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의 모든 챕터: 챕터 781 - 챕터 790

790 챕터

제781화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하 대표님이 남의 다리를 주무르는 일이 다 있다니.진승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저 사람이 정말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 군림하는 왕 같은 존재가 맞단 말인가?’영락없는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사랑에 눈이 먼 남자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진승윤은 임서율과 하도원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감정이라는 건 정말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어리둥절해 있는 진승윤을 본 임서율은 난처한 얼굴로 황급히 하도원을 밀어냈다. “됐어요. 다리 이제 괜찮아요. 대표님은 이제 일하러 가봐요.”하지만 하도원은 주변의 시선 따윈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엔 오직 임서율밖에 없었다.“정말 더 안 해줘도 되겠어?”임서율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정말 괜찮아요. 당신은 얼른 올라가서 씻고 쉬어요. 시간이 늦었잖아요.”씻고 쉬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도원의 눈동자가 번쩍 띄었다.“알았어.”하도원의 활기찬 모습에 김정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과 범접할 수 없는 냉기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던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제법 따뜻한 사람 냄새가 풍겨 나왔다.‘역시 서율 아가씨가 다르긴 다르구나.’예전 어르신도 여러 명의 규수들을 소개해줬지만, 그 누구도 이와 같은 느낌은 주지 못했었다.김정란은 진심으로 임서율이 마음에 들었다.그녀가 다가와 부드럽게 물었다.“아가씨, 배고프지 않으세요? 제가 뭐 좀 해드릴까요?”“아니에요, 아주머니. 시간이 늦었어요. 푹 쉬세요.”“그래요.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꼭 말씀하세요. 금방 해드릴게요.”임서율은 늘 따뜻하고 다정한 김정란이 꼭 엄마처럼 느껴졌다.그녀는 김정란을 살짝 끌어안았다.“고마워요, 아주머니.”그 진심 어린 포옹에 김정란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지어졌다.“참, 두 분 출장 가신 동안 한가해서 포도주 좀 담가봤어요. 맛보실래요?”“정말요? 저 포도주 완전 좋아해요. 직접 담근 게 최고죠!”임서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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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2화

그때의 일을 떠올리니 짜증이 밀려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짓눌렀다.율이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낑낑거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임서율은 율이를 안아 올려 털북숭이 같은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우리 귀여운 율이 오늘은 분명 얌전히 있을 거야. 그렇지?”“멍멍!”임서율은 율이와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그렇지, 착하지.”이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하도원을 쳐다보았다.“집에 혼자 있어서 외로운가 봐요. 가끔은 우리 곁에 있고 싶은 거겠죠.”하도원은 그 말을 듣자 순간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얘한테 친구 하나 만들어주면 된다는 거네?”“뭐... 그렇죠. 그러면 하루 종일 우리만 쫓아다니진 않겠죠.”그녀는 그저 가볍게 맞장구를 쳤을 뿐이었다.하도원이 이불을 덮어주자 임서율은 이불 끝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안 추워요.”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하도원의 코끝이 살짝 움직였다.“무슨 냄새지?”“아, 아까 아주머니가 담근 포도주 한 잔 마셨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당신도 마셔볼래요?”그녀는 아직 그 달콤한 맛에 사로잡혀 하도원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 나도 맛 좀 봐야겠네.”“정말 맛있어요. 제가 내려가서 아주머니한테 한 잔 부탁할게요.”그녀가 이불을 젖히려는 순간, 하도원이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턱 끝을 들어 올리고는 낮게 속삭였다.“그렇게 번거로울 필요 없어.”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하도원의 입술이 포개졌다.입안에 남아 있는 은은한 와인 향은 독한 술이라도 된 듯 두 사람을 흥분시켰다. 지금까지의 어떤 입맞춤보다 더 뜨겁고 더 격렬했다.그의 혀가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밀고 들어왔다.임서율은 조금 밀려오는 통증에 놀라 그의 혀를 살짝 깨물었다.하도원은 잠시 멈칫했다가 자신 역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가 다시 놓아주었다. 침대 옆 무드등 아래, 하도원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음... 정말 맛있네.”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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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3화

