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녀의 복수는 우아하게: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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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입찰 공모전이요?”은하가 고개를 갸웃했다.시우는 은하가 진짜 몰랐다는 걸 확인하곤, 살짝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사장님, 최근 뉴스 안 보셨어요? 경울시에서 대규모 시민 체육대회를 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공식적으로 입찰을 열었대요.”“믿을 만한 디자인 업체를 선정해서 운동복이랑 관련 굿즈를 맡기려는 거죠. 경울시에 있는 패션 디자인 회사들 거의 전부가 관심 보이는 중이에요. 경쟁이 진짜 치열해요.”은하는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기사 같았다.하지만 자신처럼 규모 작은 회사는 어차피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그런데 누군가 먼저 초청했다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릴 왜 초대한 건지, 말은 없었어요?”“언니, 그야 당연히 우리 ‘루시아르’가 요즘 핫하니까요! 평도 좋고요! 경울시에 디자인 회사는 많아도, 실력 있는 데는 드물잖아요. 우린 신생 브랜드지만, 믿음직하잖아요? 그러니까 연락해 오는 게 당연하죠!”은하는 윤설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최근에 겪은 일들이 많아서 선뜻 믿기 힘들었다.조심성 있게, 그녀는 시우에게 사실 여부를 좀 더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시우는 그런 은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신중한 은하는 처음이었다.“알겠어요. 제가 알아볼게요.”그날 오후, 시우가 곧장 결과를 들고 왔다.“이번 입찰 공모전 주최 측이 ‘루시아르’에 공식 제안을 보낸 이유는요,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서 디자인한 자수 예복 때문이래요.”“그 옷이 주최 측에 강한 인상을 남겼대요.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어서, ‘루시아르’를 주목하게 된 거라고 해요.”은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주최 측이 자신을 주목한 이유가 남씨 가문도 아니고, 유씨 가문도 아니라니.그저, 자신이 만든 ‘그 디자인’ 하나 때문이라니.‘내가 만든 디자인 하나가... 누군가에게 닿았구나.’‘남의 이름 빌리지 않고, 유산에 기대지도 않고... 진짜 내 길을 걷게 됐어.’‘이번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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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채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유씨 가문과 남씨 가문이 손을 잡는다?’‘그럼 이제 일 핑계로 유정후를 당당하게 만날 수 있다는 거잖아?’‘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병원.채원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주대산이 보온병을 들고 병실 문을 조심스레 닫고 있었다.얼굴엔 어쩐지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이에요? 석진이 오늘은 밥먹기 싫다 그래요?”주대산은 채원을 보자마자 유정후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래서 곧바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채원 아가씨, 석진 도련님이 막 잠드셨어요. 지금은 면회가 좀 어렵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와주세요.”처음이었다.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막아서다니.채원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괜찮아요. 안에서 기다릴게요. 깰 때까지 기다리는 거, 처음도 아니잖아요.”“채원 아가씨!”주대산은 채원이 문을 억지로 열려 하자, 황급히 경호원에게 눈짓을 줬다.경호원이 빠르게 앞을 막아서자, 채원은 억눌렀던 분노를 터뜨렸다.“주 집사님, 무슨 뜻이에요? 제가 석진이 보러 온 걸, 왜 막으시는 거죠?”“대표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사항입니다. 저희도 난처하니, 부디 이해 부탁드립니다.”‘대표님...? 유정후가...?’채원은 눈을 크게 떴다.‘말도 안 돼... 어젯밤까지만 해도 날 집에 바래다준 사람이?’‘그 사람이 날 막으라고 했다니, 이게 말이 돼?’바로 그때, 병실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이모? 이모지?”문이 벌컥 열리더니, 석진이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왔다. 곧장 채원에게 안기며 환하게 웃었다.“이모 왔구나! 나 이모 보고 싶었어!”“흐으윽, 이모... 드디어 왔어... 나 너무 속상해서 죽는 줄 알았어...”주대산은 채원을 막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다.“석진 도련님, 바람도 차고... 안으로 들어가 쉬시죠.”“싫어! 나 안 들어가! 너희 다 싫어! 난 이모만 있으면 돼!”석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버텼다.