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Bab 531 - Bab 540

839 Bab

제531화

그 내막은 김정란도, 하도원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집안 어른이 하도원의 연애 상대가 임서율이라는 걸 모르고 있을 뿐. 만약 알게 된다면 집안이 발칵 뒤집히지 않겠는가.하도원은 미간을 주무르며 짙게 깔린 먹구름 같은 기분을 털어내지 못했다. 바로 그때 주재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형, 내일 집안 어르신 생신 아니야? 우리도 안 모인 지 꽤 됐는데, 내일 술 한잔 제대로 해야지.]하도원은 내일 벌어질 광경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왔다.[좋지. 다만 내일 네가 끝까지 마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해.]곧장 놀란 이모티콘이 날아왔다.[설마 임서율 데려가려는 거야?]하도원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내 여자친구인데 왜 못 데리고 가? 평생 숨어 지낼 것도 아니고.]주재훈은 답답하다는 듯 긴 한숨을 보냈다.[아니, 그래도 미리 가족들 마음의 준비는 좀 시켜야지. 이렇게 정면 돌파하면 어르신 심장이 버틸 수 있겠냐.]그러나 하도원은 태연했다.[연애하라고, 손주 빨리 보게 해달라고 재촉한 게 누군데. 내가 이제야 연애 시작했더니 또 싫다 하면 말이 돼?]주재훈은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형, 제발... 문제는 누구랑 사귀냐는 거잖아. 에휴, 말려도 소용 없단 거 잘 아니까, 내일은 형 운명에 맡겨.]하도원은 주재훈의 성격쯤은 훤히 알고 있었다. 내일 분명 구경하러 올 게 뻔했다.휴대폰을 내려놓고 돌아서니, 김정란이 이미 음식을 다시 덥혀 놓고 있었다.“대표님, 서율 씨에게 먼저 갖다 드릴게요.”“제가 올라갈 테니까 이모님은 이제 그만 쉬세요. 설거지는 내일 해도 됩니다.”김정란은 나이 탓에 피곤할 만도 했기에 하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고맙습니다, 대표님. 그럼 다 드시고 그냥 두세요.”“네.”김정란이 올라간 뒤, 하도원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어 조심스레 2층으로 향했다. 그는 노크도 하지 않고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 안은 작은 스탠드 조명만 켜져 있었고 임서율은 옆으로 누운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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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혼자 다 먹었어요? 내 건요?”“없어. 아까 깨웠는데 네가 안 일어난 거잖아.”하도원은 아까 얻어맞은 따귀를 그냥 속으로 꿀꺽 삼켰다. 괜히 말해봤자 뭐하랴, 그렇다고 똑같이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임서율은 벌써 배를 부여잡으며 투덜거렸다.“다 먹어버리면 전 뭘 먹어요.”“날 먹어.”하도원은 태연하게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더니, 넓은 가슴 근육을 드러냈다. 그러곤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디부터 먹을래?”임서율은 그의 능청스러운 얼굴을 흘깃 보며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미쳤어요?”하도원은 셔츠 깃을 더 젖혀 피부를 드러내더니 일부러 물었다.“정말 싫어?”임서율은 짜증 섞인 눈길을 한번 더 보냈다.“싫어요.”“안타깝네.”그는 못내 아쉬운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셔츠 단추를 다시 잠갔다.임서율은 먹을 것을 찾으려고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분명 김정란이 그녀의 몫을 남겨놨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 일어서려는 순간, 하도원이 다시 눌러 앉혔다.“가만히 있어. 내가 가져올게.”임서율은 눈을 가늘게 떴다.“제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거예요? 설마 이 기회에 독이라도 타서 절 죽이려는 거 아니죠?”하도원은 짜증난 듯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열은 없네. 근데 왜 이렇게 헛소리를 하지?”임서율은 그의 손을 탁 치워냈다.하도원은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기다려. 내가 직접 밥을 떠다 주는 건 처음이니까 소중히 여기라고.”임서율은 그의 뻔뻔한 표정을 보며 신발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세상에 얼굴 두꺼운 사람은 많지만 하도원 같은 이는 없었다.결국 그녀는 닭고기 국물을 들이켜며 흐뭇한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따뜻해지고 마음까지 든든해졌다.“이모님 솜씨는 정말 최고예요.”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차라리 돈 좀 보태서 이모님한테 식당 차려드리는 게 어때요? 솔직히 웬만한 호텔 셰프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요.”하도원은 자연스럽게 자기 접시에 담긴 밥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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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하도원이 어색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정말 듣고 싶어?”“네. 불편하면 말 안 해도 돼요.”임서율은 하도원의 마음을 존중했다. 