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561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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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1화

하지율이 웃음을 터뜨렸다.“지후 씨,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바이올린을 빌려주기 싫은 건 음악회가 걱정돼서가 아니라 임채아 씨가 싫어서야. 이렇게 말해야 알겠어? 부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임채아 씨가 이 바이올린에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야.”공기가 차갑게 굳어 버린 듯했다.고지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설령 이번 납치가 너랑 무관하더라도 채아는 윤택이를 구한 은인이야. 하지율, 너한테는 그 바이올린이 윤택이를 구한 은혜보다 더 중요해? 달리 생각해 보면 그 급박한 순간에 채아가 납치범을 붙잡아 준 것도 너를 도와준 거야.”고지후는 하지율을 바라봤다. 그 검은 눈동자에는 짙은 실망이 차올랐다.“내가 어렵게 내린 그 선택이 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야?”이 말을 듣고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고윤택이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지율을 올려다봤다.하지율은 고윤택을 보지 않고 말했다.“물건과 사람은 달라. 사람은 물건과 달리 생명이 있지. 윤택이랑 바이올린 중에 고르라면 난 당연히 윤택이를 고르겠어.”여기까지 말한 하지율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근데 이 납치 자작극을 벌인 사람한테 바이올린을 빌려줄 바에는 차라리 부숴 버릴 거야.”함우민이 그 말을 듣고 바로 물었다.“자작극이요? 임채아 씨가 납치 자작극을 벌였다는 말이에요?”하지율은 임채아를 힐끗 보고 냉소했다.“몸값을 누가 가져오든 상관없을 텐데, 왜 하필 나더러 가져오라고 그랬을까? 그리고 왜 그런 기분 나쁜 선택을 하라고 했을까? 물론 납치범이 지후 씨랑 원한이 있다고 떠들긴 했지만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아? 게다가 납치범이 임채아 씨랑 윤택이 앞에서 일부러 나한테 살갑게 굴던데, 그게 곧 나랑 한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어? 우습지 않아? 정말로 나랑 아는 사이였으면 숨기려고 했겠지. 왜 임채아 씨랑 윤택이가 보는 데서 우리가 아는 사이라고 티 내고 다니겠어? 그냥 스릴 넘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내가 납치를 계획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그런 걸까?”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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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하지율이 걸음을 멈추고 고윤택을 돌아봤다.“무슨 일이야?”하지율의 표정과 말투는 담담했다. 고윤택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처럼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았다.고윤택은 잠시 멍해졌다.하지율이 예전이랑 또 달라진 것 같았다.얼마 전까지 하지율이 보여주던 매정함에 화가 나고 속이 상했는데, 지금은 가슴 한구석에 바위가 놓인 듯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아이들의 눈치는 아주 빠르다.고윤택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하지율이 더는 예전처럼 고윤택을 사랑하고 아껴 주지 않는다는 걸.고윤택이 다급히 말했다.“엄마, 아까 그 일... 제가 아빠한테 말한 거 아니에요.”하지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하지율의 담담한 태도는 고윤택의 뜨거운 열정에 찬물을 뒤집어 씌워버렸다.고윤택의 눈가가 벌게졌다.“엄마, 엄마는... 정말 저를 버리고 싶은 거죠?”하지율이 말했다.“아니. 양육권이 네 아빠에게 있어도 난 여전히 네 엄마야. 엄마로서 져야 할 책임은 똑같이 질 거고.”이 말을 듣고도 고윤택은 기쁘지 않았다. 고윤택은 고개를 들어 하지율을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말했다.“엄마, 저... 아빠랑 안 살고 싶어요.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하지율은 뜻밖이라는 듯 잠시 흠칫했다.“우리 집에서 잠깐 지내고 싶다는 거야?”고윤택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하지율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아빠랑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고윤택이 말했다.“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부모님이 이혼하면 아빠랑 살지 엄마랑 살지 우리가 고를 수 있대요.”고윤택은 하지율을 올려다봤다. 맑은 눈동자에 작은 희망이 비쳤다.“엄마를 고르고 싶어요...”하지율이 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럼 채아 이모는 어떻게 할래? 나를 고르면 채아 이모를 자주 못 보게 될 텐데.”고윤택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잠깐 멈칫했다.결국 고윤택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어쩌면 어떻게 대답 해야 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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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말을 끝낸 고윤택은 조심스럽게 고지후를 올려다봤다. 