‘이대로 석진이가 끌려가면, 내가 쫓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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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정후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하루 종일 입도 뻥긋 안 하던 석진이 이미 채원 곁에서 미음 한 그릇을 다 비운 뒤였다.정후는 말없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석진이, 채원이한테 너무 의지하는군.’주대산은 정후가 들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 허리를 굽히며 서둘러 사과했다.“대표님, 채원 아가씨를 막지 못했습니다. 제가...”정후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러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퇴원 수속 준비하고. 내일 검사 끝나는 대로, 주 집사가 석진이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네, 알겠습니다.”주대산은 더 묻지 않고 재빨리 병실을 빠져나갔다.“아빠...”정후가 들어오는 순간, 석진은 눈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채원은 정후가 왔다는 걸 느끼고 순식간에 표정을 정리했다.그리고 부드럽게 돌아서며 미소 지었다.“오빠, 왔어요?”정후는 채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석진에게 시선을 돌렸다.“주 집사 말로는... 너, 미음도 안 먹고 버티고 있었다면서?”석진은 움찔하며 몸을 굳혔고, 작게 중얼거렸다.“그냥... 배가 안 고팠어.”정후의 눈빛이 단단해졌다.“석진, 너 이제 다섯 살이야. 무슨 일 있으면 아빠한테 직접 말해. 너희 엄마처럼 말 돌리고 뒤에서 계산하지 말고, 알았어?”‘지금... 뭐라고 했지?’채원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설마...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눈치챘어?’석진은 커다란 눈을 불안한 듯 깜빡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아빠.”정후는 채원에게 시선을 돌렸다.“채원, 잠깐 얘기 좀 하자.”그 한마디에 채원의 불안은 실체가 되어 가슴에 내려앉았다.병실 밖, 정후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앞으로 석진이 앞에서 은하 얘기... 가능하면 하지 마. 석진이, 아직 어려.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쉬워.”채원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정후를 바라봤다.그 눈동자에 억울함과 상처가 번져 있었다.“오빠, 지금 내가 석진이를 나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정후는 채원의 붉어진 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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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시우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루시아르’가 제대로 이름 알릴 수 있게 할게요.”“그래야죠.”은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우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조용한 분위기 속에 둘 다 말이 없었다.공기가 어쩐지 살짝 어색했다.‘이럴 땐 뭐라도 말해야 하나?’은하가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 시우가 먼저 웃으며 말을 꺼냈다.“사장님, 내일 입찰 설명회... 자신 있으세요?”은하는 피식 웃었다.“그럼요. 우리끼리 늘 말했잖아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 나, 자신감 뿜뿜이에요.”“하긴, 역시 사장님이시네요.”시우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내 말을 덧붙였다.“그런데요, 이번에 NW그룹도 입찰 설명회에 관심을 보였단 말이 있어요. 만약 그쪽까지 참가하면... 우리 승산이 좀 줄어들 수도 있겠죠.”은하는 순간 머릿속을 훑었다.‘NW그룹... 전생에는 분명 이 일이랑 관련 없었던 것 같은데.’“NW그룹은 경울시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잖아요. 이번 입찰 공모전 규모가 큰 편은 아니라... 그 정도 회사가 굳이 참가할까 싶네요.”시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행이죠. 그렇다면 ‘루시아르’에게도 기회가 있겠네요.”다음 날.입찰 공모전 설명회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은하에게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참가하는 정식 비즈니스 행사였다.오늘의 은하는 단정한 셋업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올려 묶었다.평소의 따뜻한 이미지와는 달리, 오늘만큼은 부드러움 대신 ‘프로’의 아우리가 은은히 퍼지고 있었다. 시우 또한 평소의 자유분방한 캐주얼을 벗어던지고, 몸에 꼭 맞는 정장으로 정돈된 인상을 주었다.시우의 평소와 다른 분위기는 그 자체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두 사람은 입구에서 초대장을 제시한 뒤,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멀티미디어 회의실 안.길게 배치된 테이블마다 깨끗한 흰 테이블보가 곱게 깔려 있었고, 공식적이고도 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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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정후가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눈에 들어온 건 단연, 정장을 입고 단정히 머리를 올린 은하였다.