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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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임서율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아니, 생리대 하나 갖고 이럴 일이에요?”하도원은 참 제멋대로였다. 생리대까지 못 주게 막다니.“내가 고르고 또 골라서 산거야. 다 못 쓰겠으면 율이 주면 되잖아.”하도원은 대답 대신 차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임서율은 순간, 저 남자가 화를 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그 얘기를 들은 임서율은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하도원이 정말 미쳐 가는 것 같았으니까.“율이가 맨날 생리하는 것도 아니고, 개들은 반년에 한 번이에요.”임서율이 설명했다.“그리고 진짜 매달 한다 해도 다 못 써요. 개들 생리용은 따로 있거든요. 이건 사람용이고 그걸 어떻게...”하도원 같은 남자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다 똑같이 생리할 때 쓰는 거잖아. 뭐가 달라.”“이건 사람용이니까...”임서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 손으로 이리저리 시범을 보였다.“개는 이렇게 해서...”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하도원은 팔꿈치를 창문에 걸치고 앉아 태연하게 그녀의 동작을 구경했다. 열심히 표정까지 써 가며 차이를 설명하는데, 어떻게든 보여주려 애쓰고 있었다. 눈썹을 살짝 찌푸린 걸 보니 다음 시범을 어떻게 할지 고민까지 하는 모양이었다.그러다 하도원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내렸다.“설명 안 해도 돼. 여자들이 그거 왜 쓰는지는 나도 알아. 네가 쓸 수 있는 걸로 챙겨. 필요 없으면 그냥 다른 사람 주면 되고.”임서율은 그제야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원을 달래는 게 아이 달래는 것보다 힘들었다. 아이들은 단순하기라도 하지, 하도원은 머릿속이 훨씬 복잡했다.차는 아파트에 도착했고 임서율은 온수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배의 통증은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다.위층으로 올라가며 거실을 내려다보니, 하도원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까 임씨 가문에서 임유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보통 남자들도 신경 쓰는 일을 하도원 같은 사람이 무시할리가 없었다,그러니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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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그 일 때문에 학교 전체가 다 알게 됐고 결국 전학을 가야 했어요. 그래야 겨우 잠잠해졌죠.”“나중에야 알았는데, 사실 그 선생님이 절 완전히 침범한 건 아니었어요. 성추행이었죠. 그게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임서율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하도원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졌다. 칼처럼 날 선 얼굴선 때문에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임서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고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듯 촉촉해졌다.“우리 관계가 가짜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당신한테는 영향이 갈 수 있잖아요.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성추행이든 성폭행이든 결국 당신한테도 좋을 건 하나도 없어요.”“나중에 누군가 이걸 빌미로 협박이라도 하면 당신 입장에서는 곤란해질 거예요.”잘나가는 하도원의 여자친구가 과거에 그런 일을 당했고 게다가 이혼녀라는 소문까지 겹쳐진다면? 임서율은 그 끔찍한 뒷말들이 어떤 모양일지 이미 짐작이 갔다.그녀야 상관없다 해도, 하도원은 집안도 크고 회사도 있는데 그런 소문이 쌓이면 버티기 힘들 터였다.하지만 정작 하도원은 태연하기만 했다. 긴 다리를 소파에 걸치고 팔꿈치로 턱을 괸 채 임서율을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은퇴한 노인네처럼 여유로웠다.“서율아, 너 날 뭐로 보는 거야? 네 눈엔 내가 이런 일 하나도 못 해결할 것처럼 보여?”“당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알아요. 근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지금 회사가 해외랑 중요한 프로젝트 진행 중이잖아요. 굳이 이런 시점에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어요.”하도원은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쓱 쓸어올리며 헛기침을 했다.“그래서, 네 결론은 뭐야. 나랑 헤어지자는 거야?”‘헤어지자’라는 말에 임서율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그런데, 우리 계약 관계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거예요?”“헤어지나 계약해지나, 그게 그거지. 지금 나랑 말장난하는 거야?”하도원의 말에 임서율은 뒤늦게 자신이 또다시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는 걸 깨달았다.