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Bab 561 - Bab 570

832 Bab

제561화

그 얘기가 나오자, 임서율은 젓가락을 집던 손이 덩달아 멈추며 표정을 굳혔다. 곧 접시에서 땅콩 하나를 집어 하도원에게 힘껏 던졌다.“또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요.”하지만 하도원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었다.“오른손이 아프면 왼손도 있잖아. 다만 서율아, 네 손놀림이 조금만 더 빠르면 좋겠어. 너무 느려.”순간, 임서율의 얼굴은 활활 달아올라 폭발할 것 같았다.‘미쳤나 봐.’혹시 김정란이 눈치라도 채면 그녀는 그야말로 땅을 파고 들어가야 했다.임서율은 슬쩍 김정란 쪽을 살폈다. 마침 김정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당황한 임서율은 황급히 둘러댔다.“이모님. 저희 아까 게임했거든요. 손속도 겨루는 게임이요. 타자 게임, 아시죠? 속도가 빠르면 나중에 업무 효율도 좋아지니까요.”김정란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을 보는 눈길엔 알 수 없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다 알죠. 젊은 사람들은 다 그래요. 심심할 때 게임하는 거, 이해해요.”임서율은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이모님, 아니에요. 그쪽 게임이 아니라 진짜 그냥...”“서율 씨, 밥 다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김정란이 웃으며 그녀의 말을 잘라내고는 밥상 쪽을 가리켰다. 결국 임서율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젓가락을 다시 들 수밖에 없었다.그때 하도원이 옆에서 느긋하게 한마디를 보탰다.“괜히 말 돌리면 더 수상해 보여.”임서율은 발길질로 그의 정강이를 세게 찼다.“다 당신 때문이잖아요.”“읏...”하도원이 찡그리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그날 저녁, 임서율은 발가락으로 바닥을 파고 들어갈 기세로 밥을 먹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건 김정란의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식사가 끝나자마자 하도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무심하게 화면을 확인한 뒤 차갑게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십니까.”옆에서 듣기만 해도 임서율은 감이 왔다. 분명 차진만이었다. 차주헌이 하도원에게 얻어맞은 일을 두둔하려 전화를 건 게 틀림없었다.전화 너머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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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하도원의 말은 마치 기관총 같았다. 차진만은 반박 한마디 못 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 노선으로는 도저히 먹히지 않겠다 싶었는지 결국 차진만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을 내렸다.“내 알 바 아니다. 네가 주헌이를 병원 신세 지게 만든 건 사실이고 또 친척들이 뭐라 하겠냐. 당장 임서율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병문안이라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이라도 네 집 문 두드릴 테니 각오해라.”하도원은 속으로 혀를 찼다.보통 사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차진만이라면 정말 밤중에 쳐들어올 인간이었다. 더 끌면 괜히 일이 커질 게 뻔했다.“알겠습니다. 밥만 먹고 바로 갈 테니 병원 위치나 알려주세요.”“운성 병원이다.”“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하도원은 곧바로 임서율을 돌아봤다.“잠시 후에 나갔다 와야 하니까 넌 집에 얌전히 있어. 심심하면 이모님이랑 마당에서 바람이나 쐬고.”임서율은 마지막 밥 한술을 삼키며 조심스레 말했다.“아까 차주헌 보러 가야 한다고 했잖아요. 나도 같이 갈게요.”“이 밤중에 괜히 따라올 필요 없어. 나 혼자 다녀오면 돼.”하도원이 옷을 갈아입으려 위층으로 향하자, 임서율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나도 같이 간다니까요.”그녀의 고집스러운 눈빛을 보자, 하도원은 더 이상 막지 못했다.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좋아. 그럼 옷부터 갈아입어. 지금 그 차림으로 갔다간 차주헌이 환자복 입고 벌떡 일어날지도 몰라.”임서율은 고개를 숙여 자신을 훑어보곤 입술을 비죽였다.“이건 그냥 평범한 원피스거든요.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하지만 하도원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그때 그녀의 시선이 전부 다른 사람에게 쏠려 있어서, 차주헌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하도원은 똑똑히 봤었다. 그건 감정이 다시 살아난 듯한 집요하고 매서운 시선이었다.하도원은 애초부터 차주헌이 진정으로 좋아한 사람이 강수진이라고 믿지 않았다.집착과 미련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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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임서율은 눈을 크게 뜨고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니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네?”