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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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윤제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위험하든 말든, 나랑 상관없어. 앞으로 그 사람 일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고르려 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고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결국 다신 눈을 뜬 윤제는 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예진은 나정과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고, 민혁이 뒤에서 카트를 밀고 있었다.벨소리가 울리면서, 화면에 뜬 이름은 ‘윤제’였다.예진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윤제는 전화가 끊긴 걸 확인하자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같이 사는 것도 모자라, 일까지 같이 한다고?’그 생각이 스치자 속이 괜히 더 뒤틀렸다.마침 그때, 도순희에게서 전화가 왔다.마음은 이미 피곤했지만, 윤제는 전화를 받았다.도순희의 목소리는 거칠고 꽉 잠겨 있었다.[아들아, 엄마가 지금 온몸이 으슬으슬하고 입 안에 물집까지 다 잡혔어. 병원 좀 데려가 줄 수 있니?]“나 지금 바빠요. 그건... 예...”입에서 무심코 ‘예진’이라는 이름이 나올 뻔했다.예전엔 이런 집안일이며 이안이 아플 때나 도순희가 편찮을 때나 전부 예진이 맡아서 챙겼다.윤제는 단 한 번도 직접 신경 쓸 일이 없었다.하지만 이제는 이미 예진과 이혼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으며 씁쓸함이 밀려왔다.그는 이를 악물었다.“잠시 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일단 기다리세요. 제가 조치할게요.”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몇 번이고 연락처 목록을 뒤적이다, 윤제는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게 적다는 걸 깨달았다.결국 그는 아린의 번호를 눌렀다.요즘 아린에게 너무 신세를 지고 있어 미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궁지에 몰린 윤제는 결국 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린은 사무실에서 디자인 시안을 그리고 있었다.하품이 쏟아졌다.전날 밤, 도순희와 이안 때문에 시달린 탓에 오늘 하루 종일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윤제에게서 전화가 오자 그녀는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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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아린은 생각했다.‘그 늙은이 원래도 괜히 호들갑 떠는 편인데...’‘이번엔 화가 잔뜩 올라서 몸에 탈이 난 거겠지?’집으로 가는 길, 허름한 한약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아린은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웠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약사가 반갑게 맞았다.“어떤 걸 찾으세요?”“몸이 좀 편해지고, 잠도 잘 올 수 있게 하는 약 있어요?”한약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몸이 불편하신 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아세요?”“아마도 열이 올라서 그럴 거예요. 요즘 속 끓이는 일이 많았거든요.”한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열을 내려주는 약하고, 숙면을 돕는 약을 같이 드릴게요. 최소 3개월 복용하시고, 그동안 다른 증상이 생기면 꼭 병원에 가 보셔야 합니다.”아린이 눈살을 찌푸렸다.“3개월이나 먹어야 돼요?”“네, 한 달에 한 주기이니까요 세 주기는 드셔야죠.”‘3개월이라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시달리게 될지 뻔한데.’도순희가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아린은 이미 수년간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무릎이 살짝 까져도 마치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요란을 떨었으니 말 다 했다.그런데 3개월 동안 약을 먹게 하면, 사람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예전엔 예진이 곁에서 도순희를 달래줬지만, 이제 그런 사람은 없다.‘나더러 그 늙은이 달래가며 놀아주라고? 웃기는 소리.’아린은 고개를 저었다.“효과 빠른 약은 없나요?”한약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효과가 빠른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한약은 기본적으로 서서히 조절하는 거라... 빠른 효과를 원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부작용이 있어도 상관없어요. 잠만 잘 자고, 몸만 좀 편해지면 돼요.”