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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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재하는 눈썹을 슬쩍 치켜올리며 은주를 바라봤다.“우리 은주 씨, 오늘은 제대로 한 방 먹었네? 그 경찰관님, 아무리 미녀가 자기 앞에 있어도 끄떡없고, 연락처도 안 물어보고... 이건 미션 실패니까 자진해서 벌주 한잔 받아야지?”은주는 그 말에 괜히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진짜, 내가 이런 걸로 밀릴 줄 몰랐어...’‘내가 이 정도로 무시당할 사람이냐고...’하지만 자존심을 더 자극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은주는 쿨하게 술잔을 들어 올렸다.“마시면 되지. 내가 술집 운영자야, 이 정도 술쯤이야, 뭐가 무섭겠어?”원샷.예진은 이 자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처음으로 ‘이런 분위기’의 술자리가 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살짝 어지럽긴 한데... 이렇게 기분 좋은 취기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구나.’잔이 몇 번 오간 뒤, 은주는 모두를 이끌고 클럽 안쪽의 댄스 플로어로 향했다.예진은 처음에 들어올 때, 그 공간이 가장 어색하고 이해 안 됐었다.‘저렇게 처음 보는 남녀들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서 함께 춤을 추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하지만 지금 그녀는 은주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이해됐다.‘이게... 서 변호사님이 말한 도시 여자가 즐기는 ‘밤의 라이프’구나.’은주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고, 예진도 따라 웃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면 되는 거였어.’예진은 그 작은 해방감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는 걸 느꼈다. 심지어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한참을 놀고 나서야 예진은 ‘밤의 첫 체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재하와 선아는 먼저 택시를 타고 함께 귀가했고, 민혁과 예진은 모두 취기가 꽤 올라와서 대리기사를 불렀다.은주에게 함께 귀가하자고 했지만, 오늘은 은근히 분위기에 취한 듯 손사래를 쳤다.“나는 좀만 더 놀다 갈게.”“역시...우리 은주의 체력은 진짜 넘사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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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예진은 자명종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어젯밤의 기억을 더듬었다.‘어제 서 변호사님이 뭐랬더라. 내가... 뭐라고... 최상급 노예?’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뒤는 통째로 필름이 끊긴 듯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있었다.‘어떻게 집에 올라왔지... 누가 나 데려다줬나... 설마 서 변호사님?’그리고 이불을 걷고 후다닥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어제 입고 나간 옷 그대로였다.하지만 옷에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왔다.‘으... 진짜 술 냄새... 이 옷 바로 세탁해야겠네.’예진은 바로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찬물로 얼굴을 씻은 뒤... 겨우 정신을 차렸다.‘근데... 이상하다. 어제 그렇게 술 마시고 늦게 잤는데...’‘오늘 왜 이렇게 개운하지?’또한 민혁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도시 여자들의 밤은 리셋을 위한 의식’이라는 말.‘진짜... 그 말 괜히 한 게 아니었네.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가벼워.’오늘 아침은 늘 운동하는 민혁이 나타나지 않았다.예진은 ‘설마... 숙취로 뻗었나?’ 싶어 아침 겸 해장용으로 부드러운 죽을 끓였다.그리고 정확히 8시, 죽 그릇을 들고 민혁 집 앞 문을 두드렸다.얼마간의 정적 후, 문이 열렸다.그 순간, 예진은 그대로 굳었다.문틈 사이로 나타난 민혁은 상반신을 완전히 드러낸 채, 아래는 하얀 수건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머리엔 수건을 얹은 채 물기 머금은 머리카락 사이로 물방울이 턱선과 명확한 복근을 타고 흘러내렸다.‘이게 뭐야... 왜 드라마 남주처럼 생겼어?’예진은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아니야, 쳐다보면 안 되지. 근데 왜 눈이 안 떨어져...?’민혁은 그런 예진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 정도면... 볼 건 다 본 건가요?”그 차분하면서도 살짝 짓궂은 말투에 예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미, 미안해요!”예진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뒤로 돌아섰다.귀부터 목까지 붉게 물든 예진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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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푸흡...!”