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661 - Chapter 670

825 Chapters

제661화

“아빠가 이미 이혼을 요구하셨어요. 머지않아 정설아는 임씨 집안을 떠나게 될 거예요.”임서율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이모님, 혹시라도 대비를 해 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이민정의 얼굴에 걱정이 깊게 드리웠다.“아가씨, 이 나이에 누가 절 받아주겠어요. 게다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임씨 집안에서 지냈는데, 이제 와서 다른 데 적응하기도 힘들 것 같아요.”임서율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렇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생활 습관과 익숙한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 뿌리내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조용히 생각하던 임서율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그럼 이렇게 해요. 만약 더는 임씨 집안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면 저랑 같이 지낼래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전 앞으로 이곳에 계속 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경우에 따라선 외국으로 나갈지도 몰라요. 괜찮겠어요?”아직 앞날이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선, 이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뜻밖에도 이민정은 주저하지 않았고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좋죠. 전 상관없어요. 어차피 자식도 없고, 혼자 사는 몸인데 어디든 똑같지요.”말은 가볍게 했지만, 그 미소 안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임서율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이렇게 물었다.“그럼 친척은 있어요?”이민정은 고개를 저으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어릴 적 인신매매로 산골에 팔려 갔어요. 그때 아가씨 어머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친척에 대한 기억은 애초에 없었어요. 집이 어디였는지도, 부모님 얼굴이 어땠는지도 하나도 몰라요.”임서율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수소문해볼 수 있지 않았어요? 경찰에 신고한다든가.”“이미 해봤지만 소용없었죠. 너무 어려서 기억이 희미하다 보니 단서가 될 만한 게 없었거든요. 그래도 인신매매범은 잡혔어요.”“그럼 그 사람을 통해 가족을 찾을 수 있지 않나요?”이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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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임서율은 주치의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의사는 임태규의 차트를 잠시 훑어본 뒤,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노환으로 심장이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괜히 흥분하다가 돌발 상황이 오면, 그땐 정말 큰 일이에요.”임서율의 얼굴빛이 단번에 굳었다.“치료할 방법은 없나요?”의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았다.“연세가 많으셔서 스텐트 시술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약물치료, 즉 보존적인 방법이 최선이에요.”임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임규한의 성격을 생각하면, 고령에 무리한 수술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터였다.“알겠습니다. 우선 약이라도 처방해주세요.”처방전을 받아든 그녀는 약국으로 향하려다 복도에서 하도원을 마주쳤다.순간 떠오른 생각에 그녀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유민아, 지금 잠깐 와 줄래?”불과 5분도 되지 않아, 김유민이 달려왔다.“누나, 무슨 일이에요?”“내가 약국에 다녀오는 동안, 도원 씨 좀 대신 데리고 가서 진료받게 해줘. 혹시 약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지, 다리에 있는 석고붕대는 언제 교체해야 하는지 물어봐.”김유민은 곁에 서 있던 하도원을 흘깃 보더니,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성격대로 곧장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전 안 갈래요.”“왜?”임서율은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껏 김유민은 그녀의 뜻을 거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목숨 걸린 일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그가, 고작 동행 하나 때문에 거절하니 의아할 따름이었다.하도원은 그런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서늘한 눈빛으로 김유민을 훑고는 입을 열었다.“그럴 필요 없어. 약 받고 같이 가면 되지.”“하지만 약국에 다녀오고 아빠를 뵈러 가야 해요...”임서율이 난처하게 말을 잇자, 하도원이 시계를 흘깃 보며 말했다.“괜찮아. 급한 일도 아니잖아.”임서율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김유민이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됐어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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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임서율은 눈가에 잔잔한 웃음을 띠며 손을 흔들었다.“얼른 가.”김유민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곁에 서자, 하도원은 그를 흘겨보았다.“네가 왜 따라와.”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김유민도 지지 않고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요? 누나가 같이 가라고 해서 억지로 따라온 거예요.”하도원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네 일이나 해. 따라올 필요 없어.”그럼에도 김유민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어쩔 수 없죠. 누나가 시킨 건 무조건 지켜야 해요.”그 말에 하도원은 피식 웃었으나, 눈동자는 여전히 서늘했다.“임서율이 대체 너한테 무슨 마법이라도 걸었어? 왜 그렇게 고분고분한데.”김유민 역시 매섭게 눈길을 돌렸고 하도원의 강렬한 기세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그래서일까. 