특히 집안 얘기라는 게 대체로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엮여 있기 마련이니까.하도원은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손가락을 느슨하게 움직였다.“난 집안에서 미운오리 새끼였지. 꼭대기에 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인데, 누군들 자기 자식이 그 자리에 앉길 바라지 않겠어.”“근데 문제는 다른 애들은 다 나보다 못했어. 그러니 친척들이 날 눈엣가시처럼 여겼지. 아버지는 원래 내 조카한테 기대를 걸었는데, 걔는 회사 경영에 영 소질이 없었어.”“결국은 내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그렇다고 날 당당히 내세우진 못하고.”임서율은 순간 무언가 중요한 단서를 잡은 듯 고개를 갸웃했다.“네?”그때 하도원의 눈빛에 처음으로 복잡하고 서글픈 기색이 담겼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조롱하듯 말했다.“난 사생아야.”임서율은 입을 크게 벌렸다가 혹여 소리를 낼까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하도원은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임서율은 자신이 지나치게 놀란 나머지 그에게 괜히 상처를 준 건 아닌가 싶어, 황급히 손을 내리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미안해요. 방금은 내가 좀 과했어요.”“괜찮아.”그는 담담했다. 마치 오래전에 이미 체념해 버린 듯한 태도였다.곱씹어 보니 당연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그가 얼마나 많은 수군거림과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을까.임서율은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임유나가 돌아온 뒤 그녀 역시 사람들 앞에서 조롱과 험담을 수없이 들었으니까. 심지어 임유나가 겪은 불행을 그녀 탓으로 돌리며 재앙덩어리라 부르는 이들까지 있었다.“유나는 임씨 집안의 진짜 딸이야. 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누렸으니 이제는 평생 갚아야지.”그런 비난은 오랜 세월 따라다녔고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그래서 누구보다도 하도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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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내가 아이언맨이라면, 넌 뭐야? 아이언우먼이야?”하도원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목울대에서 울려 나온 웃음이 가슴 깊숙이 진동했고 임서율은 그의 거센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옷깃 너머로 남자의 체온이 전해져 와, 마치 불길에 덴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임서율은 짜증 나 그의 몸을 꼬집었다.“하도원 씨, 아이언우먼이 뭐예요!”“왜, 잘 어울리는데.”하도원은 말씨름에서 누구에게도 밀린 적이 없었다.임서율은 당장이라도 따귀를 올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나, 팔을 뻗어 밀쳐 보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가슴 한가운데를 세게 꼬집었다.“으윽...”하도원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임서율은 금세 승리를 거둔 듯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고 하도원은 얼굴을 찌푸리며 가슴을 문지르더니 중얼거렸다.“아니, 어디를 함부로 꼬집어.”임서율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우쭐댔다.하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머리를 툭 치듯 쓰다듬었다.“네가 말했잖아. 우린 천생연분이라고. 넌 내 여자가 아니면 안 돼. 사생아라도 돼야 내 짝이 되는 거지.”그는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흠... 운성시에 너 말고 다른 사생아는 없어.”임서율은 그 소리를 듣고 괜히 찜찜해졌다. 왠지 늑대에게 잡힌 기분이랄까.그가 또 자기만족에 빠지기 전에 얼른 정정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아니,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됐고, 얼른 먹어. 많이 먹고 푹 자 둬야 내일 전투할 힘이 나지.”하도원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또다시 강아지 대하듯 그녀의 머리를 툭툭 쳤다.임서율은 기분 나빠 손을 뿌리치며 따졌다.“제발, 개 쓰다듬듯 만지는 거 좀 그만해줄래요?”그러자 하도원은 오히려 더 신이 났다.“그럼 이렇게 만져야 하나...”그는 손바닥을 활짝 펴 머리 위를 마구 헝클어놓았다.“아니면 이렇게?”그는 손가락을 오므리며 마치 뭔가를 움켜쥔 듯이 끌어올렸다.임서율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됐어. 개한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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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딱 너답게 입었네.”하도원이 반쯤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맡에 있던 담배를 하나 집어 들고 불을 붙였다. 막 잠에서 깬 터라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낮고 묵직하게 방 안에 울렸다.