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191 - Chapter 200

335 Chapters

제191화

정신을 차린 은주는 얼른 영호를 붙잡고 입구 쪽 와인 박스 위에 앉혔다.“술이 문제가 아니에요. 얼른 이리 와봐요. 상처부터 봐야죠.”은주는 조심스럽게 영호의 뒷머리를 살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리자,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가 손에 느껴졌다.“아...!”영호가 숨을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움찔했다. 그제야 자신이 다쳤다는 걸 제대로 자각한 듯한 표정이었다.“이건... 병원에 가야 해요.”영호도 뒤늦게 상처 부위를 더듬으면서 말했다.“괜찮아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에요. 은주 씨가 놀라지 않았으면 다행이죠.”그 말에 은주의 표정이 굳어졌다.‘또 시작이네. 맨날 괜찮대.’‘대체 언제까지 자기 몸에 그렇게 무심할 건데?’한편으로는 자책감이 들었다.‘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 안 다쳤을 텐데...’감정이 뒤엉키자, 은주는 소믈리에 룸의 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여기요! 누구 없어요? 문 좀 열어봐요!”바깥에는 여전히 음악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은주의 외침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영호는 그런 은주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진짜 괜찮아요. 이 정도 상처는 응급처치만 해도 충분해요. 내일 나가서 병원에 가면 돼요.”그렇게 말한 영호는 러닝 셔츠를 벗어서 상처 부위에 누르면서 지혈했다.그 순간, 뭔가 말하려고 고개를 돌렸던 은주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영호의 민소매 아래로 드러난 몸.탄탄한 어깨와 복근 라인.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남자의 몸.은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헐... 이 사람... 이런 몸이었어?’술기운에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또렷했다.옷을 입고 있을 때는 슬림해 보였던 영호의 몸이, 옷을 벗자 잘 발달한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헬스장에서 과하게 벌크업한 몸도 아니고, 그렇다고 빈약하지도 않은 딱 보기 좋은 몸매!‘와. 옷을 입고 있을 땐 몰랐는데, 벗으니까 장난 아닌데?’은주는 괜히 입 안이 바짝 말라서 슬쩍 침을 삼켰다.그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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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은주의 말이 떨어지자, 영호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눈을 깜빡이기만 할 뿐, 아무 반응도 없었다.‘뭐야, 이 반응은... 이 정도면 거의 공포 수준 아니야?’은주는 괜히 민망함을 숨기려고, 더 태연한 척 웃으면서 한 번 더 물었다.“말 안 해요? 영호 씨 눈엔, 나는 어때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영호가 황급히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지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혹시... 제 여자친구가 되는 건 어떠냐는 그런... 뜻이에요?”은주는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말했다.“그럼, 농담 같아요?”그 말을 들은 순간, 영호는 반사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심지어 다친 상처도 잊은 채, 손을 휘저으면서 종종걸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아... 아니! 은주 씨, 그런 농담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그 반응에 은주가 눈썹을 확 찌푸렸다.‘뭐야, 저 반사적인 거절 반응은?’허리에 양 손을 짚은 은주가 바로 따졌다.“그게 무슨 태도예요? 지금 내 말에 그렇게까지 당황하는 거 보니까... 내가 영호 씨한텐 전혀 매력이 없는 사람이란 뜻인가요?”“그냥 가볍게 물어본 건데요? 그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에요?”영호는 그제야 은주가 ‘가볍게’ 물어본 거라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게 아니고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을 뿐이에요. 그리고...”영호가 말끝을 흐렸다.은주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그리고 뭐요? 말 끝까지 해봐요.”영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실... 은주 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 예쁘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친구들한테도 진짜 의리 있잖아요.”“사실 우리가 아직 어색한 사이였을 때도, 저는 은주 씨한테 관심이 많았어요.”그 말에 고개를 살짝 든 은주가,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려 애썼다.“그런데... 그렇게 말랐는데도, 남자하고 싸울 때는 매번 지는 법이 없더라고요.”