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Bab 431 - Bab 440

503 Bab

제431화

임서율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대화를 듣다가 목이 막혀 기침할 뻔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임유나의 얼굴빛은 더더욱 험악하게 굳어 있었다.임유나의 마음은 늘 읽기 쉬웠다. 방금 전 그 노골적인 눈빛만 봐도 답은 뻔했다.임유나는 오석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솔직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오석후는 임유나보다 무려 열두 살이나 많았을 뿐더러, 몸집도 컸고 얼굴은 번들거렸으며 웃을 때마다 주는 그 음습한 인상까지 더해지니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힘들었다.무엇보다 그의 시선이 문제였다. 두어 번 마주쳤을 뿐인데도 마치 껍질 하나 남기지 않고 훑어보는 듯한 불쾌함을 주는 눈빛이었다.임유나가 오석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싫다는 티를 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더군다나 눈앞의 남자가 임서율과 비교까지 해버리니, 임유나로서는 더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결국 그녀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오 대표님, 언니 좋아하시는 건 알겠는데요.”임유나의 눈동자가 싸늘히 빛났다.“언니는 차 대표님이랑 이미 이혼도 했고 그동안 다른 남자들이랑 얽힌 소문도 많았어요. 그런 거 정말 상관 안 하세요?”하지만 오석후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고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태연했다.“그거야 과거죠. 결혼했던 게 뭐가 어때서요? 저는 전혀 개의치 않아요.”그는 한 번 눈썹을 치켜올리며 태연하게 덧붙였다.“중요한 건 임서율 씨 능력이에요. 그런 실력, 아무나 갖는 게 아니잖아요.”임서율의 이름은 운성시에서 한때 명실상부한 능력자의 대명사였다. 업계에서도 실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고 수많은 남자들이 해내지 못한 프로젝트를 그녀는 해냈다.임유나는 발끝으로 바닥을 꾹꾹 눌렀다.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결국 몸을 홱 돌려 자리를 떠나버렸다.임서율은 그 모든 광경을 그저 하나의 코미디처럼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곧장 마음속에서 목표를 정한 듯, 옆에 서 있던 웨이터에게 자연스럽게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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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주재훈은 앞다투어 다가와 호의를 보이는 여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무심한 목소리로 한마디 물었다.“혹시, 여기... 오목 둘 줄 아는 분 있어요?”여자들은 잠시 멍해졌다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웅성였다.“오목이요?”“저는 못 두는데요.”“오목은 좀 옛날 거 아니에요?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좋아하는 거잖아요.”“맞아요, 요즘 누가 오목을 둬요.”주재훈이 정말 오목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이렇게 해서 귀찮은 접근을 피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임서율은 잠시 그 자리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누군가 흥미를 보였다.“재훈 씨, 혹시 우리도 그 오목판 좀 볼 수 있어요?”“보시죠.”주재훈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주자 다른 여자들도 우르르 다가갔다.“어? 이거 반쯤 두다가 멈춘 거네요.”“네, 거의 막힌 판 같은데. 누군가가 판을 풀어야겠어요.”몇몇은 오목을 제대로 두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초 정도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조금이라도 안다면 시도해 볼만했다.무엇보다 주재훈은 잘생겼고 집안도 좋았다. 심지어 하도원과도 친하다는 소문이 있으니, 그를 붙잡을 수 있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하지만 하도원은 아니었다. 그 남자는 몇 년 전부터 이 바닥에서 철옹성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완벽히 닫힌 사람이었다.중간에 수많은 여자가 먼저 다가가 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받아준 적이 없었다.심지어는 그 때문에 상류층에서 퍼진 소문도 있었다. 하도원이 혹시 성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서른이 넘었는데도 여자 친구는커녕 스캔들 하나 없고 결혼은 더더욱 언감생심이었다.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가 이토록 무심하다면 사람들 입장에선 오히려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임서율은 시선을 휴대폰 화면으로 옮겼다.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고는 주재훈에게 물었다.“저기, 혹시 이 판을 풀면 보상 같은 거라도 있나요?”순간 주변의 여자들이 동시에 눈을 반짝였다.“맞아요, 보상이라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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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임서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오목에 능한 편도 아니었고 실력으로 따지자면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한번 해볼 수는 있어요.”“그래요. 도전해 봐요.”주재훈은 일부러 공평한 태도를 보였다. 임서율에게만 호의를 보인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담담하게 덧붙였다.“이렇게 하죠. 이 판을 풀어내는 사람이 있다면...”그는 잠시 말을 끊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 사람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겠습니다.”순간, 주변이 술렁였다.모여 있던 상류층 집안의 아가씨들이 일제히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바라봤다.처음엔 장난인가 싶었지만 주재훈의 표정은 진지했다.그 말은 곧, 만약 이 판을 풀 수 있다면 그와 단둘이 밤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이곳에 모인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주재훈은 플레이보이라고 불릴 만큼 가끔 바에서 노는 걸 좋아했지만 실제로는 스캔들이 거의 없었다.겉으로는 깔끔한 이미지지만 결국 남자는 남자였다. 