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511 - Chapter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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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1화

임서율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미간이 팍 좁혀지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역겨웠다.“네가 여길 왜 와?”한종서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느슨하게 웃었다.“나야 당연히 볼일이 있어서 왔지.”임서율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고는 정설아와 임태규를 흘끔 바라봤다.설마, 한종서가 여기 온 게 그녀와 관련 있는 건가?순간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고 정설아가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보려 웃으며 말했다.“서율아, 어차피 돌아왔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는 게 어때? 네 아버지 일도 아직 의논해야 하잖아.”하지만 임서율은 이미 얼굴을 싸늘히 굳힌 채 더 머무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아빠 일은 나중에 얘기해도 똑같아요.”정설아는 그대로 나가려던 임서율의 손목을 재빨리 붙잡았다.“서율아, 너도 알잖아. 네 아버지 몸 상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안 좋다는 거. 집안 식구라고 해봐야 우리밖에 없는데, 네가 이 집 오는 거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버지 일만큼은 우리끼리 상의해야 하지 않겠니?”임서율은 잠시 멈칫했다. 솔직히 한종서 같은 인간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회피하면 할수록 한종서는 더 집요하게 달라붙을 게 뻔했다.깊게 숨을 들이쉰 임서율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고 표정에는 조금의 인내심도 없었다.“아빠 상태는 다들 이미 아시잖아요. 하실 말씀 있으면 바로 하시죠.”임태규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한종서를 향해 말했다.“종서야, 어서 앉거라.”한종서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느긋하게 의자에 걸터앉았다.곧 도우미가 차를 내왔다.임태규는 손녀의 성격을 잘 알기에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네 아버지 상태는 너도 들었을 거다. 우리 생각엔 집안에 경사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구나. 기운도 좀 달라지고 네 아버지 건강에도 좋을 수 있겠지.”임서율은 차를 한 모금 삼키며 무심하게 대꾸했다.“곧 제 생일인데 설마 생일상이라도 차려주시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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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오늘 종서를 부른 건 바로 이 일 때문이다.”한종서가 곧장 나섰다.“어르신, 그리고 여사님도 안심하세요. 저는 서율이를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만약 서율이가 저와 결혼한다면 반드시 정성껏 대할 거예요. 예물 같은 건 말씀만 하시면 돼요.”“저희 집안은 서율이를 절대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겁니다.”정설아는 예물이라는 말에 그만 얼굴이 환해졌다.“들었어? 이게 바로 정성이 담긴 태도야. 그 잘난 체만 하던 오 대표 동생과는 달라. 괜히 잘난 척만 하던 그쪽과는 비교도 안 되네.”임서율은 바로 발끈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정설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웃음기 어린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그렇게 마음에 드신다니, 아빠랑 이혼하고 직접 시집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버르장머리 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임서율, 아무리 그래도 임씨 집안에서 자랐으면서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거냐!”임태규가 노기 띤 목소리로 꾸짖었다.정설아는 다급히 다가와 임서율의 손을 잡고 달래듯 말했다.“서율아, 나한테 뭐라 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네 할아버지는 수년째 몸이 좋지 않으시잖니. 그래도 늘 네 걱정뿐이셨다. 제발 고집 좀 꺾어. 괜히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 아버지는 어떻게 살라고 그러니.”그러나 임서율은 단호하게 손을 뿌리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소용돌이처럼 차갑고 끝을 알 수 없었다.“저희 사이에 언제부터 이런 가식적인 말이 필요했나요? 애초에 당신들은 절 임씨 집안의 사람으로 여긴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 와서 왜 이런 연극을 하는 거에요?”“경사가 필요하다 싶으니 이제 와서 절 찾는 건가요? 왜 제가 반드시 응할 거라 생각하세요?”“필요할 땐 임씨 가문의 딸, 필요 없을 땐 남남. 그게 제 위치였죠.”그 말들은 늘 가슴속에 묻어둔 것들이었다. 