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굿바이 쓰레기: Bab 911 - Bab 920

966 Bab

제911화

강연찬이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굳이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 할아버지도 너를 좋게 생각하고 계셔. 젊었을 때 너처럼 지는 걸 싫어하는 끈질긴 성격이었다고 자주 말씀하시거든.”남설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강 회장님께서 나를 아주 좋게 봐주셨네.”배씨 가문의 저택, 배서준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몸에 서린 냉기는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고 얼굴빛도 어두웠다.그는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소파 위에 던지며 꽤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거실에 앉아 있던 서유라가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서준아, 무슨 일이야?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배서준은 말없이 진열장으로 가더니 위스키를 따라 단숨에 절반 가까이 들이켰다.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묻지도 마.”그는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서유라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남설아가 완전히 기세등등이야. 작정이라도 한 듯이 말이야.”서유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회사 일 때문이야? 화승 그룹에서... 투자를 철수했어?”“철수했지, 당연히.”배서준이 코웃음을 치며 화난 기색으로 말했다.“강연찬 그 자식, 손쓰는 게 정말 빨라. 남설아가 무슨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배건 그룹에 투자한 돈을 몽땅 회수해 갔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그는 몸을 돌려 서유라를 바라봤고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남설아가 예전에 배건 그룹에 있을 때 주도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있어. 다 화승 그룹이랑 긴밀하게 연결된 사업들이었단 말이야. 근데 지금 화승이 손을 떼면, 자금줄이 끊기는 건 물론이고, 그 프로젝트들... 위약금이 얼마나 나올지 감도 안 잡혀.”서유라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위약금...? 심각한 수준이야?”“심각하냐고?”배서준은 짜증스럽게 이마를 문질렀다.“심각한 정도가 아니야. 정말 치명적이라고. 자금 공백을 당장 메우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거대한 배상금 때문에 버티지 못할 거야. 내가 진짜 생각도 못 했던 건...”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고민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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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서유라는 입술을 깨물며 복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떡해? 위약금은? 자금은 어떻게 하고?”“어떻게 하긴.”배서준의 말투는 평소와는 다르게 무기력했다. 서유라가 그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돈을 구해야지. 사람도 찾아야 하고. 그린라이트 테크 쪽이 원래는 내 마지막 카드였는데 지금은 강연찬이 분명 그쪽을 주시하고 있을 거야. 그걸로 반전을 노리는 건 쉽지 않겠지.”그는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눈살을 더 깊이 찌푸렸다.“맞다, 서도현은? 요즘 왜 통 안 보여? 전화도 거의 안 되고.”서도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늘 불안감이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런 건 따질 여유도 없었다.서유라는 그 이름을 듣자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말투도 어딘가 확신이 없었다.“도현이는... 요즘 다른 일로 좀 바쁜 것 같아. 중요한 일이라고 했어. 전에 나한테 전화 한 번 왔었는데 당분간은 연락이 잘 안될 수도 있다고...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했어.”사실 그녀는 내심 배서준이 서도현을 다시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았다.서도현은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고 그가 배서준을 돕는 건 전적으로 자신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느낌이 늘 들었기 때문이다.서유라는 배서준이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길 바랐다.하지만 배서준은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채 눈앞의 위기 해결에만 몰두해 있었다.“바빠도 배건 그룹 일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 너 잠시 후에 서도현한테 연락해 봐. 얘기 좀 해야겠어.”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난 생각 좀 정리할게. 오면 바로 서재로 들이라고 해.”서유라는 그가 문을 닫고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응, 연락해 볼게.”