“나 더 이상하게 굴 수도 있는데, 한번 시험해볼래?”하도원의 손이 그녀의 부드럽고 가는 허리에 닿았다. 임서율은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다.그녀는 서둘러 그를 밀어냈다.“당신 이제 좀 쉬어야 해요. 계속 이렇게 밤새다간 진짜 과로사할지도 몰라요. 얼른 쉬어요.”하도원도 임서율이 오늘 하루 피곤하게 일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상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그는 자신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평소엔 냉철하고 자아 통제력을 탑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건만, 이상하게 임서율 앞에만 서면 절제라는 단어가 완전히 삭제되어 버렸다.그녀의 숨소리, 향기, 눈빛 그 모든 게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결국 그는 조용히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임서율이 폰을 집어 들고 이야기 하나를 찾아 들려주려고 할 때, 하도원의 손끝이 불쑥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됐어. 오늘 밤은 내가... 혼자 해볼게.”그녀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왜 갑자기 혼자 자겠다는 거예요? 전에는 수면제에 의지해야 잠들었잖아요. 오늘은 약도 안 먹고 그냥 자겠다니, 힘들지 않겠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섬세한 관심과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의 기분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렸던 그녀인지라 즉시 그의 이상함을 감지했다.임서율은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준수한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부드럽게 말했다.“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파요? 아니면 또 무슨 나쁜 기억이 떠오른 거예요?”하도원은 곧바로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걱정돼?”임서율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톡 내리쳤다.“누가 걱정한대요? 하도원 씨, 그 왕자병 대체 언제 고칠 거예요?”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이렇게 훌륭한 여자를 얻었는데, 좀 자만해도 되지 않겠어?”그녀는 자신을 그의 곁으로 데려다준 운명에 너무나 감사했다. 하도원이 가져다준 변화는 오직 그녀만이 느낄 수 있었다.과거 차주헌과 함께할 땐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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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4화

그녀의 말에 하도원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제 자자. 오늘 푹 자야 내일도 일하지.”임서율은 다시 그의 가슴을 톡 치며 웃어 보였다.“무슨 말이 그래요.”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품에 안은 채 잠이 들었다. 그날 밤, 하도원은 처음으로 이야기도, 노래도, 약도 없이 자연스레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하도원의 요란한 휴대폰 소리가 고요를 깨트렸다. 그는 잠결에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하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바로 오셔야겠습니다. 고모님께서 회사 옥상 난간에 서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습니다!”“운성의 기자들까지 전부 몰려왔어요! 혹여라도 잘못되면 정말 큰일입니다!”순간, 하도원의 눈이 번쩍 띄어졌다.“알았어.”그는 곧장 전화를 끊고 벌떡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그 기척에 잠이 깬 임서율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아무 일 아니야. 회사에 잠깐 다녀올게. 넌 계속 자.”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그의 성격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저토록 허겁지겁 나가는 건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조금 전 하도원의 목소리엔 분명 당황함이 섞여 있었다. 항상 냉철하고,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그랬다는 건 분명 대형 사고가 터졌기 때문일 것이다.곧 그녀도 옷을 챙겨 입고 본사로 향했다. 건물 앞에 도착해보니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는데 그 시선은 일제히 위를 향하고 있었다.그녀도 위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옥상 난간에 서 있는 익숙한 사람의 실루엣을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정화였다.정말 회사에 찾아와 자살 소동까지 피우다니. 미친 게 틀림없다!임서율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그녀는 급히 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전에 유민과 함께 갔을 때 그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여 바로 돌아가라고 했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임서율이 다급히 말했다.“유민아, 지금 당장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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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5화

지금은 그런 걸 설명할 시간이 없다.“그런 거 상관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 다만 신중해야 해. 가능하다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야.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때 이걸 보여줘.”“알겠어요.”유민의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했다. 이 폭탄 같은 파일만 들고 가면, 박지안과 하정화의 통화를 허락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진명진을 무릎까지 꿇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그가 손에 쥔 파일은 폭탄 그 자체였다.임서율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위층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경찰에게 제지당했다.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신분을 밝혔다.“저 저분 알아요.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경찰 둘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올라가세요.”“감사합니다.”임서율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옥상에 나가보니 아찔한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렸다.하정화는 박지안에게 정말 마음을 다했었다. 같은 핏줄은 아니지만 친딸처럼 아껴주었다.임서율이 가까이 다가가려던 찰나, 누군가 불쑥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깜짝 놀라 돌아보니 하도원이었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임서율을 쳐다보며 긴장감이 배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여긴 웬일이야?”임서율은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하정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급기야 옥상 난간 끝에 자리 잡았다. 그 주변엔 경찰 몇 명이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행여 자극이라도 하면 큰 불상사가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이렇게 큰일을 나한테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네가 와서 뭐 하게? 당장 내려가.”하도원은 그녀의 등을 밀며 한시라도 빨리 내려보내려 했다.하지만 임서율은 그의 손목을 꽉 붙잡고 반짝이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날 믿어요. 나한테 방법이 있어요. 하도원 씨, 지금은 나를 막을 때가 아니에요. 저 여자가 정말 뛰어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당신도 잘 알잖아요.”그 후과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회사 전체를 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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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6화