표정에는 불안이 가득했다.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할머니는 늘 고윤택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고윤택은 훗날 고씨 가문의 후계자고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고.고윤택은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하지율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그런데 정시온이라는 나쁜 아이가 정말로 하지율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다.고지후는 정색하지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물었다.“왜 갑자기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 아빠랑 있는 게 싫어?”고윤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빠는 너무 바빠서 집에 잘 안 계시니까... 집에 혼자 있으면 많이 외로워요. 그리고 엄마가 해 준 밥도 먹고 싶고 엄마가 자기 전에 들려주던 동화도 정말 듣고 싶어요...”이쯤에서 고윤택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살짝 번쩍였다.“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가 제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채아 이모가 아무리 좋아도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어요.”고지후는 별로 크게 놀라지 않았다.지금까지 고윤택을 키워 온 건 하지율이었다. 그러니 하지율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그런데 고지후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윤택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아빠, 엄마랑 같이 살면서 공부도 절대 놓지 않을게요. 꼭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 있는 후계자가 될게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빠랑 할머니 보러 올게요.”고지후는 기대로 반짝이는 고윤택의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윤택아,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니?”고윤택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고윤택은 어릴 때부터 고지후를 무척 존경해 왔다. 하지율도 늘 고지후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가르쳐 줬다.다만 고지후가 너무 바빠 고윤택과 함께 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그래서 고윤택은 결국 하지율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더 크게 품게 됐다.고지후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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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고지후는 임채아가 예의 없이 멀뚱히 연정미만 바라보자 부드럽게 불렀다.“채아야?”임채아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놀란 감정을 애써 숨긴 채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연정미 씨, 안녕하세요.”연정미는 그 무례함을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임채아 씨, 만나서 반가워요.”몇 마디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뒤, 모두 각자 자리에 앉았다.임채아와 연정미가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다 보니 공통 화제가 적지 않았고 두 사람의 대화는 제법 유쾌하게 이어졌다.임채아는 속으로 약간 놀랐다. 연정미는 A대 출신은 아니지만 바이올린 실력이 높았고 식견도 상당히 높았다.음악에 대한 조예는 임채아보다 더욱 깊은 것 같았다.역시 명문가의 교육은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그럼에도 임채아는 연정미에게 질투심이 아니라 부러움만 느꼈다.격차가 너무 컸으니까 말이다.외모, 기품, 학력, 소질.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연정미가 압도적으로 우세였다.역시 명문가 아가씨 중에서 제일이라는 명성은 과장이 아니었다.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이어졌다.식사의 끝 무렵 고지후가 문득 입을 열었다.“연정미 씨,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연정미가 미소로 응했다.“지후 씨, 너무 사양하지 마세요. 전에 도움도 받았는데 이번에는 제가 돕는 게 당연하죠.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돕겠어요.”고지후가 말했다.“연재영 씨가 심다희 씨와 약혼을 논의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3개월 뒤에 채아가 음악회를 여는데, 그 특별 게스트로 심다희 씨를 모시고 싶습니다. 정미 씨가 한 말씀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그동안 고지후는 연씨 가문에 도움을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런데 이번에 이 일을 언급한 건 바로 연정미에게 은혜를 갚으라는 뜻과 다를 바가 없었다.연정미는 곧장 승낙하지 않고 몇 초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다.임채아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잠시 후, 연정미가 말했다.