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341 - Chapter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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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1화

“에이, 그런 말 하지 마. 사람들 알잖아? 대기업 대표님이 몇천만 원 가지고 눈 하나 깜빡하겠어?”“맞아. 윤미가 목에 건 목걸이 안 보여? 최고급 주얼리에다 한정판이래. 전 세계에 딱 한 세트뿐이라던데. 그런 걸 할 수 있는 남편인데, 몇천만 원 밥값쯤이야 신경도 안 쓰시겠지.”“...”동창들의 아부 섞인 말에 윤미의 입꼬리가 다시 활짝 올라갔다.잠시 후,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사람들은 신이 나서 젓가락을 움직였고, 룸 안은 떠들썩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그 와중에도 윤미는 굳이 영호를 향해 독침을 날렸다.“이렇게 많이 시켰으니 다 못 먹겠는 걸. 우리 동창들이 먹을 게 없어 굶는 사람들도 아니고... 이따 남은 건 전부 포장해서 예영호 경찰관님이 가져가요. 데워 먹으면 며칠은 충분히 드실 수 있겠네.”은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진짜... 안 건드리면 안 되나?’벌떡 일어난 은주가 다시 받아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영호가 은주의 손목을 살짝 잡았다.그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윤미 씨의 호의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원래 이런 데 익숙하지 않아요. 제 월급으로는 감히 올 수 없는 곳이고... 사실 이런 호사는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습니다.”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 박자 쉬었다.“다들 아시다시피, 은주 씨는 명문가 아가씨잖아요. 제 월급 몇 달치가 은주 씨 가방 하나 값에도 못 미칠 겁니다.”“하지만 은주 씨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이 밥을 얻어먹으려고 한 게 아니라 제 여자친구가 이 모임에 불편하지 않도록 곁을 지켜 주고 싶어서입니다.”목소리가 낮지만 단단했다.“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제 성격은 단순해요. 제 것이 아닌 건 지나치게 바라지 않습니다.”룸 안 공기는 전과 달라졌다.사람들의 시선에는 존중과 호감이 묻어났고, 묘한 울림마저 퍼졌다.윤미조차 입술을 달싹이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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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윤미는 이를 악물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옆에 앉은 남편의 표정이 이미 심상치 않았다.결국 억울함을 꿀꺽 삼키며 억지로 웃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잘해 보려다가 결국 은주만 신나게 해 줬네.’‘이게 다 내 손으로 판 덫에 내가 걸린 꼴이잖아...’허무한 자조의 기색이 스치면서, 윤미의 속은 더 타들어갔다.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는 서둘러 마무리됐다.계산서가 건네졌을 때, 윤미는 손끝이 덜컥 떨렸다.₩98,500,000.순간, 손에 쥔 종이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잽싸게 계산서를 낚아채서 숫자를 확인한 남편 김금호는, 체면 따위는 잊은 듯 그대로 윤미의 얼굴에 내던졌다.“미친 년, 이게 얼마인 줄 알아? 구천팔백오십만 원이야, 구십팔만 오천 원이 아니고! 이걸 나보고 내라고? 나를 호구로 보는 거야!”김금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윤미는 순간 온몸이 굳었다.‘안 돼... 이 사람이 나가 버리면 이 돈을 어떻게 내?’‘여기서 먹튀라도 됐다간 더 창피해져...’윤미는 부랴부랴 남편 팔을 붙잡았다.이제 와서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여보, 제발... 다들 내 동창이잖아. 오늘 우리가 쏜다고 약속했는데, 여보...!”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금호는 윤미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며 그대로 밀쳐 넘어뜨렸다.쾅!윤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리고 이어진 건, 사람들 앞에서 울려 퍼진 싸늘한 따귀 때리는 소리였다.찰싹! 찰싹!룸 안의 웃음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모두가 숨죽인 채 눈을 돌렸다.“죽을 년,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구천팔백오십만 원짜리야! 꼭 내겠다고 우긴다면 당장 이혼이야!”말을 내뱉은 김금호는 씩씩거리면서 그대로 방을 박차고 나갔다.남겨진 건, 바닥에 주저앉은 윤미.얼굴은 화끈거렸고, 자존심을 뚫고 눈물이 흘러내렸다.방금 전까지 잘난 체하며 고개를 쳐들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지금 그녀에게 남은 건 오로지 참담한 몰골뿐이었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창들은 속내를 드러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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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넌 아직도 그렇게 믿는 거야? 돈 많고 너한테 잘해 주는 남자랑 결혼하면, 사랑 따위는 없어도 행복할 거라고? 