임규한을 생각해 굳이 다투지 않았을 뿐이지, 그렇다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도 더 이상 모르는 척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임태규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다.“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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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심지어 임서율마저 놀란 눈빛으로 하도원을 바라봤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낸 걸까.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다니.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약속했었다. 협의서에조차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당분간 관계를 밝히지 않는다’고 못 박혀 있었다.임서율이라면 언젠가 계약을 정리하고 뒤로 물러날 수도 있었지만, 하도원은 달랐다. 그에게는 감당해야 할 위험이 컸다.그런데 그는 방금 단 한마디로 모든 걸 뒤집어버렸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정설아였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가, 잠시 후 뜻을 깨닫고 얼굴빛이 굳어졌다.“도원아, 방금 뭐라고 했니? 서율이가, 서율이가 네 여자친구라고?”하도원은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무심한 눈길로 정설아를 바라봤다.“네. 문제 있습니까?”“그게...”정설아는 말끝을 흐렸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도원 같은 사람이 하필 임서율 같은 이혼녀를 택하다니.임태규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임서율과 하도원이 얽혀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쁨은커녕 얼굴빛만 더 무거워졌다.“도원아.”그가 낮게 목을 가다듬었다.“네 할아버지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분 성품이 어떠신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서율이가 처녀였을 때라면 우리가 뭐라 할 이유가 없었을 거야. 하지만 서율이는 이미 이혼했어.”“네 집안에서 받아들이겠느냐. 게다가 서율이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린 그저 하루빨리 좋은 집안에 보내 평생 기댈 수 있는 울타리를 마련해주고 싶을 뿐이야.”그의 말은 아주 노골적이었다.임서율의 심장은 얼음처럼 식어갔다. 할아버지는 결국 그녀를 임씨 가문의 수치로 못 박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 실패한 여자가 어떻게 하씨 집안과 결혼을 꿈꾸냐는 얘기였다.하도원은 귀한 집안의 후계자였고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였다. 그런 그가 왜 하필 버려진 여자와 함께하겠느냐는, 대놓고 내뱉은 모욕과도 같았다.남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흘려보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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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차라리 유나랑 계속 만나. 서율이 혼사는 우리 집안끼리 알아서 의논하는 게 좋겠어.”“게다가 이미 서율이 할아버지도 한씨 집안과 혼인을 허락하셨으니, 더는 번복하기도 어려워.”그때 얌전히 앉아 있던 한종서가 느릿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하도원과 임서율을 바라보는 한종서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더럽혀진 물건을 보는 듯했다.그는 코끝을 비스듬히 문지르며 늘 그렇듯 건들거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하도원, 난 또 왜 네가 여자를 안 만나나 했더니, 결국 얘를 기다린 거였네?”고개를 갸웃하며 느릿하게 다가온 그는 하도원 앞에 서서 턱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며 노골적인 조롱을 던졌다.“설마 벌써 잤냐? 뭐, 얼굴 보면 이해는 되지. 한 번 맛보면 놓기 힘들겠지. 근데 말이야, 이혼한 여자한테 꽂혀서 하씨 집안으로 들이겠다고? 확실해? 네 할아버지가 그 얘기 듣고도 가만히 계실까?”순간,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고 하도원은 먹빛처럼 깊고 서늘한 시선으로 한종서를 바라보았다.“네 말은 서율이를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게 아니라 잠깐 갖고 놀다 버리려는 거야?”한종서의 입술이 굳어졌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하도원은 이미 그 안에서 답을 읽어냈다.잠시 뜸을 들인 한종서는 오히려 더 잘난 체하는 어투로 내뱉었다.“글쎄, 말 잘 듣고 집안에 문제만 안 일으키면 결혼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그때 정설아가 재빨리 나서 활짝 웃었는데 마치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스르면 혼사가 깨질까 두려운 듯했다.“종서야, 걱정 마. 우리 서율이는 원래 순하고 착해서 절대 널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능력도 있잖아? 그건 너도 잘 알 테고.”“결혼하면 아이도 낳고 살림도 잘할 거야. 회사 일까지 거들 수도 있어. 솔직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니?”임서율은 그 모든 말을 담담히 듣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두고 오가는 이야기가 남 얘기인 듯, 그녀의 눈빛은 싸늘했고 표정은 무심했다.