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211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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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1화

예진은 잽싸게 손을 뺐다.그 순간, 윤제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나 알아. 그동안 당신은 늘 아린에 신경 써 있다는 거. 나랑 아린 사이의 관계가 당신한테 얼마나 큰 불안을 줬는지... 예전엔 제대로 알지 못했어.”“하지만 이제 알겠어. 당신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내가 아린이하고 관계를 완전히 끊을게. 제발, 돌아와 줄래?”예진은 그런 윤제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불쌍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정작 불쌍한 건 부윤제와 류아린이지.’아린은 윤제 곁에 서기 위해 체면도 도리도 다 내던졌다.윤제는 사랑이 뭔지 분간도 못 하면서, 한 번은 놓쳤고 또다시 다른 하나도 놓치고 있었다.예진의 입가에 짧은 웃음이 스쳤다. 이 더러운 관계 속에서 자신이 그래도 제때 빠져나온 사람이라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우린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오늘 만남에 응한 건 마지막이야. 앞으로 우린 선만 지키면서... 그냥 친구로 지내자.”말을 마친 예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자 윤제도 덩달아 일어나서 예진의 팔을 붙잡았다.멀리서 지켜보던 은주의 얼굴에 긴장감이 번졌다.‘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바로 달려가야 돼.’미래의 올케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은주는 이미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가지 마. 제발 가지 말라고. 당신이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무릎이라도 꿇을게. 진짜 할 수 있어.”예진이 아는 윤제의 모습 중, 가장 비굴한 목소리였다.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로 애원하는 건 처음이었다.사실 예진은 예전 싸움 때마다 늘 속으로 바랐다.‘한 번만이라도 날 달래줬으면...’ ‘당신 마음속에서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으면...’‘그랬다면 난 주저 없이 당신 품으로 달려갔을 텐데.’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제는 뒤늦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예진은 팔을 강하게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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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은주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내 말은, 부윤제보다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는 거지. 게다가 인연이란 게 참 묘하잖아. 넌 이번에 그냥 한 번 크게 걸린 거야.”“보통 이런 인연의 업을 다 치르고 나면, 하늘이 꼭 달콤한 사랑으로 보상해 주더라니까.”예진은 들을수록 미심쩍었다.“잠깐... 지금 나한테 남자 소개해 주려는 거 아냐?”은주는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아하하... 그렇게 티가 났어?”예진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괜한 짓 하지 마. 지금은 그럴 생각 없어. 나는 오직 공부에만 집중할 거야. 변호사 자격증 빨리 따야지. 연애니 뭐니 하는 건, 내 자리 제대로 잡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그 말을 하면서 예진은 뼈저리게 느꼈다.‘여자가 결혼해서 행복하려면, 먼저 남자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갖춰야 해.’‘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잃으면 안 돼.’예진의 단호한 말에 은주는 혀를 쏙 내밀었다. 순간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휴... 괜히 민혁 오빠 얘기했다간, 진짜 내가 죽겠는데.’차는 곧 예진의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다.예진은 내리기 전, 어제 얻어먹은 밥값을 은주에게 송금했다.그리고 문을 열며 덧붙였다.“근데 우리 은주, 안목은 괜찮네. 영호 씨 진짜 괜찮아. 잘 잡아.”은주의 눈이 단숨에 반짝였다.“걱정 마! 이번엔 내가 꼭 잡을 거야!”예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은주는 못 참고 핸드폰을 꺼냈다.은주: [어디야?]영호: [지구대, 당직 중.]은주는 더이상 답장을 하지도 않고 곧장 시동을 걸었다.그리고 지구대를 향해 엑셀을 밟았다....한편, 예진은 아무것도 모른 채 현관 문을 열었다.들어설 때, 공기부터 심상치 않았다.‘뭐지, 왜 이렇게 집안 분위기가 무겁지?’그녀가 고개를 돌리니, 민혁이 팔짱을 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바닥에 떨어질 듯 고개가 축 늘어져 있었고, 눈빛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예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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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예진은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좁혔다.