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581 - Chapter 590

590 Chapters

제581화

윤제는 조심스럽게 도순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어머니, 이제 그만 우세요. 다 지난 일이잖아요. 의사 말로는 지금 회복 단계인데 이렇게 울면 몸에 안 좋대요.”아들의 목소리는 최대한 부드러웠지만, 도순희는 윤제의 손을 꼭 붙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아들아... 엄마,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참 많이 생각했어. 결국 다 엄마 잘못이야.”윤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도순희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윤제를 바라봤다.“그땐 예진이가 마음에 안 들었어. 괜히 차분하고 얌전한 게 싱거워 보였거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아이만큼 좋은 며느리가 어디 있겠어?”“나한테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너한텐 헌신적이었어. 아이한텐 정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였잖아.”그 말을 듣자 윤제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그래, 결국 나도 예진이를 생각하고 있었어.’‘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지.’‘예진이가 내 곁에 있었을 때는 그 모든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이젠 그 당연함이 가장 그리운 게 되어 버렸네.’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였다.“어머니, 이제 그런 얘기는 하지 마세요. 이미 다 끝난 일이에요. 저랑 예진이... 그건 제 잘못이었어요. 지금 예진이는 자기 삶을 잘 살고 있어요.”“제가 무슨 낯으로 다시 찾아가서 말을 하겠어요. 이젠... 다신 돌아올 수 없어요.”도순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얘야, 엄마가 그땐 눈이 멀었지. 예진이 같은 애를 두고도, 그걸 몰랐던 게 내 죄야. 그 아이는 정말 좋은 애야. 아내로도 며느리로도 엄마로도 완벽했지. 너랑 이안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잖아.”도순희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윤제야, 부탁이야. 예진이 꼭 다시 데려와. 그 아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 마음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겠니? 그땐 우리가 예진이한테 잘못했어.”“이젠 우리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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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아니에요, 어머니. 이안이 며칠 전에 조금 아팠는데, 지금은 완전히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그 말을 듣자 도순희는 비로소 숨을 고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그럼 됐다. 이안이 괜찮다니까 이제 마음이 놓이네. 너도 얼른 가서 애 좀 봐. 여긴 간병인도 있으니까 나 걱정하지 말고.”윤제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그 역시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어머니. 금방 올게요.”간병인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 뒤, 윤제는 병실 문을 조용히 닫고 이안이 있는 병동으로 향했다.복도 끝, 하얀 문 앞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르며 손잡이를 잡았다.병실 안에는 하얀 침대에 누워 있는 이안과 그 곁을 지키고 있던 건우가 있었다.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조금씩 혈색이 돌고 있었다.건우는 윤제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수술은 잘 됐어. 완전 성공이야. 다만 마취가 아직 덜 풀려서 좀 더 지켜봐야 해. 조금 있으면 깰 거야.”윤제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조용히 답했다.“고마워.”건우는 잠시 윤제를 바라보다가 친구의 눈 밑이 시커멓게 다크 서클이 내려 앉은 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윤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요즘 진짜 고생 많다. 잠깐이라도 좀 쉬어. 난 바로 옆 사무실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그래, 고맙다.”건우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병실엔 정적이 흘렀다.윤제는 천천히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이안의 작고 하얀 손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그 손을 조심스레 잡자, 미약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윤제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끝내 눈시울이 붉어졌다.손끝이 떨리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이게 다 내 잘못이야.’그는 속으로 되뇌었다.‘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예진이와 이혼하지만 않았더라면...’‘아린이를 선택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 집안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야.’윤제의 눈에서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침대의 아이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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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재하가 선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은주야, 너네 집 영호 형사님은 요즘 데이트 같은 건 아예 꿈도 못 꾸지? 아니, 그렇게 바쁘면 차라리 때려치워야 되는 거 아냐? 월급도 쥐꼬리만큼만 주면서 사건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몰라.”“야, 입 좀 다물어.”선아가 황급히 재하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괜히 그런 말 하지 마. 은주 씨 들으면 마음 상해.”그녀는 곧 은주 쪽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은주 씨, 그냥 영호 씨가 요즘 위험한 일을 많이 맡게 되니까 걱정이 돼서 그래요. 자리 옮기고 난 뒤로 업무가 너무 험해졌잖아요.”은주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알아요...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해요.”