옆에서 눈치 빠른 고용인들이 속삭였다.“왜 가만히 있는 거지? 자기 혼사 문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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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한종서는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건드리면 어쩔 건데? 네가 날 건드릴 수나 있을 것 같아?”이 바닥에서 한종서의 오만한 태도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막상 감히 그를 건드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가 등에 업고 있는 든든한 배경을 생각하면, 한종서를 진짜로 건드렸다간 가문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그 위험한 판에 뛰어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하도원만이 그나마 한종서를 제어할 수 있었지 그렇다고 그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하도원의 눈빛은 칠흑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숨결마저 서늘했다.“내가 못할 것 같아?”한종서는 갑자기 고개를 젖히더니 미친 듯이 웃어댔다.“하도원, 그래서 내가 널 눈여겨보는 거야. 운성시에서 날 두려워하지 않고 입을 뗄 수 있는 건 너 하나뿐이거든.”임서율은 그 오만한 웃음만으로도 등골이 싸늘해졌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듯한 태도가 그녀를 얼어붙게 했다.운성시에서 한종서가 쥔 힘은 이미 절대적이었다.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배경까지 생각하면 그의 세력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막강했다.임서율은 순간 두려워졌다.혹시라도 하도원이 이 일로 한종서와 맞부딪히게 된다면 그건 단순히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두 집안을 뒤흔드는 싸움이 될 터였다.세상에서 사랑 때문에 모든 걸 걸 수 있는 남자는 없었다. 성공한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다.설령 하도원이 언젠가 그녀를 포기한다 해도 임서율은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없는 법이고 가족도 지켜야 했다.임서율은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스스로 앞으로 나섰다.“한종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난 너랑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임씨 집안이 무슨 합의를 했든 상관없어. 내 인생은 내 힘으로 정해.”“안 한다면 안 하는 거야. 아무도 강요 못 해.”정설아가 다급히 나섰다.“서율아, 네 할아버지도 다 너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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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어떻게 할지는 네가 알아서 정해라.”임태규는 돈과 해성 그룹의 지분, 그리고 임서율의 미래를 미끼 삼아 그녀를 압박하면 결국 무릎 꿇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 임서율이 해성 그룹을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사람이란 원래 그렇다. 많이 쏟아부은 만큼, 더 쉽게 놓지 못하는 법이다.임태규는 권력과 재산을 앞에 두고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었다.임서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은 임태규에게 다시금 자신감을 심어줬다.하지만 다음 순간, 임서율은 고개를 들었다.하도원은 그 눈빛을 본 순간, 그녀의 선택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건 여느 때보다도 단단하고 또렷하며 눈부셨으니까.“좋아요.”임서율은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해성 그룹 지분, 내놓을게요. 회사에서도 물러날 거고 임씨 가문과 관련된 건 전부 내려놓을게요. 그러면 되죠?”순간, 임태규의 눈동자가 확 좁혀졌다. 그는 입을 떡 벌린 채 말문이 막혀버렸다.“너... 너 제정신이냐?”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네가 임씨 가문과 연을 끊었다고 발표하면 넌 운성시에서 절대 발붙일 수 없어! 다들 널 뭐라고 생각하겠니!”운성시의 상류 사회가 어떤 곳인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임서율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험담할 것이다.하지만 임서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그건 제 문제예요. 할아버지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임서율이 한종서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건 임씨 가문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해 내린 결단이었다.임서율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예전부터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그녀가 임규한의 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그녀가 임규한의 피를 절반이나 이어받은 친딸이라는 게 드러났는데도 임태규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그래서 피를 나눈 관계라면 이전처럼 차갑게 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기대했었다.