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571 - Chapter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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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화

하지율은 애초에 이 일을 고지후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그저 고지후가 한 번도 묻지 않았을 뿐이었다.둘이 결혼하면서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다. 혼인신고 전에 고지후가 딱 한 번 물었었다. “부모님께 알려드리지 않아도 돼?”하지율은 말했다.“엄마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버지하고도 오래전부터 연락 안 해서 알려드릴 필요 없어.”그 뒤로 고지후는 하지율의 부모 이야기를 더 묻지 않았다.운전대를 잡고 있던 고지후도 그 사실을 떠올린 듯했다. 입을 열고 뭐라고 하려던 고지후가 결국 말을 삼켰다.고지후는 확실히 그런 걸 물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율과 결혼한 것이 하지율의 가문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물론,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었다.고지후가 낮게 말했다.“네 아버지 목적이 돈이라면 내가 줄 수 있어.”고지후는 오래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 아이까지 데려간 목적이 돈일 거라고 생각했다.그 말을 듣고 하지율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연정미를 알지 않아?”고지후가 잠시 멈칫했다. 하지율이 왜 갑자기 그 이름을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연정미 씨랑은 그냥 아는 사이지 친한 사이는 아니야. 몇 년 전에 우연히 좀 도와준 적 있을 뿐이야.”하지율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안 친한데 윤택이랑 임채아 데리고 연정미를 만나러 갔어?”심다희에게서 연락을 받은 뒤 하지율은 정기석에게 부탁해 이 일을 조사했다.그리고 고지후가 고윤택과 임채아를 데리고 연정미와 식사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렇다면 연재영이 이 사건을 알게 된 것도 설명이 됐다.고지후가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하는데 하지율이 먼저 얘기했다.“연정미가 직접 말해 줄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정말 안 친한가 보네.”고지후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꼬리를 올렸다.“하지율, 질투하는 거야?”하지율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임채아랑 같이 있더니 머리까지 나빠진 거야?”고지후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율이 반복해서 연정미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고지후가 물었다.“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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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연태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내가 S시에서 애를 유괴라도 하겠니? 더구나 고씨 가문은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돌보고 있으니... 날 탓할 자격 없지.”연정미가 더 말하려다, 함께 들어선 고지후와 하지율을 보고 낮게 알렸다.“아버지, 손님 오셨어요.”연태훈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율을 본 연태훈은 바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지율아, 왔구나?”그러다 고지후를 보자 싸늘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비아냥거렸다.“아이고, 고지후 씨가 아닌가. 대체 평소에 얼마나 바쁘기에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보는 건지.”고지후는 최혜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최혜은이 고윤택을 데리고 사격 연습장에 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잠시 이야기하는 사이 고윤택이 사라졌다.최혜은은 고윤택이 스스로 사격장에 들어간 줄 알았다.하지만 나중에야 고윤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사방을 돌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해 고지후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연태훈의 질책에 고지후는 화를 내지도,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았다.“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다음부턴 주의하겠습니다.”잘못을 뉘우치는 태도에 연태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 하지율을 보며 손짓했다.“지율아, 아빠 옆에 와서 앉아.”하지율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연태훈 씨, 윤택이를 여기로 데려오신 이유가 뭐죠?”