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녀의 복수는 우아하게: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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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은하도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이 프로젝트, 분명 괜찮긴 하지만 수익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왜 경울시의 수많은 회사가 앞다퉈 뛰어들까?’정후의 말을 듣고서야 은하는 그 이유를 이해했다.이 시민 체육대회는 단순한 행사 그 이상이었다.글로벌 기업 HC그룹과의 협력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말 그대로 ‘통과의례’ 같은 문이었다.이 기회를 잡기만 한다면, ‘루시아르’는 현실의 벽을 뚫고 한 번에 도약할 수 있었다.진짜 디자인계의 신성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다른 기업들이 순순히 루시아르만 앞서가게 둘 리가 없었다.앞으로 ‘루시아르’를 향한 견제와 방해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은하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근데, 경울시엔 NW그룹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굳이 내가 당신이랑 손잡아야 할 이유가 있나?”정후는 예상보다 빨리 반응이 돌아오자 잠시 말문이 막혔다.심지어 은하가 의심까지 던져왔다. 그 당당한 태도에 정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예전의 은하는 소심하고, 그저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유씨 가문에서는 말도 제대로 꺼내기 어려웠고, 고용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취급을 받았었다.‘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우리 집 안에서 나왔다고 해서, 이 정도로...?’지금의 은하는 생각이 또렷하고, 디자인 감각도 뛰어나며, 심지어 상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까지 생겼다.‘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달라지는 게 가능한 일인가?’마음속은 복잡했지만, 정후의 표정은 잔잔하기만 했다.“경울시에서 이 정도 역량을 갖춘 기업은 NW그룹뿐이니까.”그 말에 은하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그럼 이렇게 해석해도 되겠네. 내가 NW그룹이랑 협력 안 하겠다고 하면, NW그룹은 내가 따낸 이 프로젝트조차 가만두지 않겠다는 건가?”정후는 순간, 은하가 하는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지금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NW그룹이 굳이 당신 거 뺏으려고 나서야 할 이유라도 있나?”은하는 싸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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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다시는 남은하 얘기, 내 귀에 들어오게 하지 마.”“예, 대표님.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현준은 온몸이 굳은 채,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병원.석진은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복도로 들어서자, 경호원이 집사 주대산에게 채원이 또 왔다고 말하는 게 들렸다.‘정말이야? 채원 이모가 왔다고?’그 말에 석진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한 표정으로 주대산에게 물으려고 했다.“그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주대산의 말에, 석진은 얼굴이 굳어졌다.“대산 아저씨, 누가 이모 못 들어오게 하래? 당장 채원 이모 데리고 와! 나 이모 보고 싶단 말이야! 이모랑 같이 있고 싶어!”주대산은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석진 도련님,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니었어요. 그냥 잠깐, 잠깐 상황 좀...”“아니야! 나 다 들었어! 거짓말하지 마! 나, 이모한테 갈 거야!”석진은 그대로 뛰쳐나가려 했고, 주대산은 온몸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경호원에게는 눈짓을 주며 얼른 채원을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석진 도련님, 곧 차가 오면 집으로 돌아갑시다...”또다시 주대산의 입에서 말이 나오자, 석진은 더 격해졌다.“싫어! 집에 안 가! 이모도 못 봤는데 어디도 안 갈 거야!”‘여기 있어야 이모를 볼 수 있는데...’‘집엔 가 봤자, 아무도 없잖아. 차가운 사람들뿐이야.’‘난 안 가. 절대 안 가.’주대산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타이르려 했지만, 석진은 아예 등을 돌리고 소리쳤다.“나가! 나가라고! 이모 아니면 아무도 필요 없어!”한껏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와, 석진은 주대산까지 내쫓았다.혼자 남겨진 병실, 눈가가 뜨거워진 순간, 석진의 핸드폰이 울렸다.‘채원 이모’라는 이름이 화면에 떴다.“이모... 대산 아저씨가 아빠 말 듣고, 나보고 집에 가래. 근데 나 진짜 가기 싫어. 집은 재미도 없고... 이모, 나 계속 병원에 있을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줘. 부탁해.”