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601 - Chapter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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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1화

서류를 받아 들고 언뜻 보던 고환일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지분을... 20%나요?”서중국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진 양은 정말 제 마음에 쏙 듭니다. 그래서 저희 서일그룹의 지분 20%를 예진 양 명의로 넘기려 합니다. 그리고 혼수 비용으로 777억 원을 준비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길한 숫자를 맞춘 겁니요.”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그리고 저희 집안에서 보유하고 있는 J시 도심의 한옥 네 채 중, 일부도 혼수로 예진 양에게 줄 생각입니다.”그는 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저희 집에도 딸이 하나 있습니다. 예진 양 친구 은주요. 그래서 한옥 두 채는 은주 몫으로, 나머지 두 채는 예진 양 혼수로 줄 생각입니다.” “두 아이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면 좋겠어요. 편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고환일과 송승예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입만 벌린 채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반응을 본 서중국은 순간 긴장했다. ‘혹시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걸까?’“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저희 집안의 진심을 담은 표현일 뿐입니다. 따님을 돈으로 사려는 게 아니라, 저희가 예진 양을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드리고 싶어서 준비한 겁니다.”“혹시라도 다른 요구하실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저희 서씨 집안 식구들 모두 예진 양을 진심으로 저희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서중국의 진심 어린 말에 고환일과 송승예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두 사람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똑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큰 걸까?’‘누군가는 혼수 비용 몇십 억원도 아까워하는데...’‘누군가는 오히려 부족하다면서 더 내놓으려 하다니...’‘결국 남자의 집안의 태도는 그 남자의 태도에 달려 있는 거지.’민혁이 예진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걸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서중국의 이 정도로 성의를 보였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주식양도증서를 내려놓은 고환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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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예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민혁은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내가 너무 밀어붙였나? 결혼 이야기가 부담스러운 건가?’그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아, 그게... 부담 갖지 말아요. 우리 작은아버지가 원래 좀 급한 성격이거든요. 뭐든 당장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라서.” “곧 J시로 돌아가셔야 하니까, 그 전에 일단 확실히 해두고 싶으셨던 모양이에요.”“하지만 진짜로 부담 갖지 말아요. 우리 일은 우리 둘이 정하면 되니까. 언제든, 어떤 속도든 나는 상관없어요. 예진 씨가 준비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민혁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의 상처 때문에 혹시... 아직 결혼이란 단어 자체를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예진이 원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결혼식을 해주고 싶어.’‘재하보다 백 배는 더 낭만적으로, 누구보다 행복하게!’‘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연애만 해도 괜찮아.’‘평생이라도 옆에서 기다릴 수 있어.’민혁의 어색한 표정을 본 예진은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누가 부담된다고 했어요? 이번 일만 좀 정리되고 나면, 우리 결혼 날짜도 얘기하고 이제 정식으로 준비해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민혁은 얼른 차를 길가에 세웠다.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진을 바라봤다. 두 눈은 반짝거리면서 손끝이 떨렸다.“지금... 뭐라고 했어요?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요? 한 번만 더 말해봐요.”민혁의 얼굴에 이런 순수한 기쁨이 떠오른 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예진은 행복을 느끼면서 미소를 지었다.“결혼하자고요.”민혁은 그대로 예진을 끌어안으며 크게 웃었다.“됐어요! 드디어 됐어요! 예진 씨! 드디어... ‘결혼하자’고 말했어요!”“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진짜... 미칠 것 같았거든요.”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든 듯, 예진을 놓으면서 두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잠깐만요, 이건 반칙이에요! 프로포즈는 원래 남자가 하는 거잖아요! 다시 해야 돼요. 다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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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윤제가 완전히 포기하게 하기 위해서 예진이 이렇게 말했다는 걸... 민혁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한마디 ‘약혼자’라는 단어에 민혁의 마음은 단번에 녹아내렸다.‘약혼자... 아, 이 말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야.’그는 입이 저절로 찢어지면서, 아무리 해도 다물 수가 없었다.이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한껏 여유로운 미소로 윤제를 내려다봤다.이렇게 되자, 윤제는 어떤 말로도 예진을 흔들 수 없다는 걸 알았다.