한약사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아린이 바로 돈을 건네자 곧장 뒤로 들어가 약을 짓기 시작했다.20분쯤 뒤, 아린은 약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예상대로 문을 열자마자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순희는 거실 소파에 반쯤 기대 앉아 머리를 한 손으로 짚은 채, 끊임없이 앓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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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아린은 그제야 숨을 돌렸다.‘이 약이 제법 효과가 있네.’ ‘앞으로 이 늙은이가 또 성질 부리면 그냥 이 약 먹이면 돼.’그녀는 머릿속으로 이미 계산이 섰다. 며칠 안에 시간이 나면, 한약방에 들러서 몇 첩 더 지어야겠다고.아린은 예전에 예진이 도순희를 돌보던 모습을 떠올렸다.몇 년 전, 도순희가 맹장 수술로 입원했을 때였다.그렇게 큰 수술도 아니었는데, 예진은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옆을 지켰다.집안 형편이 간병인을 쓰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지만, 도순희는 괜히 ‘아들 등골 빼먹는 며느리’ 소리를 꺼내며, 아예 예진이 직접 시중들게 만들었다.덕분에 예진은 고생을 톡톡히 했다.아린은 또 이안이 밤에 악몽을 꾸다 깨어서 예진에게 전화를 걸던 때를 기억했다.예진은 새벽 내내 전화기 너머로 동화를 읽어줬다.그땐, 비록 라이벌이었지만 ‘참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고예진도 참 고생하는 스타일이야. 그 늙은이나 저 꼬맹이나 뭐가 그렇게 어려워.’‘늙은이한테는 약 주고, 꼬맹이한테는 과자 쥐여주면...’‘그쪽은 그쪽대로 만족하고, 나도 나대로 편하고.’아린이 혼자 흐뭇해하던 그때, 회의를 마친 윤제가 돌아왔다.아린은 잽싸게 순희 이모의 안방으로 들어가, 마치 머리를 주무르면서 달래주는 척했다.안방 문을 연 윤제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어머니...”말을 잇기 전에 아린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는 시늉을 했다.윤제는 입을 다물고 문가에 서서 기다렸다.잠시 후, 아린이 밖으로 나왔다.그런데 발을 내딛자마자 휘청하며 거의 넘어질 뻔했다.윤제가 잽싸게 아린을 부축했다.“왜 그래? 어디 안 좋아?”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입술에 바른 립스틱을 닦아내고, 파우더로 일부러 입가를 희끗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눈에 봐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어젯밤에 이안이가 악몽 꿔서 제대로 못 잤어. 밤새 이야기해 주느라... 괜찮아.”그 말을 들은 윤제의 마음에 바로 미안함이 스쳤다.어젯밤에 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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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윤제가 건넨 물을 아린이 받아 들었다.그러다 자연스럽게 남자의 손을 잡았다.윤제는 피하지 않고, 조용히 아린을 바라봤다.“오빠, 나 오빠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 알아. 몸도 아직 다 안 나았는데 일까지 해야 하고, 예진 씨랑도 이혼해서... 어른도, 아이도 챙길 사람이 없잖아. 나도 오빠 짐 덜어주고 싶어.”아린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춘 듯한 표정을 지었다.윤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사람 마음이란 참 이상하네.’‘예전 예진이랑 같이 살 때는 아린이 뭐든 다 좋아 보였어.’‘언젠가 예진과 헤어지면, 주저 없이 아린과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막상 지금 정말 이혼하고 나니, 아린을 봐도 그런 마음이 안 들어.’‘오히려 요 며칠은 계속 예진 생각만 하고 있으니...’아린은 윤제의 망설임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섰다.“오빠, 나한테 다시 한번 기회를 줘. 이렇게 애매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윤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아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예전처럼 약한 목소리를 꺼냈다.“혹시... 내 몸이 아직 다 안 나아서 그래?”윤제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이상한 생각하지 마.”그 순간, 아린은 아예 윤제를 끌어안았다.“그럼 왜 나랑 같이 있다는 걸 인정 안 해? 예전엔 고예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미 이혼했잖아. 그런데도 우리... 안 되는 거야?”“나...”윤제는 말끝을 흐렸다. 정작 자신도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알 수 없었다.아린이 그의 품에서 다시 말했다.“오빠, 생각할 시간은 줄게.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 응?”그녀는 더 힘을 주어 그를 끌어안았다.그리고 그 품 안에서 서러운 눈물을 떨궜다.“내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오빠랑 하루라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그 고백에 윤제의 가슴이 순간 움찔했다.결국 손을 들어 아린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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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예진이 이렇게까지 받아칠 줄은 민혁도 예상 못 했다.민혁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뭔가 깨달은 듯 벌떡 일어섰다.“예진 씨, 전... 그런 식으로 냉랭하게 대하려던 게 아니에요. 그냥...”