하도원이 머쓱하게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못 들었어? 그럼 내가 한 번 더 말해줄까?”임서율은 괜히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 됐어요.”하도원은 그녀의 가슴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으며 태연하게 말했다.“그럼, 말해봐.”임서율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난처한 질문을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물을 수 있는 건지. 한동안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못 하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입술을 열었다.“이런 곤란한 걸 꼭 물어야 해요?”“응.”하도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원래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임서율은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화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손끝을 꼼지락거리다 마지못해 고개를 저었다.“없어요.”그제야 하도원의 찌푸려 있던 이마가 확 펴지더니 강아지 쓰다듬듯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우리 서율이 참 착하네. 괜히 이상한 건 따라 배우지 말고.”임서율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투덜댔다.“도원 씨, 거울 좀 보고 얘기해요. 방금까지 인상 쓰더니 이렇게 금세 웃어대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요.”“그래? 한 번 볼까?”마침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하도원은 거울을 내려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봤다.“꽤 잘생겼는데?”임서율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억지가 하늘을 찌르는 남자였다. 막상 자신을 무슨 일이든 합리화해 버리니.신호가 바뀌자 임서율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초록불이에요, 얼른 운전해요.”차는 곧장 병원 앞에 멈췄고 그제야 임서율은 자신이 빈손으로 온 걸 깨달았다.“뭐라도 사가지고 들어갈까요?”하도원은 차 문을 쾅 닫으며 힐끗 그녀를 봤다.“괜히 돈 쓰고 싶어?”“난 괜찮은데 당신 생각해서 한 말이에요. 그래도 조카잖아요. 혹시 어색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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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오늘 임서율은 새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부드럽게 감기는 원단 위로 작은 얼굴은 뽀얗게 상기돼 있었고 촉촉한 눈망울은 한층 더 맑아 보였는데 그야말로 청순 그 자체였다.하도원의 뜨겁고 거친 손끝이 옷감 사이로 그녀의 허리를 더듬었고 곧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서율아, 꼭 여기서 이런 얘길 해야겠어?”그제야 임서율은 병원 안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하도원은 어디서든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키도 크고 잘생긴 데다, 검은 셔츠에 슬랙스만 걸쳐도 타고난 기품이 번져 나와 마치 걸어 다니는 스포트라이트 같았다.실제로도 벌써 여러 간호사들이 그를 힐끗거리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임서율은 괜히 자신이 표적이 될까 봐 잽싸게 그를 밀어냈다.“어서 가요, 눈에 너무 띄잖아요.”하도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성큼 다가와 그녀 옆에 발을 맞췄다.“뭐야, 질투하는 거야?”“누가 질투한다고요.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요. 게다가 우리는 가짜 커플이잖아요. 누가 당신을 보든, 당신이 누구를 보든 나랑 상관없어요.”투닥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덧 차주헌의 병실 앞에 닿았다. 마침 하도원이 임서율의 머리를 헝클던 순간, 병실 안쪽에서 나오던 이혜정과 차진만이 그 장면을 딱 보고 말았다.차진만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여기가 어딘 줄 알고! 주헌이는 아직 안에 누워 있다. 의사 말로는 뼈 다친 건 백일 걸린다더라. 최소 일주일은 입원 관찰해야 하고. 손에 깁스까지 하고 있는 판에 너희는 밖에서 희희낙락 장난질이냐? 날 잡아먹으려고 작정했어?”하도원은 곧바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차라리 차주헌에게, 왜 어른께 무례했는지 먼저 반성하라고 하셔야죠.”차진만은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그렇다 해도 주먹을 쓰면 안 되지! 손찌검은 무조건 잘못이야!”하도원은 물러서지 않았다.“그럼 차주헌이 제 여자 친구를 때리려 했으면요? 아버지 부인께서 맞았다면 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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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하도원이 임서율의 손가락 마디를 가볍게 눌렀다.