그런데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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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정설아는 몇 초간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성큼 다가와 임유나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유나야, 제발 헛소리하지 마! 서율이가 정말 도원이를 좋아한다면 그냥 두자. 네가 그 비밀을 말해버리면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마주 보겠니?”임서율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서늘하게 웃었다.“말해, 임유나. 네가 아는 거 다 말해. 난 상관없어.”정설아의 말은 얼핏 보면 임유나를 말리는 듯했지만, 임서율 눈에는 도리어 그녀가 기회만 노리던 사람처럼 보였다. 말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빨리 폭로해주길 바라는 눈빛이었으니까.어차피 오늘 임유나가 말하든 안 말하든, 그녀와 하도원 사이엔 이미 금이 갔다.방금 정설아가 뱉은 그 한마디는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하도원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버릴 것이다.비밀을 말해버리면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겠냐는 건, 결국 그 비밀이 하도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 아닌가.‘참 치밀하게도 계산했네, 두 사람 다.’웃긴 건 정작 임서율은 그런 비밀 따위에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도원과 그녀는 서로 필요해서 함께 있을 뿐 진짜 연애하는 게 아니니까.임서율은 허리를 곧게 펴고 오히려 임유나를 부추기듯 고개를 끄덕였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임유나는 고개를 푹 떨궜는데 아까의 거만한 기세가 조금도 없었다.“언니, 그럼 나 원망하지 마. 난 그냥 이제 언니랑 대표님이 만나니까, 서로 숨김없이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지금 말 안 하면 나중에 하 대표님이 따로 알게 됐을 때 언니한테 더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임서율은 팔짱을 낀 채 미묘한 표정으로 비웃듯 임유나를 바라봤다.“좋아. 말해봐.”임유나는 곧 하도원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은 모르실 거예요. 언니가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한테 성추행을 당했어요. 그때 학교에서 난리가 났었고 아는 사람들도 많아요.”순간, 공기가 뚝 하고 멎었고 임서율의 얼굴은 경직됐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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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하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무엇 하나 임서율을 이길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그때 정설아가 입을 열었다.“서율아,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아까 임씨 가문과 연을 끊겠다고 해놓고 회사 일까지 끼어드는 건 좀 아니지 않니?”임서율은 미소조차 없이 담담히 받아쳤다.“회사의 일에 끼어든 적 없어요. 전 그냥 아빠께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어차피 오늘 모인 것도 아빠 병세 때문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예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서늘한 시선으로 임씨 일가를 훑었다.“앞으로 임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든 절대로 손대지 않을 거예요.”말을 끝내자마자, 임서율은 등을 곧게 펴고 한 치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뒤돌아 문 쪽을 향해 걸었다.“잠깐!”한종서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임서율은 몸을 돌리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아까 들었지? 난 이제 임씨 가문 딸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랑 결혼하겠다는 계획, 물거품 됐네.”잠시 말을 멈춘 뒤,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임유나를 바라봤다.“하지만 임씨 가문 아가씨는 이제 한 사람 남았지. 한종서, 차라리 임유나를 고려해보는 건 어때?”한종서는 코웃음을 치더니 대놓고 바닥에 침을 내뱉었다.“쳇! 아무나 우리 집안에 드나들 수 있는 줄 아나? 하루 종일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향수 냄새까지 지독한 여자, 바깥 술집에 널리고 널렸어.”임유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고 이마에 핏줄까지 도드라졌다.“그만해!”정설아는 임유나가 성질을 못 이겨 한종서와 맞붙기라도 할까 봐 황급히 막아섰다. 한종서 같은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때 한종서가 임서율을 향해 피식 웃었다.“임서율, 이런 일이 있었다니 참 안타깝네. 하지만 걱정 마. 