예진은 입 속에서 막 삼키려던 죽을 그대로 뿜어버렸다. 입안에 있던 뜨끈한 죽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이걸... 지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고?!’민혁의 말투, 표정 모두 너무나 뻔뻔해서 예진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그걸 그렇게 태연하게 말해도 되는 거야...?’예진은 급하게 휴지를 꺼내 입을 닦았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고개도 들 수 없었다.그런 예진을 보며 민혁은 오히려 약간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뭐야. 나한테 작업 걸었다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요?”예진은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 아니! 절대 그런 뜻 아니에요!”“그럼 어떤 뜻인데요?”“그게...”‘아 망했다...’예진은 속으로 만 백 번 외쳤다.뭐라고 해도 수습이 안 되는 상황.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진짜... 차라리 죽 한 그릇 더 퍼서 저 입을 막고 싶다.’민혁은 예진의 그런 반응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자신 없어요? 그날 마신 건 술이지, 고백하는 약도 아니잖아요?”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한 민혁은 손에 묻은 죽을 털고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예진은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다.‘나 지금 놀림당한 거야?’분명히 놀리고 갔다.뻔히 알면서도 그 순간 자기가 진짜 민망해했던 게 더 부끄러웠다.예진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외쳤다.‘서민혁, 진짜... 생긴 것만 멀쩡하지, 속은 완전 시커먼 늑대잖아!’...아침 8시 반.결국 예진은 마음속 분노를 삭이면서 민혁의 차에 얌전히 탑승했다.운전석에서 민혁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운전을 시작했고, 조수석의 예진은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이며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이 사람, 진짜 즐기고 있네... 대체 회사 상사인지, 놀림꾼인지.’하지만 그런 얄미운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은 이상하게, 예진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가 있었다.‘뭐야, 나 왜 웃고 있어...’‘이 사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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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아린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금세 눈가가 붉어졌다.“다시 오빠 옆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해. 어젯밤 일은 그냥... 꿈이었다고 생각할게.”‘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진짜로 모른 척해도 되는 걸까...’아린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녀가 천천히 발을 떼려는 순간, 윤제는 본능처럼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내가... 책임질게.”아린의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스치듯 올라갔다.‘왔어... 이 말 한마디면 다 됐어.’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제를 바라보며 마치 조금 전 말이 안 들린 듯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윤제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내가... 너 책임질게.”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린은 조금 망설임도 없이 윤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그리고 남자의 허리에 팔을 감아 마치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안았다.“역시... 오빠는 날 아직 사랑하고 있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줘서 고마워.”윤제는 입술을 꾹 다물고, 결국 아린의 등을 조심스레 감쌌다.‘이미 이렇게 된 거, 책임지는 수밖에 없어...’...예진은 민혁과 함께 저녁에 있을 한 비즈니스 파티 참석할 준비 중이었다.이번 비즈니스 파티의 주최자는 과거 민혁이 담당했던 사건의 의뢰인이었다.그 사건은 꽤나 복잡하고 위험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그 이후 해당 회사의 모든 법률 자문을 민혁의 로펌이 도맡아 하게 된 상황이었다.말 그대로 ‘VIP 고객’.예진은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민혁과 함께 강남의 한 스타일링 스튜디오에 들어섰다.민혁은 버건디 컬러의 정장을 골랐다.딱 떨어지는 재단에, 고급스러운 원단.간단한 세팅만으로도 남자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특히, 이마를 드러낸 헤어스타일은 예진이 평소에 생각하던 ‘가장 잘 어울리는 민혁’ 그 자체였다.‘와... 이마가 이렇게 반듯했었구나.’