러미들을 잇따라 위원표국 마당으로 내어 나르는 광경을 보자, 이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어머니 손을 꼭 붙잡았다.“어머니, 차라리 저 그냥 가지 않으면 안 될까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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