서재 문이 닫히고 바깥의 소음은 차단되었다.배서준은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가 배건 그룹에 있을 당시 직접 다뤘거나 관심을 가졌던 프로젝트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그는 무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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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창밖의 햇살이 눈이 부셔서 남설아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들고 있던 재무 보고서를 내려놓았다.천기준이 드물게 휴가를 내 사무실엔 평소의 분주함 대신 잔잔한 정적이 감돌았다.그때 강연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갓 우려낸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목 좀 축여. 아침 내내 거의 아무것도 안 마시던데.”남설아는 찻잔을 받아들며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닿는 걸 느꼈다.“고마워. 일이 많긴 하지만, 그렇게 피곤하진 않아. 다만 휴가도 제대로 못 쉬고 다시 돌아와 이런 머리 아픈 일들을 처리해야 하니 좀 아쉽네.”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말했다.“그린라이트 테크 쪽도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마침 말을 끝내자마자, 책상 위 내선 전화가 울렸다.남설아는 발신자 표시를 확인한 뒤, 강연찬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살짝 올려 보였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전화를 받은 그녀는 평온한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루이스 씨,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입니다.”전화기 너머의 루이스는 전혀 여유가 없어 보였다.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남 대표님! 아니, 이제 남 이사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요즘은 정말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배건 그룹이랑 남 이사님 쪽은 무슨 상황입니까? 우리가 협력 중인 신소재 프로젝트가 영향받는 건 아니죠?”루이스는 마치 뭐에 쫓기듯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자칫 잘못되면 전부 물거품이 될까 두려운 듯했다.남설아는 차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뒤, 차분히 말했다.“루이스 씨,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린라이트 테크와 저희의 협력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없을 거예요. 걱정하시는 건, 배건 그룹 쪽의 변화 때문이겠죠?”“그렇죠. 걱정 안 될 수 있나요?”루이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배건 그룹이 갑자기 지분을 뺐고, 화승그룹도... 듣기로는 배서준이 요즘 자금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던데요! 우리 프로젝트, 후속 자금이랑 지원은 괜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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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남 이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좋은 협력 기대하겠습니다, 루이스 씨.”전화를 끊고 남설아는 휴대폰을 조용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강연찬이 조그만 다과를 건넸다.“네가 물러난다고 하니까, 루이스 씨는 당장이라도 티켓을 구해서 도망이라도 치려고 했던 모양이네.”남설아는 다과를 받아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드디어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여유가 감돌았다.“루이스 씨도 겁먹을 만했지. 배건 그룹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이미 다 썩어 있어. 게다가 루이스 씨가 투자한 건 신기술 분야라 위험도 컸고. 놀랄 만도 해.”그녀는 말을 잠시 멈추고 강연찬을 바라봤다.“그래도 이제 안심할 수 있게 해줬어. 그린라이트 테크 프로젝트는 앞으로 우리가 추진할 계획에서 꽤 중요한 카드니까.”“배서준이 원래 이 프로젝트를 네 손에서 뺏으려고 했었잖아?”강연찬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응.”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마음속에서 차가운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배서준의 잘못된 판단과 자만심이, 잠재력 있는 기술 하나를 거의 파묻을 뻔했었다.하지만 지금, 그 기술은 오히려 그녀 손에 쥔 ‘확실한 패’가 되었다.참 아이러니한 일이다.강연찬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이젠 다 지난 일이야. 지금은 네가 결정하는 거잖아.”그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단단했다.남설아도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마음속에 일었던 동요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그래, 이제는 내가 결정해.”