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녀의 복수는 우아하게: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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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사장님! 큰일 났어요!”지안이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엔 아직 포장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샘플 박스가 들려 있었다.“공장에서 오늘 도착한 새 샘플인데요... 포장 풀자마자 색이 바래 있었고, 운동복 상의 원단도 뭔가 이상했어요.”시우는 직감적으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바로 샘플을 챙겨 은하에게로 향했다.윤설도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왔고, 분위기는 금세 무거워졌다.은하는 지안에게서 샘플을 건네받고, 상의를 펼쳐 보았다.눈에 띄게 얼룩지고 고르지 못한 색감.그 모습을 본 은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직접 원단을 만져보더니,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 공장에 지금 바로 연락해서,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건지 확인해 봐요.”“아까 연락해봤어요.”시우가 곧바로 대답했다.“공장 측에선 우리가 지정한 자재 업체를 그대로 썼다고 합니다. 원단도 염료도 다 같은 업체에서 납품받았다고 했어요.”그 말에 지안이 급히 덧붙였다.“그 업체, 제가 선택한 곳이에요. 예전에 몇 번 같이 일한 적 있었는데, 항상 퀄리티 좋았거든요.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어요...”은하의 표정이 더 굳어지자, 윤설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얼른 나섰다.“언니, 지안 씨는 평소에도 꼼꼼하게 일해요. 지안 씨가 믿는 곳이라면, 그 업체 평소엔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은하는 말없이 다시 샘플을 들여다보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이질감,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얼룩덜룩한 색상.‘이걸 내일 오후에 담당자 앞에 내놓으라고...?’“내일 오후에 주최 측 담당자가 샘플 실물을 보러 와요. 이 상태로 제출하면, 낙찰 취소될 수도 있어요.”그 말에 사무실 공기가 더욱 싸늘해졌다.윤설과 지안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겨우겨우 따낸 입찰인데... 이대로 엎어지면 정말 끝장이야.’지안은 눈가가 벌써 붉어져 있었다.“언니, 다 제 불찰이에요. 검수 제대로 못 해서 회사에 피해를 줬어요...”윤설은 곧장 지안을 다독였다.“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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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남광성과 채원의 표정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남광성은 빠르게 표정을 수습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이 대표님, 역시 정보가 빠르시네요. 맞습니다, 은하는 제 딸이긴 한데... 지금은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그러니 ‘루시아르’가 낙찰을 자격 박탈당하면, 이 대표님께서도 마음 놓고 저희와 협력하시면 되겠죠.”이강정은 그런 남광성의 말을 흘려들으며, 그 옆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채원을 슬쩍 훑어봤다.그 눈매가 가늘어졌다.“그야 당연하죠. ‘루시아르’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우리는 그냥 조용히, 좋은 소식만 기다리면 되죠.”남광성은 이강정의 시선을 단박에 알아챘다. 채원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자, 채원은 순간 미묘하게 굳었다.‘싫어.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해.’‘저 사람만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남은하는 다시는 못 일어서.’채원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강정에게 조용히 잔을 들었다....루시아르 사무실.“언니! 큰일 났어요! 그동안 재고를 가지고 있던 자재 업체들이 전부 자재를 팔았다고 해요. 추가 공급하기는 어렵다고요...”“저도 중간 유통상까지 다 연락해 봤는데요, 다 똑같이 ‘이미 다 나갔다’는 말만 해요...”윤설과 지안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실렸다.은하는 그 말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미 머릿속에는 전체 퍼즐이 거의 맞춰진 상태였다.‘역시... 그렇게까지 했구나.’시우의 표정 또한 어두워져 있었다.그걸 본 은하는 조용히 물었다.“시우 씨... 다른 공장들도 전부 ‘생산 불가’라고 했죠?”시우는 순간 멈칫했다.“어떻게 알았어요?”은하는 씁쓸하게 웃었다.“짐작했어요. 며칠 전 어떤 사람이 경고했었거든요. 경울시 사람들은 이번 프로젝터에서 우리가 성공하길 원하지 않는다고요. 나도 조심한다고 했는데, 결국은 걸려들었네요.” ‘그때 유정후가 했던 말... 설마 그 사람도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건가?’시우는 본능적으로 정후를 떠올렸다. 