‘앞머리 내린 것도 괜찮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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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민혁은 자기 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예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예쁘긴 한데, 너무 무난하잖아요. 예진 씨, 다시 생각해봐요. 진짜 ‘예진 씨다운’ 옷이 뭔지...”그 말에 다시 돌아선 예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매장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그 순간, 시선이 자연스럽게 멈춘 곳.마네킹이 입고 있는... 버건디 컬러의 광택이 은은한 드레스.오프숄더 디자인에 허리라인이 매끈하게 빠진 슬림한 실루엣.하단은 자연스럽게 퍼지는 머메이드 라인.허리 옆 라인을 따라 섬세한 레이스 위에 박힌 작은 보석들이 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거렸다.‘이런 옷, 예전에는 바로 골랐을 텐데.’결혼 전의 자신,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대담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었던 시절.‘근데... 지금 내가 이걸 입어도 괜찮을까?’망설이고 있을 때, 예진의 망설임을 눈치챈 직원이 다가왔다.“고객님,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이 드레스는 저희 디자이너 단독 라인이라 한 벌밖에 없어요. 특히 아까 들어오신 남성분 정장이랑 같은 컬렉션이에요.”예진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같은 라인...? 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게다가 고객님처럼 허리 라인이 예쁜 분은 이런 드레스를 입어줘야 진가가 드러나요. 안 입어보면 후회하실 거예요.”직원의 말에 예진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냥 한 번만. 입어만 보는 건데 어때서.’10분 뒤,피팅룸 앞 거울 앞에 선 예진은 한참 동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버건디 드레스는 그녀의 허리선을 완벽하게 감싸 안았고, 드러난 어깨와 쇄골, 반짝이는 눈빛까지... 모두 한층 살아나 있었다.‘이게... 나야?’잊고 있던 감정이 천천히 올라왔다.그때 문이 열리고, 민혁이 들어왔다.예진은 멋쩍게 거울 쪽으로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이거... 어때요?”민혁은 아무 말 없이 예진을 바라보며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진 씨, 기억해요. 무채색은 예진 씨랑 안 어울려요. 강한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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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예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아니, 아무 남자나 집으로 데려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얘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예진은 은주가 걱정되어 잔소리 하려다 꾹 참고 물었다.“그래서? 그다음은?”[그다음이 뭐겠어. 지금 저녁 다 됐는데, 예영호 그 인간 아직도 돼지처럼 자고 있어. 꿈쩍도 안 해.][너 생각해 봐, 이 사람 진짜 그냥 영영 안 일어나는 거 아냐? 나 이 사람 병원 해? 내가 하는 건 아니지? 술은 자기가 마신 거잖아!]예진은 황당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민혁을 보니, 민혁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있었다.[예진, 너 설마 우리 오빠한테 말한 건 아니지? 진짜야, 이 일, 절대 오빠한테 들키면 안 돼!]은주의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졌다.하지만 은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미 늦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거든.”잠시 정적.예진은 핸드폰 너머로 은주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를 상상할 수 있었다.‘와, 진짜 끝났다.’예진이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데, 민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사람 잘 붙들어 둬. 예진 씨는 지금 나랑 파티 가니까.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도 예영호 경찰관님이 안 깨면, 우리가 가서 병원으로 데려갈게.”단호하게 말한 민혁은 은주에게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그 시각 다른 한편, 오늘은 아린의 생일이었다.윤제가 준비한 생일 파티는 예정대로 성대하게 열렸고, 부잣집 자제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분위기를 띄웠다.그중에서도 송선재, 임건우, 허태현은 빠질 수 없는 멤버였다.파티가 시작되자 윤제가 아린과 함께 계단 위에서 등장했고, 그 순간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린은 윤제와 커플처럼 맞춘 듯한 느낌이었다.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윤제의 팔을 살포시 껴안고 있었다.