영호는 그때를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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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그럼 영호 씨는... 어떤 연애를 원해요?”은주의 물음에 영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또박또박 말을 꺼냈다.“저는요, 누군가와 연애를 하려면... 그 사람의 가치관, 성격, 인생 태도 같은 걸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건 하루이틀 만에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훨씬 더 단단하고, 헤어질 확률도 낮다고 생각하거든요.”은주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요. 감정이라는 건... 가볍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마 부모님 영향이 큰 것 같아요.”“우리 부모님은... 속전속결로 결혼했거든요. 결국엔 서로의 인생을 망쳤고, 그 여파가 저한테까지 왔죠.”말을 끝내고 고개를 살짝 숙인 영호의 모습은 늘 곧고 든든하던 평소의 이미지와 달랐다.작은 공간 안, 희미한 조명 아래 선 영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조용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들이댄 건가?’은주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준비도 없이 던진 말, 그게 영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걸.거절당한 입장이 되자 은주의 기분이 상한 건 당연했다.하지만 영호가 방금 했던 말들은 그 상처를 덮고도 남을 만큼 진중하고 진심이었다.잠시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뭔가 결심한 듯한 은주가 그 고요함을 깨고 영호 앞에 서서 고개를 들었다.서로의 시선이 맞닿았다.은주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영호 씨 말... 맞는 것 같아요. 좋은 관계일수록 더 천천히 만들어 가야죠.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그러니까... 영호 씨, 나를 좀 더 알아가 볼래요?”그 말에 영호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지금 은주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건... 은주가 지금까지 보였던 태도였다.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 대해 별 관심 없어 보였던 은주였다.“은주 씨, 감정은... 진심에서 나오는 거예요. 혹시 제가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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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윤제는 여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예진이 이번에도 결국엔 돌아올 거라고.예전처럼, 조금만 달래면 다시 순순히 자기 말에 따를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오늘 경찰서에서 본 예진의 눈빛은 전혀 달랐다.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그제야 윤제는 실감했다.‘이번엔... 정말 끝일지도 몰라.’불안감이 다시 온몸을 휘감았다.심장을 꽉 조이면서, 또다시 속이 꼬이기 시작했다.‘이게... 그냥 졸린 건가? 아니면 아파서 기절하는 건가?’윤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잠이 든 건지, 실신한 건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은 지쳐 있었다....아린은 여전히 ‘완벽한 며느리’ 역할을 이어가고 있었다.낮에 한바탕 소란을 피운 도순희는 밤이 되자, 열이 나면서 정신까지 오락가락했다. 심신이 쇠약해진 탓인지, 침대에 누워서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멜라토닌을 먹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도순희는 눈을 감고서도 계속 훌쩍였고, 중얼중얼 누군가를 탓하는 말도 중단되지 않았다.결국 아린은 약을 바꿨다. 전에 처방받았던 수면제를 먹인 뒤에야 도순희는 깊은 숨을 내쉬면서 잠이 들었다.아린이 ‘한 고비 넘겼다...’ 싶었을 때, 이번엔 이안 쪽에서 문제가 터졌다.덜컥- 방문이 열리더니 이안이 울먹이며 맨발로 뛰어 들어왔다. 슬리퍼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고모... 무서운 꿈 꿨어... 고모가... 고모가 옛날이야기 해주면 안 돼?”화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아린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이안이 더 울면 방금 간신히 잠든 도순희까지 깰 판이었다.“그래, 이안.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고모가 금방 갈게.”이안이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가자, 아린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먹을 꽉 쥐었다. 차분한 얼굴 아래, 식지 않은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미친 거 아냐, 진짜...’‘늙은 것도 챙기기 힘든데... 어린 것까지 이 난리야!’하지만 곧 아린은 다시 숨을 들이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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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이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걸 보자, 아린은 조심스럽게 초콜릿 포장을 벗기고 한 조각을 떼어 이안의 입에 넣어줬다.