“어쨌든, 내가 말하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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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임서율은 하도원의 그 질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말이 막혔다.그녀가 생각하는 하도원과의 관계는 단순했다. 그저 거래일 뿐, 감정 따위는 끼어들지 않았다.그러니 ‘헤어지고 싶다, 아니다’ 같은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물론, 하도원이 굳이 따지지 않고 먼저 계약 해지를 말해준다면야 그녀도 당연히 좋았다.“해지를 할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늘 수동적인 입장이고 결정권은 당신에게 있으니까요.”하도원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원래 낮고 묵직한 목소리마저 서늘하게 울렸다.“임서율, 넌 그냥 내 질문에만 답하면 돼.”“저...”“셋 셀 거야. 대답 못 하면 난 네가 헤어지기 싫다는 걸로 알게.”“그게 아니라...”“하나, 둘, 셋. 알겠어.”임서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숫자가 끝나 버렸다.그녀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웃음이 터졌다. 하도원은 애초에 그녀의 대답 따윈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이미 할 말은 다 했다. 하도원도 헤어지려는 생각이 없으니, 더 우기면 괜히 꼬투리 잡히고 집요해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허벅지를 한 번 두드리고는 소파에서 일어섰다.“이미 정했으니, 전 올라가서 쉴게요.”그 순간, 아랫배로 묵직한 통증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밀려 내려왔다.임서율이 막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하도원이 손목을 붙잡았다.“임서율.”차갑고 억눌린 목소리, 게다가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부르자 그녀는 순간 긴장했다.임서율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네?”하도원이 몸을 숙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과 함께 밀려드는 담배 향이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이 일, 차주헌은 알아?”임서율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몰라요.”차주헌의 남성적 자존심을 생각하면 감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그 말을 듣자, 하도원의 잔뜩 굳었던 미간이 조금 풀리더니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다.“알겠어. 올라가서 쉬어. 지난 일에 너무 매달리지 마. 난 남자 체면 같은 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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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서율아, 차 대표 쪽에 벌써 소식이 들어갔대. 네가 스카이 그룹 프로젝트를 따냈다는 거. 지금은 오히려 그쪽이 표절 때문에 스카이 그룹에서 거절당했고 벌써 기사까지 났어.”“거기다 지난번 사건 여파도 남아 있어서 지금 운성시에서 성운 그룹과 거래하려는 회사가 단 한 군데도 없대.”“다만 문제는 차 대표가 벌써 널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누군가 일부러 흠집을 낸 게 네 짓이라고 생각하더라. 요즘 좀 조심해야 돼.”양지우는 아직도 몇 년 전의 일을 잊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다. 비록 단순한 사고였다고는 하지만 폭력이란 게 원래 무심결에 드러나는 법 아니던가.하지만 임서율은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내가 먼저 시작한 일도 아니잖아. 애초에 우리 아빠를 모함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하도원과... 어쨌든, 이건 다 자업자득이야.”차주헌을 그냥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성인이라면 자기 행동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었다.양지우는 임서율이 마음을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어쨌든, 무슨 일이 있든 난 네 편이야.”“사실, 너한테 말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어.”“뭔데?”임서율은 조금 전 하도원과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일부러 꺼낸 건 아니었지만 결국 얘기가 나오게 된 셈이었다.이야기를 다 끝냈을 때 양지우 쪽에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임서율은 전화를 끊은 줄 알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여보세요?”“듣고 있어. 그냥 생각 좀 했어. 서율아, 하 대표가 너 좋아하는 거 같아.”임서율은 얼이 빠져 멍하니 물었다.“뭐?”순간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양지우는 조용히 분석했다.“잘 생각해 봐.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굳이 네 생각을 묻겠어? 하 대표 성격 알잖아. 신경 안 쓰는 사람 의견 따위 물어볼 리 없지.”임서율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쳤다.“지우야, 착각한 거야. 그 사람은 그냥 심심하면 날 놀려대는 스타일이야.”