민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돌리고 억지스러운 핑계를 꺼냈다.“제가 예진 씨의 변호사잖아요. 얼마나 애써서 이혼을 성사시킨 건데, 예진 씨가 지금 전 남편이랑 다시 잘 지낸다면... 그건 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지요.”예진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뭐야, 이 변명은... 들으면 들을수록 어색한데...’하지만 금세 요점을 짚어냈다.“누가 제가 전남편이랑 다시 만난다 했어요? 서 대표님, 지금 제 말을 왜곡하시는 거예요?”민혁은 다시 예진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럼, 방금 전에 전남편을 왜 만난 거죠?”“그건...!”예진은 본능적으로 설명하려다,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잠깐만요. 제가 어디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게 왜 서 대표님 소관이에요?”“그게...!”민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은 확실히 선을 넘어선 간섭이었다.‘이럴 때 확실하게 말해야 하는데... 왜 입이 떨어지질 않지.’속으로 자신을 질타하던 순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은주의 메시지였다.[오빠, 예진이가 오늘 나한테 지금은 연애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메시지를 보는 순간, 민혁은 얼어붙었다.‘뭐야... 은주가 이걸 왜 나한테 보내?’ ‘설마, 은주가 내가 예진한테 마음이 있다는 티를 냈나?‘아니면... 예진이 눈치는 챘지만, 비서라는 내 입장을 고려해서 직접 거절 못 하고 은주한테 빗대어 말한 건가?’‘그래서 은주를 통해 내게 전하라고 한 건가?’민혁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얼굴이 점점 굳어졌고, 막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도 꿀꺽 삼켜졌다.예진은 그런 민혁의 복잡한 반응을 보며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민혁은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됐어요. 그냥... 제가 아무 말도 안 한 걸로 해요.”예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문이 닫히고,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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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오해하셨어요. 저 아직은 영호 씨 여자친구 아니에요. 근데 곧 될 거 같긴 해요. 제가 지금 열심히 노력 중이거든요.”은주의 대답에 두 경찰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마치 큰 사건이라도 접수한 듯한 표정이었다.“야, 영호야. 너 복 터졌다!”“이런 미인을 기다리게 하면 안 돼! 우리 직업은 연애하기도 쉽지 않잖아. 기회가 있을 때 꼭 붙들어야 돼!”두 사람은 이번엔 은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영호 이 녀석 좀 둔한 구석 있긴 한데, 사람은 진짜 괜찮아요. 은주 씨 눈 정말 좋네요.”“응원할게요. 둘이 잘 어울려요!”은주는 칭찬 세례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 얼굴을 활짝 폈다.반면 영호는 난생처음 이런 분위기에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아, 진짜... 창피해서 못 버티겠다...’귀까지 빨개진 영호의 모습을 보고 은주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왜 그래요? 설마 부끄러운 거예요? 예영호 경찰관님, 경찰이 무슨 일 못 겪어봤어요? 이런 거 가지고 얼굴까지 빨개지면 어떡해요?”은주가 장난을 칠수록, 영호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뒤에서 동료들까지 웃음소리를 보태니, 영호는 결국 견디지 못했다.그는 은주의 손목을 붙잡았다.“밖으로 나와요.”“에, 어디 가는데요!”동료 둘은 남은 야식을 집어먹으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얼른 사귀어버려라’ 하는 표정이었다.영호는 은주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이미 대부분 퇴근한 시간이라 불 꺼진 복도는 적막했고, 희미한 형광등 불빛만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은주는 계단 한 칸 위에 서서 영호와 시선을 나란히 맞췄다.“왜 갑자기 끌고 나와요? 안에서 하면 안 되는 말이라도 있어요?”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아니면... 벌써 대답해줄 생각인 거예요?”영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은주 씨, 장난 그만해요. 여긴 제 직장이에요. 근무 중인 데서 이러면 나 진짜 곤란해져요.”은주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했다.“누가 장난친대요? 나 진심인데요? 설마 내가 여기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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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대체로 영호는 은주가 진심이라는 걸 믿지 못하는 듯했다.