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541 - Chapter 550

832 Chapters

제541화

하지만 임서율은 이미 5년 전의 임서율이 아니었다.차주헌이 손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거부감을 일으켰고 임서율은 거의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밀쳐냈다.“놔!”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거부당하자, 차주헌의 체면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그는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낮게 경고했다.“임서율, 사람들이 다 보고 있어. 여기서 이러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간다고.”임서율은 코웃음을 터뜨렸다.“피해? 차주헌, 정신 좀 차려. 난 지금 도원 씨 여자친구야. 호칭으로 따지자면 날 숙모라고 불러야지. 조카가 이렇게 대놓고 어른한테 반말하는 게 예의일까?”“...!”‘숙모’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차주헌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그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퍼렇게 질리다가 붉게 달아올랐다.주변 친척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고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번졌다.“세상에, 이런 꼴은 또 처음 보네.”“주헌이 전처였던 임서율이 이제는 도원이랑 사귄다고? 그럼 주헌이가 임서율한테 숙모라고 불러야 한다는 거잖아?”“말이 돼? 소문이라도 퍼지면 차씨 집안 망신 당하는 거 아냐?”“그러게 말이야. 밖에 협력사들까지 알게 되면 체면이 어디로 가겠어.”“주헌아, 진작 알았으면 일찌감치 정리했어야지. 이 꼴 되도록 방치하다니, 집안 체면 다 말아먹을 셈이냐?”순식간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말들에 차주헌은 마치 불판 위에 올려진 듯 속이 타들어갔다.그는 머리칼을 한 손으로 툭툭 쓸어 넘기며 낮게 으르렁거렸다.“너,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임서율은 고개를 높이 들고 팔짱을 끼며 비웃듯 쏘아붙였다.“이게 지금 숙모 대하는 태도야? 그리고 이게 부탁하는 사람 말투 맞아?”“...!”참았던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했고 차주헌의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졌다.“임서율, 도 넘지 마. 그냥 장난인 줄 알았더니, 정말 내 숙모가 되겠다고 설치는 거야?”말을 내뱉자마자 차주헌은 그녀 팔을 억지로 잡아끌려 했지만 낯익은 저음이 한순간 공기를 베었다.“그 손, 놓는 게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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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예전엔 한 번도 이런 확신을 느낀 적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분명했다. 하도원은 그녀의 일이라면 끝까지 싸울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는 누구와도 맞설 용기가 있었다.하도원은 한순간에 임서율을 품에 안아 올리더니 마치 전 세계에 대고 선언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잘 들어요. 제가 서율이를 당신들한테 평가받으라고 데려온 게 아니에요. 비판하라고 데려온 것도 아니에요. 받아들이라고 데려온 거예요.”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냉정히 덧붙였다.“물론,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래 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그때 이혜정이 조심스레 나서며 하도원을 달래듯 말했다.“도원아, 네가 서율이를 좋아하는 건 이해해. 근데 너희 관계가 워낙 민감하잖니. 차라리 이번에 헤어지는 게 어때? 네가 원하는 스타일의 여자라면 내가 얼마든지 소개해줄게. 전에 네가 마음에 들어 했던 그 사촌 여동생도 괜찮았잖아?”그러나 하도원의 태도는 단호했고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다시 말하지만 전 서율이만 원해요.”“...!”차주헌은 결국 폭발했다.“삼촌, 제정신이에요? 임서율은 내 전처였어요. 만약 내가 임서율과 이혼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똑같이 이렇게 했을 거예요?”말을 마치자, 하도원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는데 검은 수트 차림의 그는 오늘따라 더욱 서늘해 보였다.순식간에 하도원은 차주헌의 옷깃을 움켜쥐었다.“차주헌.”하도원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서늘했다.“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마. 너랑 서율이가 결혼한 이유, 네가 더 잘 알 텐데, 아니야?”“...!”차주헌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임서율은 그의 눈빛 속으로 스치는 미세한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내, 내가 서율이랑 결혼한 건 서로 좋아했으니까 그런 거죠.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요.”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임서율은 달랐다. 그녀는 차주헌과 7년을 함께했었다. 