경찰이 다급히 하정화를 다독였다.“여사님, 일단 진정하세요. 따님은 지금 다른 도시의 구치소에 있습니다. 절차상 바로 데려올 수가 없어요. 그쪽 사람들과 합의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출발한다고 해도, 도착하려면 적어도 세 시간은 걸려요.”하지만 하정화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한 문장만 되풀이했다.“얼마가 걸리든 상관없어! 빨리 데려와! 세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이라도 여기에서 기다릴 거야.”그 말에 경찰들은 어이가 없었다.“저기, 사모님. 따님은 지금 죄를 지어 구치소에 감금된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을 마음대로 풀어줄 수는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마음대로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그딴 건 몰라! 내 딸 안 데려오면 난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그녀는 바로 뛰어내릴 거라며 몸을 숙였다.“잠깐! 제발 진정하세요! 우리 조금 더 상의해요. 흥분하면 안 돼요!”경찰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그때에야 하정화는 거래를 제안하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세 시간 줄게요. 세 시간 안에 내 딸 데려오지 못하면 바로 끝낼 거예요. 그땐 내 죽음 책임져야 할 거예요!”그때 임서율이 조심스럽게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여사님, 잠깐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박지안은 범죄자예요. 지금은 보고 싶다고 하여 마음대로 볼 수 없어요.”하정화의 시선이 번개처럼 임서율을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뒤틀리며 분노가 폭발했다.“다 너 때문이야! 임서율! 감히 내 앞에 나타나? 너만 아니었다면 우리 모녀가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다 너 때문이라고!”임서율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법은 아주머니도, 저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해요. 지금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현실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여기에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것보다 따님이 안에서 제대로 반성하고 다시 바르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그것이야말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이에요.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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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7화

“그 여자 사실 연예인이 아니라 임서율이었어요.”하도원이 갑자기 그 일을 언급한 건, 자신은 박지안에게 조금의 이성적인 호감도 갖지 않았다는 걸 하정화에게 인지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하정화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하도원을 바라볼 뿐이었다.“너... 뭐라고 했어? 연예인이 아니라 임서율이었다고? 하지만... 그때 넌 대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잖아.”“대학생이면 사람을 좋아할 수도 없는 거예요?”하도원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임서율 또한 화들짝 놀랐다. 하도원이 자신을 오래전부터 주목해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대학 시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곧 이 남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좋아했다는 것을 의미했다.임서율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하정화는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 듯했지만 여전히 원망의 말을 쏘아붙였다.“너... 너 그 죽일 년을 그렇게 오래전부터 좋아했단 말이야?”그녀의 눈빛에는 놀람과 더불어 깊은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도원아... 너 정도면 운성에 수많은 아가씨들이 따라다닐 텐데 그렇게 일찍 한 여자한테 인생을 다 걸어버리면 안 돼. 여자친구 한 번도 사귀어본 적 없으면서... 어쩌자고 그 여자를 네 평생의 짝이라고 단정한 거야.”하정화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도원은 배경도, 능력도, 모든 면에서 이미 동 세대 누구보다 뛰어났다.그런 그가 망설임 없이 임서율을 선택한 것이다.하도원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이런 게 인연이라는 거겠죠.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좋아요.”그 역시 다른 여자들을 접촉해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대부분 욕망과 계산으로 얼룩져 있었다.다만 임서율은 달랐다.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잘났든 못났든, 종래로 의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 발버둥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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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8화

“알겠습니다.”하도원 또한 이는 경찰에게 부탁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정화가 요구를 틀어주지 않는 한 이번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그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부드럽게 설득을 시도했다.“고모, 제발 진정하세요. 이렇게 뛰어내리면 지안이를 영영 못 보게 되잖아요.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라서 1, 2년 정도만 지나면 나올 거예요.”하지만 하정화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거짓말하지 마! 너희가 애초에 고소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임서율도 멀쩡하잖아!”하도원은 차분히 말했다.“지금은 제가 고소를 취소해도 소용없어요. 이미 사건은 정식으로 접수됐거든요.”“뭐라고? 그럼 내 딸 정말 감옥에 가야 한다는 거야?”그 말에 하정화의 감정은 완전히 폭발했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울부짖었다.“다 너희들 때문이야! 하도원! 네가 내 딸을 망쳤어! 나도 이제 널 망쳐버릴 거야!”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하도원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움켜쥔 건 텅 빈 허공뿐이었다.모두가 절망에 빠진 순간, 하얀 손 하나가 하정화의 팔을 붙잡았다. 다름 아닌 임서율이었다.그는 반사적으로 달려가 임서율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얼굴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임서율, 너 미쳤어?”임서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나한테 화내는 건 이따가 하고 지금은 사람부터 살려요.”하도원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나중에 따로 얘기해.”경찰들이 달려와 함께 하정화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다.“당신들! 내 딸 당장 데려오지 않으면 바로 뛰어내릴 거예요!”그녀는 임서율의 손까지 뿌리치기 시작했다.임서율은 다급히 소리쳤다.“저한테 방법이 있어요! 올라오세요, 따님 만나게 해줄게요!”그 말에 하정화의 눈이 반짝였다.“정말이야? 내 딸 보게 해주겠다고? 얼마나 걸려?”“지금 바로요. 올라오시면 제가 당장 만나게 해드릴게요!”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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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9화

