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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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임서율은 전혜미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머릿속에서 정상적인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뒤틀린 사랑만 남은 사람과는 제대로 된 대화가 통할 리 없었다.“그래요, 혜미 씨 혼자서 천천히, 열심히 노력해 봐요. 과연 하 대표가 혜미 씨한테 눈길이라도 줄지 궁금하네요.”차갑게 말을 던지고 임서율은 뒤돌아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제야 자신이 온 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빌어먹을!’처음 전혜미를 따라올 때는 이런 함정에 빠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몇 걸음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임서율은 초조한 마음에 전혜미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앞장서요.”전혜미는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응시했다.“제가 왜 임 팀장님을 여기까지 끌고 왔겠어요? 설마 그렇게 쉽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목소리에는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당신 때문에 내가 하 대표님 앞에서 얼마나 큰 모욕을 당했는지 알아요? 임 팀장이 설령 귀머거리라 해도 나보다는 백 배는 낫다던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도대체 왜! 결혼까지 한 여자한테 내가 왜 밀려야 하는데?”임서율은 그제야 전혜미의 비뚤어진 분노를 이해했다. 전혜미는 하도원이 자신을 거절한 이유를 전부 임서율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도원의 성격상 전혜미 같은 사랑에 눈먼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했을 테니 결국 자신이 억울한 희생양이 된 셈이었다.임서율은 차가운 시선으로 전혜미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그래요. 혜미 씨가 나를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죠.”순간 전혜미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임서율을 향해 다가가 사납게 밀쳤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임서율은 속수무책으로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땐 전혜미는 이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순간적인 당황과 공포가 엄습했다.“전혜미 씨!”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메아리만 공허하게 돌아올 뿐이었다. 다급히 휴대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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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임서율은 전례가 있었던 탓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강수진마저 자신을 또 다른 함정에 빠뜨리려는 건 아닐까, 이젠 누구를 봐도 자신을 해치려 드는 것 같았다.임서율이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차 대표랑 같이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혼자 보내줬대요?”강수진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미소를 지었다. 분명 평범한 미소였지만 어쩐지 눈빛이 서늘했다.“임서율 씨, 요즘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요? 제가 아니었으면 아마 하루 종일 여기서 헤맸을 텐데.”임서율은 강수진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싫어 대놓고 말했다.“여기 차 대표도 없는데 나한테까지 연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강수진 씨, 우리 솔직해지죠.”강수진의 입꼬리가 더욱 짙게 올라갔다. 그녀의 투명하고 순수해 보이는 눈동자는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세상에는 가만히만 있어도 남자의 마음을 흔드는 여자가 존재했고 강수진이 바로 그런 타입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과 귀여운 목소리를 유지했다.“저는 임서율 씨한테 아무 악감정 없어요. 오히려 부러웠는걸요. 그렇게 오랫동안 주헌 씨 옆에 있을 수 있었던 게요.”임서율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냉정하게 받아쳤다.“그때 떠난 건 강수진 씨 선택이었잖아요. 누구 탓을 하겠어요?”강수진은 방울처럼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 안에는 명백한 조롱이 서려 있었다.“맞아요. 그땐 제 선택이었죠. 그 사람이 기다리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임서율 씨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게 있어요. 우리 둘, 아주 비슷한 부분이 있거든요.”임서율은 머릿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빠르게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설마 막장 드라마 같은...’다음 순간, 강수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등 뒤에 나비 문신이 있죠?””순간 임서율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온몸이 얼어붙었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듯한 고통이 밀려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임서율은 자신이 이미 차주헌과 강수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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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내가 어리석었어. 그런 줄도 모르고...’강수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어차피 차 대표는 서율 씨랑 결혼했잖아요. 저도 서율 씨한테 이혼하라고 강요한 적 없고요.”“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밖에 있는 다른 여자들처럼 두 사람을 이혼시키려는 짓은 안 할 테니까요.”임서율은 황당함에 비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눌렀다. 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강수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수진 씨는 남들이 이혼만 안 하면 모든 게 없던 일이 된다고 믿는 건가요?”