며칠 전 레스토랑에서 은하와 정후가 나눈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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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차량 5부제 때문에 은하는 직접 운전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속버스를 타고 주광시로 향했다.경울시에서 주광시까지는 한 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되고 있었고, 운 좋게도 은하는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탑승할 수 있었다.버스 내부에는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에어컨과 오래된 시트, 땀 냄새가 뒤섞인 듯한 공기.하지만 은하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이 냄새... 익숙해.’이건 은하가 가장 많이 맡았던, 가장 익숙한 냄새였다. ‘Gravik’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은하가 과거에 아르바이트했던 식당 바로 옆 건물이 Gravik의 초기 사무실이었다.그때는 은하가 남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이었다.양부모님은 막 세상을 떠났고, 은하는 1년 치 등록금을 혼자 마련해야 했다.‘그땐 쓰레기 주워서는 도저히 학비가 안 됐어.’그러던 중,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주광시에 방학 중인 알바생을 받는 식당이 있다고 알려줬다.그렇게 은하는 낯선 도시로 향했다.그 식당은 2층짜리 대형 매장이었고,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고 웅장했다.‘처음엔 여기가 정말 식당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그래서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일해도 힘든 줄 몰랐다.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지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은하는 어떤 룸에 들어가 주문을 받다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그날... 진짜 무서웠어.’겨우 빠져나온 은하는 사장에게 부탁해 급히 월급을 정산해달라고 했다.며칠만 더 일하면 한 달을 꽉 채우는 상황이었음에도, 사장은 월급의 반만 주고 은하를 돌려보냈다. 은하는 그 돈을 꼭 쥐고, 울면서 다시 경울시로 돌아갔다.그해 등록금은 결국 다 못 채웠고, 은하는 퇴학 위기까지 몰렸다.다행히 동사무소의 직원들이 도와준 덕에 겨우 고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었다.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밀려왔다.‘진짜... 그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그래서 남씨 가문에서 자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을 때, 은하는 하늘이 드디어 자신에게 손을 내민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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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오, 소문 한번 빠르네? 근데 우리 공장은 경울시가 아니라 주광시에 있는데, 내가 샘플 보여준다고 해 봤자, 넌 못 보지 않겠어?]상대방의 말투는 건방지고 성의 없었다.은하는 그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저 지금 Gravik 공장 앞이에요. 시간 괜찮으시면 샘플을 직접 보고 싶어요. 괜찮으면 바로 발주 넣을 생각입니다.”[뭐? 벌써 도착했다고?]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뒤적이는 소리.그리고 곧 공장 안 구석에서 담배를 입에 문 노란 머리 남자가 슬리퍼를 끌며 모습을 드러냈다.헐렁한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파란 쪼리까지 대충 신은 모습.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그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커졌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뚝 떨어졌다.“와... 미쳤다. 개이쁘네?”은하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싸늘해졌다.그리고 천천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이 남자. 전생에 내가 그림으로 그린 적 있어.’과거 정신병원에 있던 한 병실 환자가 그 남자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었다.그림이 완성되자마자, 그 환자는 눈이 벌게져선 그림과 이젤을 뒤엎으며 외쳤다.“아 새X야! 날 망친 건 바로 너야! 죽여버릴 거야!”그 장면은 은하의 머릿속에 선명히 박혀 있었다.그리고 그 환자가 왜 그렇게 무너졌는지...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됐다.그 남자는 정신이 불안정했던 그 환자를 창고에 감금하고, 이틀에 한 번 겨우 밥 한 끼 주면서 더러운 물을 마시게 했다.탈출하지 못하게 기력을 약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했다.결국 그 환자는 구출됐지만... 세상과 단절된 채, 병원 안에서 죽음만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됐다.그래서 지금, 은하는 눈앞의 이 남자에게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야, 멍하니 뭐해? 샘플 본다면서!”노란 머리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은하는 곧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럼요, 봐야죠. 