윤제는 그런 아린을 위해 조심스럽게 드레스 자락을 들어주며 계단을 내려왔다.그 모습에 여기저기서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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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건우의 분석을 들은 선재와 태현은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그럼... 형수님이 윤제 형 두고 바람피운 거예요?”“윤제 형이 형수님한테... 완전히 당한 거네요?”둘 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얼굴엔 ‘대충격’이란 말이 쓰여 있었다.그 순간, 아린이 여자 하객 쪽으로 움직여서 자리를 비우자, 윤제가 세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건우는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후다닥 쑤셔 넣었다.선재와 태현은 표정을 다 숨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다른 곳을 멀뚱거리며 바라봤다.윤제는 단번에 세 사람의 수상함을 눈치채고 다가오며 물었다.“너희 셋, 뭘 그렇게 수군대?”“아, 아무것도 아니에요.”말꼬리를 흐리며 답하려는 선재를 태현이 확 끌어당겨 뒤로 숨겼다.태현은 억지로 웃으며 윤제에게 말했다.“오늘 분위기 좋네요. 아린 누나도 엄청 좋아하겠어요.”윤제는 와인잔을 살짝 들어올리며 말했다.“나랑 있으면 아린이는 항상 즐겁지.”그 순간 건우는 핸드폰을 들고 몰래 자리를 뜨려 했다.하지만 두 발짝 가기도 전에 윤제가 갑자기 손을 뻗어 핸드폰을 낚아챘다.“멀리서 봐도 셋이 핸드폰 보면서 수상하게 쑥덕거리더라. 뭘 숨기는 거야?”건우는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재와 태현도 괜히 고개를 푹 숙였다.‘이 형 성격 모르냐... 이러면 더 알려고 들겠지...’세 사람은 결국 서로 눈치를 보더니, 순순히 나란히 서서 항복하듯 입을 닫았다.역시나.윤제의 얼굴에서 웃음이 순식간에 지워졌다.건우의 핸드폰 화면 속, 확대된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이었다.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리고 얼굴은 구름 낀 하늘처럼 잿빛이었고, 인상은 잔뜩 찌푸려졌다.‘이게 뭐야. 진짜 이게... 현실이야?’선재와 태현은 숨소리조차 못 내며 눈치만 봤다.그 어색한 정적을 깨트린 건 건우였다.그는 윤제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형... 우리 다 성인이잖아. 뭐, 누구나 한 번쯤은... 잠깐 미쳐볼 수도 있지. 너무 마음 쓰지 마.”윤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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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수년 지기 사이인데, 건우, 선재, 태현이 모를 리 없었다.윤제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예진을 대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 예진은 윤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누가 건들기만 해도 바로 흔들릴 정도로, 그 사람한텐 예진이 전부야.’그런데 문제는, 윤제가 끝까지 쿨한 척한다는 거였다.‘진짜 지독하게도 아닌 척하지...’이쯤 되면 도저히 말로는 수습이 안 된다는 걸 알아챈 태현과 선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푹 숙였다.건우는 아예 대놓고 핸드폰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윤제의 시선도 대답도 무시했다.그래도 누군가 옆에서 뭐라도 중얼거리면 그나마 낫다.이렇게 다들 입을 꾹 닫고 조용해지니, 오히려 윤제 마음은 더 뒤죽박죽 엉켰다.‘왜 아무도 말을 안 해? 뭔데, 도대체 뭘 본 거야?’...다른 쪽에서 아린은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축하를 받으며 샴페인 잔을 높이 들고 한껏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사람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아린 씨 입은 드레스 오늘 처음 공개된 디자인이라면서요? 전 세계 하나뿐인 오더라던데요?”“역시 부윤제 부대표님이 얼마나 아린 씨를 아끼는지 보여주는 거잖아요. 두 분은 그냥 운명이죠.”아린은 일부러 겸손한 척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이 자리에 와서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잊지 못할 생일이 될 것 같아요.”그 옆에 서 있던 방연지도 덩달아 기분이 업됐다.잔을 들고 다 같이 건배한 후, 연지와 아린은 둘이서 팔짱을 끼고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아린아, 나 아까 선재한테 들었는데... 고예진이 부윤제에게 진짜 이혼 소송 냈다며? 그럼 이제 너랑 부윤제는 어떻게 되는 거야? 뭐 진전 있어?”아린은 사방을 한번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드레스 가슴 부분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목선 아래로 살짝 드러난 키스 자국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헐... 대박!”연지는 순간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아린은 재빨리 드레스를 다시 올리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이 정도면... 꽤 큰 진전이지 않아?”