전화기 너머, 채원은 이미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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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결국 은하는 병원에 도착했다.도착하자마자 의사에게 불려 가 한바탕 혼이 났다.“아이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이에요. 얼마 전 수술도 받았고요. 그런 애한테 이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먹이면 어떡합니까? 보호자분들, 너무 부주의하신 거 아시죠?”“이번엔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열은 내렸지만, 아직 염증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서 오늘 밤 다시 열이 오를 수 있습니다. 꼭 곁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 제대로 된 간호 없이는 회복도 힘듭니다.”의사가 나간 뒤, 문 옆에 벽처럼 서 있던 경호원 두 명에게 은하가 조용히 지시했다.“간호사실 가서 알코올이랑 아이스팩 좀 가져다주세요. 밤에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한 명이 곧장 움직였고, 금세 물품을 가져왔다.은하는 방문을 닫고, 소파를 침대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예전에도 석진을 간호하느라 밤새는 일이 많았기에, 은하는 석진의 체온 패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보통 열이 오르는 시간은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이번에도 그러겠지. 그전에 대비해 두는 게 낫겠어.’알람을 맞춰놓고, 잠시 눈을 붙였다.그리고 알람 소리에 정확히 눈을 떴다.“으으음...”석진의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예상대로였다.은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스팩을 이마 위에 얹고, 몸 곳곳을 알코올로 닦기 시작했다.이런 일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그렇게 한 시간쯤 흐른 뒤, 체온계는 정상 수치를 가리켰다.‘괜찮아졌어. 이제 다시 열은 안 오르겠지.’은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소파에 누웠다.눈을 감으려던 그때, 석진의 흐느적거리는 잠꼬대가 들렸다.“엄마... 아파...”‘못 들은 척해...’눈을 감은 채 이불을 살짝 댕겼지만, 그 목소리는 자꾸만 귀에 맴돌았다.지워지지 않는 주문처럼.‘정말... 너랑 너희 아빠한테 뭘 그렇게 빚졌다고...’은하는 결국 체념한 듯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침대로 다가가 석진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조금씩 풀리는 석진의 미간, 은하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는 작은 얼굴... 그리고 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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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은하는 석진이 아직도 토라져 있는 걸 보고, 일부러 그를 따라 흉내 내며 두 번이나 콧소리를 냈다.“일어났으면 침대에 누워 있어야지, 엄마 옆에서 쭈그려 앉아 있으면 누가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어?”그러자 석진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잽싸게 허리에 손을 얹고 벌떡 일어섰다.“나 뭐든 몰래 하는 사람 아니거든! 아빠가 말해줘서 그런 거야! 엄마가 밤새 나 간호했다고 해서, 엄마 보러 소파 온 건데!”석진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조금 감동했었는데... 다 취소야! 진짜 엄마는 맨날 내 마음을 몰라줘!’‘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분명히 엄마가 달래주겠지.’하지만 은하는 그런 석진의 잔꾀를 다 꿰뚫어 본 듯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로 향했다.정후가 전화를 끝내고 돌아오니, 석진이 뺨을 부풀린 채 화장실 문 쪽을 째려보고 있었다.“석진아, 왜 그래? 뭐 잘못됐어?”석진은 곧바로 정후에게 달려가 손을 꼭 붙잡고 투정 부렸다.“아빠! 엄마가 나 억울하게 몰아붙였어! 나 보고 몰래몰래 움직였대!”“유치원 선생님이 그 말은 나쁜 사람한테 쓰는 말이라고 했단 말이야!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엄마한테 사과받을 거야!”정후는 어젯밤 겨우 한 시간밖에 못 자서 이미 머리가 띵한 상태였다.석진의 말에 자연스레 관자놀이를 문질렀다.‘하... 이른 시간부터 또 시작이네...’화장실 안에서 이 상황을 다 들은 은하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 나왔다.“너, 또 뒤통수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칠 줄은 몰랐네. 분명 네가 날 깨워서 놀라게 해놓고, 이제 와서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거야?” 석진은 금방이라도 울 듯이 정후의 팔을 흔들었다.“아빠! 들었지? 엄마가 나보고 나쁜 사람이라 그랬어! 엄마가 사과 안 하면... 나 그냥 여기서 안 일어날 거야!”그러고는 얼른 정후의 손을 뿌리치고, 눈에 띄게 폭신한 카펫 위에 바로 드러누웠다.은하가 반응도 하기 전에 팔 베고, 다리 꼬고, 눈 질끈 감는 연기까지 완벽했다.‘이건 100% 작전이다.’