그 순간 은주의 가슴속에도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왜 자꾸 내가 장난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영호 씨 눈에는 내가 그렇게 가볍고, 진지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여요? 난...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데. 나한텐 사랑할 자격도 없는 거예요?”“그런 뜻이 아니에요.”영호는 그저 자신과 은주가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은주는 해가 지면 빛나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자신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드는 단조롭지만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다.‘왜 하필 나한테... 왜 지금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 거지...’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영호도 은주를 향해 끌리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은주가 다시 그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그럼 영호 씨는 무슨 뜻인데요?”영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문이 막혔다.그 우물쭈물한 모습에 은주는 한숨을 내쉬었다.‘봐, 본인도 제대로 말 못하잖아.’은주는 답답한 눈빛을 남기고, 영호 곁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하지만 팔이 스르르 잡히며 발걸음이 멈췄다.두 사람은 등을 맞댄 채 서 있었다.“은주 씨.”영호의 목소리가 낮고 진지했다.“그냥... 확실한 답을 듣고 싶어요. 정말 저랑 해보자는 거예요?”은주는 곧바로 손목을 확 뿌리쳤다.“내가 무슨 마트에 진열된 물건이에요? ‘한번 써보자’ 이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난 진짜로 영호 씨가 좋아서 사람이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먼저 다가가는 거예요.”‘도대체 뭐가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까지 좋은지... 설명은 못 하겠어.’‘원래 감정이란 게 그렇잖아. 때론 본인조차도 헷갈리고.’은주의 말이 끝나자, 영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알겠어요. 은주 씨,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요. 내일 제가 휴무니까... 내일 밤에 대답해줄게요.”“내일 밤?”은주는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너무 급작스러운 말에 오히려 심장이 철렁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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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예진이 아직 대답하기도 전에 저쪽에서 은주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내가 보낸 메시지 다 봤지? 어떡해? 오늘 저녁에 나 나가야 돼, 말아야 돼?][만약에 차이면 어떡해, 나 아직 마음 준비도 안 됐는데...][이게 무슨 망신이냐고. 나 서은주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굴 따라다닌 건데, 시작부터 거절당하는 거 아냐?]예진은 머릿속으로 지금 친구의 모습을 그려졌다. 지금의 은주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머리는 분명 까치집이 되어 헝클어져 있을 거고,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 못해 눈이 충혈됐겠지.‘이대로 두면 진짜 신경쇠약 오는 거 아니야?’예진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알았어, 알았어. 일단 좀 진정해, 은주 아가씨. 너 이제 갓 대학 졸업한 애도 아니고, 밤새워서 이렇게 흥분하면 심장이 먼저 나가 떨어져.”하지만 은주는 전혀 진정할 기미가 없었다.[나 미치겠어. 예진아, 제발 방법 좀 알려줘!]예진은 한숨을 쉬며 세면대로 향했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너 지금 영호 씨한테 고백하겠다고 덤벼든 거잖아. 그럼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건 애초에 감수해야지. 결국 둘 중 하나야.”“첫째,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앞으로 얼굴도 못 보고 그냥 남남 되는 거.”“둘째, 네 마음이 그 정도로 크니까 거절당해도 상관없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거. 결국 어느 쪽이든 너 손해는 없어.”잠시 물기를 닦으며 덧붙였다.“사랑이라는 건 원래 즐겁자고 하는 거야. 왜 벌써부터 전쟁 치르는 사람처럼 초조한 건데?”예진의 말에도 은주의 속은 여전히 요동쳤다.[그치만 난...]예진이 단호하게 잘랐다.“알아, 알아. 우리 은주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누굴 쫓아가잖아. 평생 공주처럼 대접만 받다가, 이제 와서 처음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겁나겠지.”“근데 말이야, 고백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미 각오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백 퍼센트 성공 보장된 것도 아닌데. 