그냥... 어젯밤 예진이 했던 말 때문에 화가 난 걸 어떤 입장으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었다.민혁은 분명 예진이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정확히 말하면, 듣기 싫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예진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소유욕’ 탓이었다.그리고 모든 소유욕에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그 명분이 없으면, 결국 남는 건 ‘냉대’뿐이었다.“그냥... 뭐요?”예진의 시선이 정면으로 꽂히자, 민혁은 고개를 숙였다.‘그걸 어떻게 말해... 질투가 났다고?’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예진은 더 캐묻지 않았다.민혁이 상사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저도 알아요. 가끔 제가 좀 서툴고, 완벽한 비서는 아니란 거... 근데 제가 부족한 게 있으면 직접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표정이나 태도로 추측하게 만들면... 전 정말 모르겠거든요.”말을 마친 예진은 외투를 걸치고 현관으로 향했다.민혁은 시계를 흘끗 봤다. 아직 저녁 여섯 시 조금 넘었지만, 창밖은 벌써 어두웠다.“어디 가요? 제가 같이 갈게요.”예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나정이 방문을 두드렸다.문을 열자 나정이 문앞에 서 있었다.“두 분이 나가려는 거예요? 전 방해한 거 아니죠?”예진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무슨 일 있어요?”나정은 민혁 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모레 재판이잖아요. 저랑 엄마는 경험이 전혀 없어서... 변호사님이 시간 되시면, 주의할 점 좀 알려주시면 좋겠어요.”예진은 시선을 민혁에게 옮겼다.“서 변호사님 찾는 거네요. 시간 되세요?”민혁은 예진에게 ‘같이 가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꺼내기엔 너무 뜬금없어 보였다.그때 예진이 먼저 말했다.“전 은주 좀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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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예진은 그제야 눈치챘다. 젊은 경찰관이 바로 예영호라는 걸.‘은주랑 영호 씨가? 지하 소믈리에 룸에서? 게다가 와인 랙까지 쓰러져 있었고?’궁금증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예진이 더 물어보려 했지만 바텐더도 아는 게 거기까지였다.바텐더는 단지 은주와 영호가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갔다는 것과 영호가 머리에 피를 흘렸다는 것, 그리고 그 후로 은주를 보지 못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바텐더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예진은 이 일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그는 급히 밖으로 나가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번엔 다행히 전화가 연결됐다.[예진아, 오늘 폰을 무음으로 해 놨다가 이제 봤어. 무슨 전화를 이렇게 많이 했어?]은주의 목소리를 듣자, 예진은 비로소 긴장이 좀 가라앉았다.곧장 다그치듯 물었다.“지금 어디야? 우리 꼭 만나서, 너랑 영호 씨 얘기 좀 해야겠어.”그 말을 들은 은주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묻어났다.[아이구, 이거 쑥스럽네! 너 벌써 다 알았구나?]예진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조급해졌다.20분 후, 둘은 약속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예진은 은주에게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막상 만나니 말이 잘 안 나왔다.그런데 성격 급한 은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나 결심했어. 영호 씨한테 대시할 거야! 사실 오늘 하루 종일 지구대 앞에서 기다렸거든. 너는 모를 거야. 영호 씨가 얼마나 바쁜데. 근데 바쁜 게 좋아. 그런 남자는 밖에서 헛짓할 시간도 없잖아. 안전하지!”은주의 들뜬 표정을 보며, 예진은 조금 놀랐다.예진이 기억하기로... 지난번 다 같이 만났을 때만 해도 은주는 영호를 보고 눈을 부라렸었다.‘불과 며칠 전만 해도 영호 씨를 싫어하더니, 어떻게 이렇게 달라진 거지?’“무슨 일이 있었어? 전에는 보기만 해도 싫다더니,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거야?”예진의 물음에, 은주의 눈빛이 반짝였다.“어제 영호 씨가 나 구해줬어. 날 구하려다가 본인이 다쳤다니까.”그제서야 은주는, 어젯밤 지하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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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은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영호 씨만 모르면 되는 거 아냐?”“말이 쉽지. 나중에 정말 사귀게 되면, 그걸 평생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은주는 지금 사랑에 취해,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다.“걱정 마. 일단 사귀고 나서 생각하자고. 나중 일은 나중에 알아서 풀리겠지. 그리고 후원 좀 했다고 그걸로 마음 상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무 일도 아닐 걸?”