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571 - Chapter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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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화

도대체 누가 이 회사에 실적을 내고 성과를 가져오며 앞으로 빛나는 미래까지 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생각을 하자 안소현의 눈빛은 더 어두워졌다.바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더 확신할 수 있었다.더 이상 남의 손에 휘둘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자기 미래는 자기가 주도해야 했다.승리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이걸 쉽게 포기한다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웃음이나 사게 될 것이다.하지만 윤해준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김미진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럼 전화해.”윤해준의 짧은 대답에 안소현은 속이 들끓었다.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할 수가 있나, 그녀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바로 그때, 한문수가 눈치껏 움직였다.드디어 자신이 나설 차례라 여긴 것이다.그는 곧장 안소현을 붙잡아 세우고 눈짓으로 윤해준에게 휠체어를 밀고 서둘러 떠나라고 신호를 보냈다.안소현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놓으라고! 너희 한통속이지! 지금 당장 전화할 거야!”“안다혜 씨, 그렇게 흥분하지 마세요. 날도 점점 더워지는데 화병 나면 어떡해요. 이럴 땐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게 좋아요.”한문수의 웃음은 묘하게 사람 기분을 누그러뜨렸고 낮게 깔린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매력이 있었다.옆에 있던 한유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오빠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싶었다.사람을 저렇게 홀리다니 예전부터 숨겨온 능력이었나 싶어 새삼 신기했다.정작 윤해준이 언제 병실을 빠져나갔는지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한편, 붙잡혀 꼼짝 못 하는 안소현의 속은 활활 타올랐다.“너 대체 무슨 속셈이야!”멀어져 가는 윤해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이제 큰일이다. 정말로 데리고 나가 버리면 머지않아 안다혜가 깨어날지도 모른다.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이고 손에 쥔 건 하나도 없게 된다.그동안 해온 일이 모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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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이 사람들을 황규석이 일일이 상대해야 했다.그러면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시간만 끝없이 잡아먹는 노릇이었다.황규석은 말도 못 하고, 그저 한문수가 안소현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하지만 안소현은 여전히 진정되지 못했고 아예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분명 윤해준을 막지 못하면 가만 있을 리 없었다.이 모습을 본 한문수도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계속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을 겁니까?”“네!”안소현은 한문수의 짜증 섞인 말투를 눈치채고 소리를 질렀다.“내가 귀찮으면 그냥 이거 놔요. 여기서 이러고 막고 있는 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그래요! 정말 왜 이래요!”안소현은 화가 폭발했다.어차피 이제 윤해준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더는 여기서 좋은 언니인 척할 이유도 없었다.자기 오빠가 이런 식으로 욕을 먹는 걸 본 한유라는 속이 상해서 곧장 앞으로 나서 따졌다.“그게 도대체 무슨 태도예요? 이 사람 우리 오빠예요. 오빠가 지금 그쪽을 잘 달래주고 있잖아요. 왜 이렇게 무식하게 굴어요?”안소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지금 그쪽 오빠더러 날 도와달라 했어요? 참, 오지랖도 넓네요.”“당신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성질이 급한 한유라는 안소현이 도발하는 말에 함께 화를 냈다.“그렇게 예민하게 굴고 해준 오빠가 언니를 모셔가는 걸 못마땅해하는 거 설마 그쪽이 뭔가를 꾸민 게 아니에요? 다혜 언니가 병이 낫는 게 두려운 거죠?”비록 한유라 역시 안다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같은 편에 서는 게 더 중요했다.그 안에 얽힌 이해관계는 한문수가 이미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바보가 아니라면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한지 모를 리 없었다.너무도 단순한 도리였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서야 하는지, 한유라는 너무도 분명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망설임이 없었다.오빠가 그렇게 확실히 말해줬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멍청한 사람이다.안소현은 그 광경을 보며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게다가 속으로는 씁쓸한 불안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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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안소현과 안다혜는 분명 피를 나눈 사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한유라는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앞으로 이들 재벌가 사이에서 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이 일은 네가 나설 문제가 아니야. 관여하지 마.”한문수의 말투는 한층 낮고 무거웠다.“왜?”한유라는 의아한 눈빛으로 오빠를 바라봤다.정작 나서야 할 때 한문수가 말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만약 이 일이 밝혀지면 윤해준이 그들을 다시 보게 될 텐데 그렇다면 윤해준이 한씨 가문에 진 빚도 더 커지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한문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넌 아직 남자를 몰라. 정말 안소현이 한 짓이라면 그건 윤해준이 직접 처리해야 해.”“왜 굳이 그래야 하는데?”한유라는 고개를 긁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남자들 사이의 알 수 없는 승부욕이니, 자존심이니,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서로 비교하고 겨루는 게 뭐가 그리 재미있단 말인가.