“우리 큰오빠가 심다희 씨와 약혼을 추진 중인 건 맞아요. 지금도 자세한 사항을 조율하고 있고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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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임채아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시선은 여전히 연정미의 귀걸이에 꽂혀 있었다.“연정미 씨, 실례지만... 잠깐만 빼서 자세히 봐도 될까요?”무례한 요청이었지만 임채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연정미가 고지후를 힐끗 쳐다보았다가 고지후가 막지 않자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물론이죠.”연정미는 귀걸이를 빼서 임채아에게 건넸다.임채아는 눈앞의 귀걸이를 꼼꼼히 살폈다.이 귀걸이 디자인은 대단히 정교했다.중앙의 보석은 비취로 만들어졌는데 그 위로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두 귀걸이는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닌 좌우 대칭이었다.임채아는 가짜 귀걸이를 가져가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처음 주용화가 귀걸이를 내놓았을 때부터 알았다. 이건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고 말이다.중앙의 비취만해도 값이 하늘을 찌를 테고 그 위의 공예는 더없이 정묘해 따라하기 불가능해 보였다.임채아는 손바닥 위 귀걸이를 내려다보았다.주용화에게서 건네받았던 그 귀걸이와 똑같았다.이런 귀걸이는 연정미 같은 명문가의 아가씨나 비로소 감당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귀걸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연정미일까?“연정미 씨, 염치없는 질문이지만... 혹시 이 귀걸이 몇 쌍 가지고 계세요?”“한 쌍뿐이에요.”“혹시 귀걸이를 잃어버린 적은요?”연정미가 임채아를 바라봤다.“없어요.”임채아는 미련을 남긴 채 귀걸이를 돌려주었다.사실 속으로는 이 귀걸이를 몹시 갖고 싶었다.하지만 연정미는 하지율이 아니다.마음에 든다고 해서 제멋대로 빼앗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연정미는 돈이 모자란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이 귀걸이는 연정미의 아버지 연태훈이 생일에 맞춰 준 선물이다.어떤 수를 써도 손에 넣을 수 없고, 달라고 할 수도 없다.결국 임채아가 확인하려던 건 하나뿐이었다.귀걸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연정미인지 아닌지.다행인 것은 연정미는 그저 그 귀걸이를 갖고 있을 뿐, 주용화가 찾는 그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하지율은 곧장 돌아가 연습을 재개했다.공연이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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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하지율이 고개를 저었다.“저랑 선배는 어릴 때부터 같이 바이올린을 연습해서 호흡에는 문제없어요.”차연지가 말했다.“문제없으면 다행이에요.”유소린이 지난번 납치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지율아, 그 납치범 잡혔어?”하지율이 답했다.“기석 씨 말로는 아직이래. 기석 씨가 고지후 쪽도 계속 지켜봤는데 거기도 못 잡았대. 이렇게 오래 못 걸리면 아마 잡기 힘들 거야.”유소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임채아 그 가식덩어리, 납치까지 네 탓으로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진짜 뻔뻔하네! 외모도 네가 낫고, 바이올린 실력도 네가 훨씬 낫고, 뭐든 비교가 안 되거든? 고지후는 도대체 임채아의 뭘 좋아하는 거야.”하지율이 담담하게 말했다.“사람마다 취향은 제각각이니까.”유소린은 임채아의 욕을 몇 마디 더 했다. 그러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이후로 임채아 이야기는 더 나오지 않았다.점심을 먹고 하지율은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소파에 앉아 진지하게 연습을 지켜보던 주용화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 하지율은 임채아가 말하던 모습과는 달랐다.일부러 임채아를 괴롭히거나 심심하면 시비 거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이번 납치 사건도 그랬다. 임채아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크게 물고 늘어질 마음은 없어 보였고, 오히려 대수롭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하지율이 이 일을 따로 더 추궁하지 않는다면... 주용화가 깔아놓은 덫은 소용이 없어진다. 함정은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는데 정작 하지율이 미끼를 물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주용화가 이런 헛수고를 한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신기하고 흥미로웠다.하지율이 정말 임채아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연기가 너무 완벽해서 주용화가 깜빡 속아 넘어간 것인지.주용화는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하지율은 한 곡을 두세 시간 반복해 연습하고 그제야 멈췄다. 옆에 두었던 악보를 집어 들고 펜으로 수정하려다, 연습실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주용화를 무심코 발견했다.