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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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우와, 진짜 하나의 아빠예요? 난 이안이 아빠가 제일 잘생긴 줄 알았는데, 하나 아빠가 훨씬 잘생겼다!”“하나야, 너희 아빠 진짜 멋지다!”주변 아이들의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에 이안은 얼굴까지 빨개지며 씩씩거렸다.‘뭐야... 저 사람이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다 내 앞에서 하나 아빠, 하나 아빠... 진짜 재수 없어.’그 사이 민혁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예진 앞에 다가왔다.“이건 애 아빠가 하는 경기잖아요. 엄마가 굳이 무리할 필요 없으니까.”“저기...”예진은 살짝 당황했다.‘지금 뭐야, 나... 혼나고 있는 건가?’‘이 일 시킨 건 이 사람인데?’분명히 민혁 본인이 ‘하나를 꼭 챙겨줘야 한다’며 당부했던 거였는데, 정작 본인은 지금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민혁은 예진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됐어요, 제가 하나랑 뛸게요. 예진 씨는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요. 대신, 응원은 열심히 해줘야 해요.”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아까 의뢰인이랑 회의 중 아니었어요?”“회의 끝났어요. 하나 만난 지도 오래됐고 해서, 잠깐 들러봤어요.”민혁이 종종 유치원에 들렀던 게 분명해 보였다.하나는 민혁에게 팔을 감고 떨어질 줄을 몰랐고, 멋진 우리 아빠’하며 연신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이 정도로 친했구나. 괜찮아, 하나가 이렇게 좋아하니까.’예진은 마음 놓인 듯 휴게석에 앉아 조용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 사이 민혁은 하나를 안고 출발선에 섰다.윤제 역시 옆 레인에서 묵묵히 준비자세를 취했다.그 눈빛에는 묘한 승부욕이 번뜩였다.‘예진이 굳이 이혼까지 해가면서 붙잡은 남자라 이거지?’‘좋아,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예진은 자리에 앉아 병을 들고 물을 두어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들어 경기를 보았다.휘슬이 울리고, 아이를 안은 아빠들이 200미터 트랙을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예진의 시선은 자연스레 민혁에게로 향했다. 입가엔 무의식적인 미소가 번졌다.“화이팅! 민혁 씨, 하나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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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예진은 작은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기분 좋게 웃으며, 하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이 아이랑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 이렇게 웃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한편, 반대편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안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말없이 앉아 있었고, 윤제 역시 굳은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부자 사이엔 말 한마디 없었고, 그 사이에 낀 아린만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괜찮아, 그냥 게임이잖아. 오후에 다른 경기 많잖아? 우리 이안이 진짜 잘하니까, 금방 만회할 수 있어.”예전 같았으면 운동회에서 주인공은 늘 이안이었다.모든 시선이 이안을 향했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늘 우쭐했던 아이였다.하지만 오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하나’에게 쏠렸다.이안은 그게 도무지 참을 수 없는 포인트였다.‘예전엔 엄마가 있어도 별로 도움도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지금 와서 보면... 엄마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되는 기분이야.’...오전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유치원 측에서 준비한 뷔페가 식당에 차려졌다.아이들과 부모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고, 오후 프로그램은 점심과 휴식 후에 이어질 예정이었다.예진, 민혁, 하나는 창가 쪽 밝고 햇살 드는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하나는 예진에게 해맑게 말했다.“엄마, 저거 먹고 싶어요! 햄이랑 스파게티!”민혁도 뒤따라 말한다.“하나처럼 주세요. 근데 야채는 빼고, 특히 당근도 안 먹습니다.”예진은 민혁을 살짝 째려보며 말했다.“하나는 어린애니까 그렇다 쳐도, 변호사님은 어른이잖아요? 먹고 싶은 건 본인이 직접 가져가세요.”민혁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댔다.“어이, 저는 그래도 예진 씨 상사잖아요.”“죄송하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이에요. 상사건 뭐건, 해당없음이예요.”민혁은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하나에게 투정하듯 말했다.“봐라, 네 엄마. 진짜 인색하다!”