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유나랑 계속 만나. 서율이 혼사는 우리 집안끼리 알아서 의논하는 게 좋겠어.”“게다가 이미 서율이 할아버지도 한씨 집안과 혼인을 허락하셨으니, 더는 번복하기도 어려워.”그때 얌전히 앉아 있던 한종서가 느릿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하도원과 임서율을 바라보는 한종서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더럽혀진 물건을 보는 듯했다.그는 코끝을 비스듬히 문지르며 늘 그렇듯 건들거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하도원, 난 또 왜 네가 여자를 안 만나나 했더니, 결국 얘를 기다린 거였네?”고개를 갸웃하며 느릿하게 다가온 그는 하도원 앞에 서서 턱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며 노골적인 조롱을 던졌다.“설마 벌써 잤냐? 뭐, 얼굴 보면 이해는 되지. 한 번 맛보면 놓기 힘들겠지. 근데 말이야, 이혼한 여자한테 꽂혀서 하씨 집안으로 들이겠다고? 확실해? 네 할아버지가 그 얘기 듣고도 가만히 계실까?”순간,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고 하도원은 먹빛처럼 깊고 서늘한 시선으로 한종서를 바라보았다.“네 말은 서율이를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게 아니라 잠깐 갖고 놀다 버리려는 거야?”한종서의 입술이 굳어졌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하도원은 이미 그 안에서 답을 읽어냈다.잠시 뜸을 들인 한종서는 오히려 더 잘난 체하는 어투로 내뱉었다.“글쎄, 말 잘 듣고 집안에 문제만 안 일으키면 결혼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그때 정설아가 재빨리 나서 활짝 웃었는데 마치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스르면 혼사가 깨질까 두려운 듯했다.“종서야, 걱정 마. 우리 서율이는 원래 순하고 착해서 절대 널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능력도 있잖아? 그건 너도 잘 알 테고.”“결혼하면 아이도 낳고 살림도 잘할 거야. 회사 일까지 거들 수도 있어. 솔직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니?”임서율은 그 모든 말을 담담히 듣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두고 오가는 이야기가 남 얘기인 듯, 그녀의 눈빛은 싸늘했고 표정은 무심했다.옆에서 눈치 빠른 고용인들이 속삭였다.“왜 가만히 있는 거지? 자기 혼사 문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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