임서율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하도원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엔 방금 전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고 담겨 있었다.“걱정하지 마요, 문제없어요.”하도원은 그녀의 확신에 찬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너... 혹시 이미 다 준비해둔 거야?”“그건 아니에요. 박지안을 만나겠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그토록 긴 시간 동안 기다릴 수는 없어요. 그러다간 박지안이 도착하기도 전에 열사병으로 먼저 쓰러질걸요.”임서율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머리 위 이글거리는 태양을 올려다보았다.하도원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 곁에 쪼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쳤다.“하지만 직접 보지 못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보는 거야 간단하죠. 영상통화로 보면 되잖아요. 아주머니가 요구한 건 단지 딸을 보고 싶다는 거지, 직접 만나야 한다는 건 아니잖아요. 피부를 만지는 것 외엔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거예요.”하도원은 그제야 깨달은 듯 감탄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앞으론 내가 비서처럼 너 따라다닐까? 네가 나 먹여 살리게.”그야말로 섬뜩한 말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팔을 휘저었다.“됐어요! 말로만 그렇지, 누가 누구를 부려먹게 될지 뻔하잖아요.”귀하디귀한 재벌가 도련님의 까탈스러운 성격은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셔츠에 주름 하나, 욕조에 머리카락 한 올, 옷에 먼지 한 점 허락하지 않는 완벽함만 고집하는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무슨 다른 사람의 비서 일을 한단 말인가.결국 그녀만 시달리다가 병이 날 게 뻔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노려보던 하정화가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내 딸 보게 해달라고! 둘이 뭐 하는 거야!”그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린 임서율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지금 바로 전화 걸게요.”옆에 있던 경찰은 더위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오늘 기온은 섭씨 38도, 체감 온도는 40도를 훌쩍 뛰어넘었다.하정화는 여전히 햇볕 아래 난간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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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0화

“입 함부로 놀리지 마! 내 딸은 천년만년 살 거야!”하정화의 목에 핏줄이 튀어 오르며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럼 더더욱 이성적으로 생각하셔야죠. 딸이 오래 살길 바라신다면 제 말대로 하세요. 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잖아요!”“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면... 그냥 지금 뛰어내리세요. 어차피 죽어도 딸 얼굴은 못 볼 거잖아요.”옆에 있던 경찰이 깜짝 놀라 뛰어들었다.“아가씨! 그런 말 하면 안 됩니다! 만약 저분이 정말로 뛰어내리면 당신이 직접 법적 책임을 져야 해요! 저희도 함께 징계받는다고요!”하지만 임서율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선택권을 하정화에게 넘겨버렸다.“전 할 말 다 했어요. 이제 선택은 본인 몫이에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영상통화 벨소리가 울렸다. 임서율은 곧장 화면을 하정화에게 보여주었다.“딸에게서 전화 왔어요. 받을지 말지는 아주머니가 결정하세요.”그녀는 조용히 휴대폰을 내밀었다.하정화는 벨소리가 울리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십여 초쯤 지나서야 떨리는 손끝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내 딸... 지안아...”화면 속의 박지안은 어머니가 옥상 난간에 앉아 있는 걸 본 순간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엄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빨리 내려와요! 이제 저한테 남은 가족은 엄마 하나뿐인데, 엄마까지 잘못되면... 저 못살아요.”“지안아, 엄마는 그냥... 네 얼굴이 보고 싶었어. 그 안에서 괜찮아? 많이 힘들지 않니? 걱정하지 마, 엄마가 어떻게든 널 꺼내줄게.”박지안 또한 이곳에 오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룻밤 지내고 나니 한결 차분해졌다. 그녀는 체념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엄마, 그러지 마세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에요. 절 위해 애쓰실 필요 없어요. 얼른 내려오세요. 심각한 일 아니니까 금방 나갈 거예요.”“엄마, 제발 어리석은 짓 하지 마세요. 엄마가 돌아가시면... 세상에 다시 나갔을 때 전 가족 한 명 없이 혼자일 거잖아요. 그땐 살아갈 의미가 없어요.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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