그 표정을 본 한문수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됐어. 네 머리로는 이해 못 해. 그런 걸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네 앞날이나 생각해.”그리고 그는 진지하게 덧붙였다.“만약 이게 안소현의 짓이면 윤해준은 직접 안다혜의 원한을 갚아 주는 걸 더 원할 거야. 그게 남자라는 종족이지.”그 말을 듣고도 한유라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고개를 긁적였다.사실 그녀는 남자들과 거의 접점이 없었다. 특히 윤해준 같은 타입은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그들의 속마음을 이해한다는 건 그녀에게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지금껏 그녀가 한 일은 그저 윤해준만 바라보는 일이었다.다른 남자들과 교류한 기억도 거의 없다. 온 마음을 윤해준에게만 쏟아부은 결과였다.그래서 한문수의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도 몰랐다.정말로 모르는 일이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유라는 문득 스스로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신은 어릴 때부터 줄곧 윤해준만 쫓아다녔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 제대로 만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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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안소현은 다시 밖으로 나왔고 마음은 한층 더 뒤죽박죽이었다.‘지금 당장 뭘 해야 하지? 윤해준을 막으러 가야 하나?’하지만 그는 이미 한참 전에 떠났다.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찾을 방법이 없었다.안소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과 혼란이 스쳤다.솔직히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만약 안다혜가 깨어난다면, 자신의 인생은 또 어떻게 뒤바뀔지 알 수 없었다.겨우 대리 대표가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금세 자리에서 밀려나야 하는 것도 억울했다.‘안 돼, 그럴 순 없어. 왜 그래야 해?’똑같이 안씨 가문의 자식인데, 왜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건지 원망스러웠다.반면 안다혜는 몸도 튼튼하고, 어릴 때부터 머리도 자기보다 낫고, 외모도 자기보다 낫다. 그 생각만 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김미진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같은 배에서 나온 두 아이인데 왜 이렇게도 불공평한지 생각했다.자신은 그렇게나 애를 썼는데도 여전히 안다혜의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그러니 결국 이런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겨우겨우 계획은 절반 이상은 성공했다.이제 가장 중요한 건 그 자리에 흔들림 없이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그런데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왜 윤해준은 자신을 막는 걸까, 그의 친구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안소현은 분해서 도통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나니, 삶 자체에 대한 자신감마저 조금씩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그때 허종혁이 밖으로 나와 마침 길가에 멈춰 서 있는 안소현을 보았다.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어두운 표정을 보며 그는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그게 아니었다면, 안소현이 이럴 리가 없다.이건 가장 분명한 신호였다.허종혁 역시 기분이 좋을 리 없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남자답게 곁을 지켜줘야 했다.그는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소현아, 괜찮아?”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안소현은 그제야 목이 메어 훌쩍거렸다.“아까 대체 어디 갔었어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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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이렇게 해야 앞으로의 단계도 수월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영영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허종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는 손을 들어 안소현의 등을 토닥이며 한층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너무 속상해하지 마. 지금까지도 넌 충분히 잘해왔어. 앞으로 일은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맞서면 돼. 터무니없는 소문도 그렇게 많지 않을 거야.”안소현은 고개를 들어 허종혁을 바라보았다.지금 그녀의 눈에 비친 허종혁은 온몸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종혁 씨, 방금 한 말 다 진심이에요?”허종혁은 진지하게 맹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진심이지. 이런 일로 내가 왜 널 속여? 그럴 이유 없잖아. 앞으로는 우리가 같이 살아갈 건데 함께 맞서는 건 당연한 일이지. 왜 그렇게 예상 밖이라는 표정이야?”그 순간, 안소현의 시야에는 허종혁만 가득했다. 그는 마치 빛나는 영웅 같았다.지금 허종혁이 다소 거칠게 말한다 해도 그녀는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아니에요, 종혁 씨. 내가 어떻게 안 믿겠어요. 그냥 당신이 정말 좋다는 생각뿐이에요.”안소현은 허종혁을 꼭 껴안았고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았다. 뜻밖의 반응에 허종혁은 잠시 놀랐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소현아. 앞으로 내가 잘할게. 넌 그냥 마음 놓고 나한테 맡겨.”이 말에 안소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이 남자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말, 그럴듯한 위로, 듣기엔 좋지만 결국 행동이랑 별개라는 것을 말이다.게다가 허종혁은 많은 일을 겪고도 끝내 피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그가 어떤 성격인지, 안소현은 누구보다 잘 안다.만약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그녀는 분명 다시 한번 차분히 따져볼 것이다.