예진은 ‘지금 이 상태로는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겠네’ 싶었다.영호는 분명 괜찮은 사람이었고, 은주랑도 잘 어울렸다.그래서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다만 예진의 마음속엔 한 가지 걱정이 남았다.‘연애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능력이 있으면...’‘남자가 괜히 위축되고 예민해질 수 있단 말이야.’ ‘그게 결국 둘 사이의 균열로 이어질 수도 있고...’하지만, 예진은 곧 생각을 고쳤다.‘아니야, 영호 씨는 그런 타입이 아니야.’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은주는 곧장 예진에게 달려들 듯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영호 씨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네가 아이디어 좀 줘봐.”하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예진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윤제였다.예진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이혼했다고 해서 완전히 남처럼 지낼 필요는 없잖아.’그 시각, 윤제는 위가 묵직하게 아픈 걸 느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아린이 던진 말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마음을 어지럽혔다.뒤척이던 그는 무심결에 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솔직히, 예진이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연결음이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제는 그 순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입을 열었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다물었다.예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윤제는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당신이랑 한번 만나고 싶어.]예진은 입술을 꾹 눌렀다.“할 얘기 있으면 전화로 해.”그 말에 윤제는, 임건우가 했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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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예진은 은주가 걱정이 앞서서 그러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 마음 약해진 거 아니야. 다만... 이안이 아직은 어린애잖아. 내가 양육권은 없지만, 얘가 좀 배은망덕한 구석이 있긴 해도...”예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이렇게 된 데는 내 책임도 있어.”그때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도순희가 이안을 키우겠다고 고집했을 때,‘그때 내가 좀 더 강하게 말렸더라면...’‘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더라면...’아마 이안은 지금처럼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유치원에서 마주친 이안의 표정과 눈빛은, 윤제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아이란 결국 하얀 도화지다.어른이 어떤 색으로, 어떤 모양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완성된다.도순희가 윤제를 그렇게 키웠다면, 이안 역시 또 다른 윤제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제 와서 탓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그냥... 이안이 날 속상하게 해도, 내가 엄마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 정도는 윤제 씨한테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결국 이 모든 건 이안을 위한 거였다.어른들의 문제는 아이와는 별개다.하지만, 이안이 있는 이상 예진과 윤제가 완전히 끊어질 수는 없었다.평소라면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나는 건 늘 윤제였다.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빨랐다.전화를 끊고 카페에 도착하기까지,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예진은 윤제가 들어오는 걸 보자 은주에게 말했다.“윤제 씨하고 옆자리에서 얘기 좀 할게. 너는 여기서 기다려.”은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이건 민혁 오빠한테 바로 알려야지. 위기감 좀 느껴야 돼.’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예진과 윤제가 자리를 옮기자마자, 은주는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을 몰래 찍었다.그리고 곧장 민혁에게 사진을 보냈다.아무것도 모르는 예진은 윤제를 바라봤다. 확실히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이윽고,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윤제가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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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어쨌든 윤제는 예진과 다시 얽히고 싶었다. 