그게 손익 따지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해?”은주의 말에 윤미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뭐라고? 지금 그게 무슨 뜻이야?”은주는 조용히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네 남편이 너한테 준 그 목걸이, 가짜야. 분명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 맞아. 근데 5년 전 경매에서 이미 최고급 컬렉터가 낙찰 받은 기록이 남아 있어. 네 남편이 어떻게 그걸 구했겠어?”“거짓말이야!”윤미는 거의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손으로 목걸이를 움켜쥐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 넌 그냥 날 질투가 나니까 거짓말하는 거야!”은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역시 끝까지 믿고 싶어 하는구나. 불쌍한 년...’“난 그냥 충고하는 거야. 네 남편이 널 정말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거지. 쓸데없는 허영심 때문에 돈을 허비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사랑도 포기하고 미래도 걸었으면, 최소한 돈이라도 손에 쥐어야지. 그래야 그 결혼에서 손해 보지 않을 거 아냐.”하지만 윤미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그게 가짜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 네가 거짓말하는 거잖아!”은주는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5년 전 그 목걸이를 산 사람이 우리 아버지야. 그리고 그건 내 대학 졸업 선물로 받은 거야.”순간, 윤미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억지로 버티던 가식도, 억지로 세운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다.윤미는 마치 혼이 빠져나간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채 눈물만 흘렸다.은주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참... 불쌍한 인간이지. 하지만 결국 자업자득이야.’그렇게 영호와 함께 레스토랑을 나섰다.밖으로 나오자,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영호가 자리를 지켜 준 덕에 은주가 체면을 세울 수 있었지만, 은주와 영호 사이의 묘한 냉기가 사라지진 않았다.9850만 원이라는 돈을 은주는 아무렇지 않게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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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하지만... 나도 알아요. 은주 씨가 우리 사이의 차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그렇다고 해서 그 차이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사실... 은주 씨 동창들이 한 말,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부터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에요. 내가 한 달 동안 번 돈으로는, 은주 씨 가방 하나 사주기도 벅차니까.”특별한 날이 다가와도, 은주에게 내밀 수 있는 선물이 변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영호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은주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이 사람, 지금이라도 나를 떠날 것처럼 말하는 거 아니야?’근거 없는 불안감이 목을 조여 오자 은주는 답답해 숨이 막히는 듯했다.은주는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들었다.“영호 씨, 마음의 부담이 큰 건 알지만... 돈이 우리 관계의 기준이 될 순 없잖아요. 설마 그 이유 하나로, 우리 사이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죠?”말은 웃으며 했지만, 목소리 끝은 떨렸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영호는 그런 은주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장 은주를 끌어안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내가 언제 포기한다고 했어요?”“그럼, 아까 그 말들은 뭐였어요?” 은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영호는 은주의 콧등을 장난스럽게 쓱 긁으며 부드럽게 웃었다.“우리 사귀기 시작할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요?”은주는 순간 멍하니 그날을 떠올렸다.영호는 늘 말했었다. 자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연애 따위 하지 않는다고. 한 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결혼까지 생각한다고.“기억해요.” 은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영호의 눈가가 풀리며 미소가 번졌다.“아까 했던 말은... 그냥, 은주 씨가 나 때문에 손해 보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어요. 솔직히 돈으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내 전부를 다해서 은주 씨한테 잘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해요. 