그 호칭을 들은 연태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연재영과 연정미도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연재영이 먼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지율, 아버지께 그게 무슨 말투야?”하지율이 연재영을 한 번 바라보고 담담히 말했다.“예전에 당신들이 말했잖아요. 나는 더 이상 연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고. 본인들이 한 말을 벌써 잊은 거예요?”연재영의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았다.“그때는 아버지가 화가 나서 홧김에 한 말씀이지, 그걸 곧이곧대로 들으면 어떡해. 아버지는 평생 네 아버지야. 부모를 원망하는 건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아니야. 네가 그해의 일을 사과하기만 하면 넌 여전히 연씨 가문 막내딸의 대우를 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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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하지만 하지율이 아직도 그 일 때문에 기분 나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하지율, 단성훈 일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태훈이 가볍게 기침을 하며 연재영의 말을 끊었다.“재영아,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두자. 더는 꺼내지 마라.”연태훈은 온화한 사람처럼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그리고 하지율을 향해 말했다.“넌 네 엄마를 똑 닮아서 고집이 세. 됐다, 서서 얘기하지 말고 일단 앉자.”하지율이 고윤택 옆에 앉았다.“윤택아, 괜찮아?”겁에 질려있던 고윤택은 이제 마음을 놓은 듯했다.“엄마, 전 괜찮아요. 또 나쁜 사람 만난 줄 알았어요...”고윤택이 잠시 멈칫하더니 연정미를 보았다.“다행히 정미 이모가 돌아오셔서, 설명해 주셨어요.”고윤택은 예쁜 눈동자를 반짝이며 하지율을 바라봤다.“엄마, 이분들이 정말 제 친척이에요?”하지율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혈연은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하지율은 연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고, 연씨 가문 사람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고윤택한테서 선택의 권리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뭐라 답할지 망설이던 하지율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그때 내내 말이 없던 연정미가 입을 열었다.“지후 씨, 지난번에 뵈었을 때 이 일을 말하지 못해 죄송해요.”고지후가 하지율을 한 번 바라보았다. 왜 연정미가 말을 아꼈는지 짐작이 갔다.“괜찮습니다.”지난번 자리에서 헤어진 뒤 고윤택은 연정미가 건넨 선물을 열어 보았다. 최소 억대였다.연정미가 돈이 모자란 사람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값비싼 선물이었다.그때 고지후는 그저 예전에 도와준 인연 때문에 고윤택에게 후한 선물을 준 거라 여겼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고윤택을 만나 보고 싶어서 자리를 주선한 듯했다.연태훈이 말했다.“지율아, 아빠도 알아. 내가 미리 말도 하지 않고 윤택이를 데려온 건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내가 고씨 가문에서 이렇게 쉽게 아이를 데려갈 수 있었다는 건 고씨 가문에서 아이를 중요하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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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고지후는 곧장 양도서 내용을 끝까지 훑어봤다.“연태훈 선생님.” 고지후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유감이지만 윤택이의 양육권은 넘길 수 없습니다.”그 단호하고 칼 같은 거절에 연태훈과 연재영은 물론, 연정미까지도 의외라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연경 그룹 지분 5%는 천문학적 규모였으니까 말이다.고지후는 분명히 못을 박았다.“윤택이는 제 아들입니다. 어떤 조건을 내건다 해도 양육권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겠습니다.”연태훈이 말했다.“고지후, 우리에게 맡긴다고 해서 네가 운택이 아버지가 아닌 건 아니야. 너와 지율이는 영원히 그 아이의 부모다.”하지만 뜻밖에도, 고지후는 조건을 논하려 들지도 않고 그대로 거절했다.연태훈으로서는 크게 예상 밖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연씨 가문과 엮이고자 했지만 연씨 가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연씨 가문 쪽에서 먼저 고윤택을 데려가겠고 나섰는데 고지후가 오히려 거절하다니.고윤택이 연씨 가문에서 받게 될 후원과 교육은 고씨 가문과 비교할 수도 없다. 그리고 고씨 가문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연태훈은 고지후가 거절하자 이번엔 하지율을 바라봤다.“지율아, 넌 윤택이 엄마다. 네 의견을 듣고 싶구나.”하지율은 서류를 덮고 대신 고윤택을 봤다.“윤택아, 넌 어떻게 생각해?”하지율은 최정상 명문가와 일반 명문가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율의 어머니가 아무리 하지율을 훌륭히 키워 줬다 해도, 견식과 인맥 면에서 연정미를 따라잡기는 어렵다.