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차주헌은 잠시 멍해졌다.늘 자신을 향해 애교를 부리거나 조심스레 눈치를 보는 여자들만 봐왔는데 오가연의 담담한 태도는 오히려 그의 흐릿한 정신을 순간 또렷하게 만들었다.그는 입꼬리를 비틀었지만 끝내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술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림도 보려는 것도 아니야.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해서.”“무슨 말인데요?”오가연은 천천히 생수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젖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차주헌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임서율이 이제 삼촌과 결혼할 거라고, 한때 바보 같은 자신 때문에 그녀를 잃어버렸다고, 지금 그녀가 숙모가 되려는 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활활 타들어 간다고.하지만 그 모든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오가연의 맑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낯선 여자 앞에서 자신의 추하고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을 순 없었으니까.멀리서 지켜보던 서재영이 팔꿈치로 장호준을 쿡 찔렀다.“야, 저거 딱 봐도 대체품 찾는 거 아니냐?”심경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대체품? 글쎄. 차주헌 본인도 모르겠지. 임서율이 그리운 건지, 임서율이랑 함께 있을 때의 자기 자신이 그리운 건지.”서재영은 잔을 들어 심경호와 살짝 부딪쳤다.“뭐, 상관 없지. 지금은 그냥 주헌이가 마음 정리나 좀 하게 두는 게 나아. 대체품이면 어때. 저 여자애도 가난한 예술 전공 학생이라더라. 서로 필요하면 되는 거지.”그 시각, 카좌석 쪽에서 차주헌의 목소리가 들렸다.“뭐 하나 물어봐도 돼? 좋아하는 사람이 곧 내 숙모가 된다면 넌 빼앗을 거야, 아니면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오가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가 그 상황이라면 아마 빼앗겠죠.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이 나는 할 수 있는 한 다 해볼 거예요. 물론, 그건 누굴 감동시키려고가 아니라 나 스스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예요.”그 말에 차주헌은 잠시 멍하니 굳었다.사실 그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임서율을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