그건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그 진심 어린 고백에 은주의 눈물이 결국 뚝뚝 떨어졌다. 은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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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은주는 장난스럽게 웃음을 흘렸다.[맞아, 이번엔 내 잘못도 커. 그래서 우리 둘이 약속했어. 앞으로는 절대 감정을 질질 끌지 않기로. 무슨 일이든 그날 안에 풀자고.]예진도 따라 웃었다.“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냉전은 절대 도움이 안 돼. 바로바로 대화하는 게 약이지.”통화를 끊고, 예진은 슬쩍 민혁을 바라봤다.“다 들었어요?”“응.”“그럼... 화난 건 아니죠?”예진은 괜히 조심스럽게 물었다.민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한참 후에야 굳었던 표정을 풀어냈다.“화낼 일은 아니에요. 은주도 이제 성인이잖아요. 나보다 겨우 몇 살 어릴 뿐이고... 스스로 연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죠.”민혁의 대답에 예진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한동안 둘 사이에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예진이 입을 열었다.“민혁 씨, 제가 해주는 밥은 이제 질렸어요?”민혁이 고개를 들어 예진을 바라봤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예전엔 늘 제가 밥해주고 민혁 씨가 먹었잖아요. 요즘은 거꾸로 됐어요.”민혁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그럼 제가 해주는 밥이 맛있어요?”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답했다.“맛있죠. 엄청 맛있어요.”민혁의 눈빛에 장난기가 스쳤다.“제가 예진 씨 집에 잠깐 살았을 때,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예진 씨는 집에서 딸일 땐 부엌 일 한 번도 안 했다고... 결혼해서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리 시작했다고...”그 말을 듣는 순간, 예진은 괜히 민망해져서 눈을 피했다.“전 어머님, 아버님이 ‘예진 씨가 나한테 일까지 떠맡는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밥은 제가 할 거예요. 제 몫이니까요.”민혁은 툴툴거리는 듯 말했지만, 그 속내는 분명 따뜻했다.‘참, 못 이기는 척하면서도 결국은 다 해주잖아.’예진은 민혁의 이런 모습이 우스워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고마웠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니까.잠시 후, 예진이 진지하게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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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괜한 상상은 집어치워요, 예진 씨. 남자로서 그런 문제는 전혀 없어요.”민혁이 단도직입적으로 찔러 오자, 예진은 속마음이 들킨 듯 얼굴이 붉어졌다.“헤헤...”그녀는 머쓱하게 웃어넘겼지만, 곧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숟가락으로 죽만 휘저으면서 시선은 허공에 머물렀다.예진의 얼굴에는 끊임없이 미세한 표정 변화가 스쳤다.‘그럼 그쪽 문제가 아니라면... 설마 성향이 다른 거야?’‘내가 물어볼 걸 잘못 물은 건가? 전 여자친구가 아니라... 전 남자친구?’이 엉뚱한 생각이 고개를 들자,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목이 바짝 타오르듯 침을 꿀꺽 삼킨 예진은, 민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민혁은 그런 예진의 반응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순간 얼굴빛이 굳더니, 손바닥으로 ‘툭’ 하고 예진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예진 씨, 또 이상한 상상하면 이번 달 월급 깎을 거예요.”“헤헤...”예진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다시 죽을 떠먹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뿌려진 그 씨앗은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민혁은 그런 예진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결혼까지 해본 사람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지?’‘내가 이렇게 티를 내도 눈치를 못 채다니.’답답함이 몰려왔다. 더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민혁은 속으로 마음을 굳혔다.‘이러다간 나를 어떤 사람으로 오해할지 모르겠어.’‘이제는 내가 직접 조금 나서야겠어.’...딩-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민혁과 예진이 내리기도 전에 인성이 마치 에너지 드링크라도 들이마신 것처럼 달려왔다.순식간에 민혁을 와락 끌어안으며 소리쳤다.“대표님! 대박 소식이 있어요!”민혁과 인성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본 예진은 잠시 멍해졌다.‘남자들끼리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렇게 직접적이었나? 아니면... 설마...’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예진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민혁은 시퍼렇게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요. 