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창밖을 바라봤다.“그린라이트 테크는 이제 안정됐고 다음은 화승 그룹 자금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걸 기다리면 돼. 배서준은... 아마 아직도 구멍 난 자금들을 메우려 애쓰고 있겠지?”“내 쪽 사람들 말로는 최근에 예전의 많은 인맥을 다시 접촉하고 있대. 단기 자금을 구해보려고 하는 모양인데, 대부분 거절당한 것 같아.”강연찬은 차분히 상황을 전했다.“화승 그룹이 발 빼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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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그는 팔에 힘을 살짝 주며 말했다.“그리고 나은이 몫까지 잘 살아가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면서.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남설아는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가슴 깊이 숨겨져 있던 상처는 없던 일이 되지도 않았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부풀려지지도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다시 고개를 들어 강연찬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또렷한 다짐이 담겨 있었다.“오빠 말이 맞아.”그녀가 말했다.“화승 그룹 쪽은 언제부터 이설 그룹에 본격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수 있어?”“언제든지.”강연찬의 대답은 간결하고 확실했다.“관련 서류는 전부 준비돼 있어. 너만 결정하면 돼.”“그럼...”남설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단호하게 말했다.“내일로 하자.”“내일?”“응, 내일.”그녀의 말투엔 흔들림이 없었다.“모두에게 보여줘야지. 진짜 이설 그룹이 돌아왔다는 걸.”그녀의 눈빛엔 매서운 기세와 함께 약간의 통쾌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보여줘야지. 본인이 스스로 내던진 게 어떤 의미였는지.”강연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그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바로 이해했다.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내일 아침, 자금 투입 소식을 바로 공개할게. 그때 배서준이랑 소미란 표정이 꽤 볼만하겠는걸.”“볼만할 것 같다고?”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그 사람들 따위로 내 감정이 요동칠 일은 없어. 진짜 볼만한 건 그다음이지.”“그렇지.”강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자금 투입은 시작일 뿐이니까.”“그래. 그저 첫걸음일 뿐이야.”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가서 한 서류를 집어 들었다.“그린라이트 테크가 안정됐다는 건, 우리가 기술 쪽 영향력을 여전히 쥐고 있다는 증거야. 화승 그룹 자금이 들어오면, 이설 그룹은 다시 제 몸을 갖추게 되지.”“배건 그룹은 지금 그냥 껍데기야. 겉만 그럴싸하지, 속은 이미 썩었어.”강연찬이 말했다.“네가 예전에 쌓아둔 기반이 지금은 전부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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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다음 날, 강연찬은 남설아를 데리고 강씨 가문에 가 강영수를 뵈러 갔다.방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오래된 물건들의 향이 감돌았다.강연찬이 남설아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서자, 강영수는 창가에 앉아 손에 호두 두 개를 들고 굴리고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호두가 그의 모습을 더 위엄있게 하는 듯했다.“할아버지.”강연찬이 공손하게 인사했다.남설아도 몸을 숙이며 인사했다.“강 회장님.”강영수는 짧게 대답하더니 호두를 내려놓고 맞은 편에 있는 방석을 가리켰다.“앉게.”그는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아가씨, 차를 잘 우린다고 들었는데 오늘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나?”남설아는 놀랐지만 이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회장님.”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탁자 앞으로 가서 손을 씻고 도구를 준비했다.오랜만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려내는 차였지만 손놀림은 조심스럽고 단단했다.강연찬은 그 옆에서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는 지켜보고 있었다.차의 향기가 서서히 퍼졌다.남설아는 첫 번째 우린 차를 부어버리고 두 번째 우린 차를 강영수에게 따랐다.강영수는 찻잔을 들어 향을 맡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을 감았다.그리고는 잠시 후 눈을 뜨며 말했다.“음, 불 조절이 좋네. 자극적이지도 않고, 뒷맛은 은근히 달아. 아가씨, 자네 마음이 이 차보다 더 평온한 것 같네.”남설아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과찬이십니다. 좋은 차를 준비해 주신 덕분이에요.”“하하.”강영수는 크게 웃었다.“좋은 건 좋은 거지, 너무 겸손하진 말게. 연찬이 이놈이, 이번엔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구먼.”강연찬이 뭔가 말하려 했다.“할아버지, 제가 진작부터 말씀드렸잖아요. 