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591 - Chapter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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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1화

하도원은 바로 진승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진 비서, 당장 현장 다시 확인해. 한종서가 폭행이나 강간한 증거가 남아 있는지 철저히 찾아봐. 그리고 박지안도 병원으로 데려와. 직접 물어볼 게 있어.”“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난 뒤, 하도원은 불안에 가득 찬 임서율을 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집었다.“왜 그래, 네 남자 친구 못 믿어? 이 정도 일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임서율은 고개를 저었다.“그게 아니라 그냥 당신한테 너무 짐이 될까 봐 그래요.”하도원은 그녀의 볼을 위로 잡아당겼다.“임서율, 도대체 언제쯤 네 남자 친구한테 기대는 법을 배울래? 왜 이렇게 좋은 줄 몰라.”임서율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찡그렸다.“아파요...”하도원은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놓았다.“아니, 겨우 이걸로 아프다 해? 힘도 안 줬는데.”임서율은 얼른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춰보고 싶었지만 그제야 자신의 폰이 하도원 손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휴드폰 줘요.”하도원은 침대 주변을 더듬어 찾더니 폰을 건넸다.폰을 받아들자 화면 한쪽에 금이 가 있었고 뒷면에도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분명 세게 떨어뜨린 흔적이었다.그녀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폰의 상태만 봐도 얼마나 위급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도 이 정도면 오히려 기적이었다.임서율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항상 냉정하던 하도원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어라, 임서율. 이젠 제법 주도적인데? 대견하다니까.”임서율은 뻔뻔스러운 그 표정에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겨우 뽀뽀 한 번 했을 뿐이잖아요. 왜 이렇게 바보처럼 굴어요.”하도원은 눈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럼 다음엔 조금 더 과감해도 되겠네. 난 뭐든 다 받아줄 준비돼 있어.”임서율은 웃으며 그를 흘겨보았다.“지금 상태가 어떤데, 정신은 온통 쓸데없는 곳에 가 있네요. 먼저 몸이나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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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2화

“그럼 나 잠깐 눈 좀 붙일 테니까 당신도 얼른 자요.”하도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서율이 그냥 피곤해서 쉬려는 거라 생각했을 뿐, 그 안에 숨어 있는 그녀의 불안과 뒤흔들린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임서율은 이불을 꼭 움켜쥔 채 무너져 내리려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그때 진승윤이 박지안을 데리고 병실 앞에 나타났다. 노크하려 손을 들자, 하도원이 곧장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진승윤은 곧 눈치를 채고 하도원을 부축해 조심스레 병실 밖으로 나왔다.두 사람은 임서율이 깊이 잠들었으리라 믿었다지만 그녀는 여전히 정신이 또렷한 상태였다.복도 긴 벤치에 앉은 하도원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들었어. 네가 한종서 편을 들었다며?”박지안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임서율의 일이면 그는 언제든 시간을 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도움이 필요할 땐,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사랑받는 쪽과 외면당하는 쪽의 차이는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드러났다.이번 일을 겪으며 박지안도 많은 걸 깨달은 듯했다. 얼굴엔 핏기가 없었고 목소리엔 힘마저 빠져 있었는데 그 안엔 묘하게 비웃음까지 섞여 있었다.“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어. 오빠는 임서율 때문에 차씨 가문까지 버렸잖아. 오빠는 그래도 제 몸 지킬 수 있겠지만 우리한텐 그럴 힘조차 없어.”“만약 한씨 가문의 뜻을 거스른다면 운성시에서 어떤 꼴을 당할지 오빠가 더 잘 알 거잖아.”하도원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러니까 내가 아닌 한종서를 믿겠다는 거야?”박지안의 눈빛에는 미안함이라고는 없었고 오직 체념과 무력감만 가득했다.“예전엔 오빠가 우리를 많이 챙겨줬지. 근데 이제 달라졌잖아. 오빠 마음은 온통 임서율한테 가 있으니까 우리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딨어.”그 말에 하도원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말은 내가 여자 친구한테 잘해주는 게 문제라는 거야? 너한테 똑같이 해줘야 만족하겠다는 거야?”하도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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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3화