하나는 까르르 웃으며 둘을 바라봤고,예진과 민혁은 식판을 들고 나란히 식사를 가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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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이렇게 감싸기만 하면, 이안이는 결국 잘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자랄 거야.’‘지금 이건 그냥 장난이 아니라, 명백한 괴롭힘이야.’‘그걸 용서하고 넘어가는 건... 애를 스스로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예진은 차갑게 윤제를 바라보며 말했다.“부이안, 그렇게까지 감쌀 거야?”윤제는 턱을 들고 되레 예진을 노려봤다.“말 조심해. 난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그때 아린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보탰다.“예진 씨, 이안이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다 알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남의 아이 때문에 자기 아이를 함부로 몰아가면 안 되죠.”그 말을 들은 예진은 눈앞의 세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누가 봐도 완벽한 한 가족이네.’‘이젠 내가 완전히 남처럼 보이겠지.’‘그래, 정말... 역겹다.’예진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이안에게 말했다.“부이안, 너 본인이 고의였는지 아니었는지 너 자신이 더 잘 알 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가 다 젖었잖아. 그러니까, 사과는 해야지.”그러자 이안은 바닥에 발을 구르며 고개를 홱 돌렸다.“싫어! 난 사과 안 할 거야! 필요하면 아빠가 돈 주면 되잖아!”‘돈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그게 네가 배운 방식이야?’예진의 속이 들끓기 시작했다.‘사람을 다치게 해도 돈으로 때우면 끝?’‘이런 가치관을 지금부터 심어주면... 이 아이는 나중에 대체 어떤 어른이 될까.’그런데 윤제는 오히려 이안의 말을 긍정하듯 말했다.“맞아, 이안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아. 필요하면 배상하면 되지. 얼마면 돼? 말해봐.”예진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였다.‘하... 진짜 이 인간들. 이제 보니, 그냥 둘 다 수준이 똑같네.’그때,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민혁이 하나를 달랜 뒤, 예진 곁으로 다가왔다.민혁의 품 안에서 하나는 어느 정도 진정된 듯 보였다.민혁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사과할 마음이 없다면, 굳이 강요할 필요도 없죠. 예진 씨,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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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이안은 아린의 말을 듣자마자, 서럽다는 듯 아린의 목을 끌어안고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엄마는 하나만 챙기고... 나는... 아무도 안 챙겨줘...’윤제도 그제야 조금 진정된 얼굴로 이안을 바라봤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린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예진 씨가 평소에 오빠한테 불만이 있었던 건 이해해. 싸우고 다투는 것도 부부 일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걸 아이한테까지 끌고 오면 안 되지.“이안이는 예진 씨 자식이기도 해. 근데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몇 번씩 창피를 주고, 다른 애만 감싸면, 그 어린 마음에 상처 안 남겠어?”아린의 말이 이어질수록 이안은 더 크게 흐느꼈고, 윤제도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맞아... 어떻게 된 게, 엄마가 저 아이에게만 엄마처럼 대하니까...’‘이안이가 저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지.’아린은 이안을 품에 안고 옆에 자리를 잡으며 달랬고,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이안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윤제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다가와 이안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이안아, 아빠가 네 마음 다 이해해. 정말 많이 속상했지.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친구한테 그렇게 하면 안 돼. 알았지?”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아린의 품에서 몸을 움츠렸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린은 속으로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이제 완전히 엄마 역할 마스터했네. 고예진, 이제 네 자리는 없어.’한편, 다른 쪽 휴게실.예진은 하나에게 마른 옷을 갈아입혀 주고 있었고, 그제야 민혁도 안으로 들어왔다.“엄마, 아빠, 하나 괜찮아요. 걱정 마요.”하나가 억지로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순간, 예진은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이렇게 속 깊은 아이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도...’‘먼저 ‘괜찮다’는 말을 하다니...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예진은 민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까 왜 말렸어요? 