‘이대로 가다간 정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사람이 바쁘다고 해서, 마음까지 멀어지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은주는 가까운 시일 안에 영호와 진지하게 대화할 결심을 했다.그때 민혁이 예진의 손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저쪽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가 우리 고 변하고 의뢰인 먼저 모시고 가볼게. 다들 근처의 레스토랑 좀 알아봐 줘. 오늘 저녁은 내가 쏠게. 우리 고 변의 첫 승소니까.”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대표님, 감사합니다. 대표님 덕분이에요.”“아니에요. 우리 고 변이 정말 잘하셨어요.”민혁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자랑스러움이 스며 있었다.“그럼 난 먼저 가볼게.”그가 손을 들어 인사하자, 예진도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재하가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야, 들었지? 오늘 서 대표가 쏜대! 이럴 땐 무조건 비싼 거 먹어야 돼.”...법원 정문 앞.민혁이 예진, 봉춘영과 함께 밖으로 나서는 순간, 이미 문 앞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수많은 마이크가 봉춘영에게 향했다.“봉춘영 여사님, 이번 판결 결과에 만족하시나요?”“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혹시 H시에 계속 머무를 생각이신지요?”갑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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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고 변호사님, 이번 재판은 완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잠시 숨을 고른 예진이 마이크 앞으로 다가섰다.“이번 사건은 제가 변호사가 된 후 처음 맡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신중하게 임했지만... 완승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예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단했다.“법정에서 누가 완전히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다만 변호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피해자가 정당한 보호를 받고, 가해자가 그에 맞는 처벌을 받게 하는 것,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예진은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이번 사건을 통해서 많은 여성분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법은 불법과 폭력 앞에서 결코 침묵하지 않습니다.”“우리는 반드시, 법의 도움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정의는 때로 늦을 수는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그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자들 중 몇몇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민혁은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플래시 불빛 속에서도 예진의 눈빛은 또렷하게 빛났다.‘그래, 이게 바로 내가 알고 있는 고예진이야.’‘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자기 발로 홀로 서는 사람.’민혁의 입가엔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자신이 직접 발굴하고 믿고 밀어준 사람.이젠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서 있었다.‘이젠 내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예진이 내게 힘이 되는 순간이 오고 있어.’...그날 오후, 예진의 인터뷰 영상은 각종 뉴스 포털과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댓글에는 ‘가장 아름다운 변호사’, ‘진짜 정의의 얼굴’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예진은 하루 종일 상담과 사건으로 바빴다.로펌에는 ‘고 변호사님께 직접 부탁드리고 싶어요’ 라는 의뢰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하지만 예진이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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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말하면서 예진은 노트북을 닫고 서류를 정리했다.가방을 메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오랜 시간 집중했던 긴장이 이제서야 풀리는 듯했다.문가에 기대 있던 민혁이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고 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혹시 보너스라도 받았어요? 이렇게 후하게 굴다니.”예진은 고개를 들어 민혁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보너스요? 그건 대표님이 더 자주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민혁은 장난스럽게 양손을 들며 웃었다.“그건 협상해 봐야죠. 대신 오늘은 내가 사니까 그걸로 퉁칠까요?”로펌은 이미 대부분 퇴근한 뒤였다.사무실 불빛은 몇 개만 켜져 있었고, 복도에는 조용한 정적만 흘렀다.예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민혁의 팔을 조심스레 잡았다.“그럼... 오늘은 진짜 대표님이 사시는 거예요?”“물론이죠. 오늘은 나한테 맡기세요.”두 사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어 나왔다.밤공기가 차가웠지만, 둘 사이의 공기는 묘하게 따뜻했다.반짝이는 거리의 불빛 사이로, 작은 포장마차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스쳤다.민혁은 그런 예진의 옆모습을 힐끔 보며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이런 장면을... 몇 년이나 상상했더라.’‘같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예진은 그런 시선을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왜요? 그렇게 쳐다보시면 부담스러워요.”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믿기지가 않아서요. 이렇게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게 말이에요.”예진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면서, 속삭이는 듯한 공기가 두 사람의 마음 사이를 잔잔히 흘러갔다....같은 시각, 병원의 공기는 전혀 다른 온도였다.수술을 마친 이안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윤제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래... 이제 정말 괜찮아질 거야.