설아는...”강영수는 손을 휘저으며 말을 끊고는 다시 남설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했다.“설아야, 앞으로는 그냥 자기 집처럼 편히 들르도록 해.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 강씨 가문 명성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니까.”이보다 더 분명한 환영의 말은 없었다. 남설아는 마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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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소씨 사모님은 한숨을 쉬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이 녀석은 정말... 조금만 일이 꼬여도 못 견디질 못해. 집에서 온갖 귀한 대접만 받고 자라더니 세상이 다 자기중심으로 도는 줄 알아. 이젠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숨기 바쁘니... 내가 낳은 소씨 가문의 딸이 이렇게 못날 줄이야!”너무 애지중지 키운 죄였다.그녀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소미란의 방문을 두드렸다.“소미란, 문 열어. 엄마가 할 얘기 있어.”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소씨 사모님은 목소리를 높였다.“문 안 열겠다는 거지? 좋아, 계속 그렇게 방 안에 숨어 살아봐. 배서준은 지금 정신없어서 너를 챙길 겨를도 없어. 이설 그룹 발표회 봤어? 남설아가 어떤 기세였는지? 화승 그룹 강연찬이 바로 옆에 서 있더라! 계속 이렇게 숨어 있다가 배씨 가문이 완전히 무너지면 배서준이 가진 거 하나도 없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넌 뭘 어쩔 건데?”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쿵 울렸다. 뭔가를 집어던진 듯했다.소씨 사모님은 계속 말했다.“네가 이렇게 숨어 있다고 해서 일이 해결돼? 배건 그룹의 그 난장판은 하나하나 다 너랑 관련 있어. 남설아가 너 그렇게 쉽게 놔줄 것 같아? 지금 나와서 방법을 찾아야지, 안 그러면 소씨 가문까지 너 때문에 휘말릴 판이야! 너 아버지한테는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니? 진짜 네가 소씨 가문까지 이 일로 망신당하게 만들고 싶으면 계속 숨어 있어! 세상이 너 불쌍하다고 생각할 줄 알아? 아무도 안 그래!”잠시 후, 문고리가 돌아가며 아주 조금 열렸다.소미란은 붉게 부은 눈과 엉망인 머리카락, 지쳐버린 얼굴로 문틈 사이에 나타났다.“엄마...”목소리는 잠기고 울음이 묻어있었다.소씨 사모님은 딸의 몰골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 쌓아놨던 화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속수무책인 피로감만 밀려왔다.그녀는 손을 들어 딸을 토닥이려 했지만, 허공에 머물다 그대로 내렸다.결국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도 얼굴은 보여주네? 난 네가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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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엄마, 엄마는 수가 많잖아요. 연찬 오빠가 다시 돌아오게 방법 좀 생각해 봐요. 남설아 그 여우 같은 년, 아무것도 못 건지게 만들어줘요. 제발 엄마, 도와줘요!”“내가 무슨 수가 있겠니?”소씨 사모님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강씨 가문 쪽 분위기 아직도 모르겠어? 남설아 뒤에 누가 있는 줄은 알지? 화승 그룹이야!”“그래도 난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어요!”소미란은 흐느끼며 말했다.“엄마, 남설아만 제대로 못 살게 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딱 한 번만 도와줘요. 마지막이에요, 제발, 네?”소씨 사모님은 울면서 화장이 다 번진 딸의 얼굴을 보며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이 또 무너져 내렸다. 무자식 상팔자라더니, 그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그녀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됐어, 울지 마. 눈물 좀 닦고. 내가 시간 봐서 강씨 가문 본가에 한 번 들러볼게. 하지만 엄마가 미리 말은 해두는데 강씨 가문이 진짜 마음 굳히고 남설아 편을 든다면, 너 그땐 깨끗이 포기해야 해. 다신 헛짓거리하지 말고 집에 얌전히 있어. 들었지?”소미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엄마, 정말이에요? 엄마 진짜 최고예요! 엄마는 절대 날 모른 체 안 할 줄 알았어요!”소씨 사모님은 그 말에 곁눈질만 하고는 딱히 대꾸도 안 한 채 곧바로 집사를 불러 말했다.“창고에 있는 옥으로 만든 관음보살상을 꺼내 와서 좋은 비단 상자에 곱게 넣어. 그리고 과일도 싱싱한 걸로 준비해서 같이 보내.”강씨 가문에 가는 건 십중팔구 헛수고가 될 거라는 걸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딸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강씨 가문 본가에 소씨 사모님이 도착하자 집사는 곧장 그녀를 별채 응접실로 안내했다.그리고 공손히 차를 내오며 말했다.“사모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어르신께서 나오십니다.”소씨 사모님은 단정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시선을 조심스레 응접실 안으로 흘렸다.방 안은 고풍스럽고 절제된 멋이 느껴졌다. 