그래서 마지막으로 ‘감정’을 건드리기로 했다.“약혼자...? 두 사람, 정말 결혼하는 거야?”민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이미 준비 중입니다.”윤제가 다시 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은 네 생활을 방해하려고 온 게 아니야. 단지 부탁이 있어서 왔어. 병원에 한 번만 들러 줘.” “이안은 아직 어린애야. 예전에 누군가에게 휘둘려서 네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애는 네 아들이잖아.”윤제는 확신했다. ‘예진은 겉으로는 냉정해 보여도, 결국 마음은 약한 여자야.’‘이 세상에 자기 자식한테 완전히 정을 뗄 수 있는 엄마는 없어.’‘예진이도 예외는 아니지.’역시나 ‘이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예진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윤제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이번에 죽다 살아난 뒤로 이안이 정말 많이 변했어. 요즘엔 잠잘 때마다 ‘엄마 보고 싶어’라고 하면서 울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아빠로서 부탁한다고 생각해줘. 제발, 병원에 한 번만 와줘, 예진아.”예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때 너와 이안이 나를 불길 속에 버렸을 때는 몰랐겠지. 내가 이렇게 다시 ‘필요한 사람’이 될 줄은.”“나...” 멈칫하던 윤제가 어금니를 꽉 물고 말했다.“알아. 그땐 내가 잘못했어. 전부 내 탓이야. 하지만 이안은... 아직 아이잖아, 예진아.”예진은 순간 뭐라고 거절해야 좋을지 몰랐다.손에 식은땀이 나면서 민혁의 손을 꽉 쥐었다. ‘이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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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민혁은 예진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면서 말했다.“세상에 모진 여자는 있어도 모진 엄마는 드물어요. 아이는 아직 어려서, 어른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우는 거죠. 예진 씨가 이안이 걱정이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그는 몸을 약간 숙여서, 눈높이를 맞춰서 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언젠가 이안을 다시 데려오고 싶다면, 우리 둘이 같이 돌보면 돼요. 이제는 예진 씨 혼자가 아니잖아요.”예진은 단 한 번도 이안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그 아이의 성은 ‘부’ 씨니까.게다가 아이가 예전에 자신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그녀가 실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하지만 민혁의 따뜻한 말에 예진의 가슴 한쪽이 스르르 녹는 듯했다.‘이 사람은 언제나 내가 가장 아픈 곳을 먼저 알아차려...’‘살면서 괜히 자기 마음속에서 자신과 싸울 필요는 없어.’그렇게 다짐한 예진은 결국 오후 다섯 시 전에 모든 일을 정리했다.그리고 정확히 오후 5시가 되자, 사무실 문을 나섰다.민혁도 함께 따라 나섰다.“가요. 나도 같이 갈게요.”예진은 그가 왜 함께 가려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안에게 갔다가 혹시 내가 힘들면, 옆에서 받아주려고 그러는 거겠지.’‘하지만 이 일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해.’ 예진은 조용히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혼자 갈게요.”“이안이 사람 낯도 많이 가리고 성격도 까칠해요. 민혁 씨가 같이 가면 오히려 더 어색해할 거예요.”민혁은 지난 번에 예진이 혼자 나섰다가 위험한 일을 겪었던 그때를 떠올렸다.그날 이후로 그는 단 한 번도 예진을 혼자 내보낸 적이 없었다.남자의 표정에 걱정이 묻어나자, 그 마음을 알아차린 예진이 미소를 지었다.“그럼... 같이 가요. 대신 병원 로비에서 잠깐만 기다려줘요. 괜찮죠?”그 말을 듣고, 민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30분쯤 지나서 예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윤제는 이안에게 죽을 먹이고 있었다.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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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회복 상태가 좋아 보이네. 퇴원은 언제쯤 가능해?”윤제가 죽그릇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조금 더 경과를 봐야 해. 수치들이 안정되면 바로 퇴원할 수 있을 거야.”예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안이 재빨리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눈물이 가득 고인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마주쳤다.‘이 눈빛, 한때 내 세상이었는데.’“엄마... 드디어 왔구나. 이안이... 많이 보고 싶었어.”예진은 옷자락을 천천히 빼내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안, 착각한 모양이야. 몇 달 전에도 봤잖아. 그때 나 보기 싫다고 했던 거, 벌써 잊었어?”“엄마, 나...”“그만. 이제 그런 말 하지 마.”“앞으로 나한테 ‘엄마’라고 부르지 마. 이미 말했잖아. 나는 이제 이안 엄마가 아니야.넌 새엄마가 있잖아. 벌써 잊은 거야?”예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이안의 어깨는 더 세게 떨리면서, 눈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윤제는 당황했다. 예진이 온 이유가 아이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안 그래도 아이 상태가 불안정해. 그런 말로 상처 주지 마. 아직 어린애잖아. 그렇게 말하면 진짜라고 믿을 거야.”예진은 천천히 윤제를 바라봤다.“거짓말하지 않았어. 언젠가는 알아야 할 진실이니까.”엄마가 아직 자신을 용서하지 않은 걸로 여긴 이안이 울먹이며 말했다.“엄마, 나 이제 다 알아. 엄마만 나한테 잘 대해 줬어. 그 여자는 나쁜 사람이야. 이안이 잘못했으니까 제발 용서해줘, 엄마.”예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제가 끼어들었다.“예진아, 알아. 다 내 잘못이야.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애는... 아직 어리잖아. 세상 일릏 제대로 구분할 나이도 아니고, 그래서 그런 거야.”예진은 냉소하며 입꼬리를 올렸다.“아이는 어리니까 그렇다고 쳐. 근데 어른인 너는? 너도 구분을 못 했잖아.”‘류아린의 진짜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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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말을 마친 예진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병실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너도 크면 사람을 잘 살피도록 해. 