하도원의 연기라면 개 앞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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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양지우가 의리 있게 말했다.“지금 시간도 괜찮으니까 내가 같이 가줄게.”“좋아, 금방 나갈게.”임서율은 그제야 하도원이 차를 한 대 내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선물치고는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계약이 끝나면 차는 다시 돌려주면 그만이었다.전화를 끊고 간단히 정리를 한 뒤, 양지우에게 챙겨줄 생리대 몇 개를 가방에 넣었다. 그러면 굳이 사러 갈 필요도 없을 테니까.막 일어나려는 순간, 배 속에서 갑작스레 잡아당기듯 통증이 밀려왔다.“읏...”임서율은 숨을 들이켜며 얼굴을 찌푸렸고 속으로는 또다시 생리를 원망했다.도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어낸 건지, 왜 여자만 이 고생을 하고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불평할 겨를도 없이 시간은 이미 빠듯했다.임서율은 쿵쿵 발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갔고 곧 당귀 향이 은은히 풍겨왔다. 주방에서 국자를 들고 나온 김정란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서율 씨, 이리 와서 맛 좀 보세요. 대표님께서...”“콜록콜록...”하도원이 일부러 기침 두어 번을 했고 김정란은 황급히 말을 바꿨다.“서율 씨 이번에 생리 시작하셨잖아요? 몸보신하라고 끓였어요.”임서율은 입술을 꾹 다물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이모님, 그런데 제가 지금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요. 나중에 돌아오면 마실게요, 남겨 두세요.”하도원이 서류에서 눈을 들어 물었다.“이 시간에 어딜 가는데?”임서율은 솔직히 답했다.“지우가 잠깐 나오래요.”그는 창밖을 흘깃 보았다. 흐린 하늘에 바람까지 거세게 불고 있어,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할 게 없는 날씨였다.“그냥 네 친구 보고 여기로 오라 그래.”“이 늦은 시간에 불러서 오긴 쉽죠. 근데 집에 어떻게 들어가요?”특히 이 동네는 더 그랬다. 이 시각에 택시 잡히는 게 오히려 기적일 테니까.하도원은 고개를 살짝 들어 위층을 가리켰다.“방이 그렇게 많은데, 못 재우겠어?”임서율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녀가 나가려는 건 선물을 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또, 비록 두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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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조수석에 앉은 임서율은 멍하니 안전벨트를 매면서도 어떻게 하면 하도원을 따돌릴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임서율.”낮고 맑은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며 임서율의 생각을 단번에 끊어냈다.깜짝 놀라 몸을 움찔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하도원을 바라봤다.“왜요?”“안전벨트.”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감정이 묻어 있었지만 임서율은 눈치 채지 못했다.“안전벨트가 왜요?”“안전벨트.”그가 다시 한 번 말하자 임서율은 대충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매고 있잖아요?”“허...”하도원은 목울대에서 낮고 거친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매고 있지.”그 말투가 묘하게 신경 쓰여 다시 내려다본 임서율은 그제야 자신의 안전벨트가 하도원 쪽에 걸쳐진 걸 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고 속으로는 당장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이러는 건지.임서율은 급히 안전벨트를 다시 고쳐 맸다.“죄송해요.”하도원은 손바닥에 턱을 괴고 새카만 눈동자로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임서율, 너 설마 바람피울 계획이라도 세우는 거야? 양지우는 그냥 방패고?”“네?”임서율은 멍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그가 조금은 귀엽게 보였다.하도원은 그녀가 오늘따라 영 정신이 없는 것 같아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톡 쳤다.“아야...”“아픈 게 당연하지. 이제 정신 좀 들어?”확실히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는 듯해 임서율은 숨을 깊게 내쉬고 진지하게 말했다.“저 바람 피울 생각 없어요. 지우랑 할 얘기가 있어서 가는 거예요. 여자들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라 남자가 따라오는 건 좀 그렇잖아요.”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 임서율은 안도했다.하지만 하도원은 고개를 기울이며 다가와 물었다.“여자들끼리만 하는 얘기라니, 뭔데?”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에 임서율의 숨결이 어지럽게 흔들렸고 하얀 볼에는 어느새 붉은 기가 번졌다.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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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강수진은 늘 그렇듯 태연한 얼굴로 임서율에게 인사했다.“서율 씨.”임서율과 양지우는 그 목소리를 듣자 동시에 얼어붙었다. 