임서율은 순간, 귀가 다 임신할 지경이었다.그녀는 진주 귀걸이를 귀에 걸고는 거울 앞에서 한 번 비춰보았다.“당신 집안 사람들이 제가 평소에 입는 옷을 마음에 안 들어 할 것 같아서요. 도원 씨 체면 세워주려면 이 정도는 갖춰 입어야죠.”하도원이 그녀에게 제법 잘해 주는 걸아니까, 그 정도는 해준 것이었다.사실 임서율은 늘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면 어떻게 꾸미든 상관없지만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무리 꾸며도 소용없는 법이었다.하도원은 태연히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그냥 너답게 하면 돼.”임서율은 가벼운 그의 말투에 잠시 놀랐다.하지만 말은 그렇다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그래야 괜히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못 가르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으니까.그녀의 얼굴에 먹칠하는 건 상관없지만 임규한 내외까지 함께 욕을 먹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이미 화장까지 다 해놓은 뒤라, 하도원의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임서율은 마지막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어제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은 일이 떠올랐다. 처음엔 하도원이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마 그녀가 먼저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그런데 밤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으니, 결국 임서율이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어제 결제 내역 봤죠?”하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왜?”“지우 애가 유아 학습기를 하나 필요로 하는데 비싸서 못 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당신 카드로 결제했어요. 그 부분은 조금 있다가 보내드릴게요.”하도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샀으면 된 거지. 겨우 학습기 하나잖아.”임서율은 깜짝 놀랐다.“아니, 내가 당신 돈을 다른 사람한테 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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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배가 고픈 채로는 일을 처리할 수 없었다.“이미 다 정리된 일인데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양지우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저 일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내 자리도 혹시...”“바보냐? 내가 임씨 집안이랑은 인연을 끊었어도 해성그룹에 지분이 있으니 여전히 최대 주주야. 넌 이미 입사했고 임유나도 지금은 아무 권한이 없어. 널 건드릴 수가 없다고.”임서율은 애초부터 이런 상황을 다 고려해뒀었고 무작정 던진 말이 아니었다.양지우를 회사에 들인 이상, 뒷길까지 열어줄 생각이었다.양지우는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서율아, 나 전생에 무슨 큰 선행을 했길래 널 만난 걸까. 아니었으면 난...”앞으로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그때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났다. 임서율이 고개를 돌리자 하도원이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이 얘긴 내가 돌아오면 마저 하자. 일단 끊을게.”“응, 알았어.”전화를 막 끊은 순간, 하도원이 이미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우유를 한 모금 마신 그는 무심하게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임서율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가 통화를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정확히 짚어내다니, 섬뜩할 정도였다.앞으로 혹시 그의 여자친구가 바람이라도 피운다면 굳이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촉 하나로 다 들켜버릴 테니까.임서율은 자신이 그의 진짜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었다면... 이건 상상하기도 싫었다.임서율은 아무렇지 않은 듯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태연히 대답했다.“별일 아니에요. 지우가 그러는데 도원 씨가 사준 생리대가 꽤 괜찮대요.”하도원의 미간이 순간 좁혀졌다. 어딘가 이상했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는 깨달았다.“잠깐. 내가 사준 게 괜찮다는 게 무슨 뜻이야. 난 너한테 사준 거지, 양지우 씨한테 사준 게 아니잖아.”임서율은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손사래를 치며 달랬다.“알았어요. 저한테 준 거지, 지우한테 준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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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임서율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대충 농담을 던졌을 뿐인데, 하도원이 어쩜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일까.