“화야 씨,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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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하지율이 미간을 살짝 움직이며 고개를 돌렸다가, 칠흑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하지율은 잠시 멈칫했다가 그제야 주용화가 여기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이에요? 왜 그렇게 바라봐요?”주용화는 긴 속눈썹을 내려 시선을 거두며 감정을 숨겼다.“아니에요. 그냥 여쭤보고 싶어서요. ‘여름밤의 별’ 아직 가지고 계세요?”요 며칠 하지율이 연습할 때 쓰는 바이올린은 ‘여름밤의 별’이 아니었다. 주용화는 하지율이 그 악기를 꺼내는 걸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하지율이 대답했다.“잠깐 선배가 공연에 들고 나갔어요.”사실 ‘여름밤의 별’은 강병주에게 맡겨 둔 게 맞지만, 공연에 빌려준 건 아니었다. 하지율은 주용화가 기억상실을 가장해 일부러 접근하는 건 아닐지 여전히 경계했다. 단성훈의 일도 겪어 봤으니, 신원 미상의 사람한테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지금 하지율에게서 탐낼 만한 게 남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혹시 ‘여름밤의 별’을 망가뜨리려는 의도라면 몰랐다.하지율은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여름밤의 별’ 사용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주용화가 아쉬운 듯 말했다.“그럼 당분간은 ‘여름밤의 별’의 연주를 직접 듣기 어렵겠네요.”하지율은 곁에 놓인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여름밤의 별’은 엄마가 남겨 준 바이올린이고, 이 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연주해 온 바이올린이에요.”연씨 가문으로 돌아가기 전, 하지율의 어머니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하지율에게 건넸다. 웬만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을 한 대만 갖고 있지 않는다. 하지율도, 하지율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주용화가 하지율의 손에 든 악기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바이올린 이름은 뭐예요?”“무명이요.”주용화가 놀랐다.“이름이 없는 건가요?”하지율이 웃었다.“아니요, 이름이 ‘무명’이에요.”주용화가 잠깐 멈칫하더니 따라 웃었다.“어쩌다 그런 이름을 붙였어요? 보통은 예쁜 이름을 붙이잖아요.”하지율이 말했다.“처음 이 바이올린을 받았을 때, 예쁜 이름을 한가득 생각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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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하지율이 의아해했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주용화가 말했다.“차연지 씨 말로는, M국이 음악가들의 천국이라서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M국에 가서 연수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율 씨 바이올린 실력이 이렇게 대단한데, 혹시 거기서 연수하신 적이 있나 해서요.”하지율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네, M국에서 한동안 지낸 적 있어요.”주용화의 눈에 의미심장한 빛이 엿보였다.“그쪽에서 얼마나 지내셨어요?”하지율이 말했다.“대학까지 합치면, 한 6년 정도요.”“언제 갔어요?”이 말을 듣고 하지율이 고개를 돌려 주용화를 보았다.“제가 M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많이 궁금해요?”주용화가 말했다.“저는 M국이 낯설지 않고 이상하게 친근해요. 아마 그쪽에서 자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쪽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어요.”주용화가 설명했지만 하지율은 주용화의 질문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하지율의 출생과 지난 이야기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정기석만이 알고 있다. 고지후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일인데 당연히 주용화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다.“대학 다니던 때 그쪽에서 잠깐 살았던 거예요. 다만 학교 안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고, 가끔 공연이나 콩쿠르 때문에 외부에 나갔을 뿐이라 바깥 사정은 그리 잘 알지 못해요. 그쪽이 익숙하게 느껴지면, 제가 사람 붙여서 M국 한번 다녀오게 해 드릴 수도 있어요. 여행도 할 겸.”주용화가 말했다.“괜찮아요. 곧 음악회 준비로 바쁘시잖아요. 우선 음악회부터 챙겨요.”주용화는 하지율이 더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는 유소린 씨를 도울 일 있는지 볼게요.”하지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주용화가 나가자, 하지율은 다시 바이올린을 들었다....격조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에 젊은 남녀가 마주 앉았다.심다희가 주문을 마치고 메뉴판을 종업원에게 돌려주었다.“이걸로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종업원이 물러나자 심다희가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봤다.“연재영 씨,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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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심다희가 모르는 척 물었다.