저는 ‘루시아르’ 디자인팀 소속이에요. 이번엔 저희 사장님 지시로 온 거고, 나중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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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노란 머리가 나간 틈을 타 은하는 호신용 스프레이를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왼쪽 어깨는 방망이에 맞은 충격으로 지금도 욱신거리고, 저릿저릿했다.하지만 은하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숨소리마저 삼키듯 억눌렀다.‘아직 끝난 게 아냐. 방심하면 죽어.’끼익.갑자기 창고 문이 아주 느리게, 묵직하게 열렸다.그 소리는 북소리처럼 은하의 심장을 두드렸다.은하는 본능적으로 문 뒤편으로 바짝 몸을 붙이고, 손에 쥔 스프레이를 꽉 움켜쥐었다.문틈 사이로 바깥을 엿봤다.들어온 건 아까 그 노란 머리가 아니었다.훨씬 덩치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낯선 남자였다.‘망했어... 저 덩치면 내가 스프레이 제대로 쏠 수 있을까?’그 남자의 눈이 예리하게 사방을 훑었다.그리고 곧장 문 뒤 은하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들켰다!’츠!은하는 망설이지 않았고, 손에 힘을 주어 스프레이를 정면으로 분사했다.남자는 빠르게 팔로 얼굴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그 순간, 은하는 입술을 세게 깨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문밖으로 몸을 날렸다.‘잡히면 끝장이야, 무조건 나가야 해!’“사, 사모님?! 괜찮으세요? 대표님이 조금 전까지 사모님을 찾고 있었는데... 혹시 못 보셨어요?”현준의 목소리였다. 차에서 급히 내린 듯,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은하는 그 말에 그대로 멈춰 섰다.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춘 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유정후? 이 근처에 있었단 말이야?’그렇다면... 방금 창고 안에 들어왔던 그 남자...‘설마, 그게 유정후?’그 순간, 익숙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가 은하의 등 뒤를 훑고 지나갔다.“당신이 그렇게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인 줄 알았으면, 괜히 나서지 말 걸 그랬네.”은하의 등줄기에 싸늘한 한기가 흘렀다. ‘진짜... 그 사람이었어?’은하는 천천히 돌아섰다.그리고 눈앞에 선 정후의 모습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다.항상 차갑고 절제되어 있던 남자의 눈이 지금은 핏발이 잔뜩 서서 벌겋게 충혈돼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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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노란 머리는 은하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곤, 구해주러 오는 줄 착각했다. 눈에 희미한 웃음기까지 맺혔다.“당신...”정후가 묵직하고 냉담한 목소리로 은하를 불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공기를 짓누를 만큼 무거웠다.은하는 정후를 스치듯 바라보고는 조용히 눈짓했다.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였다.‘이 여자, 나를 이렇게 제지하는 사람일 줄은...’정후는 평소에 명령하고 통제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눈빛 하나에 멈춰 섰다. 이 낯선 감각이 그를 잠시 멈칫하게 했다.그는 조용히 한 걸음 옆으로 비켰다.은하는 다시 노란 머리를 바라봤다. 입이 틀어막힌 채 자길 보며 웃는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지만 은하의 웃음은 노란 머리의 등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치이익...은하는 준비해 둔 스프레이의 뚜껑을 열고, 노란 머리의 얼굴에 그대로 뿌렸다.“으으읍! 으으으읍!!”노란 머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쳤다. 손발이 묶인 탓에 눈을 닦을 수조차 없어, 이마를 바닥에 대고 몸을 꾸깃꾸깃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꼴 좋다. 제발 이 고통을 기억해. 두 번 다시 누굴 해치려 들지 못하게.’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은, 마치 육지에 떠밀려온 죽어가는 물고기 같았다.“이건 네가 사람을 함부로 다치게 한 대가야. 똑똑히 기억해. 다시는 기회 없어.”은하의 냉정한 모습에, 정후는 다시 한번 그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네.’현준은 고개를 돌렸다. 노란 머리의 비참한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웠다.‘와... 방어용 스프레이 하나에 저 정도라고...?’‘유 대표님은 가스 조금 맞고도 정신 못 차렸는데...’‘쟤는 진짜 실명할지도 모르겠는데?’‘사모님... 무서워요.’“현준, 됐어. 이제 신고해.”정후는 눈 밑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는 걸 느꼈다. 빨리 마무리하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네.”