정후는 헛기침하며 어이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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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세상에... 너 지금 정후한테 그게 할 소리니? 아무리 너희가 이혼했어도, 석진이는 둘 사이의 아이잖아.”“그런 사람한테 ‘일이 있든 없든 연락은 삼가해 줘’ 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네. 네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해서, 우리까지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생각하니?”이리정이 흥분해서 한참을 쏘아붙이자, 은하는 한쪽 귀가 얼얼해질 정도였다.은하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혹시 개띠세요?”이리정은 순간 당황해 눈이 동그래졌다.“뭐?”은하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람이면 사람답게 좀 사세요. 왜 그렇게 남 일에 참견을 좋아하세요?”‘뭐든 다 참견 안 하면 못 사는 체질이야. 진짜 피곤하게 산다.’이리정은 그 말이 자기를 ‘개’에 빗댄 조롱이라는 걸 눈치채고 이를 꽉 물었다.“너 지금...!”하지만, 이리정은 돌연 손으로 가슴팍을 치며 신파처럼 읊조렸다.“어쩌다 내가 저런 버르장머리 없고 부모한테 기어오르는 딸을 낳았을까!”채원이 재빨리 옆으로 와 그녀를 부축했다.“엄마, 진정하세요. 어제도 협심증 때문에 고생하셨잖아요. 지금 화내면 안 돼요.”소파에 앉힌 뒤, 채원은 조심스럽게 은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언니, 다 알아요. 언니가 아직도 그날 ‘루시아르’에 우리가 찾아간 일 때문에 화가 안 풀렸다는 거... 근데 엄마 아빠도 언니가 걱정돼서 그런 거였어요. 엄마한텐 너무 그러지 마요, 네?”정후도 원래는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방금 은하가 한 말이 아무래도 좀 지나쳤다고 느꼈다.“당신이 좀 심했어. 어쨌든 사모님은 당신의 어머니야. 그렇게까지 모욕적인 말을 할 필요는 없었잖아.”석진도 은하를 올려다보며 조그맣게 말했다.“엄마가 잘못했어. 외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은하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는 걸 느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이 집안엔 여전히, 날 이해하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채원은 정후와 석진이 자신 편을 들어주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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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정후는 정말 피곤했다. 아침부터 엉망진창이었던 분위기 탓에, 지끈거리던 두통도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오빠,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머리 아파요? 제가 좀 눌러줄까요?”채원이 정후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정후의 손이 멈췄고, 깊은 눈빛으로 채원을 바라봤다.‘또 뭔가 의심하는 건가...?’채원의 심장이 순간 움찔했고, 황급히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집에서도 엄마 아빠를 자주 지압해 드리거든요. 오빠가 잘못 누르다 더 아플까 봐... 그게 걱정돼서요.”“됐어.”정후는 담담히 거절했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물었다.“은하랑 부모님 사이, 안 좋나?”채원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유정후가 이런 걸 묻는 사람이었나? 예전엔 관심도 없던 사람인데...’“그렇게까지는 아니에요. 언니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랑 같이 못 살아서... 서로 잘 몰라요. 그래서 부모님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려워하시고요.”정후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지만,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정말로 화해하고 싶었다면, 은하의 손에 난 상처를 못 봤을 리 없잖아...’채원은 정후의 시선과 생각이 은하에게만 머무는 게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입찰 얘기 들었어요. 어제 끝났다고 하던데... 전 어제 엄마 간호하느라 결과를 아직 못 들었거든요.”“근데 오빠도 참석했다면서요? 축하드려요. 경울시에선 NW그룹 말고는 될 만한 데가 없다고 다들 그러던데요. 다만...”채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번엔 정후가 평소처럼 묻지도, 어떠한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NW그룹, 낙찰 못 받았어.”채원은 순간 굳어버렸다.“말도 안 돼요. NW그룹은 경울시에서 제일 실력 있는 회사인데, 주최 측이 왜 NW그룹을 선택하지 않은 거죠?”정후는 채원이 말한 ‘NW그룹'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은하가 프레젠테이션 무대 위에서 여유롭게 발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은하와 채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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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채원은 이리정을 먼저 배웅한 뒤, 석진을 위한 장난감을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하지만 병실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정후가 굳은 얼굴로 석진과 마주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채원의 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요동쳤고, 무의식중에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정후의 눈매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목소리는 담담했다.