원목 의자, 고급 관요 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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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아, 연찬이었네요.”그녀의 목소리엔 어딘가 모르게 걱정 섞인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요즘 바쁘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 설아라는 아가씨는 저도 몇 번 봤는데 꽤 괜찮은 아가씨더라고요.”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떠봤다.“지금은...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 거죠? 듣자 하니 화승 그룹 쪽이랑 뭔가 얽혀 있다고 하던데요?”강영수는 찻잔을 내려놓고 소씨 사모님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 눈빛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뉘앙스가 스쳤다.“설아 그 아이가 지금 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지.”그는 잠시 말을 고르고는 칭찬하는 어조로 덧붙였다.“야무지고 똑 부러진 아이야. 화승 그룹 쪽이랑도 확실히 협력 관계가 있어. 그런데 그게 단순한 협력이 아니야.”소씨 사모님은 그 말에서 숨겨진 의미를 읽었다. 이 말은 다름 아닌 남설아는 이제 건드릴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경고였다.그녀는 속으론 불편하고 못마땅했지만, 겉으론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그래요? 대단하네요, 참.”그리고는 말을 슬쩍 소미란 쪽으로 돌렸다.“그런데 미란이도 연찬이한테는 진심이에요...”“젊은 사람들 일은 젊은 사람들끼리 알아서 하게 두는 게 좋지.”강영수가 그녀의 말을 끊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같은 어른들은 그저 지켜보면 되는 거고. 연찬이 일은 강씨 가문 모두가 알고 있어. 어떤 결정을 하든, 가문은 그 아이를 지지해.”말이 더 필요 없었다. 소씨 사모님은 이제 완전히 깨달았다. 강영수, 아니 강씨 가문 전체가 남설아를 확실히 감싸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여전히 예의 바른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조심히 가게.”강영수 역시 더 붙잡지 않았다.소씨 사모님은 강씨 가문 저택의 대문을 나서서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야 비로소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 피곤한 표정을 드러냈다.한편, 배서준은 서유라와의 약혼식 준비에 한창이었다.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배건 그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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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그는 여자 파트너와 팔짱을 끼지 않았다. 다만 옆으로 살짝 몸을 틀어 남설아가 안쪽으로 걸을 수 있게 자리를 배려했다.남설아는 오늘 단정한 드레스를 입었다. 장식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서 더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다.그녀는 표정에 큰 변화 없이 그저 조용히 강연찬 옆에 서 있었다.두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들에게 쏠렸다.소미란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잠깐 굳었지만, 곧 다시 평온은 되찾았다. 다만 눈빛은 전처럼 부드럽지 않았다.서유라는 배서준 옆에 서서 마치 승리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그 눈빛엔 노골적인 도발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런 서유라에게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미란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연찬아, 설아 씨.”소미란은 남설아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놓고 적대감 드러냈다.“설아 씨 요즘 정말 대단하시네요. 앞으로 배건 그룹이랑 이설 그룹이 협력하게 되면, 설아 씨처럼 화승 그룹과 인맥이 있는 분이 좀 도와주셔야겠어요?”겉으론 협력을 운운하는 말이었지만 속내는 명확했다. 남설아가 강연찬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것, 그리고 이설 그룹을 위해 연찬을 이용하려는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었다.동시에 배서준과의 친밀함을 내세우며 소씨 가문이 배건 그룹에서 차지하는 영향력도 은근히 드러낸 셈이었다.그러자 강연찬이 단호하게 말했다.“이설 그룹은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일해.”그는 더는 소미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대신 배서준과 서유라에게 간단히 고개 인사를 한 뒤, 남설아와 함께 다른 하객들에게 인사하러 자리를 옮겼다.그는 내내 남설아를 곁에 두고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마다 항상 먼저 소개했다.“제 약혼자, 남설아입니다.”소미란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림이 마치 바늘처럼 그녀를 찔러댔다.소미란은 손톱이 살을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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