현준이 핸드폰을 꺼내려던 그때,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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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경찰서에서 진술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해는 지고 어둑해진 상태였다.은하의 강력한 요청 덕분에 경찰은 노란 머리의 과거 행적을 면밀히 조사했고, 그가 여러 차례 여학생을 창고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처음엔 끝까지 발뺌하던 노란 머리도, 명백한 증거들 앞에선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공범 여부를 추궁하자, 노란 머리는 단독 범행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현장에서도 제삼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노란 머리가 비교적 순순히 자백했기에 사건은 일단 검찰로 송치되었다.그러나 정후의 법무팀이 있는 이상, 노란 머리가 가벼운 처벌로 끝나긴 어려울 것이었다.‘아쉽다... 분명 저 인간 뒤엔 더러운 손이 있을 텐데.’‘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겠지.’은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경찰서를 나섰고,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정후는 곧장 은하를 붙잡아 부축했고,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앞 좀 보고 다녀.”은하는 정후의 손을 툭 치며 뿌리쳤다.“누가 도와달래?”정후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죄송해요, 제가 앞을 잘 못 봤어요. 괜찮으세요?”익숙하면서도 한참을 잊고 지냈던 목소리.은하는 그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젊고 단정한 인상의 여성이 미안한 얼굴로 자신에게 사과하고 있었다.‘이 목소리... 설마...’은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본능처럼 튀어나온 말.“혹시... 황다인 씨예요?”다인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은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저를... 아세요?”정후도 의아하다는 듯 은하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는 사이야?”그제야 은하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아차, 지금의 다인 씨는 날 모르는 상태지.’은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네, 아마 다인 씨는 절 모르실 거예요. 저는 남은하라고 합니다. 전에 친구한테서 다인 씨 얘기를 들었어요. 피아노를 정말 잘 친다고... 그래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어요.”다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아, 그런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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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정후의 말에 현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 파티가 중요한 건 맞지만, 정후 정도면 동행인 찾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이건 명백히 사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단 얘기잖아...’‘그런데 우리 대표님... 또 그 말을 직접 하진 못하고...’‘사모님이라면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을 텐데...’‘한때 그렇게 대표님을 좋아했던 사람이니까.’그런데 은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정후를 바라봤다.‘우린 지금 아무리 좋게 봐도 앙숙인데... 이런 부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지?”은하의 반응에 정후는 눈빛이 서늘해졌다.그가 무표정하게 물었다.“내 초대가 웃겨?”“안 웃긴다고 생각하는 거야?”은하의 비웃음 섞인 말투에, 정후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긴장감이 감도는 그 순간, 현준은 덜컥 겁이 나 입을 열려 했지만, 정후가 먼저 다시 말을 꺼냈다.“당신, 메시 원단 찾고 있지? 오늘 파티에 나오는 업체 중 하나가 그 원단을 다뤄. 출하 품질이나 환경 인증도 중소 공장 수준이 아니야.”은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건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정보잖아.’은하가 급하게 자리를 뜨려 했던 것도, 바로 새로운 메시 원단 공급처를 찾기 위해서였다.정후가 말한 회사가 진짜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좋아. 당신 파트너가 될게. 대신, 그 업체 소개는 확실히 해줘.”‘곧 시민 체육대회가 끝나면 메시 수요는 폭증할 거고...’‘그땐 안정적인 납품 라인이 절실해질 거야.’‘어차피 혼자 뛰어다닐 바엔, 유정후의 정보망을 이용하는 편이 낫지.’...파트너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정후의 기준은 냉정했다.은하에게 준비해 놓은 드레스는, 최고급 브랜드의 최신 컬렉션.퓨어 화이트 드레스는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실루엣으로 그녀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려줬고, 검은 정장을 입은 정후와 나란히 서자 샵 직원들이 연신 감탄했다.“와... 두 분 정말... 딱 그림이네요. 정말 천생연분 같으세요.”