하룻밤을 같이 지낸다면 그 이후는 본인 하기 나름이었고 여기 있는 여자들도 대부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임서율도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유를 알 수 없게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아니, 아직 풀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뭘 생각하는 거야.’그녀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어차피 풀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두는 수밖에 없었다.다른 아가씨들은 오히려 적극적이었다.“재훈 씨, 말하신 거 꼭 지키셔야 해요.”“맞아요. 약속은 약속이에요.”“잠깐만요, 우리 빨리 인터넷 찾아보자. 혹시 풀이법 있는지 볼 수도 있잖아.”하지만 누군가가 곧 비웃듯 말했다.“풀이법 있으면 재훈 씨가 이렇게 여기서 문제를 내겠어요?”“맞네, 인터넷에 답이 없으니까 이렇게 판을 들고 온 거겠지.”“그럼 우리 같은 사람이 풀 수 있을 리가...”그러자 주재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방법은 상관없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도 좋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도 좋아요.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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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주재훈은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형, 오늘 밤만 지나봐. 나중에 꼭 나한테 감사 인사하게 될 거야.’“근데요.”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 친구분, 오늘 현장에 와 계신가요? 혹시 누가 이 판을 풀어냈는데 당사자가 없으면 조금 애매할 것 같아서요.”“걱정 마세요.”주재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오늘 여기 와 있습니다.”그 말에 주변 사람들이 흥미로운 듯 서로 눈을 마주쳤다.잠시 후 몇몇이 오목판 앞으로 나서서 도전했지만 돌을 몇 수 놓아보다가 금세 포기하고 내려왔다.이미 반쯤 풀린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건드리면 바로 막히는 죽은 판이었다.반 시간 가까이 시도는 이어졌고 이 자리에서 그나마 실력 있다는 사람들은 전부 한 번씩 나섰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결국 더 이상 도전하려는 이가 없었다.주재훈은 잠시 의아해졌다. 아까 임서율이 판을 바라보며 꽤 진지하게 생각했었는데 정작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내가 너무 기대를 한 건가.’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이 판은 고수들이 인터넷에서 모여 밤새 머리를 싸매도 못 풀 정도였다. 하물며 임서율은 바둑 전문가도 아닌데 쉽게 풀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럴 줄 알았더라면 너무 어려운 걸 들고 오지 말 걸 그랬다.몇 분이 더 흘렀고 주재훈은 결국 포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또 도전할 분 있어요? 없으면 오늘은 이 판은 여기서 끝내죠.”그러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저었다.사람들 표정엔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누구도 더는 나서지 않았다.주재훈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도원 형, 미안해.’속으로 중얼거리며 옆에 있던 종업원에게 오목판을 치우라고 손짓하려던 그때 맑고 단단한 여성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울렸다.“제가 한번 해볼게요.”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주재훈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빛이 번뜩였다. 잠시 잦아들었던 기대가 다시 타오르는 듯했고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드디어 나타났네.’인파 속 하도원의 표정은 변함없었다.두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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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임유나는 임서율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독한 욕을 삼켰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를 얹고는 성큼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빛에 살기가 서려 있었는데, 이제는 마치 다정한 친자매인 양 행동했다.“언니, 언니는 그냥 여기서 구경만 해. 괜히 이런 데 끼어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어차피 언니, 바둑도 잘 모르잖아.”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목소리를 낮췄다.“게다가 아까 재훈 씨도 말했잖아. 이 판을 푸는 사람은 재훈 씨랑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거라고. 설마 언니, 그것 때문에 나서는 건 아니지?”“그런데 언니, 그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아? 그쪽이 기분 나빠하지 않겠어?”임유나는 마지막 말을 할 때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 눈엔 임서율의 인품이 수상쩍게 비쳤다.그 한마디에 주변 사람들까지 수군거리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동생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냥 뜬소문은 아니겠지? 가족사까지 아는 동생이 저렇게 말하니까 더 그럴듯해 보인다.”“나도 전에 들었어. 임서율이 한종서랑, 하 대표하고도 관계가 애매하다고.”“헐, 그럼 운성시에서 제일 잘나가는 남자들하고 다 엮인 거야? 지금은 또 주재훈까지?”“게다가 주재훈, 하 대표랑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던데. 어색하지도 않나?”다른 말들은 흘려들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마지막 한마디만큼은 임서율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었다.뭐라고? 주재훈이 하도원과 아는 사이라고?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다니!어떻게 이런 우연이...곧이어 임서율은 그 말이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차주헌이 예전부터 하도원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늘 기묘할 만큼 경계했고 마치 쥐가 고양이를 본 듯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그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대체 어떤 관계이기에 차주헌이 하도원 앞에서 그렇게까지 벌벌 떠는 걸까.만약 하도원과 주재훈이 아는 사이고, 주재훈이 차주헌의 삼촌이라면?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차주헌이 주재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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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이 판 해법을 알고 싶다고? 