“이분은 원래 얼굴 두꺼워. 굳이 네가 체면 세워줄 필요 없어.”임서율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차진만은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하도원!”“됐습니다. 괜히 제 여자 친구 붙잡고 뭐라 하지 않으시면 돼요.”하도원은 성가신 듯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더 서성이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듯.차진만과 임서율은 복도로 나섰다. 이곳은 평소에도 발길이 드문 곳이라 조용했다.임서율은 괜한 인사치레는 하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차진만이 예전부터 그녀가 차주헌과 결혼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차주헌조차 그런 대우를 받았는데 하물며 하도원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도원은 차씨 가문의 기둥이었으니까.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었다.임서율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르신, 저를 따로 부른 건 도원 씨 곁에서 물러나라고 말씀하시려는 거죠?”“이미 눈치챘구나. 뭐든 조건이 있으면 말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주마.”차진만은 이번에는 의외로 차분한 어조였다.임서율은 그 말을 듣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어르신, 기억하세요? 예전에 제가 차주헌과 함께 있을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죠. 세월이 흘러도 습관은 여전하시네요.”그녀는 이내 표정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하지만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이런 일은 제 의지로 정해지는 게 아니에요. 주도권은 제게 있는 게 아니라 도원 씨에게 있죠.”그녀가 스스로를 낮춰서 말하는 건 아니었다. 몇 해 전, 차진만은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압박해 차주헌 곁을 떠나게 만들었다.그때의 그녀는 아직 어리고 미숙했다. 남의 몇 마디에 쉽게 자신을 부정했고 차주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차씨 가문 같은 재벌 집안에서 아들의 아내가 청각장애인이라면 운성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뒤따를 게 뻔했다. 그녀도 차주헌이 고개도 못 들고 다니는 꼴은 차마 보기 싫었다.그런데 차주헌은 죽음을 각오하고 매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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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그런데 하도원은 아니었다.차진만은 수염을 매만지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그 나이에 외국에 나간 것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도원이가 있어야 우리 차씨 가문이 더 단단해지는 거다.”임서율은 그 말을 듣자 비웃음을 터뜨렸다.“허... 참 기가 막히네요. 필요 없을 땐 내다 버리듯 외국에 보내 놓고 수십 년 동안 모른 척하다가 잘 나가는 모습 보이니까 갑자기 차씨 가문의 사람이래요? 잊으셨어요? 도원 씨는 성이 차씨가 아니라 하씨예요.”차진만은 그 날 선 말에 숨이 막히는 듯 입술을 떨며 지팡이를 임서율에게 겨눴다.“차씨 가문의 일을 너 같은 바깥사람이 감히 입에 담아?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지팡이 끝이 눈앞까지 들이닥치자 임서율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차진만은 분노에 치밀어 호통쳤다.“임서율, 넌 우리 차씨 가문의 전 며느리일 뿐이야. 예나 지금이나 내 앞에서 주제넘은 소리할 자격은 없어.”“그저 임씨 가문의 사생아 주제에 네가 뭔데 우리 집안을 평가하고 참견해! 내가 뭘 하든 너 따위가 나설 자격은 없어.”임서율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맞아요, 제게 자격은 없죠. 하지만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입장에선 도원 씨한테 하는 짓이 정말 부당하다고밖에 할 수 없네요. 그이는 어릴 적부터 가족한테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자랐어요.”“오롯이 자기 힘으로 여기까지 왔고 차씨 가문의 도움이라곤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죠. 그런데도 끝까지 도원 씨를 이용하려 하잖아요.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넌 정말 우리 차씨 가문의 화근이구나!”차진만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그는 손에 든 지팡이를 위협적으로 치켜올렸다.임서율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조금 지나쳤다는 건 알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하도원 성격에 저런 말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 누군가는 대신 해야 했다.그는 언제나 어떤 고통도 혼자 삼켜버리는 사람이니까.