연씨 가문이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고윤택이 고씨 가문에 머무는 것보다는 연씨 가문에서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윤택의 뜻이었다.고윤택이 입을 떼었다.“저는...”그러나 말을 잇기도 전에, 연태훈이 미소로 끊었다.“윤택이는 우리 연씨 가문의 첫 번째 손자야. 내가 이런 제안을 한 건 전적으로 아이를 위한 거다. 곧 재영이가 약혼식을 치를 거고, 상진이랑 상준이 혼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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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나자, 거실에는 연재영, 연정미, 고지후, 고윤택만 남았다. 연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고지후 씨, 정미를 시켜서 심다희 씨에게 특별 게스트를 부탁한 건, 임채아 씨 때문입니까?” 고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그 말에 연재영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처음에는 우리가 하지율과 어떤 사이인지 몰랐으니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한 걸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으니, 이 얘긴 더 꺼내지 마세요. 남의 가정을 깬 상대를 위해 친여동생의 체면과 자존심을 깎는 일 우린 못 합니다.”연정미도 뜻밖이라는 듯 고지후를 보았다.“고지후 씨, 그럼 심다희 씨가 수락했던 특별 게스트 일정이 사실 하지율 음악회였던 건가요?” 고지후는 부정하지 않았다.“죄송합니다. 그때는 여러분 사이를 몰랐고 서로 모르는 관계인 줄 알아서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연정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오해였군요. 다만... 오라버니 말이 맞아요. 우리가 도와주는 건 하지율의 얼굴에 먹칠하는 셈이죠. 미안하지만 여기까지 할게요.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면 그때 다시 말씀해 주세요.”고지후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저와 임채아 사이는 바깥에서 떠드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예전에 사귀었던 건 사실이지만 지율이와 결혼한 날부터 다시 채아와 함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임채아가 불치병을 앓고 있어 그동안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마지막 소원들을 들어주려는 것뿐이에요.” 고지후가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잘생긴 얼굴에는 당황함이 전혀 없었다.“결혼 후에 다른 여성과 바람피운 적 없습니다. 임채아와의 사이는 깨끗합니다.”이 설명을 듣고서야 연재영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어쨌든, 두 사람이 이혼한 건 임채아 씨와 무관하지는 않잖아요. 임채아 씨와는 거리를 두길 바랍니다.” 고지후가 대답했다.“채아의 음악회가 끝나면, 내가 진 빚도 끝입니다... 더는 돕지 않겠습니다.” 연재영은 단번에 말 속의 뉘앙스를 읽어냈다. 입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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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윤택아, 이모가 이따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만들어 줄까?”임채아를 보자, 고윤택은 얌전히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채아 이모.” 그리고 옆에 서 있던 하지율을 흘깃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채아 이모, 저는 이따가 엄마랑 돌아가야 해요.”임채아는 그제야 하지율을 본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지율 씨도 계시네요? 윤택아,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니?”고윤택이 대답했다.“외할아버지 보러 왔어요.”“외할아버지?” 임채아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더니 놀란 듯 하지율을 바라봤다.“하지율 씨 아버지요?”하지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지후도 더 말하려는 기색이 없었다.“채아야, 난 볼 일이 있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다음에 시간 될 때 이야기하자.”임채아가 더 말하려는 찰나, 고지후는 먼저 긴 다리를 내디뎌 차 쪽으로 걸어갔다. 고윤택도 인사한 뒤 차에 올랐다. 하지율은 임채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제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는 임채아의 눈동자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이내 임채아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다. 남자의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채아야, 요 며칠 네가 먼저 전화하는 횟수가 지난 몇 년 동안보다 더 많은 것 같아.”