하지만 사람 앞에서는 사람 말을, 귀신 앞에서는 귀신 말을 한다고 하지 않나, 지금 순간, 허종혁을 대하는 안소현도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감정을 추스른 안소현은 곧장 김미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해준이 안다혜를 데려가는 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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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마지막엔 상황이 불리해지자 그 사람은 혼자 도망쳐 버렸다.안소현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거야. 하나같이 믿을 구석이 없어.’안다혜가 만나는 사람들은 매번 순탄하고 든든해 보이는데 자신의 인생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고, 자신의 곁에 붙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평범하기만 했다.이를테면 허종혁이 있었다. 외모만 보면 준수한 편이지만 생김새로만 치면 윤해준보다 살짝 못하다.그렇다고 해도 민성 안에서는 제법 재력 있는 재벌 축에 드는 사람이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분명 한몫하는 인물이다.여러 남자를 겪어 보니 안소현도 인정할 건 인정했다.허종혁은 원래 나쁘지 않은 남자다. 다만 자기와 관련된 일에는 영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그건 알고 있었지만 바꿀 수도 없었고 그래서 자주 서운했다.지금처럼 자기 얘기를 길게 들어주고 말을 맞춰 주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소현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늘 결혼 문제에서는 망설였다.바로 그 이유로, 안소현은 결혼을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결혼은 한 번 하면 평생이 달린 일이고 여자에게는 특히 불리한 구속이었다.일단 결혼하면 곧바로 발이 묶인 것이나 다름없고 나중에 이혼하기라도 하면 ‘재혼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앞날에도 불리하고 썩 합리적이지도 않다.안소현은 늘 아주 냉정한 편이었다. 하지만 김미진의 의심 어린 목소리 앞에서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막막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에는 아무 일도 없어요.”그 말을 들은 김미진은 그제야 안심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의아했다.‘회사가 멀쩡한데, 그럼 지금 왜 나한테 전화했지?’김미진은 원래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이미 직감적으로 느꼈다.‘회사 문제도 아닌데 굳이 전화를?’안소현은 원래 자립심이 강한 아이였다.웬만한 일은 혼자 처리했고 남에게 방법을 묻는 법이 거의 없었다.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자존심과 자부심 때문에라도 남을 찾지 않았다.하지만 조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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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비록 안소현을 조금 더 편애해 온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이렇게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곧 김미진의 말투도 한층 무거워졌다.“해준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넌 그만 신경 쓰지 마.”안소현은 눈을 크게 뜨고 허종혁을 바라봤다.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어떻게 엄마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신경 쓰지 말라고? 겉으로는 동생을 걱정하는 행동인데 그게 오히려 잘못된 걱정이라는 말인가?’“엄마, 엄마는 지금 실제 상황을 전혀 모르잖아요!”안소현의 목소리는 저절로 높아졌다.김미진도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이 달래는 말투로 목소리 톤을 낮췄다.“알겠어, 그럼 네가 보기엔 뭐가 문제라는 건데? 네 입으로 말해 봐. 실제 상황이 뭔데? 난 정말 모르니까 네가 직접 설명해.”김미진은 붉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만약 안소현이 눈앞에 있었다면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을 것이다.귀 기울여 듣기만 해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짜증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지금 안소현은 화가 치민 상태였고 방금 윤해준에게 당한 수모까지 겹쳤다.거기에 고위 임원의 배신감까지 더해졌다.여러 일이 한꺼번에 몰리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게다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나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엄마, 저도 의사 얘기를 들었고 일부러 다혜 주치의에게도 물어봤어요. 그분이 아주 진지하게 말씀하셨어요. 지금 다혜 상태는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그러다간 오히려 몸에 해가 되고 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요.”옆에 있던 허종혁은 안소현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이 여자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었나?’왜 이제야 알아챘을까, 게다가 몇 마디로 모든 정황을 정리하면서도 자신과의 연관성은 말끔히 지워 버렸다.마치 자신은 철저히 안다혜를 위하는 사람일 뿐 그 외의 건 전혀 상관없다는 듯했다.허종혁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안소현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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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이렇게 생각하니 김미진은 점점 더 자책감이 들었다.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에는 결국 자기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안소현도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엄마, 저도 해준 씨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저 혼자였고 그쪽 사람들은 전부 해준 씨 편이라 저는 해 볼 도리가 없었어요. 게다가 예전에 엄마가 그랬잖아요. 별일 아닌데 제가 괜히 호들갑 떠는 거라고요.”이 말을 들은 김미진은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야말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 꼴이었다.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을 몰랐다,그런데 예전에 이 집사가 다녀와 보고했을 때도 이렇게 심각하다는 말은 없었다.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그 전만 해도 안다혜는 건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정말 모든 게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겪는 일마다 버겁고 힘들기만 했다.