혹시 이안이가 제 아들이라서 제 행동에 대해 감정적으로 해석할까봐 그랬던 거예요?”민혁은 살짝 웃었다.“그런 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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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이렇게 다쳐 놓고도 괜찮다니... 일단 보건실로 먼저 가자. 고모 데려다줄게.”아린은 마치 미안하다는 듯 난처한 얼굴을 했다.“근데... 이안이는 아직 경기 중이잖아...”이그러자 이안은 손을 꼭 쥐며 고개를 저었다.“경기보다 고모가 더 중요해! 고모 다치면 이안 마음 아프단 말이야.”그렇게 둘은 아린을 중심으로 안절부절,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듯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예진은 속이 쓰리면서도 어이없어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정말... 저 상황을 다 믿는 거야?’‘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공 하나로 사람을 날려?’‘누가 봐도 류아린이 쇼하는 거잖아.’‘근데도 저 두 부자는... 전혀 의심조차 안 하네.’‘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구나.’윤제는 아린을 안은 채 예진 앞을 지나가면서도 한마디 잊지 않았다.“엄마가 고모 다치게 했어. 엄마 너무 싫어.”그리고 이어지는 윤제의 차가운 말 한마디.“고예진,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왜 엉뚱한 사람한테 화풀이야?”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완벽한 가족’이라도 되는 듯 아린을 품에 안고 보건실로 걸어갔다.남겨진 예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정말 대단하다. 이 정도 연기력으로 드라마 나가면 시청률 1위 하겠어.’그 순간, 민혁이 조용히 다가와 하나를 번쩍 안으며 말했다.“하나야, 오늘 경기는 나쁜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일찍 끝났대. 그래서 말인데, 우리 하나랑 엄마랑 아빠랑 셋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어때?”하나는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진짜요? 신난다!”민혁과 하나가 웃으며 장난을 치는 소리에 예진도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래, 내가 신경 쓸 사람은 저기 웃고 있는 아이와...’‘지금 곁에 있는 사람뿐이야.’한편, 유치원 보건실.간호사가 간단히 아린의 발을 살펴본 뒤 말했다.“크게 문제는 없어요. 살짝 접질린 정도예요. 며칠 동안은 하이힐은 피하시고,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제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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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예진과 민혁은 하나를 데리고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하나에겐 어린이 메뉴를, 두 사람은 각각 스테이크를 하나씩 주문했다.하루 종일 움직였더니 허기진 세 사람은 말없이 열심히 먹기만 했다.‘확실히 운동하고 나면 도파민이 확 도는 기분이야. 몸도 가벼워진 것 같고.’식사 중인 예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하나야, 오늘 운동회 재미있었어?”예진은 하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예진의 마음은 절로 포근해졌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히 재밌었죠! 이번 운동회가 제일 재밌었어요!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거 있어요.”민혁과 예진은 동시에 하나를 바라봤다. 하나는 눈을 반짝이며 눈치를 살폈다.“엄마는... 아빠 여자친구예요?”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민혁이 마시던 와인을 뿜을 뻔했고, 예진은 썰고 있던 스테이크 칼을 놓칠 뻔했다.‘아니... 이런 걸 묻는다고?’‘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더니... 진짜 모르는 걸까?’예진은 민망해서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려던 찰나, 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하나야, 왜 그렇게 생각했어?”하나는 볼에 잼을 묻힌 채 천진하게 말했다.“그냥... 엄마랑 아빠랑 잘 어울리잖아요. 그리고, 남자친구 여자친구여야 아기 엄마 아빠가 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하나 엄마 아빠가 돼요?”‘뭘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또 뭘 잘 아는 거 같기도 한데...’‘아냐, 이건 확실히 반쯤은 아는 거지...’예진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준비했다.하지만 이번에도 민혁이 예상을 깨고 먼저 나섰다.“그럼 하나가 아빠 대신 물어봐 줄래? 엄마가 아빠 여자친구 해줄 거냐고?”“푸흡!”예진은 물을 마시다 결국 살짝 사레가 들렸다.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하나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예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이 분위기, 대체 어떻게 수습한담?’예진은 간신히 물을 삼켰다.‘이 사람, 갑자기 왜 이러는데... 애 앞에서.’“하나야, 착하지? 어른들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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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예진은 자신이 이렇게 아침 조깅 루틴에 금방 적응할 줄은 몰랐다.