저렇게 나긋나긋한 음성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주위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둘에게 있어 그 목소리는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없었다.양지우가 슬쩍 임서율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우리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가버리자.”임서율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괜찮아.”어차피 차주헌과 강수진 사이에선 이미 가면이 벗겨진 지 오래였다. 강수진이 무슨 말을 하든 더는 참고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두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자 강수진이 다가오더니 곧장 양지우 손에 들린 쇼핑백을 힐끗거렸다.“지우 씨도 장 보러 왔네요? 꽤 비싸 보여요.”양지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이거 내 거 아니라 서율이 거예요.”“서율 씨 거라... 집안 어른들 드리려고 산거겠죠? 근데 임씨 집안이랑 인연 끊는다면서요?”임서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좋은 일은 소문도 안 나는데, 안 좋은 일은 천리 밖까지 퍼진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였다.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예전 같으면 체면상 어쩔 수 없이 맞장구를 쳐 주곤 했을 것이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임서율은 차갑게 시선을 던졌다.“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강수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임서율이 이렇게 대놓고 면박을 줄줄은 상상도 못 했던 눈치였다.그녀는 귀끝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곧 고개를 푹 숙이며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굴었다.“서율 씨, 저는 그냥 걱정돼서 한마디 한 건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임서율은 싸늘한 미소와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강수진 씨, 우리가 무슨 사이길래 그런 걱정을 해요? 솔직히 말해서, 차 대표와 내가 이렇게 된 건 당신이 끼어들었기 때문 아닌가요. 걱정은 무슨, 그건 걱정이 아니라 ‘내가 결국 빼앗았다’는 자랑에 불과하죠.”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분명했다.강수진은 역시나 눈물이 먼저 터졌다. 붉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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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임서율은 더는 숨기려 들지 않았다.차주헌을 향해 쏘아붙이는 눈길에는 이제 더 이상 애정이라곤 없었고 낯선 타인을 대하듯 싸늘하기만 했다.“차 대표,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걸 보니 억울하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아는 모양이네. 근데 넌 고작 프로젝트 하나 잃은 거지만 우리 아빠는? 그분이 시한부라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내가 막판에 겨우 방법을 찾아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빠는 감옥에서 그대로 눈도 못 감고 돌아가셨을 거야. 그걸 원했어?”임서율은 차주헌의 옷깃을 움켜쥐고 목청을 높였다.순식간에 커진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고 둘을 구경하기 시작했다.양지우조차 깜짝 놀라 다급히 임서율을 붙잡았다.“서율아, 이러지 마. 여긴 백화점이야. 사람들 다 보고 있잖아.”하지만 임서율은 분노에 눈이 멀어 차주헌만 노려보았다. 쌓아온 울분이 한순간에 폭발하 듯, 그 눈빛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차주헌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심장이 옥죄이듯 답답해져 숨조차 가쁘게 몰아쉬었다.그는 7년을 함께한 임서율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어왔다.그런데 오늘,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날이 선 그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는 임서율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임서율은 그의 옷깃을 거칠게 놓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앞으로 널 봐줄 마음은 없어. 그리고 이 일, 여기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네가 나한테 준 상처 그리고 우리 아빠한테 준 상처 반드시 되돌려줄 거야. 차주헌, 지금부터 죽을힘 다해 버텨. 안 그러면 머지않아 넌 빈털터리가 될 테니까.”차주헌은 서서히 정신을 추슬렀고 곧 어깨를 으쓱였다.“임서율,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지금이야 하도원이 네 뒤를 봐주고 있으니 기세등등하겠지. 근데 네가 정말 성운 그룹에 손댔다면 그 사람이 끝까지 네 편 들어줄까? 두고 봐.”임서율의 눈빛이 날카롭게 흔들렸다.“그게 무슨 뜻이야?”차주헌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곧 알게 되겠지. 