박지안은 곤란한 얼굴로 하도원을 바라봤다.“오빠, 제발 나 좀 몰아세우지 마. 임서율은 그래도 오빠가 뒤에서 버텨주고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아니야. 대체 나더러 어쩌란 거야.”“사실대로 말하는 건 네 의무야. 괜히 한종서를 핑계로 삼지 마. 그 밑에 있는 놈들이 널 해치려 들었을 때 왜 못 이긴 척 넘어가지 않았는데.”“이제 와서야 한종서 세력이 크다는 게 생각난 거야?”박지안은 지금 불에 달군 쇠 위에 올라앉은 기분이었다. 하도원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문제는 임서율 편을 들어 증언했다간 화를 입게 될 터였다.게다가 하도원을 돕는 건 곧 임서율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 여자는 절대 돕고 싶지 않았다. 임서율만 아니었으면 진작 하도원과 만났을 테니까.그 생각에 미묘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박지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미안해, 오빠. 이번 부탁은 못 들어줄 것 같아. 내가 오빠를 돕는 순간, 운성시에서 발붙이고 살 수 없어. 나랑 엄마 사정 좀 봐줘. 우리 모녀는 임서율처럼 뒤에 든든한 버팀목이 없잖아. 그 여자는 오빠가 있겠지만 우린 아무도 없다고.”말을 마치자, 박지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보다 못한 진승윤이 입을 열었다.“박지안 씨, 그래도 같은 여자잖아요. 게다가 당신도 당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함께 힘을 합쳐 나쁜 놈을 벌해야 할 때지, 그놈을 두둔할 때가 아니에요. 대표님이 그동안 어떻게 대해주셨는지도 잘 알잖아요.”박지안은 걸음을 멈추더니 홱 돌아서서 진승윤을 노려봤다.“원망하려면 안에 있는 임서율을 원망해요. 임서율만 아니었으면 한종서가 오빠랑 이 지경까지 얽히지도 않았어요. 내가 인질로 끌려오는 일도 없었을 거고요. 그런데 왜 나만 몰아붙여요? 원인을 따지자면 그 여자잖아요. 그 여자가 이 사태의 도화선이라고요!”“한종서 문제가 아니더라도 난 절대 그 여자를 안 도울 거예요. 나랑 오빠는 어릴 적부터 함께였고 이제 곧 약혼까지 하려던 사이예요.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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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4화

박지안의 마음속 서러움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진승윤은 하도원을 부축해 병실로 돌아가면서 물었다.“대표님, 박지안 씨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그는 하도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박지안이 저 지경까지 일을 벌였다면 분명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하도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동안 쓰던 카드들 다 정지시켜. 어차피 지금은 한종서 밑으로 붙겠다는 거잖아? 그럼 그놈이 밥 한 숟갈이라도 주는지 한번 지켜보자고.”진승윤은 피식 웃었다.“그건 절대 불가능하죠. 한종서는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박지안 씨까지 챙기겠습니까. 게다가 한종서한테는 아무 쓸모도 없잖아요.”하도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진승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진 비서도 알아차린 걸 그 모녀는 끝내 몰랐던 거지. 뭐 어쩌겠어, 기회는 줬는데 스스로 걷어찼으니.”진승윤도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 잘못도 아닙니다. 처음에야 그 모녀가 은혜를 베푼 건 맞지만 지난 세월 대표님이 드린 것만 해도 충분히 갚고도 남았죠.”하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지시를 내렸다.“증거 수집은 반드시 서둘러. 그리고 제일 좋은 변호사 붙여서 소송 준비해.”만약 재판에서 한종서가 이긴다면 이후로는 더 기세등등해질 게 뻔했다.그 말을 하며 진승윤의 얼굴이 굳어졌다.“대표님, 제가 갔을 때 이미 한씨 집안 사람들이 선수를 쳤습니다. 게다가 운성시에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랑 계약까지 끝냈더군요.”하도원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역시 노련한 자일수록 수는 행동이 빠른 법이었다.한태민은 자신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뒷수습까지 다 마련해 둔 모양이었다.이제 그들에게는 남은 몫조차 없었다.하도원은 휴대폰 주소록을 훑더니 번호 하나를 진승윤에게 내밀었다.“이 사람 최근에 어디 있는지 확인해. 듣자 하니 해외에서 꽤 유명한 변호사라던데, 원래는 국내 출신이야.”진승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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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5화