“석진이한테 왜 친구랑 밥을 바꿔 먹었는지 묻고 있어.”‘아... 정말로 그 일 때문이었구나.’채원은 장난감 봉투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애들끼리 그런 건 흔한 일이에요. 너무 심각하게 굴면 석진이 더 위축되잖아요.”석진은 채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아빠는 엄마랑 달라서, 함부로 말하면 혼날 수도 있어...’정후는 눈썹을 꽉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지금 난 석진이랑 대화 중이야. 넌 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채원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그래요. 그럼 전 밖에서 기다릴게요.”나가기 전, 채원은 석진을 깊게 바라보았다.그 눈빛엔 분명한 뜻이 담겨 있었다.‘절대 말하면 안 돼. 약속했잖아.’방 안엔 다시 정후와 석진, 두 사람만이 남았다.석진은 긴장감으로 인해 손바닥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어떡하지... 들킬까 봐 무서워...’정후는 그 작은 손짓을 눈치챘지만 말리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기다렸다.한참을 망설이던 석진은, 결국 고개를 숙인 채 작게 입을 열었다.“아빠, 내가 잘못했어. 다른 애들이 맛있게 먹는 게 부러웠는데, 난 내가 먹는 게 별로였어... 그래서 바꿔 먹었어. 아파질 줄은 몰랐어... 미안해, 아빠.”정후는 아들의 솔직한 사과에 미묘하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아빠가 너 혼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다음부터 그런 거 먹고 싶으면 대산 아저씨한테 말해. 몰래 바꾸지 말고.”“응, 아빠. 알겠어.”석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작게 대답했다.사실 이번에 아픈 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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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윤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샘플을 들고 공장 쪽으로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은하는 이어서 시우를 찾으려다, 먼저 다가오는 시우와 마주쳤다.그는 은하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네며 바로 업무 보고를 시작했다.“협력 공장 쪽이랑 일정 조율 완료했어요. 주최 측에서 요구한 수량, 기한 내에 납품 가능하대요.”“그리고 모레까지는 여섯 가지 디자인 샘플 다 뽑아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이 담당자 앞에서 곤란한 상황 겪으실 일은 없을 거예요.”은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시우 씨가 옆에 있어야 숨 좀 돌릴 수 있네요.”‘진짜... 이 바닥에서 이렇게 말이 통하고 속 편한 사람이 또 있을까.’시우는 은하의 환한 미소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계속 제 옆에 계세요, 사장님.”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이내 시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이번 프로젝트, 담당자 쪽에서 우리한테 던진 일이 꽤 많잖아요. 근데 우리 회사 인원을 생각하면... 좀 무리인 게 사실이에요. 신규 인력 채용, 고려해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그 말에 은하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전생에서 채원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인물.‘그 사람... 지금 시점이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을 텐데.’하지만 은하에겐 지금 당장 사람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일을 시우에게 맡겼다.“그럼 시우 씨가 좀 알아봐 줘요. 조건이랑 방향성은 제가 따로 정리해서 줄게요.”시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사장님, 절 이렇게 탈탈 털어 쓸 생각이셨어요?”“그럴 리가요. 유능하니까 믿고 맡기는 거죠.”은하는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오늘 야근은 두 시간으로 예상 중이니까... 보상은 확실하게 해야겠죠? 맛있는 거 쏠게요. 뭐 먹고 싶어요?”윤설과 지안은 눈이 핑 돌 정도로 바빴지만, ‘먹는’ 얘기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삼겹살이요!”“아니에요, 전 파스타 당기는데요?”“시우 씨는요?”지안이 시우에게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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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은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근처엔 직원도 없었고, 주변에 사용할 만한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이건 아니지. 