꿈 깨.”“너!”자신이 철저히 놀림당했다는 걸 깨닫자 그 분노와 굴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하지만 임서율 역시 표정을 굳힌 채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아까 나한테 재훈 씨가 마음에 들어서 바둑을 풀겠다고 했지? 너는 아니고?”“겉으로는 잘난 척, 청순한 척, 도도한 척 다 하더니 속으로는 나랑 같은 생각이잖아.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바보라고 생각해? 유나야, 원하면 실력으로 따내. 그게 더 당당하지 않겠어?”임유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 마치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은 듯, 굴욕과 분노가 뒤엉켜 숨이 막혔다.임서율이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망신을 줄 줄을 꿈에도 몰랐다.그때, 정설아가 앞으로 나서며 억지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별일도 아닌 걸로 싸우기는. 서율아, 동생한테 농담을 그렇게 심하게 하면 어떡하니?”하지만 임서율은 정설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조용히 오목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하얀 돌을 들어 오른쪽 상단 자리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사람들은 모두 오목판 중앙만 바라보느라 주변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그제야 모두는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목숨줄처럼 보였던 길은 사실 미끼에 불과했다는 것을.바둑판을 짠 이는 일부러 사람들의 시선을 중심에만 쏠리게 만들어, 그곳이 유일한 출구라고 믿게 한 것이었다.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보이지만,막상 붙잡고 나면 눈을 가리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순간,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서율 씨, 보통 사람이 아니네. 저 판을 이렇게 살려내다니.”“그러게, 저 자리는 너무 구석이라 아예 생각도 못 했어. 다들 가운데만 노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만 해답이 있을 줄 알았거든.”“정말 기막히다. 온라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조차 못 푼 판인데, 이 여자가 해냈잖아.”“그런 훌륭한 여자가 남자를 기쁘게 해주려고 몸을 낮출 필요가 있겠어?”“맞아. 게다가 설령 하 대표나 한종서랑 뭔가 있다 한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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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임서율은 함께 밤을 보낸다는 말에 순간 피식 웃음이 터질 뻔했다. 마치 옛날 기생집에서 기생 하나를 두고 돈 많은 이들이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주재훈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만약 그가 이 얘기를 들었다면 아마 웃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연회가 끝난 뒤, 임서율은 먼저 주재훈에게 다가갔다.주재훈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훑어보고는 조용히 물었다.“서율 씨, 그 수는 어떻게 떠올린 거예요?”임서율은 잔잔히 웃으며 대답했다.“정석대로만 가는 게 꼭 답은 아니잖아요. 전 가끔은 다른 방법도 써봐요.”즉,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주재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묘한 호감을 느꼈다. 그동안 많은 여자를 봐왔지만 이렇게 거리낌 없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다른 여자들은 다들 피하거나 머뭇거리기 마련인데 그녀는 아니었다.임서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우리 조용히 얘기 나눌 만한 데로 갈까요?”주재훈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이렇게 적극적이라고? 설마 진짜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건가?’잠시 생각하다가 그는 방 카드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그럼, 이 방으로 먼저 가 있어요.”작은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었지만 임서율은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 마치 손에 쥐고 있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움츠리며 카드를 감쌌다.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성인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도 명확했으니까.하지만 임서율은 딱히 놀랍지 않았다.주재훈은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였으니 여자와 몸을 섞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준비 좀 하고 가 있을게요.”주재훈은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래요. 준비 잘하고 필요한 건 다 챙겨가고...”말을 다 잇기도 전에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임서율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의미를 깨달았다.‘필요한 거 다 준비하라니, 남녀 사이에서 준비라면 뭐 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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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임서율이 다시 호텔에 도착했을 때, 손에는 와인 두 병이 들려 있었다.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도망칠 수 없다면 차라리 취해버리자고.그래야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쉽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방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했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마음을 다잡은 뒤, 카드키를 꺼내 갖다 댔다.문이 열렸고 임서율은 조심스레 들어가며 작은 목소리로 안쪽을 향해 불렀다.“재훈 씨, 계세요?”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울렸다.“들어와요.”순간 임서율은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곧 상대방도 긴장했겠다고 생각하며 별일 아니라고 넘겼다.방 안으로 들어가자, 주재훈은 욕실에서 샤워 중이었다. 호텔 욕실 특유의 반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흐릿한 실루엣만 보였다.