임채아는 군말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주용화 씨, 방금 하지율을 봤는데, 윤택이 말로는 외할아버지 댁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이 별장에 누가 사는지 확인해 주시겠어요?”하지율의 어머니는 하이현이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더는 두려울 게 없다고 여겼다.그런데 이번엔 하지율의 아버지까지 나타났다.눈앞의 크고 호화로운 별장을 보니 눈꺼풀이 자꾸 떨렸다.이 별장은 임채아가 사는 별장보다 지리적 위치도 더 좋았다. 이런 곳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하지 않다.예전엔 하지율 가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냥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이현의 딸이라는 걸 알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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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하지율이 연태훈의 딸이면, 하지율을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요?!”목소리가 날카로워져서, 그동안 유지하던 덤덤한 태도는 더는 유지할 수 없었다.예전엔 주용화를 피하기에 바빴지만, 지금은 차라리 주용화가 하지율을 당장 없애 주길 바랐다.임채아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흉측할 지경에 이르렀다.‘왜 하필 하지율에게 이런 복이 차려지는 거야?’엄마는 하이현, 아빠는 연태훈, 형제자매로는 연재영, 연정미.남편은 고지후, 소꿉친구는 강병주.거기에 정기석과 단종건의 지원까지.임채아는 질투에 휩싸여 화가 솟았다.하지율이 갖고 있는 패가 너무 좋았다.하지만 임채아한테는 멍청한 장하준과 이제는 감정이 식어버린 고지후 뿐이었다.그리고 언제든지 임채아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주용화까지.임채아의 패는 아주 형편없었다.그러니 어떻게 하지율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주용화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꼭 그렇진 않아. 연씨 가문에서 하지율의 신분을 공개할 마음이 있었다면 이 바닥에 소문이 진작 돌았겠지. 근데 이건 너무 단단히 숨겼어. 나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임채아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무슨 뜻인데요?”주용화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사실을 숨기려고 꽤 큰 공을 들였다는 뜻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하지율 때문에 연씨 가문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하지율의 신분이 공개되는 순간, 연씨 가문과 하지율의 갈등이 깊어질 거야. 예전 같았으면 하지율은 바로 매장됐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주용화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하지율 곁 친구들이 하나같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잖아. 연씨 가문이 하지율을 쥐락펴락하기가 예전만큼 쉽진 않다는 거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양쪽에서 서로 싸우는 걸 지켜보다가 무너뜨리는 편이 더 재미있지 않겠어?”그 말은 마치 안정제처럼 뒤엉킨 임채아의 마음을 가라앉혔다.이성이 점점 돌아오자 임채아가 대답했다.“맞아요. 이번에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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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차가 출발하자, 고지후가 물었다.“집에 갈래, 작업실로 갈래?”하지율이 대답했다.“작업실.”고지후가 고개를 끄덕이고 핸들을 돌렸다.그리고 백미러로 하지율을 훑더니 물었다.“기분 안 좋아 보이네?”하지율은 차가운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지후 씨랑 상관없어. 당신이 신경 쓸 건 내 기분이 아니라 임채아 병이지. 음악회를 하기 전에 병 발작하면 당신이 그동안 해 준 것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잖아.”그 비꼬는 말을 알아들은 고지후는 앞만 보며 말했다.“어제 임채아한테 전신검사를 받게 했어.”하지율이 고개를 돌렸다.“결과는? 더 나빠졌어, 나아졌어?”고지후가 잠시 뜸을 들였다.“어르신 약이 효과 좋더라고.”하지율이 입꼬리를 비꼬듯 올렸다.“그럼 나아졌다는 거네.”고지후가 말했다.“채아는 매주 검사를 받아. 처음엔 불치병이란 말을 못 믿어서 전문의 팀까지 붙여서 다시 봤는데 결과는 다 같았어.”하지율이 고지후의 말을 듣고 얘기했다.“그러니까 어르신이 날 도우려고 일부러 너를 속였다는 말이야?”“그 뜻은 아니야.”하지율은 냉소만 흘리고 말을 끊었다.임채아의 진짜 상태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고지후는 조건반사처럼 임채아의 변명을 대신 찾아줄 테니까.차 안은 고요해졌다. 고윤택은 하지율과 고지후를 번갈아 보았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무턱대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잠시 뒤, 낮고 차분한 고지후의 목소리가 울렸다.“진짜든 가짜든, 음악회만 끝나면 나도 거기까지야. 다 갚고 끝낼 거야.”하지율은 아무 관심도 없었기에 대꾸하지 않았다.