박지안은 이를 꽉 악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코끝으로는 시큰한 기운이 몰려들었다.그녀는 한종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한종서,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분명 약속했잖아. 게다가 난 한 번도 임서율 편을 든 적 없어. 줄곧 당신을 도왔다고!”사람들은 모두 한종서를 건달처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놈이라 여겼다.하지만 정작 그들은 몰랐다. 그는 게으른 척할 뿐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한종서는 입꼬리를 비틀며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올려다봤다. 마치 곁에서 구경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조소가 묻은 눈빛이었다.“박지안, 너 바보 아니야? 아니면 스스로 감동이라도 한 거야? 하는 짓마다 남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나 봐.”“날 위해서라고?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그냥 네가 임서율이 꼴 보기 싫어서 증언을 바꾼 거잖아. 근데 사람 잘못 찾았어.”그는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원래부터 가차 없었다.박지안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아니었다.한종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즐겼다. 자기가 영리하다고 믿지만 사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들. 더구나 박지안은 하도원의 사촌 동생이었다. 하도원과 연관된 모든 인간이 그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다.그는 일부러 그녀의 상처를 후벼 파듯 말을 이어갔다.“박지안, 지금 당장 네 사촌 오빠한테 전화라도 해볼래? 과연 다시 널 받아줄까?”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는데 오만하고 잔인했다.“근데 네 오빠 성격으로 널 다시 믿을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젊었을 땐 속는 일도 많았을 테니 말이야.”박지안은 턱이 떨려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를 짚으며 욕을 퍼부었다.“짐승 같은 놈! 네 꼴이 이 모양이니 이혼한 임서율조차 널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야! 제대로 반성해 봐!”“심지어 날 비웃다니. 너랑 내가 뭐가 다른데? 네네 집안이 돈 좀 있다고 해도 임서율 눈에 안 차는 건 똑같잖아. 결국 우리 둘 다 똑같은 신세인데, 뭐 하러 이렇게 서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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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6화

박지안은 울음을 터뜨리며 그제야 하정화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말을 들은 하정화는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뭐라고? 네가 한종서 편을 들면서 증언을 안 했다고? 박지안, 정말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 한종서가 너랑 무슨 상관인데!”“그 사람이 누구라고 이렇게 팔을 걷어붙이고 편을 들어!”하정화가 화를 내는 건 박지안도 거의 처음 보는 일이었다.비록 양녀지만 하정화는 지금까지 늘 친딸처럼 잘 대해주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낸 건 처음이라 박지안은 더 서러웠다.“엄마, 이건 저만 탓할 수 없어요. 임서율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예요.”“엄마는 못 봤죠? 오빠가 그 여자 때문에 목숨까지 내던질 기세라니까요.”“왜요, 왜 그 여자가 저보다 나은 게 뭔데요!”박지안은 계속해서 억울함만 쏟아냈다.하정화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치밀어 올랐다.“바보야, 한 순간하고 평생을 구분도 못 하니? 네가 오빠랑 결혼은 못 해도 오빠가 우리 생활비는 몇 년 동안 빠짐없이 챙겨줬잖아.”“근데 이제 와서 도원이 심기를 건드리고 한종서한테 붙어? 내 짐작이 맞다면 한종서가 너한테 무슨 약속을 했다가 이제 와서 딴소리한 거겠지?”한종서 얘기가 나오자 박지안은 눈물을 더 쏟아냈다.“엄마, 한종서 그 인간 완전 쓰레기예요. 시킨 거 다 하면 2억 주겠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말을 바꾼 거예요.”“말만 바꾸면 그나마 다행이지, 아예 2억을 이천만으로 깎아버렸어요.”박지안은 차마 칼을 들 용기까지는 없었지만 한종서를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하정화도 목소리를 높이며 전화기 너머로 울부짖었다.“박지안, 너 지금 우리 인생을 다 망쳐놓고 있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박지안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면서 애원했다.“엄마, 우리 어떡해요. 오빠가 우리를 모른 척하면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딸이 이렇게 망가져 있는 걸 보자 하정화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 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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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7화