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희미한 그림자와 물소리만으로도 상황은 충분히 상상됐다.임서율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발코니 쪽 의자에 앉았다.술병을 세게 움켜쥔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서로 싸우고 있었다.주재훈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했고 성인인 그녀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이미 사람을 시켜 알아본 결과, 아버지 사건을 직접적으로 맡고 있는 사람은 김도현이었다.설령 당장 누명을 벗길 수 없더라도 시간을 벌 방법은 필요했다.아버지의 몸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둘 수는 없었다.그렇게 생각하자 임서율의 눈동자에 단단한 빛이 스쳤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이번 한 번은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겨우 한 번 본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건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시선을 돌리니 테이블 위의 술병이 눈에 들어왔다. 술은 용기를 준다고 했던가, 조금이라도 마시면 머리가 흐릿해지고 감각도 무뎌질 것이다.임서율은 차라리 그게 낫다고 스스로를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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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임서율은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멍했지만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어차피 재훈 씨는 제 몸을 원하는 거고, 저도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그냥 서로 원하는 거로 거래하는 거죠.”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하듯 중얼거렸다.‘어차피 난 더 이상 꽃다운 처녀도 아니잖아. 오히려 주재훈이 그런 걸 개의치 않는 게 나한텐 다행이지.’만약 그가 깨끗한 여자를 운운하며 따졌다면 그녀에겐 손해였을 테니까.남자는 임서율을 의자에 앉히고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관찰했다.“말투 보니 마음의 준비는 끝난 것 같네요?”임서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좋아요, 그럼 행동으로 보여줘요.”남자는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고 임서율은 비틀거리며 그의 앞까지 걸어갔다.술기운이 올라 시야가 빙글빙글 돌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어지럽네요.”“괜찮아요.”임서율은 살짝 몸을 숙였지만 막상 가까워지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멈칫했다.게다가 눈앞이 계속 흔들리고 뒤집히는 듯해, 그의 얼굴 윤곽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었다.남자는 임서율의 머뭇거림을 보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살짝 당겼다.임서율은 순간 균형을 잃고 그대로 그의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코끝이 그의 몸에 닿고 말았다.“샤워는 했어요?”남자의 목소리는 이 고요한 밤에 유독 자극적으로 들렸다.임서율은 잠깐 얼어 있다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 나오기 전에 씻었어요.”남자는 피식 웃었다.“그럼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한 거네요?”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감싸 쥐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끌어당겼다.가까이서 보니, 임서율의 메이크업은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옅었다. 하얀 피부는 빛을 머금은 듯 투명했고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매끄러운 결을 드러냈다.방 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고 임서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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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당신이 준비하라고 했잖아요.”남자의 시선이 약간 놀란 듯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내가요? 내가 준비하라고 했다고?”“네, 준비 좀 해오라 하신 거 아닌가요?”임서율은 의아했다. 술도 마시지 않은 이 사람이 왜 자신보다 기억력이 더 나쁜 걸까?아니면 그녀가 잘못 알아들은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 오해였다면 그는 왜 샤워까지 했겠는가. 그 의도는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하지만 남자는 그녀 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손에 쥔 콘돔 포장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낮게 말했다.“이거 사이즈 잘못 샀어요.”임서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네?”“작아.”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크기 차이가 있는 거였어?’그녀는 아무거나 집어 계산만 하고 급히 도망치듯 나왔을 뿐이었다.차주헌이랑 있을 땐 늘 그가 직접 준비했지, 그녀가 사본 건 처음이라 전혀 몰랐다.남자는 봉지를 툭툭 흔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냥 이거 쓰죠.”더는 물러설 곳이 없음을 느낀 임서율은 작게 물었다.“침대로 갈까요?”“당신이 원하는 대로.”남자의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여유로웠다.임서율은 잠시 고민하다가 딱딱한 발코니 의자보다는 편안한 침대가 낫다고 판단했다.“그럼 침대로 가요.”남자는 그녀를 부축해 침대로 이끌었다.외투를 벗어 던지며, 그녀의 턱을 손끝으로 집어 올리더니 입술에 가볍게 두 번 입맞춤을 남겼다.뜨거운 입술이 닿는 순간, 임서율은 온몸의 세포가 끓어오르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남자는 조급해하지 않고 허리에 손을 얹어 그녀가 휘청이지 않도록 받쳐주며 천천히 키스했다.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임서율은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남자는 잠시 멈추더니 긴 팔로 그녀 등을 감싸 드레스를 내렸다.그녀는 침대 위에 눕혀졌고 머리 위로 환하게 켜진 조명을 힐끔 올려다보았다.“불 좀 꺼주실 수 있나요?”“작은 스탠드 정도는 켜둬도 괜찮지 않아요?”뜻밖의 배려에 임서율은 잠시 놀랐다.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서 받은 인상은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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