민혁은 운전대를 잡은 채로, 어느새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었다.아침 식사는 여느 때처럼 예진이 준비했다.따뜻한 국물에 정성껏 부친 전까지.간단하지만 정갈한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법원으로 향했다.‘다른 사람들은 비서가 운전하는데... 나는 매일 사장 차 얻어 타네.’예진은 살짝 민망해 고개를 숙였다.‘그래도 뭐... 내 운전 실력이 아직 변호사님이 운전 맡길 정도는 아니지.’차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예진은 법정에 다가올수록 점점 긴장이 고조되자, 그 분위기를 눈치챈 민혁은 룸미러를 통해 그녀를 슬쩍 쳐다보곤 먼저 말을 꺼냈다.“이혼 소송 잘 끝내서 위자료 받으면... 수임료 꼭 챙겨줘요.”예진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이따 재판인데, 해줄 말 같은 건 없어요?”보통 변호사들은 법정 들어가기 전, 의뢰인에게 몇 가지 스크립트를 주거나 논리적으로 정리된 말투를 준비시키기 마련이다.하지만 민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그는 선글라스를 쓴 채, 입에 껌을 씹고 있었다. 번듯한 정장과 어울리지 않는 느긋한 태도였다.“제가 뭐라고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예진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몰라요... 그래도 뭔가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민혁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예진 씨, 진짜 오랫동안 전업주부였나 보다. 자기 정체성을 좀 잊은 거 아니에요? 예전에 법학 전공한 사람이잖아요.”“제가 뭐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죠. 알아서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도 안 한 거예요.”예진은 입술을 앙다물고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진짜,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된다. 머릿속이 하얘...’‘그 사람만 보고 살았던 지난 몇 년이, 지금 와선 다 낯설게 느껴져.’그동안 예진은 늘 믿어왔다.윤제를 사랑하는 자기 마음이 평생 변하지 않을 거라고.그 가정을 지키는 게 자신의 몫이라 믿고, 기꺼이 모든 걸 바쳤다.하지만 지금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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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원고 측 변호사, 진술해 주시죠.”민혁은 조용히 일어서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저희 의뢰인은 피고와 수년간 혼인 생활을 이어왔으며, 슬하에 네 살 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하지만 그 시간 동안 피고는 혼인 중 여러 차례 타인과 부적절한 관계로 의심할만 만한 행동을 지속했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재판을 앞둔 반달 전, 유치원 화재 사고입니다.“화재 당시, 저희 의뢰인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직접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반면 피고는 제3자를 먼저 구조하며, 정작 배우자인 저희 의뢰인을 방치했습니다.”“이로 인해 저희 의뢰인은 생명까지 위협받는 위기 상황에 처했으며, 이 일련의 사건들은 향후 혼인관계의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 났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민혁은 그렇게 말하며, 화재 사고 당시의 공식 보고서와 예진의 부상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재판장은 40대 중반의 여성 판사였고, 서류를 넘기던 그녀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좁혀졌다.윤제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변호사를 보았다.변호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반론을 시작했다.“우선, 저희 의뢰인은 결혼 기간 단 한 차례도, 누구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습니다.”“원고 측에서 언급한 ‘제3자’는 다름 아닌, 의뢰인의 어머니가 직접 입양하여 함께 자란 피고의 여동생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여성과의 관계로 보기 어렵습니다.”“그리고 화재 사건 당시, 구조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던 긴급 상황 속에서 피고의 여동생이 아이를 구조하며 부상당한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이후 피고 역시 소방대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전문가의 손을 통해 원고도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그러한 상황을 감정적 판단으로 단정지어 혼인 파탄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됩니다.”변호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또한, 피고는 혼인 기간에 성실히 경제활동에 전념해 왔으며, 원고의 건강 문제를 고려하여 외부 일을 맡기지 않았고, 집안 살림과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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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말을 이어가는 예진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입가엔 자조 섞인 미소까지 번졌다.