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491 - Chapter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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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아린은 이제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윤제의 품에서 살짝 몸을 빼내며, 진지한 얼굴을 하고 윤제를 바라봤다.“나 오빠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이안이 나도 지켜본 아이잖아. 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조금 힘들고 속상해도 괜찮아.”아린의 이 말에, 윤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다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는 곧장 아린을 끌어안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아린아, 걱정 마. 이 일만 지나면 내가 평생 너만 바라보면서 살 거야. 네 옆에서 끝까지 지켜줄게.”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윤제 어깨에 얼굴을 기대면서,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부윤제. 너는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잖아.’...며칠 뒤. 윤제가 예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 이후 예진은 마음이 계속 어수선했다.민혁은 그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챘다.‘뭔가 잘못되고 있어... 내가 괜히 미적거리면 안 돼. 이번엔 놓치지 않을 거야.’민혁은 이미 한 번 예진을 잃었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굳혔다.예진의 얼굴은 기적처럼 회복됐다. 흔적 하나 남지 않았고, 몸의 상처도 거의 다 아물어서 며칠 지나자 퇴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퇴원 날. 이상하게도 은주와 선아는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예진은 그저 ‘요즘 친구들도 바쁘겠지. 시끄럽게 몰려오지 않은 게 오히려 나아’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사실 이 모든 건 민혁이 준비한 일이었다.퇴원 수속을 마치고, 민혁은 예진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차에 태웠다. 다친 팔도 완전히 회복되어서, 민혁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차가 출발하고, 창밖 풍경이 익숙하지 않게 스쳐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닌 듯해 예진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설마... 겨우 퇴원하자마자 회사로 데려가서 또 일부터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예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민혁은 옆에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조금만 기다려요.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예진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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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예진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지금 울면 안 돼. 괜히 분위기 망치면 안 되잖아.’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지어 보였다.민혁은 준비해 온 짐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작은 버너와 다기 세트까지.한눈에 봐도 공들여 챙긴 흔적이 역력했다.예진이 따라 나서서 도와주려 하자, 민혁은 곧장 손을 잡아 의자에 앉혔다.“예진 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햇볕이나 쬐고 있어요. 내가 금방 다 준비할 테니까.”예진은 의자에 앉아 민혁이 분주히 움직이는 뒷모습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지... 오늘은 웃고, 대답만 하면 되는 날이잖아.’‘그냥 행복하면 되는 날인데...’그러나 머릿속은 온통 이안의 병으로 어지러웠다.예진은 아직 결심하지 못했다.이안을 구하려고 다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그냥 두 눈 감고 모른 척할 수 있을까?’‘아니야... 그건 못해. 난 절대 그렇게 못해.’예진은 알았다. 만약 민혁에게 지금 솔직히 말한다면, 민혁은 어떤 선택이든 받아들일 거라는 것을.심지어 부윤제와 예진 사이의 아이까지도 자기 아이처럼 아껴줄 거라는 것을.그게 민혁의 사랑이었다. 늘 꺼내 놓을 수 있는, 숨기지 않는 사랑.하지만 예진은 또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이기적인 거잖아.’‘내가 민혁 씨 사랑을 믿고, 내 선택만 강요할 순 없어.’그 생각에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졌다.그때 민혁이 과일을 들고 와서 테이블에 놓으려다, 예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동작을 멈췄다.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다가와, 눈높이를 맞추듯 무릎을 굽혀 앉았다.“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니면... 무슨 일 있어요?”