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451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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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허종혁은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긴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여 조바심이 났다.“아버지. 이제 어쩌면 좋아요?”허종혁의 어머니도 조바심이 났는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쏠리자 허종혁의 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나를 보면 뭐가 나와?”“알아서 방법을 고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만 쳐다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 같으니.”참으로 듣기 거북한 이 말은 허종혁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들어있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허종혁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그 말 무슨 말이에요?”“우린 가족이에요. 가족끼리 꼭 그렇게 따져야 해요? 종혁이 내 아들이긴 하지만 당신 아들이기도 하잖아요. 회사도 내 회사인가요? 우리 가족 회사지?”이 말에 허종혁의 아버지도 화가 치밀어올라 맞서다 보니 싸움으로 번졌다. 허종혁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관자놀이가 툭툭 뛰는 게 느껴졌다. 부모라는 사람이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싸우기나 하니 말이다.허종혁은 문득 안소현의 가족이 떠올랐다. 김미진은 그래도 안소현이 이렇게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거절이라도 하지만 허종혁은 가족에게 떠밀려 선택할 여지조차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허종혁은 씁쓸하기만 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사람을 믿기보다는 혼자 힘으로 맞서는 게 나을 것 같았다.제일 급선무는 안소현을 달래는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안소현과 결혼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회사가 허종혁 혼자만의 회사는 아니라 해도 결국엔 회사를 물려받아 운영해야 하는데 마냥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순간 허종혁은 자기 자신이 우스워지며 이연서가 너무 그리웠다. 눈빛이 어두워진 허종혁은 차를 운전해 본인 소유의 별장으로 향했다.소리를 들은 허종혁의 어머니는 싸움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됐어요. 연기는 그만해요.”“당신도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었구먼.”허종혁의 어머니가 곱게 흘겼다.“그걸 내가 왜 모르겠어요?”“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입만 벌려도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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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허종혁은 역시 허씨 내외가 예상한 대로 이연서를 찾으러 갔다. 개인 소유의 별장이라 허종혁도 이연서를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고 족쇄를 채운 채 방안에서만 돌아다니게 했고 밥때가 되면 아줌마가 문 앞까지 가져다줬다. 허종혁이 특별히 밥만 가져다주고 다른 건 묻지 말라고 지시한 터라 아줌마도 그대로 따랐다. 아줌마는 성격이 착실하기도 했고 허종혁이 워낙 돈을 많이 줘서 맡겨준 일만 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허종혁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마침 이연서에게 줄 밥을 방 앞에 놓아주던 아줌마가 허종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표님,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왜 그렇게 놀라세요?”허종혁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눈살을 찌푸렸다.“아니요. 그냥 이 시간에 여기서 대표님을 만난 건 처음이라서요.”아줌마가 고개를 거의 바닥에 떨구다시피 해서야 허종혁은 아줌마를 돌려보냈다.“네. 다른 일 없으면 이만 가보세요.”“네. 지금 바로 나가보겠습니다.”아줌마는 마치 특사를 받은 사형수처럼 허종혁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별장을 떠났다. 이에 허종혁의 의심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아무리 간댕이가 부었다 해도 허종혁을 거역할 엄두는 내지 못할 것이다.허종혁은 바닥에 놓인 도시락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연서는 인기척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옷은 여전히 얇았지만 몸을 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었다.이연서는 앞에 나타난 허종혁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덤덤했다. 허종혁은 그런 이연서가 퍽 의외였다. 예전에는 허종혁만 보면 욕설을 퍼부으면서 손찌검까지 했는데 말이다.이연서는 벙찐 허종혁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얌전해지기를 바라더니 정작 얌전해지니까 오히려 적응이 안 된다는 표정이니 말이다. 하는 짓거리만 봐도 허종혁은 일반인과는 다르게 특수한 패티쉬가 있는 것 같았다.허종혁은 이연서의 눈빛을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됐어. 성질 그만 부리고 밥 먹어.”“네가 이렇게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진작 다 먹어버렸을 거야.”이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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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인정해야 할 건 이연서가 한 말이 허종혁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는데 그걸 이연서가 정확하게 간파했다.허종혁이 똥 씹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고 이연서는 자신의 추측이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연서는 사람 하나는 잘 봤다.“왜? 들켜서 민망해?”이연서가 활짝 웃었다. 너덜너덜한 옷이 마치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청아한 아우라를 불어넣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잠깐이지만 허종혁이 이연서의 목을 조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죽고 싶어?”“죽고 싶다면 들어줄게.”허종혁이 이렇게 말하며 손에 힘을 줬다. 순간 정말 이연서를 졸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얼굴이 파래진 이연서는 숨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발버둥 치기는커녕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너는... 