그때 김정란이 우유를 따라주면서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서율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대표님은 좀 전통적인 분이에요. 연애를 안 할 땐 몰라도 한번 시작하면 한 사람한테만 충실하세요. 그러니 아까 서율 씨가 친구 분이랑 농담하신 것도 싫어하시는 거죠.”임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하도원에 대한 인상이 한층 더 좋아졌다.솔직히 이건 아무 남자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눈앞에 있는 걸 먹으면서도 다른 쪽을 기웃거리는 게 보통이었다.심지어 늘 지고지순한 사랑꾼이라는 이미지로 불리던 차주헌조차 그랬다.그래서 임서율은 이제 더는 믿지 않았다. 오직 아내만 바라보는 충직한 남편 같은 건, 진짜인지 아닌지 본인 말고는 알 길이 없는 거였으니까.잘못을 알면 고치자는 마음으로 임서율은 바로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아까는 내가 괜히 농담을 했어요. 미안해요.”하도원은 냅킨을 한 장 뽑아 우아하게 입가를 닦더니 태연하게 말했다.“스스로 잘 반성해서 오늘 밤에 500자 반성문 하나 써 와.”임서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요? 하도원 씨, 당신 초등학생이에요? 반성문을 쓰라니요.”하도원은 느릿한 시선으로 그녀 쪽으로 슬쩍 흘겼다.“말대꾸했으니 천 자.”임서율은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기가 죽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꿀꺽 삼켰다.괜한 고집 부려봤자 손해일 뿐이었다.겨우 반성문 하나니, 인터넷에서 찾아서 쓰면 그만이었다. 속으로 은근히 흐뭇해하고 있는데, 하도원이 다시 덧붙였다.“직접 손으로 써. 인터넷에서 베낄 생각 하지 말고.”그 말에 임서율은 힘이 쫙 빠지고 말았다.하도원 같은 남자를 상대하려면 정말 온 힘을 다해도 모자랄 판이었고 애초에 이길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안 섰다.결국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임서율은 하도원과 함께 어제 백화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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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임서율은 무릎에 담요를 걸치고 따끈한 핫팩을 치마 위에 붙이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 잠들어버렸다. 체면이고 뭐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하도원은 묵묵히 운전에 집중해 차를 본가 앞에 세웠다.그는 그녀를 살짝 흔들었다.“일어나, 게으른 아가씨.”임서율은 입술 사이로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흘리더니 몸을 비스듬히 돌리고는 다시 깊이 잠들었다.하도원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기울여 일부러 그녀의 코를 집어 올렸다. 곧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오자 임서율은 얼굴을 찌푸리며 몸부림쳤다.눈을 뜨고 보니, 하도원이 그녀의 코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임서율은 손바닥으로 그의 손을 쳐내며 소리쳤다.“하도원 씨, 미쳤어요? 날 질식시킬 셈이에요?”그는 태연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맞췄다.“좋아졌네, 임서율. 이젠 대놓고 나한테 대들 줄도 알고. 내가 요즘 널 너무 풀어줬나 봐.”임서율은 콧소리를 흘리며 반박했다.“죽을 뻔했는데 반항도 못 해요? 그건 너무하죠.”하도원은 그녀의 두 볼을 손가락 끝으로 눌러 쥐었다. 금세 얼굴이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고 동그란 눈동자가 분노로 반짝였다.“언젠가 꼭 확인해 봐야겠다. 네 이 입술, 대체 뭐로 만든 건지. 설마 다이아몬드라도 박혀 있는 건 아니야?”그는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리려는 듯 장난을 쳤다.임서율은 황당해서 웃음이 터졌고 손으로 그의 팔을 마구 두드리며 말했다.“하도원 씨, 진짜 돌았어요? 그렇게 궁금하면 차라리 치과 의사로 전직해요.”누가 남의 입만 뚫어져라 들여다본단 말인가.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하도원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치과 의사라... 괜찮네. 다만 난 네 전담이야. 네 입만 검사해 주는 개인 주치의. 대신 얼마나 줄 건데?”그는 느닷없이 그녀의 귓가로 다가와 낮고 깊은 목소리를 흘렸다.임서율은 귀가 간질간질해지는 동시에 온몸이 떨리는 기분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그의 완벽한 얼굴이 눈앞에서 빛을 발했다.이 남자는 정말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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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임서율의 머릿속은 마치 폭탄이 터진 듯 순식간에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동안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단서들이 영화처럼 되감기되며 떠올랐다.믿기 힘들었지만 결국 먼저 진실을 토해냈다.