차주헌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숨을 고르는 방식 그리고 말을 얼버무릴 때의 표정까지 모두 알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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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하도원의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차주헌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닫았다.임서율은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차주헌은 그녀를 속였다. 당시 학교 앞에 바비큐 가게를 들여오게 한 건 차주헌이 아니라 하도원이었으니까.임서율은 손끝을 꼭 움켜쥐었다.수년간 믿어온 사람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뼈가 아파왔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차주헌을 바라본 눈빛엔 이미 차가운 경멸만 남아 있었다.“차주헌,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체면 좀 챙겨.”이제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조차 없이 차주헌이 거짓말을 한 건 분명했다.다만, 임서율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서로 낯설기만 하던 하도원이 왜 굳이 그 일을 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차주헌의 얼굴은 잿빛으로 굳어 있었다.온 가족과 친척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이 자리에서 그는 구멍에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그때 어른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나섰다.“도원이가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오늘은 더 이상 이 문제로 싸우지 말자고. 남의 일에 괜히 끼어들어봤자 뭐하겠어. 남은 건 도원이가 알아서 할 일이지.”“맞아요. 오늘은 회장님 팔순 생신이신데, 좋은 날이니까 일단 자리에 앉지요.”“그래, 그래. 다들 앉자고. 식사 준비도 곧 될 테니.”“십년 뒤에도 이렇게 모여 축하해야지 않겠어?”어색했던 공기는 그렇게 겨우 진정되는 듯했다.하지만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하도원의 성격상 여기서 더 밀어붙이다간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질 것이다.바로 그때, 고용인 장희수가 다가와 말했다.“여러분, 식사 시간 전까지는 자유롭게 둘러보시면 됩니다. 정원 산책도 괜찮고 휴게실에서 쉬셔도 돼요.”“그래, 그럼 우리 먼저 정원 좀 둘러보고 오자고.”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하도원은 시선을 내리고 낮은 목소리로 임서율에게 물었다.“계속 여기 있을래, 아니면 나랑 같이 나갈래?”임서율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같이 나갈래요.”이대로 홀에 남아 있는 건 숨이 막힐 것 같았다.사람들이 뭐라 하지 않아도 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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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서율이가 네 삼촌을 찾아간 건 어쩌면 너 때문일 수도 있어. 혹시 너한테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는 걸지도 모르지.”차주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맞아요. 임서율은 저한테 복수하려고 일부러 삼촌에게 접근한 거예요.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서율이는 저를 너무 좋아해서, 저랑 이혼하기 싫었던 거예요.”그는 목소리를 낮췄다가 다시 높이며 열을 올렸다.“하지만 전 이미 수진이랑 결혼했어요. 서율이는 방법이 없으니까 이런 수를 쓴 거예요. 삼촌이랑 한 배를 타기만 하면 앞으로는 언제든 저를 볼 수 있으니까요.”옆에서 듣고 있던 주재훈이 그제야 못 참겠다는 듯 나섰다.“차주헌 씨 말대로라면, 서율 씨가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했다는 건데, 웃기네요. 이혼하자고 먼저 협의서를 내민 쪽이 서율 씨였던 걸로 아는데요?”차주헌은 주재훈을 노려보며 비웃듯 말했다.“이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주재훈 씨, 요즘 한가한가 보죠? 남 일에 참견할 시간 있으면 본인 일이나 신경 쓰세요.”주재훈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그냥 한마디 충고하려는 겁니다. 차주헌 씨, 자신감이 지나치면 오히려 보기 안 좋을 수도 있어요.”그 한마디를 남기고 주재훈은 발길을 돌렸다.차주헌은 눈을 부릅뜨며 그를 막으려 나섰다.“거기 서요! 어디 끝까지 말해요!”차주헌이 앞으로 나서려는 걸 보자 차진만은 얼른 이혜정에게 눈치를 줬다.이혜정은 재빠르게 움직여 차주헌의 팔을 움켜쥐었다.“넌 창피하지 않니?”“어머니!”“그만해, 주헌아.”이혜정은 차주헌을 뒤로 끌어당겼다.“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그 둘은 이유야 어찌 됐든 당장은 떨어뜨릴 수 없어.”차주헌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이를 악물었는데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집어던질 기세였다.그때 강수진이 다가와 조심스레 그의 팔을 붙들었다.“맞아, 주헌아. 지금은 삼촌이랑 서율 씨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겠어.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여긴 할아버지 생신 연회잖아.”차주헌은 입술을 깨물었다.후원.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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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하도원은 짧게 코웃음을 흘리며 장난처럼 말을 던졌다.