설마 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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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은주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더 방해할까 봐, 눈치 있게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순간 머릿속이 환하게 맑아졌다.‘민혁 오빠도 예진이를 몇 년이나 좋아하면서도 결국 용기를 냈는데...’‘나는 뭐가 무서워서 이렇게 질질 끌고 있었던 거야?’‘그것도 고작 하루 못 자고 끙끙대면서?’은주는 고개를 홱 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단 하나였다.잘 자고, 잘 꾸미고, 저녁 약속에 당당하게 나가는 것.영호가 혹여 거절한다 해도, 다시 도전하면 될 일이다.예진이 말했듯이 그게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한편, 예진은 그런 은주의 다짐 따위는 전혀 알 리 없었다. 방으로 도망쳐 들어간 뒤에도 한참이나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그리고 겨우 옷을 갈아입고 화장까지 마치고 나와 보니, 식탁 위엔 따끈한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민혁이 막 프라이팬에서 달걀을 옮겨 담고 있었다.예진은 순간 민망해서 발걸음을 멈췄다.“혹시... 이연 여사님이랑 나정 씨 것도 챙겨드려야 하지 않아요?”민혁은 자리에 앉으며 달걀을 반으로 자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이미 갖다 드렸어요.”솔직히 말해, 보스가 직접 차린 아침을 먹는 건 예진에게도 조금은 어색한 일이었다.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내가 이 사람의 비서이지, 요리사도 아니고. 게다가 장 본 것도 내 카드였잖아.’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하니, 어느새 수저를 드는 손이 한결 가벼워졌다.내일은 드디어 이연과 나정의 재판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오늘 민혁은 해외 부동산 중개사를 만나 송호국의 재산 해외 이전 정황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었다.예진은 당연히 자신이 동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민혁의 생각은 달랐다.“오늘 한아름 변호사 사건이 재판 들어가잖아요. 예진 씨가 법정에 가서 직접 보고 오세요.”예진은 의아해 고개를 들었다.“같이 안 가도 돼요? 저도 같이 그 해외 부동산 중개사를 만나는 게 중요한 일 아닌가요?”민혁은 고개를 저었다.“그 중개사 만나는 건 전 혼자 가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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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한편, 윤제가 잠에서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도순희와 이안이 눈에 들어왔다.식탁 위에는 한눈에 봐도 정성껏 준비한 아침상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에서는 아린이 분주하게 오가며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었다.이 많은 음식을 다 아린이 직접 만든 게 분명했다.윤제가 내려오자 도순희가 반갑게 불렀다.“얼른 앉아. 아린이가 새벽같이 일어나 이렇게 푸짐하게 차렸어. 참, 우리 아린이 고생 많았다.”아린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모, 무슨 고생이에요. 다 가족인데요. 다들 맛있게 드시면 그게 제일 기쁘죠.”말을 마친 아린은 도순희에게 우유를 따라주고, 이안에게는 꿀물을 건넸다.마지막으로 윤제 앞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려놓았다.도순희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봐라, 우리 아린이. 식구들 입맛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나중에 누가 데려가면 그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야.”아린은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옆머리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이모, 그런 말씀 마세요...”도순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어머, 이제는 부끄럽기까지?”아린은 입가에 수줍은 미소를 띠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아직 냄비에 끓이는 국이 있어요. 퍼 올게요.”아린이 부엌으로 들어가자, 도순희는 곧바로 윤제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너 아린이 좀 봐라. 이게 바로 집안 살림 다 맡아줄 현모양처야. 네가 복에 겨워서 모르고 있는 거지.”윤제는 대꾸하지 않았다. 며칠째 잠도 잘 못 자고 속도 상해,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해 있었다.도순희는 물러서지 않았다.“내 눈엔 너희 둘 아직 마음 남아 있는 게 뻔해. 어차피 지금 예진이 그 계집애랑은 깨끗하게 갈라섰잖아. 괜히 빙빙 돌지 말고 아린이랑 다시 시작해. 그게 답이야.”윤제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순희는 곧장 이안을 불렀다.“고모가 네 엄마 되면 좋겠지?”이안의 눈이 번쩍 빛나더니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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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어머니, 아린이랑 결혼할게요. 