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경 대인.”“저희는 이미 파혼을 했으니, 더는 서로 왕래할 이유가 없습니다.”경장명이 한 걸음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폐하께서도 남녀평등을 권하셨습니다. 훗날 조정에 나아가 함께 벼슬을 할 수도 있는데, 남녀가 지기로 지내는 것이 어찌 부당하단 말씀이십니까. 그저 혼약이 깨졌을 뿐인데, 어째서 다시는 만나선 안 된다고 하시는지요?”그가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자, 심연희는 미약하게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했다.“대인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혹은 그 분이 저를 거절할까 두려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앞으로 그저 가을에 있을 과거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싶을 따름입니다.”“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비록 자신은 옛날에야 탐화랑에 머물렀지만, 걸어온 길이 있었고, 그녀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경험도 많았다.심연희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경장명이 먼저 말을 이었다.“반드시 돕겠습니다, 낭자. 제가 대인이라 불리지 못하고, 오라버니라 불러 달라던 그날, 낭자께서도 저를 오라버니라 부르지 않으셨습니까.”그 말에 심연희는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 파혼을 하던 날, 앞으로는 형제처럼, 지기처럼 지내자던 그의 말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무심코 그를 오라버니라 불렀던 기억을 그녀는 잊을 수 없었다.경장명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앞날이 어찌되든, 낭자에게 도움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학문이든, 낭자 마음이 향한 이든, 그 모든 길에서 말입니다.”“만일 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요?”경장명은 쓸쓸히 웃었다.“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서원에 나와 낭자를 찾아뵐 것입니다.”“만약 제가 아예 만나 뵙지 않고, 차갑게 대한다면요?”그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눈빛이 부서질 듯 흔들리고, 숨결마저 거칠게 요동쳤다.“경 대인, 괜찮으십니까?”심연희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다가서며 다급히 물었다.경장명이 가슴께를 움켜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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