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모니터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만이 고요한 병실을 메우고 있었다.윤제는 지친 표정으로 리모컨을 들고 무심코 TV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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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이안의 말을 들은 윤제는 문득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이안은 언제나 똑똑한 아이였다. 부모의 마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늘 스스로 잘 헤아리는 아이.“이안 말이 맞아. 아빠랑 엄마는 진심으로 이안을 걱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 거야.”“그런데 아린 엄마는 그런 마음도 모르고 몸에 안 좋은 걸 먹게 해서... 이안이 이렇게 아프게 됐잖아. 아빠는 그게 너무 속상해. 그때 조금만 늦었어도...”윤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많은 말을 꺼냈다가 오히려 아이의 마음이 다칠까 두려웠다.그런데 이안이 먼저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아빠, 알아. 이안도 다 알아. 아빠랑 엄마가 진짜로 나를 사랑했단 거. 아린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윤제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안의 눈가가 금세 붉어지면서 맑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윤제의 가슴이 조여왔다.“왜 울어? 어디 아파? 아빠가 의사 불러올까?”“아니야...”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아빠, 나 요즘 자꾸 꿈을 꿔. 엄마가 나오는 꿈... 엄마는 원래 나한테 정말 잘해 줬잖아.”“매일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전화로도 항상 같이 놀아줬고... 유치원 행사도 한 번도 빠진 적 없었어. 항상 엄마는 나한테 1등 하게 해주려고 애썼잖아.”“엄마는 나뿐만 아니라 아빠한테도 잘했어.”“아빠 위에 좋은 국 끓여주고, 내가 우유 알레르기 있다고 일부러 우유 안 들어간 디저트도 배워서 만들어 줬잖아. 할머니 아플 때도 항상 엄마가 간호했어...”말을 이어갈수록 이안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유치원에 불이 났을 때도... 엄마가 제일 먼저 뛰어 들어왔잖아. 아린 엄마가 넘어졌는데, 나는... 나는 엄마보다 아린 고모부터 챙겼어. 아빠... 나 엄마 보고 싶어.”아이의 작은 어깨가 떨렸다.병을 이겨냈다지만, 이안은 아직 어린애였다. 반항심도 서운함도 있었지만, 결국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었다.이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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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윤제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아들이 예진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그렇지 않았다면, 이안이 이렇게 오래 아파 있었는데도 예진이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그 사람... 이제 정말 우리한테 마음을 닫은 걸까.’윤제 자신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예진이 과연 병원에 와서 이안을 보려 할지... 그마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이안의 눈빛이 너무 간절했다.그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이안, 걱정하지 마. 엄마가 요즘 좀 많이 바빠서 그래. 그래도 곧 올 거야. 병원에 와서 이안을 꼭 볼 거야.”“정말?”이안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윤제는 조용히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응, 그러니까 이제 좀 자. 푹 쉬어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를 볼 수 있지, 알겠지?”“응...”아이는 작게 대답하고는 이불을 꼭 끌어안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떼쓰고 짜증내던 아이였는데, 아프고 난 뒤로는 너무도 순해졌다.곧 작은 숨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윤제는 한참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창백한 얼굴, 가느다란 팔뚝에 붙어 있은 주사 바늘.그 모든 게 윤제의 가슴을 짓눌렀다.‘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그 생각이 떠오르자 가슴이 쿡 내려앉았다.만약 이안을 잃었더라면,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아야 했을까?윤제는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밤공기가 싸늘하게 느껴졌다.손안의 핸드폰이 묘하게 차가웠다.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그는 화면을 켰다.연락처 목록을 스크롤하던 손끝이 ‘이안 엄마’에서 멈췄다.‘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전화를 하지... 그래도, 이안이 기다리잖아.’윤제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떨리는 손끝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짧은 신호음이 병원 복도를 울렸다.그때 예진과 민혁은 막 야식을 마친 참이었다.집 근처 작은 식당이라, 둘 다 간단히 맥주 두 병을 나눠 마시면서 기분 좋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손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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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예진이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줄은 몰랐다.윤제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짧은 침묵이 흐르자, 예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있어.]윤제가 급히 말을 끊었다.[이안 말이야...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야. 애가 엄마를 많이 보고 싶어 해. 시간이 괜찮으면, 내일이라도 한 번 이안을 보러 와 줄 수 있을까?]‘보고 싶다고?’예진이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그래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착각한 거 아냐? 이안이 나를 보고 싶어할 리가 없잖아. 지금쯤이면 류아린 옆에 있는 게 더 좋겠지.”윤제는 대답을 잇지 못했다. 그저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진짜야. 이안이 정말 엄마를 보고 싶어 해. 그동안 여러 일로 네 마음을 많이 다치게 한 거 알아. 그래도... 