“네 생각부터 말해봐. 근데 말이지, 네가 그때 화재를 겪었다는 건 나도 조금은 알고 있어.”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몇 년 전을 떠올렸다.“그때 불길 속에서 분명 누군가의 그림자를 봤어요. 그런데 얼굴은 보지 못했죠. 그래서 그게 정말 차주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깨어나고 나니까, 차주헌이 곁에 있었지만 이상했던 건 몸에 상처 하나 없었어요.”그토록 큰 화재였는데, 어떻게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할 수 있겠는가.임서율은 당시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구조되지 않았다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차주헌은 상처 하나도 없었다. 그는 방화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다친 게 없었다고 설명했다.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그 말이 거짓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 일로 장난을 칠 리 없다고 믿었으니까.하지만 방금 전 차주헌의 태도와 거짓말들을 보니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바비큐 가게 사장까지 속여서 그녀를 기만했는데, 다른 건 못 할까.하도원의 이름을 도용해서 꾸며낸 거짓말이 하나라면 다른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하도원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연못가로 다가갔다. 그는 어디서 꺼냈는지 작은 물고기 밥을 한 움큼 쥐고 무심한 표정으로 연못에 흩뿌렸다.“그래서? 지금 의심하는 거야?”그는 연못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를 구한 사람이 차주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임서율은 확신할 수 없었다. 증거도, 근거도 없었으니까.하지만 방금 있었던 일들 때문에 마음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그렇다고 그때 혹시 당신이 날 구했냐고 직접 물을 수도 없었다.너무 노골적이고 또 너무 무례해 보였다.결국 임서율은 돌려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가 뭔가를 흘리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몇 년 전, 누가 저를 구해준 건지 알고 싶어요.”하도원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시선을 내렸다.“만약 너를 구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면?”그는 몸을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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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너, 내 감정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강수진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울먹였다.하지만 차주헌의 마음속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도 골칫거리가 산더미인데, 강수진은 엉뚱한 문제로 이렇게 따져 묻고 있으니 간신히 눌러놓은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수진아, 너 예전엔 안 그랬잖아. 나한테 부담 준 적 없었잖아. 근데 요즘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대체 왜...”말을 끝내기도 전에, 시선 한쪽에 스친 두 사람의 모습에 차주헌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고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강수진도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 채고는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저쪽 연못가에서 임서율이, 그것도 대낮에 하도원과 키스를 하고 있었다.참 대단한 배짱이었다.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해서 피했을 텐데 강수진은 오히려 정반대로 행동했다.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또박또박 임서율을 불렀다.“서율 씨.”순간, 임서율은 멈칫했다.방금 전까지 하도원에 대한 불신으로 마음이 어수선했는데, 이제 와서야 스스로가 그를 오해했음을 깨달았다.하도원이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임서율의 뺨은 아직 달아올라 있었고 물기를 머금은 입술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살짝 벌겋게 부어오른 자국까지 금방 무슨 일이 있었는지 뻔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차주헌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그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가 임서율을 몰아붙였다.“임서율, 정신 차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오늘 차씨 집안 식구들 전부 모였어. 너랑 우리 삼촌이 만난 것도 말이 안 되는데 하필 여기서!”“너 제발 창피한 줄 좀 알아!”하도원은 마치 남의 싸움을 구경하는 듯한 태도로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봤다.그러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임서율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차주헌 숙모님, 네 권리 행사할 때가 왔어.”