너희 아빠처럼 사람 잘못 보지 말고.”병실 문 앞에 다가간 예진의 등 뒤로, 윤제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예진아,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는 거잖아. 정말... 마지막 기회조차 안 주는 거야?”예진은 잠시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기회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아.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는 거야. 아무튼... 앞으로 이안을 잘 부탁해.”말을 마친 그녀는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안의 울음소리도 뒤로한 채,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병실 문이 닫히는 순간, 오래도록 가슴을 누르고 있던 바윗돌이 툭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예진은 부씨 집안에 대한 마지막 미련마저도 그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엄마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안은 서럽게 울었다.너무 심하게 울자, 아이의 몸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 된 윤제가 급히 이안을 안아 토닥였다.“괜찮아, 아들. 엄마가 잠깐 화가 난 거야. 그래도 너를 보러 오긴 왔잖아.”“아빠... 엄마가 나를 버린 거야? 이제 다시는 용서 안 해주는 거야?”윤제는 더 세게 등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안이 밥도 잘 먹고, 치료도 잘 받으면... 엄마가 분명히 다시 보러 올 거야.”아무래도 아이는 단순하기 마련이다. 그 말에 금세 울음이 조금 잦아들었다.창가로 간 윤제는 병원을 나서는 예진을 내려다봤다.차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눈가엔 분한 기색이 가득했다.사실 윤제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부씨 집안 사람들이 예진에게 얼마나 심한 짓을 했는지...고작 눈물 몇 방울로 모든 걸 용서받겠다는 건 욕심이라는 것도...‘서민혁이 예진이 곁에 없다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을 거야.’...예진이 차에 타자, 민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병원에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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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두 사람이 저녁에 어떻게 축하할지 이야기하고 있던 그때, 은주한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던 예진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은주 씨, 또 무슨 일을 보고하시려고?”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은주의 쉰 목소리, 너무 울어서 목마저 쉬어 버린 절박한 목소리였다.[예진아... 나 어떡해... 나 진짜 어떻게 해야 해!]평소 털털하고 낙천적인 성격인 은주가 이렇게 감정이 무너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예진은 순간 무슨 큰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예진이 바짝 긴장하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생겼는지 천천히 말해 볼래?”얼른 스피커폰을 켜고, 민혁과 함께 숨을 죽인 채 은주의 대답을 기다렸다.[영호... 영호 씨한테... 사고가 생겼어...]은주가 이렇게 울 정도라면 절대 작은 사고가 아닐 아니다.‘혹시 영호가 임무 수행 중에...?’두 사람은 동시에 숨이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십여 분 뒤 차가 한 병원 앞에 서자, 두 사람은 은주가 알려준 곳으로 서둘러 뛰어갔다.수술실 앞에서, 은주는 거의 멍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린 모습이었다.옆에는 경찰 복장의 사람들이 서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예전에 영호와 같이 일한 동료였다.은주의 흰 옷은 선홍색 피로 얼룩져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과 피가 뒤범벅이 되어 얼굴을 타고 흘렀다.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이렇게 무너진 은주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예진과 민혁이 얼른 그녀에게 달려갔다.예진이 급히 무릎을 굽히고 은주 앞에 앉았다.“은주야... 괜찮아?”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은주는 예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품에 안겼다.“예진아... 왔구나... 드디어 와줬어...”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지금 예진은 그저 은주를 안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일행 중 한 경찰에게 눈을 돌린 민혁이 잔뜩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상황입니까? 영호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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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산탄총에 맞았습니다. 등쪽에 큰 부상을 입어서... 목숨을 건져도 제대로 회복되긴 어려울 겁니다. 이후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그 말을 들은 순간, 민혁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면서 예진도 눈살을 찌푸렸다,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은주는 겨우 좀 진정할 수 있었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웅크린 채, 은주는 다리를 껴안고서 얼굴을 무릎에 기대고 있었다.이러다 친구가 먼저 쓰러질까 걱정이 된 예진이, 옆에 붙어 앉아서 계속 달랬다.“괜찮아, 은주야. 영호 씨는 절대 무너지지 않아.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법이야. 이 고비도 분명히 넘을 수 있을 거야.”하지만 은주는 예진의 멀아 들리지도 않는 듯 그저 바닥만 바라보았다.“예진아... 피가 너무 많이 났어. 그렇게 많은 피는 처음 봤어... 등은 다 찢겨 있었고... 얼마나 아팠을까...”예진과 민혁도 다 알고 있었다.지금 은주의 마음속엔 두려움만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경찰, 특히 강력과나 마약팀의 일은 원래 위험했다.