임 변, 내가 못 들을까 봐 인형처럼 매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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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예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서류철을 받아 들었다. 눈빛은 반짝였고, 감출 수 없는 기대감이 얼굴에 드러났다.“준비됐습니다. 언제든지 준비 완료예요!”예진의 다부진 표정을 본 민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사건 개요가 여기에 있어요. 먼저 꼼꼼히 살펴봐요. 이틀 안에 시간을 잡아서 의뢰인과 만날 거예요.”예진은 눈을 반짝이며 민혁을 바라봤다.“이 사건을 한아름 변호사님이 홍보하게 되는 건가요?”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맞아요. 사건이 좀 복잡해요. 먼저 꼼꼼히 읽어보고 생각해요.”이 사건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사실 로펌의 베테랑 변호사들조차 선뜻 맡기를 꺼리는 난해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민혁은 알았다.예진이라면 반드시 흥미를 느낄 거라는 걸.그리고 예진에겐, 이 사건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예진은 이미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나한테도 기회가 온 거야. 절대 놓치지 말자.’그렇게 다짐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를 펼쳐 들었다....한편, 다른 쪽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아린은 결혼 이후로 사실상 회사 안에서 군림하다시피 했다. 윤제와의 결혼으로 부씨 집안과 연결된 이상, 감히 그녀에게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대표마저도 그녀 앞에서는 몇 번 더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아린이 다니는 회사는 고급 맞춤 의상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주 고객층은 톱스타들과 재벌가 사모님들. 자연히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매년 몇몇 디자이너를 선발해 H시 패션위크 무대에 작품을 올리게 했다.H시 패션위크는 단순한 쇼가 아니다.수많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그 무대를 발판 삼아 일약 스타 디자이너로 도약하곤 했다.‘올해만큼은 꼭 내 차례야.’아린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누구보다 날카롭게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물론, 올해도 대표의 기준은 변함없이 작품이었다.누가 더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느냐에 따라, 그 귀한 자리가 결정되는 것이다.디자이너들이 모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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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아린 씨도 알잖아요. 이 패션위크는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예요. 이번 기회는 신인들에게 양보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아린은 냉소를 흘렸다.“형식적인 절차라면서, 어떻게 그게 ‘기회’가 될 수 있죠?”순간, 회의실 공기처럼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민성희는 할 말이 막혀 입을 다물었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회사 이익을 생각하면 아린의 작품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그래서 애써 모른 척하면서 웃음으로 넘겼다....퇴근 시간, 윤제는 아직 회의 중이었다.아린은 ‘이제는 공식적인 아내’ 라는 생각에 조급히 윤제의 사무실로 향했다.오픈된 사무 공간을 지날 때,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사모님, 안녕하십니까.”표정은 공손했지만,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작은 목소리들이 뒤따랐다.“내연녀 출신이 올라가니까 다르긴 달라. 걸음걸이부터 우쭐하네.”“그런 사람들 특징 몰라?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올라가면, 더 티내고 싶어 하는 법이지.”“얼굴도 솔직히 그렇게 예쁜 건 아닌데, 어떻게 대표님 눈을 그렇게 홀린 거야?”“첫사랑이잖아. 소꿉친구. 그거 모르면 간첩이지.”“...”웅성거림이 번져 나갔지만, 곧 회의실 문이 열리며 잠잠해졌다.윤제가 직원들의 시선 속에서 나왔다. 순간, 사무실 안은 고요해지고,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 컴퓨터 화면만 바라봤다.윤제가 대표실 문을 열었을 때, 아린은 윤제의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여긴 웬일이야?”윤제는 사무실에서는 사적인 티를 내는 걸 극도로 꺼려왔다. 예진과 함께할 때도 거의 데려오지 않았을 정도였다.하지만 아린은 달랐다. 오히려 투명한 유리 벽 너머 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하듯, 일부러 일어나 윤제를 향해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여보, 회의 끝났어?”윤제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유리 밖에서 직원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젠장... 