차는 하지율의 작업실을 향해 달렸다. 고지후는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이내 삼켰다.그때 고윤택이 입을 열었다.“엄마, 저... 엄마 집에서 잠깐 지내도 될까요?”하지율이 고개를 돌렸다.“왜 갑자기 우리 집에 오고 싶어?”“아빠는 집에 자주 안 계셔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엄마도 보고 싶었어요.” 고윤택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하지율은 그 눈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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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고씨 가문에서 윤택이를 또 잃어버리면 법원에 소송 넣어서 양육권 가져올 거야.” 하지율은 고지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하지율은 정말 바빴다.음악회 준비도 해야 했고 각종 연주와 콩쿠르까지 참가해야 했다.그러던 어느 날. 하지율은 대회 현장에서 임채아를 발견했다.업계에서 손꼽는 대회는 몇 안 되기에 여기서 임채아를 만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었다.주변 사람들이 임채아를 보더니 웅성거리며 수군거렸다.“어? 저 사람 임채아 아니야? 이번에도 나온 거야?”“듣자 하니, 현성 대가님 추천이라서 예선도 안 본대.”“임채아가 현성 대가님 제자라며? 그럼 우린 가망 없겠네?”“세상에! 왜 매년 이런 천재들이랑 겨뤄야 하는 거야!”임채아는 현성 곁에 서서 대회 책임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율은 흘깃 보기만 하고, 담담히 시선을 거두었다.일부 대회는 업계 거장의 추천이 있으면 예선을 건너뛸 수 있다. 심지어 더 나아가 부전승으로 결승까지 경우도 있었다.겉으로는 불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추천인에게는 혹독한 제도다.자신이 추천한 제자가 허무하게 탈락이라도 당하면 추천인은 실력을 의심받는 것은 물론 평판까지 타격을 입는다.그래서 정말 특별한 사정, 예를 들면 마감 시간을 놓쳐 접수를 못 한 경우가 아니면 스승이 섣불리 추천서를 써 주지 않는다.예선이 막 시작될 즈음에 임채아가 접수하러 온 걸 보니 아마 접수 기간을 놓친 듯했다. 그래도 현성 대가의 추천이 있으니 예선을 뛰어넘어 곧장 본선에 합류할 것이다.이번 대회의 스케일은 상당했다.3년에 한 번 열리는 탓에 아무리 명장 추천이라고 해도 예선만 면제될 뿐, 결선 직행은 불가능했다.결선 상위권 선수들은 해외로 나가 국제 선수들과 친선 교류전에 나간다. 이런 국제 무대는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최근 몇 년, Z국의 음악계는 그렇다 할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팀전에서 강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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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고지후가 물었다.“차 고장 났어?”“응.”하지율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보닛 안을 계속 살폈다. 휘몰아치는 비바람 가운데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몰골은 꽤 처참했다.고지후가 말했다.“내 차로 가자. 데려다줄게.”하지율이 딱 잘라 말했다.“됐어. 친구 불러서 오라고 하면 돼.”고지후가 덧붙였다.“여기서 시내까지 차로 한 시간은 넘게 걸려. 지금 같은 폭우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릴 거야.” 그리고 잿빛 하늘을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오늘은 해도 일찍 져. 여긴 교외고, 네가 여기 혼자 있는 건 안전하지 않아.”하지율은 더 엮이기 싫어서 무미건조한 말투로 얘기했다.“내가 알아서 조심할게.”하지율이 끝내 차에 타지 않자, 고지후가 문을 열고 내려 검은 우산을 펼쳤다.하지율은 약간 굳어버린 채 경계 어린 눈으로 고지후를 쳐다보았다. 고지후는 다가와 보닛 옆에 서서 고장 난 부분을 살피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한 우산을 쓰고 있자니 상반신만 겨우 가릴 수 있었다.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점검하느라 영 불편했다.하지율은 거절하려다가 이미 반쯤 비에 젖은 고지후를 보고 그만뒀다. 지금에서야 고지후를 밀어내는 건 너무한 짓이었으니까 말이다.하지율이 고지후의 손에서 우산을 받아서 들었다.“내가 들어 줄게.”“응.” 고지후가 우산을 건넸다.굵은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닥또닥 이어졌다.물줄기가 남자의 균형 잡힌 얼굴선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잠깐 살핀 고지후가 엔진 쪽을 가리켰다.“엔진에 문제가 있어. 시동이 안 걸릴 거야. 수리 센터로 보내야 해.”하지율이 미간을 찌푸렸다.고지후가 이어서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 오늘 같은 날씨에 차에 혼자 있으면 금방 감기 걸려. 요즘 대회도 뛰고 음악회 준비도 해야 하잖아. 아프면 곤란해.”하지율은 고민 끝에 고지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시간은 늘 부족했고, 한 번 앓기라도 하면 일정이 줄줄이 틀어진다.하지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시내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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