아린아, 날짜 잡아서 웨딩드레스 한번 보러 가자.”그 말을 남기고 윤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윤제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거실에 남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이안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린에게 달려들어 꼭 끌어안았고, 도순희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손뼉을 쳤다.“와아! 아빠가 드디어 고모랑 결혼한대! 이제 고모가 진짜 이안이 엄마다!”도순희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내 아들놈, 이제야 정신이 들었구나! 진작에 그 고예진은 내던졌어야지. 아린아, 이제야 우리 집 진짜 식구가 되는 거야!”아린은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이모, 늘 저랑 이안을 믿어 주셔서 감사해요.”도순희는 곧장 혀를 차며 손사래를 쳤다.“아직도 이모라고 불러? 그럼 내가 서운하지.”아린은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였다.“어머니.”“그래, 우리 착한 며느리!” 도순희의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다.“너희 결혼식은 꼭 성대하게 치를 거다. 모두가 알게 될 거야. 고예진은 복도 없는 여자라는 걸 말이야. 우리 아린이야말로 진짜 이 집안의 며느리인 걸!”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을 품에 꼭 안았다.‘드디어... 부윤제의 아내 자리, 내가 끝내 손에 넣었어.’...예진이 법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재판이 시작되기 전이었다.아름은 미리 파일 하나를 예진에게 건네주었다. 사건의 개요가 담긴 자료였다.피고인은 스무 살 대학생 정하늘. 어느 날 밤, 하늘은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에 인근 수풀에서 낯선 남자 김모진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하늘은 그가 범행을 마치고 바지를 추스르는 순간, 옆에 있던 돌을 집어 들어 그의 민감한 부위를 내려쳤다. 그 결과 김모진은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어 평생 불임 상태로 남게 되었다.사건 이후, 김모진의 가족은 오히려 하늘을 고소했다. ‘고의적인 상해’라는 이유였다.이번 재판에서 아름은 하늘 측을 변호하고 있었다.아름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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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김모진 측 변호인은 주성민이었다.예진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주성민을 본 건 대학 졸업식 때였다.성민은 예진과 같은 반 동기였다. 대학 시절, 늘 농구공을 들고 다니던 밝고 활달한 청년.‘그때만 해도 웃는 얼굴이 참 인상적이었는데...’하지만 오늘 마주한 성민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급 맞춤 정장을 입고, 매끈하게 정돈된 머리카락, 그리고 예전의 해맑음 대신 성숙하고 냉철한 기운이 감돌았다.예진은 잠시 옛 기억에 젖었다.성민이 예진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학부 시절 전교에 다 퍼져 있었다. 졸업식 날, 많은 동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성민은 대담하게 공개 고백을 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고, 예진은 곧바로 윤제와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다. 유학을 갔다던 성민이, 이렇게 법정에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범죄 피고인의 변호사로.‘정말,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곧 재판장이 개정을 선언했고, 예진은 펜과 노트를 손에 쥐며 호흡을 고르듯 자리에 앉았다.먼저 원고 측 변호인 주성민이 일어나 발언을 시작했다.법정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에게 쏠렸고, 성민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또렷하게 입을 열었다.“저희 의뢰인은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정당방위란 위법한 침해가 ‘현재 진행 중일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여야 합니다. 하지만 피고인의 행위는 성관계가 끝난 이후 발생했습니다.”성민은 서류를 정리하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피고인은 사건 직후 돌을 들어 저희 의뢰인의 주요 부위를 가격했고, 그 결과 평생 회복 불가능한 상해를 입혔습니다.”“이는 명백히 고의적 상해이지, 정당방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은 저희 의뢰인의 치료비 전액과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그는 잠시 멈추고, 방청석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게다가 저희 의뢰인이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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