임서율은 강수진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수진은 이미 임신 중이었고 그 뱃속의 아이를 무기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설령 그녀가 평생 숨어 내연녀로 살겠다고 해도 차씨 가문의 어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처음부터 차씨 집안 사람들은 임서율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청력을 잃은 그녀를 며느리로 맞이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컸고 차주헌이 굳이 그녀와 결혼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차씨 가문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을 것이다.이제 와서 강수진과 더 이상 논쟁을 벌일 마음은 없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미 임서율은 마음을 굳혔다. 차주헌이 자신과의 신의를 저버린 순간, 그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그녀의 성격상 눈에 티끌 하나 용납할 수 없었다.임서율은 냉소적으로 말했다.“마음대로 해요. 두 사람 관계가 어떻게 되든 그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니까요. 어서 돌아가죠.”강수진은 임서율이 이렇게까지 태연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 그녀는 차주헌이 왜 임서율을 선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분명 임서율은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강수진이 돌아서려던 순간, 오른쪽 갈림길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났다.자신이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고 여겼던 임서율은 그 익숙한 얼굴을 보는 순간, 이보다 더한 불행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한종서! 저 자식이 왜 여기 있어?’한종서는 여전히 능글맞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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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임서율은 분노가 끓어오르는 눈빛으로 한종서를 쏘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건들거리는 태도를 유지할 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순간, 임서율은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숨이 막혀왔다.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갇혀 서서히 조여 오는 듯한 압박감이었다.그녀는 그동안 한종서를 철없는 재벌 2세 정도로만 여겼고 그저 철부지에 놀기 좋아하고 늦둥이라는 이유로 한씨 가문에서 지나치게 응석받이로 자라버린 사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가 사람의 목숨마저 이렇게까지 하찮게 여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수진처럼 머리를 다쳐 뇌출혈이라도 생긴다면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종서는 그런 위험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의 머릿속엔 오직 임서율만이 존재했다.한종서가 서늘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섰다.“정말 놀랐네. 차 대표 하나만으로는 부족했어? 이번엔 하도원까지 끌어들이다니. 도대체 그 자식한테서는 뭘 받아낸 거야?”비아냥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혹시 하 대표랑 이미 잔 거야? 하긴 너처럼 예쁜 여자를 보고 아무 짓도 안 했다면, 그놈이 더 이상한 거겠지.”한종서는 지금껏 살아오며 임서율처럼 사람의 영혼을 홀려버릴 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만 봐도 쉽게 잊히지 않을 그런 미모였다. 다른 여자들은 그에게 무조건 매달려 쉽게 질렸지만 임서율은 그들과는 달랐다.임서율은 경멸이 담긴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다들 너처럼 추잡한 줄 알아?”한종서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임서율은 본능적으로 몸을 빼며 차갑게 경고했다.“지난번 일로도 집에 덜 혼났나 봐?”그 말을 듣자마자 한종서는 순식간에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영감탱이한테 맞을 일도 없었고 언론에 그렇게 더러운 소문이 퍼질 일도 없었어! 하도원 그 자식, 아주 추잡한 수를 썼더군. 감히 나한테 약을 먹이고 그런 더러운 짓을 언론에 터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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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마침 그 순간, 한종서가 틈을 놓치지 않고 임서율의 발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힘이 이 정도밖에 안 돼? 설마 일부러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한종서는 낮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목덜미에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임서율은 절망 속에서 몸을 비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는 마치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 황급히 외쳤다.“하 대표님!”한종서도 순간 멈칫하며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한종서가 비웃음을 머금고 조롱하듯 말했다.“설마 진짜 하 대표한테 마음이라도 뺏긴 거야? 도움을 청하려면 남편을 불러야지, 사람을 잘못 부른 거 아니야?”‘분명히 하 대표였는데, 왜 모른 척한 걸까?'그녀의 머릿속엔 하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원래 타인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그를 향한 미약한 기대마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오직 스스로만 믿고 살아남아야 했다.임서율은 빈틈을 노려 한종서의 급소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지만 하필이면 그가 몸을 재빨리 비트는 바람에 그녀의 공격은 허무하게 빗나가고 말았다.바로 그때 다시금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율아, 임서율!”임서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번엔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양지우의 목소리였다.“지우야, 나 여기 있어!”한종서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이 몰려들면 더 이상 상황을 수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땅에 침을 퉤 뱉으며 분노를 억눌렀다.“재수 없는 날이군! 우리 첫날밤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섬뜩한 말을 남긴 한종서는 몸을 일으키더니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임서율은 겨우 숨을 몰아쉬며 땅에서 일어났다. 