나... 못 죽여...”“그... 그렇게... 대단하면... 나 죽여... 보든지...”허종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빨갛게 상기된 이연서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에 힘을 줬다. 그러다 이연서의 눈이 뒤집어지기 시작하자 허종혁이 손을 놓으며 숨을 쉬게 했다.신선한 공기가 기도로 들어온 순간 이연서가 본능적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이 눈시울을 가득 채웠지만 그건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생리적인 눈물이었다.“왜? 내 손에 죽고 싶어?”허종혁이 이연서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악마처럼 속삭였다.“꿈 깨. 네가 얼마나 달콤한데 이렇게 죽이긴 아깝지.”“사실 너 하나쯤 죽이는 거 어려운 거 아니야. 아까울 뿐이지. 그렇다고 이 말에 잠을 설치지는 말고.”이연서는 침대에 엎드려 계속 기침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뽀얀 목덜미는 어느새 빨간 손자국이 나 있었다.숨을 조금 돌린 이연서가 허종혁에게 소리를 질렀다.“짐승 같은 놈. 꺼져. 역겨우니까.”“꺼지라는 말 안 들려?”허종혁이 이연서의 턱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잊지 마. 지금 네가 누린 것들 전부 내가 준 거야. 그러니까 떠날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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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이렇게 지낸 지도 꽤 오래됐지만 이연서에게 허종혁은 여전히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도 허종혁이 없으면 그나마 편히 지낼 수 있었다.“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이연서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도시락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발에 찬 족쇄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연서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 수치스러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짐승 같은 게. 사람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가둬?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심서아는 요즘 즐길만한 것들은 다 즐기면서 다녔고 대부분 돈을 자기 자신을 가꾸는 데 썼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거울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변화에 기분이 좋았다.역시 사람은 돈만 있으면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아우라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요즘 길거리로 나설 때마다 사람들이 보내오는 시선에 너무 기뻤다.게다가 이제는 패션 스튜디오까지 차려 연예인들의 사복을 만들어주면서 직업도 생겼다. 그러니 앞으로 서진우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해서 퇴로인 서진우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기에 며칠 뒤에 답장할 생각이었다.다만 서진우는 심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문자로도 모자라 직접 스튜디오까지 찾아온 것이다. 심서아는 눈앞에 나타난 서진우를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너 요즘...”심서아를 와락 끌어안은 서진우는 아이처럼 얼굴을 목덜미에 마구 비비적거렸다.“서아야. 너무 보고 싶었어.”심서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는데 서진우가 울먹이자 마음이 약해졌다.“일단 사무실로 들어와. 여기는 보는 눈이 많아.”이 말에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더니 눈치 빠르게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심서아는 서진우에게 요즘 어떻게 지냈길래 이렇게 초췌해졌는지 물어보고 싶었다.‘못 본 지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이렇게 된 거야?’솔직히 말하면 심서아도 서진우의 그런 모습이 퍽 의외였고 살짝 마음 아프기도 했다. 모순되는 이 감정은 심서아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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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심서아의 반응이 서진우를 아프게 했다. 그동안 심서아를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심서아는 보자마자 그를 밀어내려고 하니 말이다.서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서아를 바라봤다.“서아야. 이거 무슨 뜻이야?”“사람 잘못 본 거지. 나야. 잘 봐봐.”서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잡고 심서아에게 자신이 누군지 잘 보여주려 했다. 심서아는 수염이 가득 자란 서진우가 살짝 역겨웠고 마음이 약해졌던 자신이 한심했다.‘아무리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걸 참고 살았지?’예전의 서진우에 비하면 정말 매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외모만 보더라도 그랬다.“누군지 아니까 흥분하지 마.”요즘 너무 많은 걸 보고 들으면서 심서아도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더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데 서진우를 마주하고 있자니 별로 성에 차지 않았다. 일단 가족에게 기생해 사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며칠 만에 이렇게 퇴폐해졌는데 서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타이틀까지 잃으면 얼마나 더 바닥을 칠지 의문이었다.심서아는 더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명확하지 않을 것도 없었다. 서진우는 처음부터 디딤돌일뿐이었기에 시기만 맞으면 언제든지 차버리고 독립할 생각이었다.서진우는 심서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내가 누군지 아는데 왜 밀어내?”심서아가 마른기침하며 눈알을 굴리더니 핑계를 찾았다.“됐어. 일단 진정해.”“너도 봤지? 여긴 내 스튜디오야. 여기서 그런 짓을 하는 건 맞지 않아. 밖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서진우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게 뭐가 어때서?”“수군거릴 테면 수군거려 보라지.”이 말에 어이가 없어진 심서아가 웃음을 터트렸다.“네가 말해봐.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그거야 당연히...”서진우는 결국 커플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사실 그도 두 사람의 관계가 커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커플은 무슨, 나쁘게 말하면 둘은 빛을 볼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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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잖아. 