“미안해. 그땐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 한 내 잘못이야.”이 말에 안소현은 허종혁을 힐끗 보며 얼굴에 희미한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김미진에게서 이런 사과를 듣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자존심 하나로 버텨 온 사람인데 이런 건 처음이었다.안소현 본인도 신기할 정도였다. 원래는 떠보려 던진 말이었는데, 진짜로 고개를 숙일 줄 몰랐다.“엄마,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안소현은 일부러 난처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지금 해준 씨가 다혜를 데리고 나가 버려서 저도 정말 다혜 상태가 걱정돼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언니잖아요. 눈뜨고 동생 몸 상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죠.”허종혁은 그 연기를 보며 아연실색했다.안소현은 김미진과 얘기할 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애초에 안소현은 안다혜를 좋아하지 않았다.이 점은 허종혁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안소현이 어떤 사람인지도 그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가식적인 사람인데 안다혜에게 잘해 주기를 기대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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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다혜가 내내 깨어나지 못하니 언니인 저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어요.”“응, 그 마음은 나도 알아.”김미진은 안소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두 자매 사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워졌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일단 안소현의 말을 들어 주는 편이 낫다는 걸 김미진은 알고 있었다. 어쨌든 상황의 자초지종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었고 안소현을 달래는 것도 중요했다.김미진의 반응을 확인한 안소현은 일부러 난처한 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엄마가 정말 못 믿으시겠다면 주치의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와서 직접 말씀드리게 할 수도 있어요. 그분은 다혜 주치의예요. 제가 한 말은 미덥지 않으셔도 의사 선생님 말씀은 믿어 주셔야죠. 제가 동생 건강을 가지고 장난칠 리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잖아요.”김미진은 한숨을 내쉬며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됐어, 소현아. 내가 널 못 믿어서 그러겠어?”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그래도 내 딸인데, 괜히 마음이 급해서 그런 거지... 네가 이해해 줘.”안소현은 속으로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순순히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그럼요, 엄마. 제가 남은 몰라도 엄마 마음은 잘 알죠.”안소현은 수화기 너머에서 얌전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한테 이런 말씀 드리는 것도 다 동생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매부라는 사람은 저한테 유독 불만이 큰가 봐요. 그 사람 앞에선 제 말이 전혀 힘이 없어서 정말 어쩔 도리가 없네요.”이 말을 듣자 김미진은 표정이 굳었고 속으로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소현은 안다혜의 언니인데 윤해준이 그렇게 안소현을 대한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였다. 김미진의 마음속에 윤해준을 향한 불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좋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김미진은 단호하게 말했다.“다혜는 내 딸이고 안씨 가문 사람이야. 윤해준이 멋대로 결정할 자격은 없어. 의사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나도 가만 있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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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너무 마음 쓰지 마.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제일 먼저 알려 줄게.”“네, 엄마.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다혜 일은 저도 정말 걱정돼요.”안소현은 울먹이며 말했다. 안소현의 목소리를 들은 김미진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말을 고르다 그저 별 의미 없는 위로 한마디만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끊긴 화면을 내려다보던 안소현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 모습을 본 허종혁이 성큼 다가와 물었다.“어떻게 됐어? 이사님이 네 말을 믿어 준 거야, 아니면 안 믿으시는 거야?”그는 조금 떨어져 있어 가끔 안소현 목소리만 들었을 뿐 김미진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안소현의 노련한 연기로 보아 성공했을 것 같기도 했다.안소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연히 성공이죠. 우리 엄마는 겉으론 다혜를 안 챙기는 척해도 사실은 엄청 신경 써요. 그걸 몇 년이 지나도록 다혜는 못 알아차리고 매번 엄마랑 부딪히니 참 바보 같아요.”“역시 네가 한 수 위네.”허종혁이 진심으로 감탄했다.안소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그러니까 상황을 좀 심각하게만 만들어 놓으면 큰 문제는 없어요. 나머지는 엄마가 알아서 하실 거고 우리가 더 애쓸 필요는 없어요.”허종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소현의 허리를 휙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몸이 바짝 맞닿았다.안소현은 웃으며 살짝 밀쳤다.“뭐 하는 거예요, 여긴 병원 입구예요.”허종혁은 개의치 않았다. “그게 뭐 어때서. 이 병원 자금 대부분이 우리 가문에서 투자한 거야. 뭐가 걱정인데? 게다가 넌 내 여자친구고 우리 곧 결혼할 사이잖아. 뭘 더 조심해? 내가 뭘 신경 써야 하는 건데?”결혼이라는 말에 안소현은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속으론 달갑지 않았지만 들뜬 허종혁의 표정을 보고 괜히 김빠지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불만은 마음에만 묻어 두면 되는 것이고 그 정도 분별은 있었다.게다가 지금의 허종혁은 그녀에게 아직 쓸모가 있었다. 당장 내칠 이유도 없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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