“이렇게 오래됐는데, 아직도 만날 기회를 못 잡았어요?”연재영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심다희 씨, 오늘 부른 건 특별 게스트 건으로 부탁드리려고 한 겁니다.”심다희가 미소 지었다.“아까 이미 대답해 드렸잖아요. 시간 없어요.”심다희는 구체적인 일정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곧장 거절했다. 일말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말이다.그 때문에 연재영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하지율이 뭐라고 한 겁니까?”심다희가 미간을 좁혔다.“지율이가 왜요?”연재영이 건조하게 말했다.“하지율과 정미는 사이가 좋지 않죠. 하지율이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심다희 씨가 시간도 묻지 않고 곧바로 거절하진 않았을 겁니다. 아마 정미가 뭘 부탁하든 전부 거절하라고 하지율이 일러둔 거겠죠?”심다희는 연재영을 깊이 알지 못했다. 연재영에 대한 정보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만 들어 왔다.혼담의 상대가 연재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심다희는 제법 기뻤다.연재영은 업계에서 평판이 좋고, 준수하고 침착하며, 진취적이고, 질 나쁜 취미도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스캔들 하나 없이 일만 하는 데다, 연씨 가문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류층의 많은 아가씨들은 그런 연재영을 1등 남편감으로 삼았다.심다희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았다.가문의 자원과 교육을 받는 순간부터 어떤 것은 꼭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심다희는 사랑이나 남자를 위해 가문과 부모를 등지고 지금 자리를 내려놓는 것보다는 커리어를 택하고 싶었다.적어도 커리어는 언제나 심다희의 것이니까 말이다.사랑을 선택하면 행복을 타인의 손에 맡겨야 한다.상대가 마음이 식거나 변심하게 되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심다희는 늘 이 점에 대해 현실적으로 판단했다.심다희는 진정한 사랑에 모든 걸 거는 유형은 아니었다.그래서 그동안 연애는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가문에서 정한 혼담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시간과 에너지를 자기 계발에 쏟아부었다.그리고 그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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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연재영은 몇 초간 말이 없었지만 태도는 여전히 강경했다.“어쩌면 심다희 씨가 말한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죠. 심다희 씨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요? 자초지종을 모를 때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런데 지금 하시는 행동이 딱 그 행동이네요.”심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에요. 제가 조금 성급했네요. 그럼 이렇게 하죠. 여동생분 친구가 임채아가 아니라면 체면을 봐서라도 그분 음악회의 특별 게스트로 서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임채아라면 이 일은 앞으로 다시 꺼내지 말아 주세요. 어때요?”연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하지율은 친여동생이었다. 남의 가정을 깨뜨린 불륜녀와 친여동생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는 분명했다.이때 직원이 음식을 내왔다. 심다희가 말했다.“오늘은 제가 낼게요. 다만 식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말이 끝나자 심다희가 자신이 주문했던 두 가지 요리를 포장해 달라고 직원에게 일렀다.연재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방금 심다희의 감정적인 행동은 명문가 아가씨가 보일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약혼 전이니 뭐라 할 입장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나서 조용히 일러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레스토랑을 나서며 심다희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연재영을 한 번 돌아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고지후, 제법이네. 연재영 같은 사람한테까지 손을 뻗다니.’연재영은 함부로 남의 일에 끼어드는 성격이 아니다. 둘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이 사실을 하지율에게 알려야 한다.괜히 아무것도 모른 채 손해 보면 안 되니까 말이다.그 생각에 심다희가 바로 하지율에게 전화를 걸었다....이튿날, 하지율이 막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고윤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하지율이 덤덤하게 물었다.“윤택아, 무슨 일이야?”“엄마.” 고윤택의 목소리는 약하고 떨리고 있었다.“제 외할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이 저를 낯선 데로 데려왔어요. 저... 좀 무서워요...”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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