달콤한 맛이 입 안에 퍼지자, 이안의 얼굴에 곧바로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우리 이안이 참 착해! 간식 먹었으니까 이제 푹 자야 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고모가 나머지도 줄게, 알았지?”이안은 아린의 팔을 껴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모가 날 제일 사랑해. 나도 고모가 좋아!”그 말에 아린은 잠시 웃으면서 이안의 팔을 톡톡 토닥였다.“그래, 그래. 근데 이제 그만 애교부리고 자자. 고모는 내일 출근도 해야 되거든. 이렇게 계속 밤새면... 고모 주름 생겨서 진짜 아줌마 된다?”그 말에 이안은 깔깔 웃더니, 초콜릿을 꿀꺽 삼키고 이불을 덮었다.하지만... 잠잠한 것도 잠시.다시 벌떡 일어나 앉은 이안이 말했다.“고모, 간식 먹었으니까 양치해야 해.”‘진짜 이 자식 머리를 한 대 쥐어박어?’아린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 새벽에 애한테 훈육을 당하고 있어?’그러나 입가엔 여전히 포근한 미소를 띤 채, 아린은 억지로 목소리를 낮췄다.“이안아, 오늘 하루쯤은 괜찮아.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면 돼.”사실 이안도 양치질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단지 예전엔 예진이 매일 밤 전화로 잊지 않고 말했다.“아들, 간식 먹었으면 꼭 양치하고 자야 해!”그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해서 오늘 이안도 그 습관대로 말했던 것뿐이었다.하지만 고모가 ‘오늘은 괜찮다’고 하자, 이안은 마치 비밀스러운 자유를 얻은 듯 더 밝은 표정으로 고모 품에 쏙 안겼다.“고모 최고!”그렇게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린의 팔을 끌어안은 이안의 숨소리가 금세 규칙적으로 변했다.잠든 이안을 보자, 아린의 입가에서 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그 눈빛엔 더 이상 따뜻함도, 온기도 없었다. 대신 싸늘하고 계산적인 냉기가 번졌다.‘그래...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이 짓을 몇 달은 계속해야 돼.’‘지금은 보여줘야 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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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예진이 정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자, 민혁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여전히 분이 안 풀린 채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눈앞의 참치김밥도 도무지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결국 말없이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차에 올라 의뢰인의 집으로 향했다.오늘 찾아갈 사람은 이연과 그녀의 딸 송나정.이연과 나정은 예전에 남편이자 나정의 아버지인 송호국에 의해 강제로 시골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이후 재산 문제 때문에 서울로 다시 돌아왔지만, 수중에 돈이 많지 않아 서울 외곽의 허름한 단독주택을 겨우 구해서 살고 있었다.조수석에 앉은 예진은 창밖을 바라보다 어느새 살짝 졸기 시작했다.그리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던 그때.쿵!갑작스러운 브레이크에 몸이 앞으로 튕겼다.“어...?”놀란 예진이 눈을 떴다.차는 도로 한가운데 멈춰 있었다.“내려요.”민혁이 조용히 말했다.“여기요? 아직 도착도 안 했잖아요?”예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인적 드문 외곽 도로.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민혁은 말없이 예진을 흘겨보면서 말했다.“내리라니까요. 고 비서가 운전대를 잡아요.”“네? 왜요?”보통 이런 외근은 늘 민혁이 운전했다.무엇보다 예진은 목적지도 모른다.민혁은 대답 대신 조수석 문을 열고 예진을 억지로 내리게 했다.“뭐 그렇게 말이 많아요? 내가 로펌 대표인데, 맨날 고 비서의 기사 노릇을 해야 돼요?”예진은 뭔가 억울했지만, 또 틀린 말은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였다.‘하... 뭐, 운전 좀 하면 어때.’‘근데 진짜 왜 저렇게 까칠하냐, 오늘...’예진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주소를 입력했다.민혁은 조수석에 앉아서 눈을 반쯤 감은 채 말이 없었다.예진은 운전하면서 계속 민혁을 힐끔힐끔 쳐다봤다.‘진짜 서민혁, 뭐 때문에 삐진 거야?’‘아니 그냥 말로 해! 말로...’‘...’[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약 20여 분이 지난 뒤, 내비의 안내음이 울렸다.차를 세운 예진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멍해졌다.‘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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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보통의 경우, 유언장이 존재한다면 법원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유산을 분배한다.