하도원은 이 청년을 다른 누구보다 특별히 신경 쓰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의 앞에서 적잖이 주눅이 드는데, 이 녀석은 그를 마치 원수 대하듯 노려보았다.하도원은 그의 눈빛 속에서 분명한 적의와 경계를 읽어냈다.“누나에 대한 마음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자길 죽이러 온 놈이란 걸 알면서도, 끝내 너를 놓아주고 다시 살 기회를 준 것 때문에 그래?”김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단하지 않아요? 위험을 각오하고 기회를 줬잖아요. 전 그 결정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그땐 누나가 목숨을 칼끝에 걸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요.”하도원도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안 했을 거야. 후환은 반드시 없애는 게 내 방식이거든.”“그러니까 누나가 뭘 부탁하든 전 기꺼이 따를 거예요. 죽음이 기다린다 해도 마찬가지예요.”“너, 혹시 임서율 좋아해?”갑작스러운 질문에 김유민은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 침착하던 표정도 순간 무너졌고 시선이 허공을 헤맸다.“그걸 왜 당신한테 말해야 하는데요.”하도원은 피식 웃었다.“말하든 말든 상관없어. 다만 알아둬. 네 마음이 어떻든 임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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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김유민이 솔직하게 말했다.“그건 저도 동의해요.”두 사람은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진료실 앞에 다다랐다.하도원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김유민을 보았다.“너는 밖에서 기다려.”그러나 김유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같이 들어갈 거예요. 누나가 분명히 말했어요. 대표님 혼자 두면 의사 분부 절대 안 따른다고요.”하도원은 살면서 이렇게 고집 센 사람은 처음이었다. 옛날이라면 틀림없이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충성스러운 사내였을 것이다.괜히 말다툼할 생각도 없던 그는 툭 하고 내뱉었다.“마음대로 해.”그는 먼저 진료실로 들어갔고 김유민은 마치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랐다.조현우는 하도원을 보자마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라 입을 떼려는 순간, 하도원이 먼저 막아섰다.“됐어. 잔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검사나 해. 나 뒤에 할 일 많아.”조현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넌 참... 됐다, 어서 들어가서 검사부터 하자.”검사가 끝나고 나오자 하도원이 물었다.“어때, 이제 깁스는 풀어도 돼?”“풀어도 되긴 해. 하지만 아직은 무리하면 안 돼. 당분간은 절대 과로하지 말고.”원래라면 이 기회에 한참 잔소리를 늘어놔야 했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걸 보니 조현우도 할 말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약을 적어 내려갔다.“세세한 건 네가 알아서 조절해. 괜히 무리하지 말고.”하도원은 그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거의 완전히 회복됐다는 거네?”조현우는 인정하는 듯했지만 곧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착각하지 마. 좋아졌다고 제멋대로 굴지 말라는 거야. 요즘 회사는 어때?”“그럭저럭.”하도원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현우가 안다고 해결해 줄 일도 아니었으니까.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우리 병원에 최근 꽤 대단한 사업가 한 명이 입원했는데, 네 전공이랑 맞을 것 같더라. 기회 되면 소개라도 해줄까?”“필요 없어.”하도원이 단칼에 잘라냈다.조현우는 원래 뒷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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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임태규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약했고 목소리는 기운이 빠진 상태였다.“네 생각엔 서율이가 임씨 집안에 계속 머무는 게 과연 좋은 일이겠니?”임규한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무슨 뜻이에요?”“아직도 모르겠니? 서율이는 결국 집안에 해가 된다고. 유나도, 지훈이 엄마도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야. 나는 이제 나이도 많고 더는 지켜줄 힘이 없어.”그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그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지켜낼 수 있겠니?”“차라리 임씨 집안과 인연을 끊게 만드는 게 낫다. 집안과 아무 상관 없어진다면, 지훈이 엄마나 유나도 더는 서율이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임서율은 바깥에서 그 대화를 듣고는 눈동자가 순간 움찔 조여들었다. 그녀는 손끝을 힘껏 움켜쥔 채,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말도 안 돼!’임태규가 지금껏 그녀를 배척하고 임씨 집안에서 내쫓았던 이유가, 정설아와 임유나의 박해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니.아직 그 충격을 다 삼키기도 전에, 다시금 임태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 서재 캐비닛 안에 서류 하나가 있다. 네가 먼저 꺼내서 보관해 둬라. 적당한 때가 되면 내가 직접 알려주마.”임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임태규는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나도 알고 있어. 유나와 지훈이 엄마가 전에 서율이를 해치려고 했다는걸. 지금 서율이는 증거를 찾아 경찰에 신고했고, 유나는 이미 잡혀 들어갔어. 만약 그 증거가 확실하다면 판결에 따라 유나는 감옥에 들어갈 거야.”그 말에 임서율의 가슴 한쪽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임태규가 말을 이었다.“유나가 잘못을 저지른 건 맞아. 욕심이 지나쳤고 정설아한테서 못된 것만 배웠지.”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낮게 덧붙였다.“하지만 어찌 됐든 네 딸이잖니. 임씨 집안의 핏줄이고. 지금 서율이가 네 말을 잘 듣는다니, 한 번 설득해서 소송을 취하하게 하는 게 어떻겠니. 유나를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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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잠깐만, 너한테 할 말이 있다.”