그냥 돌아가는 게 맞아.’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남은하, 돌아와.”익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은하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그리고 그 차가운 실루엣이 이미 엘리베이터 홀까지 다가와 있는 걸 확인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 이 한밤중에, 아들 간호는 안 하고 왜 남의 회사 주차장에서 사람을 놀라게 해?”은하는 진심으로 분노했다.‘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네.’‘아무 소리도 없이 차 앞에 서 있는데...’‘순간 범죄 현장 몇 개가 머릿속에 지나갔어...’정후는 이마 근처 핏줄이 두 번 정도 꿈틀거렸지만, 꾹 참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병원에 같이 가. 석진이가 널 보고 싶어 해.”은하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유 대표님, 혹시 유씨 가문이 경울시에서 아이 하나 돌볼 사람 못 구해서, 이 시간에 저한테까지 오신 건가요?” 정후는 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남자의 검은 눈동자는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농담 그만해. 당신은 석진이 엄마야. 아이는 엄마가 필요해. 그럼 당신이 가야 해. 그게 엄마의 책임이야.”‘책임? 지금 와서 그런 말을?’은하는 이곳에 CCTV가 있는 걸 떠올리며, 정후가 이상한 행동을 할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그래서 도리어 냉소적으로 웃어 보였다.“필요하다고요? 유 대표님, 그럼 예전에 당신 아들이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하시겠네요?”“제가 독하고, 쓸모없는 엄마래요. 당신 면전에서, 여러 번이나 남채원을 엄마라고 불렀고요. 그건 다 잊으셨어요?”정후의 얼굴이 굳어졌다.“그건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한 거잖아. 그걸 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난 담아둘 거야.”은하는 더 이상 억누르지 않았다. 쌓였던 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석진이는... 내가 반쯤 죽을 뻔하면서 낳은 애잖아. 내 모든 걸 쏟아부어서 키운 아이고, 다섯 살까지 단 한 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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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정후의 눈동자에 잠시 놀라움이 스쳤다.하지만 그 놀라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한테 말했잖아. 나랑 채원이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오히려 당신이...”정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은하 앞까지 다가섰다.남자의 크고 묵직한 그림자가 은하를 완전히 삼켜버렸다.“애초에 이 결혼은 양가 할아버지들이 정한 약속이었어. 지금은 당신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우리 쪽에선 먼저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어. 정말 싫었으면, 왜 당신은 직접 거절 안 했어?”‘이 사람, 지금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거야?’은하는 더 이상 비웃을 힘도 없었다.“아, 네.”“유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머리 굴려서 이 결혼을 밀어붙였고, 제가 남채원 씨 자리를 빼앗아서 당신을 힘들게 만든 거죠. 그래서 지금처럼 제가 물러난 상황에서도 만족을 못 하시는 거예요?” 정후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속에서 차오르는 짜증과 분노가 점점 그를 조여왔다.‘이런 전개는 내가 원한 게 아니었어...’은하는 그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정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대로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쳤다.“비켜. 당신이 안 가면 내가 갈 거야.”은하는 그대로 성큼성큼 주차장으로 걸어가 차에 올라탔다.문을 잠그고 시동을 켜는 동작까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정후는 점점 멀어지는 은하의 차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그 눈빛은 밤보다 더 어두웠고, 더 쓸쓸했다.그때, 또 하나의 차량 전조등이 주차장을 가르며 정후를 비췄다.눈을 가늘게 뜬 정후는, 곧 다가오는 차 안의 인물을 알아봤다.H시 조씨 가문의 황태자, 조시우.현재 외부에선 조시우가 ‘행방불명'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그런 그가 지금, 은하의 회사 주차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차 밖의 정후와, 차 안의 시우.두 사람의 시선이 차량 헤드라이트 사이로 정면에서 맞닿았다.정후의 눈빛은 먹빛처럼 깊고, 날카로웠다.시우 또한 전혀 흔들림 없이 응시했다.차가 정후 옆을 지나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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