단 한마디였지만 임서율은 바로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그녀는 곧장 허리를 곧게 펴고 날 선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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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차주헌은 감히 하도원에게 맞서 소리칠 수도 정면으로 부딪칠 수도 없었다. 결국 우회적으로 말을 꺼내며 최대한 부드러운 어투로 설득을 시도했다.“삼촌,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결국 집안일은 집안일이잖아요. 괜히 밖에서 이런 꼴 보이면 다른 사람들한테 웃음거리만 돼요.”그는 하도원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지만 하도원은 단칼에 그 손을 뿌리쳤다.“난 남이 내 몸에 손대는 거 싫어.”차주헌은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삼촌, 설마 이런 여자 하나 때문에 나랑 끝까지 맞서시겠다는 거예요?”이번에는 임서율이 참지 않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차주헌,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네 삼촌한테 뭘 해줄 수 있어? 실적? 프로젝트? 그거 하나라도 제대로 해낸 게 있어? 아니잖아.”“그리고 네 삼촌 재워줄 수 있어? 이것도 못하잖아.”“근데 나는 할 수 있어. 차주헌, 한번 비교해봐. 넌 대체 뭐 하나 나보다 나은 게 있는데?”순간 차주헌은 말문이 막혔다.“어떻게 그렇게 비교해?”임서율은 단호하게 받아쳤다.“그럼, 어떻게 비교할 건데?”단호한 말투에 차주헌의 얼굴은 순간 새까맣게 일그러졌다. 그는 결국 손가락으로 임서율을 가리키며 이를 악물었다.“임서율, 날 미치도록 좋아해도 이러면 안 되지. 삼촌은 나랑 달라.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날 굴복시키고 내 입에서 숙모 소리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꿈 깨!”“차주헌, 말 똑바로 해.”하도원이 갑자기 낮게 호통을 쳤다. 그 목소리에는 압박감이 가득했는데 옆에 있던 강수진의 어깨마저 덩달아 떨렸다.차주헌조차 하도원의 기세를 버티지 못했는데, 하물며 강수진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차주헌은 입술을 바짝 깨물며 감히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하도원은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차주헌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꼬리는 살짝 치켜올라 있었으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규칙에 따르면 잠시 후, 숙모에게 차를 올려야 해.”차주헌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가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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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하도원의 성격이 까다롭다는 소문은 헛소리가 아니었다.역시나, 하도원은 싸늘한 얼굴로 이혜정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누구와 함께하든, 누구를 선택하든, 그건 제 일이에요. 당신들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이혜정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순간 공기가 묘하게 얼어붙었다.이혜정도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못 들은 척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주변에 집안 친척들이 죄다 지켜보고 있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니 스스로 체면을 구기는 꼴이었다.차주헌은 애초부터 쌓아둔 분노가 있었는데, 하도원이 자기 어머니에게까지 무례하게 굴자 그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삼촌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 상관없어요. 근데 우리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죠. 존경이라는 게 뭔지는 알긴 해요?”하도원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 어른을 공경해야지. 그렇다면 너야말로 네 숙모한테 방금 무례했던 거 당장 사과해야겠네?”“한 번 기회를 줄 테니까 서율이한테 사과해. 그러면 네 불경을 없는 셈 쳐줄게.”임서율은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속으로 거의 박수를 칠 뻔했다. 차주헌이 부들부들 떨며 이를 악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함이 차올랐다.‘하... 이게 바로 사이다라는 거구나.’인간의 희로애락은 통하지 않는 다는 말이 참 맞았다.당사자인 차주헌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귀까지 붉게 물들었는데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차주헌 성격에 절대로 그녀에게 사과할 리가 없었다.하도원은 잠시 시선을 돌려 이혜정을 바라봤다.“이게 바로 형수님께서 가르치신 아들인가요?”“...”이혜정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늘 여기서 차주헌이 사과하지 않으면 하도원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걸.하도원은 팔짱을 낀 채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겉으론 한가롭게 서 있는 듯했지만 묘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차주헌.”