너희 부모님이 우리 사이를 동의하지 않는데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서진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이렇게 약속했다.“서아야, 나 정말 너 좋아해.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아이고. 아직도 모르겠어?”심서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도 어린애처럼 성질만 부리는 서진우가 한심했기 때문이다.‘내가 서진우를 이렇게 만든 건가?’심서아는 한편으로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타고나길 오만한 성격인 서진우는 자기보다 못사는 일반인을 무시하기 일쑤였지만 일반인이 없으면 돈을 벌 구석도, 호화로운 생활도 없다는 걸 몰랐다.서진우는 심서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서아야. 그 말 무슨 뜻이야?”“그래.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모르면 네가 알려주면 되잖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싶어.”이런 서진우는 심서아도 처음이라 살짝 놀라웠다. 서진우는 그들과 같은 일반인과는 말도 섞기 싫어했고 평소 심서아와 함께 있을 때도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서진우가 비굴하게 나오니 심서아는 그저 우습기만 했다.예전에는 서진우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심서아가 서진우를 신격화했을 뿐이지 자세히 보면 대단한 구석이 없었다. 어쩌면 서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신분이 다였을지 모른다.“이제 그만 돌아가.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심서아가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가끔은 여지를 남겨두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어른들이 그러잖아. 겪어봐야 안다고. 너도 이제 성인인데 언제까지 내가 옆에서 뜻풀이를 해줘야 해?”서진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아 목소리마저 바들바들 떨렸다.“서아야. 지금... 더는 나 만나기 싫다는 거야?”“그건 아니지.”심서아는 억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너무 역겨웠다. 이제 서진우는 빈털터리였고 어쩌면 심서아의 카드를 써야 할 수도 있다.심서아는 이것만 생각하면 너무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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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누구라도 잘 믿지 못했을 것이다.“나...”서진우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려다 말았다. 심서아는 그런 서진우의 모습이 퍽 의외였다.“도대체 뭔데 그래?”심서아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서진우에 대한 환상이 깨진 후로 서진우는 심서아에게 보통 남자랑 다를 게 없었다.서진우는 심서아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캐묻자 요즘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해줬다.“요즘 허산 그룹으로 출근해. 신분은 공개하지 않고 일반 사원으로 말이야.”“그래서?”심서아는 곱게 자란 도련님이 그런 수고를 마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내가 먼저 아버지께 그러겠다고 말씀드렸어. 이제 더는 손 놓고 볼 수 없겠더라고. 빨리 너랑 함께하고 싶어.”서진우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회사를 물려받으려면 아버지의 시험을 넘어야 해. 그리고 이게 나에 대한 시험이야.”“그래서 말단 사원부터 시작하겠다고?”서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서아야. 나 이번에는 진지해. 너 속일 생각 없어.”서진우가 앞으로 다가가더니 심서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심서아는 아직 그런 서진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초췌한 걸 봐서는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아... 알겠어. 고마워.”서진우의 인맥만 원했던 심서아는 남은 인생을 서진우에게 걸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진지할지 모르지만 이 진지함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서진우의 능력이 얼마인지는 심서아가 더 잘 알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할 것 같았다.“진우야. 우리 일은 다음에 얘기하자. 오늘은 바빠서 이만 나가봐야 할 것 같아.”시간을 보니 예약한 손님이 곧 도착할 것 같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서아야, 서아야.”서진우가 심서아의 손목을 잡으며 애원했다.“겨우 나왔는데 이렇게 간다고?”심서아는 고민에 잠겼다. 커리어와 남자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심서아는 지금 커리어를 자기 자신을 향상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남자를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는 건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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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다.심서아의 눈빛이 점점 굳건해졌다.“서진우.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건 우리 두 사람이 아니야. 너희 부모님이지. 이게 우리 둘의 차이야.”“내가 왜 이렇게 일에 목을 매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다 우리를 위해서잖아.”서진우가 멍한 표정으로 심서아를 바라봤다.“우리를 위해서라니?”심서아가 입을 열었다.“알아서 해. 나는 고객들 상대하러 나가볼게.”“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건 우리가 아니야.”심서아는 곧 도착할 고객 때문에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쓸데없는 곳에 쓸 정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곳에 정성을 쏟아도 모자라는데 같이 하는 건 무리였다.서진우는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모든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혼자만 제자리걸음인 느낌이었다.심서아의 목소리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었다.“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있다고 해도 간단한 문제일 텐데 왜 자꾸만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서진우는 심서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입술을 꽉 앙다물고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고객과 얘기를 나누는 심서아가 보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심서아는 얼핏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 사모님을 여유있게 상대했다. 