“다들 웃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우리 아이한테 들은 말이 뭐였는지 아세요? ‘엄마 싫다’, ‘고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남편은요? 밥 먹으러 가면서 저한텐, ‘너 먹을 건 없어. 알아서 사 먹어’라고 했고요. 시어머니는 제게 ‘너 같은 애를 며느리로 들인 내가 눈이 멀었지’라고 했어요.”‘그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는데...’‘이젠 이런 말도 이렇게 덤덤하게 나오는구나.’법정은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해졌고, 판사는 조용히 눈살을 찌푸리며 예진을 바라보았다.그 시선엔 같은 엄마로서 느끼는 깊은 공감과 연민이 스며 있었다.민혁은 그런 예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듣고 있었구나. 진심은 결국 전해지는 법이야.’민혁은 예진이 이혼을 결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깊고 오랜 시간 혼자 외로워하며 힘들게 버텨왔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건 시작에 불과한데. 이 사람... 얼마나 많은 걸 참아왔던 걸까.’예진은 다시 고개를 들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저게 불륜이 아니고, 이게 감정 파탄이 아니라면... 정말로 궁금하니 하나만 물을게요. 사랑이 대체 뭐죠? 부부 관계라는 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너져야 무너졌다고 인정받는 거죠?”“아까 피고 측 변호사님이 말하셨죠. 가정의 모든 지출은 남편이 부담했고, 가사도우미까지 써서 저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도 재산을 요구한다고요.“근데 부윤제 씨, 당신 잊었어요? 처음엔 누가 누구한테 애원했었죠? ‘학교 그만두고 나랑 같이 살자’, ‘몸 약하니까 공부하기보다는 집에서 푹 쉬는 게 낫다’...”“‘성공한 남자 뒤엔 현명한 여자가 있다’... 그 말들을 듣고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그걸 사랑이라 착각한 내가... 바보였어요.”‘그땐 그 말들이 모두 나를 향한 배려로 느껴졌는데, 이제 와서 보면 다 무자비하게 나를 베는 칼이었어.’‘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른, 나를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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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예진과 윤제는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법정은 짧은 정적에 잠겼다.잠깐의 침묵을 깨고, 재판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원고와 피고 양측,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민혁이 조용히 일어나,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감정 파탄 여부에 대해 피고 측은 여러 가지 이유와 정황으로 혼인관계가 파탄 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선을 바꿔, 피고에게 묻고 싶습니다.”윤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민혁을 바라봤다.민혁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묘한 여유가 깃든 미소를 지었다.“혼인이 파탄 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시죠. 그렇다면 이제 반대로 여쭤보겠습니다. 피고는 원고를 아직 사랑하십니까?”윤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뭐라고요?”“제가 물은 건 간단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가.’ 감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셨으니, 그 사랑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법정 안 공기가 다시 긴장감으로 조여들었다.“아내 생일을 직접 챙긴 적 있습니까?”“아내가 아플 때 직접 간호한 적은요?”“아내의 기분이 안 좋았을 때, 아내를 기쁘게 해 준 적은 있습니까?”민혁의 말이 이어질수록, 윤제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입술을 꽉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예진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오래도록 눌러두었던 감정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래, 나도 결국 이런 말 한마디 듣고 싶었나 봐...’‘한 번이라도 날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해줬다면...’눈물이 뺨을 타고 조용히 흘렀다.민혁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랑은 겉으로 표현하고 알려줘야 하는 감정입니다. 보고 듣고 만질 수 없기에,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피고는 지금까지 어떤 행동으로 그 사랑을 증명해 왔습니까?”“사랑한다고 말만 하면 다인가요? 사랑은 귀를 막고 봐야 보이는 감정입니다. 지금까지의 무관심, 무책임, 침묵... 그게 사랑의 형태였다고요?”윤제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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