“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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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그동안 윤제는 아린의 생일에 늘 성의를 다해왔다. 불꽃놀이 서프라이즈는 기본, 뮤지컬 전관 대관까지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윤제는 아린이 좋아하던 가수를 집으로 초대해 단독 콘서트를 열기까지 했었다.그래서 지금 이 둘이 여기에서 마주친 순간, 예진은 생각할 것도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오늘 이 생일 파티, 윤제가 아린을 위해 준비했네.’‘진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게 딱 그 꼴이네.’더 얽히기 싫었던 예진은 두 사람을 피해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그런데 연지가 팔을 벌려 길을 막아섰다.“이런 차림으로 온 거 보니까, 설마 고예진 너... 아린이 생일 축하하러 온 거야?”아린은 옆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그 표정엔 ‘봐라, 결국 네 자리는 내가 가져간다’는 승자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예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지를 바라보았다.‘진짜 충직하네. 방연지, 류아린 옆에 붙어있는 거 보니까 거의 충견 수준이야.’“생일 축하? 내가 그 정도로 한가한 줄 알아? 그리고... 눈치 있으면 적당히 알아서 비키시지.”예진은 차갑게 말하며 연지의 팔을 밀치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손을 씻은 뒤 거울 앞에 서서 조용히 화장을 고치려던 그때, 뒤에서 또다시 나타난 두 사람.‘진짜 지겹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네.’아린은 예진 옆에 서서 똑같이 거울을 보며 파우더 퍼프를 얼굴에 톡톡 두드렸고, 연지는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쇼를 하면서도, 관중의 방해는 받고 싶지 않단 거지.’그때, 아린이 입을 열었다.“생각해보면, 너한테 고맙단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아. 네가 먼저 오빠를 포기해 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거든.”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드레스 앞섶을 살짝 내리며 목선 아래에 있는 선명한 키스 자국을 드러냈다.그 자국은 하얀 피부 위에 너무나 뚜렷해서, 예진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옆눈으로 다 보일 정도였다.‘참 대단하네. 이걸 굳이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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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지금 상황만 보면, 마치 예진이 아린과 윤제 사이를 가로막는 진짜 ‘내연녀’처럼 보였다.‘어이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리더니 이제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나?’예진은 순간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터뜨렸다.그 소리에 아린의 눈빛이 확 굳어졌다. 눈에 담긴 우월감이 단숨에 사라졌다.“뭐가 웃기지?”예진은 고개를 살짝 들고 아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야, 류아린. 요즘 세상에 이런 연애 감성 갖고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게 더 신기하거든?”“밖에선 일 잘하는 척, 잘난 척 다 하더니, 화장실에선 나 붙잡고 ‘사랑’ 타령이야?”아린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졌다.예진의 눈엔 조소가 스며 있었다.“그래, 너랑 부윤제가 운명 같은 사랑일 수는 있겠지. 근데 나랑 부윤제의 관계는, 단순히 사랑이 전부인 사이는 아니야.”“우리 결혼은 두 집안의 선택이었고, 그 안엔 감정보다 훨씬 무거운 것들이 있었어. 사랑이 있든 없든, 우리 결혼은 서로의 미래, 그리고 가족 전체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었지.”‘이 말... 참 아이러니하다.’‘예전엔 아빠가 내게 똑같이 말했을 때 나는 사랑 없는 결혼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는데...’‘지금은 그 말이, 류아린을 향한 내 무기가 된다니.’예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술 끝을 스치듯 말을 이어갔다.“우리 사이에 사랑이 많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엄연히 법적인 ‘부부’야.”“이혼 서류에 도장이 찍히기 전까진, 세상 누구도 우리 사이를 부정할 수 없어. 반면에 너는? 사랑이 넘쳐흘러도, 그 사랑은 다 불법이고, 그림자야.”“당당히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고, 공식 석상에서 ‘내 사람’이라 말할 자격조차 없잖아.”아린은 순간 숨을 멎은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예진을 노려보았다.“너...!”주먹을 꼭 쥐고 떨리는 손끝이 들킬 정도로 분노에 휩싸였다.‘그래. 내가 아프게 하려던 말, 너한테 그대로 돌려줄게.’‘그리고 이 싸움, 네가 원하는 대로는 안 흘러가.’예전의 예진은 말수가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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