양지우 일행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오늘 그녀는 정말 끔찍한 일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서둘러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이런 몰골을 누군가에게 보이기라도 한다면 내일 회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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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임서율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내가 언제 수진 씨를 밀었다고 그래요!”“괜찮아요, 서율 씨 탓 아니에요. 제가 부주의해서 넘어진 거예요.”강수진은 겁에 질린 듯 온몸을 떨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안쓰러움을 넘어 연민을 자아냈다.임서율은 더 강하게 목소리를 높였다.“다시 말하지만 난 강수진 씨를 밀지 않았어!”강수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애처로운 표정만으로 이미 주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차주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차갑게 임서율을 바라보았다.“아무리 수진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건 너무하잖아!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했어야지. 내가 알아듣게 설명해 줄 테니까.”강수진을 감싸는 차주헌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임서율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지쳐갔다. 그녀는 냉정한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분명히 말했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난 손끝 하나도 대지 않았어.”차주헌의 눈빛이 한층 싸늘해졌다.“여기엔 당신과 수진 씨뿐이었어. 당신이 아니면 대체 누가 밀었다는 거야?”단정적으로 내리는 그의 말에 임서율은 결국 변명하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씁쓸하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그런 임서율을 바라보는 차주헌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아직도 변명할 생각인가?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수진이를 밀었다는 거야?”“나는...”임서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그가 믿어줄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향해 물었다.“날 못 믿는 거야?”함께한 세월이 벌써 7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강수진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자신을 의심할 수 있었던 걸까.차주헌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고 꽉 쥔 그의 주먹에 푸른 힘줄이 팽팽하게 솟아올랐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당신을 어떻게 믿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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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설마 네 체면은 생각도 안 한다는 거야?”임서율은 그저 입술만 살짝 비틀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임서율은 고개를 들었다가 하도원이 나무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방금 전 그는 분명히 다 봤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자신을 도와줬다. 심지어 한종서 자신도 지난번 그의 추문은 하도원이 폭로했다고 말했다.왜 이번에는 못 본 척하는 걸까.하도원이라는 사람의 속마음은 정말 너무나도 복잡해서, 그녀가 그 사람과 한동안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속마음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하도원이라는 남자는 차주헌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양지우는 임서율을 부축해 주고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물었다.“어쩌다 강수진이랑 이렇게 외딴곳까지 오게 된 거야? 혹시 걔가 널 유인한 거 아니지?”“아니야,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야.”임서율은 양지우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더 말해봤자 소용없을 테니까.산에서 내려온 후, 양지우는 임서율의 상처를 처치해 주었다.임서율의 머릿속에는 계속 한종서가 자신을 괴롭히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하도원이 분명히 그때 막을 수 있었는데도 왜 못 본 척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이 하도원은 원래 그런 사람이고, 착한 사람도 아니며, 누구에게도 착한 사람 취급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었다.이 모든 것은 그녀의 생각이 그녀를 가두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그 이성이 사라지자, 임서율은 여전히 하도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양지우는 임서율의 상처를 처치해 주면서 그녀가 오랫동안 침묵하고 멍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양지우는 손을 뻗어 임서율의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서율아?”그제야 임서율은 정신을 차렸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뭔가 생각하고 있었어.”양지우는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그리고 목에 난 이 흔적은 뭐야? 누구랑 싸운 것 같잖아.”양지우가 임서율의 옷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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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임서율은 양지우를 보내고 잠시 침대에 누워 쉬려 했지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복잡했다.결국 나가서 좀 걸으려고 옷을 갈아입었다. 상처만 아니었다면 정말 샤워를 하고 싶었다.한종서의 그 손이 자신을 만졌다는 생각만 해도 임서율은 속이 울렁거렸다.그녀는 심호흡 하며 마음속의 불쾌감을 억누르고 밖으로 나섰다.이리저리 걷다 보니 뜻밖에도 작은 정원을 발견했다.작은 정원에는 나무가 가득 심겨 있었다. 푸릇푸릇한 것이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작은 길도 자갈로 잘 깔려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그네가 있었고, 주변에는 예쁜 꽃들이 심겨 있었다.임서율은 이런 환경을 좋아했다. 긴장감으로 뻐근한 몸의 힘이 저절로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그네에 다가가 양쪽 줄을 잡고 천천히 앉았다. 