게다가 송호국은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법적으로 인정된 친자 관계의 혼외자까지 있다.이런 상황이라면,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기운 셈이었다.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오랫동안 나정이 아빠는 저를 시골로 쫓아낸 뒤, 회사는 물론이고 집안 일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죠.”말을 하는 이연의 눈빛이 독기를 뿜으면서 반짝였다.“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 알아요. 그 사람이 몰래 재산을 빼돌렸다는 거...”예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구체적으로 알고 계신 내용이 있으세요?”고개를 끄덕인 이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어디든 새는 구멍은 있는 법이죠. 송호국이 해외에 부동산을 다수 매입했는데, 그 중개인이 우연히도 제 중학교 동창이었어요. 그 친구가 슬쩍 연락해서, ‘혹시 이 일을 알고 있냐’고 묻더라고요.”‘그럼 이건 명백한 증거가 될 수도 있어.’예진이 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우리가 재산 이동에 대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법정에서 충분히 다퉈볼 수 있겠죠?”민혁도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유언장이 있더라도, 상속 회피나 편법 증여 정황이 명확하다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예진이 조금 안도의 숨을 쉬려던 그때.쿵!!갑자기 누군가 현관문을 거세게 걷어차며 열었다.방 안에 있던 네 사람 모두 순간 얼어붙었다.민혁은 반사적으로 예진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문 뒤로 우락부락한 남자 셋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그들 뒤로, 분위기가 전혀 다른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검은 원피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유난히 하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방 가운데 멈춰 선 여자는 붉은 매니큐어가 돋보이는 손으로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날카롭고 아름다운 칼날 같은 눈동자가 드러났다.살짝 올린 입꼬리엔 여유와 경고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이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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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도서라가 다시 입꼬리를 비틀면서 차갑게 웃었다.“좋은 말로 할 때 그만두라니까! 뭐 얼마나 잘났다고 끝까지 가겠대? 저 모녀 꼴 좀 봐. 집도 이 모양에 저런 꼬라지야! 지금 변호사비도 벅차 보이는데, 헛물 켜지 말라고 충고해 주는 거야!”민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지금은 그래 보일지 몰라도... 소송이 끝난 후에도 과연 같을까요?”도서라의 눈에서 살기가 스치듯 지나갔다. 더 이상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지 못하고 표정이 확 굳어졌다.도서라의 시선이 곧장 이연과 나정에게 날카롭게 꽂혔다.“나도 좋은 마음으로 온 거니까 내 시간 함부로 뺏지 마! 저 두 거렁뱅이 꼴을 좀 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니까 좋게 말할 때 물러서! 끝까지 해보겠다고? 좋아, 어디 한번 해 봐.”말을 마친 도서라가 손짓을 하자, 곁에 있던 남자들이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쾅! 창문 하나가 산산이 부서졌다.나정이 놀라 소리를 지르자, 이연은 딸의 귀를 막으면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민혁은 즉시 예진을 감싸 안듯 끌어당겼다.하지만 예진이 한 발 빨랐다. 단호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카메라를 작동시켰다.예진의 목소리가 거실 안에 크게 울렸다.“전부 멈춰요! 이미 전부 촬영 중입니다. 이건 명백한 협박이자 재산 손괴 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에요!”남자들이 움찔하면서 움직임을 멈췄다.그중 하나가 예진을 향해 성큼 다가오려는 순간.철컥!단숨에 상대의 손목을 꺾은 민혁이 순식간에 야구방망이를 빼앗았다.곧바로 남자를 바닥에 깔아뭉개고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했다.민혁의 눈매엔 서늘한 살기가 가득했다. 한 손으로 야구방망이를 들어올리면서 남은 남자들을 노려봤다.‘덤비기만 해봐, 다 끝장이야.’예진은 그런 민혁의 뒤에서 계속 촬영을 이어갔다.이제는 나정도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꺼내서 함께 촬영에 나섰다.분위기가 점점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한 도서라는, 여기서 더이상 일을 벌이면 자기가 손해라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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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예진은 잠깐 멍해졌다.원래는 자기 안방을 이연과 나정에게 내주고, 자기는 거실에서 대충 며칠 지낼 생각이었다.그런데 민혁이 먼저 저렇게 나올 줄 몰랐지만, 그렇게 하면 이연과 나정이 좀 더 편할 것 같았다.