“그러니까 당신이 차주헌의 삼촌이라는 거예요?”하도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응.”그제야 모든 게 설명됐다. 왜 차주헌이 하도원 앞에서 그토록 기이한 반응을 보였는지.그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뼛속 깊이 새겨진 공포였다.수년간 함께 살아온 임서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차주헌은 결코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도원이 틀림없이 그의 인생에 어떤 상처를 남겼고 그 그림자가 지금껏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임서율은 차주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하도원을 만난 건 네겐 행운이자 불행이야.”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결국 하도원이 차주헌을 향해 칼날을 들 일은 없을 지도 몰랐다.임서율의 입꼬리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하늘이 정말 가혹한 농담을 치는 것 같았다.온 힘을 다해 차주헌의 굴레에서 벗어났건만 또다시 차씨 집안의 소용돌이로 끌려 들어온 꼴이라니.게다가 하도원은 모계를 따라 성을 달리했으니, 누가 봐도 차씨 집안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세상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전혀 무관한 존재였다. 어떻게 같은 집안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는가.더구나 재호 그룹과 성운 그룹은 한때 프로젝트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업계의 맞수였다.임서율이 충격으로 굳어 있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고용인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아니, 저분은 작은 사모님 아닌가요...?”오늘 하도원이 여자 친구를 데려온다 들었는데, 어쩌다 임서율과 함께 들어왔단 말인가.고용인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설마 이런 황당한 일이!그때 하도원이 담담하게 지시했다.“짐 먼저 안에 들여놔요. 곧 들어갈게요.”“네, 네!”고용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을 들고 안으로 사라졌다.하도원은 임서율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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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지금도 나가고 싶어?”하도원이 손바닥을 펴 보이며 담담히 물었는데 눈빛에도 표정에도 조급함이라곤 없었다. 임서율이 혹시라도 도망칠까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그저 세속을 초월한 듯 한가롭고 여유로웠다.세상사를 겪어보지 않고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담담함이었다.게다가 하도원은 이미 약속했다. 차씨 가문과 결코 가까워지지 않겠다고. 그 점에서만큼은 임서율도 확신하고 있었다.이토록 오랜 세월, 그는 단 한 번도 차주헌과 가깝게 지낸 적이 없었다. 쉽게 과거의 상처를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임서율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차주헌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정말로 하도원과 함께한다면 그건 차주헌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일 것이다.이 소식이 밖으로 퍼져나가기라도 한다면 차주헌은 가장 큰 희생자가 될 터였다.운성시 사람들 모두가 그의 뒷담화를 할 것이고 밖에서는 끝없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할 것이며 집안에서는 그녀가 주는 압박을 매 순간 견뎌야 할 것이다.한때 아내였던 여자가 이제는 숙모라니, 그런 꼴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그건 그 어떤 보복보다도 차주헌의 가장 깊은 곳을 찌를 것이고 평생 벗어나지 못할 악몽으로 남을 것이다.임서율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결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들어가요.”하도원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팔을 내밀었다. 임서율은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 조용히 팔짱을 꼈다.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안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고용인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무슨 소리예요, 도원이가 데려온 여자가 임서율일 리가 없잖아요. 아줌마가 잘못 본 게 아니에요?”고용인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정말 잘못 본 게 아니에요. 분명히 임서율 씨였어요. 곧 들어오면 알게 될 거예요.”마침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또 다른 고용인이 외쳤다.“하 대표님과 파트너 분이 들어오십니다.”순간, 이혜정과 차진만 그리고 차씨 가문의 친척들이 일제히 출입구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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