예진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웃어 보이려 애썼다.“아니에요. 그냥... 바람이 좀 세게 불어서, 햇볕이 눈에 들어와서 그런가 봐요.”민혁은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예진의 얼굴에 씌워주었다.“이제 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더 있으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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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여섯 시밖에 안 됐는데도 노을이 벌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해가 기울수록 공원 안은 더 서늘해졌지만, 빛은 오히려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다.예진은 느낄 수 있었다.민혁이 처음부터 계속 조금씩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걸.잔디 위에 앉아 차를 따라 주면서도, 어딘가 어색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민혁 씨... 지금 이 분위기, 이 시간... 분명히 고백하려는 거야.’주변의 커플들은 이미 다정하게 어깨를 기대거나 서로를 안은 채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그 속에서 민혁과 자신만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민혁의 등 뒤를 바라보는 순간, 예진의 심장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민혁이 일어서면서 말했다.“나 차에서 좀 가져올 게 있어요.”“네...”예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민혁의 넓은 어깨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민혁 씨가 나한테 고백하면... 나... 대답할 수 있을까?’‘나도 당연히 좋고, 당연히 기대되고,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데...’‘만약 내가 결국 이안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어떤 선택을 한다면...’‘민혁 씨는 어떻게 될까...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생각은 점점 고통처럼 예진의 가슴을 조였다. 마치 숨을 쉴 때마다 양쪽에서 쇠사슬이 조이는 것처럼,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윤제였다.[생각은 해봤어? 이안 상태가 점점 나빠져. 당신 골수도 안 맞아. 우리한테 시간이 없어.]윤제의 문자를 보는 순간, 예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끝이 떨렸고, 그 떨림이 그대로 심장까지 전해졌다.곧바로 또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사진 속에는 이안이 삭발한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창백한 피부에 환자복은 한껏 커 보였다.그런데도 아이는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웃을 때 입 안 가득 드러난 작은 충치가 더욱 가슴을 찔렀다.‘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가 이렇게 돼 가는 걸 눈뜨고 볼 수 있겠어...’‘아이가 날 몰라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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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예진이 남긴 짧은 메시지, 그것이 곧 예진의 대답이었다.혹은, 아직 확실한 대답을 내릴 용기가 없는 채, 민혁에게 전한 단호한 거절이었다.민혁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든 꽃다발은 결국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고, 반지는 주머니 속으로 거칠게 들어갔다.차로 돌아가는 남자의 발걸음은 무겁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예진이가 원한다면... 기다리자.’‘이미 수년을 기다려 왔는데, 하루 이틀 더 못 기다리겠어?’멀지 않은 곳,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예진은 민혁이 지친 어깨로 차에 오르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제야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그 눈물에는 미안함과 흔들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결심도 뒤섞여 있었다....그 시각, 병원에서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윤제는 연일 이안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아린은 마치 교과서 속 현모양처라도 되는 듯, 그림처럼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이안에게 동화를 읽어 주고, 약을 제때 챙겨 주는 그 손길은 살뜰하기까지 했다.윤제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음 한구석이 아리면서 아팠다.“아린아, 며칠째 병원만 지켰잖아. 오늘은 집에 가서 좀 쉬어. 이안은 내가 볼게.”윤제가 책을 건네받으려 하자, 이안도 아빠 편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집에 가서 쉬어. 아빠가 이안이한테 동화책 읽어 주면 되잖아.”아린은 순간 입술 끝을 달달 떨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무슨 소리야. 오빠 같은 남자가 무슨 동화를 알아? 내가 읽어 줄게.”그러고는 다시 책을 손에 꼭 쥐었다.