그녀는 다시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 위에서는 한종서가 팔자 좋게 누워 과일을 집어먹고 있었다.그 옆에는 언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는 요염한 여자가 바싹 붙어 앉아 있었다. 옷차림은 노골적이었고 몸매를 따라 꼭 맞게 감긴 치마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시선을 끌었다.박지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임서율도 멀쩡했고 한종서도 멀쩡했다. 모든 이가 무사한데, 무너진 건 오직 그녀뿐이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순식간에 짙은 독기를 머금었다. 마치 독사처럼 눈동자에서 치명적인 독액이 흘러나오는 듯했다.그녀는 곧장 한종서 앞까지 걸어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나한테 2억만 줘요. 그러면 임서율을 당신 품에 안겨줄게요.”수박을 베어 먹던 한종서가 잠시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사악하게 비튼 미소가 걸렸다.“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 여자한텐 이제 별 흥미 없어.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그는 낮게 웃으며 덧붙였다.“내가 가지지 못한 여자라면 하도원도 절대 못 가져.”박지안은 그 말을 듣자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그러니까 내가 필요하잖아요. 당신이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고 머리 굴릴 필요도 없어요. 돈만 내면 해결해주는 사람을 고용한 거나 다름없는데 왜 마다해요.”한종서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달랐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수박 조각을 옆의 여자에게 건네준 후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좋아, 계획이 뭔지 들어보자. 마음에 안 들면 그 돈은 꿈도 꾸지 마.”박지안은 생각해 두었던 계획을 차근차근 꺼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한종서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얼굴 바뀌는 속도가 책장 넘기는 것보다 빠르네. 임서율을 노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쳐도, 네 사촌오빠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네.”그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섬뜩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박지안의 얼굴에는 잔혹한 기색이 스쳤다.“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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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8화

어쨌든 두 집안이 얽힌 문제다 보니, 만약 언론에 흘러 들어가기라도 하면 세상이 어떻게 떠들어댈지 뻔했다.무엇보다 하도원이 직접 막지 않더라도 한씨 집안 쪽에서 먼저 움직일 게 분명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 일에 민감할 테니까.게다가 한종서가 다친 부위가 하필 그런 곳이니, 소문이라도 돌면 어느 여자가 감히 그와 결혼하려 하겠는가.양지우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직원 하나가 한종서 쪽 무리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얘길 들었다는데 정확한 건 모르는 것 같아. 다만 하 대표님이랑 한종서가 여자를 두고 충돌이 있었다, 그 정도만 알고 있더라.”임서율은 피식 웃음이 났다.“그런데 넌 왜 그렇게 확신해? 그 여자가 꼭 나라는 거.”전화기 너머로 양지우가 히죽거렸다.“그거야 뻔하지 않아? 누가 봐도 너잖아. 한종서, 그 인간은 너한테 딱 달라붙으려고 작정했잖아.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놓아주고.”“돈 많은 사람들 성격이 다 그렇지 뭐. 못 가지면 더 가지려고 안달하는 거.”양지우는 곧 본론으로 넘어갔다.“퇴근하고 보러갈 테니까 주소 좀 보내줘. 아, 그리고 아침에 임유나가 네 계모랑 주주총회를 열었어. 거기서 네가 임씨 집안이랑 인연을 끊겠다는 녹음을 직접 틀어버렸지 뭐야.”“그래서 지금 막 대표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왔어. 이제 넌 주식만 받는 주주일 뿐이야.”“임유나는 다시 부사장 자리에 올랐어. 사실 회사 안에선 임유나 말고 딱히 대안이 없기도 하고.”그 얘기를 듣고도 임서율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애초에 해성 그룹을 이어받을 생각 같은 건 없었고 다만 임규한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임규한도 이젠 이해할 거라 믿었다. 적어도 그녀가 한종서 같은 인간에게 시집가는 꼴은 눈 뜨고 보진 않을 테니까.양지우의 목소리가 한층 눌려 있었다.“근데 넌 정말 지금 가진 걸 다 버릴 거야? 너 전에 회사에 엄청 큰 계약도 따왔잖아. 내가 보기엔 네가 계속 대표로 있었으면 해성 그룹은 분명 크게 날아올랐을 거야.”“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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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9화