그 순간, 다정한 손길이 허리를 감쌌고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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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차진만이 분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이 여자는 너랑 어울리지 않아!”“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아시나 보네요?”하도원은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차진만은 임서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턱까지 파르르 떨었다.“방금 이 여자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그때의 말이 떠오르자 다시금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하도원은 임서율을 자기 뒤로 감싸안으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제가 듣기엔 틀린 말 하나도 없던데요. 우리 차씨 가문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필요할 땐 제가 차씨 가문의 피를 이었다며 찾다가, 필요 없을 땐 저한테 한 번이라도 안부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까?”그는 임서율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마치 선언이라도 하듯 또렷이 말했다.“저는 이번 생에 임서율 말고는 절대 안 만날 거니까 알아서 하시죠.”하도원은 그 말을 내뱉고는 곧장 임서율을 데리고 돌아서 버렸다.차진만은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두 사람이 병실 앞을 지나칠 때 안쪽 침대에는 차주헌이 누워 있었다. 잠깐 스친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임서율이 황급히 시선을 거두려는 순간, 커다란 손이 불쑥 뻗어와 그녀의 눈을 가렸다.“내 앞에서 딴 남자랑 눈빛을 주고받다니, 임서율. 간이 부었구나?”임서율은 그의 손을 억지로 치워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뭐라는 거예요. 그냥 흘끗 본 건데 그게 무슨 눈빛을 주고받은 거예요. 제발 말 좀 함부로 하지 마요.”하도원의 소유욕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둘은 어디까지나 ‘계약 연인’일 뿐이었다.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제 와서 연기할 필요는 없지 않나.방금 그가 그녀의 편을 들던 모습이 떠올라, 임서율은 무심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듯 말했다.“근데 있잖아요, 아까 연기는 꽤 실감 나던데요? 다만 그런 말은 다시는 하지 마요.”연인 흉내를 내는 것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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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임서율은 얼마 전 차진만이 하도원에게 전화로 했던 당부를 떠올리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좀 앞뒤가 바뀐 거 아니에요? 집안 어르신이 도원 씨더러 차주헌 병문안 가라고 한 건데, 당신은 오히려 경고했네요.”하도원은 피식 웃었다.“애초에 그 부탁을 할 때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지. 내가 단순히 문병이나 하러 갈 것 같아?”그는 어깨를 으쓱였다.“팔 하나 더 안 꺾은 게 다행이지.”임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도원 다운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면 차주헌은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둘이 병원을 나서니 이미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마침 병원 앞 거리는 야시장이 펼쳐져 밤공기에는 진한 군것질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임서율은 요즘 내내 일에 치여 살아, 이런 데서 밥을 먹어본 게 꽤 오래였다. 고소한 향에 입맛이 당겼지만 하도원이 이런 길거리 음식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해 그냥 발길을 돌리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하도원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물었다.“배고프지 않아?”“네?”뜻밖의 질문에 임서율은 잠깐 멍해졌다.하도원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다시금 물었다.“배 안고프냐고. 뭐 좀 먹고 갈래?”“먹어도 돼요?”임서율은 눈이 반짝였다.“정말요? 나야 좋죠. 근데 도원 씨는 이런 거 괜찮아요?”하도원은 시선을 내려 그녀를 한번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나도 사람이야. 못 먹을 게 뭐 있어. 네가 먹고 싶은데 골라.”“그럼 저기!”임서율은 가장 손님이 많은 꼬치구이 가게를 가리켰다.“예전에 학교 앞 가게만은 못하겠지만 손님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맛은 보장됐을 거예요.”