아빠와 엄마가 다정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이안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시야가 갑자기 흐려졌다.콧등을 타고 선홍색의 피가 흘러내렸고, 작은 몸이 푹 꺼지듯 침대에 쓰러졌다.“이안!”윤제와 아린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순간적인 공포에 윤제는 곧장 침대 옆 긴급벨을 눌렀고, 아린은 복도로 뛰어나가 의사와 간호사를 소리쳐 불렀다.잠시 뒤, 의료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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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송승예는 문을 두드려도 아무 대답이 없자 얼굴을 굳혔다.“예진아, 안에 있니? 자는 거 아니지? 안 열면 엄마 그냥 들어간다?”그 순간, 예진은 베란다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서야 멍하니 있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예진은 얼른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최대한 평정을 되찾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 이제 자려고요.”딸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코맹맹이 소리에 송승예는 더 이상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민혁과 가까워지는 게 눈에 보였는데,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히다니.게다가 지금은 저녁 여섯 시, 자러 들어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닌가.“엄마 들어갈게.”말을 마치기도 전에 송승예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예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훔치고, 애써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엄마, 배 안 고파요. 병원에 며칠 누워 있었더니 살만 쪘어요. 오늘은 그냥 안 먹을래요.”하지만 부은 눈가는 금세 티가 났다. 딸이 울었다는 걸 송승예는 한눈에 알아봤다.‘내 새끼가 속상한 일 있으면 꼭 혼자 웅크리고 울지...’송승예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예진을 침대에 앉혔다.“예진아, 엄마가 너랑 얘기한 지 오래됐어. 우리 얘기 좀 하자.”예진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 없어요. 얘기할 게 뭐가 있겠어요.”“민혁이랑 싸웠니?”민혁의 이름이 나오자 예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아니에요. 저희 괜찮아요. 민혁 씨는 제 상사잖아요. 제가 어떻게 민혁 씨랑 싸우겠어요.”예진이 이렇게 말할수록 송승예는 더 확신했다. 딸은 분명히 마음속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민혁이 며칠 동안 정성을 다해 챙기는 걸 부부는 다 봐왔다. 민혁이 문제를 일으켰을 리 없었다.‘그럼... 둘 사이에 무슨 큰일이 생긴 거겠지.’송승예는 예진의 손을 꼭 잡으며 눈빛을 놓지 않았다.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예진의 손등을 살짝 두드렸다.“예진아, 네가 이제 다 컸다고, 엄마한테 말 안 하고 혼자 꾹꾹 참는 거 엄마도 알아.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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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예진이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숨을 고르며 진정이 되었다.송승예는 가슴이 죄여 오르는 걸 꾹 참고 조심스레 물었다.“도대체 왜 그래? 너랑 민혁이랑 싸웠어?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어? 그냥 이렇게 울기만 해선 답이 안 나오잖아. 말해 봐. 무슨 일이든 같이 풀어 보자.”엄마의 말이 따뜻할수록, 예진의 가슴은 더 미어졌다.‘말하면... 엄마가 더 걱정할 텐데...’하지만 그토록 쌓여 있던 억울함과 무력감에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예진은 오랜 망설임 끝에, 겨우 입을 열어 윤제가 자신을 찾아왔던 일, 그리고 그가 요구한 것까지 모두 털어놓았다.송승예는 예상과 달리, 이안의 병세보다 그 뻔뻔한 요구에 먼저 분노했다.“아니, 이게 말이 돼? 부윤제 그 인간, 예전에 너 억지로 이혼시킬 땐 단 한 마디 미안하단 소리도 없더니, 이제 와서 애가 아프다고 너더러 다시 애를 낳으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제정신이야 그게!”예진은 순간 움찔하며 입술을 깨물었다.“근데, 엄마... 이안도 제 아이잖아요.”아무리 아이가 자기 친엄마를 외면하고 아린을 따르고 있어도, 결국 예진의 뱃속에서 열 달을 품고 낳은 친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송승예는 다시 예진의 손을 꼭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그게 네 아이면 뭐해. 성은 부 씨고, 결국 부윤제 집안 애야. 위에서 삐뚤어지면 아래도 삐뚤어지는 법이야.”“걔는 이미 딴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잖아. 그런데 네가 뭐 하러, 이제야 겨우 되찾은 네 삶 다 내던지고 또다시 부윤제한테 발목을 잡히겠다는 거야?”둘째 아이... 말은 간단하지만,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임신 준비부터 열 달의 임신 기간, 그리고 출산 후 회복까지, 적어도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그 2년 동안 예진이 민혁을 어떻게 마주 볼지...