아이는 아직 어리잖아. 한 번만 와서 봐주면 안 될까?]예진은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예전의 윤제는 늘 냉정했고, 자존심이 높았다.그런 윤제가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부탁을 하다니.‘이 사람이... 언제 이렇게 달라졌지?’잠시 고민이 이어졌다.그러다 예진은 천천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미안하지만, 내일은 방송국 인터뷰가 잡혀 있어. 요즘 일도 많고, 스케줄도 꽉 차 있어서 병원엔 못 갈 것 같아.”“이안이 이제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니 그걸로 됐어. 전화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앞으로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윤제의 심장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래, 이젠 완전히 나한테 마음을 닫았구나.’그럼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 모든 게 결국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예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잠시의 정적 뒤 전화가 끊겼다.뚝-윤제는 핸드폰을 바라본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그래... 이게 당연한 거야. 우리가 만든 결과니까.’...예진의 눈가가 살짝 붉어진 걸 본 민혁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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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요즘 들어 윤제는 모든 걸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버티고 있었던 나날들.그런데 건우가 먼저 말을 꺼내자, 윤제는 더 이상 숨기지 못했다.긴 한숨이 터져 나왔고, 결국 아린의 일까지 모두 털어놓았다.건우는 잠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놀라기는커녕 왠지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지었다.“뭐야, 그 반응은?” 윤제가 인상을 찌푸렸다.건우는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야, 사람이라는 게 그래. 안에서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안 보여. 밖에서 보면 다 보이거든.”건우의 말투는 가볍지만, 눈빛은 진지했다.“솔직히 말해서, 네가 예진 씨하고 이혼했을 때부터 난 알았어. 너는 절대로 못 놓는다는 걸.”윤제는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건우는 그를 흘끗 보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아린이 말인데... 넌 걔를 ‘좋아했다’기보단, 그냥 어떤 미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 진짜 사랑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분노보다 슬픔이 먼저였을 거야.”‘분노보다 슬픔이라...’그 말이 윤제의 마음 깊은 곳을 콕 찔렀다.건우는 오래전부터 윤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였다.어릴 때부터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인생의 굴곡을 함께 겪어온 사이였다.예진과 이혼했을 때, 윤제는 처음엔 태연한 척했다.“예진이 나를 떠날 리가 없어.”그 말을 윤제는 입버릇처럼 했다.하지만 예진이 진짜로 떠나자, 윤제의 표정은 눈에 띄게 무너졌다.건우는 그 모든 걸 다 봤다. 결국 아린과 결혼한 것도, 일종의 반항이었다.윤제가 예진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괜찮은 척’, 그게 오히려 모든 걸 망쳤다.윤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맞잡았다.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그래, 이번엔 진짜 무너졌구나.’윤제가 이렇게 고개를 숙인 모습을 건우는 처음 봤다.그는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너희 어머니하고 이안은 어때?”윤제는 잠시 머뭇거렸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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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그게 진짜 ‘당연한 일’이었다.건우는 윤제의 얼굴에서 점점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보자,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그저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야, 내가 이런 말까지 하는 건... 너한테 뭐라도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야.”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너 예진이한테 진 빚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늦진 않았다는 거야. 고예진, 아직 재혼 안 했잖아.”윤제가 고개를 들었다.건우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그럼 된 거야. 아직 네가 쫓아갈 기회는 있는 거야. 그 사람이 널 위해 그렇게 많은 걸 포기했는데, 이제라도 네가 조금은 용기 내야지. 놓지 못하겠으면, 붙잡아. 끝까지.”그 말만 남기고, 건우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병실을 나섰다.윤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붙잡으라니... 이제 와서 내가 무슨 낯으로.’가슴속에서 오래된 후회가 천천히 피어올랐다....다음 날 아침, 이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침대 옆에서 윤제가 앉아 있었다.이안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아빠... 엄마는 안 왔어?”작은 목소리였다.윤제는 밤새 고민했다.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아이가 덜 상처받을지...하지만 막상 이안의 실망한 눈을 마주하자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그는 조심스레 죽을 떠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이안, 우리가... 엄마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잖아. 그래서 엄마가 지금 좀 속상한 거야.”“하지만, 이안이 진짜로 엄마가 보고 싶으면... 아빠하고 같이 가서 사과하자. 같이 미안하다고 하고, 엄마 기분 좋게 만들어 주자. 응?”이안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응, 좋아!”그런데 곧 고개가 다시 툭 떨어졌다.“근데 아빠... 저번에 유치원 운동회 때, 엄마 옆에 다른 애가 있었잖아. 그럼... 엄마는 이제 이안 안 좋아하는 거야? 이안이 필요 없는 거야?”윤제는 아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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