그 얼굴은 여전히 익숙했다.하지만 분위기와 느낌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많이 달라졌네.’‘예전엔 늘 조용하고 그림자처럼 있었는데...’‘지금은 단단해 보인다. 단단하고... 멀어졌다.’“유 대표님! 영광입니다. 예전에 식사 자리에서 뵌 적 있는데, 그땐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맞아요, 젊은 나이에 NW그룹을 이끄시는 걸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흰 뭐, 감히 비교도 못 하죠.”“이번 입찰 공모전에도 나오시다니... 진작 알았으면 저희는 아예 참여도 안 했을 텐데요.”“...”사방에서 쏟아지는 인사와 찬사에 정후는 평소처럼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정후에게 이런 과한 반응은 이제 일상에 가까웠다.하지만 마지막 한 마디에 이르자, 정후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번 입찰은 공개 입찰입니다. NW그룹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 여기 계신 여러분과 다를 것 없습니다.”그 말은 설명이자, 동시에 조용한 경고였다.말을 늘어놓았던 사람은 그제야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유 대표님. 제가 경솔했네요.”정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그 작고 담담한 제스처 하나에 현장 분위기가 더 단정해졌고, 몇몇은 오히려 이 틈을 이용해 은하를 다시 조롱했다.“역시 유 대표님은 대인배시네. NW 그룹은 이름이 아무리 유명해도 저렇게 겸손한데... 신생 브랜드 하나 만들어놓고 ‘디자인계 신성’ 타령하는 이름도 모를 회사는 대체 뭐지? 진짜 웃기네.” 은하는 고개를 들었다.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괜히 말을 섞어봐야 더 피곤해질 뿐이었다.하지만 그 말은 너무 노골적이었고,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은하는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루시아르’는 스스로를 디자인계 신성이라 부른 적 없습니다. 그건 저희 디자인을 좋게 봐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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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유 대표님, 사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강정 대표를 저렇게 말문 막히게 만들 줄 몰랐습니다.”현준은 웃으며 툭 던졌지만, 곧바로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근데, 사모님은 왜 대표님이랑 같이 안 들어오셨어요? 낯선 남자랑 나란히 앉아 계시던데요?”말하자마자 등골이 싸해졌다.현준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는데, 바로 정후의 싸늘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그렇게 남 얘기가 궁금하면, 기자로 전직하지 그래?”“죄, 죄송합니다.”현준은 숨도 못 쉬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미쳤다, 내가 왜 그딴 말을 했지...’이강정 대표와의 충돌 이후, 은하가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자 현장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누구도 더 이상 가볍게 말 걸지 않았고, 조롱하는 시선도 조용히 사라졌다.곧, 입찰 설명회가 시작되었다.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와 이번 설명회 진행 방식을 안내했다.“참가 기업 대표 여러분은 무대에 올라 본인의 디자인을 직접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모든 발표가 끝난 뒤, 주최 측과 귀빈분들의 투표를 통해 최종 선정작을 결정합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기업이 최종 낙찰을 받게 됩니다.”첫 번째 발표자가 무대로 올라가자, 은하는 곧바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발표를 경청했다.‘이번 입찰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배울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보고, 듣고, 적자.’정후는 행사 전면의 좌석에 앉아 있었고, 원래라면 은하의 존재에 크게 신경 쓸 위치는 아니었다.하지만, 자꾸만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은하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진지하게 메모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표를 듣는 은하의 모습.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은하의 시선.‘뭐지? 진짜로 공부하러 온 건가?’‘대충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진심인데?’정후의 눈빛엔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스며들었다.바로 그때, 마침 괜찮은 디자인을 보고 정후에게 의견을 물으려던 현준은, 정후가 시선을 은하에게 두고 있는 걸 보고 말았다. ‘어라?’