그녀가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자 하도원도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막상 마주 앉고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단정한 셔츠에 바지 차림일 뿐인데도 그는 이곳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걸어 들어온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꽂혔다.남자 친구와 함께 온 여자들까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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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하도원과 임서율이 잠깐 서로 눈을 마주쳤다.임서율이 조심스레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저희는 연락처는 따로 안 드려요.”순간, 기대하던 몇몇 남학생들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그럼 두 분은 혹시 연인 사이신가요?”임서율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스무 살 갓 넘은 듯한 나이였고 아직 세상 풍파에 닳지 않은 맑은 눈빛들이었다.그 표정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음... 대신 제 인스타는 알려드릴게요. 거기 팔로우하시면 필요할 때 디엠 주셔도 돼요.”“정말요? 대박이다. 누나,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전 전공이 디자인이랑 금융이에요.”“저도요! 거기에 건축 쪽도 좀 배우고 예전에 신재생에너지랑 드론 연구도 했어요.”뜻밖에도 전부 자기 전공을 줄줄 풀어놓는 걸 보니, 임서율은 순간 운명 같은 장난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흥미가 확 당겨 웃음이 번졌다.“좋네요. 언제든 괜찮아요. 혹시 졸업하고 일자리 못 구하면 저희 회사에 올 수도 있겠네요.”하도원은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무슨 회사를 한다고.”‘설마 이 무리 전부를 자기 밑으로 끌어들일 생각인 건가.’일을 하려는 건지, 조수를 뽑으려는 건지 헷갈렸다.하지만 임서율은 이미 하도원을 뒷전으로 밀어두고 학생들한테만 집중하고 있었다.“기회가 생긴다면 고려해 볼게요. 물론 우리 일도 만만하진 않아요. 그래서 체력은 필수예요. 몇 날 며칠 못 버티고 쓰러지면 곤란하거든요.”“걱정 마세요, 누나! 저 몸 엄청 튼튼해요. 심지어 복근도 있어요, 보여드릴까요?”말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셔츠 자락을 걷어 올리려 했다.하도원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이미 인내심의 끝을 밟고 있었던 그는 고개를 들어 사장에게 말했다.“사장님, 여기 통로 좀 뚫어주실래요? 사람이 너무 많아 숨 막혀 죽겠어요.”그제야 사장이 사태를 알아채고 급히 다가왔다.“손님들, 죄송한데 자리로 돌아가 주시겠어요? 다른 손님들 식사에도 방해가 됩니다.”임서율도 이제야 눈치챘다.주위가 아예 꽉 막혀 있었고 심지어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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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여자애들은 갑자기 희망의 빛이라도 본 듯, 반짝이는 눈을 한껏 치켜뜨고 임서율을 바라봤다.“예쁜 언니, 혹시 저희한테 이 잘생긴 오빠 연락처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두 분 사이 방해는 절대 안 해요.”“맞아요, 저흰 그냥 단순히 감상만 하고 싶을 뿐이에요.”임서율은 이를 악물고 하도원을 노려봤다.이 죽일 놈의 남자, 정작 본인은 거절할 줄도 모르면서 이런 뜨거운 감자를 그녀의 손에 던져놓다니.안 준다고 하면? 저 여자애들 눈빛을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에휴, 괜히 여자들끼리 맞서서 뭐 하겠어. 그건 자업자득이지.’임서율은 결국 시원스럽게 입을 열었다.“좋아요. 인스타 드릴게요.”“꺄악, 대박! 내가 뭐랬어, 이 언니는 착할 줄 알았다니까!”“그러니까. 지난번에 어떤 여자는 너무 쪼잔했어. 우리가 남자 친구 번호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SNS 계정인데 그것도 안 주더라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임서율은 간담이 서늘해졌다.다행이다, 만약 안 줬으면 벌써 뒷담으로 신나게 씹혔을 거다.여자애들이 하도원의 인스타를 받아 적고는 곧 흩어졌다.주위도 함께 서서히 정리되자 임서율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공기도 갑자기 탁 트이는 것 같았다.마침 사장이 그들이 주문한 꼬치를 내오며 말했다.“두 분, 맛있게 드세요.”임서율은 눈이 번쩍 뜨였다.“냄새가 완전 끝내주네요!”그녀는 기다릴 틈도 없이 꼬치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고소한 기름 향에 고춧가루 향이 터져 나오자 저절로 눈이 가늘게 감겼다.“이거 진짜 맛있어요. 도원 씨도 얼른 먹어봐요.”그녀는 신나서 꼬치를 건네려다, 그제야 하도원의 얼굴이 석탄보다 더 시커멓게 굳어 있는 걸 보았다.‘...뭐지?’임서율은 머릿속을 빠르게 굴렸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를 건드린 걸까.한참 생각하던 끝에 딱 하나 짚였다.“설마 인스타 준 것 때문에 그래요? 근데 그거 아무 상관 없잖아요. 어차피 도원 씨 계정은 텅 비어 있잖아요. 글도 안 올리고. 그러니까 걔네도 괜히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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