진승윤은 이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솟아올랐고 즉시 말을 바꿨다.“괜찮습니다. 안 해도 됩니다.”하도원이 진승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이리 와봐.”임서율과 진승윤은 그 순간, 하도원이 사람을 부르는 게 아니라 율이를 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고 임서율이 이때 급히 하도원을 대신해 해명했다.“아마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율이가 가끔 말을 안 들을 때 이렇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거든요.”진승윤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그런가요? 하하...”임서율은 고개를 숙였다. 해명을 안 하느니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승윤은 하도원 옆으로 가서 그의 귀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큰일 났습니다. 한 회장님 쪽에서 이미 우리 주식 시장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게다가 계약을 앞둔 협력업체들이 모두 이 시점에서 협력 취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정말 심각한 건 현재 우리 회사와 협력하고 있는 업체들이 위약금을 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협력을 중단하겠다는 겁니다.”상대방이 위약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 해도 회사는 분명히 손실을 입게 된다. 한두 곳, 두세 곳이야 그럭저럭 괜찮지만 많아지면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회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다.하도원은 한태민이 자신을 굴복시키기 위해, 한종서의 분풀이를 위해 이렇게 극단적인 수단을 쓸 줄은 몰랐다.거액을 아끼지 않고도 그를 파산시키려 하다니.한태민은 차씨 가문이 더 이상 자신의 일에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재호 그룹은 솔직히 말해서 그의 개인 재산이지만 성운은 차씨 가문의 재산이었다.그는 파산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그러나 차진만은 하도원이 하루아침에 파산하고 자신에게 구걸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차진만이 기회를 잡아 지배권을 되찾고 다시 그를 통제하려는 것이다.하도원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소식을 듣고도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그는 임서율이 이 일을 알기를 원치 않았다.하도원은 임서율의 성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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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0화

“안 돼요. 지금 상태로는 저는 물론이고 병원에서도 퇴원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일 처리하고 바로 돌아올게.”하도원의 어조가 드물게 부드러워졌고 심지어 상의하는 듯한 말투까지 느껴졌다.하지만 임서율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거절했다.“안 돼요. 오늘은 하늘이 무너져도 회사에 보낼 수 없어요. 하도원 씨, 몸은 당신 거잖아요. 의사 말 못 들었어요? 빨리 실려 오지 않았다면 그 다리는 벌써 못 쓰게 됐을 거라고요.”진승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하도원을 멍하니 바라봤다.오늘 귀신이라도 본 건가?하도원과 함께 일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그가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독립적이었고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해결했다.언제부터 다른 사람과 상의를 했단 말인가.그런데 오늘은 임서율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이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진승윤은 옆에 서서 계속 구경했다. 그는 하도원이 이 큰 골칫거리를 어떻게 해결할지 보고 싶었다.하도원은 지팡이를 짚고 그녀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새까만 눈동자로 압박하듯 바라보자 임서율의 마음은 어느새 조마조마해졌다.그의 몸에서는 병원 소독약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올라왔지만 이상하게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쿵쾅 뛰었다.임서율은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는 이유가 하도원이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체취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기계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말도 어눌하게 내뱉었다.“왜... 왜 그렇게 쳐다봐요? 내가 뭘 잘못 말했나요?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와도 똑같이 말할 거예요.”하도원은 임서율을 향해 능글맞게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녀의 입술을 향해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서율아, 나 보고 싶으면 솔직히 말해. 부상을 핑계로 댈 필요 없어.”임서율은 이제 그의 황당한 말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모든 주의가 오로지 자신의 입술로 쏠려 있었다.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을 크게 뜨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가렸다.“하도원 씨,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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