현준은 당황해서 고개를 급히 돌렸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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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제 손안에 이번 입찰 프로젝트의 최종 선정 기업이 적혀 있습니다.”사회자가 흰 봉투 하나를 들고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입꼬리에 어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회의장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그 눈빛에 닿을 때마다 참석자들은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회의장 전체에 다시 한번 묵직한 긴장감이 퍼졌다.“와... 저 사회자, 분위기 끌 줄 아네. 손바닥에 땀이 줄줄 흐른다니까.”“그러게요. 근데 이번엔 NW그룹까지 나왔잖아요. ‘루시아르’ 디자인이 괜찮긴 했지만... 누가 이길진 모르는 거예요.”“뭘 몰라... NW그룹은 자본도, 명성도, 사업 확장력도 다르잖아. ‘루시아르’가 아무리 잘해봤자,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스타트업일 뿐인데, 상대가 되겠어?”“맞아요. 아까 주최 측도 NW그룹 디자인을 엄청나게 칭찬했잖아요? 그때 그냥 확신했어요, 이번 낙찰은 NW그룹이다.”“...”뒤에서 이어지는 수군거림에 시우는 인상이 잠깐 일그러졌다.‘진짜... 끝도 없네, 이 사람들.’하지만 은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요히 앉아 있는 걸 보자, 그 불쾌함도 서서히 가라앉았다.‘신경도 안 쓰는구나. 우리 사장님은... 이런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네.’한편, 앞줄에 앉아 있던 정후도 그 대화들을 모두 듣고 있었다.비록 정후의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확실히... 은하는 재능이 있어. 지금보다 몇 년만 더 경력이 쌓이면...’‘우리 NW그룹의 수석 디자이너와도 경쟁이 가능하겠지.’하지만 정후의 눈동자는 여전히 냉정했다.‘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 수준이 아니야.’‘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NW그룹을 이길 수 없어.’‘...’사회자는 회의장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손에 든 봉투를 열었다.“이번 입찰 설명회의 최종 선정 기업은... 남은하 디자이너가 대표로 참석한 ‘루시아르’입니다! 여러분, 힘찬 박수로 ‘루시아르’ 팀을 축하해 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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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물론, ‘루시아르’를 선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저희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진짜 이유는... 디자이너가 숨겨둔 ‘히든 디자인’이었습니다.”“히든 디자인이요? 그게 뭐죠?”회의장 안이 다시 술렁였다.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그 의문은 정후도 마찬가지였다.‘숨겨진 디자인...? 내가 놓친 게 있었나?’하지만 주최 측 담당자는 은은하게 웃으며 무대 아래의 은하를 바라봤다.“남 선생님, 이건 아무래도 직접 설명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예상치 못한 언급에 은하는 잠깐 눈을 깜빡였지만, 곧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그 순간, 정후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녀를 쫓아갔다.조명이 은하를 따라 움직였고, 은하는 흔들림 하나 없는 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랐다.어색함도 없고, 오만함도 없는 태도.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눈빛.‘지금 이 순간, 저 여자를 처음으로 똑바로 보는 기분이야.’은하는 무대 위에서 가볍게 주최 측에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리모컨을 들어 다시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이번엔 디자인 시안을 조금 다르게 배열해 보여주었다.여섯 개의 운동복 디자인이 나란히 정렬된 순간,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저거... 설마... 지도 아닌가요?”“맞아요! 이번 경울시 전 국민 체육대회 경기장 지도잖아요!”“게다가 중요 지점들... 급수대랑 의료 부스 위치가 금색의 밀 이삭과 빨간 십자가로 표시돼 있어요!”“그리고 이 여섯 개의 디자인... 각기 다른 종목을 위한 동선으로 구성된 거네요!”“...”누구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숨은 메시지.그리고 그걸 완벽하게 연결한 시각적 언어.회의장은 조금 전까지의 의심과 불신이 무색하게 감탄과 박수로 가득 찼다.“진짜... 이건 완패다.”“이 정도면 왜 뽑혔는지 알겠다.”“저 디자이너... 보통이 아니야.”“...”그 순간만큼은, ‘루시아르’가 ‘신생 기업’이라는 꼬리표는 완전히 무의미해졌다.그리고 정후 역시 자리에서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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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다 비켜. 여기가 시장이야?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단 한 마디였지만, 그 목소리는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던 인파를 단숨에 멈춰 세웠다.