예진은 살짝 놀란 얼굴로 민혁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괜... 괜찮아요.”이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민혁과 예진을 번갈아 바라봤다.“변호사님, 고 비서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저희 모녀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했어요.”사실 이연은 처음부터 변호사 비용을 낼 수 없다고 말한 상태였다.소송에서 이겨서 유산을 받게 되면 그때 주겠다고.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변호사는 현실에 거의 없다.그래서 처음 이연과 나정이 민혁을 찾아갔을 때도,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하지만... 민혁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그리고 민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정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그럼 변호사 비용은 제가 꼭 갚을게요. 나중에 대학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뭐든 하면서 꼭 갚을 거예요.”네 사람이 함께 시내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예진은 이 모든 이야기를 비로소 들었다.예진은 조용히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네...’요즘 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꽤나 복잡한 시선을 받게 된다.많은 사람들은 돈만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맡고, 진실과 상관없이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는 게 변호사라고 여긴다.사실 예진도 그게 대세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착한 사람의 소송을 맡아서 유명해진 변호사는 거의 없으니까...하지만 지금까지 예진이 본 민혁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예진은 처음엔 민혁이 은주와의 관계 때문에 자신을 도와준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따로 돈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민혁도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그런데 지금 보니, 민혁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대해주는 것 같았다.‘그렇게 능력 있는 변호사인데, 돈보다 사람을 보는구나.’‘이런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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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도대체 민혁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건지... 예진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일단 저녁 메뉴가 더 중요했다.‘어차피 오늘은 내가 요리할 거니까...’‘이연 여사님하고 나정 씨 입맛부터 먼저 챙기는 게 우선이지.’...한편, 같은 시각.윤제는 여전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처방만 받고 병원에서 퇴원한 상태였다.그런 윤제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화면에 뜬 이름을 본 윤제는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목소리는 건조했고, 눈썹도 이미 살짝 찌푸린 상태였다.수화기 너머 선재의 들뜬 목소리가 이어졌다.[에이... 형, 왜 그래요? 그냥 걱정돼서 전화한 거잖아요. 건우 형한테 들었어요. 위천공으로 입원했다면서?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윤제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짧게 대꾸했다.“할 말 있으면 빨리 해.”‘진심으로 걱정이 됐다면 어제 병원에 왔겠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안부를 도대체 왜 묻는 거야.’선재가 불쑥 입을 열었다.[형, 형수님이랑... 어떻게 됐어요?]“헤어졌어.”[진짜로... 이혼했어요?]“응.”윤제는 미간을 더 깊이 찌푸렸다.“대체 무슨 일이야.”선재도 더는 둘러대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왔다.[그게... 우리 작은아버지 댁에 좀 일이 생겨서... 오늘 작은어머니가 애하고 집에서 엉엉 울었대요.]다리를 꼬고 앉은 윤제가 무표정하게 수화기를 바꿔 들었다.“그 첫사랑 때문에 본처를 시골로 쫓아냈다는 작은아버지? 너 작은아버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그 장례식에도 갔던 기억이 있는데.”선재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맞아요. 근데 우리 작은아버지도 참... 젊었을 땐 가난해서 첫사랑인 우리 작은어머니하고 찢어졌는데요. 나이가 들어 돈도 좀 생기니까 결국 두 사람이 다시 만났어요. 결혼은 안 했지만 애까지 낳았고요...][지금은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재산을 전부 작은어머니와 아들한테 넘기려고 하고 있어요...]윤제는 피식 웃으며 비꼬듯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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