예진이 정말 전남편과 또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민혁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예진의 머릿속은 한순간에 복잡해졌다.아이를 향한 책임감과, 새로 시작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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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송승예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아무리 자기가 옆에서 말해도, 예진이 겪는 괴로움까지 대신 덜어줄 수는 없다는 걸.‘내가 무슨 말을 더 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지.’‘결국 이 애가 스스로 부딪치고 결정해야 하는 거야.’그래서 송승예도 더이상 길게 타이르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이건 결국 이안이 몸에 관한 일이니까 내가 뭐라 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안이 네 자식인 건 맞지만, 넌 내 자식이야. 난 내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거 말곤 다 필요 없어.”예진은 눈을 내리깔았다. 송승예의 말이 따뜻하게 스며들었지만, 그 따뜻함이 오히려 예진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엄마는 늘 내 편이야.’‘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해 줄 거라는 걸 잘 알아.’‘그런데... 그래서 더 괴로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잖아.’송승예는 다시 손을 꼭 잡으며 덧붙였다.“확률이 얼마나 낮은 일인지 너도 알잖아. 네 인생을 다 걸고 희생할 필요 없어. 그 시간에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겠니? 그러면 너도, 우리도 양심에 덜 걸리고.”하지만 예진의 가슴 속은 여전히 답답하게 뒤엉켜 있었다. 어차피 엄마 아빠는 끝까지 자기 편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바로 그 확신 때문에 더 큰 짐이 되는 기분이었다.송승예는 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며칠째 잠도 못 잔 얼굴이네.’‘이런 일 아니었으면 마음 놓고 웃으면서 밥 먹고 다녔을 텐데...’“됐어.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먹고 생각해야지. 배고픈 몸으론 아무 결정도 못 해.”그렇게 말하며 송승예는 예진을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바로 그때, 예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엔 ‘부윤제’라는 이름과 함께 사진이 한 장 도착해 있었다.차갑게 닫힌 수술실 철문. 위엔 붉은 불빛으로 ‘수술 중’이라는 글자가 켜져 있었다.메시지는 짧았다.[이안이 지금 수술 중이야.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도 네가 이안 엄마니까 알려는 줘야 할 것 같아. 올지 말지는 네가 정해.]예진은 그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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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수술실 복도는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아린은 일부러 윤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고개를 숙여 억울한 듯 목소리를 냈다.“이안한테 내가 얼마나 정성 쏟았는지 오빠도 다 봤잖아. 그런데 예진 씨 말은 결국 우리가 애를 제대로 못 챙겼다는 거야?”예진은 차갑게 아린을 노려봤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빛을 단단히 굳히며 입을 열었다.“벌어진 일 앞에서 책임을 떠넘겨 봤자 뭐가 달라져? 지금 중요한 건 현실이야. 근데 둘째 얘긴...”윤제가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압박이 묻어 있었다.“지금 둘째 얘기를 거부한다는 건, 곧 이안의 목숨을 외면한다는 거랑 같아. 너 정말...”“입 다물어.”예진은 날카롭게 잘라냈다.“그따위 모함하지 마. 나라고 이안 잘못되길 바라겠어? 둘째의 제대혈이 백 퍼센트 살려낼 수 있다면, 내가 왜 못 하겠어. 하지만 장담할 수 있어? 성공한다고?”말을 마친 예진의 시선이 곧장 아린으로 옮겨졌다.“그리고 넌? 네 남편이 전처 아이 갖는 거, 정말 감당할 수 있어?”잠시 침묵이 흘렀다. 윤제와 아린, 둘 다 말문이 막혔다.결국 먼저 표정을 수습한 건 아린이었다.“당연히 싫지. 어느 여자인들 그게 쉽겠어. 하지만... 이안을 살릴 수 있다면, 참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아린의 억울한 연기에 윤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윤제는 미간을 깊이 찌푸리며 예진을 몰아세웠다.“고예진, 아린 같은 새엄마도 이 정도로 각오했어. 근데 넌? 친엄마라는 사람이 자기 행복이랑 연애 타령하면서 애를 버리겠다는 거야?”예진의 속은 순간적으로 또 갈라졌다.‘내가 정말 이기적인 걸까? 아니야... 이건...’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예진의 망설임은 순식간에 증발했다.‘그래, 내가 뭘 해도 이 둘은 절대 고마워하지 않겠지.’‘둘째를 낳아도 이안을 못 살리면, 결국 그 책임은 전부 나한테 뒤집어씌울 거야.’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예진의 눈빛은 한층 단단해졌다.“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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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복도에 여운처럼 남아 있던 긴박한 공기가, 의사의 마지막 말로 무겁게 가라앉았다.