신분에 차이가 있었지만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심서아를 서진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내가 서아를 너무 얕잡아봤구나. 잠재력이 많은 여자였는데.’‘발견하지 못한 내가 바보지.’‘정말 우리 사이는 부모님이 문제인 건가?’이렇게 생각한 서진우는 속으로 뭔가를 다짐했다.손님들을 상대하는 심서아는 반짝반짝 빛났다.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그래. 나도 더 노력해야겠어.’서진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다짐했다.심서아가 손님을 보내고 돌아와 보니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돌아갔나 보지?’심서아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진우가 여기 있으니 뭘 해도 신경이 쓰였고 고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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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이제 더는 흐지부지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서진우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서동욱을 찾아갔다.“아버지. 이제 더는 신분을 숨기고 싶지 않아요.”이 말에 서동욱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너 이 자식.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뭐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게 회사야? 회사를 그따위로 운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된통 욕을 먹은 서진우가 이렇게 말했다.“나도 알아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아버지도 이제 그만 욕해요.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요. 더는 함부로 설치지 않을게요.”서진우가 손을 들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맹세할게요.”서동욱은 그런 서진우를 보고 숨이 올라오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기 자신을 다독였다.‘내 아들이야. 소중한 내 아들. 때릴 수는 없지.’서씨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자식인데 소중히 다뤄야 했다.“신분을 밝히면? 그 뒤는?”서동욱은 사실 서진우의 빠른 두뇌 회전에 놀랐다.‘설마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사실을 안 건가?’서진우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사실 그 뒤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그저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권력을 쥐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요.”서진우는 지금처럼 허송세월하고 싶지 않았다. 말단 사원부터 시작하면 서동욱이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심서아를 보고 나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 것이다. 여자인 심서아도 방향을 찾았는데 남자가 돼서 더 헤매는 건 아닌 것 같았다.서동욱은 그런 서진우가 한심했다. 목소리는 크지만 성과는 턱없이 작아 바로 회사를 물려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서동욱은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더 오래 견지하려고 했다. 그가 있는 한 이 회사는 어떻게든 지켜낼 생각이었다. 평생 뼈를 갈아 바쳤는데 이대로 무너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서동욱은 한심한 서진우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서동욱이 한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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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그리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생겼어요.”이 말을 하는 서진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심서아의 달콤한 모습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서동욱은 서진우가 말한 사람이 안다혜라고 생각해 대뜸 얼굴을 붉혔다.“아직도 안다혜를 못 잊은 거야?”서동욱의 언성이 높아졌다.“내가 말했지. 너희는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둘은 어울리지 않아.”“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서진우가 설명하려 했지만 서동욱은 설명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풍산 그룹 프로젝트를 따낸 것도 모자라 해외 프로젝트까지 추진하고 있잖아. 안씨 가문 작은 아가씨라는 신분은 안다혜에게 제일 보잘것없는 수식어야.”이 말에 서진우는 두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했는데 서동욱이 짚어주자 바로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어쩌면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버지. 안다혜가 정말 그렇게 대단해요?”분명 서진우가 기억하는 안다혜는 그를 위해 기꺼이 가정주부로 남으려던 좋은 여자였는데 지금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서동욱은 큰 타격을 받은 서진우가 안쓰럽긴 했지만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 말을 이어갔다.“그래. 안다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란다. 어쩌면 점점 더 대단해질지도 모르지. 너는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그러니까 이상한 망상에 잠겨 있을 시간에 회사 일이나 착실히 배워.”서진우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금방 잠에서 깬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동욱은 그런 아들이 마음 아팠지만 정신 차리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그래요. 알겠어요.”서동욱의 서재에서 나온 서진우는 수염이 가득 자란게 예전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동욱은 그런 서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설마 이번에도 고추장 맛보기 정도의 열정인 건 아니겠지? 이번에는 제발 오래 버텨주라. 나도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서동욱은 힘이 닿는 데까지 서진우를 위해 이 자리를 지켜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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