늘 칼끝 위에 서 있는 삶이라서, 사고가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그런 은주의 모습에 자신도 눈가가 뜨거워지면서, 예진은 친구의 머리를 천천히 어루만졌다.“은주야... 지금 마음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지금은 영호 씨가 더 너를 필요로 해. 무조건 버텨야 해, 알았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술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급하게 뛰어나왔다.바로 벌떡 일어난 은주가 달려갔다.“어때요? 영호 씨... 영호 씨는 어떻게 됐어요?”예진은 혹시 쓰러질까 싶어서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환자 상태가 아주 심각해서, 아직 위험한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출혈이 너무 심한데... 병원에 지금 O형 혈액이 부족합니다. 가족 중에 혹시 혈액형이 O형이신 분이 있으신가요? 지금 바로 수혈이 필요합니다.”민혁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제가 O형입니다. 바로 할게요.”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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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은주의 얼굴은 완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의사를 바라봤다.“저는... 환자의 약혼녀입니다. 어떤 말씀이든 저한테 다 해주세요.”의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산탄총 파편을 대부분 제거하긴 했습니다만... 세 개는 위치가 까다로워서 지금 상태로는 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환자의 상태도 워낙 불안정해서...”세 개의 파편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자, 예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민혁도 눈살을 깊게 찌푸렸고, 곁에 있던 형사들도 표정이 어두워졌다.친구가 혹시라도 쓰러질까 싶어서 예진이 늘 옆에 붙어 있었지만, 의외로 은주는 너무도 차분했다.“그 세 개를 끝내 못 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한숨을 내쉰 의사가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심하면... 며칠 안에 고비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비를 넘긴다 해도, 몸 안에 박힌 그 파편 세 개가 평생 고통을 줄 겁니다.”“게다가 산탄총에 맞은 왼쪽 다리도... 손상이 커서 이후 장애를 입을 가능성이 큽니다.”의사는 말을 멈칫하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의사로서는 물론 환자를 살리는 게 최선이지만...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평생 누군가 돌보는 게 필요합니다.”“환자 본인의 고통이 큰 건 말할 것도 없고... 가족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겁니다.”그 말을 들은 형사들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형사들은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현장에서 다쳐서 평생을 고통 속에 보내는 동료들을 수없이 봐왔기에.예진과 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주가 어떤 선택을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영호가 숨만 쉴 수 있다면, 은주는 절대로 그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은주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살 수만 있다면... 제가 평생 돌보겠어요.”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이런 약속을 수없이 들어봤기 때문이었다.처음엔 모두 다 굳게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포기하는 가족들도 많았다.눈앞의 여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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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하지만 은주는 단 1초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영호에게 무슨 상황이 생기면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는 듯이, 중환자실 바로 옆방에 이불을 깔고 버티면서 지냈다.민혁과 예진, 재하와 선아는 두 팀으로 나눠서 매일 교대로 병원에서 은주를 지켰다.오늘은 민혁과 예진이 있고, 그 다음 날 새벽에 재하와 선아가 와서 교대하기로 했다.예진과 민혁도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은주의 모습을 보자, 이대로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그래서 신선한 갈비를 사서 집에서 인삼갈비탕을 만든 뒤, 은주에게 가져다주었다.음식에는 입도 못 댈 줄 알았는데, 은주는 오히려 큰 그릇을 단숨에 비웠다.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가슴을 저미게 했다.평소엔 시끄럽고 밝고 씩씩했던 은주가 며칠 만에 말수도 줄고, 반응도 느려지면서...마치 순식간에 몇 살이나 더 먹은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은주가 인삼갈비탕을 막 다 먹었을 때, 때마침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되었다.그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보호복으로 갈아입었다.예진이 조용히 민혁에게 말했다.“같이 들어가 봐요. 은주 혼자 두자니 좀 불안해서...”민혁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호복을 착용했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의료진이 옆에서 당부했다.“환자가 의식은 없지만, 말은 들을 수 있어요. 아직 여전히 위험한 상태이긴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들려주세요.”은주는 조심스럽게 침대 곁에 앉았다.본능적으로 손을 잡으려다 혹시나 아프게 할까 봐, 멈칫하더니 결국 잡으려던 손을 다시 천천히 내려놓았다.민혁은 그런 은주 곁에 조용히 서 있었다.늘 시끌벅적하던 동생이 이렇게 조용히 어깨를 떨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다.손상이 심한 영호의 등은, 붕대를 감으면 상처에 들러붙어서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그래서 중환자실에서는 붕대를 감지 않은 상태였다.피부와 살점이 쩍쩍 갈라진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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