너무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멍해진 은하는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왜 갑자기 조용해졌지?’주변 사람들이 멈칫한 틈을 타 은하는 급히 일어나려 했다.하지만 하필이면 발밑은 미끄러운 자동문 레일.게다가 오른손은 아직 다쳐 있는 상태라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안 돼... 또 넘어지겠어...!’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손이 은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강한 힘이지만, 결코 거칠지 않은 손길.은하의 몸은 가볍게 이끌려 그 사람의 단단한 품에 고스란히 안겼다.“제대로 서 있어. 설마... 계속 안겨 있고 싶은 거야?”익숙한 저음.익숙한 말투.은하는 본능적으로 그 품에서 벗어나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유정후...’서둘러 거리를 두는 은하의 행동에 정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사장님! 괜찮으세요?”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온 시우가 은하의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살폈다.붕대는 그대로였지만, 피가 번지지 않은 걸 확인한 시우는 안도하며 말했다.“다행이에요... 상처 벌어졌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정후는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며 속에서 묘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뭐야, 저건... 왜 저렇게 친밀하게 굴어.’‘겨우 한 달도 안 됐잖아.’‘벌써 다른 남자 손에 감싸지고, 저렇게 다정하게...?’눈빛이 차갑게 식은 정후가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잠깐 나와. 할 얘기 있어.”그 말투는 명령처럼 날카로웠고, 거절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시우는 그 목소리에 얼굴빛이 변하며 부드럽던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유 대표님, 저희 사장님은 대표님 회사 소속이 아닙니다. 그런 식의 말투는 삼가해 주세요.”‘우리 사장님?’그 말에 정후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마치 가슴을 누가 세게 밀어버린 듯... 숨이 턱 막혔다.‘겨우 한 달 지났을 뿐인데... 저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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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시우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서며 정후를 가로막았다.“유 대표님, 우리 사장님은 대표님과 함께 가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왜 억지로 끌고 가려 하시는 거죠?”정후는 시우보다 반 뼘쯤 더 큰 키로 내려다보며 눈빛에 노골적인 무시와 경멸을 담았다.“내가 너희 사장님하고 무슨 일을 얘기하든, 너 같은 외부인이 낄 자리 아니야.”하지만 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눈빛으로 정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반박했다.“남 사장님은 유 대표님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유 대표님은 강요할 권리도, 자격도 없습니다.”그 말에 정후의 눈빛이 번쩍했다.그러고는 말없이 은하의 손을 잡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마치 영역 표시라도 하듯, 단단히 감싸며 말했다.“이 여자는 내 아들의 엄마야. 우린 가족이었고, 지금도 얽혀 있어. 가족 일에 너 같은 제삼자는 끼어들지 마.”‘이 사람, 지금 이성 잃었어.’은하는 정후와 함께한 수년간, ‘전남편’의 냉정함과 강압적인 면모를 여러 번 봐왔지만, 지금처럼 제어되지 않는 오만함은 처음이었다.‘이건... 예전의 유정후가 아니야.’‘지금 이 사람은, 분노와 질투에 휘청이고 있어.’은하는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오늘 이 자리에서 정후는,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걸.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담담히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그냥 대화하고 싶은 거지? 그럼... 근처 카페로 가자.”정후의 눈에 감돌던 서늘한 기운이 서서히 사라졌다.몇 초간 은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마침내 손을 놓으며 말했다.“나랑 너, 단둘이.”“그래, 알았어.”‘사람들 많은 데니까, 이 사람도 더 이상 무리하진 못하겠지.’“사장님...”시우는 은하가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 걸 눈치채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불렀다.하지만 은하는 고개를 돌려 확실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금방 돌아올게요.”그 미소에 시우는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정후는 그 미소를 본 순간, 금방 가라앉았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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