난 신경 안 써. 너만 좋다면 약속했던 대로 예정된 날짜에 약혼식 진행하면 돼.”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어차피 하도원 집안으로는 시집 못 갈 거야. 그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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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임서율도 지지 않고 날을 세웠다.“걱정 마. 평생 혼자 살아도 절대로 너랑은 결혼 안 해.”한종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투를 어깨에 툭 걸친 채 건들거리며 밖으로 나갔다.임서율은 하도원과 함께 차에 올라 조수석에 앉았지만 한동안 멍하니 숨만 고르고 있었다.방금까지는 분노에 휩쓸려 맞서 싸웠지만 정신이 가라앉자 곧바로 두려움이 몰려왔다.만약 오늘 하도원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설령 끝까지 임씨 가문과 맞붙는다 해도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그땐 그녀의 인생도 완전히 끝장났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도원이 버티고 서 있는 한, 감히 누구도 함부로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하도원이 선택한 여자’라면 임씨 가문조차 섣불리 손댈 수 없을 것이다. 그들도 억지로 한종서와 혼인을 밀어붙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터였다.그때, 하도원이 불쑥 몸을 기울였다.임서율은 깜짝 놀라 몸을 굳혔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평소엔 날카롭게 빛나던 그의 눈매가 지금은 어쩐지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툭.하도원의 손가락이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튕겼다.“왜 그래, 서율아. 설마 내 잘생긴 얼굴에 홀린 거야?”순간, 긴장으로 팽팽히 당겨 있던 마음이 풀렸다.임서율은 코웃음을 치며 맞받았다.“자기 얼굴 얘기만 나오면 끝이 없네요. 혹시 병원 가서 자뻑 검사라도 받아보시죠?”정색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졌다.하도원은 빙긋 웃으며 그녀 앞으로 손을 뻗더니 안전벨트를 끌어와 채워주며 낮게 말했다.“근데 왜 그렇게 멍하니 있던 거야? 혹시 내가 네 혼사를 망쳤다고 원망하는 거 아니야? 원하면 지금이라도 한종서 불러줄까?”임서율은 지지 않겠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그래요, 불러주세요. 어차피 그쪽은 저랑 결혼할 마음 있잖아요? 다만 하 대표님은 새 여자친구를 다시 찾아야겠죠.”말끝을 채우자마자 차 안은 고요해졌다.하도원은 대꾸도 없이 그녀만 똑바로 바라봤고 검은 눈빛에 담긴 날카로움에 임서율은 괜히 몸이 굳어졌다.“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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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이모님 보고 보약 좀 지어오라고 할게. 몸 좀 챙겨야지.”임서율은 뜻밖의 반응에 놀라 살짝 눈썹을 올렸다.“화 안 나요?”하도원은 피식 웃으며 제 자리로 돌아가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서율아, 지금 내 모습이 굶주린 늑대 같아 보여? 널 안 먹으면 내가 굶어 죽을 것 같아?”임서율은 입을 가볍게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그건 아니에요.”방금 전 하도원의 반응은 너무도 분명했다. 그녀는 그의 몸이 달라지는 걸 분명히 느꼈다. 흔히들 말하지 않던가, 남자들은 그런 반응이 오면 풀어내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게다가 방금 하도원의 눈빛과 기운은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울 만큼 뜨거웠다.하도원은 마치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그녀의 머리를 헝클었다.“내가 무슨 여자를 처음 본 사람 같아 보여? 제발 색안경 좀 벗고 봐줄래?”임서율은 작게 중얼거렸다.“여자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처음 만져본 건 맞잖아.”하도원은 좌석 등받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낮게 경고했다.“임서율, 말 조심해. 너도 피바람 나는 꼴은 원치 않잖아.”그 말에 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는 것 같아 본능적으로 말을 아꼈다.차는 도심을 향해 달렸다. 임서율은 첫날이라 배도 불편했는데, 오늘의 격한 감정 탓에 통증이 더 심해졌다. 그녀는 무심코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배 위에 손을 올린 채 눈을 반쯤 감았다.신호에 차를 세운 하도원은 그녀를 한번 힐끗 보더니 목적지를 슬쩍 바꿨다.임서율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차는 이미 대형 마트 앞에 와 있었는데 옆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전화를 걸어야 하나 싶던 순간, 운전석 문이 열리며 하도원이 커다란 봉투들을 들고 나타났다.그는 짐을 그녀 품에 턱 하고 안겼다.“자.”그리고 작은 손난로 같은 온수 주머니를 그녀 손에 쥐어 줬다.임서율은 손바닥이 뜨끈해지는 걸 느끼며 놀란 눈길로 그를 올려다봤다.“이걸 어디서 구했어요?”온수 주머니야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따끈한 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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