은하는 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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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곽 사장님, 오늘 정말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며칠 뒤에 경울시로 출장을 가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그때 좀 더 자세히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곽산하의 말에 은하는 단번에 눈치를 챘다.‘장기적인 거래 의사가 생겼구나.’“좋습니다. 다만, 제가 이번에 급하게 필요한 수량이 있어서요. 가능하면 오늘 안에 출고가 돼야 하는데... 혹시 곽 사장님 쪽에서 조율해 줄 수 있으실까요?”곽산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문제없습니다. 저희는 전부 당일 출고 가능한 재고입니다. 남 사장님이 원하는 수량도 많지는 않으니, 기사님들한테 야근을 부탁해서라도 처리해 드릴게요.”“정말 감사해요, 곽 사장님.”두 사람이 막 잔을 들고 건배하려는 순간, 정후가 다가왔다.그는 자연스럽게 은하의 허리에 손을 얹고는, 그녀를 지나 곽 사장에게 잔을 내밀었다.짠.유리잔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은근히 날카롭고 묵직하게 울렸다.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단번에 긴장감이 퍼졌다.‘이 분위기... 누가 봐도 선 긋는 거네.’곽산하는 순간 상황을 파악하고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 유 대표님.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씀 나눴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네. 곽 사장님, 조심히 가세요.”정후는 짧게 말하고 시선을 은하에게 돌렸다.그 시선엔 날이 서 있었다.당장은 말없이 서 있을 뿐인데도, 마치 무언가 거세게 안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은하는 와인잔을 들고 조용히 그 손을 내려다봤다.자신의 허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얹힌 정후의 손.그리고, 그 손의 존재감보다 더 거슬리는 건 그의 태도였다.은하는 시선을 들어 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또 무슨 짓이지?”정후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와준 거야. 괜히 곽 사장 부인 귀에 소문 들어가서 귀찮게 하는 일 없게.”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명분은 그럴싸하네. 하지만... 지금 질투하는 거지?’은하는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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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정후는 바로 현준을 불렀다.“남은하, 어디 갔어?”현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저... 저는 아까부터 차에 있었는데요. 사모님은... 안 오셨어요.”정후의 검은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짙은 먹구름이 그의 이마 사이에 모여들더니, 지금이라도 벼락을 칠 듯한 기운으로 번졌다.‘뭐야... 또 이 분위기...’현준은 숨을 삼키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그는 머리를 굴리다 못해, 가장 가능성 없어 보이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꺼냈다.“대표님, 혹시... 사모님이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신 걸 수도... 말씀을 깜빡하셨거나요.”정후의 턱선이 굳어졌다.얇은 입술은 한 줄로 꾹 닫혀 있었고, 그 눈빛은 말이 아닌 ‘분위기’로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내가 이제야 남은하를 다시 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본성은 여전하군.’정후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계산적이야, 여전히.’그는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메시 원단 납품업체가 오늘 파티에 온다는 거, 그걸 알자마자 주저 없이 따라왔지.’그리고 필요한 정보를 얻고 나니까, 나는 더 이상 필요 없어져서 그냥 버린 거야.’현준은 정후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기색을 느끼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설마, 여기서 폭발하시는 건 아니겠지...’그런데 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호텔 스위트룸.은하는 꼬박 세 시간을 몰입한 끝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영감을 스케치로 완성했다.섬세하게 디테일을 다듬은 뒤, 그 도안을 이메일에 저장했다.‘이건 확실히 지금 시장에 없는 스타일이야. 그리고... 내 손으로 만든 첫 시작.’은하는 시계를 흘끗 봤는데, 밤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그제야 정신이 든 듯, 회사 단톡방에 아직 메시 원단 업체 이야기를 못 전했다는 걸 깨달았다.핸드폰을 집어 든 은하는, 곽산하 사장이 이미 샘플 사진을 보내놓은 걸 확인했다.[남 사장님, 확인해 보세요. 문제없으시면 오늘 밤에 바로 수량 맞춰서 출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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