“교수님,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 건가요?”예진이 끝내 묻고 말았다.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어쩐 일인지 약효가 거의 듣질 않습니다. 병세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가족분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예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대답 대신 가볍게 눈을 감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을 뿐이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린은 시선을 슬쩍 윤제에게로 옮겼다. 눈길은 걱정스러운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잘 됐네. 이렇게 되면 윤제는 또 내게 미안해하겠지.’‘둘째 문제도 더 이상 고예진에게 얘기할 필요 없고...’‘이안이 없어진다면, 내가 낳을 아이가 곧 부씨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겠지.’의사가 자리를 떠나자, 윤제는 힘이 빠진 듯 의자에 멍하니 앉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아린은 옆에서 다정한 얼굴로 그등을 쓸어주며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만 반복했다.예진은 묵묵히 숨을 고르며 병실로 발길을 옮겼다.병실 문을 열자, 이안의 창백한 얼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왜 왔어?”차갑게 튀어나온 목소리. 거부하는 말투.예진은 순간 씁쓸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이렇게까지 나를 싫어하는 애를 위해...’‘내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얼마나 아파했는지...’‘어쩌면 진짜 우스운 건 나일지도 몰라.’그렇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예진을 철저히 붙잡고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자신을 밀어내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더는 못 버티겠어. 이게 마지막이야.’‘오늘 이걸 끝으로, 나는 다시는 이안 앞에 서지 않을 거야.’‘그래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어.’예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다짐하며, 이 만남을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 이불자락을 끌어올려 정성스레 덮어주었다. 하지만 이안은 얼굴을 돌리며 투덜대듯 이불을 홱 걷어내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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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초콜릿을 뺏긴 이안은 작은 손으로 어떻게든 되찾으려 했지만, 몸에 힘이 없어 금세 지쳐버렸다. 얼굴은 종이처럼 하얗게 질렸고, 결국 침대 위에서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울먹였다.“돌려줘! 왜 이렇게 싫어, 진짜 싫어!”예진은 차갑게 아이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찌푸렸다.“이거 누가 사줬어? 얼마나 먹은 거야?”‘그러니까 이안이 갑자기 충치가 그렇게 많아진 거였어.’‘분명 꽤 오래 먹어왔다는 거네.’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간적인 죄책감이 드러났지만, 곧 고집스럽게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내 일에 아줌마가 무슨 상관인데? 이제 내 엄마 아니잖아! 간섭하지 마! 당장 돌려줘!”말을 마치자마자, 이안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옆에 있던 과일 접시가 함께 쏟아지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밖에서 소리를 들은 윤제와 아린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이안을 보자, 얼굴이 굳어진 아린이 곧장 달려가 아이를 부축했다. 윤제는 본능적으로 예진을 노려보며 아이 앞을 가로막았다.“너 뭐 하는 거야? 애가 이렇게까지 힘든데, 대체 뭘 더 하려고 그래?”예진은 허탈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윤제의 말투는 마치 자신이 이안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듯했다.‘역시... 결국 모든 잘못은 내 탓이라는 거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하지만 예진은 더는 말다툼할 기운조차 없었다. 대신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초콜릿 봉지를 윤제의 눈앞에 내밀었다.“이게 네가 말한 ‘잘 돌봤다’는 거야? 이안 몸 상태에선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뭔데? 베개 밑에 반쯤 먹다 남은 초콜릿을 숨겨놨더라.”말을 마치자 예진은 봉지를 윤제의 가슴팍에 힘껏 던졌다. 초콜릿이 그의 품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가 났다.윤제는 순간 얼떨결에 초콜릿을 받아내며 굳은 얼굴로 포장을 내려다봤다. 굵게 찌푸린 미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아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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