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는 조심스럽게 들어와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대표님, 재무팀에서 올린 보고서...”그러나 배서준은 짜증스럽게 손을 저으며 비서의 말을 잘랐다.“됐어. 그만 말해. 듣고 싶지 않으니까.”그는 지금 회사에 관한 서류를 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으니까. 비서는 그런 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는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둔 뒤 조용히 나가버렸다.사무실은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눈을 감은 배서준의 머릿속에는 남설아와 강연찬이 나란히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지금 초라한 그와 선명하게 차이 났다.질투와 원망, 후회의 감정이 독사처럼 그에게 감기며 그의 마음속에도 독처럼 퍼졌다. 그는 예전의 남설아를 떠올랐다. 그때의 남설아는 너무도 온화하고 세심하며 마음도 착했다. 게다가 그녀의 두 눈에는 오로지 그만 담겼고 애정이 흘러넘쳤다.만약 그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더라면 그와 남설아는 아마도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생각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었고 예전의 일까지 전부 떠올랐다. 이번에는 딸의 귀여운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을 부르면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던 귀여운 딸이 말이다. 그때의 그는 딸에게 약속한 적 있었다. 꼭 남들보다 백배 천배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런데 그는 그간 뭘 하고 있었을까.딸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남설아까지 잃었고 이제는 직접 키운 회사까지 잃게 생겼다. 그의 인생은 결국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배서준은 서랍을 열어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에는 그와 배나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사진 속 배나은은 티 없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눈빛 또한 초롱초롱 빛났다. 마치 밤하늘에 뜬 별처럼.어느새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손을 올려 사진 속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니 더 심한 죄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게 되었다.“나은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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