이래서 내가 싫다니까.’윤제는 재빨리 리모컨을 집어 들고 버튼을 눌렀다.슥- 블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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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아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윤제가 귀가 얇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남자란, 결국 달콤한 말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는 존재니까.‘이렇게 간단히 끌어낼 수 있는 양보를, 고예진은 수년 동안 한 번도 못 했어.’‘정말... 제대로 본전을 뽑은 거지.’아린은 윤제를 꽉 끌어안으며, 마치 세상에서 제일 큰 억울함을 떠안은 사람처럼 낮게 속삭였다.“난 지금 당신밖에 없어. 세상 누구도 날 이렇게 이해해주고, 이렇게 다 받아주는 사람은 없어.”윤제는 그 말에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바로 아린을 떼어내고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왜 그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누가 너 건드렸어?”아린은 곧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별일 아니야. 당신도 바쁜데,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모호하게 넘기며 더는 말하지 않으려는 태도, 억울한 듯 보이는 눈빛.이런 식으로 일부러 밀어내는 밀당법이야말로, 아린이 외국에서 익힌 특기였다.역시나 윤제는 바로 걸려들었다.그녀의 불안한 표정에 이마를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췄다.“사소하다니. 당신 일이 곧 내 일이야.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인데?”아린은 코끝을 훌쩍이며 작게 중얼거렸다.“곧 패션위크잖아... 몇 년 동안 내 작품이 단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어. 올해는 기회가 있을 거라 믿었는데, 결국 또 아니래.”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아마 내가 능력이 부족한 거겠지... 하지만 난 정말 디자인이 좋아. 그런데 회사에서는 아무런 기회조차 주질 않아.”“이렇게 허송세월만 하다 보면, 도대체 언제쯤 빛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윤제는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잠시 입술을 다문 채 아린을 바라보다, 낮게 물었다.“그렇게 패션위크에 나가고 싶어?”아린은 기다렸다는 듯 눈빛이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H시 패션위크는 국제적인 무대야.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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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윤제가 셔츠 단추를 잠그면서 무심하게 말했다.“어머니가 오늘 전화하셨어. 저녁 같이 먹자고.”결혼 후로 단 한 번도 본가에서 밥을 먹지 않았던 두 사람.아린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풀리면서, 곧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반 시간 뒤, 두 사람은 본가에 도착했다.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이안은 아린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기분 좋은 듯 싱글벙글했다.반면 도순희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너희도 이제 결혼한 지 꽤 됐잖아. 신혼 달달한 건 이제 그만하고, 언제쯤 본가로 들어올 거니? 나도 늙고 외로워.”윤제의 손이 젓가락 위에서 살짝 멈췄다.아린은 눈치를 보더니, 애써 웃으며 도순희 앞에 국 한 그릇을 떠서 내밀었다.“어머니, 결혼한 지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요. 저랑 윤제 오빠는 아직 둘만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요. 어머니 건강도 좋으시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하지만 도순희의 얼굴은 금세 시무룩해졌다.“말은 잘한다. 결혼 전엔 매일 본가에서 살다시피 하더니, 막상 결혼하고 나니까 발길이 뚝 끊겼네. 너희 설마 따로 나가 살 생각 하는 건 아니지?”아린은 대답 대신 이안의 밥그릇에 반찬을 놓아줬다.윤제 역시 묵묵히 국만 떠먹었다.결혼 첫날밤, 아린은 이미 윤제에게 본가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솔직히 말해, 도순희가 최근 몇 차례 일으킨 소란들 때문에 윤제 역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두 사람이 끝내 입을 열지 않자, 도순희는 참지 못하고 국그릇을 탁 내려놓았다.“대체 너희 둘이 무슨 심보야? 이제 나를 버리겠다는 거냐?”깊이 한숨을 내쉰 윤제가 고개를 들었다.“어머니, 저희가 언제 어머니를 모른 척했어요? 다 같은 H시에 사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달려올 수 있어요. 굳이 한 지붕 밑에서 살아야 효도하는 건 아니잖아요.”아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도순희는 단박에 눈치를 챘다.도순희가 냉랭하게 비웃었다.“그래, 그래. 이제야 알겠다. 너희 둘이 작정하고 이 늙은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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