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만 보면, 마치 예진이 아린과 윤제 사이를 가로막는 진짜 ‘내연녀’처럼 보였다.‘어이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리더니 이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나?’예진은 순간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터뜨렸다.그 소리에 아린의 눈빛이 확 굳어졌다. 눈에 담긴 우월감이 단숨에 사라졌다.“뭐가 웃기지?”예진은 고개를 살짝 들고 아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야, 류아린. 요즘 세상에 이런 연애 감성 갖고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게 더 신기하거든?”“밖에선 일 잘하는 척, 잘난 척 다 하더니, 화장실에선 나 붙잡고 ‘사랑’ 타령이야?”아린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졌다.예진의 눈엔 조소가 스며 있었다.“그래, 너랑 부윤제가 운명 같은 사랑일 수는 있겠지. 근데 나랑 부윤제의 관계는, 단순히 사랑이 전부인 사이는 아니야.”“우리 결혼은 두 집안의 선택이었고, 그 안엔 감정보다 훨씬 무거운 것들이 있었어. 사랑이 있든 없든, 우리 결혼은 서로의 미래, 그리고 가족 전체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었지.”‘이 말... 참 아이러니하다.’‘예전엔 아빠가 내게 똑같이 말했을 때 나는 사랑 없는 결혼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는데...’‘지금은 그 말이, 류아린을 향한 내 무기가 된다니.’예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술 끝을 스치듯 말을 이어갔다.“우리 사이에 사랑이 많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엄연히 법적인 ‘부부’야.”“이혼 서류에 도장이 찍히기 전까진, 세상 누구도 우리 사이를 부정할 수 없어. 반면에 너는? 사랑이 넘쳐흘러도, 그 사랑은 다 불법이고, 그림자야.”“당당히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고, 공식 석상에서 ‘내 사람’이라 말할 자격조차 없잖아.”아린은 순간 숨을 멎은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예진을 노려보았다.“너...!”주먹을 꼭 쥐고 떨리는 손끝이 들킬 정도로 분노에 휩싸였다.‘그래. 내가 아프게 하려던 말, 너한테 그대로 돌려줄게.’‘그리고 이 싸움, 네가 원하는 대로는 안 흘러가.’예전의 예진은 말수가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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