차분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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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이혜정은 끝내 하도원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그를 설득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도원이 한번 마음을 굳히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요지부동이라는 사실을 차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심지어 집안의 기둥인 차 회장조차 그를 제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차주헌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어머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임서율은 원래 제 아내였어요! 그런데 이제 갑자기 제 숙모가 됐다는 것도 웃긴데, 거기다 사과까지 해야 한다고요?”“너 지금 제정신이니?”이혜정도 결국 폭발했다. 그녀는 차주헌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네가 계속 이렇게 고집을 부리겠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 없다. 조금 있으면 아버지도 오실 텐데, 그때 어떻게 설명할지 한번 보자.”그 말을 남기고 이혜정은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 했다.“어머니.”“지금 와서 날 부른다고 다 해결되는 줄 아니? 다 큰 사람이라면 구부릴 땐 구부릴 줄도 알아야지. 이딴 걸로 자존심 세워서 뭐 하겠니.”임서율은 차주헌이 머지않아 고개를 숙일 거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무심결에 하도원을 바라본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그 장면을 강수진이 놓칠 리 없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고 눈빛 속 질투는 파문처럼 번져나갔다.임서율과 하도원이 의도적으로 차주헌을 곤란에 몰아넣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차주헌이 망신을 당하면 그녀 또한 욕을 먹게 될 터였다. 부부라는 건 결국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함께 흔들리게 되다.오늘 차주헌이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잃는다면, 그녀 또한 다시는 고개를 들 수 없으리라.게다가 임서율이 정말 차씨 가문에 들어오게 된다면, 앞으로는 그녀 앞에서 기죽어 지내야 하는 꼴이었다.결국 강수진이 나섰다. 그녀는 늘 그렇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부드럽고 순한 목소리로 임서율을 향해 말했다.“서율 씨, 주헌이가 아까 말투가 좀 거칠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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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임서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요. 차주헌이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왜 계속 참아야 하죠?”그녀는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오늘은 꼭 사과 받아야겠어요. 차주헌, 얼른 사과해.”차주헌은 이를 악문 채 성질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높였다.“임서율,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삼촌 꼬셔서 차씨 가문에 들어온 것도 사실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려는 수작 아니야? 결국 나한테 복수하려는 거잖아. 아직도 날 못 잊은 거냐?”“차주헌, 억지 좀 그만 부려.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네가 강수진 씨랑 무슨 짓을 했는지, 여기서 다 까발려줄까? 원하면 그때 찍힌 영상이랑 녹음까지 다 꺼내 보여줄 수 있어.”그 순간, 하도원이 서늘하게 말했다.그 한마디에 차주헌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고 뒤편의 친척들도 웅성거렸다.“소문이 진짜였어? 예전에 강수진이랑 사귀었다는 얘기, 사실인가 봐.”“맞아, 강수진 해외 나간 뒤에 헤어졌다더니, 금방 임서율이랑 결혼했잖아.”“그럼 임서율은 그냥 대체품이었던 거네. 사실이라면 너무 무책임하다.”웅성거림이 퍼질수록 차주헌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다.임서율은 매섭게 그를 노려봤다.“두 사람 예전 일, 더 말 안 해도 알겠지? 아니면 그때 찍힌 영상이랑 녹음, 여기 계신 친척들께 보여줄까?”차주헌의 관자놀이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임서율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임서율, 우리가 부부였던 정을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되지. 나도 더는 봐주지 않을 거야.”그의 손바닥이 임서율의 얼굴을 향해 곧 떨어지려는 순간, 임서율은 놀랍게도 피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정면에서 차주헌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이혜정은 아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자 얼굴이 확 변하며 외쳤다.“주헌아!”그러나 이미 손은 내려오고 있었다.임서율은 눈을 감았다. 올 거라 생각했던 통증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귓가를 울렸다.“아, 아악!”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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