임서율은 약을 내려놓고 막 걸음을 떼려다, 임규한의 부름에 다시 멈춰 섰다.방금 전까지 애써 지어 보이던 웃음은 완전히 굳어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마음을 다잡은 뒤, 임규한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전 절대 동의 못 해요. 임유나랑 정설아가 제 목숨을 노렸어요. 제가 그때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기적이에요. 그건 철없는 실수도, 순간의 충동도 아니에요. 분명히, 계획적인 살인이었어요.”“이미 한 번 기회를 줬어요. 그걸 스스로 걷어찬 건 임유나예요. 자매의 정을 저버린 건 그쪽이지, 제가 아니에요.”임태규가 곧바로 반박했다.“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방금도 기회를 줬다고 했잖아. 그 말은 결국 이번 일도 눈감아줄 수 있다는 뜻 아니냐. 지금 나랑 네 아버지 상황 다 알잖니. 너 꼭 집안 식구들 전부를 곤란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니?”“유나는 네 이복동생이다. 피 한 방울이라도 섞였으면 무시할 수는 없는 거야. 네가 소송만 취하하면 유나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수습하마.”“앞으로 절대 너한테 손대지 못하게 약속하겠다.”임규한의 목소리는 임태규보다는 한결 부드러웠다. 하지만 임서율 눈에는 둘 다 똑같아 보였다. 그들의 목적은 결국 하나였으니까.임서율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왜요? 왜 매번 제가 희생해야 하는데요? 단 한 번이라도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그녀는 무심한 게 아니었다. 다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된 실망을 안겨준 탓에 기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게 곧 또다시 희생하라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임태규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임서율을 가리키면서도, 임규한을 질책했다.“봐라, 이게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딸이다. 내가 예전에 고집이 하도 세니 반드시 꺾어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때 내 말을 들었어야지.”그리고 다시 임서율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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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갑자기 낮고 서늘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임서율은 그 소리에 온몸이 움찔 굳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하도원이 어느새 문가에 서 있었다.그를 지탱하던 보조대는 이미 사라졌었고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전보다 훨씬 기운 있어 보였다.하도원이 들어서는 순간, 병실의 공기는 무거워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떠들던 임태규는 그를 보자, 입을 다물었다. 임규한도 하도원이 임서율을 아낀다는 걸 알기에 태도가 한결 조심스러워졌다.“도원아, 서율이한테 유나 얘기를 좀 했어. 그걸로 목숨을 담보로 협박하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서율이랑 유나 둘 다 내 자식이야.”“우리 몸 상태도 그렇고, 지훈이도 아직 어리잖니. 우리 둘 다 세상 떠나고 나면 집안이 텅 비게 둘 수는 없지 않니.”하도원은 서늘하게 말했다.“그건 임씨 집안 문제지, 서율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친딸 아니라는 이유로 내쫓을 땐 언제고, 필요할 땐 불러들이는 게 임씨 집안의 처리 방식인가요?”그는 말을 돌려하는 법이 없었고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다.평생 존경만 받아온 임태규는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고 온몸도 덜덜 떨렸다.“네가... 네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하도원은 차갑게 눈을 흘겼다.“더 심한 말도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그 한마디에 임태규는 얼어붙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괴팍한 성정을 지금 직접 겪어보니 숨이 턱 막혀왔다.임규한은 하도원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그가 임서율의 곁을 지켜 줄 버팀목이 되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딸에게 든든한 의지처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그는, 억지로라도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도원아, 이건 오해야. 우리도 유나가 서율이한테 잘못한 걸 알고 있어. 그것 때문에 서율이가 상처 입은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유나는 그래도 서율이 동생이잖니. 우리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 반드시 단단히 가르칠 테니 안심해.”하도원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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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하도원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는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왜요, 서율이한테 닥쳤을 땐 그냥 넘어가자더니, 임유나한테 똑같이 돌려주자니까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하시네요? 제가 기억하기론, 서율이는 그때 혼수상태였어요. 그러니 성공 확률은 백 퍼센트였죠.”“아직 손도 쓰지 않았는데 벌써 난리들이네요. 정말 너무하세요!”그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그 순간, 차가운 기운이 듣는 이들의 척추를 따라 번져 갔다.임서율은 붉어진 눈으로 하도원을 바라봤다.그가 그녀를 위해 나선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그녀 마음속 가장 연약하고 아픈 곳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그녀가 늘 하고 싶었으나 차마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라 여겼던 말들을 대신 내뱉어주었다.그동안 그녀 편에 서서 말해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비슷한 말을 직접 해봤자 임태규는 늘 철없는 소리로 치부했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고, 더구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없었다.