하도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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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임서율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하도원이 전화를 건 건 그녀를 재촉하려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차주헌이 괴롭히지 않았는지부터 물어온 것이다.“아니에요. 그냥 두어 마디 했고 저도 지고만 있진 않았어요. 걱정 마요.”“응. 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그리고 굳이 아버지 선물은 따로 안 사도 돼.”“...?”뜻밖의 말에 임서율은 순간 얼이 빠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도원이 근처에 있나 살폈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이제는 감출 수도 없겠구나 싶어 대놓고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강수진이 그러더라. 네가 안에서 내 카드 긁고 있으니 조심하라더라.”물론 원문은 좀 더 독했지만 하도원은 간단히만 전했다.임서율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나, 강수진은 틈만 나면 헛소문을 지어내는 데 혈안이었다.“당신 카드로 산 게 아니에요. 전부 제 돈으로 결제했어요.”그러자 하도원이 오히려 당당하게 받아쳤다.“카드를 줬는데 왜 안 쓰는 거야?”그 말에 임서율은 순간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제 실수네요. 죄송해요. 지금 바로 도원 씨 카드 긁으러 가니까, 십 분만 기다려 줘요.”전화를 끊은 뒤, 임서율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난 가끔 너무 착한 게 문제야.”그녀는 옆에 있던 양지우를 돌아보며 물었다.“혹시 더 살 거 없어?”“어...?”양지우는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임서율은 못 박듯 다시 말했다.“카드 준 거 써버리지 뭐. 애한테 뭐 필요한 거 없어?”양지우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사실 눈여겨보던 유아용 학습기가 있었지만 값이 만만치 않아 차마 손이 가지 않았던 터였다.임서율은 그런 그녀의 속내를 읽은 듯 어깨를 두드렸다.“곧 생일이잖아? 내가 선물 사주는 셈 치자.”양지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마다하지 않을게.”그리하여 둘은 학습기를 사들고 만족스럽게 백화점을 나섰다.한편, 차 안에서 기다리던 하도원의 휴대폰에는 결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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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이건 임서율의 호기심을 완전히 자극했다.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혹시 하도원도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아닐까.물론 그녀는 나름 사정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하도원은 다르지 않은가. 그는 외동아들이고 또 그렇게 뛰어난데.만약 그녀가 하도원 같은 능력을 지녔다면 임태규의 태도도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돌아오는 길에 임서율은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어떻게 제가 아버님 선물 사러 간 걸 알았어요? 제 물건 산 거라면요?”가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하도원의 눈치는 지나치게 예리했다. 분명 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늘 들키고 말았으니까.하도원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쥔 채, 다른 손은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창가에 팔을 걸치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아주 여유로웠다.그의 손가락은 길고 매끈했으며 하얗고 뼈마디가 뚜렷했다. 임서율은 순간, 이 남자는 성격만 좀 까칠할 뿐 흠잡을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손 모델로 나가도 되겠네.’그는 피식 웃었다.“임서율, 너 설마 세상 사람들 머리가 다 너처럼 단순하다고 생각해?”임서율은 말문이 막혔다.“저 단순하지 않거든요!”하도원은 곁눈으로 흘깃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말해봐. 어디가 안 단순한지.”임서율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고집스레 받아쳤다.“저 하나도 안 단순해요!”하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위를 맞췄다.“알았어, 안 단순하지. 아주 대단하고 똑똑해.”“...”임서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바보랑 말싸움 해봤자 소용없어.’운전하던 하도원이 힐끗 그녀를 보았다. 입술은 삐죽 튀어나오고 볼까지 빵빵하게 부풀려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작은 햄스터 같았다.평소에는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성격인데, 유독 하도원만 만나면 괜히 쉽게 욱하게 된다.저택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새벽 무렵이었다.임서율은 생리 중이라 원래도 기운이 없었는데 한참을 돌아다닌 탓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계단을 막 오르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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