예전처럼 아무 상관도 없는 남남으로 지내는 건 원치 않았다.하지만 예진의 다음 한마디가 그의 마지막 기대를 산산이 부쉈다.“이안은 사실 나를 엄마로서 사랑하지 않아. 이건... 당신도 그동안 다 보고 있었지?”윤제는 고개를 살짝 떨궜다.아이인 이안이 제 엄마를 은근히 괴롭혀 왔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윤제는 늘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그래도... 어쨌든 이안은 내가 낳은 아이야. 앞으로 이 아이와 아무 인연이 없게 되더라도 나는 진심으로 이안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래.”윤제의 미간이 좁혀졌다.“그게 무슨 뜻이야?”“뜻은 간단해. 지난번 유치원에서 당신이 봤잖아. 이안이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이미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그게 올바른 가치관이라고 생각해? 아직 어리니까 바로잡을 기회가 있어. 커서 후회하지 말고.”윤제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예진이 말을 이었다.“앞으로 당신이 류아린이랑 다시 가정을 꾸리든, 다른 사람이랑 재혼하든, 아니면 혼자 살든 상관없어. 하지만 한 가지... 이안은 도 여사님 밑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해줬으면 해.”목소리는 단호했다.“도 여사님이 우리 회사에서 한 짓, 당신도 봤잖아. 세대 차이가 분명히 있어.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게, 정말 이안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윤제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커피잔만 천천히 쓰다듬었다.예진은 멈추지 않았다.“이안은 내가 다쳤을 때 외면했고, 심지어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어. 당신도 자신 있어? 나중에 이 아이가 당신한테는 그렇게 안 할 거라고?”윤제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최근에 한 번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예진이 있을 땐 그래도 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예진이 떠난 뒤라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그렇게 생각하며 윤제는 슬쩍 예진을 바라봤다.“당신이 이런 얘길 하는 걸 보니, 그래도 아이를 생각하는 거잖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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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그래. 안 돼. 이안이 나처럼 나를 사랑한다면, 난 그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어. 심지어 내 평생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도...”“하지만... 이안은 그런 아이가 아니야. 그 애는 내 앞에서 대놓고, 고모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애야.”“그런 아이를 위해 내가 왜 내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해?”윤제는 고개를 저었다.“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 나랑 계속 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당신이 예전에 나 많이 사랑했잖아.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는 게... 그게 행복 아닌가?”예진은 웃음 같지도 않은 웃음을 흘렸다.그리고 눈앞의 윤제를 바라봤다.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이건 사랑에서 오는 연민이 아니야. 그냥... 안타까움이지.’나이도 적지 않은 사람인데, 사랑이 뭔지 구분조차 못 하는 게 안쓰러웠다.“그 말도 맞아. 내가 당신을 사랑했을 땐,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하든 다 달게 받았어. 하지만 지금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런데도 계속 같이 사는 게... 그게 오히려 고통이지 않겠어?”예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 차분함이 오히려 윤제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원망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사실 처음에 이혼 결심했을 땐, 나도 당신이 너무 미웠어. 정말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팠고, 내가 바친 시간과 마음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졌어. 하지만...”예진은 아주 옅게 미소 지었다.“새로운 삶을 시작한 순간부터, 당신을 향한 미움마저 사라졌어. 생각해 보면, 내가 당신을 미워할 자격도 없더라.”“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단지 그 둘 중 ‘사랑하지 않음’을 선택했을 뿐이고.”“나는 그 선택이 바뀌길 기다리며 버텼던 거니까. 아마도 당신이 날 선택하지 않은 게... 그게 너무 분해서 그랬던 거겠지.’윤제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그런 게 아니야... 나는...”예진이 말을 잘랐다.“이제는 알겠어. 당신에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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