그 순간, 하도원은 단숨에 임서율을 품에 끌어안았다. 마치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선언하는 것처럼.“분명히 말해두는데 앞으로 누구든, 설령 어른이라 해도 아무 이유 없이 서율이를 휘두를 자격은 없어요. 서율이를 협박해 소송을 취하하게 만들 생각이면, 저도 얼마든지 임유나를 다시 안으로 처넣을 수 있어요.”임태규는 몸을 간신히 버티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도원을 가리켰다.“너희 둘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야! 혈육의 정조차 따지지 않다니. 그러니 네 집안 어른들도 널 버린 거야. 차씨 집안에서도 널 인정하지 않는 거지! 이런 냉혈한을 누가...”“할아버지, 저한테 뭐라 하시는 건 상관없어요. 전 임씨 성을 가졌으니까요. 하지만 도원 씨는 임씨 집안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도원 씨한테 뭐라 할 자격은 없으세요!”임서율의 목소리가 병실에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차씨 집안이 도원 씨를 인정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요? 저희가 싫다는데.”“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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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비록 하도원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임서율의 단단한 겉모습 아래 숨은 연약한 부분을 알아차렸다.사람은 때로 다투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그 속뜻은 결국 하나였다. 마음 깊은 곳의 불만을 털어내고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임서율도 예전엔 그런 방식으로 수없이 다퉜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기대와 달랐다. 그녀가 진정 바랐던 것은 단순했다. 임태규와 임규한이 제발 자신을 좀 바라봐 주기를, 왜 늘 한쪽으로만 기울지 말기를 바랐다.그녀 역시 임씨 집안의 딸인데, 왜 늘 차별받아야 하는지 몰랐다.그녀가 아이를 바꿔치기한 것도 아닌데, 왜 그 책임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지 몰랐다.하지만 그녀의 반항은 언제나 철없다는 말로 돌아왔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기대와 정은 조금씩 메말라 가고 말았다.오늘 하도원이 대신 내뱉은 말들은, 임서율 마음속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리고 있었다.그는 마치 그녀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듯, 감춰둔 진심을 하나하나 끌어올렸다. 결국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하도원은 그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내며, 여전히 장난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임서율, 언제부터 이렇게 잘 울었어? 쉽게 감동하고 말이야. 이러다 다른 놈한테 마음 주는 거 아냐? 내가 더 잘 지켜봐야겠네.”임서율은 이미 코끝이 시큰했는데, 그 말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무슨 소리예요. 우린 원래 쇼윈도잖아요. 그럴 일은 애초에 없죠.”하지만 속으로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의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연인처럼 느껴졌다.하도원은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이쯤 왔는데도 아직도 연기라고 생각해? 이러면 안 되지, 임서율.”순간, 임서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놀란 듯 입술을 살짝 벌렸고 조용히 그를 쳐다봤다.‘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닐까...’하도원은 손바닥으로 그녀 머리를 툭 치며 웃었다.“뭐야, 내가 외국어로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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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임유나는 반드시 자기 행동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하지만 문제는 임서율이었다. 하도원의 말 한마디에,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이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이 고민해야 했다. 끝내 임서율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우선은 회사 일부터 마무리해야죠.”하도원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지금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으니까.“그래.”시간을 보던 임서율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우리도 돌아갈까요?”“응.”하도원은 무심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함께 일어섰다. 막 발걸음을 떼려던 그가 무언가 떠올린 듯 물었다.“유민이는요? 당신 검사받을 때 따라가지 않았어요? 상태는 어때요.”“별일 없대. 의사가 집에 가서 푹 쉬라고 했어.”임서율은 하도원이 지팡이조차 짚지 않는 걸 보고 안도했다.“괜찮다니 다행이네요. 근데 조 선생님도 말했을 거잖아요. 무리하지 말라고.”“응. 걱정하지 마. 난 체력 좋으니까 영향 주지는 않을 거야.”그의 능청스러운 말투에 임서율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흘겨봤다.“조금만 진지하게 말할 수 없어요?”하도원은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언제 진지하지 않았는데.”“당신은...”임서율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가 간신히 토해냈다.“아까 영향 주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하도원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래, 그렇게 말했지. 네가 원하면 어디든 같이 가 줄 수 있다는 뜻이었어. 이제 몸도 다 나았잖아.”임서율은 멋쩍게 입술을 깨물었다.“...아, 그 말이었어요?”하도원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그의 이목구비가 노을빛과 가로등 불빛에 겹쳐 임서율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그럼 넌 무슨 뜻으로 알아들은 거야?”그가 몸을 기울이며 다가왔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마지막 햇살은 이미 사라졌고 가로등 불빛이 임서율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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