발을 살랑거리자 그네가 앞뒤로 느릿하게 흔들렸다.그녀는 차주헌이 자신을 밀치던 그 독기와 자신을 보던 그의 눈빛에 담긴 실망감, 의심, 심지어는 분노까지 떠올렸다.수년 동안 차주헌은 그녀에게 손찌검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더군다나 손찌검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만약 그 맹세를 어기면 벼락 맞아 죽을 것이라고까지 했다.이제 보니 그런 맹세 따위가 소용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사랑에 빠져 결국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양지우조차도 그녀가 강수진과 다툰 것이 아니라 어쩌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챘는데.차주헌은 못 본 척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발밑의 자갈을 응시했다. 무심결에 손에 상처가 있다는 것도 잊고 그네 줄을 꽉 쥐었다. 상처 부위가 쓸리자 아파서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이 정도 아픔도 못 참아요?”차가운 몇 글자와 함께, 임서율이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마침내 폭발했다.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눈가는 새빨개졌고 커다란 눈물방울들이 땅에 떨어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낮은 소리로 울기만 했다.“차주헌이 그렇게 서럽게 할 때도 울지 않더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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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그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주변에는 밀크티를 파는 곳이 없었다. 물 한 병을 사려해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하물며 밀크티 같은 사치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하도원은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프런트의 한 아가씨가 마침 밑에서 가져온 거예요. 한 잔이 남는데 내가 너무 잘생겨서 줬대요.”임서율은 하도원의 외모가 젊은 여자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사오십 대부터 십 대까지 반하게 만들 만한 얼굴이었다.하도원의 독설을 제쳐둔다면, 그녀 또한 이 남자의 외모가 정말이지 하늘이 정교하게 조각한 완벽한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가 되려면 우선 강철 같은 심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부모의 응석 속에서 자란 연약한 공주님 같은 사람이라면, 하도원이 진심으로 나서지 않아도 몇 마디 놀림만으로도 울어버릴 것이다.임서율의 휴대폰이 울렸다. 차주헌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는 받지 않았다.하지만 곧바로 문자가 화면에 떴다.[어디야?][무슨 일이야?]임서율은 사실 답장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서 끝까지 연기를 하기로 했다.[502호로 와. 물어볼 게 있어.]임서율은 가슴이 철렁했다.차주헌이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 걸까? 강수진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건가?아니면 강수진이 또 그에게 무슨 말을 한 걸까.하지만 임서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강수진의 뱃속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였다.그렇다면 차주헌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임서율은 밀크티 컵을 쥐고 있던 손을 순간적으로 움켜쥐었지만, 이내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응.]그녀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네에서 일어섰다.“하 이사님, 별일 없으시면 저는 먼저 돌아가 볼게요.”임서율은 다시 손에 든 밀크티를 들어 보였다.“밀크티 고마워요.”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그녀는 공과 사를 명확히 하는 사람이었다.하도원은 임서율의 여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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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한종서의 존재는 눈엣가시였다. 그의 집안 어르신이 아들을 너무 감싸고돌았고, 한씨 가문이 운성시에서 가진 지위와 두 집안의 관계 때문에 한종서에게 정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어쩌다 한 번씩 혼쭐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기에 한종서는 그렇게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유일한 차이점은 다른 사람들은 그를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하도원만이 적어도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굴지는 못하게 그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전진서는 임서율이 방금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방금 그 아가씨한테 설명해 줄 수도 있었잖아. 게다가 성운 그룹 직원들도 네가 미리 연락해서 온 거잖아.”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외진 곳에는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었다.하도원은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피우고 셔츠 깃을 잡아당기며 무심하게 말했다.“히어로가 좋은 일 하고 나서 생색내는 거 본 적 있어?”그것도 그렇지. 하도원은 일을 하고 나서 절대 뒤에서 생색내지 않았다.사람들이 오해해도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자신을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입만 아플 뿐이라고 항상 생각했다.“그럼 이제 한종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한종서가 요즘 꽤 한가한 것 같은데, 예전에 만났던 아가씨들 중에 몇 명은 임신했다고 그랬지?”하도원은 마디 굵은 손가락으로 담배를 집고 아무렇게나 재를 털었다.전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 아가씨들이 책임지라고 따지기는 했는데, 알다시피 한종서가 그걸 들어줄 리 없지.”“그럼 일을 좀 크게 벌여. 그 아가씨들을 전부 한 회장님 앞에 데려다 놓고, 예전에 한종서가 강압적인 수단으로 손에 넣었던 아직 대학생인 애들도 좋은 변호사 선임해서 고소하게 해.”전진서는 듣기만 해도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역시 하도원답게 한번 움직이면 무조건 큰일을 벌였다.하도원은 담배꽁초를 땅에 버리고, 검고 반짝이는 수제 가죽 신발로 밟아 뭉개고는 유유히 로비로 돌아갔다....임서율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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